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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을 옮겨 적다

  • 작성일 2007-04-30
  • 조회수 1,723

금강경을 옮겨 적다

황규관


결국 직장에서 팽개쳐지고

밤마다 금강경을 옮겨 적는다

어지러운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은밀한 생각을 갖기 위해서라면

너무 늦은 일일까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지금껏 내가 보아온 게 모두 허상임을 안다면

다른 세상을 살 수 있다는데

아침에 일어나 다시 뒷산을 걸어도

떡갈나무야, 나는 아직 아는 바가 없구나

분노보다도 슬픔에 익숙해진 이후라야

혼자 길을 갈 수 있을까

가난, 사랑, 바람, 잎사귀, 자벌레

이런 뭉게구름 같은 말들에 마음은 가는가

옮겨 적은 말씀이 가벼웁다

미워하되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사랑하되 사랑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일

아직 아득하고 괴로운 일이니,

오늘 밤에는 한 줄 더 옮겨 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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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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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익명

    나흘전에 읽고 지금에서야 감상을 적어봅니다. 신년이 다가오는데 인사가 늦었습니다. 그리고 과연 선배님의 글이란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을 보는 즐거운 독자가 된 심정입니다. 여러지면에서 여러독자들에게, 내게서와같은 즐거움을 주는, 이러한 글들을 앞으로도 자주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한사코 스러지지 않을 것처럼 한 철의 바람이 매섭기만 한 요즈음입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2011-01-16 13:56:1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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