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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귀소

  • 작성일 2009-11-27
  • 조회수 1,155

어떤 귀소(歸巢)

장이지


해삼위(海蔘威) 부근 상설시장

누비 구름 누덕누덕 걸린 하늘,

두만강 가는 길 묻고 다니던

꽃제비 한 아이

이국의 장날을

썩은 감자껍질 같은 것이나 줍느라

진종일 바장대다 길 위에 눕고

고려인 장사치가 호떡을 가져왔다 잠시

집으로 가는 후줄근한 꿈 여행을

들여다보고 앉아 있었다.

 

밤물결 소리도 귀에 먼

해삼위 부둣가 낡은 집

전쟁 통에 가족들 뿔뿔이 흩어져

중원의 모래바람으로 아무렇게나 살다가

이제는 까라져 가죽만 남은 노인이

코리아의 호드기 소리를

난청으로나 듣는 밤,

민족이란 말도 요새는 없다는데

고국산천에 쓴 무덤의 냄새는

꿈에서 더 간절하기만…….

돌아가기는 갈 것이다.

그러나

이 몸을 다 갈아 없애고서야.

 

아리랑―

분노는 차가운 땅 시베리아로 유형을 보내 얼리고

고독은 막걸리 항아리에 함께 담아라.

설움은 행랑방에 주저앉혀 짚신이라도 삼게 하고

그리움은 아무래도 잔월효성에게나 떠넘겨야 하리.

 

 

장사치를 따라 우수리로 밀려 온

꽃제비 도토리묵 먹던

접시에 기러기 울어 예며 날았다.

걸핏하면 잘 울었다는 저 박용래의 어느 시에서처럼.

탈북 하여 떠돌다 아버지 병들어 죽고

모친 있는 고향으로나 돌아가야 한다고 보채다

밤사이 인사도 없이 떠나다, 꽃제비여!

연해주의 모든 길을 허리띠에 묶고 질질 끌면서

마침내는 어머니에게로 갈 까마귀 같은 아이.

연해주의 찬 하늘에 가족 잃은 설움을 밀어두고야

짓무른 꿈을 베갯잇에 적시는 노인.

아리랑은 유형(流刑)의 노래던가.

고려인 장사치가 치켜다본 새벽하늘엔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둥근 달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눈부신 흰 머리로 짜낸

정안수 그릇으로 아슴하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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