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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천 피순대

  • 작성일 2011-09-01
  • 조회수 847

북천 피순대

유홍준


우리는 길옆 식당에 앉아 피순대를 받구요 저녁비 내리는 2번 국도 비에 젖어 번들거리구요 여기는 國道가 아니라 天道라 하구요 위태롭게 위태롭게 모자 쓰고 한 손에 낫을 든 사람 걸어가구요 얼굴이 없구요 그는 앞이 없구요 우리는 북천에서 늘 異邦, 나팔꽃 피구요 해바라기 피구요 피순대 한 점 소금에 찍으면 다시 또 한 줄금 소나기, 건널목 없는 북천 늙어 무릎 아픈 여자 비척비척 비닐 봉다리를 흔들며 무단횡단하구요 개나 사람이나 여기서는 다 횡단, 비에 젖은 파출소 불빛 쓸쓸하구요 손바닥만 한 파출소 불빛 치킨집 불빛보다 못하구요 창자에 피를 가득 채우는 게 가능한가, 창자에 피를 가득 채워 삶아 먹는 게 가능한가, 다 태운 담배꽁초 하나 탁 튕겨 국도 위에 버리고 돌아서면 내일 아침 국도 위에 죽어 있는 주검을 또 누가 치우지 휘청, 주검을 밟고 지나가지 않으려고 비틀거리는 차들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어디로 간 걸까 까닭 없이 코스모스꽃 피구요 배롱나무꽃 피구요 우리는 또다시 길옆 식당에 둘러 앉아 피순대를 받구요 비에 젖어 번들거리는 눈빛, 흐린 유리창에 지나가는 차 물 한 양동이 튀겨와 눈 질끈 감구요 창자나 국도나 구불거리는 마찬가지, 피순대야 피순대야 더워 김 오르는 피순대야 구절초 피구요 다시 구절초 피어 싸늘해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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