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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산책

  • 작성일 2022-06-30
  • 조회수 488

밝은 산책

고선경


감은 눈 속에서 어두운 숲이 부풀었어 이파리 한 장에도 나는 쉽게 긁혔고 너는 괜찮아 괜찮아 말해 주었다 동전을 던져 미래를 결정하려 했으나 동전은 손바닥을 통과해 깊고 깊은 웅덩이 속으로 가라앉았다 미래가 나를 결정하려 하는 것 같아 괜찮아 괜찮아 하지 말고 네 심장을 꺼내 나에게 줘 너의 그 녹슨 심장 말이야 혹시 억울하니


밤은 매일의 페이지를 넘긴다 파본 파본 파본 나는 너무 시끄러운 귓속말이야 마음대로 길을 내지 마음에 드는 식물을 보면 뿌리째 뽑아버리지 어디선가 날아온 공이 뒤통수를 세게 쳐서 나도 모르게 눈을 번쩍 떴어 눈을 뜨면 어떤 세계는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지하철에서 회사에서 식당에서 집에서 캄캄한 눈꺼풀 안쪽을 두드렸다


한 달도 가고 일 년도 갔다 한물간 동전들이 하나둘 내 안으로 떨어져 내렸다 다시 그 숲에 가게 된다면 불을 질러버릴 거야 그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까 그때 숲은 환희로 가득 차게 되리라는 게 내가 지은 결말이었다 너는 안 들려 안 들려 하다가 내 몸에 기름을 부었다 만약 폭우가 내렸더라면 더 아름다운 장면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 텐데


밤은 너무 자주 읽은 편지야 모든 문장 속에서 너는 사이프러스처럼 서 있고 흔들리고 향기를 풍긴다 적당히 촉촉해서 우수에 젖기 쉬운 페이지


어디로 갈 거야?
네가 향하는 곳


우산을 버리고 폭우를 맞으며 한 발 두 발 허밍은 산책 산책은 허밍 그런 말로 우리는 우리를 얼마든지 기만할 수 있다 나의 깊고 더러운
숲속을 걷다가 버려진 자동차에 몸을 싣는다 그건 내가 결정한 미래 시동은 가까스로 걸리게 되어 있다 그리고 돌진 돌진 돌진


신호등에 어떤 불도 들어오지 않은 아주 짧은 순간 나는 어떻게 하면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생각하다 공중전화 박스를 박았다 단 한 번의 굉음 녹슨 수화기가 떨어져 대롱거렸고 그곳에서 너의 허밍이 가느다랗게 들려왔다 괜찮아 괜찮아 우리는 눈을 떠야 보이는 세계에 갇혀 있었다 숲의 한가운데서는 언제나 깊고 깊은 도시가 발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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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계정1
  • 202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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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 채길우 전통의상을 차려 입은 고산지대 아낙은 말도 통하지 않는 여행객들에게 자신이 키운 돼지를 팔려고 했다. 피부병 걸린 껍질이 들고 일어나 문드러지고 변색된 돼지는 허약하고 작았지만 아낙은 튼실하고 문제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앞발을 한데 붙들어 품에 들어올린 후 양 무릎으로 돼지 허리를 죄어 괬다. 아낙이 돼지의 희멀건 배를 한 손으로 쓰다듬어 주고 돼지는 날선 비명이 드리운 그림자만큼 긴 울음을 터뜨려 거품 문 입으로부터 공명하듯 침이 질질 흘러내리는 동안 햇살을 등지고 서서 현이 끊어진 채 풀풀 날리는 빛과 털과 텁텁한 공기 이상하리만치 아름다운 이국적 선율의 여러 가지 절망들이 눈부시도록 투명해 먼 나라의 허기와 영원까지도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처럼 낮고 오래 지속되는 듯했다.

  • 관리자계정1
  • 2023-04-21
끓어오르는 것이 세계의 법칙이라면

끓어오르는 것이 세계의 법칙이라면1)2)3) 조시현 * 더 많은 방에 불이 켜진다 더 많은 것이 천국에 가까워지도록 바라는 것은 언제나 더 따뜻한 조금 더 * 졸아붙은 냄비 위로 그릇들이 쌓여 가고 수술대 위에서 몸은 흩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우주먼지 되기 그것은 다음 생을 위한 약속 구성 성분이 같으니까요 * 이 방은 너무 오랫동안 조용했어요 * 엎질러진 물은 천사의 모습을 하고 높은 압력과 온도는 물질을 변화시킨다 문을 꽉 닫아야 하는 이유 성장하는 존재니까요 엄만 성질을 못 참고 용암은 부글거리고 우린 끓어오르듯 일하고 다소 미친 것처럼 사랑도 하죠 임산부의 기초체온은 약간 더 높고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더 높은 열기가 필요하고요 끓어오르는 것이 세계의 법칙이라면 전부 오래 전부터 정해진 일 다정한 품을 상상하면 녹는 것도 좋아 * 아스팔트 위의 써니 사이드 업 커피도 알맞게 끓어오르고 십일월에도 꽃이 피어요 우그러든 책 모퉁이는 천사가 떠난 흔적 얼마나 멋진 다음이 오려고 자꾸만 더워질까요? * 눈을 보면 알지 영혼이 가열되고 있다는 증거 따뜻함만으로는 안 된다는 증거 천천히 누적되는 미래의 산책 * 냄새는 당하는 것 부풀어 오르는 게 염증반응이듯 마침내 비구름이 흘러내리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요 우산을 폈다 접으며 바람 부는 방향을 가늠해 봐요 비는 마음대로 국경을 넘고 하늘에서 세포가 뚝뚝 떨어져 내려도 여전히 지구는 지구 머리부터 시작해도 꼬리부터 시작해도 붕어빵이 붕어빵이듯 모든 건 완벽하게 계량되었죠 날짜변경선을 지나면 어제가 돌아와 가능한 건 겨우 이 정도의 일이어서 등압선의 방식으로 어제를 묶으면 폭죽 그래서 축제 그냥 우리 걱정은 접어 두고 춤출까 어제가 돌아왔으니까 아직은 기념일이니까 밟아도 돼 그래도 돼 의문형만으로도 모든 걸 단정 지을 수 있는 세계니까 어제 발생한 도시가 오늘 사라져도 우리는 모두 지구촌 사람들 다 같이 손을 잡고 멸망을 밀어내는 로맨스? * 찻잔 속 태풍 둥글게 둥글게 * 폭죽 따뜻해 * 물컵은 줄어들고 발등은 부어올랐지 * 숨 죽이고 저녁이 눌어붙은 냄비를 벅벅 닦아내면서 얌전히 다음을 기다린다 * 곧 새로운 세계가 온다 1) 플라즈마란 초고온에서 음전하를 가진 전자와 양전하를 띤 이온으로 분리된 기체 상태를 말한다. 이때 전하 분리도가 상당히 높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음과 양의 전하수가 같아서 중성을 띠게 된다. 흔히 ‘제4의 물질 상태’라고 부른다. 고체에 에너지를 가하면 액체·기체로 되고, 다시 이 기체 상태에 높은 에너지를 가하면 수만℃에서 기체는 전자와 원자핵으로 분리되어 플라즈마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우주 전체의 99%가 플라즈마 상태라고 추정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플라즈마 [Plasma] (손에 잡히는 IT 시사용어, 2008.02.01) 2)오르가슴은 성 반응주기 중에서 신체적이나 또는 정신적으로 그의 긴장, 쾌감이 최고조에 도달하는 순간을 뜻한다. 사람의 성 반응은 흥분기, 상승기, 오르가슴기, 쇠퇴기라는 주기가 있고, 성 반

  • 관리자계정1
  • 202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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