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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니?

  • 작성일 2019-10-01
  • 조회수 299

예쁘니?

권민자


"엄마가 할 만한 말은 아닌 것 같아."
말하려다, 엄마 옆에 앉아, 엄마처럼,


양다리를 활짝 열고,1) 자궁을 활짝 열고,2) 세월이 흐르고 있는 내 자궁을,3) 보고, 다시 엄마 자궁을, 보고, 저 열려진 자궁으로부터 내가 나왔는데,4) 우당탕탕 찢고 내가 나왔는데,5) 왜, "엄마가 할 만한 말은 아닌 것 같아." 말하려고 했을까?, 엄마는 예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뿐인데,6)


엄마, 나도 이번 달에 산부인과 가야 하는데, 자궁경부암 검사 받으러 가야 하는데, 가서 이렇게 다리 벌려야 할 텐데,7) 그 차고 섬뜩한 검사기계가 나를 밀고 들어올 텐데,8) 이렇게 엄마랑 같이 벌리고 있으니 괜찮다, 말하니, 얘 모르는 척 안 가본 척 처음인 척 가지 않아도 돼,9) 나 요실금 수술 받으러 갈 때 같이 갈까?, 말하는, 엄마.


예쁘니?, 고민되더라니까, 진짜 질이랑 골반이 짱짱해진다잖니, 요실금에도 좋고, 자궁에도 좋고, 방광에도 좋다고 하니까······10) 말하면서, 자꾸자꾸, 들여다보며, 예쁘니?,


아직 한 번도 자식 낳아 본 적 없는 내 자궁에서 덜거덕 소리가 나고,11) 엄마 자궁에 번지는 검붉은 기운을 보며,12) 흙이 되어 가는 엄마 자궁을 보며,13) 울컥 불컥,14)


예쁘다······

1) 여름 학기/ 여성학 종강한 뒤,// 화장실 바닥에/ 거울 놓고/ 양 다리 활짝 열었다. (진수미, 「Vaginal Flower」 부분, 『달의 코르크 마개가 열릴 때까지』, 문학동네, 2005.)
2) 아나 찍으시오! 나는 자궁을 활짝 열어주었다 (문정희, 「나의 자궁」 부분, 『응』, 민음사, 2014.)
3) 나와 내 아이가 이 도시의 시궁창 속으로 시궁창 속으로/ 세월의 자궁 속으로 한없이 흘러가던 것을 (최승자, 「Y를 위하여」 부분, 『즐거운 일기』, 문학과지성사, 1984.)
4) 여자의 자궁은 바다를 향해 열려 있었다./ (오염된 바다)/ 열려진 자궁으로부터 병약하고 창백한 아이들이/ 바다의 햇빛이 눈이 부셔 비틀거리며 쏟아져 나왔다. (최승자, 「겨울에 바다에 갔었다」 부분, 『즐거운 일기』, 위의 책.)
5) 우당탕탕 (이원, 「자궁으로 돌아가자」 부분,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문학과지성사, 2001.) ; 자궁을 찢고 나온 적이 있는 (이원, 「나이키 1」 부분,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문학과지성사, 2007.)
6) 그런데 왜 여자는 예쁘기를 포기하지 못할까/ 그건 누가 가르친 게 아니다 ···(중략)··· 아무도 여자로 봐주지 않는데도 여자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놓으면 편한데 결코 놓지 못하는/ 그 힘도 말릴 수 없는 에너지라면 에너지다/ 세대를 건너오는 발그스럼한 불씨다 (이규리, 「예쁘기를 포기하면」 부분, 『뒷모습』, 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7) 머리털 나 처음으로 돈 내고 다리 벌린 날, 소중한 당신 산부인과에는 다행히 여의사만 둘이었다. 어디 한번 볼까요? 자궁경부암 진단용 초음파 화면 가득 잘 익은 토마토의 속살이 비릿한 붉음으로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김민정, 「음모陰毛라는 이름의 음모陰謀」 부분,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문학과지성사, 2009.)
8) 일년에 한번 자궁경부암 검사 받으러 산부인과에 갈 때/ 커튼 뒤에서 다리가 벌려지고/ 차고 섬뜩한 검사기계가 나를 밀고 들어올 때/ 세계사가 남성의 역사임을 학습 없이도 알아채지// 여자가 만들었다면 이 기계는 따뜻해졌을 텐데/ 최소한 예열 정도는 되게 만들었을 텐데/ 그리 어려운 기술도 아닐 텐데/ 개구리처럼 다리를 벌린 채/ 차고 거만한 기계의 움직임을 꾹 참아주다가 (김선우, 「하이파이브」 부분,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창비, 2012.)
9) 박철수는 1997년 <씨네21> 인터뷰에서 《산부인과(Push! Push!)》를 통해 "여성성의 본질에 관"해 말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여성성의 본질"은 "약하고 혹은 보호받을" 만한 여성이다. 그는 "세상이 깨끗해지려면 여성의 자궁이 깨끗해져야 한다"며, "지금의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너무 강하기 때문에 원래의 여성성, 아름답고 보호받아야 하고 어리광부리고 하는 것들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자신의 영화 《산부인과(Push! Push!)》는 "여성을 주제로 해서 상품화시켰기 때문에 여성 영화라고 할 수 있"으며, 자신은 "이상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대체로 여성 편에 서 있다"는 것이다. 기자는 그런 박철수에게 질문을 던진다. "산부인과는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다시 말해 산부인과라는 의학적 제도 자체가 상징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자의 물음에 박철수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산부인과의 상징성? 산부인과는 단지 남을 도와주는 것이다. 산부인과가 없어도 충분히 아이를 낳을 수 있지만 현대적 방법으로 도와주기 위해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단순했던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도 이제는 굉장히 복잡해졌다. 부인병도 발달하고. 그런 물리적인 것 말고는 산부인과 하면 여성성에 가장 가까이 있는 하나의 터라고 할 수 있겠다." 기자는 다시 묻는다. "자신의 몸을 제도화하는 어떤 장치로서 산부인과를 물어본 것인데요?" 박철수는 그런 기자의 물음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산부인과를 어떤 제도라고 보고 싶지는 않은데······ 산부인과의 존재 의미는 가장 원초적인 것이란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기본적인 것이지 어떤 제도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의 인터뷰를 읽고 나면 《산부인과(Push! Push!)》의 포스터 문구 "모르는 척 안 가본 척 처음인 척"이 어떤 의도인지 더 명확하게 이해될 것이다.
10) 보험사와 보험계약자 모두 손해 보지 않도록 보험 상품을 개발해야 하는 계리사 입장에서 여성시대건강보험은 인지하지 못한 리스크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보험 상품의 리스크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보험 상품을 출시하게 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보험금 누수를 발생시키게 된다. 1998년 2월 삼성생명이 내놓은 여성시대건강보험은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이 주로 앓는 질병인 요실금을 포함, 자궁암, 고혈압, 골다공증 등 12대 질환을 보장하여, 금세 가입자 수가 200만 명을 넘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그렇지만 삼성생명은 2조 원의 손실을 입었다. 여성시대건강보험 출시 후에 기존의 배를 가르는 수술법이 아닌 회음부를 통해 요실금을 치료하는 TVT(Tension-free Vaginal Tape) 시술과 TOT(Trans-Obturator Tape) 시술이 생겼고, 그로 인해 요실금 치료비용이 500만 원 선에서 150만 원 선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출시된 지 2년쯤 지나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요실금 수술 청구가 급증하다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2006년 국민건강보험에서 요실금 수술을 급여 대상에 포함하면서 일반화되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예쁘니수술을 받으면 요실금 치료 효과가 있다는 소문으로 예쁘니수술을 받고 요실금 치료 환급 요청을 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 데 있다. 예쁘니수술은 출산 따위로 늘어난 질 구멍을 작게 하기 위하여 하는 질 봉합 수술을 속되게 이르는 말인데, 예쁘니수술을 받고 요실금 치료 환급 요청을 하는 방식의 요실금 수술 보험사기로 85차례에 걸쳐 6억 원을 편취했던 일당이 체포되는 사례 등으로 인해 보험범죄 예방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 연구에서도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2011년 6월 10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보험설계사와 짜고 예쁘니수술 보험사기를 주도한 산부인과 원장은 구속영장이 신청되었고, 병원사무장 보험설계사 30명 및 보험가입자 18명 총 49명이 불구속입건 되었다. 예쁘니수술에 대한 효과가 미미하다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발표되고 있지만 아직도 예쁘니수술을 권하는 의사들이 많다.
11) 자궁은/ 배를 덜거덕 소리 나게 하고 (실비아 플라스, 「자식 없는 여인」 부분,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 마음산책, 2013.) ; 녹슨 자궁이 덜그럭거리며 (이원, 「한 여자가 간다」 부분,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앞의 책.)
12) 우리 엄마 자궁 속에 검붉은 암 기운이 번지나봐. (최승자, 「지금 내가 없는 어디에서」 부분, 『즐거운 일기』, 앞의 책.)
13) 흙으로 된 자궁은/ 그 죽은 듯한 권태로부터 슬며시 기어나온다. (실비아 플라스, 「닉과 촛대」 부분,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 앞의 책.)
14) 울컥 불컥/ 목젖 헹구며, (진수미, 「Vaginal Flower」 부분, 『달의 코르크 마개가 열릴 때까지』, 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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