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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가 된 사람

  • 작성일 2019-09-01
  • 조회수 211

파랑새가 된 사람

이병일


초분(草墳)이라는 말에 한 사람을 묻었다


채마밭 근처, 애도의 자세가 노랗다
저승에 닿는 거리,
나비가 읽지 못하는 사후의 일이다


낮과 밤이 둘로 갈라지듯
뼈와 살은 흙의 얼룩과 빛으로 돌아간다
한 세상 떠돌면서
아직도 멀리 가지 못했는지,
돌부리만 일렁거린다
태풍이 왔지만 초분은 무너지지 않았다


물난리 난 어느 오후의 왕잠자리 나와 놀듯
진흙 두꺼비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땅벌레들 붉은 빛을 훔쳐 와서 아궁이를 굽는다


그사이, 파랑새가 된 그 사람
뺨에 옮겨 붙은 호시절을 서쪽 가지에 걸어 두었다
바람이 바투 붙은 자리마다 구멍이 숭숭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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