령
- 작성일 2019-06-01
- 좋아요 0
- 댓글수 0
- 조회수 145
령
이용임
죽은 여자 효정은
수다스럽다 계곡에 새로 묻힌
처녀의 골반이 오목하여
물빛 꽃 군락이 자그럽다, 하다
훌쩍 치마를 걷고 창틀에 앉아
갸웃거린다 효정은 발목이 부러져
비 궂은 날 창을 두드렸던 것인데,
그날부터 령에 묻힌 자들의 소식을
전해 온다 절 닮아 실족한 청년의
가슴 위로 삭은 잎사귀를 덮어 주었노라,
하다 눈이 붉어져
사람 먹고 핀 꽃이 얼마나 실한지
모르지 나비들이 왜 이명을 앓는지
모르지 큰 나무에 둥지를 튼
새들은 눈멀어 캄캄한 밤에만 나는 것을,
노래를 부르다 돌아간다 효정은
마당에 고인 구름 그늘에 웅크려 앉아
제가 꺾은 꽃을 던져 점을 치며
목련에 업혔다가 무겁다고 던져버린
꼬마는 이름도 쓸 줄 몰라
찾는 사람이나 있을까……
"얘, 너는 늘 뜨거운 것을 훌훌- 차는 맛있니?"
한기가 돌아 밤이 길다고 답하면 효정은
길게 웃는다 얘, 너는 늘 서늘한 표정으로 -
이야기는 재미있니,
죽은 여자 효정은
갸름하고 작다 눈꼬리가 휘어져
나무의 녹빛을 끌고 다닌다
매일 찾아와 새로 죽은 이의
이야기를 한다
절름거리다 잃어버린 소문은
끊이지도 않고,
숲은 무럭무럭 자란다 얘, 너희 사는 세상이
지붕인지 무덤인지 어이 아니? 효정은
내가 화장하는 걸 좋아한다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새벽에 찾아와
근심한다 이리 잊음이 헐해서야
살아도 산 것이 아니로구나,
자취 없이 돌아간다 효정은
봄에 죽었다 령 아래로
추락했다 오래 산 나무가
늑골 사이로 뿌리내렸다
아는 이가 없어서 이름 지었다 효정
산책하다 겨우 주운 뼈
효정은 희고
효정 위로 덧씌울 이야기는 없다
추천 콘텐츠
고달프고 사나운 황인숙 느지막이 장년 훌쩍 지나 만난 나의 반려 내 젊은 날 친구랑 이름 같은 누군가 돌아볼지 몰라요 아니, 재길이 그대 부른 거 아니에요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제기라알!” 시도 때도 없이 길바닥에서도 짖어 부르는 내 반려욕 사납고 고달픈 맘 달래 줍니다 사실 나는 내 반려욕을 사랑하지 않아요 못나기도 못났으니까요 어디서 그렇게 나 닮은 욕을 만났을까요 만나기는 뭘 만나 내 속으로 낳았지
- 관리자
- 2024-05-01
글 쓰는 기계 김응교 사실 기계들은 자기 프로그램을 업데이트 할 기계적 고독이 필요하여 자기만의 기계실에서 밤새 작동한다 그를 누구도 볼 수는 없겠지만 껍질이 날아간 뼈다귀 로봇 등 뒤 상자 서너 박스에는 유영을 멈춘 지느러미들 생선집 좌판에 파리 날리는 근간 시집들이 옆으로 누워 있다 그의 얼굴은 점점 기계를 닮아 가고 책 모양 사각형으로 바뀌어 옆으로 누운 가자미, 눈알과 손가락만 남아 상상력이 냉동되면 어떤 창작도 휘발되고 너무 많은 과거의 형태와 언어가 얼어붙어 더 이상 신선한 속살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 기계에게도 컨베이어에 실려 뜨거운 화덕에서 태워질 운명이 다가온다
- 관리자
- 2024-05-01
멍쯔 삼촌 김응교 내 피의 4분의 1에는 몽골 피가 흐르고 아마 4분의 1은 옛날 중국인 피가 흐를지 몰라 내 몸에는 지구인들 피가 고루 섞여 있을 거야 그니까 삼촌이라 해도 뭐 이상할 거 없지 중국에 삼촌이 산다 삼촌이 쓴 책에 역성혁명이 나오는데 우리는 비슷한 혁명을 몇 번 경험했지 제자가 많다는데, 나는 삼촌으로 부른다 중국인은 멍쯔라 하고 한국인은 맹자라 하는 멍멍, 차갑게 웃을 중국인 삼촌 우리는 계속 역성혁명을 하고 있어 불은 든 프로메테우스들이 많아 멍쯔 삼촌, 우린 심각해요
- 관리자
- 2024-05-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