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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터 침엽수림

  • 작성일 2017-12-01
  • 조회수 340

스웨터 침엽수림

주하림


병원이 어디야 나는 철제 침대 아래서 퍼즐 조각을 맞춘다 오지 않아도 돼 부푼 배를 붙잡고 원래 겨울에는 삼일 빼고 아프다고 답했지 병원의 소독내, 젊은 의사가 가볍게 이별하듯 흘리는 웃음 그것들을 마주칠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한 아일랜드 밴드의 연주, 빈혈기, 힘없이 대낮 광장을 가로지르는 새들
겨울에 떠올리는 강의 물빛 그것을 바라보는 눈, 어떤 꿈의 차가운 암호, 유리 조각이 흩뿌려진 기타, 그 밴드는 아일랜드가 아니라 핀란드 아니 스웨덴 출신인지 모른다 고칠 수 없는 병, 선인장과 신지 않은 신발, 소화기 내과 병실에서 여자들은 매일 배가 아프다며 울고 밤마다 벽에 머리를 찧는 여자는 속옷 차림으로 달아나는 꿈을 꾼다
새카맣게 썩어가는 꽃다발··· 접힌 퍼즐 조각을 간호사가 주워준다 모두 잠든 병동은 새하얀 겨울, 울다 지친 여자의 젖은 이마가 풍기는 축축한 냄새 래글런 코트를 입고 침엽수로 빼곡한 길을 걷고 싶다 북부 지방의 병든 자들은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신을 꽝꽝 언 호숫가에 던져버리겠지 얼음판 위로 코요테가 낑낑 대겠지 하지만 여기서 즐길 수 있는 건 난동뿐이야 이 썩은 내장을 꺼내 코요테에게 던져주고 싶다 끊어진 수화기 너는 정말 올 수 있을까
스웨터 좁은 입구, 목은 빠져나오지 못한다 스웨터 안에서 스칸디나비아 반도 침엽수림에 둘러싸인 빙하를 생각한다 출렁이는 얼음들 아일랜드 밴드의 연주가 멈춘 동안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변해간다 반도의 밤 어딘가에서 다친 허벅지를 얼음조각으로 도려내는 천사의 가쁜 숨, 물 위에서 하염없이 쪼개지는 빙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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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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