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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낌

  • 작성일 2015-08-01
  • 조회수 251

흐느낌

배용제


11월의 밤이 오면
마법을 아는 창문들의 시간


툰드라의 음악이
막다른 골목에 닿아 몸으로 오는 순간이 있다
서촌의 전시관들이 서둘러 불을 끄는


고요한 귀들이 북쪽으로 돌아누울 때
차가운 유목의 빛을 끌고
막 당도한 툰드라의 지평선들이 공중에 마구 흩날린다
이상한 방향으로 열리는 창문의 마법에 걸려
환상에 들뜬 누군가는 음악이 되기 위해 쓸모없는 몸을 버려두고
창밖으로 날아오른다


몸으로 태어난 음악 하나가
첫 울음을 터트리자 환청처럼 흔들리는 창문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지평선으로 만들어진 나라
살아 있음이 유목이 되는 곳
타이가와 툰드라의 경계 어디쯤
자작나무의 언 손들이 밤새 뒤척이며 쓰다듬던 꿈과
막막한 새벽빛들이
밤의 창문을 두드리기까지
이미 참혹의 건너온 악보가 되어
빛나는 음악


영혼이 사라진 빈 눈동자에 깃들어
가늘게 울린다
그렇게 창문들은
마법을 풀지 않은 채 긴 밤을 흘려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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