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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눈새매올빼미

  • 작성일 2014-02-01
  • 조회수 191

흰눈새매올빼미

이문숙


버스를 타고 버스를 또 갈아타고
수천 개의 계단을 오르내리다보면
만년설산이 먼 이름만은 아니다


나는 묻고 싶어진다 이토록 헤매다니는
너는 전생이 무엇이였냐고


흰눈새이다가 새매이다가 올빼미이다가
결국 흰눈새매올빼미로
통합되는 이름


어느 춥고 척박하고 모진 북반부의 국가에서는
황홀이라는 말을 대체하여
여름의 해질녘이라고 쓴다
계속되는 혹한과 폭설의 밤
삶이라는 나쁜 표면으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나도 나를 대체할 이름이 필요하다
흰눈새의
흰눈새매의
흰눈새매올빼미의
조금씩 확장되는


지금 이 순간
현존하는 슬픔도 여름날의 해질녘이네
놓쳐버린 광역버스도 해질녘이네
빵집 뚜레주르, 서비스 데이에 나오는 모카빵도
덤으로 주는 아이스티도


순도 100퍼센트 생과일만 행복한 건 아냐
홀짝거리며 빨대로 긁는
복숭아 향 첨가물
그 지독한


오늘도 빵집 눈치를 살피며
냉온박스에 담겨 있는 청년이 파는 주먹밥
창고 속에서 썩어가는 쌀로 만들었다 해도
갓 지은 쌀 알갱이 온기가 있어 좋은
어느 모질게도 추운 여름
저녁


알루미늄이 호일이 튕겨내는
이 해질녘을 나는 다시 황홀이라고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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