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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09-02-23
  • 조회수 254

황규관


한 서너 발자국 멀어지는 일이

당신의 영혼에 가시 울타리를 치는

잔인한 짓이었으면 좋겠다




태풍은 곧 도착하겠지만

휘몰아치는 건 바람이 아니라

싸늘한 불길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우린 아무것도 모르고,

알아도 안다는 사실을 다 잊을 때

어리석음도 또한 뜨거운 현기증,

당신과 떨어져 있는 지금이

메우지 못할 심연이라면




나의 언어는 머지않아 무너질 테고

당신의 아픔은 끝내 아물지 않을 것이니

내일, 새벽이 번하게 밝을 것이다




허무는 더더욱

찬란해질 것이다




그 광휘의 흑점에 눈을 맞출 때

두어 발자국 더 돌아선 내 마음은

당신의 상처 위에 번지는

바람 같은 웃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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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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