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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씬짜오, 씬짜오

  • 작성일 2016-04-25
  • 조회수 28,926

[단편소설]



씬짜오, 씬짜오



최은영



구십오 년 일월, 우리는 다시 독일로 돌아왔다. 구십이 년에서 구십삼 년까지 베를린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지 겨우 일 년이 지나서였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플라우엔이라고 불리는, 오 년 전까지만 해도 동독 지역이었던 작은 도시였다. 버려진 건물들, 황량한 공원, 술 냄새를 풍기며 전차 정류장에 앉아 있던 남자들…… 그곳은 내가 알던 독일의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호 아저씨의 저녁 초대를 받은 날, 엄마는 평소에는 입지 않던 예쁜 투피스를 꺼내 다려 입고 화사하게 화장했다. 말 꼬리마냥 껑충 묶은 내 머리를 풀어 짱짱한 디스코머리로 땋고 결혼식 때 입는 검은색 코르덴 원피스를 입게 했다. 두 살짜리 동생에게도 새 옷을 입혔다. 오랜만에 화장을 한 엄마의 모습이 어린 내 눈에는 꽤나 예뻐 보였다. 엄마는 건물 유리창을 몇 번이나 보며 자기 모습을 점검했다. 플라우엔에 온 지 세 달 만에 다른 사람 집에 초대받은 것이어서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씬짜오.” 엄마는 현관 앞으로 나온 응웬 아줌마에게 외워 둔 베트남어로 인사했다. 나도 따라 “씬짜오” 하고 인사하자 응웬 아줌마는 반갑게 웃었다. 아줌마는 오래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난 것처럼 우리를 환영해 줬다. 부엌에는 호 아저씨가 있었다. 볼이 붉고 얼굴에 아이 같은 장난기가 어려 있던 아저씨가 나는 한눈에 좋아졌다. 아저씨는 아빠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였고, 내가 아저씨 아들 투이와 같은 반이 된 것을 알고는 우리 가족을 아저씨네로 초대했다.
호 아저씨의 요리는 담백하고 편안했다. 음식을 두고 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아저씨의 요리는 그 말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 토마토를 넣어 뭉근하게 끓인 고깃국, 향긋한 쌀밥, 구운 새우, 볶음 야채와 반으로 자른 라임을 뿌려 먹는 짭조름한 튀김 만두의 맛이 그랬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어른들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나는 투이를 따라 책장 쪽으로 갔다. “내가 여섯 살 때부터 모은 거야.” 투이는 만화책을 골라 줬는데 모두 스누피 시리즈였다.
“저기서 읽을래?” 투이가 좌식 소파를 가리켰다. 스웨이드 재질의 소파는 부드럽고 푹신했다. 나는 손등으로 소파를 쓰다듬으며 만화를 읽기 시작했다. 우드스탁과 나란히 개집 지붕에 앉아 노닥거리는 스누피는 꼭 투이처럼 보였다. 학교에서 본 투이는 그런 애였으니까. 그 애는 모두와 잘 지내고 항상 명랑했다. 키가 큰 애든, 작은 애든, 활발한 애든, 내성적인 애든 모두 투이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넌 얘 닮았어.” 투이가 우드스탁을 가리키며 웃었다. “너 처음 봤을 때 우드스탁인 줄 알았어.” 내가 작고 못생겨서 그렇게 말하나 싶었지만 악의 없는 얼굴로 천진하게 웃는 그 애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나 너 겨울에 봤었어. 주말 벼룩시장에서.” 투이가 말했다.
“걔가 나라는 걸 어떻게 아냐?”
“공원 맞은편에서도 봤어. 거기 너희 집 아니야?”
“그게 뭐.”
나는 다시 만화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우리 집 창문으로 그 애를 훔쳐본 일이 부끄러워졌다. 투이와 한 반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몰래 반가워했던 마음까지도 그 애가 다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독일에서의 일은 이제 뿌연 유리창으로 보는 바깥 풍경처럼 희미하다. 그런데도 처음 투이네 집을 방문했을 때를 떠올리면 그때 느꼈던 감정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투이네 식구 모두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던 일, 그 환대에 기뻐하던 엄마의 모습, 어떤 조건도 없이 받아들여졌다는 따뜻한 기분과 우리 두 식구가 같은 공간에 모여 음식을 나눠 먹던 공기를 기억한다. 어떻게 그렇게 여러 사람의 마음이 호의로 이어질 수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고작 한 명의 타인과도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는 어른이 된 나로서는 그때의 일들이 기이하게까지 느껴진다.


플라우엔에서 보낸 첫 번째 여름, 엄마는 건조한 날씨 때문에 고생했다. 하얀 각질이 뱀 비늘처럼 팔다리를 덮었고 자다가도 몸을 긁느라 몇 번이나 일어난다고 했다.
“저도 처음 독일 왔을 때 그랬어요. 한국도 여름이 습하죠? 여기는 반대니까. 뭘 발라도 건조하더라구요.”
응웬 아줌마는 엄마에게 직접 만든 크림을 줬다. 샤워한 후에 꾸준히 바르면 가려움이 줄어들 거라고. 엄마는 아줌마의 크림 덕분에 남은 여름을 수월하게 보낼 수 있었다. 아줌마는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어디가 불편한지 알고 있었고, 배관공을 부르거나 집주인과 이야기해야 할 때도 나서서 일을 해결해 줬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두 살짜리 아이를 붙들고 하루 종일 집에 고립되어 있던 엄마의 유일한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엄마를 보면 홀로 투이를 키워야 했던 시간이 떠오른다고, 혼자 그렇게 오래 있으면 자연히 어두운 생각에 빠지게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했다.
투이네 가족과 우리 가족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같이 저녁을 먹었다. 한 번은 투이네 집에서, 한 번은 우리 집에서 먹는 식이었고 초여름이 되어 낮이 길어지자 토요일 이른 저녁부터 일요일 새벽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같이 밥을 먹고,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카드놀이를 하고, 우리들은 직소퍼즐을 하거나 만화책을 읽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투이네 가족도, 우리 가족도 서로 말고는 그렇게 가까운 이들이 없었던 셈이다.
술을 많이 마신 날이면 어른들은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엄마는 한국 노래를, 응웬 아줌마 부부는 베트남 노래를 불렀다. 뜻도 알아듣지 못할 노래의 후렴구를 어설프게 따라하려는 엄마를 보고 웃음을 터뜨리던 어른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너희 아빠와는 말이 통하지 않아.’ 엄마는 종종 내게 그렇게 말했다. 둘은 서로를 투명 인간처럼 대했다. 밥을 먹을 때도, 텔레비전을 볼 때도, 드라이브를 할 때도 그랬다. 그런 행동이 어린 나에게 어떤 상처를 줬는지 그들은 끝내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는 같은 대학 독문과에서 만나 오래 연애한 커플이었다고 했다. 경쟁적으로 서로의 존재를 무시하는 그 두 사람이 한때는 서로를 끔찍이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젠가 엄마 아빠가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아무 미움 없이 평범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기를, 결코 헤어지지 않기를 나는 매일 빌었다.
투이네 가족과의 저녁 식사 시간이 좋았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투이 가족과 함께 있을 때 엄마와 아빠는 가끔 서로를 보며 웃기도 했고, 투이 가족에게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레 하기도 했다. 담배를 피우러 발코니로 나가는 아빠가 엄마의 어깨를 툭 치는 것을 본 적도 있었다. 술에 취해 웃으며 말하는 아빠를 선선히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이 기억난다. 우리 식구끼리만 있을 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잘 웃는 모습을 나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보지 못했다.
엄마 그때 참 예뻤어, 언젠가 내가 그렇게 얘기했을 때 엄마는 그 시절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그래도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여름에 들어서 밤 열 시가 넘어도 대기에는 초저녁처럼 희미한 빛이 남아 있었다. 빛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눈앞의 풍경이 푸른빛에 잠길 때의 모습을 나는 좋아했다. 거실 창문으로 밤바람이 불어오고, 부엌에서는 어른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그 시간이 되면 꼭 입을 벌리고 잠들었던 투이의 얼굴을 볼 때, 푸른빛의 채도가 점점 낮아지고 가로등 불빛이 하나 둘씩 켜질 때면, 나는 내가 언젠가 이 시간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투이와 나는 같이 빵이나 우유 심부름을 다니곤 했다. 심부름을 가는 길에 그 애는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뛰어갔다가 다시 내 쪽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투이를 쫓아가려고 했지만 그 애가 다시 돌아온다는 걸 알고는 나도 내 속도대로 걸었다. 보이지 않았다가 다시 내게 달려오는 그 애의 얼굴을 볼 때면 웃음이 났다. 투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활짝 뒤로 젖히고 더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달렸다.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에 우리는 찻길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서 걸어갔다. 둘이 붙어 다니면 같은 반 애들이 놀릴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드스탁!” 그 애는 우리 둘만 있을 땐 나를 꼭 우드스탁이라고 불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호칭은 나를 꽤나 들뜨게 했다. 그 누구도 빈번한 전학으로 스쳐지나가는 나에게 별명을 붙여 주지 않았으니까.
투이네 동네 골목까지 들어오고서야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그럴 때 투이에게서는 볕에 달구어진 동전 냄새 같기도, 양파 냄새 같기도 한 땀 냄새가 났다. 별다른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기분이었다.
투이는 그 나이 또래 특유의 어그러짐이 없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응웬 아줌마에게 종알종알 다 이야기했고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노래를 부르거나 즉흥 연극을 해 모두를 웃게 했다. 나는 동생을 대하듯이 그 애에게 말하곤 했는데, 가끔은 아무렇지 않은 듯 깊은 속마음을 말하기도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투이 같은 어린애가 이해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해서였다. 투이는 내 말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랬구나, 그랬었냐. 그런 무심한 대답을 듣고 있노라면 그 애에게 말하기 전의 억눌린 감정이 조금은 풀어지는 것 같았다.
“우리 엄마 아빠는 서로를 제일 싫어해.” 그날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투이는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나를 쳐다봤다. 꼭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의외의 반응이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넌 왜 그런 얘길 하면서 웃어?” 투이는 그 말을 하고는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여느 때처럼 다시 내 쪽으로 돌아오리라고 생각했지만 그 애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조금 당황했을 뿐 그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야자를 마치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갈 때면 ‘넌 왜 그런 얘길 하면서 웃어?’라고 말하던 투이의 어린 얼굴이 생각나곤 했다. 나는 그 애를 조금도 알지 못했었어. 유년을 다 지나고 나서야 나는 그 애를 다르게 기억하기 시작했다.



“독일에 처음 왔을 때,” 아줌마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너무 추웠어요. 아무리 껴입어도 벌벌 떨리는 거야. 아직도 그래요. 투이야 여기서 태어났으니까 아무렇지 않겠지만 난 이상하게 아직도 여기 겨울이 적응 안 돼. 난생처음 눈 봤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너무 예뻐서 춥다 춥다 하면서도 손이 다 얼도록 눈을 만지고 놀았어요.”
엄마는 웃으며 말하는 응웬 아줌마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같이 웃어야 하는데 웃음이 나오지 않아 당황하던 엄마의 얼굴을 기억한다. 아줌마는 살며 고생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과장되게 웃으면서 말했고 그럴 때면 엄마는 애써 같이 웃으려 노력했다.
아줌마는 엄마가 사랑이 많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해 주는 능력을 타고났다고 말했다. 세상에는 엄마처럼 섬세한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면서, 엄마는 아파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아파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엄마와 함께 있을 때도 아줌마는 엄마에 대한 칭찬을 잘했다. 웃는 모습이 예뻐서 함께 있으면 방이 다 환해지는 것 같다, 두상이 동그라니 예쁘다, 걸음걸이가 사뿐하다, 옷맵시가 좋다, 앞니가 귀엽다, 듣기에 참 좋은 목소리다…… 아줌마는 이런 이야기를 망설이지 않고 했고 그럴 때면 엄마는 얼굴을 붉혔다. 아줌마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나도 몰랐던 엄마의 좋은 부분이 눈에 들어왔고 엄마가 내 엄마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졌다. 아줌마와 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의 집을 오갔다. 엄마는 김을 좋아하는 아줌마를 위해 한국에서 가져온 김을 구워 갖다 줬고, 아줌마는 단 음식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쌀푸딩을 만들어줬다.
플라우엔에서 맞은 두 번째 겨울에 나는 거의 매일 투이네 집에 들렀다. 우리 집은 오래된 라디에이터 때문에 언제나 냉골이었지만 투이네 집은 온몸이 노곤해질 정도로 기분 좋게 따뜻했고, 투이네 식구들과 함께 지내는 쪽이 집에 있는 것보다 편해서였다.
응웬 아줌마는 나에 대해 많은 것을 물어봤다. 한국에서 다니던 학교는 어땠는지, 베를린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러웠는지, 바다를 가보았는지, 한국의 바다는 어떤 색인지, 가장 좋아하는 독일 음식은 무엇인지. 아줌마의 질문은 몇 학년이냐, 왜 이렇게 키가 작냐, 공부는 잘하냐, 커서 뭐 할 거냐 물어대는 다른 어른들의 것과는 달랐다. 진심 어린 관심을 받고 있다는 기쁨에 나는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아줌마 앞에서 떠들어댔다.
“이름 한자로 써볼래?” 내가 이름을 한자로 쓰자 아줌마는 웃으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지. 나랑 같은 성씨구나.” 아줌마는 ‘집 원院’ 자를 쓰고는 ‘응웬’이라고 읽었다. 호 아저씨의 ‘호’는 ‘호수 호湖’ 자였고, ‘투이’라는 이름은 ‘옥빛 취璻’ 자를 썼다. “넌 내 어릴 적 친구를 많이 닮았다. 그 애 성씨도 응웬이었지. 같은 마을에 살았던 친구였다.” 아줌마는 슬프게 웃어 보였다. 무척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녀는 그런 표정을 짓곤 했다. 세 살이 된 내 동생 다연이를 볼 때도 그녀는 그랬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표정은 나를 아프게 했는데, 아줌마의 행복이라는 것이 슬픔과 너무 가까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여서였다.
언젠가 아줌마에게 어린 시절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다 잃어버렸지. 한 장이라도 남아 있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이유를 묻자 그녀는 내 머리를 쓰다듬기만 했다. “사진만 잃어버린 게 아니었단다.” 그녀는 내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 말을 하는 아줌마의 떨리는 마음이 내게도 그대로 전해져 두려워졌다.



투이네 집에서 유일하게 접근이 어려웠던 곳은 서재였다. 누가 그러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었지만 문이 항상 닫혀 있어 들어가 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서재 문이 활짝 열려 있던 날, 나는 끌리듯이 그 방으로 들어갔다. 문 바로 옆으로 작은 제단이 보였다.
제단은 나무 장식장 위에 꾸며져 있었다. 기둥과 지붕으로 이루어진 집 모양의 조형물 아래로 다섯 개의 액자와 모래와 재가 든 향로가 보였다. 액자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흑백사진이 들어 있었고 향로에는 끝까지 타버리거나 중간에 꺼진 보라색 향들이 몇 개 꽂혀 있었다. 향로 옆으로 종이에 싸인 향과 작은 성냥갑이 보였다. 그런 향로는 이전에도 봤었지만, 향로 뒤에 죽은 사람 사진을 둔 것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겁이 나 사진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뒤돌아섰다.
사진 속 다섯 사람은 가족처럼 보였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노인은 한 명밖에 없었고 내 또래의 여자 아이, 내 동생 다연이 또래의 아기 사진도 있었다. 힐끗 훑어봤을 뿐이지만 그 사람들의 얼굴이 내 등 뒤에 달라붙기라도 한 것처럼 신경이 쓰였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무슨 까닭으로 투이네 집 제단에 모셔졌는지 알고 싶었다. 왜 응웬 아줌마나 투이가 나에게 제단을 보여주지 않았는지도 궁금했지만,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누구에게도 그 일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에 대해 배우던 시간에 나는 투이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히 2차 대전 이후로 이처럼 대규모의 살상이 일어난 전쟁은 없었단다.” 투이가 손을 들어 선생님의 말을 끊었다. “아닌데요.” 그게 투이의 첫마디였다.
“뭐가 아니라는 거지?”
“베트남에서 전쟁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요.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이모, 삼촌 모두 다 죽었대요. 군인들이 와서 그냥 죽였대요. 아이들도 다 죽였다고. 마을이 없어졌다고 했어요. 저희 엄마가 얘기하는 걸 들었어요.” 투이는 항의하듯이 말했다.
“그래. 투이 말이 맞다. 베트남 전쟁에 대해 너희는 들어 본 적 없을 거야. 투이가 더 얘기해 볼래?” 선생님은 투이가 자기 의견을 말했다는 것에 만족해했지만, 그 애는 반사적으로 말한 것처럼 보였다. 투이의 얼굴이 곧 울 것처럼 붉어졌기 때문이다. 그 애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투이, 더 말해 봐. 우리들도 모두 알아야 하잖아.” 그 애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 모든 상황이 부당하게 느껴졌지만 당시에는 그 감정의 이유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때 반장 잉가가 손을 들었다. “베트남은 전쟁으로 미국을 이긴 유일한 나라예요. 미군만 오십만 명이 죽었고 군인 아닌 베트남 사람도 이백만 명 죽었대요. 텔레비전에서 봤어요. 미군이 비행기로 폭탄을 떨어뜨리고 나무를 죽이는 약도 뿌렸고요.” 반장의 얼굴에 자랑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 빨갛게 달아오른 투이의 작은 귀를 바라봤다.
선생님은 반장의 말이 정확하다고 칭찬하고는 미국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배경과 전쟁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그 일이 미국 정부의 실책이었고, 미국으로서는 아무런 득도 보지 못한 전쟁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투이가 말하고 싶었던 건 그런 게 아니었으리라고, 그 애를 앞에 두고 그런 식의 설명을 하는 건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입을 열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투이는 분명 교실에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곳에 없는 사람으로 취급된 것 같았다. 나는 등을 구부리고 앉아 있는 그애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너희들은 투이의 마음을 조금도 짐작하지 못하겠지, 독일 애들에게 희미한 분노마저 느꼈던 기억도.



그날 저녁 우리는 투이네 집 식탁에 모여 호 아저씨가 만든 국수와 만두를 먹고 있었다. 이야기가 어떻게 그쪽으로 흘러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예쁘지도 않았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하나 없는 열세 살짜리 여자애였다. 열한 살 때 동생이 태어난 이후로는 무슨 일을 하든 애처럼 굴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존재감이 없는 아이들이 보통 그렇듯 어른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컸다.
일본의 식민 통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어른들의 말에 동요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드디어 나도 한 마디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라면 투이네 식구들보다 내가 더 잘 아니까, 아는 척을 한다면 엄마 아빠가 꽤나 뿌듯하게 생각해 줄 것 같았다.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 없어요.” 나는 그 말을 하고 동의를 구하기 위해 엄마 아빠를 쳐다봤다. 아빠는 아무 얘기도 못 들었다는 듯이 내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았고, 엄마는 조용히 하라는 투의 눈빛을 보냈다. “국물이 짜지는 않은지 모르겠네.” 호 아저씨가 말을 돌렸다. 모두들 내 말을 무시하는 것 같아 서운했다. “정말이에요. 우린 정말 아무도 해치지 않았어요.” 내가 말했다. 한국은 선한 나라라는 인상을 남기고 싶었고, 어른들의 대화에 자연스레 참여해서 칭찬받고 싶었다. 난 맞은편에 앉은 아빠에게 인정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넌 어른들 말하는 데 끼어들지 마. 네가 대체 뭘 안다고 떠드는 거냐.” 아빠가 한국어로 소리쳤다. 모두들 젓가락질을 멈추고 나를 봤다. 투이네 식구들 앞에서 아빠에게 그런 식으로 야단맞은 것이 부끄럽고 억울해서 귀가 먹먹해지고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마지막 용기를 쥐어짜서 독일어로 말했다. “한국에서 그렇게 배웠는데. 우린 아무에게도 잘못한 게 없다고. 우린 당하기만 했다고.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는데…….”
“한국 군인들이 죽였다고 했어.” 투이가 말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식탁의 분위기를 얼려버리기에는 충분했다. “그들이 엄마 가족 모두를 다 죽였다고 했어. 할머니도, 아기였던 이모까지도 그냥 다 죽였다고 했어. 엄마 고향에는 한국군 증오비가 있대.” 투이가 말했다. 어떻게 네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힐난하는 말투였지만 나는 그 애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투이 넌 함부로 말하지 마라.” 그 말을 하고 아줌마는 나를 봤다. “넌 신경 쓸 것 없어. 너와는 관계없는 일이야.” 응웬 아줌마의 말은 투이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정말로 신경 쓸 일 아니야.” 어린 마음에 혹여 상처를 입었을까 걱정하는 아줌마의 두 눈, 내가 결코 잊지 못할 얼굴. 투이의 말이 진실이라는 걸 나는 응웬 아줌마의 그 얼굴을 보고 이해했다. 그때 내가 상처를 받았다면 그건 응웬 아줌마의 상처에 대한 가책 때문이었을 것이다.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야.” 아줌마가 속삭였다.
“저는 정말 몰랐어요.” 엄마가 말했다. “응웬 씨가 겪었던 일, 저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래도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죄송합니다.” 엄마는 호 아저씨와 응웬 아줌마에게 고개 숙였다.
“저는 모든 걸 제 눈으로 다 봤답니다. 투이 나이 때였죠.” 그렇게 말하고 호 아저씨는 붉어진 눈시울로 애써 웃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호 아저씨는 거기까지 말하고 힘껏 웃어 보였다. 응웬 아줌마는 호 아저씨에게 베트남어로 속삭이듯이 이야기했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분명 마음을 다독이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 말의 진동이 내 마음까지 위로하는 것 같았으니까.
아빠는 엄마와 호 아저씨의 대화를 못 들은 것처럼 맥주만 마시고 있었다.
“당신도 무슨 말 좀 해봐.” 엄마가 한국어로 아빠에게 말했다.
“내가 무슨 얘길 해? 그럼, 우리가 잘못했다고 말해야 돼? 왜 당신이 나서서 미안하다고 말해? 당신이 뭔데?” 아빠가 한국어로 받아쳤다.
“당신은 항상 이런 식이야. 죽어도 미안하다는 말을 못 해, 안 해.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내가 응웬 씨였으면 처음부터 우리 가족 만나지도 않았을 거야.”
아빠는 식탁 의자에 걸친 카디건에 팔을 넣었다. “저녁 잘 먹었습니다.” 아빠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저희 형도 그 전쟁에서 죽었습니다. 그때 형 나이 스물이었죠. 용병일 뿐이었어요.” 아빠는 누구의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바닥을 보면서 말했다.
“그들은 아기와 노인들을 죽였어요.” 응웬 아줌마가 말했다.
“누가 베트콩인지 누가 민간인인지 알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겠죠.” 아빠는 여전히 응웬 아줌마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태어난 지 고작 일주일 된 아기도 베트콩으로 보였을까요. 거동도 못 하는 노인도 베트콩으로 보였을까요.”
“전쟁이었습니다.”
“전쟁이요? 그건 그저 구역질나는 학살일 뿐이었어요.” 응웬 아줌마가 말했다.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은 사무적인 말투였다.
“그래서 제가 무슨 말을 하길 바라시는 겁니까? 저도 형을 잃었다구요. 이미 끝난 일 아닙니까? 잘못했다고 빌고 또 빌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당신 제정신이야?” 엄마가 말했다.
응웬 아줌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서재로 걸어 들어갔다. 조심히 닫히던 문소리. 나는 겁에 질렸지만 차마 서재로 따라 들어가지는 못했다. 엄마는 동생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죄송합니다.” 엄마는 호 아저씨에게 고개를 숙였다. “투이야, 미안하다.” 엄마는 그 말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기저귀 가방과 카디건을 들고 엄마를 따라 나갔다.
‘그건 그저 구역질나는 학살일 뿐이었어요.’ 그 말을 하던 응웬 아줌마의 웃음기 없는 얼굴이 자려고 누운 내 얼굴 위로 떠올랐다. 그 말을 할 때 아줌마는 우리와 다른 곳에 있었다. 내가 아무리 상상하려고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장소와 시간에 아줌마는 내몰려 있었다. 그녀의 말은 아빠를 설득하려는 말도 아니었고, 자신을 방어하고자 하는 말도 아니었다. 그 말은 아빠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간, 그 일을 겪은 이후로 애써 살아온 응웬 아줌마 자신에 대한 쓴웃음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아빠의 태도에 실망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차피 당신들은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라는 마음이 그날 밤, 아줌마와 우리 사이를 안전하게 갈라 놓았다. 그건 서로를 미워하고 싶지도, 서로로 인해 더는 다치고 싶지도 않은 어른들의 평범한 선택이었다.



엄마는 투이네 식구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열세 살이었던 나조차도 투이네 가족과는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고 직감했지만 엄마의 생각은 달랐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몇 번이나 응웬 아줌마를 찾아갔다. 겉으로 달라진 건 없었다. 아줌마는 우리들에게 차와 간식을 내놓았고 우리는 예전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도 나는 어쩐지 아줌마가 그 시간을 그저 견디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는 어색함을 이겨내려는 듯이 평소보다 더 많은 말을 했다. 그럴 때 엄마의 부정확한 독일어는 자주 부서졌고 당황한 엄마의 문장은 어떤 의미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서로 연결되지 못하는 단어들은 부유했고 시제와 성性, 수數가 일치하지 않는 문장은 꾸며낸 유머처럼 들리기까지 했다. 엄마의 말을 듣는 아줌마는 지쳐 보였다. 아무리 아줌마가 마음을 감추려고 노력했다고 하더라도 눈치 챌 수밖에 없는 표정이었다.
겨울 코트를 입기 시작했을 즈음부터 엄마는 아줌마를 찾아가지도, 아줌마에 관한 이야기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늘 투이네 식구와 함께했던 토요일 저녁 시간은 우리 가족끼리 어색하게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으로 변했다. 그즈음에는 해도 짧아져서 여섯 시만 돼도 사위가 컴컴해졌고 여덟 시면 나는 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쉽게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나는 가만히 누워 엄마가 식탁 의자를 끄는 소리, 한국의 누군가에게 속삭이듯 전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새벽에 화장실을 가려고 밖에 나갔을 때 식탁 의자에 앉아 멍하니 벽을 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내가 나와 있는 줄도 모르고 무언가를 골똘하게 생각하다 나를 보고 깜짝 놀라던, 그리고 안심하라는 듯이 눈가를 떨며 애써 웃던 그 얼굴을.
엄마는 반쯤 쓴 립스틱과 파운데이션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고, 아끼던 투피스와 원피스를 의류수거함에 버렸다. 일요일이면 어떻게든 짐을 싸서 근처 숲으로, 벼룩시장으로, 꽃시장으로 나들이 다니던 사람이 동생 방에서 벽만 보고 누워 있었다. 전에는 아빠의 말과 행동을 지적하면서 싸움을 걸거나 아빠의 말을 맞받아쳤을 상황에서 엄마는 그저 침묵했다. 밥을 몰아 먹었고 손끝이 빨개질 때까지 뜨개질을 했다.
그즈음 나는 엄마가 깊이 잘 때 동생 방 쓰레기통을 뒤졌다. 그 속에는 사진들이 찢긴 채 버려져 있었다. 아직 아기인 나를 안고 있는 엄마와 그 곁에서 웃고 있는 아빠의 사진, 만삭인 엄마의 배를 내가 만져 보는 사진…… 테이프로 붙여 보지도 못할 만큼 잘게 찢긴 사진 조각들. 나는 다연이 옆에 누워 잠을 자는 엄마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엄마가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아, 더 멀리 가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엄마는 내게 정사각형 모양의 선물 박스를 건넸다. 투이네 식구를 위한 선물이니, 투이에게 박스를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박스를 부엌 창틀 위에 올려놓았다. 박스는 초록과 노랑의 체크무늬 포장지에 빨간 리본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몇 안 되는 가구가 빠져나가고, 대부분의 세간을 우편으로 부친 탓에 우리들은 빈집에 몰래 들어와 사는 사람들처럼 지냈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 놓고 샌드위치를 먹고 밤에는 침낭에 들어가 잤다. 이 년 새에 키가 많이 자라 독일에서 입던 옷은 모두 수거함에 버려졌다. 독일에 계속 머무르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한 달이 지나면 나는 한국에서 중학생이 될 터였다. 귀밑 삼 센티미터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교복을 입고 조회 시간에 열을 맞춰 운동장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았다. 그건 분명 두려운 변화였지만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체념에 가까웠다.
눈이 많이 오는 날이었다. 공원에 쌓인 눈이 녹아 얼 새도 없이 계속 새로운 눈이 쌓였고, 사람들은 그나마 눈이 치워진 공원 사잇길로 걸어 다녔다. 나는 옷가지를 넣은 이민 가방을 깔고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처음 투이를 본 것도 이 창을 통해서였었지. 까불거리며 지그재그로 뛰어다니던 그 애의 모습이 떠올라 코가 찡해졌다. 곧 해가 질 시간이었고, 공원에 쌓인 눈은 푸르스름하게 보였다.
그때 창 밖으로 검은색 파카를 입고 앞머리를 길게 기른 남자애의 모습이 보였다. 그 앤 보폭을 크게 해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뎠다.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개구지게 웃고 있으리란 걸 알 수 있었다. 남자애는 창 쪽으로 몸을 틀어 나를 올려다보더니 팔을 쭉 뻗어 손을 흔들었다. 투이였다. 나는 엄마가 준 선물 박스를 들고 일층으로 내려가 차도를 건넜다.
투이가 서 있던 자리에는 그 애의 발자국만 남아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곳에 서서 사방을 둘러봤다. 얼마나 그렇게 서 있었을까. 멀리서 허겁지겁 달려오는 투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애는 내 코앞까지 와서 깔깔대며 웃었다.
“그 표정 뭐야. 넌 아직도 속냐?” 투이가 말했다.
“그따위 장난 다시는 하지 마.” 그 말을 하고 웃었어야 했는데 노력해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다시는’이라는 말이 이제 소용없어졌다는 것을 실감해서였다. 목이 멨다.
“야. 한두 번도 아닌데 왜 그래. 알았어. 다신 안 그럴게.”
투이는 눈물을 참는 내 모습을 보고 놀랐는지 나를 한참 쳐다봤다.
“네가 썰매 개냐. 눈밭 위로 뛰어다니게.” 그 말을 하고 나서야 나는 겨우 그 애에게 웃어 보일 수 있었다. 투이는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개 흉내를 내 나를 웃게 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투이의 유치한 말과 행동이 속 깊은 애들이 쓰는 속임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런 아이들은 다른 애들보다도 훨씬 더 전에 어른이 되어 가장 무지하고 순진해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연기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각자의 무게를 잠시 잊고 웃을 수 있도록 가볍고 어리석은 사람을 자처하는 것이다. 진지하고 냉소적인 아이들을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나는 투이의 깊은 속을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엄마 금방 이쪽으로 올 거야. 요즘 교육받으러 다니거든. 이제 끝날 시간 다 됐어.” 투이가 말했다. 너무 오랜만에 서로 이야기하자니 그 애가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는 투이네 집에 가지 않았고 투이 또한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데면데면하게 지냈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눈인사만 하고 모른 척 걸어가곤 했다. 그럴 때 투이는 내가 알던 아이가 아니었다. 키도 많이 자라 멀리서 보면 더 이상 애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예전처럼 이야기하고 있으려니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는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그날 너에게 나쁘게 말하려던 건 아니었어.” 투이가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는 동안 투이는 말을 이었다. “널 공격하기 위해서 한 말은 아니었어.”
“미안해.”
나도 모르게 그 말을 하고 나서야 나는 내가 오래도록 그 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 했다는 걸 깨달았다. 투이의 커다란 눈이 한 번 깜빡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가지에서 눈덩이가 떨어져 머리 위에서 부서졌다.
“아무것도 몰랐던 거, 미안해.” 나는 천천히 말했다. 공원에 부는 바람이 내 말을 쓸어가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조심스럽게. 그 말이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투이는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찼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다시 나를 봤다. 머쓱해하는 표정이었다. 그 애의 두 입술이 천천히 벌어지고 그 사이로 빠져나온 흰 입김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투이는 가방에서 종이봉투를 하나 꺼냈다.
“이거 받아, 우드스탁.”
종이봉투 안에는 만화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우드스탁과 스누피가 개집 지붕에 앉아 서로를 보며 웃고 있는 표지였다. 이제 이렇게 둘이 앉아 있을 일은 없을 테고, 다시는 우드스탁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별명으로 불릴 일도 없겠지.
아줌마가 올 때까지 우리는 거기에 앉아 실없는 소리를 해댔다. 대체 이 공원의 개똥은 왜 치워도 치워도 계속 생기는지, 저 하얀 눈 아래로 얼마나 많은 개똥들이 꽁꽁 얼어붙어 있을지. 똥 얘기만 나오면 바닥을 구를 정도로 함께 웃었었지만 어쩐지 우리는 더 이상 예전처럼 웃지 못했다. 그 이야기가 더는 재밌지 않았던 것이다.
응웬 아줌마는 나란히 앉아 있는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아줌마는 내 곁에 앉았다.
“언제 떠나?”
“내일 밤에요.”
아줌마는 아무런 반응 없이 쓰레기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무안해져 팔짱을 풀고 엄마가 준 박스를 아줌마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이거, 우리 엄마가 드리래요.”
아줌마는 포장지를 천천히 뜯고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엄마가 이번 가을부터 뜨기 시작한 목도리와, 털모자, 털장갑이 세 벌씩 들어 있었다. 엄마 이거 누구 주려는 거야? 내가 묻자 그냥 심심해서 뜨는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응웬 아줌마는 빨간 털모자를 꺼내 썼다. 털로 만들었다는 것만 다를 뿐, 아줌마가 여름에 자주 쓰는, 좁은 챙이 달린 모자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털모자에는 장미꽃 모양의, 털실로 만든 코사지가 붙어 있었다. 아줌마는 박스 안에 든 모자, 장갑, 목도리를 꺼내 하나씩 허공을 향해 들어 보였다. 그것들이 옅은 빛에 세심하게 비춰봐야 할 보석이나 되는 것처럼. 아줌마는 감색 바탕에 노란 털실로 대문자 T자가 새겨진 털모자를 들어 한참 보더니 투이의 머리에 씌웠다.
“얘가 머리가 커서 모자가 잘 안 맞거든. 근데…….” 아줌마는 거기까지 말하고 말을 멈추더니 입을 꾹 다물고 코를 훌쩍였다. 그녀가 울음을 삼키는 모습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전쟁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었기에 나는 아줌마 옆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응웬 아줌마. 나는 그녀의 얼굴을 봤다.
커다란 갈색 눈에 작은 코, 울음을 참느라 아래로 내려간 입 꼬리, 미간에 세로로 그어진 두 개의 주름.
나는 입김을 불어 아줌마의 털모자 위로 떨어진 눈덩이를 털어냈다.
“씬짜오.” 나는 아줌마의 작은 얼굴을 보며 말했다.
“씬짜오.” 응웬 아줌마도 같은 말로 화답했다.
“씬짜오, 투이.” 나는 목소리를 조금 더 높여 말했다. 감색 털모자를 쓰고 코가 빨개진 채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나를 보던 투이의 얼굴. “씬짜오.” 투이는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어쩌면 나는 그런 장면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아줌마가 우리 집으로 올라가서 우리 식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을, 아줌마와 투이가 엄마가 떠준 털모자를 쓰고 그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주는 장면을, 그 둘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극적인 장면은 없었다. 그 흔한 포옹도, 입맞춤도, 구구절절한 이별의 수사도 없었다. 그저 안녕, 그 한마디였을 뿐. 우리는 벤치에서 일어나 외투에 묻은 눈을 털고 길가로 걸어 나갔다. 나는 길을 건넜고, 아줌마와 투이는 건너지 않았다. 내가 집 현관문 앞에 서는 걸 보고서야 아줌마와 투이는 걸음을 옮겼다. 저 모퉁이를 돌면 보이지 않겠지. 나는 현관문 앞에 붙박인 채로 천천히 걸어가는 아줌마와 투이를 바라봤다. 한 번, 두 번, 투이가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봤지만 걸음은 멈추지 않은 채였다. 아줌마와 투이는 모퉁이를 돌았고, 나는 더 이상 그들을 볼 수 없었다. 다시 돌아올지 몰라. 나는 현관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들을 기다렸다. 그들이 오지 않아 나는 투이네 집 앞까지 걸어갔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몇 번이나 독일로 출장을 가면서도 나는 플라우엔에 들르지 않았었다. 기차로 두 시간 거리의 라이프치히에서 열흘 동안 체류했을 때도 나는 애써 그곳을 외면했다. 그곳에는 서로를 경멸하는 부모 밑에서 영혼의 밑바닥부터 떨던 아이가 있었고, 단 한 번의 포옹도 없었던 차가운 이별과 혼자 울던 길거리가 있었다. 나는 줄곧 그렇게 생각했다. 헤어지고 나서도 다시 웃으며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끝이 어떠했든 추억만으로도 웃음 지을 수 있는 사이가 있는 한편, 어떤 헤어짐은 긴 시간이 지나도 돌아보고 싶지 않은 상심으로 남는다고.
엄마가 돌아가신 다음 해에 나는 플라우엔을 찾았다. 엄마의 첫 기일이 일주일 지난, 햇볕은 따뜻하고 바람은 차가운 이른 봄이었다. 도시는 내 기억보다 훨씬 작았고, 이십 년 전보다도 쇠락하여 황량하기까지 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작은 공장으로 바뀌어 있었는데 뒤뜰에서 몇몇 노인들이 담배를 피우며 나를 무심히 바라봤다. 변함없는 건 내가 살던 공동주택이었다. 그 건물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공원을 마주 보고 있었다. 나는 어린 내가 붙어 서 있던 삼층 창가를 올려다봤다. 그 뒤에 서서 공원을 뛰어다니는 투이를 훔쳐보던 일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투이가 내게 선물한 스누피 만화책은 아직도 내 방 책장에 있다. 흑백 만화책이지만 우드스탁만은 샛노란 색으로 칠해져 있다.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카나리아 우드스탁. 책을 펼쳐 그 노란색 카나리아를 볼 때면,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겨 가며 그 작은 새에게 색을 입혀 주려 했던 투이의 따뜻한 마음이 가깝게 느껴졌다.
투이네 집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는 투이네 집 맞은편 벤치에 앉아 창을 바라봤다. 저 창은 부엌 창이었지. 그 창으로 보이던 공원의 풍경과 부엌에 서서 저녁을 준비하던 호 아저씨의 뒷모습이 희미하게 기억났다. 쌀이 끓던 냄새와 고깃국을 먹을 때 씹히던 고수의 향, 응웬 아줌마가 만들어주었던 쌀푸딩의 단맛, 투이와 함께 벽에 기대앉아 스누피 만화책을 읽던 그 시간도. 그 시간은 아직도 달콤하고도 씁쓸하게 내 마음의 좁은 수로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위태롭게나마 서로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쓰던 나의 부모와 상처받았기에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려 애쓰던 응웬 아줌마 부부가 서로에게 노래를 불러 주던 시간이 거기에 있었다.



엄마가 떠났을 때, 그녀를 위해 울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그 앤 어릴 때부터 예민하고 우울했었지.’ ‘영리한 애는 아니었던 것 같아.’ 큰이모와 작은이모마저도 엄마를 그런 식으로 회상할 뿐이었다. 그제야 나는 엄마가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던 응웬 아줌마를 떠올렸다. 그녀는 세상 사람들이 지적하는 엄마의 예민하고 우울한 기질을 섬세함으로, 특별한 정서적 능력으로 이해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줌마의 애정이 담긴 시선 속에서 엄마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보였었다.
아줌마라고 해서 엄마의 모든 면이 아름답게 보였을까, 엄마의 약한 면은 보지 못했을까. 아줌마는 엄마의 인간적인 약점을 모두 다 알아보고도 있는 그대로의 엄마에게 곁을 줬다. 아줌마가 준 마음의 한 조각을 엄마는 얼마나 소중하게 돌보았을까. 그것이 엄마의 잘못도 아닌 일로 부서져 버렸을 때 엄마가 느꼈던 절망은 얼마나 깊은 것이었을까. 내가 아는 한, 엄마는 그 이후로도 마음을 나눌 친구를 쉽게 사귀지 못했었다. 그리웠을 것이다. 말로는 그때의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엄마를 엄마 자신으로 사랑해 준 응웬 아줌마를 엄마는 오래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저, 가끔 말을 들어주는 친구라도 될 일이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곁을 줄 일이었다. 그녀가 내 엄마여서가 아니라 오래 외로웠던 사람이었기에. 이제 나는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생의 행복과 꼭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엄마가 우리 곁에서 행복하지 못했던 건 생에 대한 무책임도, 자기 자신에 대한 방임도 아니었다는 것을.
연락이 닿았을 때 응웬 아줌마는 믿을 수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우리 부부는 여기에 계속 살고 있어. 투이는 함부르크에서 일해.” 나는 들뜬 아줌마에게 모든 사정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엄마는 잘 계시니?”라고 묻는 아줌마의 말에는 거짓으로 답할 수 없었다.
빨간 털모자를 쓴 작은 여자가 현관에서 나와 길 건너편에 섰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길가로 걸어갔다. 우리는 작은 길을 사이에 두고 내내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고 나는 길을 건넜다. 나는 아줌마의 눈에서 숨길 수 없는 충격을 봤다. 서른셋의 나는 그때의 엄마와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엄마를 빼닮아 있었으니까. 아줌마의 눈에서 나는 나와 함께 여기에 서 있는 엄마를 본다. 응웬 씨, 반갑게 이름 부르며 저쪽 길로 건너가는 엄마의 모습을. 씬짜오, 씬짜오. 우리는 몇 번이나 그 말을 반복한다. 다른 말은 모두 잊은 사람들처럼.





소설가 최은영

작가소개 / 최은영(소설가)

-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문장웹진 201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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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1
원경

원경 성혜령 건강검진을 12월 마지막 주까지 미루는 사람이 자기 말고도 이렇게 많으리라고 신오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기실의 긴 좌석 중간중간 빈자리가 있긴 했지만, 신오는 한구석에 서 있기로 했다. 초음파 검사실 앞 복도는 자기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헐렁한 가운에 느슨한 고무줄 바지를 입고 핸드폰을 보며 기다림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신오는 이들 중 내년에는 따뜻한 휴양지에서 연말을 보낼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했다. 혹은, 오늘 치명적인 암이나 뇌동맥류 같은 것들을 발견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인생을 살게 될 사람들은? 그런 일들은 언제나 일어나고 있었다. 직장 생활을 10년 정도 하니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전 직장 동료는 출근길에 쓰러진 뒤 안면마비를 얻었다. 한쪽 입꼬리가 위로 당겨 올라갔는데 그는 멀쩡한 다른 쪽 입꼬리도 끌어올려 웃는 얼굴을 만들곤 했다. 병가에서 돌아온 뒤 매일 웃는 얼굴로 제일 먼저 출근하는 동료를 보면서 신오는 이직을 결심했다. 신오는 모든 일이 가능하지만 대개 나쁜 일들이 더 자주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되도록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꾸준히 하려고 했다. 불행은 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오히려 쉽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도 있었다. 복부 초음파를 보던 의사가 “어랏?” 하고 실없는 소리를 내며 배꼽 부근을 세게 눌렀을 때도 신오는 방귀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다. 의사가 차가운 젤을 다시 묻히고 초음파 단말기를 문지르다가 복막에 종양이 보인다는 말을 했을 때는, 그래서 요새 변비가 심했나, 라는 생각이 먼저 났다. 대형 병원에 가서 생검과 CT, MRI 검사를 마치고 소화기내과 교수의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도 신오는 회사 메신저를 보고 있었다. 몇십 억 단위 공공사업의 수주가 걸린 입찰 제안서의 마무리를 앞둔 시점이었다. 병원 검사로 연차를 낸다고 했을 때 팀원들은 모두 별일 없을 거라고, 하루 푹 쉬고 오라고 말했지만 메시지를 보내면서 신오를 계속 태그했다. 신오는 그날 마지막으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젊고 피곤해 보였다. 예약을 가장 빨리할 수 있었던 의사였으니 어쩔 수 없지, 신오는 생각했다. 의사는 신오가 자리에 앉자 간단한 인사도 없이 모니터 화면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마우스 커서로 신오는 잘 알아볼 수 없는 흐릿한 음영을 짚었다. 여기예요, 여기. 의사는 약간의 승리감마저 느껴지는 말투로 말했다. 복막의 종양은 전이 암이고, 여기가 원발 암이라고. “이게 숨어 있어서 찾기 어려웠거든요.” 의사는 다시 한번 마우스 커서를 움직였다. 췌장하고 담도 사이인데 위치나 크기가 좋지 않다고. 오늘이 금요일이니 당장 다음 주부터 항암치료로 크기를 줄여 보고 수술을 잡아 보자고. 신오의 핸드폰이 또 진동했다. 신오는 치료를 이주만 미뤄도 되냐고 물었다. 프로젝트가 있어서요. 이주 후에 마감이라. 의사는 처음으로 웃어 보

  • 관리자
  • 2024-05-01
야생 식물원

야생 식물원 하가람 식물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철골로 둘러싸인 거대한 유리 온실에는 열대와 지중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이국적인 식물이 자란다고 했다. 한 달 전 나는 식물원 근처에 있는 여러 호텔을 찾아 은규에게 링크를 보냈다. 보통 때의 그라면 어디든 좋다고 했을 것이다. 레스토랑도, 카페도, 동네의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조차도 모조리 내 선택에 맡기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날 은규는 이미 예약한 곳이 있다고 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은규가 보내 준 링크를 열어 보았다. 넓은 통유리 창 너머로 식물원과 공원이 내다보이는 스위트룸이었다. 나는 조금 들뜬 채 답장했다. — 우리가 만난 지 곧 1년이래. 믿어져? 1년이라는 시간은 내게 유별났고 은규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것이었다. 그가 전에 사귄 여자친구는 단 두 명인데 각각 4년, 5년을 만났다고 했다. 매번 석 달도 채 넘기지 못하는 나와는 달랐다. 이따금 은규에게 이전 연인들에 대해 물었다. 그들이 어떤 성향의 사람이었고 어떤 외양을 가졌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응응, 하며 대꾸해 주던 은규는 내가 그녀들의 음악 취향이나 살던 동네처럼 구체적인 정보까지 캐묻자 태도를 바꾸었다. 기억 안 나. 그는 말했다. 다 옛날이야기라고. 그 후로는 이전에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그녀들을 생각했다. 눈, 손톱, 말투, 그리고 신발. 나와 닮았을지, 닮았다면 얼마나 닮았고 다르다면 무엇이 다를지도. 상상을 이어 가다 보면 늘 한 가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은규는 한 번도 애인과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여자와 밤을 보내는 일이 오늘 그에게는 처음이었다. 서른을 넘긴 남성에게서 보기 드문 경우였지만 그가 처음인 게 좋았다. 그 점이 무엇보다도 나와 그녀들을 구분 지어 주는 것만 같았다. 차창에 머리를 기대었다. 햇볕에 데워진 창문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인터넷으로 보았던 화려한 꽃과 기다란 나무들을 떠올렸다. 노랗고 푸르고 분홍빛이 맴도는 공간을. 여름 휴가철이었고 도로는 차들로 빽빽했다. 졸음 껌을 씹는 은규를 보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운전하고 싶었는데.” “다음에. 너 힘들어.” 은규가 말했지만 나는 안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그는 내게 차를 맡기지 않을 것이다. “보면 놀랄걸? 너무 잘해서?” 나는 허리를 세운 채 한 손으로 반원을 그려 보았다. 휙휙. 입으로 소리 내며 운전대를 쥔 그를 따라 했다. 그가 웃었다. 머릿속으로 주행하기. 그것은 나만의 놀이였다. 캠퍼스 변두리에 있는 H관 1층, 5평 남짓한 주차관리실에서 상상력을 충족시켜 줄 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먼지 쌓인 커피믹스와 낡은 소파, 책상 위에 시간별로 놓여 있는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 주차권들. 지겨운 서류, 서류, 서류. 드물게 실장이 자리를 지키는 날이 아니면 대체로 혼자 그곳에서 일했다. 사람들이 찾아와 주차권을 사거나 정기 등록을 마친 후 돌아가면 나는 모니터에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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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 니르

    인상 깊은 글이네요.

    • 2022-07-26 18:09:02
    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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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슴도치13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021-03-14 10:14:03
    고슴도치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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