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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그늘 속으로

  • 작성일 2018-08-01
  • 조회수 2,589

[단편소설]



숲그늘 속으로



이신조




나경은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친구 소혜가 모는 차는 한 시간 가까이 좁다란 지방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주변은 어느새 첩첩산중이었다. 제법 가을다운 햇빛이 쏟아지는 주말 오후, 조수석의 나경은 흐릿한 눈으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오전에 서울을 출발한 뒤, 줄곧 마취주사의 여운 같은 졸음에 잠겨 있었다. 지난여름을 내내 그런 상태로 보낸 셈이었다. 나경의 아버지가 죽은 것은 한 달 전, 나경이 회사를 그만둔 것은 6주 전이었다. 한여름 폭염 속에 치른 장례, 그럴 리가 없음에도 나경의 머릿속에는 아버지의 시체가 부패해 곤죽처럼 물크러지는 모습이 집요하게 그려졌다. 그럴 리가 없음에도 지독한 악취가 풍겨오는 듯했다.
"거의, 다 왔어."
운전 중인 소혜가 말했다. 펜션의 이름은 '숲그늘 산방', 소혜의 남편의 직장 동료의 외삼촌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라 했다.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두 차례 그곳을 이용했다는 소혜는 더없이 한적하고 조용한 곳이라며 나경을 설득했다. 여름 휴가철과 가을 단풍철 사이, 비수기이기도 했지만 딱히 성수기라 해도 사람이 몰릴 일 없는 외진 곳이라고 했다. 바람이 졸음을 쫓아 주길 바라며 나경은 차창을 내렸다. 차가 연달아 커브를 돌자 어지럽고 메스꺼웠다. 나경은 다시 차창을 올렸다. 잠시 후 차는 비포장 진입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라벤더, 자스민, 로즈마리, 펜션 별채엔 각각 그런 이름들이 붙어 있었다. 나경은 로즈마리실에 짐을 풀었다. 뒤뜰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별채였다. 침대와 붙박이장, 인덕션과 싱크대, 미니냉장고와 앉은뱅이 탁자, 그리고 욕조가 없는 욕실. 언뜻 신도시 주택가의 원룸에라도 들어온 듯했지만, 커튼을 젖히자 그런 느낌은 단번에 사라졌다. 커다란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높은 산의 능선과 울창한 숲. 도시와는 다른 질서가 작동하는 다른 세계에 도착한 것이었다. 짐정리를 마친 나경은 소혜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정원과 텃밭을 둘러보고, 비닐하우스 온실에서 일하던 펜션 주인 부부와 다시 제대로 인사를 나눴다. 온실 안은 나경이 이름을 알지 못하는 식물들로 가득했다. 나경과 소혜는 안주인을 따라 부부가 생활하는 본채로 향했다. 본채 앞마당의 파라솔 테이블에 자리를 잡자 안주인이 차를 내왔다. 여러 가지 허브를 블렌딩했다는 차는 달큰하면서도 쌉싸름한 향을 풍겼다.
애써 다른 화제가 필요하다는 듯, 이곳으로 오는 동안 소혜는 펜션 주인 부부에 대한 얘기를 시시콜콜 들려주었다. 50대 후반의 아내가 자궁암 판정을 받자 60대에 접어든 남편은 몇 년 앞당겨 퇴직을 했다. 아내의 수술과 항암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남편은 조금씩 준비해 왔던 귀촌을 서둘렀다. 그럼에도 수십 년 살았던 도시를 떠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외딴 숲 속으로 이사를 온 부부는 두문불출 요양을 하며 지냈다. 도시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간이 흘렀다. 수술 후 4년, 다행히 아내의 암은 재발하지 않고 있었다. 작년 봄 남편은 집 주변에 원룸 형태의 조립식 별채 세 동을 들이고 손수 글씨를 새겨 넣은 나무 간판을 내걸었다. 펜션에는 가족과 지인들, 혹은 그들의 소개를 받은 손님들이 드물게 머물다 갔다. 약초로 효소를 담그거나 약재로 손질해 파는 일에 정성을 쏟게 된 터라, 부부는 펜션에 딱히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나경은 맞은편에 앉아 허브차를 권하는 안주인을 바라보았다. 소혜에게 들은 얘기를 알은체하며 입을 열 필요는 없었다. 그저 허브차의 향이 좋다는 것과 경치가 멋지다는 정도면 족했다. 안주인 역시 내일 소혜가 떠난 뒤 일주일간 혼자 펜션에 머물기로 한 손님인 나경에 대해 아무것도 물어오지 않았다. 그저 블렌딩한 허브의 종류와 효능에 대해 설명했을 뿐이다. 전화 예약을 하며 소혜가 자신에 대해 미리 무슨 얘기를 했을지 생각하다 나경은 멀리 산의 능선을 바라보았다.
전화벨이 울렸다. 소혜가 테이블에서 일어서며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마당의 잔디 위를 오가며 일곱 살짜리 아들과 다섯 살짜리 딸과의 전화를 이어 갔다. 셋을 상대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달랐다. 그건 김치냉장고에 있지, 다음 주 수요일이라니까, 그래 그럼 두 번만 해, 전화 끊고 아빠한테 바로 물어봐……. 안주인이 나경의 빈 잔에 다시 허브차를 따라 주었다. 제 친구인데, 이런저런 힘든 일이 있어서, 조용히 쉬면서, 머리도 좀 식히고, 기운도 좀 차리고……. 소혜는 그 정도로 말했을 터였다. 이런저런 힘든 일들. 이를테면, 아버지의 부정, 그에 대한 추문, 언론의 공격과 법정 다툼, 파면이나 다름없는 퇴임, 그리고 갑작스러운 발병과 악화와 사망. 또한 H의 부정, 그에 대한 추문, H의 몰락과 구속, H와 관련된 사업의 중단과 무산, 나경과 회사를 향한 공격, 망신과 손해와 패배, 그리고 해고나 다름없는 퇴사……. 문득 내내 익숙해진 마취주사의 여운 같은 졸음이 밀려왔다. 어쩌면 처음 마셔 본 허브차 때문일지도 몰랐다. 전화통화를 마친 소혜는 안주인과 숲 속 펜션의 야외 테이블에 어울릴 만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지난여름 근처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며 촬영한 동영상을 두고두고 돌려 본다는 소혜의 아들과 딸, 어성초 겨우살이 쇠비름 석창포 같은 이름의 약초들,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는 로컬푸드 직판장, 그리고 항구 도시에 살고 있다는 주인 부부의 딸이 첫아이를 임신 중이며 예정일을 한 달쯤 남겨 두었다는 것까지.
펜션 텃밭의 채소와 오는 길에 장을 봐온 음식들로 저녁을 해 먹고 나니 빠르게 날이 어두워졌고 기온이 내려갔다. 펜션 바깥주인이 별채 앞에 모닥불을 피워 주고는 아내가 있는 본채로 돌아갔다. 나경과 소혜는 캠핑용 접이식 의자에 앉아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불티가 일며 나무가 타들어가는 소리와 냄새. 다시 소혜의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딸, 아들, 남편의 순서로 통화가 이어졌다. 전화를 끊은 소혜가 작게 쪼개진 장작 몇 개를 모닥불 아래쪽으로 집어넣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까 여기 사장님, 고등학교 선생님이셨대, 생물 과목이랬던가, 암튼……. 근데 교사는 몇 년 앞당겨 퇴직하면 연금을 어떻게 받는 거지?"


나경의 아버지 역시 교사였다. 나경이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는 한 사립학교 재단 소유의 남자 중학교에서 사회 과목을 가르쳤다. 나경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아버지는 교사직을 유지한 채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후 십대의 나경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언제나 과로에 시달리며 쫓기듯 절박하고 맹렬하게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학교 창고에서 여분의 교실용 책걸상을 얻어와 자신의 공부방 구석에 두고 거기에 나경을 앉혔다. 나경의 방에도 물론 책상이 있었지만, 나경은 그 자리에 앉아 아버지와 한 공간에서 숙제를 하고 시험공부를 했다. 언제나 아버지가 더 많이 더 오래 더 열심히 공부했다. 교실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모양의 책걸상을 집에 돌아와서도 사용했기 때문인지, 나경은 밤에도 휴일에도 학교에 다니는 기분이었다. 학교가 방학을 맞으면 아버지는 분초를 다퉈 가며 공부에 매달렸다. 여름엔 등과 엉덩이에 땀띠가 났고, 겨울엔 두꺼운 파카를 껴입고 책상 앞을 떠날 줄 몰랐다. 석사를 마치고 박사 과정에 들어간 아버지는 교사직을 그만두었고, 여러 대학을 분주히 오가며 시간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중학생 나경은 예의 책걸상에 앉아 영어단어나 한자성어를 외우다 건너편 책상에서 공부하던 아버지가 코피를 쏟는 모습을 번번이 목격했다. 아버지가 쓰는 박사 논문의 주제, 맡고 있는 대학 강의들의 커리큘럼, 벽면을 가득 메운 복잡한 메모, 그리고 탑처럼 높이 쌓여 가는 온갖 문서와 책들, 나경은 그 모든 것에 경외심을 느꼈다. 그것은 견고하고 엄격하며 고고하게 빛나는 세계의 일부였다. 아버지가 하는 것이 진짜 공부이며, 자신은 그저 공부하기를 흉내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나경이 공부하는 것을 일일이 참견하고 감시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겉으로는 언제나 그렇게 보였다. 부모가 직접 공부하는 것으로 모범을 보이는 자식 교육은 충분히 이상적이라 할 만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은 뒤, 나경은 그 시절 아버지가 오히려 어린 딸의 시선을 필요로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형편이 어려운 고향의 부모, 생계와 결혼을 위해 서둘러야 했던 중등교사 임용, 안정된 교직을 버리고 늦은 나이에 처자식이 딸린 처지로 교수라는 목표를 이루려 악착같이 아등바등 대는 삶. 자신과 같은 방에서 모의고사 오답노트를 작성하는 외동딸의 존재를 애써 의식하며 아버지는 스스로를 더 몰아붙였을 터였다. 나경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로 하여금 자식에게 모범을 보이고 있다고 스스로 확신하도록 존재하는 방법을, 낡은 교실용 책걸상에 앉아 아버지가 안심하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상태를 조절하는 방법을.
나경이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친 겨울, 아버지는 한 대학의 경영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예의 낡은 책걸상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버지의 공부방을 가득 채웠던 책들은 아버지의 교수 연구실로 옮겨졌다. 고3 수험생이 된 나경은 여느 학생들처럼 학교와 학원과 독서실과 제 방을 오가며 공부했다. 그러나 공부를 하는 것도, 공부 흉내를 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문득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을 때, 미간을 찌푸린 심각한 표정으로 유난히 뾰족하게 깎은 연필을 빠르게 놀려 무언가를 적고 있는 아버지의 옆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경은 몹시 어색하고 두려웠다. 나경은 아버지가 재직 중인 대학보다 합격 등급이 한 단계쯤 낮은 대학의 문헌정보학과에 입학했다. 1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하자 아버지는 편입시험을 권했다. 나경은 자신이 없었다. 대신 싱가포르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1년 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나경은 복학 후 경영학을 복수 전공으로 선택했고, 4학년 1학기 처음으로 장학금을 받았다.


다음날 정오 무렵, 소혜가 펜션을 떠났다. 주말에 다시 차를 몰고 나경을 데리러 올 터였다.
소혜를 배웅한 나경은 로즈마리실로 돌아와 문을 닫고 커튼을 치고 침대에 누웠다. 휴대폰에 포털 사이트 화면을 띄웠다.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유명 골프선수와의 열애를 인정했다는 여배우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배우의 이름을 클릭하자 '6살 연상연하 커플의 장거리 비밀연애'라는 제목의 기사가 상단에 링크됐다. 작년 봄과 여름 사이, 티브이 예능 채널의 강연 버라이어티쇼가 진행되는 동안 H는 세 차례나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했다. H의 책은 8개월 동안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나경은 그 책의 기획자이자 편집자였다. 숨은 저자이기도 했다. H는 지금 구치소에 있었다. '스타 강사의 추악한 몰락', '드림메이커의 파렴치한 과거' 등의 기사 제목이 H의 구속에 맞춰 포털 사이트를 도배했다. H의 범죄가 밝혀진 후, 한동안 SNS에서는 H의 책을 갈기갈기 찢어 인증 샷을 올리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나경은 휴대폰 화면을 껐다. 마취주사의 여운 같은 졸음이 밀려왔다.


나경은 꿈을 꾸다 잠에서 깨어났다. 어느 집의 어두운 지하창고 안을 뒤지는 꿈이었다. 그 집이 누구의 집이며, 창고 안을 뒤져 무얼 찾고 있었던 건지. 어리둥절 현실감이 없었다. 잠에서 깨어난 순간의 선득한 낯섦과 먹먹한 고립감은 꿈만큼이나 비현실적이었다. 빗소리, 창문을 닫고 커튼을 여몄음에도 선명하게 빗소리가 들려왔다. 숲그늘 산방, 로즈마리 실, 전화기 너머 소혜의 아들과 딸, 자궁암, 허브차, 생물교사, 모닥불, 그리고 아버지와 H.
나경은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젖혔다. 마땅히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듯, 비가 내리고 있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나경은 점퍼를 입고 캐리어 안에서 접이식 우산을 꺼냈다. 밖으로 나온 나경은 우산을 쓰고 빗속으로 들어섰다. 도시에서와는 다른 비, 지난밤 모닥불을 피웠던 자리가 까맣게 젖어 있었다. 나경은 천천히 뒤뜰을 거닐다 본채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주인 부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펜션 입구 쪽에 주차되어 있던 바깥주인의 SUV도 보이지 않았다. 나경은 비닐하우스 온실을 지나, 대파와 고추가 자라고 있는 텃밭을 지나, 돌담 화단 뒤편의 오르막길로 올라섰다. 그 길을 따라 걷다 왼편의 좁은 샛길로 들어서면 얼마 후 작은 계곡이 나온다고 소혜는 말했었다.
빗방울이 연신 우산을 때렸다. 똑똑 문을 두드리듯, 딱딱 손가락을 튕기듯, 땅땅 건반을 내리치듯, 선명하고 단호한 기세로 비가 내렸다. 마땅히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듯,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진한 흙냄새, 셀 수 없이 많은 나뭇잎과 풀잎과 빗방울. 나경은 왼쪽으로 이어진 좁은 샛길로 접어들었다. 비를 맞고 있다기보다, 비에 녹아들고 있는 듯한 느낌. 바짓단이 차갑고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비가 내리는 작은 계곡, 서둘러 떨어진 낙엽들이 계곡의 물살을 따라 빠르게 흘러갔다. 나경은 우산을 쓴 채 돌 더미 위에 쪼그리고 앉아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삼베 수의를 입은 파리한 얼굴의 아버지가 계곡물에 잠겨 떠내려갔다. 그럴 리가 없음에도 아주 빠르게 떠내려갔다. 낡은 책걸상에 앉아 구한말의 복잡한 연표를 외우다 말고 아버지의 모습을 살피던 중학생처럼 고개를 든 순간, 나경은 계곡 맞은편의 경사면을 걸어 내려오는 검은 개 한 마리를 발견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 털을 가진, 마치 늑대의 그림자처럼 보이는 커다란 검은 개였다. 검은 개가 나경을 보고 멈추어 섰다. 도통 표정을 읽을 수 없는 검은 눈과 검은 얼굴, 꿈처럼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검은 개가 짖었다. 비에 젖은 몸뚱이를 잔뜩 경직시킨 채 검은 개가 나경을 향해 사납게 짖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이빨 가득 적의를 드러내고, 가차 없이, 맹렬하게, 마치 악귀라도 본 것처럼 마구 짖어댔다. 폭이 좁은 계곡이었다. 검은 개가 힘껏 뛰어오른다면 한순간에 나경을 덮칠 수도 있었다. 얼마든지 그럴 것만 같았다. 나경의 몸이 돌처럼 굳었다. 눈을 감자 검은 개에 물어 뜯겨 온통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갑자기 개가 다르게 짖기 시작했다. 무어라 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다른 소리를 냈다. 나경은 눈을 떴다. 이번엔 남자였다. 등산용 모자를 쓰고 검은 뿔테 안경을 낀 남자였다. 백팩을 메고 등산화를 신고 있었지만, 어딘지 평범한 등산객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검은 개가 꼬리를 치며 그의 다리에 주둥이를 밀착시켰다. 남자는 달래듯 중얼거리며 손으로 개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검은 개에게서 뿜어져 나왔던 난폭함이 잦아들고 있었다. 남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개의 주인이었다. 남자와 검은 개가 계곡 가까이로 다가왔다. 남자는 우산 없이, 자신의 개처럼 젖은 모습이었다.
"……손님이세요?"
빗방울과 물줄기를 뚫고 남자의 목소리가 나경에게 와 닿았다. 나경은 꿈에서 깨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위의, 펜션 손님?"
"……."
나경은 남자를 기억해 냈다. 다시 검은 개가 짧게 짖었다. 나경은 우산을 옆으로 내렸다. 그로 하여금 저를 기억해 내도록 만들겠다는 듯이.


남자의 이름은 인준이었다. 하인준, 양재역 부근의 피부과 전문병원에서 일하는 월급 의사라고 했다. 7년 전, 서른 살의 나경은 어머니의 지인들 소개로 꽤나 자주 선을 보았다. 인준은 네 번째 상대였다. 아직 독립 전으로 나경은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고, 의구심과 회의를 품고 있으면서도 결혼 생각이 강했다. 대학원 수료 후 2년째 다니고 있던 첫 직장을 그만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인준은 예외적으로 복잡한 표정을 가진 맞선 상대였다. 주선자 없이 만난 호텔 커피숍의 선 자리를 더없이 거북해하면서도, 나경을 의식하며 그 거북함을 최대한 부정하는 듯한 태도, 그러나 먼저 너스레를 떨어 어색함을 풀거나 굳이 분위기를 주도하겠다는 의지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음료를 주문하는 짧은 순간에도 감출 수 없는 경계심과 환멸, 진부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주고받는 자기소개에 짐짓 체념하고 있으면서도 끝내 속물로는 보이지 않는 반듯함. 부적절함을 오랫동안 단련해 온 듯한 태도, 그 방식을 애써 내면화시킨 것 같은 남자였다.
나경은 일단 그 과민함과 복잡함이 흥미로웠다. 선 자리가 몇 차례 되풀이되고 보니, 얼핏 복잡해 보이는 상대 남자에 대한 온갖 정보들이 실은 지극히 단순한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기업 산하 IT연구소의 연구원, 수입가구 업체 사장의 아들, 개업 준비 중인 치과의사는 나경에게 각기 다른 제 얘기를 들려주었다. 교회 권사이자 약국 약사인 어머니, 못 말리는 기분파라는 아버지, 미국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는 큰누나, 나경과 마찬가지로 외동으로 자란 자신, 친가 외가 합쳐 집안에 다섯이나 된다는 의사, 실내골프연습장을 운영한다는 동창생, 가끔 오프라인 모임을 갖는다는 인터넷 자동차 동호회, 드러머로 활동 중인 아마추어 밴드, 집 밖으로 나가기 싫어 공들여 갖추어 놓았다는 홈시어터, 전혀 까다롭지 않다는 식성, 꽤 자신 있게 만들 줄 안다는 알리오 올리오, 꼭 추천하고 싶다는 단골 일식집, 신병훈련소에서 조교로 복무한 군 시절, 늘 공짜로 받는다는 뮤지컬 공연 초대권, 회사 소유의 제주도 리조트에서 보낸 휴가, 출장차 처음 가봤다는 마카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는 주식, 야구나 축구보다 좋아한다는 볼링과 당구, 혈액형이 O형이라 그런지, 오히려 동부이촌동 같은 데가 좋죠, 한 5년 정도 후로 예상하고 있는데, 요즘은 조카가 너무 예쁘더라구요……. 그들이 들려준 각기 다른 얘기는 결국 비슷한 얘기였다. 결혼 상대자로 한 인간의 호감도를 높일 목적으로 편찬된 사전이 있어, 그 사전에 수록된 단어들만을 사용해 이루어지는 듯한 대화. 그들의 질문에 나경 역시 구체적이고 특수한, 그러나 결국 빤하고 단순한 대답을 늘어놓았다. 공포영화는 잘 못 봐요, 어머니는 성당에 열심히 다니시는 편인데, 그 근처에는 가봤어요, 직장생활은 진짜 인복이 중요하죠······.
커피를 마시는 동안 인준은 불쾌하지 않을 정도로만 겨우 입을 열었다. 짐작대로 맞선 자리는 처음이라고 했다. 나경이라도 뻔한 매뉴얼을 가동시킬 수 있었다. 휴일엔 주로 뭐 하세요? 무슨 음악 좋아하세요? 그러나 나경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커피숍을 나와 인준이 마지못해 선택한 식사자리는 같은 호텔 내에 있는 중식당이었다. 예약을 하지 않았음에도 작은 별실로 안내되었다. 젓가락으로 유린기 몇 점을 집어 앞접시로 옮기는 그의 얼굴은 '진짜 고역이군, 딱 여기까지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경은 그것이 별로 모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나경은 문득 대학원 시절 헤어진 연인, 선배 Y에 대해 인준에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식사를 마칠 즈음, 인준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고등학교 때는 한의학과에 가고 싶었어요. 의대 본과 때는 약리학이나 병리학에 더 관심이 있었는데…… 이내 여러 감정과 상념이 뒤섞여 선명한 듯 어지러워지는 표정. 그러나 얘기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대학원 시절의 연인, Y는 편안한 상대였다. 다감하고 모나지 않은 성격에 두루두루 평판이 좋았고, 괴팍하기로 소문난 학과장 교수의 연구조교를 별 탈 없이 수행해 냈다. 나경이 비슷한 또래의 남자에게 그 정도의 세심한 매너나 친근한 신뢰를 경험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연애가 본격화된 후, Y가 종종 고향인 남쪽 도시에 다녀오고 난 뒤면 어김없이 문제가 발생했다.
Y의 좁은 원룸에서 첫 섹스를 한 어느 오후, Y는 고백조로 자신의 부모가 자기가 아홉 살 때에야 결혼을 했다고 말했다. 나경은 그 의미를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요는 유부남이었던 Y의 아버지가 외도로 Y를 낳았고, 아버지가 전처와 이혼하고 Y의 어머니와 재혼하기까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Y는 나경에게 제 첫사랑의 존재를 고백하기도 했다. 고향 도시에서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며 미대 진학을 희망했던 동갑내기 소녀. 예민하고 감성적인 그녀는 Y와 함께 서울 소재 대학에 지원했지만, Y와 달리 입시에 실패한 그녀는 재수 후 고향 도시의 한 전문대학 미술교육과에 입학했다. Y는 고등학교 2학년 이후 지금껏 그녀와 열네 차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Y가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며 최악의 갈등이 있었고, 결국은 9년간의 관계가 끝이 났다고도 말했다. 나경에게 입을 맞추며 Y는 즐겁고 편안한 연애를 경험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Y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나경은 Y가 다른 남자들보다 솔직하고 정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경은 미처 알지 못했다. 많은 남자들에게 고향과 어머니와 첫사랑이 강력한 혼연일체로 결합돼 그것을 극복하는 일이 때로 평생의 과제로 주어진다는 것을. 자신이 휘둘리고 있는 무의식의 실체를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Y는 솔직하지도 정직하지도 않은 셈이었다.
Y는 급박한 연락을 받고 응급실로 달려가는 환자의 보호자처럼 고향을 찾곤 했다. 평생 온갖 증세를 동반한 신경증에 시달리는 어머니와 사실상 헤어지는 것이 불가능하게 프로그래밍된 첫사랑의 그녀. 두 여자는 애타게 구조 신호를 보내는 조난자들처럼 극단적인 상황에서 Y를 호출했다. 특히 첫사랑의 그녀는 술에 취해 자해를 하거나 다리 위에서 뛰어 내리겠다 울부짖으며 Y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구조대원처럼 고향으로 달려가 비상사태를 수습한 후 서울로 돌아온 Y는 나경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표정을 짓고 있었다. 10년쯤 지속된 관계가 쉽게 정리되기 어려울 거라 생각하며 나경은 인내했다. 그러나 같은 상황의 신물 나는 반복이었다. 명절 연휴 때 고향에 내려갔던 Y가 그녀와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경은 Y의 어머니나 예의 그녀가 그러했을 것처럼 폭발하듯 소리를 지르며 Y를 몰아세웠다.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경험하고 자란 애야, 더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Y가 뜬금없이 내뱉은 대꾸에 나경은 말문이 막혔다. 아무렴 즐겁고 편안한 연애가 괴롭고 파괴적인 연애보다 바람직한 것은 분명했지만, 괴롭고 파괴적인 연애가 즐겁고 편안한 연애보다 훨씬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나경은 꽤나 많은 상처를 입어야 했다. 결국 나경은 작정하고 준비한 잔인한 말을 쏟아내고 Y와의 관계를 끝냈다. 울고불고 매달리면 그 여자한테서 선배 엄마가 보이니까 그러는 거잖아.
Y와 헤어지고, 아버지의 마뜩찮은 표정에도 석사 논문을 포기한 채 수료로 대학원을 마친 나경은 한 공기업이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주최한 프로젝트 공모에서 입상한 경력으로 그 공기업 산하 문화재단의 행사기획팀에 입사했다. 이십대 끝자락의 시간을 통과하며,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경험하며, 나경은 차츰 제 안에 잠재된 신랄한 공격성과 경쟁적 성취욕을 감지하게 되었다. 짐짓 난감하고 두려운 각성이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커진 것은 그에 대한 회피 반응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맞선 자리에 나온 남자들의 비슷비슷한 얘기를 들으며 나경은 상대 남자의 숨겨진 어둠 같은 것을 은밀히 상상해 보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맞선용 언어사전에는 결코 등재되지 않을 법한 단어들로 이루어진 얘기들, 이를테면 살면서 가장 강렬하게 살의를 느낀 순간, 군대의 고참이 되어 신참을 가장 야비하게 괴롭힌 경험, 잊을 수 없는 굴욕이나 치명적인 결핍, 어리석고 졸렬한 추태, 교만한 자기합리화, 누구에게나 성격파탄자 같은 가족이 한둘쯤은 있을 테고, 들키지 않은 자잘한 범죄의 기억도 존재할 터였다.
나경은 인준에게 Y와의 연애에 대해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맞선 자리에서는 절대로 입에 올리지 않을 것들로 대화를 나눠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경은 월차를 낸 어느 평일 오후, 양재동 부근의 피부과 전문병원으로 인준을 찾아갔다. 무작정 찾아갔다. 그 전날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하인준 선생님께 진료 상담을 원한다고 예약을 해둔 터였다. 흰 가운을 입고 진료실에 앉아 있던 인준은 나경을 보고 몹시 당황해했다. 심술궂고 일방적인 만남으로 받아들였을 터였다. 그러나 나경은 다른 방법을 마땅히 떠올릴 수 없었다. 뜨악한 표정을 짓던 인준의 얼굴이 차츰 싸늘하고 딱딱하게 굳어 갔다. 나경은 인준에게 제 피부 상태를 봐달라고 했다. 두 달 코스로 관리를 받겠다고도 했다. 인준이 거부감을 드러내며 경멸조로 말했다.
"그때, 댁이 대치동이라고 했죠? 가까운 역삼역 쪽에 대학 선배가 하는 개인 피부과 소개시켜 드리죠. 단골도 많고, 관리실 서비스도 좋다고 하더군요."


다음날 아침, 나경은 다시 펜션 뒤편의 숲길을 걸어 계곡으로 향했다. 비는 어젯밤 모두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 비로 인해 서늘한 가을의 기운이 숲 속 가득 흩뿌려진 듯했다. 계곡에 도착한 나경은 어제 오후 제가 쪼그리고 앉았던 자리 주변을 서성였다. 흐르는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자신을 마주했던 인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빗속에서 나경이 쓰고 있던 우산을 내리자, 인준은 7년 전 진료실에서처럼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경은 인준과 마주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펜션의 손님이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자기를 기억하느냐고 되묻지도 않았다. 둘은 입을 굳게 다물고 얼마간 서로를 바라보았다. 당혹감이 희미해진 인준의 얼굴 위로 뭐라 읽어낼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이 깃들었다. 그 복잡함은 7년 전과는 완연히 다른 것이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고 물이 흐르고 있었다. 검은 개가 다시 짖었다. 인준이 먼저 시선을 거두며 돌아섰다. 인준은 검은 개와 함께 다시 맞은편 경사면을 올랐다. 어디론가 사라지는 그 모습이 도망을 치는 것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나경은 다시 우산을 썼다.
착각이 아니었다. 검은 개와 함께 나타난 남자는 인준이었다. 다른 누구일 수 없었다. 나경은 7년 사이 인준이 양재동의 피부과나 호텔 커피숍과는 무관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기억이 맞는다면 인준은 나경보다 세 살 위, 올해 마흔이 되었을 터였다. 점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나경은 계곡 주변을 천천히 거닐었다. 인준도, 죽은 아버지도,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나 싶어 공중의 어디쯤에 애써 귀를 기울여 보았다. 문을 두드리듯, 손가락을 튕기듯, 건반을 치듯 떨어져 내린 무수한 빗방울이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새삼 궁금했다. 아마도 사라진 것이 아닐 터였다. 계절이 달라지는 흐린 하늘 아래, 나경은 종일 숲 속을 서성였다.


인준과의 이상한 만남을 가진 몇 달 후, 나경은 공기업 산하의 문화재단을 그만두고 외국계 자본으로 설립된 신생 컨설팅 회사에 들어갔다. 부모와 함께 살던 집을 나와 얼마간 모아 둔 돈에 대출금을 보태 월세로 오피스텔을 얻었다. 나경이 입사한 컨설팅 회사는 선제적으로 고객 기업을 유치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내부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는 성향의 대기업이나 온라인이 사업 토대가 되는 IT업종, 구성원과 지배구조가 유동적인 벤처기업은 의뢰 업체에서 제외시키는 전략을 썼다. 대신 계열사의 종류와 숫자가 한정적이고 경영진의 연배가 높거나 이전 시대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보수적인 경영 마인드로 운영되는 중견 기업들이 주요 타깃 업체가 되었다. 이를테면 CEO 경영 체제를 꺼리는 자수성가형 오너가 있는 제조사나 건설사, 영업이나 대인 서비스가 업무의 주를 이루며 스테디셀러 제품을 보유하고 있는 제약회사나 식품회사 등이 실속 있는 고객으로 분류되었다. 그들은 변화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하는 부류였고, 적극적으로 변화를 추구할 의사나 능력은 없으면서도 변화를 통해 뚜렷한 성과를 이루었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고 싶어 했다. 예의 변화라는 단어를 '경영혁신', '지속성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토털 솔루션' 등의 표현으로 치환해 세련된 스타일의 프리젠테이션을 제작 시연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소구 대상의 욕구를 미리 구체적이고 완성된 형태로 제시해 고객 기업을 확보하는 차별화된 포지셔닝으로 나경이 속한 컨설팅 회사는 급속도로 성장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첫 직장과는 업무처리 방식도, 조직운영 체계도, 사내 문화도 모든 것이 달랐다. 노골적인 경쟁은 당연한 것이었고, 철저한 성과 중심주의에 따라 확실한 보상이 주어졌다. 나경은 업무에 빠르게 적응했고, 뚜렷한 성과를 냈으며, 확실히 지급되는 보상에 고무되었다. 제 안에 잠재된 신랄한 공격성과 경쟁적 성취욕을 스스로 난감해하고 두려워하던 태도에서 벗어나자 모든 것이 몸에 맞춘 듯 자연스러웠다. 스트레스나 피로가 당연히 뒤따랐으나 그것이 자극적인 에너지원으로 변환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5년간의 재직 기간 중 나경이 전체 사원을 대상으로 하는 분기별 실적에서 탑10을 놓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별도의 상여금과 성과급 명단에도 나경은 늘 높은 순위로 이름을 올렸다. 물론 입사 초기 나경의 아버지가 경영학계 전문가로 회사의 자문위원에 위촉되고, 나경의 주선으로 아버지의 지인 교수들이 회사와 이런저런 관계를 맺게 된 것이 경영진으로 하여금 나경을 눈여겨보게 만든 것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미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게 된 것은 나경 자신이었다. 나경은 특히 의뢰 업체의 직원 교육 기획 업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나경은 자신의 아버지 같은 학자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강사들을 섭외해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비한 복지제도나 권위적인 사내 분위기 탓에 소홀히 취급받고 있던 직원들의 사적인 욕구까지도 충족시킬 수 있는 흥미롭고 내실 있는 강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한 업무를 담당하며 나경이 발굴하다시피 한 강사가 바로 H였고, 속칭 '부적절한 관계'로까지 발전하게 된 상대가 S였다.


S는 한 건설사의 상무였다. S의 회사가 나경의 회사에 마케팅 컨설턴트를 의뢰하며 알게 된 사이였다. 나경은 그 건설사의 중간관리직 사원들의 역량강화 위탁 교육을 실무 책임자로 맡아 진행했다. 당시 S는 나경보다 열 살이 많은 마흔넷이었고, 회사 경영진 중 최연소 임원인 동시에 오너의 아들인 사장을 제외하고는 역대 가장 빨리 임원으로 승진한 인물이었다. 그러한 이력에 걸맞게 S는 머리가 좋았고 추진력이 강했으며 눈치가 빨랐다. 노회하고 음흉한 임원들을 상대하기에 술이 세지 못하고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오너의 아들인 젊은 사장의 최측근이라는 막강한 장점이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S는 노골적인 야심가였고 전형적인 마초였지만, 자신이 지질하고 빤한 속물은 아니라는 자기 기준에 몹시 민감하게 굴었다. "난 너랑 이렇게 연애를 했으면 했지, 술집 애들은 줘도 싫더라구. 텐프로 접대도 받아 봤는데, 이상하게 영 안 내켜"라는 말이 나르시시즘적인 기만이라는 자각은 없었다. S는 프로 운동선수를 시킬 거라는 초등학생 쌍둥이 아들을 두고 있었고, 젊어서는 지방에서 관광호텔을 운영하는 처가 덕을 많이 본 경우였다. 골프와 축구 외에는 딱히 다른 잡기에 관심이 없다는 것마저 S에게는 무능한 꼰대 임원들과 자신을 구별 짓는 자부심으로 작용했다.
젊은 사장과의 골프 약속이 갑작스럽게 취소된 연애 초기의 어느 토요일 오전, S는 나경의 오피스텔로 가겠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단잠에서 깬 나경은 더없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내가 왜 주말 특근까지 해야 되죠? 가뜩이나 일도 많은데." 나경은 S와의 관계를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고도의 전략 게임처럼 여겼다. 어떤 의미로든 S를 이기고 싶었다. 꽃이나 명품 선물에 결코 S가 원하는 만큼의 미소를 지어 주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선물 공세를 하면 의심받겠지만, 이런 건 집에나 갖다 주시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닌 S는 실소를 터뜨렸지만, "재미를 보고 있는 건 당신이 아니라 나야"라는 나경의 말에는 짐짓 아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때로 나경은 S에게 고급 호텔의 스파 이용권이나 백화점 상품권을 당연하다는 듯 요구하기도 했다. 그 역시 게임의 룰이라 생각해서였다. 예측 가능한 반응을 보이지 말 것, 절절매며 매달리지 말 것, 그 두 가지만으로도 게임의 승기를 잡을 때가 많았다. 종종 호텔 스파 관리실에서 2시간짜리 아로마테라피 코스를 받으며 누워 있을 때면, 문득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적잖이 맞선을 보았던 몇 년 전의 기억이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낯설게 떠올랐다. 나경은 일에 매달렸다. 삶의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업무와 성과, 그로 인한 인정과 만족이었다. 그즈음 회사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자신의 별명이 '독설 머신'과 '사냥개'라는 것을 나경도 알고 있었다. 딱히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고, 사냥개라는 별명은 은근히 마음에 들기까지 했다. 아마도 컨설팅 업체 선정 경합에서 프리젠테이션에 나서면 경쟁사를 제치고 수주를 따오는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생겨난 별명일 터였다. 회의나 결제 때면 팀원들에게 독설을 퍼붓고 사냥개처럼 허점을 물어뜯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아무튼 전문직 종사자인 여성이 사냥개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나경은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숲그늘 산방이란 이름의 펜션에 머문 지 나흘째, 나경은 점심식사 후 비닐하우스 온실에서 펜션 주인 부부의 일을 잠시 돕기로 했다. 안채에서 점심 대접을 받은 참이었다. 어제는 안주인이 별채로 찐 감자와 부침개와 김치를 가져다주었다. 불쑥 나경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찾아오거나 일방적으로 뭔가를 고지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조심스럽고 공손한 투로 문자메시지를 보내 의사 표시를 했다. 세심하고 사려 깊은 부부였다. 불필요한 간섭이라 느껴질 만한 부분이 없는 대신,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안정감이 들었다. 소혜가 이곳을 추천한 이유가 단순히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라는 게 전부는 아니었던 셈이다.
직접적으로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니라 해도, 주인 부부의 약초에 대한 관심과 정성은 남다른 듯했다. 생물 교사였던 남편의 이력과 귀촌 후 아내의 요양에 약초가 요긴하게 쓰였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나경은 온실 안 작업대에 앉아 바깥주인이 작두로 잘게 조각낸 나무 약재를 저울을 이용해 300그램씩 지퍼 백 비닐에 나누어 담는 일을 도왔다. 바깥주인이 작은 조각을 가리키며 말했다.
"유근피라는 거예요. 느릅나무 껍질 말린 거. 여기 있는 건 전부 우리가 직접 손질해서 말린 겁니다."
안주인이 말을 이었다.
"이게 비염이랑 아토피에 특히 좋다고, 요새 도시 애들 워낙 그런 게 심하다니, 찾는 사람이 꽤 많아요."
잠시 후, 펜션 입구 쪽에서 차 소리가 들려왔다. 외부 차량이 들어와 주차를 하는 듯하더니, 짧은 경적음과 함께 엔진소리가 멈췄다.
"약초 갖고 왔나 보네."
바깥주인이 작두질을 멈추고 일어나 온실 밖으로 나갔다.
"근방에 사는 약초꾼이 있어요. 자기가 산 속 여기저기 다니면서 캐온 거."
안주인의 말에 나경은 고개를 돌려 온실 밖을 바라보았다.
주차된 픽업트럭의 짐칸에서 검은 개가 뛰어내렸다. 늑대의 그림자를 닮은 커다란 검은 개, 이번엔 목줄을 하고 있었다. 등산 모자를 쓰고 뿔테 안경을 낀 남자, 근방에 산다는 약초꾼, 자루를 짊어진 인준이 바깥주인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온실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누군가를 알은체하듯 검은 개가 꼬리를 흔들며 몇 차례 짖었다.


오후 4시가 가까워 나경은 로즈마리실로 돌아왔다. 침대에 걸터앉아 안주인이 텀블러에 담아 준 허브차를 몇 모금 더 마셨다. 첫날 마셨던 것과는 비슷한 듯 다른 향이 났다. 나경은 소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혼자 서울로 돌아간 후 소혜는 매일 밤 전화해 나경의 안부를 물었다. 저녁은 뭘 먹었는지, 날씨는 어떤지, 자다가 중간에 또 깨지는 않았는지…… 나경의 전화에 의아해하며 소혜는 대뜸 무슨 일이 있느냐 물었다. 소혜의 목소리와 함께 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장을 보러 온 마트의 주차장이라고 했다. 아무 일 없다고, 편히 잘 지내고 있다고, 오늘 주인 부부와 같이 점심을 먹었다고…….
소혜는 대학에 입학해 처음으로 가까워진 문헌정보학과 동기였다. 따지고 보면 새삼스러운 인연이었다. 성격이나 취향이나 삶의 진행 방향에 딱히 공통점이랄 만한 게 없었다. 어학연수를 다녀온 나경이 복수 전공을 선택한 뒤로는 강의실에서 만나는 일조차 뜸해졌다. 그럼에도 둘은 한 달에 한 번쯤 같이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하거나, 차 한잔이나 술 한잔을 곁들여 수다를 떨곤 했다. 그러한 만남이 어떤 형태로든 십 수 년간 이어진 것이었다. 졸업 후 나경은 경영학과 대학원에 진학했고, 소혜는 줄곧 과일도매상을 해온 부모님을 돕다 온라인 꽃배달 사업을 시작한 오빠 밑에서 일을 하며 월급을 받았다. 나경이 첫 직장에 들어간 직후 소혜는 친척의 소개로 안경제작 회사에 다니는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나경이 컨설팅 회사에서 사냥개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을 무렵, 소혜는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최근 소혜는 신도시 쇼핑몰 지하에 프랜차이즈 디저트 카페를 개업한 언니의 일을 돕고 있었다.
소혜는 나경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Y에 대해 알고 있었고, S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어학연수 시절 싱가포르에서 만난 일본 남자가 첫 경험의 상대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소혜는 나경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서도, 아버지의 공부방에 놓여 있던 교실용 책걸상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너는 외동딸인데도 뭔가 좀 흔히 말하는 외동딸 같지는 않아"라는 소혜의 말에 나경은 "별일 없었으면 남동생이 있었을 걸, 어쩌면 둘 정도"라고 답했다. 나경의 어린 시절 어머니는 두 번의 유산을 겪었다. 이후 오래도록 임신이 되지 않았고, 중학교 교사였던 아버지가 대학교수가 되려는 결심을 굳힌 것은 아마도 불임에 대한 최종 판정을 받은 직후라고 나경은 생각하고 있었다. 사춘기 이후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퍼즐 맞추듯 되새겨 확신하게 된 것이었다. 나경은 어머니가 유산했던 태아 둘이 모두 아들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경은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인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남동생이 있었다면 예의 책걸상에는 누가 앉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도 뒤를 이었다.
나경의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이내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을 때, 문상객들 중 오랜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소혜뿐이었다. 소혜는 너무나도 다른, 나경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는 삶을 사는 친구였다. 불가능해 보이는 삶이 그처럼 엄연히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존재, 소혜는 나경이 드물게 드나들 수 있는 '다른 세계'였다. 관찰이나 균형을 위해서든, 휴식이나 위로를 위해서든, 자극이든, 도피이든, 어떤 의미로든 결코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자신과 무관한 채로 그저 온전히 존재해 주길 바라게 되는 다른 세계였다. 소혜 역시 나경에 대해 같은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을 나경은 알고 있었다.
다른 세계, 다른 삶의 가능성. 나경은 소혜에게 많은 것들을 얘기했지만, 7년 전 네 번째 맞선 상대였던 인준에 대해서는 말한 적이 없었다. 양재동의 피부과로 무작정 인준을 찾아갔었다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비닐하우스 온실, 나경이 유근피를 지퍼 백에 나누어 담는 동안, 인준은 다른 작업대에 제가 가져온 약초들을 늘어놓고 펜션 바깥주인과 두런두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주인 부부의 소개로 나경과 인준이 서로에게 의례적인 목례를 건넨 것은 2, 3초에 불과했다. 잠시 후 인준과 바깥주인은 약초를 챙겨 인준의 차를 타고 읍내의 약재상으로 향했다. 검은 개는 펜션 마당 구석에 줄이 묶인 채로 인준이 주고 간 육포를 먹어치웠다. 그악스럽게 짖어대던 계곡에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유근피 포장이 끝나자 안주인이 파라솔 테이블로 허브차를 내왔다. 그리고 소혜가 주인 부부에 대해 그러했던 것처럼, 인준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인준이 주인 부부의 이웃이 된 것은 2년 전쯤, 근처 계곡 건너편에 버려진 집을 개조해 들어와 검은 개를 데리고 다니며 약초를 캐는 외지인은 호기심과 경계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약초를 구실로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서로가 거의 유일한 이웃에 경계심이 사라졌다고는 해도, 유난히 말수가 적고 낯을 가리는 인준의 신상을 자세히 알기는 어려웠다. 바깥주인이 전해들은 내용은 서울에서 신통치 않은 사업을 정리하고 귀촌했다는 것, 한의사가 되려는 바람을 약초 공부로 대신하고 있다는 것, 짧은 결혼생활이 이혼으로 끝났다는 것 등이었다. 안주인이 찻주전자에서 거름망을 빼내며 말했다.
"약초꾼이라고는 하지만, 말투며 행동거지며 여지없이 서울내기 티가 나고, 나중에 약초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고도 하고, 조카뻘이라며 말 놓고 편히 대해 달라 해도 묘하게 어려운 사람이라, 왠지 공부가 긴 사람 같기도 하고. 어쩌다 보니 우리는 그냥 하 선생, 하 선생, 그렇게 부르게 됐어요. 그쪽에서 우리 바깥양반을 먼저 김 선생님, 김 선생님 하고 불렀으니."


다음날 오후, 나경은 다시 숲으로 갔다. 며칠 새 제법 익숙해진 길을 걸어 예의 계곡에 도착했다. 징검다리처럼 놓인 돌을 딛고 계곡을 건넜다. 그리고 건너편 숲으로 이어지는 경사면을 올랐다. 인준과 검은 개가 사라졌던 부근을 눈대중으로 가늠했다. 간신히 길이라 부를 만한 오솔길이 있었다. 나경은 숲 그늘 속으로 들어서며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지난밤의 꿈, 아버지가 맨발로 긴 복도 같은 곳을 걸어가고 있었다. 흐릿한 표정을 제대로 살필 수 없는 대신 맨발이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복도는 마치 학교의 복도 같았다. 오래전 아버지가 근무했던 남자 중학교의 복도, 가본 적이 없으면서도 나경은 아버지가 걷고 있는 곳이 바로 그 학교의 복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천방지축 짐승처럼 괴팍하게 구는 사춘기 사내아이들이 득실거리는 곳, 학생부 소속의 아버지는 검은 테이프로 감싼 막대기를 들고 다니며 위협적으로 체벌을 가하는 교사라는 걸 나경은 알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어둡고 긴 복도를 맨발로 걸어가는 아버지, 아프도록 발이 시릴 것만 같았다. 지금 나경의 나이였을 그때의 아버지는 그 복도를 벗어날 궁리에 골몰했을 터였다.


나경이 컨설팅 회사를 그만두고 출판사를 선택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그간의 커리어와 맞지 않는 선택에 리스크가 큰 도전이라는 거였다. 그러나 아버지만은 예외였다. 딱히 지지나 조언은 없었다. 그저 "그럴 때가 됐지."라고 짧게 말했을 뿐이다.
나경은 자신의 계획을 스스로 '컨설턴트'했다. 우선 H와 일종의 동업 관계를 맺었다. 컨설팅 의뢰 기업에 대한 교육 업무를 담당하며 나경은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강사들을 만나 왔다. 기존 강연 업계를 전수 조사하다시피 해 유명 강사를 섭외했고, 다양한 루트로 인기 콘텐츠가 될 만한 소재와 인기 강사가 될 만한 사람을 발굴했다. H는 후자의 경우였다.
H는 단연 흥미로운 이력의 소유자였다. 유명 대학 철학과 중퇴, 몇 년간 연극배우와 단편영화 감독으로 활동하다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에서는 마임을, 스페인에서는 민속음악을 공부했다. 귀국 후에는 혼종 장르의 실험극을 전문으로 하는 극단을 만들어 연출가로 일하다, 한 지자체의 제안으로 그 지방 도시가 처음 개최하는 비(非)언어 공연 축제를 총괄 기획했다. 자주 외국을 찾던 H는 한동안 인도에 머물며 요가와 명상에 심취했다. H는 스리랑카에서 국제 구호단체의 일을 돕기도 했는데, 직접 고안한 간단한 정수 장치가 생활환경이 열악한 현지인들에게 뜻밖의 도움을 주게 되었다. 구호단체가 국내 기업에 의뢰해 다량 생산한 정수 장치는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까지 전해졌다. 예의 장치로 발명 특허까지 획득한 H는 조금씩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자신의 극단을 이끌고 해외 공연을 다녔고, NGO 단체와 협력해 다양한 행사를 통한 후원 사업을 지속했다. 비언어 공연 축제는 외국 극단과 관객들도 찾아오는 유명 지방 축제로 자리 잡았다. 그런 한편 사십대 중반의 H는 인도의 명상센터에서 인연을 맺은 현지인 사업가의 딸과 결혼했다. H는 17세 연하의 인도인 아내와 서울과 뭄바이를 오가며 생활했다. 인도의 처가와 함께 인도식 명상센터 체인 사업을 구상 중이기도 했다.
나경이 H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어느 구호단체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던 홍보 동영상을 통해서였다. 동영상 속 H는 자신이 방문했던 스리랑카와 방글라데시 빈민촌의 실상을 소개하며 지원과 기부를 호소했다. 다른 동영상은 인도로 자원봉사를 떠나는 대학생 봉사단을 대상으로 H가 현지의 사정과 자신의 경험담을 오리엔테이션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마이크를 들고 학생들 앞에 선 H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카리스마가 넘쳤다. 풍부한 표현력으로 자신이 체험한 것을 흥미진진하게 전달했고, 진지하면서도 공익적인 의미 부여로 학생들의 마음을 동요시켰다. 26분짜리 동영상에서 남다른 스타성을 간파한 나경은 H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직접 연락을 취했다. 예상대로 H에게 기업 강연의 경험은 없었다. H는 나경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독특한 삶의 이력만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가 상당했다. 배우, 연출가, 공연기획자, 지역축제 조직위원장, 구호단체 활동가, 발명가, 요가 명상 전문가, 거기에 철학과 출신다운 인문학적 소양과 드라마틱한 외국 체류 경험, 호남형의 훤칠한 외모와 인도인 아내의 존재까지. 부각시킬 수 있는 호감 요소는 차고 넘쳤다.
인도 진출을 추진 중인 화장품 회사를 시작으로 나경은 H의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며 적극적으로 기업 강연을 추진했다. 나경이 특정 기업에 어울리는 강연 내용과 형식을 주문하면, H는 열연을 펼치는 배우처럼 탁월한 쇼맨십을 발휘했다. 청중들의 반응도 기대 이상이었다. 과거 컨설팅 작업을 진행했던 기업의 관계자들에게 짧게 편집한 H의 강연 동영상을 홍보물처럼 전송하자 대부분 특강을 의뢰하는 피드백을 보내왔다. 몇 개월 사이 수십 군데 강연이 이루어졌다. 한 일간지에 H의 강연이 화제성 뉴스로 소개되자 다른 기업은 물론 대학, 공기업, 시민단체, 정부 부처에서까지 강연 의뢰가 쇄도했다. 강연료의 상승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경은 H에게도 자신에게도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다.
'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강사들에게 예외 없이 저서 욕심이 있다는 것을 나경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책을 출간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학교수인 강사들은 장황한 전문지식을 대중 눈높이로 쉽게 전달하는 능력이 부족했고, 각 분야의 전문 강사들은 전달력이 좋은 반면 콘텐츠가 빈약한 경우가 많았다. 책을 쓸 정도의 글쓰기 능력을 갖추었냐는 또 별개의 문제였다. 그럼에도 나경은 강사 인맥을 활용해 자기계발서 출간을 생각해 온 터였다. 막연한 계획은 H의 등장으로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가 되었다. H를 선점하고 독점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했고, 경험이 없는 출판업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신중해야 했다. 독립 출판사를 차리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고, 기존 출판사에 출간 제의를 하는 것은 나경의 몫을 담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경은 업무 차 안면이 있던 B출판사의 사장에게 접근했다. 구미가 당기는 수준을 넘어 성공을 확신할 수 있도록 치밀한 사업계획서를 준비했다. B출판사는 제법 오랜 역사를 가진 중견 출판사였다. 전쟁문학의 대표 격인 외국 고전과 뛰어난 번역이 돋보이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전집 판권을 보유해 스테디셀러 덕을 보는 경우였다. 그러나 규모 확장이나 신규 투자에는 인색한 편으로, 임프린트는 그나마 수익이 난다는 아동용 도서 브랜드뿐이었다. 나경은 B출판사 사장에게 자기계발서와 비즈니스 에세이를 전문 출간하는 임프린트 런칭을 제안했다. H의 저서 두 권에 대한 출판 기획안을 공들여 작성해 사업계획서에 포함시켰다. 물론 편집장으로서 그 브랜드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나경이었다. B출판사 창업주의 아들인 사장은 유난한 와인 애호가이자 빈티지 카메라 콜렉터로 유명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부잣집 도련님 특유의 까다롭고 유약한 분위기를 숨기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나경은 차라리 고지식하고 권위적인 꼰대보다는 낫다고 판단했다. 어르고 달래듯 혹은 아닌 척 으름장을 놓듯 나경은 사장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결국 H를 동반한 만남을 통해 일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나경은 컨설팅 회사에 사표를 내고, H의 저서 출간 작업에 몰두했다. H는 물려드는 강연 일정을 정신없이 소화하고 있었고, 동시에 케이블 예능 채널에서 특집으로 기획한 강연 버라이어티쇼 출연을 준비 중이었다. 나경은 H의 강연 동영상과 틈틈이 녹취한 구술 등을 정리해 H의 첫 책을 대필했다. 대필에 대한 대가는 강연, 출간, 방송, 인터뷰, 홍보 등의 활동에 나경이 매니지먼트를 독점하고 발생하는 이익을 분배하는 것이었다. 나경은 H의 활동 반경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H의 캐릭터나 강연 내용, 또 출간될 책의 성격은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것보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 층과 삼사십 대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게 더 적합했기 때문이다.
책의 제목도, 강연 버라이어티쇼의 제목도 '드림메이커'로 결정되었다. 이후 H의 이름 앞에는 항상 드림메이커라는 수식어가 '호'처럼 따라붙었다. 나경은 밤샘을 거듭하며 <드림메이커>의 집필과 편집에 매달렸다. 분초를 다퉈 가며 박사 논문을 쓰던 아버지처럼 열과 성을 다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때까지 지치지 말아야 한다, 프랑스의 마임 배우로부터는 삶의 진정한 기쁨을, 스페인의 집시 가수로부터는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언제나 새로운 선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깨끗한 물을 맘껏 사용할 수 있게 된 스리랑카 소년의 미소를 결코 잊을 수 없다, 깊은 명상에 잠기면 우주의 기운이 몸과 마음 깊이 스며드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나 자신에 집중한 채 세상과 어울려 춤을 추어야 한다, 나의 꿈이 곧 우리의 꿈이 되는 것이야말로 바로 기적이라 할 수 있다…… 나경은 H의 입에서 흘러나온 문장들을 열심히 옮겨 적었다. 마치 자신의 문장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쓰고 또 썼다.


계곡을 건너, 숲길을 걸어, 나경은 인준의 집 앞에 도착했다.
많은 것이 펜션과는 달랐다. 안주인의 말대로 버려진 집을 개조한 것이 분명했다. 낡은 나무 기둥과 황토를 바른 벽, 처마와 들창, 마당은 좁고 비탈은 가팔랐다. 집의 내부가 전혀 들여다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고, 커다란 개집은 비어 있었다. 마당 구석, 녹색 천막을 두른 간이창고 안에는 이런저런 도구들과 손질을 기다리는 약초들이 쌓여 있었다. 창고 옆에 뿌연 흙먼지로 얼룩진 픽업트럭이 주차되어 있었다. 다른 누구의 집일 수 없는 집, 약초꾼이자 은둔자인 인준의 집이었다.
나경은 마당에 놓인 나무 평상에 앉았다. 늑대의 그림자를 닮은 커다란 검은 개가 마당을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나경은 오래전 양재동의 피부과로 인준을 찾아갔던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인준을 만나 무엇을 어쩌겠다는 건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경은 인준을 만나기 위해 이 집을 찾아왔고, 인준을 만나는 것 말고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베일 듯 서늘한 가을바람이 숲을 통과해 나경에게로 불어 왔다.
한참이 지나도록 인준과 검은 개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경은 평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인준의 집 문을 열어 보았다. 문은 잠겨 있었다. 나경은 제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은 종이를 딱지 모양으로 접어 문틈에 끼워 넣었다.
나경은 다시 숲길을 걸어 계곡으로 향했다.


대학교수에게 사용하기에 그다지 적합한 표현은 아니었지만, 나경의 아버지는 승승장구했다. 교수가 되고 5년 정도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느 재벌 기업 산하 경제연구소의 자문위원으로 발탁되었고, 다시 몇 년 뒤에는 사외이사로 선임되었다. 이후 아버지는 어디서나 현격히 '급'이 다른 교수로 대접받았다. 수많은 학회 행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고, 여러 학술재단의 연구 지원금을 수령했다. 언론의 원고 청탁과 인터뷰에 활발히 응하는 것은 물론, 경제 관련 이슈가 있을 때면 티브이 토론 프로그램의 패널로 참석하기도 했다. 명절이나 특정 시즌이면 거실 가득 선물이 담긴 상자들이 택배 집하장처럼 쌓였다. 아버지는 예의 재벌 기업의 돈으로 어머니와 함께 오페라를 관람했고, 사이판으로 골프 여행을 떠났으며, 미국의 대학에서 안식년을 보냈고, 서재의 장식장 하나를 한정판 위스키로 채웠다. 아버지는 그에 대한 답례처럼 재벌 기업의 글로벌 경영 전략이나 미래산업 육성 방안을 긍정적으로 분석한 논문을 다수 발표했고, 2세에서 3세로 이어지는 오너 승계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글을 경제 전문지에 기고했다. 대학의 경영대학장이 된 후에는 장관 후보로 하마평에까지 오르내렸다.
한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예의 재벌 기업이 '특별 관리'한 사회 기득권 인사들의 명단과 관련 자료를 입수해 폭로성 보도를 했을 때만 해도, 나경의 아버지가 그토록 큰 타격을 입을 거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재벌 기업이 정치계, 언론계, 학계를 망라해 '자기네 사람'을 관리해 온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러한 행태는 총수 일가의 불법 승계를 합법 승계로 위장해 관철시키려는 총력전의 일안이기도 했다. 이어진 후속 보도를 통해 관리 대상인 몇몇 인사들과 기업의 핵심 요직을 맡고 있는 임원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가 공개되었다. 나경의 아버지는 그 대표 사례가 되었다. 아버지는 임원에게 극존칭을 사용해 국제학술대회 참석 차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항공기 퍼스트클래스와 호텔 VIP룸을 지원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번번이 감탄하게 되는 세심한 보살핌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성원에 보답하고자 더욱 정진하겠습니다'라는 구절은 인터넷에서 숱한 조롱의 패러디를 양산시켰다. 결정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제자에 대한 청탁 문자였다. 아버지는 자신이 지도교수를 맡고 있는 대학원 제자가 재벌 기업 주체의 연구 논문 공모에서 상위권에 입상할 수 있도록 예의 임원에게 간곡히 요청했다. '아들처럼 생각하며 아끼는 제자이자, OO그룹을 위해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미래의 인재입니다. 부디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길 앙망하오며……' '앙망체의 탄생', '눈물겨운 제자 사랑'이라 풍자의 대상이 된 문자메시지는 거의 모든 매체의 뉴스에서 다루어졌고, 같은 공모에 응모 경험이 있는 전국의 대학원생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일부 학회에서는 아버지의 회원 제명을 결정했고, 때마침 아버지와 척을 졌던 같은 학과의 퇴임 교수와 몇몇 제자들이 과거 아버지의 부정적 행태를 폭로하는 글을 SNS에 올리자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아버지는 탐사보도 프로그램과 퇴임 교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지만, 대학 측의 요구로 정년을 3년 앞두고 굴욕적인 퇴임을 선택해야만 했다. 아버지가 첫 번째 뇌경색 증세로 응급실을 찾은 것은 퇴임 후 불과 열흘 만이었다.


<드림메이커>는 출간 6개월 만에 B출판사 창립 이래 최고의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케이블 채널의 강연 버라이어티쇼가 방송되는 동안 실시간 검색어 1위를 기록한 H의 이름 아래로, '드림메이커 열풍, 스펙지상주의에 지친 청춘을 위로하다', '드림메이커 H, 자유로운 영혼으로 시대에 영감을 불어넣다' 등의 기사가 링크되었다. 나경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액수의 성과급을 받았다. 컨설팅 회사에 근무했던 시절 관계를 맺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축하와 안부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강사들은 너도나도 나경을 통해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 H는 두 개의 티브이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게 되었고, 인도의 처가와 함께 명상센터 사업을 본격화했다. 나경은 H의 두 번째 책의 출간 준비를 서둘렀다.
아버지가 해임이나 다름없는 퇴임을 선택한 무렵, 공교롭게도 H의 몰락 역시 시작되었다. 한 여성 잡지가 20여 년 전 H와 사실혼 관계였던 여성의 인터뷰를 단독으로 보도한 것이었다. 과거 H가 연출한 단편영화에도 출연한 전직 연극배우인 그녀는 인터뷰에서 H가 유럽으로 가기 전 2년간 동거했으며, 결혼을 전제로 양가 부모님의 허락을 받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면서도 H는 유럽으로 떠났고, 그녀 혼자 아들을 출산, H는 지금까지도 아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현재 친자확인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도 철저히 외면했던 사람이 최근 젊은이들의 멘토로 추앙받으며 드림메이커를 자처하는 모습이 너무나 파렴치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추문은 H가 대표로 있는 극단에서도 터져 나왔다. 과거 그 극단 소속이었던 배우와 스태프 몇몇이 H의 폭언과 성희롱 등 독재적 횡포를 폭로하는 글을 SNS에 실명으로 올렸다. H는 자신이 요란한 유명세를 치른다며 안일하게 대응했다. 그러나 NGO 단체와의 협약을 어기고 기업 후원금을 유용하고 착복한 것은 검찰의 수사를 피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한여름 폭염 속에 치른 장례, 그럴 리가 없음에도 나경의 머릿속에는 아버지의 시체가 부패해 곤죽처럼 물크러지는 모습이 집요하게 그려졌다. 그럴 리가 없음에도 지독한 악취가 풍겨오는 듯했다. '아들처럼 생각하며 아끼는 제자'는 장례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B출판사 사무실로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파렴치 사기꾼의 책을 내준 출판사 역시 파렴치 사기꾼과 다를 바 없다, 당장 출판사 문을 닫고 책을 몽땅 불살라 버려라 등의 악담이 이어졌다. 부잣집 도련님 특유의 까다롭고 유약한 분위기를 숨기지 못하는 사장은 나경에게 철저하게 책임을 물었고, 집요하게 투자금을 회수했다.
나경은 길을 걷다 낯선 감각에 압도되어 번번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제 코나 입이 바닥에 툭 떨어지는 것 같은 생생한 착각, 그럴 리가 없음에도 눈과 귀가 제자리에 붙어 있는지 얼굴을 더듬거리며 황망하게 바닥을 살피는 일이 반복되었다. 꿈인지 잠인지 모를 상태로 어두운 방에 누워 있을 때면 갑자기 흙이나 모래가 얼굴 위로 흩뿌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내 마취주사의 여운 같은 졸음에 잠겨 있어야만, 오물이 가득한 늪으로 까마득히 가라앉은 듯한 공포로부터 다소나마 무뎌질 수 있었다.


밤 10시가 가까워 전화벨이 울렸다. 한 시간 전쯤 나경은 이틀 후 자신을 데리러 온다는 소혜와 짧은 통화를 마친 참이었다. 나경은 휴대폰 화면에 낯선 번호가 뜨길 바랐다. 문 틈 사이에 끼워 둔 쪽지를 인준이 펼쳐 보았길 바랐다. 전화를 걸어 온 것은 펜션의 안주인이었다.
"늦은 시간에 미안해요. 글쎄 우리 딸애가, 갑자기 진통이 시작돼서, 방금 병원에 도착해 분만실로 들어갔대요. 예정일이 아직 3주나 남았는데 어쩐 일인지, 아무래도 우리가 지금 가봐야 할 것 같아서……."
나경은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와 안채로 향했다. 손님을 혼자 남겨 두고 펜션을 비우게 된 게 처음이라며 안주인은 거듭 미안하다 말했다. 자동차 뒷좌석에 급하게 챙긴 짐 가방을 실은 바깥주인이 나경에게 다가와 반으로 접은 쪽지를 내밀었다.
"별일 없겠지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거나, 급하게 차를 써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여기 번호로 연락해서, 왜 그 엊그제 본 하 선생 기억하죠? 내가 방금 전화해서 잘 말해 두었으니, 도와줄 거예요."
주인 부부가 첫아이를 출산하는 딸에게로 출발하고 나자, 나경은 온전히 혼자가 되었다. 숲그늘 산방, 어둠 속을 서성이며 나경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아니,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 무슨 일이 왜 하필 그 일인지를 궁금해 해야만 했다.
나경은 오른쪽 점퍼주머니 속 반으로 접힌 쪽지를 만지작거렸다. 순간 왼쪽 점퍼주머니 속에서 문자메시지 수신음이 들렸다. 인준이었다. 30분 후 나경을 만나러 오겠다는 내용이었다.
나경은 별채 쪽으로 향했다. 똑똑 문을 두드리듯, 딱딱 손가락을 튕기듯, 땅땅 건반을 내리치듯, 모닥불을 피우고 싶어졌다. 나경은 지금껏 한 번도 모닥불을 피워 본 적이 없었다. 지금껏 한 번도 모닥불을 피우고 싶은 마음이 들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경은 장작을 쌓고 불쏘시개에 불을 붙이고 매캐한 연기를 맡으며 입 바람을 불어, 모닥불을 피웠다. 그리고 인준을 기다렸다.
어둠 속에서 작고 둥근 불빛이 흔들리며 다가왔다. 인준은 나경이 오갔던 길, 계곡을 건너 숲길을 걸어 헤드랜턴을 쓰고 검은 개와 함께 나경 앞에 도착했다.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어둠 그 자체인 것 같은 커다란 검은 개가 조용히 나경에게로 다가왔다. 나경과 인준은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캠핑용 접이식 의자에 마주 앉았다. 밤의 숲 속으로부터 차갑고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작가소개 / 이신조

74년 서울 출생. 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문학동네작가상' 수상. 단편집 『나의 검정그물스타킹』, 『새로운 천사』, 『감각의 시절』, 장편소설 『기대어 앉은 오후』, 『가상도시백서』, 『29세 라운지』, 『우선권은 밤에게』, 『크리에이터』 등.


《문장웹진 2018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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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원경

원경 성혜령 건강검진을 12월 마지막 주까지 미루는 사람이 자기 말고도 이렇게 많으리라고 신오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기실의 긴 좌석 중간중간 빈자리가 있긴 했지만, 신오는 한구석에 서 있기로 했다. 초음파 검사실 앞 복도는 자기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헐렁한 가운에 느슨한 고무줄 바지를 입고 핸드폰을 보며 기다림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신오는 이들 중 내년에는 따뜻한 휴양지에서 연말을 보낼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했다. 혹은, 오늘 치명적인 암이나 뇌동맥류 같은 것들을 발견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인생을 살게 될 사람들은? 그런 일들은 언제나 일어나고 있었다. 직장 생활을 10년 정도 하니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전 직장 동료는 출근길에 쓰러진 뒤 안면마비를 얻었다. 한쪽 입꼬리가 위로 당겨 올라갔는데 그는 멀쩡한 다른 쪽 입꼬리도 끌어올려 웃는 얼굴을 만들곤 했다. 병가에서 돌아온 뒤 매일 웃는 얼굴로 제일 먼저 출근하는 동료를 보면서 신오는 이직을 결심했다. 신오는 모든 일이 가능하지만 대개 나쁜 일들이 더 자주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되도록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꾸준히 하려고 했다. 불행은 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오히려 쉽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도 있었다. 복부 초음파를 보던 의사가 “어랏?” 하고 실없는 소리를 내며 배꼽 부근을 세게 눌렀을 때도 신오는 방귀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다. 의사가 차가운 젤을 다시 묻히고 초음파 단말기를 문지르다가 복막에 종양이 보인다는 말을 했을 때는, 그래서 요새 변비가 심했나, 라는 생각이 먼저 났다. 대형 병원에 가서 생검과 CT, MRI 검사를 마치고 소화기내과 교수의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도 신오는 회사 메신저를 보고 있었다. 몇십 억 단위 공공사업의 수주가 걸린 입찰 제안서의 마무리를 앞둔 시점이었다. 병원 검사로 연차를 낸다고 했을 때 팀원들은 모두 별일 없을 거라고, 하루 푹 쉬고 오라고 말했지만 메시지를 보내면서 신오를 계속 태그했다. 신오는 그날 마지막으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젊고 피곤해 보였다. 예약을 가장 빨리할 수 있었던 의사였으니 어쩔 수 없지, 신오는 생각했다. 의사는 신오가 자리에 앉자 간단한 인사도 없이 모니터 화면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마우스 커서로 신오는 잘 알아볼 수 없는 흐릿한 음영을 짚었다. 여기예요, 여기. 의사는 약간의 승리감마저 느껴지는 말투로 말했다. 복막의 종양은 전이 암이고, 여기가 원발 암이라고. “이게 숨어 있어서 찾기 어려웠거든요.” 의사는 다시 한번 마우스 커서를 움직였다. 췌장하고 담도 사이인데 위치나 크기가 좋지 않다고. 오늘이 금요일이니 당장 다음 주부터 항암치료로 크기를 줄여 보고 수술을 잡아 보자고. 신오의 핸드폰이 또 진동했다. 신오는 치료를 이주만 미뤄도 되냐고 물었다. 프로젝트가 있어서요. 이주 후에 마감이라. 의사는 처음으로 웃어 보

  • 관리자
  • 2024-05-01
야생 식물원

야생 식물원 하가람 식물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철골로 둘러싸인 거대한 유리 온실에는 열대와 지중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이국적인 식물이 자란다고 했다. 한 달 전 나는 식물원 근처에 있는 여러 호텔을 찾아 은규에게 링크를 보냈다. 보통 때의 그라면 어디든 좋다고 했을 것이다. 레스토랑도, 카페도, 동네의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조차도 모조리 내 선택에 맡기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날 은규는 이미 예약한 곳이 있다고 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은규가 보내 준 링크를 열어 보았다. 넓은 통유리 창 너머로 식물원과 공원이 내다보이는 스위트룸이었다. 나는 조금 들뜬 채 답장했다. — 우리가 만난 지 곧 1년이래. 믿어져? 1년이라는 시간은 내게 유별났고 은규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것이었다. 그가 전에 사귄 여자친구는 단 두 명인데 각각 4년, 5년을 만났다고 했다. 매번 석 달도 채 넘기지 못하는 나와는 달랐다. 이따금 은규에게 이전 연인들에 대해 물었다. 그들이 어떤 성향의 사람이었고 어떤 외양을 가졌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응응, 하며 대꾸해 주던 은규는 내가 그녀들의 음악 취향이나 살던 동네처럼 구체적인 정보까지 캐묻자 태도를 바꾸었다. 기억 안 나. 그는 말했다. 다 옛날이야기라고. 그 후로는 이전에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그녀들을 생각했다. 눈, 손톱, 말투, 그리고 신발. 나와 닮았을지, 닮았다면 얼마나 닮았고 다르다면 무엇이 다를지도. 상상을 이어 가다 보면 늘 한 가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은규는 한 번도 애인과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여자와 밤을 보내는 일이 오늘 그에게는 처음이었다. 서른을 넘긴 남성에게서 보기 드문 경우였지만 그가 처음인 게 좋았다. 그 점이 무엇보다도 나와 그녀들을 구분 지어 주는 것만 같았다. 차창에 머리를 기대었다. 햇볕에 데워진 창문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인터넷으로 보았던 화려한 꽃과 기다란 나무들을 떠올렸다. 노랗고 푸르고 분홍빛이 맴도는 공간을. 여름 휴가철이었고 도로는 차들로 빽빽했다. 졸음 껌을 씹는 은규를 보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운전하고 싶었는데.” “다음에. 너 힘들어.” 은규가 말했지만 나는 안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그는 내게 차를 맡기지 않을 것이다. “보면 놀랄걸? 너무 잘해서?” 나는 허리를 세운 채 한 손으로 반원을 그려 보았다. 휙휙. 입으로 소리 내며 운전대를 쥔 그를 따라 했다. 그가 웃었다. 머릿속으로 주행하기. 그것은 나만의 놀이였다. 캠퍼스 변두리에 있는 H관 1층, 5평 남짓한 주차관리실에서 상상력을 충족시켜 줄 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먼지 쌓인 커피믹스와 낡은 소파, 책상 위에 시간별로 놓여 있는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 주차권들. 지겨운 서류, 서류, 서류. 드물게 실장이 자리를 지키는 날이 아니면 대체로 혼자 그곳에서 일했다. 사람들이 찾아와 주차권을 사거나 정기 등록을 마친 후 돌아가면 나는 모니터에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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