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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uné

  • 작성일 2018-11-01
  • 조회수 2,069

[단편소설]



Cafuné



구효서




*

당신을 본 순간 저는 욕조가 갖고 싶어졌습니다.
욕조라니요. 처음 본 사람에게서 욕조 같은 것을 떠올리다니, 기괴하지 않나요. 그날 고마신사의 어떤 부분이 욕조를 연상케 했을까요. 당신의 어깨 뒤로 신사의 처마 끝이 보였을 거예요. 그랬더라도, 그런 걸 떠올렸대도 갖고 싶다는 데까지 생각이 가 닿지는 않을 텐데, 그랬습니다. 당신을 본 순간 저는 욕조가 갖고 싶어졌어요.
봄이었고 이루마 시 경계의 고마신사에는 벚꽃이 피었고 버드나무 가지가 연록으로 물들었습니다. 그곳에 당신이 있었지요. 행사의 진행을 맡을 임원 두 사람과 함께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기억할까요. 그날 당신이 검은 진 바지에 검은 카디건을 입었던 것을요. 그래서였던가 무척 헌칠해 보였습니다. 차이나칼라 안쪽의 흰 반 폴라 때문에 어딘가 신부님처럼도 보였는데, 그래서 신사의 풍경과는 아무래도 안 어울릴 법했는데, 절묘하게도 신사의 풍경과 당신의 차림이 서로를 오롯하게 반영하던걸요. 그런데 욕조라니요. 제 상상이 예의 없고 불온하다고 여겼습니다만 냉큼 사라지지도 않았습니다.
어째서 당신과 일행이 저를 고마신사에서 기다렸는지 곧 알아차렸어요. 고마신사는 고려신사였으니까요. 高와 麗 사이에 작은 글씨로 句를 새겨 넣은 나무 현판도 하나 있었지요. 조선 귀족이 참배를 왔다가 고려와 고구려를 구분하라고 적어 넣은 것인데 지금껏 여전히 고려신사라고 쓰고 고마신사로 읽는다고 당신은 당신 특유의 굵고 낮은 목소리로 말해 주었습니다. 황도 복숭아색 아코디언 스커트를 입고 바다를 건너온 고려인을 당신과 일행은 고려신사에서 맞이하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저는 행사의 주인공이 아니었을뿐더러 국가나 민족의 대표성을 띠는 위치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건 조금도 없었죠. 그럴 자리도 아니었고요. 저는 당신의 책을 번역한 일개 번역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날의 주인공은 당신이었어요. 번역가가 원작자의 신간 기념행사에 초대를 받은 일도 매우 드문 일입니다만 고구려신사에서까지 맞아 주다니요. 이메일로 당신의 초대를 받았을 때도 그랬듯 신사에서 행사장인 아미고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저는 몸 둘 바를 몰라 이루마의 고운 봄 경치가 어지럽기만 했습니다. 그 지경이었는데 욕조라니요.
사실 당신을 보는 건 그날이 처음은 아니었죠. 출판사로부터 당신의 작품 번역을 의뢰받던 날 책날개에서 당신의 모습을 보았으니까요. 당신의 책을 번역하고 후기를 쓰느라, 그리고 보도자료의 일부를 서포팅하느라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당신의 사진을 몇 개 더 보았습니다. 작가라기보다는, 왠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 미용업계의 전문인 같다는 인상이었어요. 웨이브 진 윤기 나는 머리, 날 선 셔츠 칼라, 흰 피부, 가지런한 어깨, 친절한 말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입매, 언제나 한 발 뒤로 물러나는 겸손한 사람의 눈빛 때문이었을까요. 글쎄요, 미용업계의 전문인 남성은 그럴까요.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제가 상상하는 작가의 모습과는 멀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신사에서 당신을 보았을 때 제가 문득 알게 된 사실이 있어요. 그동안 제가 봐온 당신은 하나같이 가슴 위쪽 ― 바스트 샷이라고 하던가요 ― 이었다는 거죠. 그러니 당신을 그날 처음 보는 거였다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겠지요. 저렇게 키가 큰 사람이었구나. 웬만큼 깊은 물에 빠져도 끄떡없겠어. 그때 제 가르마를 스친 느낌이라는 것이 고작 그 모양이었습니다. 저란 사람이 그런 깜냥이었으니 욕조가 갖고 싶어졌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할 것 없지 않을까. 아닙니다. 둘 다 이상한 거죠. 물에 빠져도 끄떡없겠다는 생각이나 욕조가 갖고 싶다는 생각이나. 이상한 것이 두 개 겹치면 이상해지지 않을 거라는 짐작이 더 이상하지요.
신사에서 행사장인 '문화창조 아틀리에 아미고'로 가는 동안 저는 당신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승용차는 미끄러지듯 나아갔어요. 당신과 저 사이에 40센티미터쯤의 간격이 있었지만 당신의 길고 가느다란 몸이 어쩐지 제 옆구리와 팔뚝에 우악스럽게 와 닿는 듯했고요. 어떻게 아미고에 도착했었는지, 거리의 풍경들은 별로 기억에 남아 있지 않네요.


*

찬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 멈추었다.
열어 놓은 그녀의 작은 창 안으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바람처럼 흘러들었다.
이렇게 긴 메일은 처음이에요.
멈추었던 손가락을 가만 움직여 찬은 한 문장을 더 이었다. 손놀림이 조금 전보다 훨씬 느리고 조심스러웠다. 자동차 바퀴가 멈추어 서면서 지면의 모래 따위를 살짝 으깨는 소리가 들렸다. 찬의 손놀림이 살금살금, 은밀해졌다.
흰 차는 엔진 소리가 큽니다.
라고 썼다가 황급히 지우고,
어쩌면 마지막 메일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라고 고쳐 썼다.
당신에게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고요.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니. 이런 생각은 처음이군요. 당신에게 메일을 쓸 때는 인터넷의 제 메일 계정을 이용하였습니다만, 이 편지는 워드프로세서 창에다 따로 적습니다. 이러기도 처음입니다. 이토록 일본어를 길게 쓰는 것도요.
메일 계정에는 세키야 하지메, 당신의 이름이 주소록에 등록되어 있으나 이곳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에는 주소록도 텍스트를 발신하는 장치도 없어요. 그래서 어쩐지 허공에다 쓰는 느낌입니다. 다 쓴 뒤 복사하여 메일 계정으로 옮기겠지요. 메일을 쓰는 데 이 방법은 처음입니다. 길고 기니까. 세키야 하지메. 당신의 이름에도 처음이라는 뜻이 담겨 있군요.
찬의 손가락이 다시 키보드 위에 멈추었다.
또 다른 자동차 엔진 소리가 창 안으로 흘러들었다. 자동차는 곧 속도를 줄이고, 멈추고, 시동을 껐다. 바퀴가 멈출 때 바퀴와 지면 사이에서 잘 볶은 참깨 으깨는 소리가 났다. 찬은 마른침을 삼켰다.
정말 이토록 길게 일본어를 쓰게 되다니요.
찬은 멈추었던 손을 천천히 놀려 문장을 더했다.
저는 지금껏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해 왔을 뿐이에요. 제가 읽은 것은 일본어였지만 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국어였지요.
찬은 어느새 창가에 서 있었다. 컴퓨터 모니터에는 커서 혼자 껌뻑였다. 창밖 2미터 앞은 가슴 높이의 붉은 벽돌 담장이었다. 담장 위엔 철제 난간이, 난간에는 정말 복숭아만큼이나 큰 황도 복숭아 빛깔의 넝쿨 겹장미가 여러 송이 피어 있었다. 장미 넝쿨 사이로 주차장이 보였다.
"와봐, 와봐, 와봐."
마희가 창가로 다가오며 속삭였다. 찬이 세 들어 사는 장미집의 여주인이었다. 십일 년 전 장미집에 세 들었을 때 찬의 나이는 스물다섯이었다. 마희는 벌써 찬이 서 있는 창의 방범창살을 쥐고 있었다. 밖에 선 채 안의 찬에게 물었다.
"왔지? 왔지?"
마희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두 대의 차량이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소리로 이미 알아차렸으면서도 마희는 찬에게 물었다.
"흰 차도 그 자리에, 검은 차도 그 자리에요."
찬이 말했다.
"늘 서는 자리?"
"네. 늘 서는 자리."
마희는 방범창살을 애타게 어루만졌다. 그녀는 무엇이든 애타게 어루만졌다. 고개를 갸웃 기울여 자신의 손등 위에다 한쪽 이마를 댔다. 안구 전체가 청자기 빛깔이었으나 고개를 기울이고 창살을 어루만질 때는 눈빛이 한껏 아스라해졌다.
"검은 차에서 여자가 내렸어?"
"내렸어요."
"흰 차의 문이 열려?"
"열렸어요."
"여자가······."
"흰 차 안으로 들어가요."
"그리고는······."
"출발해요. 흰 차가."
"알아. 흰 차는 엔진 소리가 크니까."
"흰 차는 엔진 소리가 커요."
언제나 똑같이 반복되는 대화였으나 그럴 때마다 마희는 지치지도 않고 애틋해졌다.
흰 차와 검은 차를 발견한 것은 앞을 보지 못하는 마희였다. 장미집 뒤는 공영주차장이었다. 찬의 방에서 빤히 내다보였다. 그곳에 흰 차가 들어오면 얼마 안 있어 검은 차가 들어왔다. 검은 차에서 내린 여자가 흰 차의 문을 열고 타면 흰 차는 곧 큰 엔진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흰 차는 자정이 임박한 즈음에 돌아오곤 했다. 그러면 찬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게 되었다. 키보드 위의 손이 저절로 멈추었다. 흰 차에서 내린 여자가 검은 차에 올랐다. 두 대의 승용차는 곧 나란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흰 차와 검은 차의 이동 패턴을 마희가 소리로 읽어낸 거였다. 차가 멈출 때 참깨 찧는 소리가 나거든. 마희가 말했다. 차량의 색깔이 희고 검다는 것은 나중에 찬이 말해 주었으나 수상한 두 차량의 움직임을 처음 발견한 것은 마희였다.
찬의 창문에서 공영주차장까지는 가깝지 않은 거리였다. 그런데도 찬의 귀에 참깨 찧는 소리가 들렸다. 마희가 하는 말을 듣고, 애태우는 마희와 함께 흰 차와 검은 차를 보다 보니 찬도 어느새 마희의 귀를 갖게 된 거였다.
"욕조는 어떻게 됐어?"
마희가 물었다.
"예······ 아직."
찬은 돌아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

당신이 한국에 왔던 날들을 기억합니다. 당신이 사는 이루마 시에 제가 갔던 뒤로, 그러니까 당신을 처음 만난 뒤로, 당신은 지금까지 세 번 한국을 다녀갔지요. 처음은 파주 북소리 축제에 초청을 받았고 나머지 두 번은 전적으로 저를 보러 서울에 왔었습니다.
북소리 축제 때는 당신에게 일정과 일행이 있었지요. 제 차로 당신의 일행과 일산의 호수공원엘 잠깐 갔었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일행은 일정상 긴 시간을 낼 수 없었잖아요. 파주 출판단지와 가까운 호수공원에서 겨우 짧고 아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행이 여럿이다 보니 당신과의 단독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요. 일본 자전거 바퀴와 한국 자전거 바퀴의 차이 ― 호수공원을 도는 자전거들이 있었으니까요 ― 를 말하거나 부들 이삭을 바라보며 호또도그가 탔어! 라고 누군가 공연히 소리를 지르거나 그랬을 뿐입니다. 저는 그런 말들이 하나도 재미없었어요. 당신과 단둘이 나눈 대화였더라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지요. 아, 이런 얘기 언젠가 당신께 메일로 보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해가 가기 전 겨울 다시 한국에 왔고 혼자였습니다. 이틀 동안 저만 만났어요. 제 맘을 알아차린 거라고 저는 생각했지요. 제가 태어나 자란 여주에도 가 주었고, 돌아오는 길에 올림픽 공원의 파리크라상에 들러 올리브 부메랑을 먹었죠. 일본에서는 먹어 본 적 없다며 당신이 어린아이처럼 신기해했었기에 그때를 떠올리며 적는 것입니다.
미니어처 부메랑처럼 생긴 올리브 빵을 잔뜩 샀고 당신의 숙소 근처 하우스 맥줏집에 들어가 몰래몰래 그것을 안주로 많이 마셨습니다.
제가 우겨 당신의 숙소까지 둘이 팔짱을 끼고 걸었지요. 매서운 밤 추위와 빙판길이라는 핑계, 그리고 충분한 취기에 힘입은 거였지만 당신과 저는 느닷없는 팔씨름 선수였어요. 피차의 악력이 그토록 악착같았으니까요. 고마신사에서 아미고로 가던 차 안에서의 환각이 되살아났습니다. 당신의 길고 가느다란 몸이 제 옆구리와 팔뚝에 우악스럽게 와 닿는 듯했던 느낌 말예요.
숙소에 당신을 들여보내 놓고도 저는 한동안 얼얼하여 팔을 펴지 못했죠. 이렇게 쉽게 풀어질 거였다면 어째서 그토록 필사적이었을까. 당신의 숙소 창문을 한참이나 올려다보다가 맥줏집 주차장에 차를 버려 둔 채 장미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저는 이것이구나! 혼자 중얼거렸어요. 무엇이 이것이라는 건지 알지도 못했으면서, 당신의 손과 팔이 내 겨드랑이에 남겨 놓은 얼얼함에 무작정 사무치며 이것이구나, 이것이구나! 중얼거렸죠.
어째서 당신은 혼자서 저를 보러 한국에 왔었던 것일까요. 답이 빤할 것 같은 질문을 당신이 돌아간 뒤 저는 메일로 보냈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알고 싶었던 걸까요? 아닙니다. 저는 제 맘을 알고 싶었던 거예요. 제 맘을 알아차려서 당신이 한국에 와준 거였다면, 당연히 당신은 제 맘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물었던 것입니다. 저는 궁금했거든요. 당신을 떠올리고 만나고 싶어 하고 만지고 싶어 하는 제가요. 일반적인 사랑의 징후라면 궁금할 게 뭐가 있었을까요. 하지만 제가 당신을 떠올릴 때, 메일을 보낼 때, 당신과 함께 있을 때, 잠깐이었지만 당신과 죽어라 팔짱을 끼고 걸었을 때마저도, 당신을 사랑한다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어째서 당신은 혼자서 저를 보러 한국에 왔었던 것일까. 당신에게서 온 대답은 이랬습니다. 왠지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어쩌다 알 수 없는 충동에 이끌리고 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의 대답은, 요약할 것도 없이, 당신도 당신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죠. 그런 당신에게 제가 저도 모르는 제 마음을 물었던 거예요. 우리는 똑같이, 자신들의 혼미한 마음을 서로에게 고백하고 만 셈이었습니다.
알 수 없는 충동. 그것에 대해 말하면서 당신은 당신이 겪고 있거나 겪었던 두 가지 일을 예로 들었지요. 하나는 당신이 스스로를 고려인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였어요. 그럴 근거는 없습니다. 물론 당신의 설명에 의하면 당신이 살고 있는 이루마는 서기 716년에 1799명의 고구려 유민에 의해 건설되었던 고마군과 대부분 일치하는 지역이지요. 2000명도 아니고 1800명도 아닌 1799명이라는 구체적인 기록이 있으며, 고구려인으로만 한 개의 군을 형성할 수 있을 정도였다니 그 지역에서 오래도록 고구려인의 혈통이 보존되었겠다는 저간의 생각에는 충분한 개연성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나 자신이 고려인이라는 당신의 짐작과 확신은 그런 개연성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당신은 저에게 썼죠. 오히려 당신은 오컬트적인 충동에 휘둘리며 어쩌다 멀고 먼 과거의 시간으로 판타지 드라마처럼 도약하고, 고구려 난민의 삶으로 사정없이 곤두박질치며, 열 개의 손가락 끝과 열 개의 발가락 끝으로 그들 삶의 뜨거움과 차가움을 동시에 딛게 된다고 했습니다. 저에게는 잘 상상도 이해도 되지 않는 꿈 이야기였어요. 명료하게 말할 줄 아는 당신이 그 얘기에서만큼은 허황된 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냈거든요. 당신도 당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소용돌이치는 거북한 판타지일 뿐이라고 말했고요. 그러나 개연성을 초월한 거북한 판타지이기 때문에 당신의 확신은 오히려 더 확고해지더라고 했습니다. 어떤 느낌일지 그건 저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때도 당신은 덧붙였었지요. 그런 게 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당신은 충동의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었는데, 바로 당신의 캐나다 여인이었습니다.


*

"어떻게 된 걸까?"
마희가 물었다. 흰 차와 검은 차의 움직임은 일 년 가까이 변함없이 지속되던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흰 차가 멈추었다. 오래 멈추었다. 차의 색깔이 달라 보일 만큼.
어쩌다 검은 차가 왔다. 차에서 내린 여자는 흰 차로 다가가 흰 차의 텅 빈 안쪽을 기웃거리거나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한참을 그러다 돌아갔다.
잊을 만하면 다시 검은 차가 나타났다. 바퀴가 지면에 닿는 소리가 들리면 마희가 어느새 찬의 창밖에 나타났다.
"정말 어떻게 된 거지?"
마희는 애를 태웠다. 검은 차에서 내려 흰 차의 내부를 기웃거리는 여자의 표정은 멀어서 읽히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도 안타까워하는 마희 때문에 여자의 애타는 표정이 찬의 눈에도 빤히 보이는 것 같았다.
마희는 자신이 사랑을 잃은 것처럼 발을 동동 굴렀다. 예순여덟 살 마희의 꿈은 죽기 전에 미친 사랑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그녀의 어두운 방에서 혼자 다짐하는 소리를 몇 번이고 들었거니와, 반드시 이루고 말 거라고 그녀는 찬 앞에서도 으르렁거렸다. 아직 오지도 않은 사랑을 잃기라도 한 듯 마희는 검은 차 소리가 들리면 푹푹 한숨을 쉬었다. 그럴 때마다 찬은 서른여섯 자신의 나이가 저도 모르게 헤아려지는 게 싫었다. 싫어한다는 걸 나는 알았다.
마희는 아버지에게서 장미집을 물려받는 데 성공한 뒤로 무엇에든 큰 자신감을 가졌다. 물려받았다기보다는 쟁취한 거였다. 마희의 이름은 원래 나희였는데 첫째인 가희와 셋째인 다희, 그리고 막내인 라희보다 둘째인 자신의 이름이 제일 후지다고 아버지를 원망했다. 나희가 뭐야, 나희가. 그러니 장미집을 달라고 억지를 부렸다. 그래도 마희보다는 낫지 않느냐며 아버지와 자매들은 없는 이름을 갖고 둘러댔다. 그러자 차라리 마희 하겠다며 나희는 개명 약식 재판을 거쳐 정말 마희가 되었다. 마희는 장미집을 차지하기 위해 당당히 마귀나 마녀처럼 굴면서 자매들을 밀치고 아버지를 닦달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가족의 전 재산인 3층짜리 아름다운 장미집은 앞을 못 보는 마희의 차지가 될 거라고 거듭 거듭 다짐을 주었어도 마희는 마녀다운 전투력을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장미집을 차지하기 위해 연로한 아버지를 끝까지 장미집에서 모신 것도 마희 혼자였다. 그렇잖아도 다른 자매들은 모두 결혼하여 출가한 뒤였다. 아버지가 구십이 넘어 세상을 떠났을 때 마희는 예순세 살이었다. 그때부터 마희는 대대적으로 집수리를 하고 모든 방범창을 가우디 꽃덩굴 디자인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찬도 우아한 꽃덩굴 방범창을 통해 황도 빛깔의 겹장미들과 주차장에 멈춘 흰 차를 바라보게 된 것이었다.
단장을 끝낸 장미집을 마희는 너무도 사랑하여 가끔씩 건물 틈새에 제 몸을 일부러 끼워 넣고는 혼자 빠져나오지 못해 신음을 흘렸다. 찬과 장미집의 세입자들은 신음소리를 좇아 마희를 틈바구니에서 끄집어내곤 했는데 마희는 또 어느새 새로운 틈을 발견하고 틀어박혔다. 온몸으로 건물을 가쁘게 느끼려는 그녀의 괴벽이었다. 건물 틈서리에 박혀 흘리는 늙은 여자의 신음은 누가 들어도 민망했다. 걸핏하면 틈새에 박히던 마희에게 인생의 새 목표가 생긴 것은 이태 전이었다. 죽기 전에 미친 사랑 해보고야 말겠다는 것.
"에휴, 그냥 돌아가나 보다."
마희가 말했다.
"돌아가요. 검은 차······."
찬이 말했다.
"정말 어째야 쓰까. 어딜 갔으까? 응?"
"그러게요. 흰 차 주인은 왜 안 오는 걸까요?"
"벌써 몇 주째냐구."
"그러게요."
"근데 찬, 내 생애 마지막 소원이 뭔지 알지?"
"미친 사랑."
"구체적으로."
"뭔데요?"
"정사야."
"섹스?"
"꼴랑 섹스라니."
"그러면요?"
"사랑하다 죽는 거."
"아."


*

당신의 캐나다 여인도 당신과 그런 사랑을 원했을지도 모르지요. 사랑하다 죽는 것. 그런데 저는 당신의 소설을 번역하면서 캐나다 여인에 대한 당신의 감정은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번역을 끝내고도 제대로 알 수 없었으니까요. 번역가가 원작자의 의도를 이토록 알아차리지 못해도 되는 건가, 얼마간 울적했지요. 대신 당신의 캐나다 여인이 당신을 향해 품었던 사랑의 빛깔은, 제가 여자라서 그랬을까요, 나름 이해하고 느낄 수 있었어요.
그날, 당신이 저를 초청했고 당신이 이루마시의 아미고에서 독자들을 만났을 때, 어느 여성 독자 한 분이 당신한테 물었었지요. 사랑 이야기고요오, 말하자면 불륜인데요오. 그러다 질문자가 갑자기 웃었어요. 참지 않고 웃었고 웃음을 다 그치지 못하고 질문을 이었습니다. 그런데 섹스가 없어요오. 관객들도 조용히 따라 웃었어요. 커다란 방적공장이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것이 아미고라지요. 고운 회벽과 굵은 나무 들보와 삼나무 벽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관객의 웃음도 커피향처럼 은은하게 퍼졌지요.
저는 지금 당신 소설의 남자 주인공과 당신을 동일시하고 있지요. 번역할 때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창조한 인물이라고만 철석같이 믿었으니까요. 아미고에 모인 독자들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날 당신도 소설 속 인물이 당신 자신이라고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소설 속 주인공이 다름 아닌 당신 자신이었다고, 그것은 저만 알게 된 사실이라고 나중에 말해 주었죠. 저만 알게 된 사실이라니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당혹감과 알 수 없는 부담감과 함께 당신이 종종 쓰는 표현처럼 '나쁘지 않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날 아미고에서 당신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었던 저는 당신이 불륜의 도덕이 아닌 불륜의 감각을 다루고 싶었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할복의 아름다움 같은 불륜의 아름다움. 불륜으로 인해 위태로워지는 삶의 예리한 갈피들. 가장에 대한 책무의식을 매저키즘으로 삼아 스스로를 자극하는 감각. 작가로서 그런 감각의 경계를 그리면서 그런 감각의 경계에 가 닿아 보고 싶었습니다······. 라는 당신의 말을 들으면서 저는 속으로 몇 번이나 벅찬 숨을 몰아쉬었지요. 평생을 쌓아올린 독실(篤實) 따위를 한순간에 베어버려 무로 만들어버리는 날카로운 고토(古刀)의 쾌감에 대해 당신이 조용조용 말할 때, 저는 그것이 며칠 전에야 깨닫게 된 제 감각의 정체와 잇닿는 말일 줄 몰랐습니다. 네, 저는 그랬어요. 당신과 함께라면 저는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생각한 게 아니라 감각한 거죠. 며칠 전에야 그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지요.
'무엇이든'이 무엇이든, 그 무엇이든의 끝은 무엇일까. 그것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의 끝이고 더 이상의 지속이나 시작이 없는 것을 말하지요. 저는 오래 전부터 그것을 꿈처럼 감각해 왔다는 것입니다. 감각은 생각이나 추론과 달라서 이토록 늦게야 깨달았을까요. 저는 이것을 당신의 표현방식을 빌려 죽음의 감각이라 하겠습니다.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고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아요. 안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을 테니까요. 달라지기를 원하지도 않고요. 감각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는 걸 당신에게 배웠다고 하면 안 될까요. 저는 제가 그 감각에 먹히는 과정과 순간에다가 저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싶어요. 그리하여 당신이 불륜에서 느끼고자 했던 감각의 세계로 들어서고 싶습니다.
저는 부자는 아니었지만 죽고 싶을 만큼 가난하지도 않았어요. 지금까지 저의 유일한 직업이었던 번역도 크게 성공적이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형편없지도 않았고요. 지루하고 막막하고 이렇게 살다 마는 것인가라는 생각은 저만 하는 것도 아니었지요. 여자라는 것도, 일찌감치 가족을 잃고 혼자 살게 되었다는 것도 죽음을 꿈처럼 감각해 왔던 이유로는 당치 않아요. 오히려 저는 부자도 아니고 크게 성공도 못 했고 함께해야 할 가족이 없다는 사실을 매우 다행스럽게 받아들입니다. 그런 것이 저에게 주어졌더라면 저는 그것들을 존속시키기 위해서 허망하게도 이 소중한 꿈의 감각을 바보처럼 외면하려 들었을 테니까요.
정말 저는 당신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과 함께여야 그게 가능하다는 말이 당신과 함께 죽자는 말로 들릴 것 같네요. 그러나 아니에요. 다만 저는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알 수 없는 감각에 붙들려 있을 뿐입니다. 무엇인가를, 꼭 잡거나 느슨하게 잡거나, 하여튼 누군가의 손을 잡고 그 순간을 감각하고 싶다는 것. 그 순간. 무엇이든의 끝.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것. 그리고 그 누군가가 당신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고요.
이미 저에게는 제가 번역한 당신의 소설이 당신이 인정하는 당신의 실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몇 개월에 걸쳐 낱낱이 통과하면서 저는 이미 제 결심을 굳혔던 건지도 몰라요. 다만 저도 모를 결심이었기에 당신을 보는 순간에야 욕조가 되어 떠올랐겠지요. 저는 지금 욕조가 필요합니다. 그 순간을 맞이하기 위한 욕조와, 제가 붙잡을 당신의 손이 필요해요. 감각이 그것을 요구한다고 할게요.
손 얘기를 하자니 제가 번역한 당신의 소설에서 당신의 손과 관련된 인상적인 장면이 떠오릅니다. 하나는 당신이 '열한 시간의 신체접촉'이라고 표현한 부분이에요. 애무, 다독거리다, 더듬다, 비비다, 닿다, 터치하다, 핥다, 빨다, 꼬집다, 할퀴다, 간질이다, 주무르다, 쓰다듬다, 어루만지다······. 그 많은 말들을 놔두고 연인들 사이의 행위에 당신은 하필 신체접촉이라는 말을 썼을까요. 그리고 열한 시간이라니. 이런 내용들은 기억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그녀와 처음 눕던 날 열한 시간 동안 그녀와 신체접촉을 했다고 썼지요. 시월의 지치부 근교였고 오후 아홉 시였으며 그녀는 자신의 흑백 스트라이프 니트에서 길고 가는 팔을 하나씩 뽑아냈다. 이렇게 시작된 문장은 제가 위에서 길게 나열한 단어들을 하나도 쓰지 않은 채 네 페이지에 걸쳐 이어졌어요. 열한 시간 동안 당신의 손은 그녀의 몸 위를 어찌저찌 지나다녔겠지요. 까마귀가 커다란 물고기를 물고 와 숙소의 유리창에 꽝 부딪혔을 때 당신은 비로소 그녀의 몸에서 떨어졌고 그때가 오전 여덟 시였다고 썼습니다. 당신이 일어나 비틀거리며 혼자 움직일 때도 당신의 손바닥과 가슴과 뺨에 그녀의 놀라운 피부 감촉이 파스처럼 붙어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고 했지요. 저는 당신의 작품을 읽으면서 번역의 시간보다 상상의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견뎌야 했고 그럴 때마다 늑골이 자꾸 아팠습니다.
열한 시간 동안이었으나 섹스에 해당하는 행위는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한 여성 독자의 지적으로 촉발된 웃음이 오래된 방적공장의 천장으로 커피 향처럼 피어오르고 말았듯이, 해당 행위의 부재가 소설을 읽고 번역하는 데도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고요.
손과 관련해서라면 Cafuné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군요. 그 장면에 대해서라면 제가 이미 이루마시에서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었지요. 그때 당신은 저를 아미고의 관객에게 소개하며 당신의 소설에 대한 제 짧은 감상을 요청했습니다. 저는 당신의 소설을 통해 알게 된 Cafuné라는 희귀한 단어를 사랑하게 됐다며 그 방적공장의 오래된 들보 아래서 한국어 반 일본어 반으로 말했지요. 번역가로서는 그런 성격의 단어가 튀어나오면 곤혹스럽지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라고 제가 말했던가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Cafuné. 당신의 소설에서 작가인 당신은 캐나다 여인의 입을 빌려 그 단어에 대해 말하지요. It is among the few word that cannot be translated into english.


*

― 종종 의자에 앉아 낮잠에 떨어진다. 밤낮없이 번역을 해대던 때의 버릇이다. 이제 더는 번역하지 않게 되었지만 버릇은 여전하다. 그럴 때마다 꿈을 꾼다.
찬이 내내 쓰던 편지의 톤이 아니었다. 찬은 의자에 구겨지듯 앉아 잠들었다. 대낮이었고, 커서 혼자 껌뻑였다.
일기일까. 찬은 번역 전용으로만 사용하던 자신의 문서작성 파일을 이따금 열고 무언가를 적었다. 더는 번역에 사용하지 않는 파일의 텅 빈 화면에 번역의 관성으로 일기를 쓰는 듯했으나 일기는 아니었다. 하루의 끝에 적는 글이 아니라 낮잠에 빠지기 전에 몇 줄씩 이어 보는 글이었으므로 나는 그것을 잠들기 전에 잠의 신에게 잠을 고하는 축문 같은 거라고 맘대로 생각했다.
― 꿈속의 나는 흰 린넨 소재의 트러피즈 드레스를 입는다. 늘 그 차림이다. 하늘도 들도 길도 갈대밭도 온통 희뿌옇다. 먼지는 아닌 것 같고, 연갈색으로 바랜, 오래된 흑백 사진 같기도 하다. 모든 사물의 윤곽이 분명치 않다. 아주 평면적이다. 느낌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사막이다.
마희가 가우디 꽃덩굴 방범창 사이로 찐 감자 하나를 들이밀었다.
"싹이 나길래 몽땅 쪄버렸어."
감자를 쥔 마희의 손이 고개 숙인 찬의 가르마에 닿을 듯 닿지 않았다. 마희는 찬이 종종 낮잠에 빠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희는 양푼에 담아 온 다섯 개의 감자를 다섯 차례에 걸쳐 방범창 안으로 옮겼다. 찬의 책상 한 귀퉁이에 감자가 나란히 놓였다.
― 사진은 아니다. 옷자락이 바람에 휘적휘적 나부끼는 움직임이 보이니까. 움직인다. 나는 정면, 그러니까 이쪽을 응시하고 서 있다. 화난 듯 지루한 듯 찡그린 눈으로. 길은 하나, 긴 둑길. 둑길 위에 내가 있다. 둑길 한쪽 아래로 갈대밭이 둑길만큼 길게 이어진다. 갈대도 온통 연갈색. 온통. 그렇다고 사막의 모래 먼지도 아닌 것 같고.
"오늘도 안 왔나? 검은 차."
아쉬운 듯 마희는 혼자 중얼거리며 주차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청자기 빛 눈동자가 하늘을 반사해 번득였다. 노란 겹장미의 꽃잎 끝이 바깥으로 말리면서 꽃송이들은 더 크고 탐스러워졌다.
― 나는 내 키보다 큰 욕조와 함께 서 있다. 둑길 위에. 욕조와. 오로지 욕조와. 흰 욕조지만 모든 게 그렇듯 그것도 연갈색. 내 오른팔이 어깨동무하듯 욕조에 걸쳐 있다. 욕조에. 부연 하늘, 끝 모를 둑길과 갈대밭, 그리고 키 큰 욕조와 나란히 서서 바보 같은 눈길로 이쪽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나. 혼이 빠진 나.
"어찌 된 거야 여태 흰 차는 정말."
양푼을 들지 않은 손으로 벽을 더듬으며 마희가 돌아갔다. 그녀는 더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에겐 손이 눈이고 눈이 손이었다. 귀가 눈이고 눈이 귀였다. 흰 차와 검은 차를 찬보다 먼저 발견한 것도 그녀였다.
앞을 못 보는 마희에게는 청각도 촉각이었다. 소리 입자가 모래알이나 참깨알처럼 그녀의 귀청에 날아와 박혔다. 강력하고 섬세한 터치일 거라는 걸 내가 모를 리 없다.
나. 늦게나마 나에 대해 말하려 한다. 나는 세상의 모든 '닿는 느낌'을 가능하게 하는 느낌이다. 닿는다고 해서 언제나 느낌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발생하더라도 예상하거나 기대한 느낌이 되라는 법은 없다. 하여튼 나는 닿는 물질과 닿아지는 물질 사이의 다양하고 무한한 느낌에 관여하는 '작용'이다. 작용일 뿐이어서 감각을 있게 할 뿐 나는 감각도 감각의 대상도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세상의 모든 닿는 느낌을 느낄 수 있게 하되 정작 나는 그 무엇으로부터도 닿을 수도 느낄 수도 없는 느낌이다.
누구는 그것을 느낌의 느낌이라는 동어반복의 자기 지시적 명칭을 피해 微1)라 말하기도 하고, 미라 해놓고도 그것에 대해 따질 수 없다고 하며 다시 한 번 말하기를 피하니, 과연 알 수도 느낄 수도 없는 나에게 굳이 이름을 붙일 일도 없겠다. 오늘날 일컫는 말은 일컫는 대상과도 뜻과도 하나일 수 없으니 나를 무어라 일컫든 제대로 일컫는 게 아닐 테니까. 나는 그러니까 이름과 만물이 하나였던 시절의 존재인 셈이다. 그때의 이름은 지금처럼 종이 위에 적거나 입을 통해 전화로 옮길 수 있는 성질의 이름이 아니어서 이름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의 어떤 말과 이름으로도 일컬어질 수 없는 느낌인 것이다.
다만 나는 마희의 몸에 닿는 장미집과 장미집에 닿는 마희의 몸 사이에서, 혹은 하지메와 그의 캐나다 여인과의 열한 시간에서, 아니면 하지메와 찬을 세차게 엮었던 어느 겨울밤의 팔짱에서 그들의 운명에 절로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물질과 물질 사이의 '감촉'은 어느 일방의 느낌으로 발생하거나 전해지거나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작용 혹은 반작용의 원리에 의해 스스로 발생한 자신의 운명을 살다가 간다. 나는 사람과 물질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촉의 운명에 관여하여, 사람이 감자를 만지거나 구름이 구름과 부딪히거나 나비가 꽃잎에 앉을 때마다, 즉, 감촉이 발생할 때마다, 우주도 그에 따라 부지런히 자기 구조의 배열을 새롭게 바꾸게 할 따름이다. 나는 그러하다.
― 그런데 물. 나와 욕조가 살풍경하게 서 있는 둑길 아래, 갈대밭 사이로 물이 흐른다. 연갈색 물이 넘실넘실. 너무 넘실넘실이어서 무서운. 사막 같은 풍경 한가운데를 갑자기 가로지르는 물. 둑길 위의 나에겐 어떤 표정의 변화도 없다. 멍청하다. 둑길 위의 나를 바라보는 나는 물이 좋은가. 무서운가. 넘실넘실 흐르는 물에 내가 눕는다. 둑길 위의 나를 바라보던 내가. 물에. 천천히 얼굴을 담근다. 다 담근다. 둑길 위의 나와 욕조는 여전히 서서 이쪽을 응시한다. 이쪽의 나는 없다. 물에 들어가 누웠다. 졸린다.
찬이 고개를 들었다. 식은 감자 다섯 개가 책상 한 귀퉁이에서 오후의 햇살을 받고 있었다. 감자 한 알을 집어 들고 찬은 밖을 내다보았다. 흰 차는 여전히 그 자리였다. 흰색이 아니라 이제는 꿈속에서 찬이 본다는 그 연갈색? 흰 차는 그곳에 너무 오래 서 있었다. 감자 한 알을 쥔 채 찬은 방에서 나왔다.
햇빛 때문에 찬은 얼굴을 찡그렸다.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돌과 풀이 어지러이 섞인 길을 천천히 걸었다. 그녀의 오금 아래로 푸르고 가는 정맥이 잎맥처럼 드러났다. 주차장에 다다를 동안 찬은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주차장의 땡볕을 느리게 가로질렀다. 흰 차에 점점 가까워졌다. 검은 차의 여자가 그러는 것처럼 찬은 흰 차에 다가가 안쪽을 기웃거렸다. 특별할 것 없는 승용차의 그렇고 그런 내부였다. 다만 오래도록 주인 없이 멈추어 있는 차량이었으므로 운전대와 변속기와 시트와 외장형 내비게이션, 혹은 컵걸이와 쓰러진 건담 피규어 들이 박물관 유리 진열장의 유물들처럼 바래 있었다.
찬은 쥐고 있던 찐 감자로 퉁퉁, 운전자석 차창을 두드렸다. 이럴 경우 감자와 찬의 손아귀 사이에서 발생하는 촉감에 나는 이미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찬은 감자가 으깨지지 않을 정도로 다시 차창을 퉁퉁, 두드렸다. 무엇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찬은 다른 손으로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문손잡이와의 촉감에도 내가 있다. 여름 오후의 햇볕이 찬의 가르마 위에 떨어져 내렸다. 차량의 본체와 응착돼 버렸는지 문도 꼼짝하지 않았다. 찬은 감자의 껍질을 벗기고 한 입 베어 물었다. 검은 차의 여자가 그랬듯 찬은 흰 차의 내부를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1) 道德經第十四章(搏之不得名曰微 此者不可致詰)


*

당신의 캐나다 여인은 그것이 영어로 번역될 수 없는 단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포르투갈어인데 포르투갈에는 없고 브라질에만 있는 포르투갈어라고 했지요. Cafuné is the act of running your fingers through your lover's hair. 당신의 캐나다 여인은 영어로 그 뜻을 풀어 말하면서 그런 단어를 가진 브라질인들을 부러워하고 찬미했지요. 풀어서 말해버리면 제 맛이 안 난다는 말도 덧붙였던가요. 애인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 줌. 그런 로맨틱하고도 풍부한 느낌의 동작을 한 단어로 전할 수 있다니. 실은 저도 놀랐습니다.
당신의 캐나다 여인은 일본어를 잘하는 캐나다 기업의 일본 주재원이었어요. 영어로 옮길 수 없는 일본어도 적지 않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겠지요. 그러나 Cafuné만 한 것이 없었나 봅니다. 번역될 수 없는 것. 그럴까요? 어쩌면 그녀는 당신으로부터 Cafuné를 기대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죠.
자신의 머리를 빗어 주기를 기대하며 브라질인들을 부러워하고 찬미하는 당신의 캐나다 여인을 저는 당신의 묘사를 통해 소설에서 만났습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묘사의 힘, 묘사라는 것의 진수를 느꼈고 동시에 그것을 옮길 제 언어가 부족해 절망하고 말았죠. 그러니까 저는 Cafuné라는 단어보다 당신의 탁월하고도 미묘한 정황 묘사에 더 놀랐던 것이지요.
여인의 애절한 기대에 반해 당신의 반응은 살짝 늦었어요. 늦긴 했습니다만 물론 당신은 여인의 화이트 블론드 머리카락을 당신의 긴 손가락으로 사랑스럽게 빗었습니다.
그런데 여인의 기대와 당신의 반응 사이에 절묘한 어긋남이 있었지요. 살짝 늦은 것. 짧은 시차가 있었을 뿐인데 그 잠깐의 시차가 빚어내는 뉘앙스는 not be translated, 저로서는 도저히 번역해 낼 수 없는 묘사였어요. 제대로 번역해 낼 수는 없었지만 저는 그 잠깐의 어긋남에서 장차 다가올 두 사람의 이별을 읽을 수 있었죠. 그것도 충분히.
이별의 징후를 충분히 읽기는 했으나 말 그대로 징후였을 뿐 그녀와 정말 이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당신 쪽의 이유를 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캐나다 여인 쪽의 이유는 알 필요도 없었고요. 그녀는 끝까지 이별을 원하지 않았으니까요.
당신은 저한테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았지요. 저에게 말해 주어야 할 까닭이 당신한테는 없었을 테고 저도 그것을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요. 당신은 저에게 이렇게만 말했습니다. 그것이 '알 수 없는 두 가지 충동의 예 중 하나'였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저는 당신의 소설을 번역하고 당신의 초청을 받아 이루마에 다녀오고 세 차례 한국에 온 당신을 만나고 당신과 가끔씩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욕조를 구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욕조를 구입하게 된 것이 당신이 그녀와 헤어진 이유와 상관이라도 있는 듯 제가 지금 말하고 있는 건가요?
이제 곧 욕조가 제 방에 올 거예요. 살까 말까 여러 번 고민했지요. 산다면 사각 욕조를 살까 타원형 욕조를 살까 원통형을 살까. 플라스틱과 편백나무와 자기 중에 어떤 것이 좋을까. 흰색과 아이보리와 버건디와 라이트 블루 중에 내가 갖고 싶어 하는 색은 어떤 걸까.
고급형이라고는 하지만 중저가의 인조대리석 스퀘어 이동식 욕조를 샀습니다. 세 들어 사는 방인 데다 화장실의 구조상 운반식 욕조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욕조가 배달되기 전에 마음이 바뀌었지요. 그래서 그 욕조는 장미집 안으로 들어와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 버렸고요.
이왕이면 좋은 걸 사고 싶었달까. 이왕이면이라는 부사어를 왜 떠올렸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지금껏 욕조가 있는 집이나 방에서 살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때 함께 떠올랐었나 봐요. 부모와의 짧았던 동거, 시골 외할머니 집 생활, 고등학교 때부터 이어진 메마른 자취 생활과 샤워 부스가 전부인 지금 장미집에서의 장기 거주······. 한 번도 제 욕조를 가져 본 적이 없었어요. 아니, 딱 한 번 있었던 것 같네요. 이제는 찾을 수 없게 된 사진입니다만, 제 빨간 알몸과 어머니의 두 손만 찍힌 그 사진 속 영아용 핑크빛 플라스틱 욕조가 저의 처음이자 마지막 욕조였습니다.
충분히 길고 깊은 레진 소재의 프리스탠딩 라운딩 욕조를 주문했죠. 색깔은 아주 흰색이고 모양은 커다란 카레소스 그릇처럼 생겼어요. 척 보면 그냥 심플? 저에겐 어마어마하게 과분한 가격의 물건입니다만 이제 과분할 것도 다시없겠다는 생각입니다. '무엇이든의 끝'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의 끝이고 더 이상의 지속이나 시작이 없는 것을 뜻하니까요.
제가 당신의 욕조에 들어갔던 일을 기억하는지요. 당신이 세 번째 한국에 왔을 때 어쩐 일로 저는 당신과 함께 전철을 타고 인천의 자유공원과 자장면 박물관과 근대건축 전시관엘 갔었네요. 한국 개항기의 청․일조계지여서 아직도 당시의 흔적이 뚜렷했죠. 청조계지는 자장면집들로, 일조계지는 일본제18은행지점 등의 건물로 남아 있었지요. 함께 두루 걸었지만 실은 왜 그곳엘 갔어야 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 아무려면 어때, 나쁘지 않잖아요, 라고 당신도 말했습니다. 당신을 볕 좋은 5월에 만났으니 어디엔가 가야 했기에 간 것이었겠죠. 모르겠습니다.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들의 정체를. 하여튼 당신은 그곳의 골목들과 공갈빵을 무지 좋아했죠. 그리고 막걸리.
막걸리는 서울로 돌아온 뒤 저녁 식사 대신 마신 거였습니다. 안주가 푸짐했으니까요. 당신의 숙소 바로 뒤쪽, 성공회 주교좌성당 옆이었죠. 그곳에 전국의 모든 막걸리를 파는 술집이 있었지요. 고추 빈대떡과 복 껍데기 초무침과 떡갈비를 먹으며 해남 영월 당진의 막걸리를 차례로 한 통씩 마셨어요. 술에 약한 편이 아닌데 저는 그만 주교좌성당 옆길을 걷다가 무릎을 찧고 말았죠. 당신의 부축을 받고 일어서면서 저는 당신에게 당신의 욕조를 볼 수 없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신의 욕조를 보기 위해 넘어졌다는 듯이. 그런데 왜 넘어진 걸까요, 정말. 성당 옆에서 넘어지면 남의 욕조를 봐도 된다는 거였을까요. 그랬나 보죠. 당신이 그러자고 선선히 말했으니까요. 얼마든지요, 실은 내 것도 아니잖아요, 라고 당신이 말했습니다. 당신도 취하거나 그랬던 건 아니었고요.


*


검은 차가 주차장 안으로 들어섰다.
기척을 알아차리고 마희가 찬의 창으로 다가왔으나 전처럼 애틋한 낯빛은 아니었다.
"오면 뭘 해."
마희가 방범창살 사이로 찬에게 검붉은 자두 한 알을 건네며 말했다. 마희와 찬은 담장 너머 주차장 쪽으로 나란히 고개를 돌리고 자두를 깨물었다.
"안 시네요."
"응, 안 셔."
"좀 시어야 맛있는데."
"난 이런 게 좋아."
"상큼한 맛이 덜하죠."
"검은······ 차는 뭐 해?"
"궁금해요?"
"당근."
"오면 뭘 하냐면서요?"
"그러긴 하지만."
"그런데 뭐가 궁금해요?'
"그래도 왔으니까. 흰 차로 가? 가고 있어?"
"가고 있어요."
"들여다보겠네."
"······."
"왜 말이 없어?"
"들어가는데요."
"어딜?"
"차 안으로요."
"문 열렸어?"
"아뇨."
"문 안 열고 어떻게 들어가?"
"그냥 스윽 들어가 버렸어요."
"흥. 투명인간이야?"
"그런가 봐요."
"그럼 왜 여태 안 들어가다가 오늘에야 들어가?"
"그러게요."
"뻥치고 있어. 앞 못 본다고 내가 속을 사람이야?"
"아니죠."
"아니지?"
"절대 아니죠."
"근데 왜 뻥쳐?"
자두 씹던 것도 잊은 채 찬은 여자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뻥이 아니니까요."
"하긴 뻥이라도 쳐야 심심치 않지."
마희가 혀로 입속의 자두 씨를 바각바각 놀렸다. 만날 그 타령인 걸 갖고 자꾸 물어보는 내가 한심하지, 중얼거리며 마희가 골이 나서 돌아갔다.
찬은 흰 차 안의 운전석에 들어앉은 여자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방금 잠긴 문을 통과해 들어왔다는 사실에 조금도 놀라지 않는 낯빛이었다. 무심하고 태연하게 앞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오래도록 서 있어 색깔마저 사막의 연갈색으로 변해버린 흰 차였으나 여자가 앉아 있는 동안은 제 빛깔을 찾은 듯 번쩍였다. 흰 차의 지붕 위로 여름 한낮의 땡볕이 쏟아져 내렸다. 차량충돌 시험용 마네킹처럼 그녀에게서는 모든 감정이 빠져나가 버린 것 같았다.
그녀의 허리가 점점 물에 잠겼다. 찬의 꿈속에서 사막 같은 풍경을 넘실넘실 가로지르던 물일까. 연갈색 물. 너무 넘실넘실이어서 무서웠던 물이 여자의 가슴에 이르고 마침내 차량의 천장에 닿았다. 차 안은 물로 가득했다. 물에 잠긴 여자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찬은 숨이 막혔다. 자두 즙 묻은 손으로 자신의 목을 움켜쥐었다.
"계십니까?"
담장 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욕좁니다!"


*

저는 결국 옷을 다 벗고 당신의 욕조에 들어가 눕게 되었습니다. 소설에서 여자의 벗은 몸을 보는 당신의 반응은 일반적인 남자들의 것과 달랐지요. 그래서 믿고 벗었다는 건 아니고요, 저는 물에 들어가고 싶었던 거겠죠. 저는 메말랐으며, 젖고 싶고, 몸을 깊이 담그고 싶다고 여겼으니까요. 어디까지든, 잠기는 데까지. 그래야만 한다고 제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욕조를 구하게 되면 당신의 손을 잡고, 스미듯 가라앉으며, 무엇이든의 끝을 감각하고 싶었어요. 무엇이든의 끝인 마당에 누구의 손이 웬 소용이랴 싶지만 저에게 확실한 자신감을 준 것이 당신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니까요. 당신을 사랑하는 거였다면 그날 당신과 함께 인절미처럼 눕고 싶었겠지요. 욕조가 아닌, 콩가루같이 고소하고 보드라운 보료 위에, 잘 저민 말랑말랑한 두 개의 인절미처럼 나란히.
제 어머니는 떡을 써는 사람이었습니다. 인절미를 썰고 나면 맨 끝 자투리가 조금 남았지요. 그 작은 것이 왠지 저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어머니의 모습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데 인절미 자투리 같은 것만 선명하게 떠오르다니 이상해요. 그래요. 당신을 사랑하는 거였다면 큰 인절미인 당신과 작은 자투리인 제가 콩가루에 묻힌 채 나란히 눕는 장면을 떠올렸겠죠. 그러나 한겨울밤 당신과 팔짱을 꼈을 때도 그랬듯이 그것은 사랑하는 마음과는 달랐습니다. 저는 그냥 그날 욕조에 누워 보고 싶었던 거예요. 당신이 말하는 알 수 없는 충동, 그것에 해당하는 저의 경우였겠지요.
그날 당신은 욕조에 누운 저의 가르마를 당신의 손끝으로 만졌습니다. 이 글 앞쪽에서도 저는 가르마라는 말을 썼던가요. 당신이 그날 그곳에 손을 댔기 때문이에요. 그날 이후로 제가 느끼는 감각의 대부분은 제 가르마를 통해서 전달되는 것 같았으니까요.
당신의 손끝이 제 이마에서 정수리 쪽으로 천천히 움직였어요. 머리카락이 자란 뒤로 한 번도 바뀌지 않은 헤어스타일의 가르마였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가르마가 있다는 사실조차 저에게는 오랜 기억처럼 희미한 것이었지요. 당신의 손끝이 제 짧고 좁은 가르마를 천천히 통과하는 동안 저는 두개골이 절개되어 개방되는 통증을 느꼈습니다. 실제로 아팠던 것은 아니고 환상통 같은 것이었지요. 아프지는 않았으나 죽을 것같이 두려웠어요. 그래서 누구야? 라고 저는 소리쳤던 것 같아요. 당신 뭐야?
당신이 어딘지 유령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이승의 감각 세계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 제 가르마에 닿는 당신의 느낌이 그랬어요. 그리고 당신의 캐나다 여인이 어째서 당신과의 이별을 그토록 괴로워했는지 문득 알 수 있을 것 같았답니다. 저는 당신의 감촉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만 그것을 사랑으로 느낀 사람이라면 당신에게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을 테니까요.
제 외침에도 아랑곳 않고 당신은 손가락 끝으로 말없이 제 가르마를 따라 그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외침마저 환상통 같은 상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지요. 저는 당신의 손끝 감각이 그런 식으로 아프고 무서웠습니다만 한편으로는 당신의 셔츠 끝 소매가 제 머리카락에 언뜻언뜻 닿는 감촉이 한없이 부드럽다고도 느꼈어요. 당신의 셔츠에서는 올리브 향이 났고요.
욕조에 누운 저에게 중얼거리듯 들려주었던 당신의 말들을 기억합니다. 찬을 만나러 오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의 감각들과 맞닥뜨리고 싶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당신의 말들은 제가 욕조를 구입하기로 결심하는 데 많은 망설임을 없애 주었지요.
당신이 손가락으로 제 가르마를 따라 그으며 말하는 동안 저는 이거구나, 이거였구나! 거듭 탄식했습니다. 하우스 맥줏집 주차장에 제 차를 내버려두고 택시를 타고 돌아가며 저 혼자 중얼거렸던 의미 모를 말이, 마침내 육신을 얻는 것 같았으니까요. 이거구나!
그날이 시월 십팔일 일요일이었다는데 어째서 시월 십팔일이어야 했는지 알지 못해요.2)라고 당신은 말을 이었습니다. 나에게 하는 말인가? 궁금했을 정도로 당신은 맞은편 타일 벽만 바라보며 말했지요. 당신의 손끝은 제 가르마를 오갔고요.
그는 옷을 벗어젖혔어요. 당신이 말했습니다. 새카맣고 넝마 같은 자신의 팬츠를 말이지요. 그리고 벌거벗은 채 킹 스트리트를 따라 걸어 내려갔어요. 그날은 일요일이어서 몇 사람들만 보았을 뿐이에요. 그의 활기차고 의기양양한 걸음을요. 갈색 털이 덮인 그의 억센 몸을요. 앞에서 덜렁거리는 그의 성기를 말이지요. 그는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거예요.
당신은 말하면서 맞은편 타일 벽을 바라보고 손으로는 저의 가르마를 어루만졌는데, 당신의 말과 시선과 손은 분리되어 각각 다른 세계에 나뉘어 있는 듯했어요. 분열되고 확장된 아주 큰 세계 말이에요. 당신 자체가 그래 보였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유령 같았죠. 그가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자 아이들이 뒤따르며 미친놈이라고 놀렸죠. 당신이 말을 이었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곧 흥미를 잃고 뒤돌아갔어요. 바닷가 사람들도 저마다 자기 일에 바빠 그를 보지 못했답니다. 그는 바다로 걸어 들어갔고, 더는 걷기가 힘들어지자 헤엄을 쳐서 바다 한가운데로 갔어요. 헤엄을 멈추고는 햇볕을 즐기며 잠시 떠 있었지요. 그러다가 몸에 힘을 빼고는 바닷물이 그의 몸을 삼키도록 내버려두었어요.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중간에 저는 당신과 당신의 캐나다 여인을 떠올렸습니다. 당신이 가 닿고자 했던 감각의 세계와 캐나다 여인이 닿고자 했던 감각의 세계가 달랐던 거라고. 잠깐의 시차가 빚어냈던 뉘앙스라는 게 그것 아니었을까요. 캐나다 여인은 사랑으로 수렴되어 더 단단해지고 빛나는 감각을 원했고, 당신은 가없이 넓은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 분열되고 확산되는 소실의 감각을 원했던 거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저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저에게도 닿으려는 욕구가 있었지요. 번역가로서 원작 혹은 원작 인물들의 감각에 닿으려는 욕구 같은 것 말예요. 저 스스로 제 문장의 느낌에 가 닿으려는 한편 원작자의 문체에 닿으려는 노력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저는 제 생활과 호의적으로 가까워지고 싶었죠. 저와 화해하고 싶었고 저를 용서하고 싶었으며 그리하여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에 가 닿으려고도 했어요. 물론 타인 혹은 연인에게 사랑의 감정으로 흠뻑 가 닿고도 싶었지요. 그리고 손과 가슴과 배와 엉덩이 같은 제 신체적 감각과도 가까워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속의 더 강력한 어떤 것이 위의 바람들과 철저히 불화했어요. 욕구 이전의 욕구, 감각 이전의 감각, 생명 이전의 물질세계로 돌아가려는 충동 말이죠. 저에게 그것은 크디크며 어찌할 수 없는 깊이인가 봐요. 이유 없이 빨려드는 돌이킬 수 없는 함정입니다. 이제 저는 욕조를 장만하고 가득 물을 채워 속절없이 그곳에 가려 해요. 가 닿으려고요. 그건 가능할 것 같으니까요. 그리고 당신이 손을 잡아 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당신의 욕조에 누웠던 날 당신의 말들은 저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었지요.
그의 몸은 천천히 바다로 가라앉았어요. 당신은 독경하듯 말을 이어 나갔지요. 굽혀진 그의 다리가 물 아래로 가라앉고, 천천히. 그의 머리 위에 얹은 팔이 가라앉고, 천천히. 풀어헤쳐진 그의 머리가 가라앉았습니다. 천천히요. 마침내 그의 몸은 보이지 않게 되었지요. 오렌지 껍질 몇 개가, 낡은 주석 깡통 하나가, 그리고 바닷물에 흠뻑 젖은 담배 상자 하나가 그가 침몰한 자리에 떠돌고 있었습니다. 찬, 내 말을 듣고 있나요? 그가 사라진 느린 해류 위로 물총새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내려앉았어요.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 위, 물보라 이는 바다 위로 말입니다.
당신은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숨처럼 말을 마쳤습니다. 지금 저는 당신의 굵고 낮았던 그날의 음성을 떠올린답니다. 그리고 이거였구나, 알겠어요, 고마워요, 라고 당신에게인 듯 혼자인 듯 말하고 있어요.
그러니 이제 저에게 남은 바람은 당신의 손입니다. 그러나 욕조에 가라앉는 저를 위해 이곳까지 와 달라고 당신에게 어떻게 말할까요. 이 편지를 과연 당신에게 보내게 될까요.

2) 장경렬이 번역한 자메이카의 여성 시인 헤더 로이즈(Heather Royes)의 시 <테오필러스 존스는 벌거벗은 채 킹 스트리트를 따라 걸어갔다(Theophilus Jones Walks Naked Down King street)>를 변용하여 인용함.


*

장미집을 나선 찬이 주차장을 향해 걸었다. 장미는 한동안 이어졌다. 장미집의 장미를 보고서 몇몇 이웃이 자신들의 담장에도 장미를 따라 심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찬이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신기루는 원래 지평선이 아닌 수평선에 생기던 걸 일컫던 거야. 대합조개들이 토해 낸 기운들이 수면에 고여 생기는 현상이라고 믿었던 거지. 그래서 신기루의 신蜃이 대합조개를 뜻하는 한자인 거야. 일본어도 같아. 같은 한자를 쓰고 신기오라고 읽지.
검은 차의 여자가 투명인간처럼 흰 차의 내부로 스윽 들어갔던 것이나 흰 차의 내부가 물로 가득 찼던 것을 찬은 신기루 현상이라고 믿고 싶은 모양이었다. 엄청난 빛 소나기가 쏟아졌던 날이었으니까. 그러나 잠긴 문을 통해 여자가 차량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여자에게서 모든 촉감을 남김없이 유출시켰기 때문이었다. 내가 한 일이 아니었다. 사물과 사물의 접촉에서 일어나는 작용. 그것을 관장하는 것이 내 일이기는 하지만 그녀에게서 모든 촉감을 유출시킨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벽을 통과하고 싶다는 열망과 그럴 수 있다는 확신과 맹목이 어느 정도에 이르게 되면 사물 간 경계에서 발생하는 저항과 마찰이 순간적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러면 벽을 통과할 때의 감촉이나 고통까지 느끼지 못하게 되는데, 제한된 감각의 포로인 인간의 눈에는 그런 현상이 귀신의 장난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개구리는 빈 낚시를 눈앞에다 흔들기만 하면 그것이 파리나 모기 같은 먹잇감인 줄 알고 삼켜버린다. 고양이도 눈앞에다 무언가를 흔들기만 하면 먹잇감으로 오해한다. 사람이라고 다를 게 없다. 빛의 이상굴절 현상을 대합조개가 뿜어내는 기운이라고 여겼던 것도 그다지 오랜 과거의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인간은 바다 건너 그리운 이의 손을 잡을 수 없다고만 믿는다.
찬도 하지메도 실은 자신들의 감각을 유출하고 있는 중이다. 뚜렷한 이유와 목적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검은 차 여자의 경우와 다를 뿐이다. 찬과 하지메는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감이 오감으로 분화되기 이전의 상태로 복귀하고 있다. 다섯 개의 감각으로 분화되기 이전으로 복귀함으로써 오감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되려는 열망. 그들의 의지는 아니지만 그들에게 어떤 방향성이나 지향점이 있다면 그러한 충동 쪽인 것이다.
유출되거나, 분화되기 이전으로 감각이 돌아간다고 해서 감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섯 개의 옹색한 감각에서 무한한 감각으로의 복귀일 뿐이다. 오감과의 작별이면서 가없는 감각 세계와 만나는 것이다. 하지메의 캐나다 여인은 오감을 더욱 오감답게 단단히 빛내고픈 사랑을 원했기 때문에 하지메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메의 감각은 감각의 원세계로 잠겨들기 위해 풀어지고 흩어지며 소실되는 중이니까. 그리하여 그는 어쩌면 점점 소설을 못 쓰게 될지도 모른다. 소설은 세인의 오감에 호소하고 호응 받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 모르지.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원감각을 회복한 독자들이 많아질 것을 믿고 계속 쓸지도. 그러면 찬은? 아직 세상을 다섯 개로 나누어 감각하지 않았던, 핑크빛 영아용 플라스틱 욕조로 되돌아가려는 것일까. 아니면 그때 손만 보였던 어머니의 자궁 안으로 아주 돌아가 더 깊은 물에 용해되어 버리려는 것일까. 다섯 개의 좁은 감각의 바다에 크게 빠져 있던 너를 진짜 큰 나의 바다로 초대하는 이유를 찬, 초대자인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모르는 게 나도 많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고. 검은 차의 여자가 흰 차에 들어가 앉았을 때 어째서 그토록 물이 차올랐던 것인지도 나는 알지 못한다.
흰 차에 다가간 찬이 운전석 차창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이전에 보았던 광경과 다를 게 없었다. 찬은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꿈쩍하지 않았다. 몇 차례 더 당기자 차가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뿐이었다. 햇볕이 찬의 가르마 위에 떨어져 내렸다. 차량의 본체와 응착된 문은 웬만한 유압절단기로도 열리지 않을 것 같았다. 찬은 문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너무 세게 문고리를 잡고 흔들어서였는지 핏기 없어진 찬의 손은 갈퀴처럼 굽은 채 한동안 펴지지 않았다.


*

찬이 욕조에 반듯하게 누웠다. 하지메의 초대를 받고 처음 이루마 시에 갔을 때 입었던 아코디언 스커트를 입은 채.
물에 젖으면서 스커트 주름의 경계가 불분명해졌고 황마를 섞어 만든 한지처럼 곧 풀어져 버릴 것 같았다. 흰 새시 블라우스도 물에 닿아 투명해졌다. 시폰 소재가 피부에 밀착되면서 둥근 어깨가 계란처럼 도드라졌다. 찬은 눈을 감았다.
조금은 차가운 듯하고, 딱딱하지만 매끄럽고.
찬의 손에 닿는 욕조의 감각이 나에게 전해졌다. 그녀의 손은 희고 빛나는 욕조의 운두에 놓여 있었다. 아무리 봐도 훌륭한 욕조였다. 욕조의 표면은 너무도 하얘서 푸른빛마저 띠었다. 심플하면서도 안정된 그것은 어딘지 흰 대리석으로 만든 파라오의 석관 같았다. 찬의 바람대로라면 적어도 한 손은 하지메의 손에 놓여 있어야 했다. 찬은 그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은 책상 위에 놓여 있었고 수신인은 마희였다. 남의 집에서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전날 중성 볼펜을 꼭꼭 눌러 적었다. 하지만 내 집이나 다름없었는걸요. 그리고 맨 끝에다 썼다. 미친 듯 사랑하세요.
찬은 눈을 감은 채 오른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끝에 무엇이 닿을지는 나도 알지 못했다.
닿을 수 있을까.
찬의 다문 입술이 살짝 움직였다. 윗입술과 아랫입술 사이에서 미세한 마찰이 일었다. 닿을 수 있을까. 그녀의 염원이 입술의 작은 마찰을 통해 욕조 주변의 공기를 흔들었다. 닿을 수 있다면 좋겠어. 내 팔이 천 킬로미터나 길어질 수 있다면. 찬은 현해탄 너머로 상상의 팔을 뻗고 또 뻗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와 팔꿈치 관절에서 터지는 물방울 소리를 들었다. 찬은 입술을 달싹여 말했다. 닿기를 바라지만 음, 아무래도 좋아. 나쁘지 않아.
어디에선가 사람의 앓는 소리가 들렸다. 멀게만 느껴지던 그것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가쁘게 허덕이는 소리로 바뀌었다. 마희의 후두가 거센 호흡에 쓸리는 소리였다. 어느새 미친 사랑을 찾은 걸까. 그러나 가까운 데서 사람과 사람의 신체가 맞닿는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한동안 뜸하더니 외로운 마희는 다시 장미집 건물 틈서리에 박힌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신체가 맞닿는 감각이라면 지금 건물 틈서리가 아닌, 찬의 작은 욕실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왕후의 것이라 해도 손색없을 욕조에서.
찬의 손은 끝내 하지메의 손에 닿지 못했다. 찬이 뻗은 상상의 팔은 성게가 유별나게 맛있다는 이키 섬 정도에서 멈추었을까. 대신 하지메의 손이 쑤욱 장미집의 단단한 벽을 뚫고 당도했다. 그럼에도 찬은 그의 손을 잡지 못했다. 하지메의 손이 그녀의 가르마로 곧장 향했기 때문이었다. 딱히 가르마도 아니었다. 가르마에서 어깨로 이어진 찬의 머리카락을 그의 긴 손가락이 주저 없이 빗어 내렸다. 그의 캐나다 여인에게마저 망설였던 Cafuné.
두 사람이 원감각의 세계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이었을 뿐, 하지메의 Cafuné는 찬을 물에서 건져내고자 하는 손짓이 아니었다.
찬을 이대로 내버려둘 것인가. 글쎄. 마희가 이 사실을 안다면 경악하겠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람들의 기대와 추측과 상식을 충족시키는 것은 내 역할도 습관도 아니니까.*
















작가소개 / 구효서

1957년 강화도 출생. 1987년《중앙일보》신춘문예 소설 당선. 소설집『도라지꽃 누님』, 『저녁이 아름다운 집』,『별명의 달인』, 장편소설『늪을 건너는 법』,『비밀의 문』,『새벽별이 이마에 닿을 때』등 출간. 한국일보문학상·이효석문학상·황순원문학상·대산문학상·동인문학상·이상문학상 수상.


《문장웹진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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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집에 사는 소녀1) 김숨 1 내 방엔 거울이 있어. 빛— 빨간색. 세상의 모든 빛— “지금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2 지금, 지금, 그리고 지금, “난 다른 곳에 있고 싶어.” 3 딱딱하게, 딱딱하게, “내 사랑을 받아 주세요.” 다른 곳에선 똑같은 노래가 다르게 흘러, 다르게 슬프게, 다르게 쓸쓸하게, 다르게 외롭게. 다른 곳의 다른 나. 난 나를, 난 나를, 딱딱하게, 딱딱하게, 빨갛게, “난 설레고 싶어.” 4 다섯 살 때 처음 빛을 봤어. 네 곁에, 내 곁에, 빛은 환한 어떤 것. 아, 난 날······. 다섯 살 때 처음 빨간색을 봤어. 엄마가 빨간색을 가져다 내 얼굴에서 45도 사선 밑에 놓았어. 빨간색을 나는 외우고 외웠어. 내가 빨간색을 외우자 엄마가 빨간색을 치우고 노란색을 놓았어. 나는 노란색을 외우고 외웠어. 그리고 파란색, 흰색, 검은색. 세상은 다섯 가지 색깔로 만들어졌어. 세상은 다섯 가지 색깔로 만족해. 다섯 색깔 무지개, 다섯 색깔 도마뱀. 분홍색은 꽃에게. 초록색은 달에게. 내 얼굴에서 45도 사선 밑에 놓여 있는 빨간색만 나는 볼 수 있어. 내 방 거울은 흐르지 않아······. 5 딱딱한 벽에 딱딱하게 거울이 걸려 있어. 거울이 날 봐. 거울은 날 봐. 거울은 엄마 몰래 울고 있는 날 봐. 난 날 안 봐. 음, 흐른다는 건······. 생각하고 싶지 않아. 내가 생각하고 싶은 건 오직 하나. 6 빨간색 크레파스를 선물 받고 난 흥분해 소리 질렀어. “엄마, 난 화가가 될 거야!” 빨간색 크레파스가 흰 도화지 위를 신나게 날아다녔어. (그녀의 엄마) 뭘 그리는 거야? (그녀) 집! 빨갛게, 빨갛게, (그녀의 엄마) 뭘 그린 거야? (그녀) 집! 엄마, 난 집을 그렸어! (그녀의 엄마) 네가 그린 집을 만져 보렴. 엄마가 내 손을 내가 그린 집으로 데려갔어. (그녀의 엄마) 집에 창문이 없네. (그녀의 엄마) 집에 문이 없네. (그녀의 엄마) 집에 지붕이 없네. 난 창문을 본 적 없어, 난 문을 본 적 없어, 난 지붕을 본 적 없어. (그녀의 엄마) 집에 나무도 없네. 7 집에 나무가 있어야 해? 세상에 나무가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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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식물원 하가람 식물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철골로 둘러싸인 거대한 유리 온실에는 열대와 지중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이국적인 식물이 자란다고 했다. 한 달 전 나는 식물원 근처에 있는 여러 호텔을 찾아 은규에게 링크를 보냈다. 보통 때의 그라면 어디든 좋다고 했을 것이다. 레스토랑도, 카페도, 동네의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조차도 모조리 내 선택에 맡기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날 은규는 이미 예약한 곳이 있다고 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은규가 보내 준 링크를 열어 보았다. 넓은 통유리 창 너머로 식물원과 공원이 내다보이는 스위트룸이었다. 나는 조금 들뜬 채 답장했다. — 우리가 만난 지 곧 1년이래. 믿어져? 1년이라는 시간은 내게 유별났고 은규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것이었다. 그가 전에 사귄 여자친구는 단 두 명인데 각각 4년, 5년을 만났다고 했다. 매번 석 달도 채 넘기지 못하는 나와는 달랐다. 이따금 은규에게 이전 연인들에 대해 물었다. 그들이 어떤 성향의 사람이었고 어떤 외양을 가졌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응응, 하며 대꾸해 주던 은규는 내가 그녀들의 음악 취향이나 살던 동네처럼 구체적인 정보까지 캐묻자 태도를 바꾸었다. 기억 안 나. 그는 말했다. 다 옛날이야기라고. 그 후로는 이전에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그녀들을 생각했다. 눈, 손톱, 말투, 그리고 신발. 나와 닮았을지, 닮았다면 얼마나 닮았고 다르다면 무엇이 다를지도. 상상을 이어 가다 보면 늘 한 가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은규는 한 번도 애인과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여자와 밤을 보내는 일이 오늘 그에게는 처음이었다. 서른을 넘긴 남성에게서 보기 드문 경우였지만 그가 처음인 게 좋았다. 그 점이 무엇보다도 나와 그녀들을 구분 지어 주는 것만 같았다. 차창에 머리를 기대었다. 햇볕에 데워진 창문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인터넷으로 보았던 화려한 꽃과 기다란 나무들을 떠올렸다. 노랗고 푸르고 분홍빛이 맴도는 공간을. 여름 휴가철이었고 도로는 차들로 빽빽했다. 졸음 껌을 씹는 은규를 보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운전하고 싶었는데.” “다음에. 너 힘들어.” 은규가 말했지만 나는 안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그는 내게 차를 맡기지 않을 것이다. “보면 놀랄걸? 너무 잘해서?” 나는 허리를 세운 채 한 손으로 반원을 그려 보았다. 휙휙. 입으로 소리 내며 운전대를 쥔 그를 따라 했다. 그가 웃었다. 머릿속으로 주행하기. 그것은 나만의 놀이였다. 캠퍼스 변두리에 있는 H관 1층, 5평 남짓한 주차관리실에서 상상력을 충족시켜 줄 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먼지 쌓인 커피믹스와 낡은 소파, 책상 위에 시간별로 놓여 있는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 주차권들. 지겨운 서류, 서류, 서류. 드물게 실장이 자리를 지키는 날이 아니면 대체로 혼자 그곳에서 일했다. 사람들이 찾아와 주차권을 사거나 정기 등록을 마친 후 돌아가면 나는 모니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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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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