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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코스모스 6월호 : 특집, 외계문학

  • 작성일 2019-06-01
  • 조회수 3,267

[단편소설]



월간 코스모스 6월호 : 특집, 외계문학



조시현




이번 호에서는 많은 존재자들이 관심을 가지고는 있으나 그 실태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외계문학을 특집으로 다룬다. 다소 두서가 없을 수 있으나 집중 조명해야 할 사건이 너무 많아, 산만함이 권장되는 시대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여 구성했음을 미리 알린다. 모든 말과 정황을 전부 다 기록하기에 지면이 한정적인 것은 안타깝지만 수회 차 편집회의를 거쳐 지구 중심적으로 재구성하였다.


상기 원고는 통일우주론이 대두됨에 따라 공통어와 공통문화, 공통문학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차 이에 대한 의미 있고 현명한 판단을 돕기 위해 집필되었다. 우주문맹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 역시 본 특집 구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구 배포용이므로 지구의 외계문학 전문가인 조시현 씨가 정리 및 검수에 큰 도움을 주었다. 모든 번역이 그러하듯 의미를 정확하게 옮기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우주 각지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특징과 형식과 형태가 판이하게 달라 의역과 해석에 특히 많은 부분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하여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우주 역사와 문화에 대해 파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일반 존재자들을 대상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최대한 지구의 상식선 안에서 서술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며 그 정확한 의미가 다르더라도 개괄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현재 사용되는 공용어로는 전체적인 의미밖에 전달할 수 없으므로1) 이 언어가 모든 문명을 표현하고, 제각각의 문명 안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섬세하게 다듬는 작업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파편적으로 존재하는 은하와 문명들을 통합할 정치 단체도 언젠가는 필요해질 것이며, 실제로 그러한 움직임도 목격되는바 공용어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이제, 여기서 문학의 쓸모를 찾는다.

1) 이 언어를 합의 및 개발하는 것에도 우주력 4569년이라는 시간이 소모되었다. 압도적인 문명이 없기 때문에 모든 문명은 소수문화, 소수문명에 속한다. 문명마다 소통체계와 방식이 너무나 다르며 발성방식과 독해방식도 마찬가지여서 언어를 새로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굳이 소통하고 교류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으나 타자가 '있음'을 무시할 수 있는 문명은 거의 없었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문명에 찾아가 그를 설파하고 동의를 구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도입에 앞서, 편의상 칭하고는 있으나 우주의 면적과 그곳에 사는 수많은 생명체들을 고려한바 외계라는 용어는 정확하지 않음을 미리 밝힌다. 외계라는 단어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며 우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모든 것이 일부일 뿐이므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외계란 없다. 바꿔 말하면 외계란 단어는 신성모독이다. 우리는 우주 각지에서 발견된 다양한 형태의 속칭 외계인들을 정의할 공정한 지칭어를 발견하기 위해 몹시 애써야 했으며2) 마침내 서로의 존엄함과 존재방식을 인정한다는 뜻에서 '존재자'로 부르기로 결론지었다. 존재자들의 존재방식에 따라 각 은하에서 발전한 문학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며, 개중 밀크드로메다3)의 언어를 따 이 형태를 장르라고 칭한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외계문학이라는, 밀크드로메다의 편협하고 국소적인 단어로 인해 문학의 가능성이 어쩔 수 없이 줄어들었음을 개탄하는 바이다.

2) 인간의 형태를 가진 것은 인간뿐이다. 그러므로 외계인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차라리 인간이 외계인임을 인정했을 때 더 빠른 논의와 합의가 가능할 것이다.
3) 지구는 밀크드로메다(Milkdromeda. 약칭 밀코메다)에 속한다.


지금 여기, 코스모스

우주력 5894년 지구의 우주비행사 세인트 줄리 버드와이저는 처음으로 밀크드로메다 바깥으로 벗어나는 우주선에 올랐다. 그녀는 방향을 잃고 아무 곳을 향해 거의 쏟아졌고 죽음을 예감할 무렵 자신이 다른 은하에 들어와 있음을 깨달았다. 새로운 문명은 버드와이저를 환영했으나 버드와이저는 그것을 적대적인 언어로 오해하여 공포에 질린 채 사망하였다. 그러나 지구 기준의 죽음일 뿐 버드와이저는 신디로퍼메다에서 환생하여 두 번의 불같은 사랑을 한 뒤 열다섯 명의 후계를 낳고 사망, 또 다른 은하로 빨려 들어갔다. 불교에서 주장하던 환생이라는 것이 엄밀한 의미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새로운 발견은 우주의 원리를 조망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모든 종족을 희망케 또 절망케 하였다. 우주 밖으로는 절대 나갈 수 없다. 이런 깨달음 속에서 전생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모험이 불행한 연인이나 가족 혹은 친구에게 유행처럼 번졌다. 전생 전문 탐사 탐정은 유망 직업이 되었다. 지구 존재자들이 상상해 온 문명의 궁극적 형태는 기계문명이었으나 은하는 제각기, 그보다 더 다양한 형태로 형성·확장되고 있었다. 발생과 진화는 지구 존재자들의 상상을 훨씬 넘어서는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외계 존재자들이 지나친 개별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혹시나 약간의 유사성을 보이더라도 문명과 개체는 환경을 비롯한 후천적 요인에 따라 전혀 상이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지구에 없는 원소기호나 공식법칙도 다수 발견되었다.
존재자들은 서로 어떤 문명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어떤 문명에는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었다. 지구 존재자들은 크기만으로 그 위험을 판단하는 성향이 있었으나, 오랜 설전 끝에 크기는 일부 존재자들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는 것 외에 조금의 영향관계도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주력 8627년에 맺어진 상호불가침 조약 및 평화교류 협약으로 존재자들은 서로의 안전보장을 위해 일시적인 고립을 선택했다. 너무나 많은 종족이 존재하였으므로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제대로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주는 그것을 정리하고 기록할 필요를 느꼈고, 이 필요성에 의해 최초의 우주임시정부가 출범했다. 은하와 행성의 대표자들은 소통에 난항을 겪은 끝에 각 은하에서 지원자를 모집하였다. 이때부터 공용어의 필요성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우주임시정부는 밀크드로메다에서 제안한 순열조합의 원리에 따라 어떤 종족이 어떤 종족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하나씩 만나 보게 하였다. 초기에는 특정 존재자의 호흡만으로도 전 업무가 일시 마비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외에도 예상치 못한 불의의 사고로 지원자가 사망하는 경우가 속출하였으나 현재 데이터는 거의 확보된 상태이다. 존재자들은 각종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우리가 여기에 있음을 말하기를 그치지 않았는데 그것이 외계문학이 대두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우리가 여기 있음을 알리고 그들이 거기 있음을 아는 것. 가장 먼저 공용어의 필요성을 역설한 이들이 문학을 하는 존재자들이었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그들은 다른 문명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읽고 싶어 하였으며 잘못된 의사소통과 오역의 가능성에 미리 겁을 먹었다. 우주는 지금도 팽창하고 있으며 그것은 인간이 살이 찌는 양상과 비슷하다. 공전과 자전은 소화 작용의 일종이라고 종교 관련자들은 말한다.


모든 문학이 그러하듯, 외계문학의 화두 역시 로맨스이며 언제나 종과 족을 뛰어넘는 사랑의 양상을 그려내 독자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4) 그 형태가 기록 문자에 국한되지는 않지만, 외계문학 역시, 기존 문학이 수행해 온 바와 같이 자신이 지닌 세계를 자신만이 그려낼 수 있는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가장 긍정적으로 손꼽히는 점은 사랑의 바운더리가 넓어졌다는 점이다.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작품에는 사랑의 흔적이 얼룩처럼 묻어 있다. 결국 모든 문학은 어떤 식으로든 사랑에 수렴된다. 사랑은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는다. 기록되거나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희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들은 생식과 생산의 영역을, 교감과 쾌감과 고통을 뛰어넘었다. 외계문학의 존재를 통해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단어를 다시 한 번 고찰하게 되었다.
우주에까지 이름을 떨치고자 하는 작가들은 반드시 어떤 종류의 사랑 이야기를 썼는데, 로맨스의 기준이 달랐으므로 다른 문명에서 지극한 사랑의 행위는 터무니없이 멍청한 짓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가령 지구에서 야심차게 번역한 『로미오와 줄리엣』5)을 읽은 ㅍㅌㅌㅍㅍㅎ6) 존재자는 "왜 그들에게 아들을 바치지 않소?"라고 물었으며 엔누아키7) 존재자는 나이를 세는 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이토록 잡다한 행위들이 어떻게 문학이 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극이라는 개념이 없는 문명은 희곡 형식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들은 섣불리 지구문학을 천박하다고 결론지었다. 그밖에도 그들의 이름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에 큰 어려움을 겪거나 ― 개별자가 존재하지 않는 행성 역시 존재했으므로― 왜 로미오가 머큐시오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는지를 궁금해 하거나, 유모라는 개념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 그들은 유모가 줄리엣의 애인이라고 생각했다 ― 인물 간의 갈등 관계를 일절 이해하지 못하였다. 성이나 무도회처럼 대부분의 명사와 행위를 설명하기 위한 사전도 따로 집필해야 했다.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하나의 행위를 이해하는 것조차 실패하는 경우가 잦았음에도 작가는 전에 없는 유망 직업으로 떠올랐다. 바로 그 때문에 작가이기를 포기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에 의하면 우주적으로 이해받는 일은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여전히 작가이기를 선택한 이들은 우주적으로 인정받는 작품을 쓰겠다는 야심을 은밀하게 키워 나갔으며, 대부분 고뇌와 실패 속에서 죽어갔다. ―일부는 이를 두고 공용어가 부족한 탓이라고 주장했다.―
지구에도 각 은하의 소위 '베스트셀러'들이 번역되어 들어왔고, 이들을 한 권쯤 가지고 있는 것이 트렌드가 되었다. 취향에 자신이 없다면 당장 책장에 외계문학 한 권쯤 꽂아 놓으라!8) 이후 독자들의 독서 행위는 의미를 읽어내는 것보다는 글자를 읽는 것에 치중되었다. 지구 존재자들은 읽을 수는 있으나 이해할 수는 없는 문장을 읽을 때 어떤 아름다움이 발생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 문장은 기존 지구의 보편이나 상념을 훨씬 뛰어넘어서, 묘사되고 전개되며, 문장적인 오류가 없고 분명히 읽을 수 있는 데다가 실제로 그것을 발음할 수 있었는데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9) 또한 지구 존재자들이 이미 익숙한 '책'의 형태가 아닌 '책'을 읽는 것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일부 지구 존재자들은 펼치거나 읽을 수 없는 책을 눈앞에 두고, 역사적인 몇몇 순간 지배자들이 책과 도서관에 불을 질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들은 읽을 수 없는 책을 두고 애쓰는 대신, 책이 불타는 아주 잠깐 동안 지속되는 일말의 온기를 상상했다. 책은 딱 그만큼만의 쓸모가 있는 건지도 몰랐다.
지구 존재자들은 글자 자체와 말도 안 되는 문장이 적히는 것에 대해, 그 말도 안 되는 문장들이 어딘가의 말이라는 것에 대해 재미를 느꼈다. 문장들은 완결성이 있고, 그 자체로 어떤 것을 지칭하고 보여주는 듯했으나 선명함을 지니고 있지는 못했다. 그에 감동받아 우는 사람도 있었다. ―몇몇 전생 탐사 탐정들은 전생의 흔적이 희미하게 묻어 있는 까닭이라고 주장한다.― 글자의 있음과 의미의 없음이 만들어내는 간극이 곧 신의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었다. 공통예술의 자리는 음악과 회화와 조각이 차지했다. 공통예술은 당분간, 도리 없이 재현의 영역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4) 지구문학 『로미오와 줄리엣』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5) 우주력 8888년 현재, 지구문학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대표로 극소수의 작품만 번역되어 있는 상태다. 지구문학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번역할 수 있을 정도로 온전히 보전된 작품의 수는 많지 않다. 지구력 2025년을 기점으로 독서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 이후부터 오랜 시간에 걸쳐 벌어졌다.
6) 표기할 만한 적당한 언어가 없어 임의로 표기한다.
7) 그들에게 시간 개념은 없다. 그들은 그냥 '있다'.
8) 월간 코스모스 창간호 '당신도 될 수 있다, 우주 힙스터' 참조.
9) 번역자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는 바이다. 그들은 외계문학의 아름다움을 알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 때문에 비탄에 빠져 죽어갔다. 그들이 죽기 전까지 쓴 일기들은 고통스러워 차마 읽지도 못할 정도다. 그들이 고통 속에서 초석을 다져 놓지 않았더라면 누구도 이제 와 그것을 시작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에 이르게 한 그 많은 시행착오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초기 번역자들의 이름은 마지막 페이지 참조.


탐정이 말하는 외계문학 : 전기부터 시까지

우주 철학자들은 새로운 고민에 봉착했다. 더 이상 다양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해진 우주 속에서, 우주의 엔트로피가 보존된다는 절대법칙을 발견한 이상 다른 방식의 존재론적 고민이 필요했다. 어떤 것도 진정한 의미에서는 죽지 않게 된 것이다.10) 이것은 수많은 우주 주민들이 자신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의도치 않게도 자신이 물리적으로 우주의 부위 중 하나라고 믿는, 유물론적 사고로 이어졌다. 개인이 결정적인 무언가를 이루고 있다는 착각이 우주를 사로잡았다. 영원이라는 개념이 삶에 개입했으므로 시간은 무의미한 것처럼 보였다. ―비록 시간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문명이 있었을지언정― 이때 복원된 과거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더 많은 사랑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무엇도 진정 끝나지 않는다는 것, 자신이 우주라는 유기체를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일부 ― 그 역할은 스스로 알지 못하더라도 어디선가 높은 차원의 기능이 수행되고 있을 것이다 ― 라는 사실을 깨달은 우주 대부분의 존재자들은 자신의 전생에 크나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것을 탐색하고 알아내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자신이 무엇이었는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생활하였으며, 어떤 방식으로 죽어갔는지를 알고 싶어 했던 것이다.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존재 방식 자체가 아예 달랐으므로 전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것은 점차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제 화두는 다음엔 무엇이 될 것인가, 였다. 또한 부유하게 된 일부 존재자들은 자기 자신의 부가 온전히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크나큰 매력을 느꼈는데 멍청한 후손들에게 힘들게 번 대가를 유산으로 물려주지 않아도 되었고, 동시에 힘들게 축적한 자신의 부가 어떻게 쓰일지를 자기 자신이 온전히 지켜보고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존재자들은 전생 전문 탐사 탐정에게 자신의 후생을 찾아 주기를 의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순수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일이었으나 전 우주가 소유라는 개념에 사로잡혔다. 어느 은하의 어느 행성에서 무엇으로 태어나 무엇으로 살아가든, 탐정들은 그들을 찾아내어 전생의 기억들을 들려주고 어마어마한 유산을 스스로에게 상속하게 한 뒤 보수를 받았다. 물론 은하와 행성이 다를 경우 그 어마어마한 유산은 쓰레기에 다름없었지만 일련의 과정이 누적되다 보면 운 좋게도 이전에 태어났던 행성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또한, 무엇이든 없기보다는 있는 편이 좋았다. 상실은 상실되었다. '있음'이 우주적으로 누적되기 시작했다.
운이 좋지 않을 때는 이 탐사 과정에 어마어마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 흔적을 추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때로는 후생을 찾기까지 이대나 삼대의 시간을 건너뛰었다. 수명이 행성마다 달랐으므로 어떤 탐정들은 조상의 임무를 유산 대신 물려받았다. 물려줄 것이 없는 자들이나 물려주고 싶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물려줄 것이 없는 자들은 지금이 빠르게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다음 생엔 어쨌든 좀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그들은 버텼다. 물려주고 싶지 않은 자들에게도 심오한 이유가 있었다. 다음생의 자신에게 지금의 자신을 빚 지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 순간에만 자기 자신이기를 선택한 존재자들은 자신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이 되는지에 의문을 품지 않은 채로, 흔적을 굳이 남기려 애쓰지 않으면서, 이 우주적 사실을 외면한 채 살아갔다. 전생의 자신에게서 아무런 메시지들을 받지 못한 자들은 평생을 기다림 속에서, 스스로에 대한 원망 속에서 죽어갔다. 자기가 무엇이었는지를 분명히 밝히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자신의 전생목록 중에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 자들은 어떻게든 연결고리를 말소시키기 위해 애썼다. 존재자들은 미래의 자신을 불행하게 하지 않기 위해 현재의 삶을 조심스럽게 살 수밖에 없었다. 다음 생의 오점이 될 수는 없었다. 다른 것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자신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완벽하기를 바랐으므로 그들은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였다. 그러나 윤리기준이 행성마다 판이하게 달라 석연찮은 구석은 언제나 어디서나 발견되었고 그들은 어떤 이유로든 고통 받았다. 자기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받은 이들도 점차로 불행해졌는데 소유한 것은 많았으나 자신이 지금 누구인지 알 겨를도 없이 자신이 이전에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만 골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알더라도 이해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끌어안은 채로 죽어갔고 그것은 일부 사람들이 언어를 기피하는 이유가 되었다. 자신이 그 자신임을 증명하는 것이 이 세계의 가장 숭고한 과업이 되었다. 그러나 그럴 용기를 낼 수 있는 존재자도, 기꺼이 그러기를 선택할 수 있는 존재자도, 그러할 필요성을 느끼는 존재자도 많지 않았다.
자기 자신에게 질식당하는 일과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남는 일을 존재자들은 두려워했고 그러자 이번에는 신을 의심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이 세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모두가 하나같이 이렇게 불행해질 리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도 괴로울 수밖에 없으며, 어떤 것을 선택해도 자신을 의심하고 파괴하고 얽맬 수밖에 없는 세상에 갇힌 채 뭔가를 알아냈다고 여기는 순간 세계가 더더욱 닫히는 것을 절망적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했다. 신을 기어코 버리게 한 것까지 포함하여 우주는 나빴다. 존재자들은 이해했다고 여긴 순간 믿음을 잃었다.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다. 어떤 연인이나 가족은 죽음으로 모든 것에서 해방되고 싶은 존재자를 놓지 못해 끝끝내 찾아냈다. 혹은 복수심과 증오에 불타 온 우주를 뒤졌다. 그를 다시 죽이기 위해 탐정을 고용했으며, 발견하지 못하면 다음 생의 자신에게 복수를 상속하기도 했다.
우주통일론자는 이것을 우주통일 필요성의 첫 번째로 꼽는다. 어느 가족도 연인도 친구도 헤어질 수 없게 언제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면 온 우주가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주통일 반대론자는 다음 생을 온전한 다음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내세우며 여기에 반대한다. 급진주의자는 우주가 시작부터 이미 망한 거라고 주장한다. 우주는 재활용된 영혼들로 가득하며 누구도 나갈 수 없고, 이제 그 영혼을 빨아 쓸 수조차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누구도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한편 아직 수명이 가늠되지 않아 단 한 번도 죽지 않은 존재자들도 있다. 존재자들은 그들을 부러워하거나 증오했다. 단 한 번도 죽지 않은 존재자들은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죽는지, 죽을 수는 있을지 궁금해 했지만 정말로 죽음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들은 살해당할 거라는 망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신은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침묵을 지켰다.

10) 우주 철학자 코그니타리아트는 '노동하는 영혼'이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일련의 사실로, 혹시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를 것을 이해하기 위해 전기를 편찬하는 것이 우주적인 유행이 되었다. 어디서 태어날지 모를 후생의 자신에게 지금의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용어가 필요하므로 전기의 유행과 더불어 공용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의뢰자들이 후생의 자신에게 잘 보이기를 원했기 때문에 일기나 자서전보다는 전기가 선호되었고 이런 흐름에 따라 문학성이 첨가되었다. 전기 작가들이 자신의 '지문'을 남기고 싶어 했으므로 현상은 심화되었다. 그러나 공통언어를 만드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다. 문학의 형태가 이미 판이하게 다르고, 선별한 '텍스트' 자체를 신뢰하지 못하는 문명도 있다. 당장 온전한 번역이 이루어지기 힘든 이유이다. 아무리 훌륭한 번역가가 붙어도, 섣불리 가미한 '문학성'이 돌이킬 수 없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신체구조와 화학반응이 전혀 달라 서로에게 없는 행위 체계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문제 중 하나이다. 행위와 의미를 직결시키는 일은 상당한 어려움을 동반하고 있다. 이에 대한 묘사는 완전히 무의미하다. 이를테면 존재자들은 처음 마주하는 순간부터 큰 혼란과 두려움에 빠진다. 어디가 눈이며 손이고 심장인지 알아볼 수 없으므로 상대가 무슨 생각인지 무슨 의도인지 알아차릴 방법이 요원하며 만진 것이 우연히 성기이기라도 한다면 굉장히 큰 실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눈을 찌르거나 심장을 잘못 잡아 테러범이나 살해범이라는 오명을 쓸 수도 있다. 우연과 실수로 우주국제재판에 소환되고 싶은 존재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하나의 정립된 형태를 가지지 않는 존재자들 역시 존재한다. 이들은 세포적으로 끊임없이 구성과 해체를 반복하여, 존재자를 하나의 독립된 실체 혹은 구성체로 판단하던 밀크드로메다 문명에도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이렇듯 다른 생김새부터 시작하여 의식주와 사고 체계, 말하는 방식과 행동하는 양식이 다른 채로 누적되어 온 만큼, 존재자들은 마주하는 순간부터 깊은 골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얼굴을 볼 수 없으면 의심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비난할 수도 없는 일이다. 공용어에서 신체를 사용한 소통이 일찌감치 배제된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사소한 실수로 나쁜 의도가 없음에도 오인당하고, 그리하여 전우주대전이 발발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아마 그 전쟁은 끝나지 않고 계속될 것이며 누구도 이 판에서 진정 벗어날 수 없는 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다음 생에도, 다다음 생에도 무의미한 전쟁을 계속하며 그로 인해 다시 죽는 당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여러 이유로 현재의 외계문학은 전기와 일기를 중심으로 구성되고 있으나 공용어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더욱 섬세해질 것이며, 공용어 역시 문학과 함께 그 결을 다듬어 갈 것이다. 이때 탐색의 일환으로 시가 대두되었다. 그러나 시가 시로 무사히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 의문이다. 번역의 과정에서 시의 언어가 아닌데 시로 오인 받는 경우가 있었다. 시의 언어인데 공격 신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었다. 발성 방식이 전혀 달라 낭독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어디에서는 아름답고 우아한 언어가 어디에서는 위협적이고 공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아름답지조차 않아지자 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되었다! 시 창작자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존재론적 고찰과 우주적 슬픔을 정제된 언어로 우아하게 표현한 문장들이 전쟁과 선전포고를 불러왔던 것이다. 실제로 낭독회로부터 시작된 국소적 우주전쟁이 486차례 있었다. 위기를 느낀 몇몇 시 창작자들은 시의 보존과 권위를 위해 우주 시 연합회를 구성하였으나 각자의 연원이 다른 탓에 금세 와해되었다. 현재는 거의 명목만 남은 상태다. 그러나 전생과 후생을 찾기 위해 기록이 화두가 된 이후로, 이것을 포기할 수도 없게 되었다. 다음의 나에게 지금의 나를 가장 아름답게 남기기 위해, 존재자들은 기록하는 문자와 언어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이는 시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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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한 전생 전문 탐사 탐정에게 문의한 결과, 전생 탐사는 우리가 꿈 또는 무의식이라고 불리는 것을 이미지로 추출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존재자들은 각기 다른 외양과 문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이나 가사상태, 혹은 이름 붙일 수 없으나 수면과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어떤 상태에 돌입한다는 공통점을 보였다. 특수 제작된 기계를 사용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언어나 장면을 추려내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한다고 탐정은 밝혔다. 혼란스러운 요소가 많으므로 관찰력과 추리력, 다중시야, 냉철함이 필수 덕목이다. 탐정이 맡았던 의뢰 한 가지를 소개한다. 한 의뢰자의 꿈에 앞치마의 주머니에 돌을 집어넣으며 강으로 달려드는 여자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여자는 술을 마셨고 과격한 논쟁을 벌였으며 산책을 오래 하고 약을 먹고 잠들었다. 침대에 앉아 무릎에 종이를 대고 깃털 펜의 꽁지를 빨기도 했다. 짐작할 수 있듯 의뢰자의 전생은 버지니아 울프였는데 『자기만의 방』이 번역된 이후였기 때문에 텍스트를 미리 접했던 의뢰자는 매우 감격해 오랫동안 울었으며 어쨌든 이제는 자신만의 방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의뢰자가 이번 생을 아주 행복하게 살 거라고 결심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노라고 탐정은 회상했다. 탐정은 아주 두둑한 보수를 받았다. 현재는 은퇴한 뒤 자신의 후생에 재산을 모두 상속하고 지구 특산물 마라를 먹으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경고! 지구를 조심하시오


세인트 줄리 버드와이저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 보도록 하자. 버디, 버디, 버디, 그녀의 이름은 먼 곳에서 오랫동안 울려 퍼졌다. 친구여, 친구여, 친구여. 암흑물질로 가득한 우주에 친구를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가 퍼졌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 지구 문명을 처음 발견한 것은 이것을 공격의 신호로 받아들인 콘푸라이트메다 존재자였다. 빨판형 에너지 흡착 존재자인 옥푸토스는 자신의 전생을 찾기 위해 우주의 끝단인 밀크드로메다까지 내려온 상태였다. 그는 아직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했고 과거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에게 남겨 두었을지도 모를 어떤 극적인 것을 찾기 위해 우주를 헤매는 중이었다. 별안간 그는 자신들에게로 쏟아지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의 메시지를 듣는다. 버디, 버디, 버디. = 죽일 테다, 죽일 테다, 죽일 테다.11) 옥푸토스는 자신의 조종선을 추슬러 싸움을 대비했다. 그의 조종선은 탐지용이었으므로 전쟁에 관련된 기능은 조금도 없었다. 그의 목적은 최대한의 방어였다. 그가 지구 방향을 향했을 때, 지구는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면서도 어떤 물리적인 공격을 취해 오지는 않았다. 버디, 버디, 버디. 옥푸토스는 분노와 공포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나 문득 자신이 미지의 언어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12) 지구 문명은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구 문명은 대부분의 우주존재자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는데 어떤 것도 싸움의 구실로 이용한다는 것이 그랬다. 성기의 모양으로 존재자들끼리 교묘한 차별을 하며, 어떤 형태의 사랑을 집단적으로 배척하는 데다, 서로의 가능성을 비정상으로 치부하고 거부하는 태도가 그랬다. 지구에서는 말도 되지 않는 일들이 통용되고 있었다. 옥푸토스가 아니라 지구의 입장에서 소위 위협적이라 불리는 문명이 지구를 발견했다면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한 옥푸토스의 인터뷰를 첨부한다. 어, 그때 있었던 일 말인가요? 어떤 여성 배우의 말이 큰 논란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영화가 개봉된 직후라고 했는데 제목은 잘 생각나지 않는군요. 미안합니다. 어쨌든 그 배우가 무슨 말을 하자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폭언을 퍼부으며 위협했더랍니다. 지구에서는 그런 일이 잦다고 하더라고요. 마치 누군가 실수하길 호시탐탐 기다렸던 것처럼 말이죠. 지구인들은 쉽게 발끈하더군요. 무척 호전적인 것 같습니다. 당시에 저는 무척 긴장한 상태였는데 막상 지구에서 벌어진 일을 전해 듣고는 무척 허탈했습니다. 옥푸토스가 숨을 죽이고 기다리는 동안 지구에서는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남용한 범죄자들을 고발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터졌는데 고발된 자들은 일말의 반성하는 기미도 없이 마치 외계에서 온 자들처럼 알아들을 수도 없는 헛소리들을 계속했다. 존재자들은 이에 맞서 연대했다. 이상한 일입니다. 그들이 손을 잡을 때 저는 뭔가 아름다운 게 있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별적으로 있을 때는 없었던 어떤 것이 둘 이상이 되자 갑자기 생겨나더란 말입니다. 나는 그걸 신이라고 부르고 싶었는데요. 그러니까 신이란 건 어떤 순간을 지칭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네요. 더 이상한 건, 그렇게 아름다웠던 게 집단이 되자 갑자기 다시 징그러운 것이 되어버렸단 말입니다. 전체적으로 너무 이상한데 하나씩 뜯어보면 아름다워서, 저는 슬펐습니다.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지구의 난장판을 지켜본 존재자들은 자신의 후생이 지구로 이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어떤 존재자들은 지구로 인해 자신의 성기 모양을 인식하게 되기도 했다.13)

11) 콘푸라이트메다 언어 연구자인 데빌 데스페라도스씨의 의역이다.
12 실제로 우주 전체적으로 지구는 지구라기보다는 옥푸토스 보아따로 더 알려져 있다.
13 그걸 알게 된 게 내 크나큰 강박관념의 시작이었어요. 콜레스테롤메다 출신의 MAC N CHEE가 말했다. 지구 존재자들이 혀의 위치를 어디에 둘지나 숨을 어떻게 쉬는지 고민한다는 문장을 읽었는데 지금 내 처지가 딱 그래요. 내 성기가 이렇게 생겨서는 여기 붙어 있다니까요. 이게 가끔 이렇게 움직이고 내가 독서를 하거나 일을 할 때도 이 모양인 채로 여기에 있다고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이렇게 움직인다고요. 그런데 하지 않으면 이렇게 되어버리고요. 그럼 내가 다른 걸 할 때는 이런 상태라는 거죠? 그런데 원래 이게 여기에 있는 게 맞나요? 다른 일을 할 때도 여기에 이렇게 있는 거예요? 여기서 뭘 하는 거죠?


종족에 따라 성기는 돌출형과 함몰형을 제외하고도 다섯 가지가 더 발견되었는데, 이는 우주적 섹스가 표면상 일곱 가지임을 의미하며, 우주적 젠더는 기하급수적이라는 뜻도 된다. ― 일부 행성을 제외하고 ― 우주는 공식적으로, 외관과 형태에 의거해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를 증명하고 선언하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것에 동의하였다. 성교를 하는 방식 역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데14) 모든 성교행위가 그렇듯 누군가에게는 흥분을 누군가에게는 구토와 공포를 유발하였다. 누군가는 의료행위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 생식은 입을 통해 혹은 뇌를 통해 이루어졌다.15) 생식은 그 자리에서 바로 진행되기도 하고 길게는 몇 억 년을 기다려야만 하기도 한다. 수정란(알의 형태가 전혀 아닌 것도 있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리 잡기' 때문에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우주존재학 제6권 생명의 신비를 참고하기를 권고하는 바이다. 어쨌든 그러한 탓에 로맨스는 종종 호러로 오인되었다. 외계문학의 장르 구분이 아직까지 논의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외관과 형태가 판이하게 달라 시작된 오해는 끝도 없었다. 손을 좌우로 흔드는 행위의 의미가 인사가 아니라 성교를 하자는 의미이거나 혹은 너의 가족을 죽이겠다는 의미, 당사자를 심하게 모욕하는 의미이기도 했으므로 그러한 몸짓을 처음 마주친 문명들은 서로에게 몹시 당황하였다. 입을 통해 말하는 종족도 있으나 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종족도 있었다. 이것이 발성기관이 아닌 종족도 물론 있어서 입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이면서 다른 방식으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안다면 존재자들은 분명 매우 놀랄 것이다. 다른 문제도 있다. '촉수기관'이나 초음파, 특정 주파수를 통해 소통하는 존재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의 교감을 어떻게 문학화 할 수 있단 말인가. 다른 입과 없는 입으로 오해당하지 않고 시를 쓸 수 있을까. 그러나 오해당하지 않으면 그것이 시인가.

14) 카토테스티카타 박사는 이에 대해 우주 카마수트라 전집 49권을 발간하였으며 여기에는 495억 6458만 가지의 체위가 삽화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15 지구 존재자들은 이 대목에서 도저히 흥분할 수 없었다.


NASA의 수석 연구원이었던 나탈리 라이살은 우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던 중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여긴 트럼프의 머릿속이다!
그녀는 세인트 줄리 버드와이저의 연인이었다. 지구 존재자들은 연인을 잃은 라이살이 드디어 미쳤다고 혀를 찼다. 라이살은 아프리카계 러시아 여성으로 키가 크고 쾌활하였으며 무척 명석하였다. 버드와이저는 노랗고 날렵한 라이살의 눈을 특히나 좋아했다. 라이살은 버드와이저가 우주에서 허망하게 사망한 뒤 연구에 전심전력으로 매진하였다. 늘 현미경만 들여다보았고 골똘히 생각에 빠진 채 헤어 나오지 못했다. 누군가가 망설이다가 트럼프가 누구냐고 물었다. 누구든 될 수 있다. 라이살은 비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존재자들이 말을 이어 갈 기회도 주지 않고 라이살은 소리 질렀다.
결국 우리는 망상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뇌세포다! 당신들은 모두 내 시냅스 속에 있다!
누구도 라이살에게 반응하지 않았다. 버드와이저가 환생해 다른 은하에서 자식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라이살은 수많은 도식이 적힌 종이들을 두고 저택에서 목을 맸다. 백 스물둘의 지구 존재자가 모여 그것을 검토한 결과 라이살의 주장에 일말의 근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지구 존재자들은 이것을 개괄적인 언어로 우주에 알렸다. 그러나 라이살이 말한 자가 도대체 누구인지는 아직 특정하지 못했다. 우주에서는 현재 이것이 누구의 머릿속인지에 대한 탐사를 암암리에 시행하고 있다. 누구의 머릿속인지를 알게 된다면, 그의 머리를 폭파시켜 이 우주를 탈출할 수 있다는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가끔 당신의 머릿속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면 우주 경찰16)에 긴급히 신고하길 바란다. 당신의 귀한 희생으로 전 우주는 새로운 차원에 도달할 수 있다.
라이살의 이론에서 파생된 급진적인 종교를 잠시 소개한다. 그들은 우리가 신의 일부를 구성하는 세포라고 생각한다. 신을 조금이라도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훼손하는 것이 이 종교의 행동지침 가운데 하나이다. 신이 조금이라도 아팠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다. 혹시나 당신이 그 종교를 믿고 있다면, 무의미한 자기 파괴를 멈추기를 바란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정적인 한 방이다.

16) 은하번호+행성번호+8282


장르로서의 외계문학

공용어 논의가 대두되면서 우주문학과 관련된 여러 협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외계문학이라 불리는 장르 문학 마니아들은 갖가지 단체를 만들고 합치거나 분리하며 교류를 이어 나갔다. 이 협회들은 단순한 호기심과 즐거움을 위한 것뿐 아니라 학술적 목적을 가지고 애정과 노력을 보이며 연구에 공헌했다. 이들은 여전히 자발적으로 문학을 전문적으로 발굴, 수집, 번역, 해석하고 있다. 이에 시간과 공을 들일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이 무던히 노력한 끝에 행성 B-612에서 어린 왕자의 일기장이 발견되었다. 이 기록체계를 이해하는 사람은 어린 왕자 자신밖에 없었으므로 ― 그는 이미 유골이었다. 장미는 몹시 시들어 있었고 살리기 위해 많은 존재자들이 설득하거나 물을 주는 등의 노력을 거듭했으나 모든 것을 거부한 채 우주력 1568년 사망하였다. 일기에 대한 독해 작업이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알파벳 모음 a, e, o와 자음 d, f, b, w, t에 해당하는 문자를 식별해 내는 것에 성공하였다. 이는 어린 왕자가 지구를 방문하여 만난 비행사에게 알파벳을 배운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지구 문명은 그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했으나 우주문학사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그가 아무 후손을 남기지 않았으므로 이 언어는 사멸하고 말았다. 일부 우주문학 마니아들은 사람을 풀어 어린 왕자의 후생을 찾아냈다. 그는 이미 다음 생을 살고 있었으므로 자신이 무엇을 쓰려고 했는지 조금도 기억하지 못했다.17) 그는 움파룸파 은하의 초콜릿 강 부근에 살고 있었는데 움파룸파 은하는 초음파와 비슷한 신호를 발산하여 소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게 전생이라는 개념을 이해시키는 것만 해도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 학자들은 이런 신호 체계가 내재된 생체 도구를 개발해야만 했다 ― 글자를 인식시키고 기능을 설명하는 것에 공을 들였다. 그는 결국 전생의 자신이 무엇을 썼는지를 알아채지 못한 채 다시 사망하였다. 그가 거듭 다시 태어날 동안 마니아들은 같은 방식의 노력을 반복하였고, 성과가 없자 마침내 포기하였다. 일기는 그대로 사장되었다. 현재 일기는 코스모스 리터러처 뮤지엄18)에 깨끗한 상태로 보관되어 있다. 이 뮤지엄에서는 각종 희귀 언어와 희귀 문학들을 보관하고 있다. 입장료는 아몬드 다섯 알이다. 아몬드는 상당히 많은 은하에서 자라고 있는 뿌리형 에너지 섭식 존재자이므로 가까운 행성에 문의하면 쉽게 구할 수 있다. 물론 마음대로 갈취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짓으로 반드시 당신의 소중한 열매 ― 알, 젖, 보석, 불알, 돌멩이, 요도결석, 장난감, 뇌 등 그것을 인식하거나 지칭하는 체계가 다르므로 안내서를 참고하여 정확하게 물어야만 한다 ― 를 조금 사거나 빌리거나 나눌 수 있는지 양해를 구하는 것이 옳다. 외계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판단력과 예의는 있을 것으로 사료되나 노파심에 적어 둔다. 외에도 이 뮤지엄에 있는 지구문학으로는 귀여니의 『늑대의 유혹』19), 함기석의 『오렌지 기하학』20), 마야 데렌의 영화21), 스테판 말라르메22) 등이 일부 번역되어 있다. 소개할 만한 지구문학 창작자들이 더 있으나 뮤지엄을 소개하는 자리는 아니므로 말을 아낀다.

17) 일부 지구 존재자들은 이 처사에 크게 분노하며 다른 우주 존재자들은 감정도 감성도 이해도 없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이해한다면 절대 그런 짓은 할 수 없었을 거라는 것이다.
18) 페로로로쉐 은하의 누텔라 행성 전체를 사용하고 있다. 그 자신이 행성인 존재자 누텔라 씨가 기꺼이 자신의 몸을 뮤지엄으로 사용하는 것에 동의해 주었다. 뮤지엄이라는 개념은 지구에서 나온 것인데 처음에는 그 기능과 효용성을 의심하던 사람들도 점차 이 아이디어에 대해 매력을 느꼈다. 전생과 후생의 개념이 우주에 만연해지자 자신의 전생을 '박물'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박물관의 관람자는 대개 다시 태어난 자기 자신들뿐이다.
19) 보디랭귀지 문학의 시초가 되었다.
20) 그는 무척 다양한 방식으로 우주와 교신하기 위해 애썼다.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사용한 언어가 일관적인 탓에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형태가 일부 은하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은 맞아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몇 존재자들은 그가 드물게 살아온 모든 전생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었다.
21)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는 지구 문명에서는 문인이 아니었으나 작품의 기호적 측면이 우주적으로는 언어로 받아들여졌다. <오후의 올가미>에서 그들은 우주에 갇힌 존재자들의 슬픔과 고뇌를 읽어냈으며, 통찰력에 압도당한 일부 존재자들은 그를 우주적 문인으로 추대하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2)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보다는 도리어 앙드레 브르통의 작품을 보존하는 것이 맞지 않으냐는 의문 역시 제기되었다. 그러나 소통의 범위를 떠나 존재자들은 말라르메의 것에서 어떤 진심과 울림을 느꼈다고 공통적으로 말했다. 울음을 터트린 자도 있었다. 반면 브르통의 것은 어쩐지 기계적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해는 가지만 차갑고 딱딱하며 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브르통의 시를 낭송했을 때 일부 존재자들은 발작적인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으며 시간이 지나도 멈추지 못했다. 브르통은 후보에서 빠르게 밀려났다.


코스모스 도서관 방문 및 대여 문의 : melong4421@naver.com 도서관장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구처럼 스스로를 괴롭히는 방식으로 진화한 문명은 없으므로 ― 지구 문화를 이끈 가장 큰 키워드는 허영심이었다 ― 지구문학은 다양한 외계문학 가운데서도 재미있는 연구 소재로 떠올랐다. 지구는 커다란 피해망상을 가지고 있는데, 외계를 그린 지구 대부분의 작품이 외계인이 지구에 침략한다는 것을 전제로 쓰여 있다는 점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23) 외계인은 대부분 험악하고 사악하게 묘사되었으며 압도적인 힘으로 지구 문명을 짓밟고 파괴했다. 그러나 우주 구석에 처박혀 있던 밀크드로메다와 지구를 발견하였을 때 지구에 관심을 보인 존재자는 굉장히 드물었다. 오히려 지구 문명은 지나치게 작고 많고 공격적인 존재자들로 인해 비위생적인 행성으로 간주되어 관찰할 가치가 없다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당시 외계문학 연구가들은 두 가지 견해를 보였는데, 지구문학의 자의식 과잉에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고 말하는 축과 그런 망상에는 물도 주지 말라고 단호하게 끊어내는 축이었다. 군대라는 대단히 흥미로운 단체 역시 눈에 띄었는데, 지구 문명에는 무력을 모아 마음대로 짓밟고 파괴하는 잘 훈련된 집단이 존재했다. 이런 무력 단체는 일부 문명에만 존재하는 비이성적이고 야만적인 특수 요소 중 하나로, 지구는 외계에도 군대가 만연해 있다는 가정 하에 문학 세계를 전개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주 문명은 그런 방식으로 지구를 정복·침략할 생각은 없었다. 일부는 지구문학의 상스럽고 적대적인 발상에 분노하여 지구에 대한 불안과 분노와 불신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 행성은 아주 못된 생각을 하는 자들로만 가득 차 있다고 말이다! 이런 문명이 우주에 존재하는 한 조금도 발을 뻗고 잘 수 없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지구 문명은 자신들의 특수한 문화와 협소한 인식으로 빚어낸 오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던히 애써야만 했다. 관찰자와 애호가들의 의견을 제외하고, 지구문학의 이러한 특수함 역시 상대성과 다양성의 일환이라는 사실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23) 드래곤볼 Z, 마블 유니버스 참조


어디 한번 터트려보겠습니다

우주통일론자들은 다양한 이유로 우주의 통일을 주장하고 있다. 이때 선결되어야 할 과제는 어쩔 수 없이 공용어의 정비이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지식에 살을 붙여 거대한 하나의 지식으로 완성하려면 ― 기술에 대한 욕심과 각자의 문명에 대한 의구심이 크지만 ― 단일 소통 체계가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차 공용어의 개발 이후 결합에 대한 시도가 이뤄졌는데, 개괄적인 언어로 이 지식들을 모두 조합해 냈을 때 존재자들은 그들이 너무나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자기중심적으로, 선택적으로, 협소하고 편협한 시선으로 우주를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수많은 오류가 발생하여 도무지 통합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주는 퍼즐 조각이 아니었다. 더 세밀한 공용어로 이것을 다시 논의한다면 큰 틈새들을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존재자들은 기대한다.
따라서 현재 우주 임정에서 부단한 노력을 쏟고 있는 것은 공용어의 폭을 넓히는 것과 각종 개념어를 정리·번역·보급하는 것, 공용화폐를 개발하는 것이다. 우주 무역이 대두되고 자신을 자신에게 상속하게 되면서 화폐통일론이 등장했다. 어느 문명에서 보석과 귀물로 취급되는 것이 어느 문명에서는 치명적인 독극물이 되는 경우가 빈번해 공통가치를 지닌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가상의 가치를 전혀 믿지 않거나 신뢰하지 않거나 혹은 그 편리성을 알면서도 가치부여 하지 않기로 자발적으로 결정한 이들도 있으므로 이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다만 지금으로서 가장 큰 가능성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음악이다. 낭독이다. 어떤 종족의 어떤 소리는 어떤 종족에게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 때로는 오르가즘을 선사한다는 사실이 관측되었다. 단지 읽는 소리, 말하는 소리, 의미를 배제한 어떤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궁극의 충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을 듣기 위해 특정 문명에 속한 존재자를 고용하는 일도 빈번히 일어났다. 모두에게 그러한 감각을 주는 음이나 단어를 찾아만 낸다면 음악이 화폐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이 아름다운 가능성에 존재자들은 큰 기대를 품고 있다. 아직까지는 쉽지 않은데 어떤 문명이든 선호하는 혹은 선호하지 않는 특정 음이 있기 때문이다.
음악의 화폐가치를 연구하던 도중, 각자가 선호하는 음을 한데 모으자 들어 본 적 없는 화음이 발생하였다. 이 음은 인식의 차원을 넘어섰는데, 이 과정에서 우주는 보편적으로 '운다'는 개념을 획득했다. 지나치게 경이로운 나머지 종교적으로도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존재자들은 우주에 불필요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진정한 의미로 깨닫게 되었다. 이 통합 자체가 폭력적이라는 의견 또한 있었으나 그것을 듣는 순간 자체에서 오는 감동은 거부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심지어 우주의 정적 자체도 하나의 음악이었다. 지구 문명은 이 사실을 조금 늦게 깨달았는데 탐사하고 발견하는 방식이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지구 문명은 우주의 무음에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으나 그것이 마치 스페이스 바와 같은, 음악의 일부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 음악이 신인가. 우주 철학자들은 섣불리 결론내리는 일에 회의적이었지만 공통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몹시 다분하다는 것에 동의했다. ― 비관론자들은 음악을 우주에서 없애야만 죽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우리는 앞선 이유들로 음악이 공용어에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에서, 음악은 화폐의 가능성이나 종교의 가능성은 될 수 있을지언정 언어의 가능성은 될 수 없다.


일련의 서술들은 결국 외계문학에 대한 장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텍스트는 더 많아져야 한다. 그 가운데 아름답고 압도적인 것이 있다면, 정말 아름답고 압도적인 무엇일 것이다. 문학의 입장에서 생각해도 손해 볼 일이 아니다. 온 우주를 사로잡는 문학을 상상해 보라! 모든 책을 끝까지 읽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결정이 조금 쉬워질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언어를 발명하는 그 자체를 포함하여 우주문학을 다루는 일이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일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서로를 알고자 하는 것은 어쨌든 사랑이다. 그런데 외계문학을 집필하는 자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사실 공용어 만들기를 방해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면 여기까지 읽은 존재자들은 분명 놀랄 것이다. 그들의 행보는 공용어를 더욱 섬세하게 다듬는 게 아니라 결국 공용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폭로하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수많은 곳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텍스트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시대의 미덕이 산만함에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혹자는 이런 방식으로 텍스트가 늘어나고 팽창하다가는 우주가 처음 폭발했을 때처럼 일종의 문학대폭발 같은 것이 일어나 모든 것이 다 터지고 사라져 버리지는 않을지 우려한다.24) 그러나 폭발 이후 우주가 생겨났듯 폭발 이후 무엇이 올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뱉어낸 말들이 존재를 매 순간 다른 것으로 만들듯이, 그것이 쌓이고 쌓여 무언가를 결국 터트리듯이, 문학이 우주를 폭발시키는 그날까지 외계문학은 장려되어야 한다.25)

24) 일부 우주대폭발 이론가들은 책을 한 권 읽기만 해도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 있음을 주장한다. 책의 크기(S)x페이지를 넘기는 힘(H)x페이지의 수(P)x책의 수(B)=대폭발. 있는 힘껏 페이지를 넘겨라!
25) 누군가의 머리를 터트리지 않고도 여기서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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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현

작가소개 / 조시현

2018년 《실천문학》 등단.


《문장웹진 2019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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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집에 사는 소녀

빨간 집에 사는 소녀1) 김숨 1 내 방엔 거울이 있어. 빛— 빨간색. 세상의 모든 빛— “지금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2 지금, 지금, 그리고 지금, “난 다른 곳에 있고 싶어.” 3 딱딱하게, 딱딱하게, “내 사랑을 받아 주세요.” 다른 곳에선 똑같은 노래가 다르게 흘러, 다르게 슬프게, 다르게 쓸쓸하게, 다르게 외롭게. 다른 곳의 다른 나. 난 나를, 난 나를, 딱딱하게, 딱딱하게, 빨갛게, “난 설레고 싶어.” 4 다섯 살 때 처음 빛을 봤어. 네 곁에, 내 곁에, 빛은 환한 어떤 것. 아, 난 날······. 다섯 살 때 처음 빨간색을 봤어. 엄마가 빨간색을 가져다 내 얼굴에서 45도 사선 밑에 놓았어. 빨간색을 나는 외우고 외웠어. 내가 빨간색을 외우자 엄마가 빨간색을 치우고 노란색을 놓았어. 나는 노란색을 외우고 외웠어. 그리고 파란색, 흰색, 검은색. 세상은 다섯 가지 색깔로 만들어졌어. 세상은 다섯 가지 색깔로 만족해. 다섯 색깔 무지개, 다섯 색깔 도마뱀. 분홍색은 꽃에게. 초록색은 달에게. 내 얼굴에서 45도 사선 밑에 놓여 있는 빨간색만 나는 볼 수 있어. 내 방 거울은 흐르지 않아······. 5 딱딱한 벽에 딱딱하게 거울이 걸려 있어. 거울이 날 봐. 거울은 날 봐. 거울은 엄마 몰래 울고 있는 날 봐. 난 날 안 봐. 음, 흐른다는 건······. 생각하고 싶지 않아. 내가 생각하고 싶은 건 오직 하나. 6 빨간색 크레파스를 선물 받고 난 흥분해 소리 질렀어. “엄마, 난 화가가 될 거야!” 빨간색 크레파스가 흰 도화지 위를 신나게 날아다녔어. (그녀의 엄마) 뭘 그리는 거야? (그녀) 집! 빨갛게, 빨갛게, (그녀의 엄마) 뭘 그린 거야? (그녀) 집! 엄마, 난 집을 그렸어! (그녀의 엄마) 네가 그린 집을 만져 보렴. 엄마가 내 손을 내가 그린 집으로 데려갔어. (그녀의 엄마) 집에 창문이 없네. (그녀의 엄마) 집에 문이 없네. (그녀의 엄마) 집에 지붕이 없네. 난 창문을 본 적 없어, 난 문을 본 적 없어, 난 지붕을 본 적 없어. (그녀의 엄마) 집에 나무도 없네. 7 집에 나무가 있어야 해? 세상에 나무가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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