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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 꽃

  • 작성일 2020-02-01
  • 조회수 3,376

[단편소설]



계시, 꽃



고진권




○ 계시


사진 속 보디빌더는 안경을 썼고 맨바닥에 옆으로 누운 채 왼쪽 팔꿈치를 세워 벽에 비스듬히 기대었다. 왼손에 책을 들고 멀리 저쪽에 시선을 두었다. 검은색 경기용 트렁크를 입은 몸에 청재킷만 걸친 채 앞을 풀어헤쳤다. 빨간색 벽돌로 된 바닥과 벽 앞에서, 보디빌더의 몸은 벽돌보다 짙은 갈색으로 빛났다. 이 모습을 본 요한은 그 아름다움에 큰 충격을 받았다. 90년대 초반, 요한은 중학생이었다.
'왜 그 사진을 오려 두지 않았을까.'
몇 년이 흘러도 그 사진이 잊히지 않았다. 요한은 그 보디빌더를 생각하면서 몸만들기를 시작했다. 팔굽혀펴기를 했다. 하루에 50회에서 한 번에 50회로, 한 번에 50회에서 하루에 100회로, 하루에 100회에서 한 번에 100회로……. 팔굽혀펴기를 한 번에 100회 이상 할 수 있게 되자, 요한은 자극을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 손으로 점프해서 박수하며 팔굽혀펴기를 하거나 가슴을 바닥에 대며 팔굽혀펴기를 하거나 책상이나 의자 위에 발을 올려 팔굽혀펴기를 하거나 물구나무서서 팔굽혀펴기를 했다. 방법의 변화에 따라 몸의 느낌이 달라졌고 발달하는 부위가 달라졌다. 재미가 붙었다. 스트레칭과 복근 운동을 했고 단거리 달리기를 했다.
요한은 어렸을 때부터 겁이 많았고 잘 울었고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길 잘했다. 친구가 많지 않았고 구기 종목을 못 했다. 소심하고 곱상한 모범생이 될 자질이 다분한 아이였지만, 요한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소심하고 곱상한 모범생은 아름답게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한이 지향하는 아름다움은 '소심함과 곱상함'보다는 '대범함과 강인함'에 가까웠다.
'맨바닥에 누워서도 책을 손에 들 만큼 대범하고 온몸에 근육이 풍성할 만큼 강인하리라.'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요한은 몸만들기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밤늦게 집에 와서 지친 몸으로도 그날 해야 할 운동량을 채웠다. 고통스러울 줄 알면서도 강도를 높였고 고통스러운 느낌을 참아내며 목표한 횟수에 도달했다. 요한이 이런 경험의 축적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은 결국 요한의 '자기'였다. 고통스러울 줄 알면서도 운동의 강도를 높이는 '자기', 고통스러운 느낌을 참아내며 목표한 횟수에 도달하는 '자기'. 성실과 인내에 대한 보답으로서, 이보다 더한 것이 세상에 없었다. 성실과 인내를 통해 알게 된 '자기'만큼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요한은 깨끗한 교복을 반듯하게 입고 상의의 단추를 끝까지 채웠다. 교복 입는 게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거울 속의 요한이 웃었다. '너무 싫음'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자기가 웃겼기 때문이다. 나름 근육질이었지만, 요한은 대범하다고 하기엔 너무 섬세했고 강인하다고 하기엔 너무 예민했다. 그래도 거울 속에서 웃는 요한은 나름 너그러웠고 여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요한은 점점 '대범함과 강인함'에서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더 자유로운 것이 더 아름다웠다.




'맨바닥에 누워서도 책을 손에 들 만큼 대범하리라.'
고등학생 요한은 학교를 향해 달리는 지하철 열차 안에서 박경리의 『토지』를 손에 들었다. 무당의 딸 '월선'이 마을 어귀의 백사장에서 서성이며 날이 저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이 저물어야 마을에 들어갈 수 있는 신세였기 때문이다. 월선은 세상을 떠난 엄마에게 물었다.
'어매, 이 백사장이 와 이리 끝도 가도 없이 머요?'
요한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요한은 책 위에 시선을 둔 채 잠시 읽기를 멈추고 월선의 생각을 소리 없이 입으로만 되뇌었다.
'어매, 이 백사장이 와 이리 끝도 가도 없이 머요?'
한 권의 책, 한 편의 글, 하나의 인물, 문장, 단어가 있었다.
하나의 단어를 쓰는 것은 무수히 많은 다른 단어와 구분한 '그 단어'를 쓰는 것이다. '그 단어'를 쓰는 것은 무수히 많은 다른 단어와 구분되는 '그 단어'를 아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구분 짓고 지칭하는 언어는 근본적으로 앎이어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곧 인식이다.
인식은 구분 짓고 지칭함으로써 앎을 행하는 것이므로 근본적으로 어떤 대상을 분열시키는 활동이다. 이러한 인식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만 종합을 향할 수가 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단어들이 모이고 문장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합이 곧 '서술'로서 한 인물의 정신을 구성하는데, 이렇게 서술되는 한 인물은 다시 무수히 많은 다른 인물과 구분되는 '그 인물'로서, 역사 전체로부터 그리고 한 시대로부터 독립적으로 분열된 것이다.
이렇게 독립적인 인물들이 모여 관계를 맺음으로써 하나의 사건이 성립된다. 그래서 인물은 특정한 사건의 '서술' 속에서만 종합을 향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서술되는 한 사건은 다시 무수히 많은 다른 사건과 구분되는 '그 사건'으로서, 역사 전체로부터 그리고 한 시대로부터 독립적으로 분열된 것이다.
이렇게 독립적인 사건들은 한 편의 글을 통해서 하나의 의미로서 종합된다. 사건들은 한 편의 글 속에서만 종합을 향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서술되는 한 편의 글은 다시 무수히 많은 다른 글과 구분되는 '그 글'로서, 역사 전체로부터 그리고 한 시대로부터 독립적으로 분열된 것이다.
요한은 한 권의 책, 박경리의 『토지』 1부 1권을 손에 들었다. 무수히 많은 다른 책과 구분되는 그 책이었다. 한 권의 책은 요한 속에서만 종합을 향할 수가 있다. 그런데 요한은 무수히 많은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요한'으로서 역사 전체로부터 그리고 한 시대로부터 독립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이런 요한이 책 위에 시선을 둔 채, 소리 없이 입으로만 되뇌었다.
'어매, 이 백사장이 와 이리 끝도 가도 없이 머요?'
월선은 원했고 원하는 것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 어쩔 수 없음 속에서 월선은 묻고 있었다. 하느님도 아버지도 아닌 엄마, 무당으로 천대받다가 세상을 떠난 엄마에게 물었다. 요한은 책 위에 시선을 둔 채 잠시 읽기를 멈추었다.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은 강변의 백사장이 눈에 선했다. 요한은 월선을 생각했고 엄마를 생각했고 여자를, 인간을 생각했다. 학교를 향하는 지하철 열차 안에서, 책을 손에 들고 있는 자기를 생각했고 『토지』를 쓴 박경리를 생각했다. 요한은 인물이 시대로, 시대가 민족으로, 민족이 인간으로, 인간이 자연으로 이어지는 전체, 그 전체를 아우르는 견고함 속에 있었다. 그 견고함은 작가라는 개인과 인간이라는 보편을 아우르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토지』의 위대함이 요한 속에서 종합을 향하고 있었다.
위대한 소설을 읽음으로써, 요한은 언어로 구성된 정신을 단련했다. 그것은 언어를 통해서 종합에 도달하는 연습이자 '자기'를 한 시대, 그리고 역사 전체 속에서 이해하는 연습이기도 했다. 물론 이런 연습은 학문적인 글을 읽음으로써도 가능하지만, 학문적인 글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인간 지성의 '자기 전개'이다. 그러나 소설은 그렇지 않다. 소설 속의 한 인물은 여러 관점 중의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한 인물처럼, 요한은 시대와 역사 속에서 한 인물에 불과했다. 자기를 하나의 관점으로 이해할 줄 아는 요한은 자기 안에 갇혀 사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랐다. 요한이 향하는 종합은 '자기'의 밖에서, 학문적인 것과 비학문적인 것을 아우르는, 소설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음으로써, 요한은 점점 '자기'에서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더 자유로운 것이 더 아름다웠다.




"너 요즘 무슨 책 읽니?"
수학 시간, 수학 선생님이 요한에게 물었다. 요한이 박경리의 『토지』를 읽는다고 대답하자 다시 수학 선생님이 말했다.
"그 책 좀 줘봐."
요한이 책을 건네자, 수학 선생님이 책을 펴들고 학생들 앞에서 요한의 흉내를 냈다.
"얘가, 지하철에서 이렇게, 책을 보다가, 그대로 읽으면서 내리는 거야."
수학 선생님이 시선은 학생들에게 둔 채, 턱으로 슬쩍 요한을 가리키며 말했다.
"매력 있어."
그 말에, 요한이 미소 지었다.
'그렇겠지, 나는 입시 위주의 교육 속에서도 소설책을 손에 들 만큼 대범하고 팔굽혀펴기를 한 번에 백 회 이상 할 만큼 강인하니까.'
몇 년 후, 인터넷이 대중화된 어느 날, 컴퓨터 앞에서 이런저런 보디빌더들의 사진들을 찾아보던 요한은 오랜 기억 속의 그 사진을 다시 보았다.
사진 속 보디빌더의 이름은 케빈 레브로니(Kevin Levrone). 그는 안경을 썼고 맨바닥에 옆으로 누운 채 왼쪽 팔꿈치를 세워 벽에 비스듬히 기대었다. 멀리 저쪽에 시선을 두었다. 검은색 경기용 트렁크를 입은 몸에 청재킷만 걸친 채 앞을 풀어헤쳤다. 빨간색 벽돌로 된 바닥과 벽 앞에서, 그의 몸은 벽돌보다 짙은 갈색으로 빛났다. 요한의 기억 속 그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그의 왼손에는 책이 없었다. 그는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요한은 자기의 잘못된 기억에 큰 충격을 받았다.
'맨바닥에 누워서도 책을 손에 들 만큼 대범하고 온몸에 근육이 풍성할 만큼 강인하리라 생각했었는데…….'
뭔가 서운했지만 억울할 건 없었다. 그 덕에 줄곧 운동과 독서를 열심히 해왔으니까. 요한은 점점 더 아름다워졌고 요한이 추구하는 아름다움 앞에 기억은 수단에 불과했다. 자기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잘못 기억하고 있는지, 요한은 알 수 없었다. 그 알 수 없음 안에서 요한은 점점 자기의 '기억'에서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더 자유로운 것이 더 아름다웠다.





○ 꽃


「꽃」은 요한이 태어나서 두 번째로 만든 곡이다. 첫 번째 곡은 초등학교 육학년 음악 수업 시간에 만든 여덟 마디 길이의 동요였다. 선생님은 매우 칭찬했었다. 대학생이 될 때까지 요한이 다른 노래를 만들지 않은 이유는 마땅히 시도할 만한 계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한에게는 음악적 지식도 다룰 줄 아는 악기도 없었지만, 재능은 늘 있었으므로 요한이 노래를 만들기로 마음을 먹자 「꽃」의 가사와 가락은 동시에 떠올랐다.
요한은 떠오른 것을 입으로 불러 휴대용 녹음기로 녹음을 했고 녹음한 것을 들으며 기타줄을 퉁겨서 음이름을 찾아냈고 찾아낸 것을 악보에 그려 넣었다. 악보 그리는 방법은 『12시간 작곡 교실』이라는 책을 보고 배웠다. 피아노 연주를 할 줄 아는 친구를 찾아가서 악보를 보여주었고 친구의 피아노 반주를 휴대용 녹음기로 녹음했다. 반주가 녹음된 카세트테이프와 악보와 참가 신청 서류를 들고 요한은 방송국을 찾아갔다.
방송국에 도착하자 정문 한쪽에 있는 철제 초소 안에서 삼십 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남자가 오라는 손짓을 하며 요한을 불렀다.
"어떻게 오셨어요?"
구릿빛 피부, 반듯한 눈매의 그 남자는 요한에게 미소를 띠고 다정하게 물었다. 그리스 조각상 같은 정장 실루엣이 초소에 있기에는 아까웠다.
"대학가요제…… 참가 신청하려고요."
요한이 대답하자 남자는 초소의 문을 열고 서서 요한을 바라보았다. 자기를 올려다보는 요한의 흰 피부와 반삭의 머리와 선한 눈빛을 보았고 청바지에 몸에 딱 맞는 카키색 티셔츠를 입은 요한의 날렵한 근육질 몸매를 보았다. "직접 참가하시는 거예요?"라고 묻는 남자의 말에 "예."라고 대답하면서 요한이 쑥스러운 듯 웃자 남자도 웃었다. 손으로 건물을 가리키며 길을 알려주었다. 남자가 가리키는 건물로 젊은이들이 두리번거리며 들어가고 있었다.
"꼭 되세요."
길을 알려준 남자가 요한에게 말했다.
"예, 감사합니다."
요한이 웃으며 대답했다. 요한은 남자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건물로 들어가는 요한의 발걸음에 자신감이 실렸다.
낯선 사람의 호의는 요한에게 드문 일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낯선 사람, 즉 요한을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매력이 요한에게 있다는 것을 요한은 알았다. 그것은 요한의 선택과 상관없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요한의 가족과 같았다.
어린 요한은 자기가 죽으면 가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죽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문제를 감당하기로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결정한 요한은 자기의 결정에 대한 책임에 집중했다. 가족을 자랑하지 않았지만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이런 식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감당하는 요한이었으므로 자기의 매력도 그런 식으로 감당했다. 자기의 매력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지만 자랑하지도 않았다. 그러자 친구들은 요한에게 더 큰 매력을 느꼈다.
매력 있는 요한은 노래도 잘했다.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교 급우들은 틈만 나면 요한을 앞으로 불러내어 노래를 시켰다. 급우들이 좋아하면 요한도 좋았다. 좋은 반응을 얻기 위해서 틈틈이 노래 연습도 했다. 급우들은 요한의 노래, 묘한 진지함과 우울함, 발작적인 웃음과 재치에 끌렸다. 그러나 조정래의 대하소설에 빠져 있던 고등학생 요한은 친구들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아리랑』에 등장한 밀정이 '애늙은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 과정을 읽으며 '이것도 내 얘기다!' 하면서 무릎을 쳤다. 소설 속에서, 요한은 계속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자기가 감당하기로 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요한은 '요한의 삶'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했다. 앎은 언어로 구성된다. 요한의 삶을 안다는 것은 요한의 삶을 언어화할 줄 안다는 뜻으로서 요한의 삶과 요한의 삶이 아닌 것을 구분할 줄 안다는 뜻이다.
주어진 삶에 대해 생각하던 요한은 자기의 보잘것없음에 절망했다. 주어진 삶이 과연 '나의' 삶인가? 소유한다면 지배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나는 나의 삶을 지배한 적이 없었다. 지배할 수 없을 거라고, 아주 오래전에 확신했었다. 따라서 '나의 삶'이란 말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요한은 감당하기로 했지만 자기가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모르면서 왜 감당하기로 했을까? 죽기가 무서웠던 것일까? 그러면 죽어야 하나? 그러나 꼭 죽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죽지 않기로 결정을 내리자 이제 요한은 사는 게 싫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사는 게 싫으면 죽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한은 밝게 웃기로 했다. 그게 자기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왜 책임을 다해야 하는가? 내가 결정했으니까, 죽지 않고 받아들이겠다고, 내가 나의 태도를 분명히 정한 거니까. '나', 그것은 요한에게 그토록 간절한 것이어서 요한은 더 이상 묻지 말아 달라고 자기에게 부탁했다. 오로지 죽지 않기로 한 사람의 막연한 슬픔만을 자기의 것으로 간직한 채 요한은 늘 밝게 웃었고 그런 요한의 노래를 급우들은 좋아했다.




참가 신청을 하고 며칠 후, 요한은 일차 예선을 위해서 방송국 별관에 있는 지정된 장소로 갔다. 고등학교 교실처럼 생긴 공간에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초여름의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공간 전체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앞쪽에 참가자가 설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져 있었고 그 앞에 네 명의 심사위원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심사위원들 뒤로 대강 놓인 의자들에는 호명된 참가자들이 드문드문 앉아서 자기 순서를 기다렸고 아직 호명되지 않은 참가자들은 다른 대기실에 모여 있었다.
예선은 오전과 오후로 나눠서 진행되었다. 오백여 곡 중에서 서른 곡을 뽑는다고 했다. 요한의 참가번호는 육십육 번이었다. 자기 뒤로 사백여 곡이 남아 있음을 알게 된 요한은 앞에 앉은 네 명의 심사위원들을 딱하게 여겼고 그들을 위해서 노래하기로 마음먹었다. 앞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노래하는 것, 그것은 심사위원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요한 자신을 위함이었다. 서른 개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달려드는 오백여 참가자들 사이에서 요한은 그런 식으로나마 자기의 품위를 지켜야 했다.
몇 달 후, 삼차 예선까지 통과하고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요한의 어머니인 정애는 요한에게 말했다.
"근데 그걸 왜 누나한테 먼저 말해 이 개새꺄."
오로지 혼자라는 기분, 중학교를 중퇴하고 서울로 혼자 식모살이를 하러 온 정애에게는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없어서 어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빨리 결혼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혼을 결정하는 것도 겁이 났다. 이십 대 중반이 돼서야 만난 희만은 정애가 겁내지 않을 수 있는 보기 드문 남자였다. 희만과 함께 가정을 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사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애는 혼자 있는 방, 그 방의 형광등, 쇠로 된 문고리 같은 것들을 생각했다. 이불을 개는 아침과 이불을 펴는 저녁을 생각했다. 지옥이 이런 모양일까. 무엇이든 이보다는 나으리라고 생각한 정애는 결혼했고 딸과 아들을 낳아서 길렀다. 자기의 잘못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정애는 사람들을, 즉 남편과 자식들을 자기의 외로움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겼지만 그게 잘못일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난 널 낳기 위해서 결혼했단다'라고 말하면 되나? 먼 훗날, 이십 대 후반의 요한은 말했다.
"아, 그만 좀 해, 다들 엄마 옆에 있고 싶어 하는데 엄마가 다 괴롭혀서 내쫓잖아, 어쩌라는 거야, 하라는 대로 할게, 어쩌라는 거야."
어쩌라는 걸까, 정애는 말할 수 없었다. 정애는 자기를 목적으로 여겨 본 적이 없었다. 정애는 자기를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겼다. 여전히 외롭다는 것을 깨닫자 정애의 증오심은 불타올랐다. 매사에 최선을 다해 온 만큼 증오심은 더욱 거세게 불타올랐다.
가요제가 끝나고 며칠 후, 요한의 아버지인 희만은 말했다.
"그게, 상을 받으려면, 로비를 좀, 해야 한다고 그러더라, 진작, 로비를 좀, 할 걸 그랬지."
노름을 좋아하는 희만은 자식도 패(牌)로 여겼다.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한 요한을 보고 자식 끗발에 팔자가 피는 상상을 하면서 마음이 들떴다. '별은 내 가슴에'라는 드라마에 등장해서 인기가 한창이던 안재욱을 보며 내 아들이 쟤보다 못한 게 뭔가를 생각했다. 그레고리 펙과 말론 브란도를 좋아하는 희만은 안재욱의 인기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들아, 부디 너도 한번 운을 시험해 보지 않겠니? 안재욱이 등장한 화장품 광고를 보다가 "야, 쟤가, 저거 하나로 십억을 벌었다더라."라고 말하는 희만을 보면서 요한은 가만히 웃었다. 웃자, 웃자꾸나. 인생이라는 도박에서 패 한번 더럽게 들어왔다 생각하자꾸나.
삼차 예선까지 통과하고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요한의 누나인 은미는 말했다.
"엄마한텐 얘기했어?"
"이따 식당 갈 거니까, 가서 해야지."라는 요한의 말에 은미는 '그래, 빨리 가서 말해 줘, 좋아하겠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은 은미는 곧바로 정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은미는 정애가 요한에게 '그걸 왜 누나한테 먼저 말해 이 개새꺄'라고 말하길 바랐다.
요한은 자기에 대한 평가의 기준을 자기의 내부에 갖고자 노력했다. 좋은 평가를 받으면 몸 둘 바를 몰랐다. 자기의 기분 좋음을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남의 평가에 기분이 좌지우지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남이 잘되는 모습에 배 아파한 적이 없었다. 원하는 게 분명했고 늘 그러려고 노력했으므로 자기가 원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잘하는 사람을 보면 자극을 받았다. '나도 내 분야에서 열심히 해서 저렇게 잘해야지'라고 생각했다.
반면, 자기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 그 내부에 없었던 은미는 늘 남의 인정에 목말랐다. 자기가 남의 인정을 받기를 '원한다'고 생각했고 일류 대학에 가기를 '원한다'고 생각했고 대기업에 입사하길 '원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는 것을 몰랐다. 로맹 롤랑을 좋아해서 불문학을 전공했다는 요한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웃기는 소리, 성적에 맞춰서 가놓고 주접떤다고 생각했다. 늘 자기의 처지를 요한과 비교했다. 동생이 대학에 가도 가요제에 나가도 재수 없었다. 동생이 늘 자기편이 되어 주는 것도 재수 없었다. 동생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걸 알았던 만큼 죄책감도 컸던 은미는 늘 그것을 해소할 기회를 노렸다. 참고 참던 요한이 한마디 하면 그동안 그렇게 생각했으면서 어떻게 입 다물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할 수가 있냐며 욕설을 퍼부었다.
"무서운 놈, 가증스런 새끼, 너도 나랑 똑같애."
본선 무대에서 입상하지 못한 채 서 있는 요한을 보면서 은미는 눈물을 흘렸다. 먼 훗날, 결혼하고 임신을 하고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은미는 한 여자로서 더욱 성장할 것이었다. 자기가 낳은 자식들이 자기와 상관없이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고, 한 남자의 아내로서 편안하면서도 쓸쓸할 것이다. 여러 가지 일을 겪어 나가며 형제인 요한을 더욱 믿고 의지할 것이다. 그런 누나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던 요한은 멀리 객석에서 눈물을 흘리는 은미를 바라보며 그저 고독할 뿐이었다.
요한은 언제나 밝은 웃음으로써 그 고독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여야만 했다. 저속한 삶을 감당하기로 이미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이라도, 요한은 품위 있게 지고 싶었다.
일차 예선이 진행되고 있었다. 청바지에 새로 산 흰색 긴 팔 티셔츠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요한은 웃는 얼굴로 한쪽 구석에 앉아 앞 참가자들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서른 개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달려드는 오백여 참가자들 사이에서 요한의 품위는 단연 돋보였다. 떼로 몰려나왔다가 들어가는 참가자들과 최첨단 장비를 이용한 엄청난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참가자들을 바라보는 요한의 표정은 조금 거만해 보이기도 했다.
요한이 네 명의 심사위원들 앞에 섰다. 그들을 위해서 노래하기로 마음먹은 요한의 얼굴은 온화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된 피아노 반주가 재생되었고 요한이 노래했다.
"나에게도 나에게도 보여줘, 네가 본 어여쁜 꽃……"
심사위원들이 동시에 눈을 들어 요한을 보았다.
'그럼, 그래야지.'
요한은 생각했다. 심사위원들의 시선을 받으며, 요한은 뒤쪽에 앉은 다른 참가자들을 보았다. 공간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천천히 시선을 움직이면서, 요한은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노래를 이어 갔다. 고등학교 시절의 급우들을 생각했다.
"내가 만든 칼 위에서 내가 춤을 추고 있네, 즐거운 나의 인생……"
요한은 한 심사위원이 고개를 숙인 채 미소 짓는 것을 보았다.
노래가 끝나자 군데군데서 박수가 나왔다. 앞 참가자들에게는 박수가 없었다. 요한이 웃는 얼굴로 박수 소리가 들리는 쪽을 한 번씩 쳐다보았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이거, 반주는 어떻게 한 거야?"라고 물어서 "그냥 피아노 반주…… 녹음기로 녹음했습니다"라고 대답했고 다른 한 명이 "노래는 누가 만들었어?"라고 물어서 "제가요"라고 대답했다.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앞 참가자들에게는 질문이 없었다. 요한은 심사위원들의 표정에서 합격을 예감했다.
그들을 위한 노래를 주었으니 합격을 받으면 공평할 것이다. 요한은 탈락을 걱정하지는 않았지만, 혹시라도 준 것보다 더 받게 될까 봐 걱정했다. 더 받는 것을 자존심 상하는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저속한 삶을 받아들여서 이미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해 있는 요한은 더 이상 자존심 상하는 일이 없도록 매사에 조심했다.


일차 예선을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 후, 요한은 이차 예선 참가를 위해서 여의도에 있는 방송국의 작은 공개홀에 도착했다. 그룹이나 솔로인 참가자들과 그들을 응원하기 위한 사람들로 객석이 제법 가득 찼다. 요한도 문학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 세 명과 함께 왔다. 요한은 친구들과 함께 객석에 앉았고 호명된 참가자들은 무대에 오르기 위해 무대 가까이에 마련된 자리에서 대기했다. 객석이 어두워지고 조명이 무대를 비추고 음악이 흐르고 경연이 시작되었다.
몇 주 전, 요한은 미디 음악을 만든다는 공대생을 소개받았다. 일차 예선을 통과한 후 동아리 방에 앉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된 피아노 반주를 멀뚱멀뚱 듣고 있는 요한을 보다 못한 선배가 자기 남자 친구의 친구라며 소개해 주었다. 그 덕분에 요한도 음질 좋은 콤팩트디스크에 담긴 미디 음악으로 반주를 준비할 수 있었다. 지난 두 주 동안, 노래 연습은 거의 못 했다. 무리한 연습으로 성대가 상했기 때문이다. 목을 쉬게 하라는 의사의 지시를 요한은 덤덤하게 따르고 있었다. 콤팩트디스크에 담긴 반주에 엄청 좋아하지도 성대 결절에 엄청 낙심하지도 않았다. 그저 처한 상황에 맞게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할 뿐이었다. 어차피 중요한 일에 대한 결정권은 자기에게 없다고, 요한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야, 고음 안 난다고 일등 할 놈이 일등 못 하겠냐?"라는 요한의 말에 "그럼 열심히 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 친구를 요한은 발작적으로 경멸했다.
"그건 내 문제지! 열심히 하고 안 하고는 내 문제라고, 내가 좋으니까 하는 거지, 어떤 결과를 위한 게 아니라고, 그럼 넌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사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덤비는 요한을 보며 친구는 어안이 벙벙했고 그런 친구에게서 얼굴을 돌리는 요한의 가슴이 저며 왔다. 요한은 우주나 진리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하고 싶었다. 애꿎은 친구에게 화내고 있는 자기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성실과 인내와 노력으로 자기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의연한 사람이 되려면 나는 아직 멀었구나. 화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도 화가 나는 요한은 어느 한순간, 어느 곳에서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무대 위에 서면 편안할까?
요한이 무대에 올랐다. 무대 중앙에서 고개를 숙여 모두에게 인사했다. 무대 바로 앞에 앉아 있는 네 명의 심사위원들을 무시한 채 객석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시선을 움직이며 관객들과 눈을 맞추었다. 그게 요한이 심사위원들을 유혹하는 방법이었다. 관객과 관계 맺는 자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요한은 심사위원들이 만들 결과에 연연하지 않음으로써 자기의 일에 집중했고 자기의 일에 집중함으로써 심사위원들을 유혹했다.
무대 위에 선 요한의 일은 관객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관객은 무대를 구경하는 사람의 무리를 일컫는 말이다. 무대 위에서 관객을 바라보는 일만큼 경이로운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이렇게 단순할 수 있다니! 반주가 재생되고 요한이 노래를 시작했다.
"나에게도 나에게도 보여줘, 네가 본 어여쁜 꽃……"
요한은 좋지 않은 목 상태에 연연하기보다는 그 순간을 즐기려고 노력했다. 여기서 '그 순간을 즐긴다'는 것은 무대 위에 선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이차 예선에 오른 서른 곡의 연주가 모두 끝나고 잠시 후, 삼차 예선에 오른 열 곡이 발표되었다. 호명될 때, 요한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엄청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냥 삼차 예선에 올랐을 뿐이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 한 번 더 오를 수 있게 되었으니 열심히 노래하면 그만이다.




곧바로 삼차 예선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뽑힌 네 곡만이 서울·경기 지역을 대표해서 본선에 오르게 될 것이다. 삼차 예선에 오른 열 곡 중에서 첫 번째 노래가 연주되고 있었다. 요한은 객석에 앉아 연주를 들으면서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요한은 연주를 듣는 것도 기다리는 것도 자기 차례가 다섯 번째인 것도 좋았다. 다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준비를 한 것 같았다. 요한은 자기가 이들 중 하나라는 것이 좋았다. 다들 잘했으므로, 여기서 자기가 떨어져도 좋다고,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아주 좋다고, 요한은 생각했다.
차례가 되어 무대에 오르면서도 요한은 자기가 어떤 특별한 순간에 직면했음을 알지 못했다. 그 순간의 특별함은 과거와 미래와의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것으로서 이제 요한의 삶은 '그 순간까지의 과거'와 '그 순간으로부터의 미래'로 구성될 것이었다. 그러나 무대 위로 걸어 올라가면서도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요한은 그저 '좋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무대 중앙에 선 요한은 조명에 적응하면서 객석을 보았다. 객석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시선을 움직이면서, 요한은 관객을 좋아하는 것이 무대에 선 사람의 사명임을 알았다. 좋아할 수 없다면 애초에 무대에 오르지 말았어야 한다. 그러나 이미 무대에 올랐다면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왕이면 품위 있게.
요한은 사람들을 '한 사람'처럼 보는 법, 즉 객석에 앉은 개별적인 사람들의 공통적인 속성을 포착하여 그것을 마치 눈에 보이는 한 사람처럼 대하는 법을 알았다. 개별적인 사람은 눈에 보이지만 그 사람들의 공통적인 속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무대 위의 요한은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야 한다. 실제로 요한은 객석 쪽 어딘가에 초점을 맞추며 마치 아는 사람을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미소 짓는 것이었다. 그러자 객석에 앉은 사람들은 자기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에 속해 있음을 느꼈고 더 이상 수줍어하지 않게 되었다. 즉 관객이 되었다. 관객은 스스럼없이 울고 웃고 소리 지르고 박수한다.
콤팩트디스크에 저장된 반주가 재생되었다. 미디 음악이지만, 요한이 처음에 곡을 쓰면서 상상했던 브라스 반주와 얼추 비슷했다. 무대 중앙에서 듣는 반주는 더 좋았다. 요한은 소리를 들으며 리듬을 탔다.
"나에게도 나에게도 보여줘, 네가 본 어여쁜 꽃……"
노래를 시작하면서 요한은 목에서 편안하게 좋은 소리가 나는 것을 느꼈다. 몇 주 동안 회복되던 목이 조금 전 이차 예선에서 노래할 때 완전히 풀린 것 같았다. 후렴구를 부르는 요한은 신이 났다.
"오, 너를 보면 울고 싶어, 날 희롱하는 내 손안의 행복을 버리고, 오, 아름다운 너의 얼굴, 움켜쥔 꽃잎은 바람 속에 흩어지고……"
객석 곳곳에서 리듬에 맞춰 박수하는 소리가 들리자 요한은 '옳지!'라고 말하는 듯이 객석을 향해 턱을 한 번 끄덕 움직였다. 간주가 흐르자 요한은 어깨를 움직이며 살짝 걸음도 옮겼다. 수줍은 듯 적당하게 움직이는 요한의 몸짓에 관객도 신이 났다. 신이 난 관객이 요한에게 집중했다.
"다가가도 다가가도 결국은, 내 안에 머무는 나……"
집중한 관객들을 향해 이 절을 시작하는 요한의 저음이 흘렀다. 이후로 요한은 이 순간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 여러 번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게 된다.
'뭐지?'
이 절을 시작하면서 요한은 생각했다. 노래하고 있었지만 노래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마치 물속에 잠긴 것처럼 공간 전체가 소리에 잠겨 요한도 그 안에 뒤섞여 버린 느낌이었다. 모든 관객이 요한과 같은 상태여서 어떤 움직임도 없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함께 소리에 속해 있는 느낌, 또는 소리 외에 아무것도 없는 느낌, 뜻밖이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낯설기는커녕 마치 원래대로 되돌아온 것처럼 편안했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그랬다.
노래가 끝나자 쏟아지는 환호와 박수가 그 편안한 상태를 뻥 터뜨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심사위원들도 관객처럼 환호했다. 무대 위의 요한이 깜짝 놀랄 정도로 큰 박수와 환호였다.
요한은 좋으면서도 어리둥절했다. '맞지? 나 혼자 느낀 거 아니지?'라고 묻고 싶었다. 관객의 대부분은 예선 참가자들과 그들을 응원하러 온 일행들이어서 요한에게 환호까지 할 다른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관객의 반응은 앞 참가자들에 대한 것과 분명히 달랐다. 그 다름이 분명하다고 요한은 생각했다. 노래를 마치고 무대 위에서 박수를 받는 그 짧은 순간 동안 요한은 냉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다. 관객들은 애초에 자기들이 응원하러 온 참가자에게만 집중했었다. 이렇게 일제히 박수하고 환호하지 않았었다. 요한은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지? 나 혼자 상상한 거 아니지?'라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우물쭈물 미소를 지으며 객석을 다시 둘러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흘렀고 객석으로 돌아와 다음 참가자의 연주를 듣던 요한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삼차 예선의 '그 순간' 이후로 수년이 흐른 어느 날, 요한은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를 읽고 있었다.


"야코포는 〈도〉, 〈미〉, 〈솔〉, 〈도〉만 불었다. 전쟁터를 누비던 거칠디 거친 사람들에게는 그걸로 충분한 것 같았다. 마지막 〈도〉는 심호흡을 한 뒤에 길게 길게……. 〈태양에까지 이르도록〉 길게 불었다."


수년 전 결국 삼차 예선까지 통과한 요한은 서울·경기 지역 대표로서 대학가요제 본선 무대에 올랐다. 전국에서 모인 다른 참가자들과 합숙을 하고 녹음을 하고 공연 연습을 하고 수천 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했다. 그리고 다시 보통의 학교생활로 돌아온 요한은 문학 동아리 회장으로서 동료들과 함께 문집을 만들고 문집 발간식을 했다. 술집에서 술에 취했고 클럽에서 춤을 추었다. 강의를 듣고 기말고사를 보았다. 피아노 학원을 몇 달 동안 다녔다.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에는 미디 음악 만드는 법을 배우면서 노래를 몇 곡 더 만들었고 이런저런 연예기획사를 찾아다니며 대여섯 번 오디션을 보았다.
줄곧 생활비를 벌었고 운동했고 책을 읽었다. 대학을 졸업했고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땄고 퍼스널 트레이너로 일했다. 이런저런 좋거나 나쁜 일들을 겪어 나가는 삶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요한은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를 읽고 있었다.
소설 속에서, 요한은 여전히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자기가 감당하기로 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요한은 '요한의 삶'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했다. 앎은 언어로 구성된다. 요한의 삶을 안다는 것은 요한의 삶을 언어화할 줄 안다는 뜻으로서 요한의 삶과 요한의 삶이 아닌 것을 구분할 줄 안다는 뜻이다.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움직이는 것은, 트럼펫의 종갓 위에서 일렁거리는 햇빛뿐이었다. 그러나 그 일렁이는 빛조차도 종갓의 부동성을 강조하는 소도구일 뿐이었다."


『푸코의 진자』의 '야코포'도 요한이 경험한 '그 순간'을 경험하고 있었다. 음악 안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는 종합의 상태, 요한은 야코포의 경험이 자기의 경험과 같은 것이라고 확신했다. 책 속의 문장들을 따라가면서 요한은 손에 땀을 쥐었다. 그것은 눈물을 동반한다는 점에서도 요한의 경험과 다르지 않았다.


"(모두가 자리를 뜨고) 남은 것은 야코포뿐이었다. (……) 야코포는 외로웠다. (……) 손에 든 것은 트럼펫, 앞에는 한 봉우리 한 봉우리를 시시각각으로 퍼렇게 물들여 오는 끝없는 구릉이 있을 뿐이었다. (……) 야코포는 울기로 했다."


그러나 결국 야코포도 '그 순간'을 완전히 알지는 못했다. 그것에 요한은 실망했지만 동시에 안도했다. 자기의 실패가 잘못은 아님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순간'은 애초에 완전히 알 수가 없는 것이리라. 야코포는 트럼펫 소리 안에서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던 '그 순간'의 경험을 글로 표현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다. 그리고 시도한 만큼 실패했다, 요한처럼.


"그는 그것을 획득으로 기억하지 않고 상실로 기억했다. 이것이 비극이었다."


잘못은 실패 이후의 삶에 있었다. 야코포는 '그 순간'을 되찾으려고만 한 것이다. 그래서 '야코포의 삶'을, '그 순간'을 되찾기 위한 도구로 삼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것이 잘못임을 소설을 통해서 깨달은 요한은 차라리 '요한의 삶'을 '그 순간'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그 순간' 안에서 요한의 삶은 목적이 되리라. 그런데 어떻게 '그 순간'에 들어가야 하는가? 요한은 '그 순간'에 들어가기 위해 '그 순간'을 알아야 했다. 그 앎을 통해서 요한은 '요한의 삶'도 알게 되리라. 그런데 만약 '그 순간'을 아는 것이, 즉 언어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요한은 '요한의 삶'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알 수 없다면, 그 '알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야코포는 자기에게는 그런 순간이 있었으며, 평생 그 한순간의 경험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 진자와 함께 흔들리면서 그가 이것을 이해하고 안식을 찾게 되었기를 나는 진심으로 믿고, 바라고, 빈다."


요한은 그 '알 수 없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요한은 그 '알 수 없음'이 무엇인지를 앎으로써만 받아들일 수가 있다. 앎은 여전히 언어로 구성된 것이어서 '알 수 없음'을 안다는 것은 '알 수 없음'을 언어화할 줄 안다는 뜻이다. 알려면 언어화해야 하는 요한은 언어화할 수 없는 것에 직면해서도 언어화하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요한은 요한 아닌 다른 것이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게 요한을 가끔 슬프게 했지만, 요한은 그 슬픔을 통해서, 요한을 '요한의 삶을 알아 가기 위한 도구'로 삼는 잘못으로부터 자기를 지킬 수 있었다. 슬픔 속에서 요한은 자기를, 자기의 숙명을 뉘우쳤다.
뉘우침으로써 받아들였다. 다시 말해서 요한은 여전히 소설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여전히, 자기가 감당하기로 한 삶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요한이 소설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사실들이 '요한의 삶'을 하루하루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소설 속에서 요한은 울기도 웃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다. 소설이 언어화할 수 없는 것을 언어로써 다루듯이, 요한은 요한의 삶을 소설로써 다루고 있었다.
움베르토 에코는 2016년 2월 19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평생 그 한순간의 경험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했다면 『푸코의 진자』를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요한은 그런 그를 마음속으로 소중히 여겼다. 그가 자신이 쓴 것을 이해하고 안식을 찾게 되었기를 요한은 진심으로 믿고, 바라고, 빌었다.




요한은 어떻게 자기의 목적이 되는가? 요한은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도 자기를 하나의 대상으로서 표상했다. 그래서 요한이 자기를 목적으로 여기자, 그 목적으로서의 자기는 다시 요한에 대한 하나의 표상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자 요한은 다시 그 표상을 향한 수단이 되었다. 자기를 수단으로 삼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요한은 다시 자기를 목적으로 여기게 되는데, 그런 요한은 이미 요한이어서, 요한은 요한을 통해서 요한에 도달하는 요한이다.
그러자 요한은 요한을 통해서 요한에 도달하는 요한이다. 그러자 요한은 요한을 통해서 요한에 도달하는 요한이다. 그러자 요한은 요한을 통해서 요한에 도달하는 요한이다. 그러자 요한은…… 요한은 이미, 그 삶을 감당하기로 했다. 그래서 요한은 '삶을 감당하기로 마음먹은 요한'과의 관계 속에서 삶을 지속했다. 지속은 시간이 있기에 가능하다.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이어지는 흐름으로서 요한이 있기에 가능하다. 시간 속에서 삶이 지속되듯이, 요한 속에서 시간이 흐른다. 시간은 요한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즉 원래 시간은 없다는 것을, 요한은 그날 무대 위에서 이미 경험했다.
그날 이후로 이십 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지만, 요한의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여러 사람과 만나거나 헤어졌고 여전히 희만, 정애, 은미라는 혈연이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느라 요한은 울기도 웃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지만 원망하지는 않았다. 잘못은 사람이 아닌 시간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날의 '그 순간'과 매 순간 이별함으로써 요한은 자기의 시간을 뉘우쳤고 뉘우침으로써 시간의 근본적인 슬픔을 깨닫고 있었다. 깨달으며 살고 있었다.
시간의 근본적인 슬픔 속에서, '사람'은 비로소 요한의 목적이 된다. 사람을 '그 순간'의 일부로 여기지 않는다면, 사람은 요한의 경험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사람을 목적으로 여기는 것은 도덕이고 '그 순간'을 향하는 것은 예술이다. 시간의 근본적인 슬픔 속에서만, 즉 '그 순간'과의 관계 속에서만 도덕을 아름다움과 동일한 것으로서 획득할 수가 있음을, 사람들 사이에서, 요한은 절감하고 있었다.
요한이 절감하고 있음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드러난다. 다시 말해서 요한은 자기가 경험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를 드러냄으로써 자기가 진정으로 절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한은 요한을 경험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요한으로서 경험하는 요한은 자기의 경험들을 종합함으로써 요한이 되기로 마음먹는 수밖에 없다. 마음을 먹으면 될 것이다. 요한에게는 요한에 대한 지식과 기술은 없어도 재능이 있기 때문이다. 가사와 가락이 동시에 떠오른 「꽃」처럼, 『요한』은 떠오를 것이다.


















고진권

작가소개 / 고진권

2017년 문학동네 신인상 소설 부문 수상


《문장웹진 202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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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1
야생 식물원

야생 식물원 하가람 식물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철골로 둘러싸인 거대한 유리 온실에는 열대와 지중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이국적인 식물이 자란다고 했다. 한 달 전 나는 식물원 근처에 있는 여러 호텔을 찾아 은규에게 링크를 보냈다. 보통 때의 그라면 어디든 좋다고 했을 것이다. 레스토랑도, 카페도, 동네의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조차도 모조리 내 선택에 맡기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날 은규는 이미 예약한 곳이 있다고 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은규가 보내 준 링크를 열어 보았다. 넓은 통유리 창 너머로 식물원과 공원이 내다보이는 스위트룸이었다. 나는 조금 들뜬 채 답장했다. — 우리가 만난 지 곧 1년이래. 믿어져? 1년이라는 시간은 내게 유별났고 은규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것이었다. 그가 전에 사귄 여자친구는 단 두 명인데 각각 4년, 5년을 만났다고 했다. 매번 석 달도 채 넘기지 못하는 나와는 달랐다. 이따금 은규에게 이전 연인들에 대해 물었다. 그들이 어떤 성향의 사람이었고 어떤 외양을 가졌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응응, 하며 대꾸해 주던 은규는 내가 그녀들의 음악 취향이나 살던 동네처럼 구체적인 정보까지 캐묻자 태도를 바꾸었다. 기억 안 나. 그는 말했다. 다 옛날이야기라고. 그 후로는 이전에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그녀들을 생각했다. 눈, 손톱, 말투, 그리고 신발. 나와 닮았을지, 닮았다면 얼마나 닮았고 다르다면 무엇이 다를지도. 상상을 이어 가다 보면 늘 한 가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은규는 한 번도 애인과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여자와 밤을 보내는 일이 오늘 그에게는 처음이었다. 서른을 넘긴 남성에게서 보기 드문 경우였지만 그가 처음인 게 좋았다. 그 점이 무엇보다도 나와 그녀들을 구분 지어 주는 것만 같았다. 차창에 머리를 기대었다. 햇볕에 데워진 창문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인터넷으로 보았던 화려한 꽃과 기다란 나무들을 떠올렸다. 노랗고 푸르고 분홍빛이 맴도는 공간을. 여름 휴가철이었고 도로는 차들로 빽빽했다. 졸음 껌을 씹는 은규를 보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운전하고 싶었는데.” “다음에. 너 힘들어.” 은규가 말했지만 나는 안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그는 내게 차를 맡기지 않을 것이다. “보면 놀랄걸? 너무 잘해서?” 나는 허리를 세운 채 한 손으로 반원을 그려 보았다. 휙휙. 입으로 소리 내며 운전대를 쥔 그를 따라 했다. 그가 웃었다. 머릿속으로 주행하기. 그것은 나만의 놀이였다. 캠퍼스 변두리에 있는 H관 1층, 5평 남짓한 주차관리실에서 상상력을 충족시켜 줄 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먼지 쌓인 커피믹스와 낡은 소파, 책상 위에 시간별로 놓여 있는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 주차권들. 지겨운 서류, 서류, 서류. 드물게 실장이 자리를 지키는 날이 아니면 대체로 혼자 그곳에서 일했다. 사람들이 찾아와 주차권을 사거나 정기 등록을 마친 후 돌아가면 나는 모니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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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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