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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넷질’로 살펴본 요즈음의 한국미술계

  • 작성일 2005-05-20
  • 조회수 3,500

 

백지숙


인터넷 웹사이트 중에서 미술계 소식이 가장 자주 업그레이드되는 곳은 아무래도 www.daljin.com이다. 최근 일간지 및 주간지의 미술계 기사를 묶음으로 찾아보는 데 있어 이 달진닷컴만큼 편리한 사이트가 없는데, 특히 중앙일보처럼 네이버나 야후에서 기사 검색이 안되는 경우는 이곳이 아주 쓸모가 있다. 그래서 전시를 기획한 사람들이 홍보에 유독 신경을 쓸 때는 기자간담회를 하고, 전시를 오픈하고, 전시가 진행되는 그 사이사이,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이 사이트를 방문하게 된다. 하지만 요 며칠 사이 달진닷컴 뉴스란의 투데이스 탑은 특정 전시에 관한 기사들이 아니라 이중섭 작품에 관한 진위 논쟁 기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외국의 유명한 작품치고 모조품이 없는 것이 없고, 위작이나 모조품을 두고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곧잘 소설이나 영화에서 소재화되는 것을 보면, 뭐 크게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100여 건이 넘게 계속해서 올라오는 관련 기사들을 죽 읽어 나가다 보면 좀 처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중섭은 각종 설문조사에서 으레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로 손꼽힌다. 그런 그의 작품이나 가족사에는 한국전쟁의 비극이 크게 작용했다는데, 광복 60주년 기념사업이 무성하다는 지금에도 우리 사회는 위아래 가릴 것 없이 먹고사는 것과 관련된 ‘갱제’ 문제가 문화를 여전히 강력하게 압도하고 있구나, 하고 새삼 깨닫는다. 때마침 삼성미술관 리움은 ‘이중섭 드로잉전’을 개막할 예정이라니, 역시 되는 집안은 가지나무에 수박이 열린다.


달진닷컴에는 이처럼 언론에서 기사화된 소식 이외에, 김달진 씨가 발 빠르게 수집한 미술계 동정도 거의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김달진 씨는 국립현대미술관가나아트센터 자료실을 거쳐 현재는 전시정보지 서울아트가이드를 발간하는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내가 알기로 그는 한국미술계에서 수년 동안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기록하고 분류하는 것을 전문적인 업으로 해온 유일한 사람이다. 아날로그 시절부터 도록이 가득 담긴 무거운 가방을 들고 전시장을 순례하는 김달진 씨와 마주친 경험이 많은데, 이것은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도 큰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오프라인에서도 부지런한 김달진 씨 덕분에, 온라인으로 미술계 동정란만 부지런히 들락거려도 종종 따끈따끈한 미술계 소식을 들을 수 있다. 그렇다고 온라인 ‘눈팅’에만 강한 사람들이 검증되지 않은 소식을 오프라인으로 퍼날랐다가는 망신살이 뻗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벌써 작년 이야기지만,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로 선정된 김선정 씨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발탁되었다는 소식을 달진닷컴 미술계 동정란에서 보고, 본인에게 직접 축하한다고 인사했다가 낭패한 경험이 있다. 원장 인터뷰를 인용하고, 김선정 씨의 현장 경험을 강조한 선정이었다는 논평까지 들어 있던 그 동정란 기사가 실은 완전히 날조된 이야기였던 것이다. 알고 보니 블랙로즈라는 ‘아뒤’로 활동하는 자칭 아나키스트가 여러 게시판들에 올린 소식이 이리로 ‘펌질’되면서 생긴 해프닝이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이다.


어떤 측면에서, 달진닷컴과 대조를 이루는 사이트는 최금수의 이미지속닥속닥이라 할 수 있다. 1999년부터 시작된 이미지속닥속닥의 홈피(neolook.net)는 작가나 기획자, 또는 기관의 홍보 담당자들이 보내준 전시자료를 1만 5천여 명의 회원들에게 이메일로 직접 발송하고 이를 게시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사이트이다. 그러니까 정 심심한 사람들이 있어, 여기 네오룩닷컴에 올려진 자료와 달진닷컴에 올려진 기사들을 비교해본다면, 어떤 기자가 제일 바지런한지, 누가 기사를 오독했는지, 혹은 작품 캡션의 ‘옥에 티’는 어떻게 발생했는지까지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네오룩닷컴의 강점은 중앙 일간지나 미술 월간지의 한정된 지면에 비해 한층 광범위한 작가 및 전시를 대상으로, 그것도 제법 많은 양의 정보를 한 곳에 모아 제공한다는 데에 있다. 원고지 4매 정도의 월간지 리뷰에 실리기 위해서 매월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작가들에게 네오룩닷컴은 그야말로 대안적인 매체가 아닐 수 없다. 요즘에는 웬만한 전시 공간들로 자기 홈페이지를 다들 갖고 있지만, 그래도 검색어 등록이 안 되어 있는 군소 전시장 입장에서 보면 저가의 이용료를 내고 효과를 보기에 이만한 홍보매체가 없다. 동양제과가 운영하던 서남미술전시관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최금수 씨가 전시관이 없어질 즈음 개발하게 된 이 사업은, 아마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한국만의 독특한 ‘홍보문화’를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네오룩닷컴의 명성은 홍보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홍보 내용 및 수단에 대한 현실적 결핍 사이에서 방황하는 한국문화계 활동가들을 ‘위무’하는 데서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라.


어쨌거나 네오룩닷컴의 자료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이 사이트는 작가와 작품에 관한 하나의 특화된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하게 되었다. 네오룩서치에서 작가 이름이나 전시장 이름을 타이핑하면 전시에 관한 일련의 정보가 검색되는데, 이때 걸러지는 정보의 양도 상당하다. 중앙 언론의 기사들이 간략한 텍스트와 포토제닉한 이미지들을 선호한다면, 네오룩에는 때로 전시 서문 전체가 텍스트로 몽땅 올라와 있기도 하고, 시원하게 편집한 제법 큰 작품 이미지가 올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의 예전 작품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든가, 비평가의 글솜씨에 대한 검증이 급하게 필요할 때는 이 사이트를 곧잘 이용하게 된다. 젊은 작가 위주로 미술품을 사들여 공공건물에 전시하거나 일반인, 기업 등에 빌려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는 미술은행제도가 올해부터 시작되었는데, 모르긴 해도 여기에 작품을 추천하기 위해서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골고루 찾아보길 원하는 추천위원들에게는 이 사이트가 꽤 유용할 것이다.


달진닷컴과 네오룩닷컴은 모두 해당 사이트에서 일정한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서는 회원 등록을 해야 한다. 인터넷 실명제는 지금도 네티즌 사이에 찬반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제도이지만, 자유게시판이 활성화되는 데는 확실히 실명제의 실행이 높은 장벽으로 작용한다. 그래서인지 미술 쪽 인터넷에서 자유게시판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은 회원 등록이 필요 없는 포럼에이와 미술인회의다. 그중에서도 www.foruma.co.kr의 자유게시판은 객관적인 정보와 진지한 주장, 그리고 원색적인 비방과 욕설이 난무하는 그야말로 인터넷 자유게시판의 전형에 해당한다. 포럼에이는 1998년, 작가들의 이미지 작업과 나란히 미술계 현장에 대한 평가나 해석의 글들이 실려 있는 인쇄물로 시작하여, 2000년 온라인 포럼에이로 확장된 바 있다. 그런데 종이 포럼에이의 과월호가 인터넷 포럼에이에 올라와 있다는 것 외에 막상 이 둘의 콘텐츠 사이에는 별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매순간 바뀌는 자유게시판에 비해, 2003년에 재정비한 칼럼, 리뷰, 작가론, 대담 등의 기획코너는 굼뜨기 짝이 없어서, 자연적으로 온라인 포럼에이의 성격은 자유게시판의 토론들이 주도하게 되었다. 초창기에는 게시판이 그나마 합리적인 토론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서, 거기서 벌어졌던 주요 논쟁들을 묶어서 별도로 열람할 수 있게 해놓기도 했다. 몇 개 안되는 것이지만, 여기에는 특정한 기획전이나 몇몇 작가의 작품에 관한 미학적 토론, 그리고 표현의 자유나 제도언론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적 논쟁들이 올라와 있어 그런대로 쏠쏠히 보는 재미가 있었다.


온라인 게시판에 올려진 글들은 종종 오프라인 술자리의 화젯거리가 되기도 한다. 아니 글 자체보다도, 기발한 ‘짝퉁 아뒤’에 대한 감탄에서부터 계속해서 같은 유형의 글을 끈질기게 올리는 열혈 유저에 대한 궁금증, 미처 몰랐던 바로 옆 동료의 숨겨진 ‘본성’을 발견하면서 나오는 경악에 이르기까지, 그 화제의 수준과 범위는 터무니없이 펼쳐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게시판에 올려진 글을 놓고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는 후문이 들리더니, 어느덧 논쟁의 근거로 제시되던 주의주장들이 사이비종교적 방언이 되고 토론의 추임새로 쓰이던 욕이 정신질환적 고착이 되면서, 이 게시판의 존폐를 둘러싼 논의가 심심치 않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게시판 폐지나 실명제 전환을 강력히 주장하는 의견들이 나오게 된 데는 역으로 소위 안티들의 역할이 컸다고 하겠다. 포럼에이의 안티들은 특히 작가 최진욱 씨를 포럼에이의 ‘아바타’로 간주하는 것 같다. 잘 알려진 인터넷 논객 진중권 씨의 안티들이 진중권 씨 글에 다는 리플만큼은 안될지 모르지만, 어쩌다 올라오는 최진욱 씨 글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리플의 퍼레이드가 벌어지곤 했다. 그 때문인지, 지난 4월 말 포럼에이는 세 번째로 전면 개편을 단행했다. 자유게시판을 없애기보다는 콘텐츠를 자유롭게 연계, 확장 또는 심화할 수 있는 비주얼 포맷을 전면에 배치해서 대체로 신선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것 같다. 2004년 말, 문예진흥원 마로니에미술관에서 열렸던 <새로운 과거>전을 이모저모로 되짚어보는 글들이 특집으로 올라와 있어, 전시를 기획했던 사람으로 반갑고 새삼스러웠다. 개인적으로 이번 개편에서 가장 재미있는 칼럼은 “마을버스”의 짧은 글과 거기에 수록된 특정 단어를 사전적으로 정의해놓은 하이퍼텍스트형 구성이었다. 한편, 자유게시판은 아직, 썰렁하다.

 

하지만 요즘 미술동네에서 ‘담론’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곳은 앞에서 거론한 어느 사이트도 아니다. 안티가 없고, 상업적인 광고도 적고, 공사의 구획도 없고, 정보의 ‘업뎃’에 대한 압박도 적은 탓인지 오히려 가장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사이트는 다름 아닌 싸이 홈피들이다. 사람들마다 그날의 ‘싸이질’을 시작하는 플랫폼은 다 다르겠지만, 나는 “걸래밴드”의 싸이를 자주 애용한다. 거기서 출발하여 일촌 파도타기를 적정한 수준까지 하다 보면, 놓쳤던 국내 전시의 후기에서 외국 미술관의 생생한 작업 현장까지 일별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요즘 뜨는 페미니즘 강의 내용까지 덤으로 얻어 들을 수 있다. 그렇게 돌다 보면 싸이 사진첩에서는 이중섭 못지않게 프리다 칼로가 인기가 있다는 것을, 또 <새로운 과거>전에서 아트 상품으로 팔렸던 티셔츠, “영어를 못하는 작가는 작가가 아니다.”라는 문장이 쓰였던 그 티셔츠가 아직 꽤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물론 가장 큰 깨달음은, 굳이 미술에 관한 콘텐츠가 올라와 있지 않더라도 스킨을 꾸미고 디카로 찍은 사진을 올리고 다른 싸이 홈피의 이미지를 퍼오고 글을 쓰고 댓글을 달고 하는, 이런 과정 자체가 실은 미술 활동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우리가 이런 말을 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싸이를 못하는 작가는 작가가 아니다.”《문장 웹진/2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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