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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문학을 넘어 매직리얼리즘으로

  • 작성일 2006-06-30
  • 조회수 3,087

 

4?3문학을 넘어 매직리얼리즘으로



대담 현기영(소설가)

 진행?정리 김윤영(소설가)



intro. 

4.3문학의 승리 

영화 <이재수의 난>과 『순이 삼촌』 

아버지와의 화해 

문명 비판적 새 소설, 누란 

젊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프롤로그


김윤영 : 사이버문학광장 ‘작가와작가’ 대담 시간입니다. 오늘은 현기영 선생님을 모시고 여러 이야기 들으려고 합니다. 선생님, 한 석 달 만에 뵙는 것 같아요. 3월에 잠시 뵈었죠.

현기영 : 김윤영 씨 책 나온다고 축하하는 자리였지.

김윤영 : 여행 가신다더니 어디로 갔다 오셨어요?

현기영 : 안나푸르나, 히말라야 산맥 중에 고봉인데 그 베이스캠프까지 트래킹했죠.

김윤영 : 사모님이랑 같이 가셨다고 들었는데 힘들지 않으셨어요?

현기영 : 음, 뭐 인생은 나그네길 읊조리듯이 천천히 걸어서 갔기 때문에 힘들기는 힘들었지만 즐거웠어요.

김윤영 : 거기는 젊은 사람들도 가기 힘든 덴데요….



바다와 술잔


김윤영 : 선생님 책을 다시 찾아보다 몇 권 들고 왔는데요. 『바다와 술잔』이 다시 읽어보니 재미있더라고요. 선생님의 속내를 알 수 있는 가장 최근 책이다 보니까요. 거기 보면 주변 문인과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잖아요. 특히 이재무 시인하고의 일화가 눈에 띄던데요. 이재무 시인이 맨날 섬땅만 팔아먹지 말고 다른 이야기를 써보라는 이야기를, 우스갯소리로 하시더라고요. 선생님은 이재무 시인에게, 넌 맨날 메타포만 팔아먹지 마라, 이러시고. 그러면서 제가 느낀 것이 있어요. 가만 생각해보니 정작 4.3에 대한 본격적인 장편은,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거든요. 『바람 타는 섬』이라든지 『변방에 우짖는 새』 등 4.3의 전사는 나왔는데, 가장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4.3에 대한 장편은 언제쯤 나오는지. 다른 것을 써보실 생각이 더 많지 않으신지. 독자 입장에서는 그것이 궁금해요.

현기영 : 이재무 시인이 나보고 ‘섬땅’, 제주도 이야기만 가지고 쓰지 말고 딴 얘기도 좀 써봐라 이야기하는데. 이재무 시인뿐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그래요. 물론 제주도 출신 독자들은 그렇지 않지만 육지에 있는 독자들은 제주도 이야기만 하는 것을 지겨워해요. 제주도를 떠나서 문학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지에 상륙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 육지 이야기, 도시 이야기, 하여튼 현대에서 인간의 삶의 모습도 그려보면 좋지 않으냐 해서 저도 많이 망설이곤 했습니다.

사람이 이데올로기면 이데올로기, 이런 것에 일생동안 하나에만 집착하고 산다면 좀 풍요롭지 않은 삶인 것 같아요. 작가가 여러 가지 인물을 만들어내고,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어 내듯이 다양해야지요. 작가는 하나의 아이덴티티로 만족하지 않거든요. 여러 아이덴티티를 갖고 싶어 하는 것이 작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제주도에 국한된, 4.3작가로서의 얼굴만 갖고 있으면 아이덴티티가 하나잖아요. 근데 작가로서 정말 그러고 싶지 않은, 그런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나는 벗어나고 싶은 것을 오랫동안 꿈꾸어 왔고.

사실 『마지막 테우리』 이후 『지상에 숟가락 하나』도 제주도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제주도의 4.3이나 특정한 사건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고 인간의 보편적 삶의 문제였잖아요. 이렇게 접근해 보고 있고, 좀더 시간과 역량이 된다면 4.3장편 하나는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지상에 숟가락 하나


김윤영 : 그러고 보니 『지상에 숟가락 하나』가 많이 알려지고 중고등학생들까지 많이 읽게 된 책이긴 한데 이게 정통 역사소설은 아니네요. 어린 소년의 성장소설을 쓰신 것이니 다른 소재를 가지고 쓰신 셈이지요. 저는 그때 초판 1쇄를 막 사서 읽은 기억이 나요. 워낙 방언이 많이 나오니까 똥겡이가 하는 소리가 뭔 말인지는 다 알진 못했지만 재미있게 읽고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침 ‘느낌표!’에 선정되어서, 선생님 뵙기 전인데도 혼자 기뻐했거든요.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요. 매스컴을 타지 않고 조용하게 알려졌으면 더 깊이 있는 호평을 받지 않았을까 하고요. ‘느낌표!’에 선정되었을 때 에피소드 같은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TV에도 출연하고 그러셨잖아요.

현기영 : 이게 처음에 출판되었을 때 입소문으로 꽤 팔리고 있었어요. 근데 출판사 쪽에서는 충분히 더 팔 수 있는 품목이라고 생각해서 로비를 많이 했어요. (실천문학사죠!) 방송사에 로비를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 안 되다가 잊어버렸는데 어떻게 그 쪽에서 재고를 했는지 ‘느낌표!’에 선정이 됐어요. 그래서 좀 많이 팔렸지. 수익의 반 이상은 출판사도 그렇고, 작가도 그렇고 어린이도서관 만드는데 희사했잖아요. 그것도 보람이 있었죠.

김윤영 : 그럼 인세는 많이 받지 못하셨겠네요. (그렇죠!) 어마어마하게 팔렸다는, 또 요즘은 출판시장이 안 좋다 보니까 몇 십 쇄를 찍는 것 자체가 꿈같은 이야기로 들리거든요.

현기영 : 나로서는 잘 안 팔리는 작가였는데. 미련한 사람도 용꿈 꾸어서 실현되는 경우가 있고, 미련한 소도 앞으로 나가서 뭘 하려는 한 것이 아니라 졸음에 겨워서 뒷걸음질치다가 개구락지 한 마리 밟는 식으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 같아요.



4.3 문학은 승리했다


김윤영 : 전, 오히려 선생님께 너무 늦게 트인 문운이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젊은 작가들이 생각하기에 선생님께서 남다른 경우는 정권교체 후 문화예술진흥원장이라는 공직에 앉게 되신 점인데요. 그러니까 굉장히 멀리 있는 분으로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거기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순이 삼촌』 때문에 고초를 많이 겪으셨잖아요. 합동수사본부에 끌려가셔서 3일 동안 고문당하시고. 물론 계열이 다른 공직이긴 하지만 30년 후에 공직에 계시게 된 소감이라고 할까요. 어떤 기분이셨어요?

현기영 : 제주 4.3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비밀, 최대의 금기로 있었는데 4.3 발발하고 30년 만에 그 금기를 『순이 삼촌』이라는 작품으로 내가 깨뜨린 것이죠. 『순이 삼촌』이 그런 것인데, 그래서 끌려가서 고문당하고 얻어맞았잖아요. 그 후 또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문예진흥원장이 되었는데, 정말 격세지감이죠. 30년 세월이 적은 세월이 아닙니다. 물론 저는 근본적으로 작가죠. 작가는 글 쓰는 것이 중요하고, 그런 공직에 성큼 간다는 것이 사실 좋은 것이 아니죠. 망설여지고 그랬습니다.

나는 4.3사건이라는 한국현대사 최대의 사건을 필생의 문학의 주제로 삼아서 써 왔습니다. 4.3작가라는 말을 듣기 싫은데 그렇게 낙인찍고 있습니다. 현기영 하면 4.3,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랬을 때 아직도 4.3은 복권이 잘 안 된 형편이고, 이제 정부에서 진상규명을 하고 있지만 보수주의자들 그룹에서는 아직도 비토를 놓고 있어요. 우리사회 지도계층은 보수계급들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문예진흥원장 하겠냐?” 했을 때 내가 안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그것을 하면 “4.3도 공직에 가네!” 나에게 4.3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놀라는 거예요. 4.3은 으레 빨갱이와 관계된다는 식인데. 4.3을 복권시키는 좋은 기회잖아요. 4.3도 높은 지위에 올라가서 문화예술을 논하고, 지원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진흥시킬 것인가를 관리하고 추구한다, 뭐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거예요. 4.3의 복권에 일조하기 위해 문예진흥원장을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윤영 : 그렇군요. 리얼리즘문학에 갈증이 있는 저 같은 젊은 작가들에게 선생님께선 새로운 롤모델이 되신 것 같습니다. 항상 민족문학이나 진보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숨어서 하거나 재야에 묻혀 있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는데, 저렇게 중요한 자리에서 좋은 일을 하시고 문인이나 음악, 미술 이런 분야의 분들에게도 필요한 일을 하신다는 게 참 뿌듯한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2000년이던가요? 4.3법이 제정됐고 총리가 제주도에 내려가서 4.3위령제를 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현기영 : 그렇죠. 올해 4월 3일에는 대통령이 내려가서 위령제에 참석했죠.

김윤영 : 그런 것들이 선생님 문학의 내적 외적 영향력과 관련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은 4.3작가라는 말이 지겹기도 하시겠지만.

현기영 : 그래서 80년대에 싸움 했잖아요, 민주화투쟁. 문학도 민주화운동 세력의 전위에 서서 아지프로를 담당했잖아요. 선전선동을 문학이 담당해왔지요, 첨단에 서서. 민족문학, 민중문학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90년대 넘어가면서 80년대 문학이 일종의 폐기처분되는 것처럼 되어버리고. 문학이 주로 일상이나 감정, 정서 이런 쪽으로 흘러가버렸을 때 민족문학은, 민중문학은 패배했다 이런 말을 흔히 하는데, 4.3문학은 이긴 거예요. 나는 그 싸움에서 유일하게 이긴 삶이거든. 정말 이긴 삶이에요.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작품이라면


김윤영 : 90년대 이후는 신세대 문학이라고 신경숙이나 윤대녕 이후 젊은 작가들이 많이 나왔고요. 지금도 문단의 화두는 ‘젊은 문학’ 이런 얘기를 참 많이 해요. 선생님처럼 말씀해 주시는 선배문인들이나 작가들이 자리가 좀 좁아지는 경향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 작품 『변방에 우짖는 새』연극을 봤거든요. 영화 <이재수의 난>은 못 봤어요. 선생님의 작품이 풍요로운 다른 텍스트로, 다른 매체를 통해서 연결될 수 있는 고리들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전에 고영직 씨랑 대담하신 것을 보니까 선생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좀더 할리우드 같은 전략을 취해야 한다, 좀더 다른 형식으로, 그런 얘기를 하셨는데 어떠셔요? 아, 그리고 혹시 <왕의 남자> 보셨는지요?

현기영 : 못 봤어요. 보고 싶지도 않고. 그 전의 <태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도 보고 싶지가 않더라고.

김윤영 : 블록버스터라서요?

현기영 : 블록버스터라는 이유 때문에 할리우드 영화의 아류라고 짐작을 해버리니까. 보기도 전에. 거기에는 서사성이나 내러티브가 빈약하기 짝이 없을 것이고. 서사라는 것이 즉물적이고 선과 악의 이분법 정도의 천박한 서사일 것이라고 아예 짐작해서 안 봐버리는데.

이광모의 <아름다운 인생>인가 있잖아요. 제목이 혼동될 수 있는 것이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이태리 영화가 있어요.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트로츠키가 이야기한 것이라고 해요. 트로츠키가 스탈린이 보낸 암살범에게 늘 시달렸는데 근처까지 자객이 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아내를 바라보니 빨래를 널고 있었던가. 아내가 또 아름다웠던 모양이죠. 이런 고난 속에서도,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그랬던 모양이라고. 그 말이 너무 좋아서 감독이 제목을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했던 모양인데, 나는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어요.

나도 제주 4.3소설을 썼고, 앞으로 4.3을 쓰든지, 또는 4.3과 비슷한 소설을 쓸 수도 있잖아요? 민족수난이나 민중수난이라는 것은 외세에 의해 짓밟힐 수도 있고, 국가 공권력에 짓밟힐 수도 있는 거예요. 국가폭력이라고. 4.3은 국가폭력에 의해서 민중이 파괴되는 경우거든요. 제주도는 최소 3만이 희생되었다고 하는데, 한국전쟁을 통한 순수 양민 희생자가 약 80만 명이 된다고 해요. 그런데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거예요. 왜 작가가 얘기하지 않지요? 작가가 그 위령 받지 못한 원혼들을 위로해주는 역할을 해줘야 이 땅에 살고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물론 소설이 80년대처럼 그 작법과 문법으로 오로지 자기만이 정의로운 것처럼 씌어져서는 안 되겠죠.

고영직과의 대담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 텐데, 할리우드에 유태인 영화가 있잖아요. 반나치 유태인 수난 이야기가 많은데. 걔네들은 블록버스터는 돈 벌려고 하지만 반나치 영화는 굉장히 정교하게 만들더라고, 같은 자본인데도. <쉰들러리스트>도 그렇고.

선악 이분법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놓고 가해자는 무조건 다 나쁜 사람이다, 전부 나쁜 것으로 몰아버리는 경향이 있을 수 있잖아요. 반나치 영화가 처음에는 그랬다고. 그런데 가해자 집단 속에서도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선의의 사람이 존재한다 이거야. 4.3에서도 가해자 집단으로 악명 높은 서북청년단이 있는데, 그 속에서 양심적인 사람을 주인공으로 해서 소설 쓸 수 있는 거예요. 민중수난과 민중파괴 사건은 너무나 처참한 것이기 때문에, 또 홀로코스트는 엄청난 대량학살이기 때문에 너무 엄숙하게 쓰기 쉽지요. 코미디나 웃음이 들어갈 계제가 안 된단 말이야. 전부 엄숙하게만 나오지요.

그런데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코미디가 들어간단 말이야, 웃음이 들어가요. 바로 이런 것이 전략이란 말이죠. 앞으로 한국의 민중수난 민중파괴 이야기는 꼭 한국의 작가들이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외국인 작가들이 사용해 버려요. 예를 들어서 이창래라는 미국 교포작가 있지요?

김윤영 : 네,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소설을 썼지요. 그건, 저도 읽어 봤어요.

현기영 : 나는 뭐 안 읽어 봤지만. 정신대 이야기, 민중수난 이야기잖아요. 민중수난 이야기를 쓴 것으로 『제스처 라이프 Gesture Life』란 것이 있어요. 『영원한 이방인』은 『네이티브 스피커 Native Speaker』가 원제고. 하여간 그 작가는 정신대 이야기를 써서 호평을 받은 거예요. 형식과 미학을 중요시하고, 시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민중수난 이야기가 감동을 준 것입니다. 문학이 된 것이죠. 둔탁한 분노 식으로 글을 쓰면 이제는 낡은 수법이 아닌가 싶어요. 거기에 코미디도 넣고 하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야 돼요. 내용보다는 형식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런 것을 발견하면 한국의 민중수난 이야기도 새롭게 해석되고 작가 또한 주목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영화 <이재수의 난>과 『순이 삼촌』


김윤영 : 영화로 만들어진 <이재수의 난>은 어떠셨어요, 보신 소감이.

현기영 : 나로서는 불만이었죠. 잘못됐던 것이 스토리라인을 하나로 단순화시켜야 하는데 너무 복잡하게 만들었어요.

김윤영 : 젊은 대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대학 들어와서 의식화 서적이라고 접하는 책 중 하나가 『순이 삼촌』이었고. <이재수의 난> 같은 영화들이 나와 주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그 영화는, 저희에게도 여러 가지 아쉬움을 남겼어요. 언제 4.3에 대한 장편을 쓰신다면 영화로 만들어질 수도 있겠네요? 마치 조정래 선생님의 <태백산맥>이 영화화된 것처럼요.

현기영 : 지금 『순이 삼촌』을 영화 제작 한다고 준비 중인가 봐요. 아직 크랭크인은 안 되었지만.

김윤영 : 계약하셨어요?

현기영 : 계약했죠. 시나리오를 보내와서 내가 보고 출고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김윤영 : 이제야 만들어지는군요. 단편인 「순이 삼촌」을 가지고 만드는가요? 더 많이 개작하거나 첨삭하지 않구요.

현기영 : 거기(=「순이 삼촌」)에 4.3과 관련 있는 내 다른 작품에서도 에피소드 같은 것을 따오고.

김윤영 : 그렇군요.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현기영 : 48년이 4.3 발발이니까 60주년 되는 2008년에 상영하려고 생각해요.

김윤영 : 그러면 2년 남았네요.

현기영 : 적은 예산이지만 열심히 잘 만들어보려고 하는 모양이에요.

김윤영 : 영화 나온다는 이야기를 많이 알리셔야겠네요.

현기영 : 제주도에서는 다 아는데. 제주도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중앙에서는 신경도 안 쓰고 잘 모르고.

 

 

매직리얼리즘에 주목한다


김윤영 : 영화라는 매체가 요즘은 워낙 파급이 많이 되니까 좋을 것 같아요. 극장에만 걸리는 것이 아니라 TV라거나 인터넷에서도 많이 나도니까요. 우리나라는 워낙 속도가 빠르잖아요.

요즘 젊은 작가 작품이나 외국 사람들 작품 중에 기억 남는 게 있으신지요?

현기영 : 민중수난 이야기와 관련해서 내가 글을 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에요. 앞으로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미해결의 장으로 역사에 가려지고 해결이 안 된 80만이라는 죽음에 대해서 그들을 증언한다는 의미에서라도 글을 쓰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 글쓰기와 관련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토니 모리슨의 『빌러브드 Beloved』라는 장편입니다.

김윤영 : 그것도 영화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흑인여성 이야기죠.

현기영 : 그렇죠. 노벨상 받고. 그 사람은 내용 자체는 별것 아니예요. 내용이야 뭐 남북전쟁 당시 노예 해방 직전 이야기인데, 그 낡고 오래된 너무나 해묵은 이야기를 다시 재기억시키는 것이에요. 리메모리시키는 거예요. 잊을 수 없다는 거지요. 유태인 이야기도, 흑인수난이야기도 잊을 수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자꾸 리메모리, 재기억시키는 작업으로 영화를 찍잖아요.

마찬가지로 토니 모리슨도 흑인수난 이야기를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다, 그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흑인으로서 아이덴티티가 제대로 정립될 것이 아니냐는 대전제로 글을 쓰는데. 보면 <빌러브드>라는 작품의 형식이 매직리얼리즘이에요. 매직리얼리즘은 환상적 마술적 사실주의이지요.

어릴 때 어미가 어쩔 수 없이 분노해서 죽인 자기의 어린 애기가 유령으로 집에 있는 거야. 그렇게 정통리얼리즘이 아니라 매직리얼리즘도 생각할 수 있잖아요.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도 다 매직리얼리즘이고, 우리 경우는 황석영의 『손님』이 매직리얼리즘이지요. 황석영이가 순발력이 있으니까 매직리얼리즘을 적용한 것입니다. 우리는 정통리얼리즘만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되거든.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어요. 형식의 새로움을 보여준 거지요. 형식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소설에. 또 하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이죠. 대학교 때 읽어보다가 어려워서 못 읽었어요. 소위 유신과 관련해서, 그러니까 박정희 정권에 대응하는 실천으로서 문학을 하는 것이잖아요. 그것이 민족문학 민중문학인데. 그러다 보니까 마르셀 프루스트가 싫어졌죠. 그때는.

그러다가 지금은 어느 정도는 명목상일망정 민주화가 되고 해서 마르셀 프루스트를 다시 읽었어요. 재미있게 읽고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고. 『지상에 숟가락 하나』를 쓸 때, 『지상에 숟가락 하나』도 나의 어린 시절, 잃어버린 시간을 탐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의 방법론이 일부 도움이 되었죠.



아버지와의 화해


김윤영 : 저는 『지상에 숟가락 하나』를 읽을 때 박완서 선생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다시 읽으면서 비교하는 맛이 있었거든요. 박완서 선생님이 연배가 위이시죠?

현기영 : 한 열 살 위죠.

김윤영 : 그런 것도 있고, 남성작가와 여성작가라는 것도 있고, 개성 쪽과 제주도의 차이점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참 다르더라고요. 박 선생님 책이 서울깍쟁이 같은 고소한 입담과 감성으로 무장했다라면 선생님 책은 현무암같이 구멍이 숭숭 뚫린 돌의 질감처럼 문장이 돌돌돌 굴러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혹시 비슷한 연배의 소설가 중에서 이 분은 내 경쟁자 같다, 이런 소설은 나도 한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동료 작가나 선배 작가들이 있으신지요? 아까 황석영 선생님 이야기를 잠깐 하셨는데.

현기영 : 비슷한 연배에서 황석영은 남아 있고. 별로, 그분들도 마찬가지지만 나도 동료 작가들의 작품을 읽질 않아요. 안 읽으니까 대충 어떤 글을 쓰고 있겠거니 이런 정도만 알고.

김윤영 : 전 소문 듣고 읽어보는 경우가 가끔 있거든요. 아마도 비슷한 나이 또래라는 게 중요한 것을 묶는 것 같더라고요.

현기영 : 그 쪽에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젊은 작가들이 많은데, 나이든 사람이 젊은 작가들 글 보고 “야! 이거 닮아야겠네”라는 것은 힘들 것 같아요. 그냥 나름대로 작품도 그 연령대의 미덕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아무리 성장소설을,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썼다 해도 젊은 시절에 쓴 것과 지금 내 나이에 쓴 것은 다를 것입니다. 내가 만약 김윤영 씨 나이에 『지상에 숟가락 하나』를 썼다면 다른 소설을 썼을 거예요.

김윤영 : 저는 엄두도 못 냈을 것입니다. 성장소설 쓴다는 것을. 아직도 성장하는 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현기영 : 아니, 다른 맛을 줍니다. 그 나름의 다른 맛을.

김윤영 : 전에 이명원 씨 평론집에 보니까 선생님의 제주도 방언에 대한 평을 썼더라고요.

현기영 : 『순이 삼촌』가지고.

김윤영 : 방언을 잘 몰라 제가 다 이해는 못했는데 제주도 방언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가에 대해 부족한 점이나 아쉬운 부분은 없으신가요? 4.3문학이라는 것과 결부가 되겠지만 분리시켜서요.

현기영 : 반쯤은 옳은 견해지만, 다 옳다고 볼 수는 없는 건데. 그때 방언과 표준어의 충돌처럼 썼던가요.

김윤영 : 그런 것 같아요.

현기영 : 그게 전부는 아닌데, 일부에는 방언과 표준어의 충돌이 있긴 하지만.

김윤영 :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지상에 숟가락 하나』로 다시 얘기가 모아집니다. 사실 많이 들으셨을 질문 같아서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싶은데요. 저도 나이가 들면서 부모 될 자격이 있는가 의문을 가지고 제 부모님에 대한 생각도 변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 제가 가장 감명을 받은 것이 아버님에 대한 선생님의 애증이었습니다. 아버지란 존재에 대한 생각이 이 작품 쓸 때와 그 후에 변한 것이 있는지, 더 해봐야 될 가치가 있는 주제인지, 너무 많은 작가들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는데 어떠신지요?

현기영 : 사실 그 작품에서 아버지와 화해한 것이죠. 모든 아버지는 모든 장남의 도전을 받게 되어 있어요. 장남이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의 지위를 뺏으려는 투쟁 같은 것, 본능적으로 압제자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하나의 남성으로 정립될 수 없다는 그런 것이 있는지 많은 장남이 아버지와 싸워요. 가출하고. 그런데 결국은 내가 또 아버지가 되니까. 예를 들어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영원한 숙제 같은 갈등 있잖아요. 며느리가 늙으면 시어머니가 되는데 내가 시어머니가 되면 흉보임을 당할 텐데 며느리에게 잘해야지 하는 것이 안 되고.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도 그런 것 같아요.

 

 

새 장편소설에 대해서


김윤영 : 문예진흥원장 하시기 전에 창비에 연재했던 소설 있잖아요. 계속 이어서 작업하실 건가요?

현기영 : 시작은 해놨는데 이어서라기보다는 그것을 파괴해서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요.

김윤영 :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이 풍부해질 수 있겠네요.

현기영 : 이것은 가족 얘기가 아니라 특이한 소설일 것 같아요. 문명 비판적이고 묵시록적 상상력에 사로잡혀 있는 주인공이라.

김윤영 : 주제나 소재가 완전히 달라지는 건가요?

현기영 : 아니, 똑 같은 거예요.

김윤영 : 언제쯤 끝낼 예정이셔요?

현기영 : 그게 금방은 어렵겠더라고. 

김윤영 : 그때 뵜을 때 좀 있다 시작한다고 하셨는데

현기영 : 근데 아직도 시작 못했는데. 어떻게 할까 생각하기도 싫고 해서. 곧 시작해야지. 요즘 가장 중요하게 그것을 생각해요.

김윤영 : 영감 같은 것을 어디서 많이 얻으세요? 사모님과 여행 갔다 오신 것도 관계가 있나요?

현기영 : 여행 갔다 온 것을 당장 써 먹지는 못하겠죠. 어떤 경험은 오래 지난 다음에 뭔가 여과될 것은 여과되고, 약간 노스탤지어가 붙으면서 다가오더라고. 그럴 때 내 것이 되고 작품이 되는 것 같아요.

김윤영 : 혹시 공직에 계셨던 경험도 소설 속에서 볼 수 있을까요?

현기영 : 그것은 전혀. 내가 군대 얘기를 안 쓰잖아요. 군복무 했던 이야기, 병영생활 자체가 비인간적인 것이죠. 비인간적인 것과 인간성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문학은 상극이기 때문에 군대이야기가 안 나와요. 마찬가지로 공직에 복무한 것이기 때문에 별 재미가 없어요.

김윤영 : 그때 구상 같은 것도 좀 하셨을 것 같은데요.

현기영 : 지금 시간이 많으니까 얼마든지 구상할 시간이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잘 안 돼요. 구상하기도 싫고. 뭐가 떠오르고 “이렇게 해서 아! 이렇게 해야지” 해야 하는데. 뭘 기다리는 것 같아요. 요즘 말로. 그 분이 오기만 기다리는데. 내가 모아놓은 메모를 조립해서 만들자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에피소드나 자료를 많이 모아놓았는데 이것을 함께 묶을 수 있는 뭔가가 나와야 한단 말이야. 난 그게 참 어려워요.

김윤영 : 막힐 때 무엇으로 돌파구를 찾으세요? 여행도 있고 산책도 있는데.

현기영 : 산책할 때도 나오고, 남의 글을 읽을 때도 나와요. 아! 이건 나도 경험했는데 하면서 그것과 연관해서 다른 것이 생각나요.

김윤영 :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선생님 같은 대가들도 그러시군요. 저도 머리가 안 돌아갈 때는 예열을 한다고 생각하고 재미있는 책을 막 읽어요. 그러다 보면 저도 모르게 아이디어가 나올 때가 있어요. 사모님도 정년퇴직 하시고 같이 오붓하게 계시는데 옆에서 많이 도와주지 않으세요?

현기영 : 에이, 뭘 도와줘요?

김윤영 : 작업실을 다시 마련하거나 하는 계획은 있으신가요?

현기영 : 집에서 해요.

김윤영 : 저는 놀란 게 요즘 많은 작가들이 작업실이 있더라고요. 젊은 작가들도요,

현기영 : 미혼들이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거기서 자고.

김윤영 : 사모님과 취미생활 같이 하시는 것은 없으셔요?

현기영 : 산책을 같이 하죠. 중앙공원이나 불곡산.

김윤영 : 사모님이 영감을 주거나 그러실 때가 있지 않나요? 답답하니까 선생님이 톡톡 말을 하시면 가장 가까이 있는 분이니까 뭐라고 한마디 하실 때가 있으실 것 같은데.

현기영 : 나는 작품세계가 다르니까. 김윤영 씨는 보니까 여성이면서도 남성적인 글쓰기 톤이 있어요.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여자 이야기잖아요. 같이 이야기 하는 경우도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나는 완전히 남성적인 글쓰기이기 때문에 도움이 안 돼요.

김윤영 : 사모님이 오랫동안 중학교에서 재직하셨잖아요? 학교생활 이야기 들려주시지 않나요? 이런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애들이 이렇다, 이런 얘기들.

현기영 : 그 친구의 시집이 있어요. 『아이들의 풀잎노래』라고. 중학생들의 발랄한 행동, 이런 것들을 소재로 해서 쓴 시들이지요. 읽어보면 재미있거든. 그처럼 얘기보다는 글을 통해서 중학생들을 새롭게 발견하죠.

김윤영 : 저는 소재가 막히면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데, 무심코 수다를 떨다 보면 우연찮게 기억에 남아 한참 지나서 에피소드가 될 때가 있었거든요. 사모님께서 오랫동안 중학교 재직하셨으면 재미있는 일이 많았을 것 같아서요.

현기영 : 그것은 다 자기의 시 소재가 되었겠지.



다시 4.3을 다룬다면 포스트모던한 방식으로


김윤영 : 결국 다시 4.3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요, 96년 즈음 제가 대학원에서 현대사 논문을 쓸 때인데요. 선배들 말이 4.3 가지고는 석사논문조차 쓰기 어렵다고 했어요. 써봤자 누가 알아주겠느냐 이런 얘기들도 했구요. 그런데 시대가 좀 지나 2000년인가 4.3사건 진상규명법이 만들어지고 세상이 많이 바뀌었구나 싶어서 논문을 찾아 봤는데 제가 과문해 그런지 그다지 새로 나온 것이 없어 보였어요. 4.3은 사실 문학계에 맡겨지기보다는 사학계에서 해야 하는데 예상만큼 많이 안 따라 주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바라시는 점이 더 많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광주항쟁에 작가들의 관심이 그쪽에 집중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고요, 임철우 작가처럼 그 얘길 쓰시는 분도 많으시고. 그런 점에 대해서 공직에 계실 때 추진해보려고 하신 적은 없어요?

현기영 : 공직하고는 관계없죠. 문화예술은 개인에 의해서 하는 것인데 4.3은 대량학살, 홀로코스트, 이런 식으로 얘기하잖아요. 요즘은 국제어로 제노사이드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대량학살이라는 말이 끔찍하고 그래서 나도 제노사이드를 써요. 제주도 문제를 포함해서 여순사건에서도 많은 양민들이 학살됐잖아요. 이것과 동아시아의 학살사건들, 대만의 228사건, 오키나와 학살사건, 중국의 남경대학살, 이런 것들을 국제적으로 조직해서 심포지엄을 열었어요. 제주도와 여수도 하고, 광주도 일종의 학살이니까 광주에서도 하고, 오키나와에서도 했어요. 나는 두 군데만 참석했는데, 의미 있었지요.

전쟁과 관계없이 하나의 나라가 성립되려고 할 때 희생양으로 민족을 파괴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제주도가 그런 경우고요. 혹은 전쟁과 관련해서 씨를 말리는, 그래서 침묵시켜버리는 이런 방법으로서 제노사이드가 있는데 엄청난 것이에요. 나는 그렇게 얘기해요. 전문 사학자나 사회학자나 문학가에게 제노사이드는 큰 덩어리다라고. 역사 문제, 정치 문제, 경제 문제, 사회심리 문제가 다 있어요.

4.3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에게는 아직도 트라우마가 있어요. 정신적 외상이라고 번역되는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데 이런 것에 접근하는 것 등을 비롯해서 할 일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이걸 과거의 일이라고만 생각하는 거예요. 남한의 세태가 자본주의사회니까 자본주의는 무조건 앞으로만 질주하는 것이잖아요. 질주하다 보면 자연히 뒤의 것은 잃어버리게 돼 있어요. 뒤의 것을 꺼내도 새로워 보이지 않으면, 포스트모던해 보이지 않으면 과거를 보지 않는단 말이야. 그래서 역사적으로도 재조명하고 역사에 제대로 기술이 되어야겠지. 그런데 그렇게 안 돼 있어. 심리학도, 사회학도 거기에 곡괭이질을 하면 중요한 광맥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학도 그렇고.

김윤영 : 만일, 다른 공직에서 말씀 하신 그런 작업을 맡으실 수 있겠냐고 하면 어쩌시겠어요? 요즘 과거사 어쩌고 해서 추진위원회를 많이 만들잖습니까. 다시 공직에 앉으실 의향도 있으신가요?

현기영 : 이제는 나의 본연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포스트모던이라는 말을 썼는데 4.3을 다룬다면 포스트모던하게 다루어야겠다는 것이지. 젊은 애들이 포스트모던하고 환상적인 것을 하잖아요. 그 환상 수법을, 포스트모던한 수법을 거기에 적용해야 합니다. 민족수난에 적용해야 해요. 무척 어려워. 만약 그것이 성공적으로 되면 사실 노벨문학상 감이지.

김윤영 : 황석영 선생님의 작품처럼 그런 것을 차용하는 게 최상일 것 같아요. 저도 리얼리즘 작가로서 형식을 아무리 고민하고 다른 시도를 해봐도 소재와 주제가 같으면 형식의 새로운 시도가 그리 돋보이지 않더군요. 읽는 사람들 입장에선, 새로운 형식이라는 걸 거기에 들인 노력과는 상관없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요.

현기영 : 충실한 문학 독자가 못 되는 것이지. 충실한 문학 독자는 사상의 깊이까지 다 아는 거야. 독자 본인은 못 써도 작가가 어떤 기법을 썼고 이 기법이 들어맞았는지 아닌지 다 알아요.

김윤영 : 저도 그런 사려 깊은 독자들 만나면 정말 기뻐요. 제가 쓰고도 잊어버리고 있는 메타포나 구성에 대해 지적해 주고 공감했다고 말해주는 독자들 말이지요. 요즘 독자들은 편지 대신 주로 메일을 보내는데요, 무명 독자들의 평이 때론 더 뿌듯하고 힘이 나게 해주거든요.



문명비판적 새 소설, 『누란』


김윤영 : 선생님께서 지금 쓰시는 글이 어떤 작품으로 나올지 궁금해요. 제목을 정하시지는 않았나요, 가제라도.

현기영 : 창비 연재할 때는 제목이 『누란』이었는데 나중에 제목도 바꾸게 될지 모르겠어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이 소설은 묵시록적 상상력에 의해 씌어지는 소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란’은 서울을 이야기하는 거죠. 제어장치도 없이 질주하고 있는. 야릇한 소비행태 속에서 욕망을 드러내고, 욕망을 극대화시키고, 욕망을 채우고 소비하는 형태의 사회거든, 서울은. 이건 제대로 된 삶이 아니다, 이런 삶은 언젠가는 망한다, 서울만 망하는 것이 아니고 자본주의 대도시들은 멸망의 길을 걸을 것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 쓰러졌던 누란처럼. 그런 의미에서 『누란』으로 정했는데 그 말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써내려가게 될지. 힘 있는 소설이 되어야 하거든, 그렇지 않고는 안 되니까.

김윤영 : 내년쯤에는 볼 수 있을까요?

현기영 : 내년? 모르겠어.

김윤영 : 분량은 어느 정도 계획하고 계셔요?

현기영 : 책 한 권 분량이죠.

김윤영 : 그럼 천 매 정도겠네요. 장편소설이 점점 드물어지는 것 같아요. 다들 단편 위주로 쓰는 데다가 상도 단편에 주는 것이 많고요.

현기영 : 우리나라 작가들은 단편들을 잘 쓰잖아요. 외국단편을 읽다 보면 우리나라 단편이 외국단편 못지않거든. 잘 써요. 근데 장편에서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김윤영 : 조정래 선생님의 『태백산맥』이나 『한강』이후에 대하장편이라고 할까요, 긴 장편소설이 드문 것 같아요. 사실 힘든 작업이기는 한데, 젊은 작가들에게는 기대하기 힘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 같은 작가 분들이 시도해 볼 만한 일이 아닐까 해요. 대하장편 같은 경우는요.

현기영 : 대하장편을 좋아해요? 아니, 다른 뜻이 아니라, 대하장편 쓰는 사람은 단일 작품세계 속에 빠져 있기 때문에 그래요. 대하장편 10권보다는 보통 장편 3권 정도 쓰는 작가가 훨씬 더 다양한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고 다양한 성취를 하는 것 아닌가요? 장편 셋은 세 가지 성취를 한 것이죠. 아무리 대하장편 10권이라 해도 하나의 성취예요. 대하장편은 내러티브가 쉬울 수밖에 없어요. 읽기는 쉬운데 문학성 보장이 잘 안 돼요.

김윤영 : 제가 여쭙고 싶은 게 그 점이었거든요. 몇몇 인기작가의 소설 외에는 한국소설이 잘 안 팔리고 있거든요. 대하장편 같은 경우에는 거기에 호감을 가진 독자들이 많아요. 읽기가 쉬우니까 그런지 특히 남성독자들이. 그런 점 때문이라도 대작가들이 좋은 소설을 내주시면 출판시장이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그래서 여쭤본 것입니다.

현기영 : 그런 대하소설이 팔린다고 해서 덩달아 본격소설이 팔린다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출판계의 ‘일류’ 바람


김윤영 : 요즘 출판계의 화두 중 하나는 ‘일류’입니다. 일본소설들이 굉장히 많이 선점하고 있습니다. 젊은 학생들이나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말랑말랑한 이야기들인데, 혹시 읽어 본 적 있으신지요? 에쿠니 가오리라고 들어보신 적 있으셔요?

현기영 : 아니. 안 읽어봤지만 무라카미 류의 작품 한 페이지 정도는 어디서 봤어요. 참을 수 없이 경쾌하더구먼.

김윤영 : 그 작가들보다 더 경쾌한 작품들이 나오고 있어요.

현기영 : 아! 단순한 소비재지. 엔터테인먼트에 해당하는 것인데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언급하는 것은 곤란하죠.

김윤영 : 희한하게도 일본에서는 대중문학에 상을 주고 있거든요. 상을 받았다는 데에 약한 것이 또 우리나라 독자들인 것 같아요.

현기영 : 아쿠다카와상 같은 것은 순수 문학에 주는 것인데 좋은 상이지요. 그 외엔 대중소설에 많이 주지. 나오키상이니 이런 것.

김윤영 : 우리나라랑 다른 게 우리나라는 대중문학에 주는 상도 없고,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이 분리가 되어 있다는 점인데요. 일본소설에 대해선 그런 경계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상을 받았다니까 작품성도 되나 보다 하고 많이들 읽거든요. 일각에서는 그런 점을 본받아야 하지 않나 이야기하기도 해요. 독자들을 유인하기 위해서는, 순수문학이 대중문학으로 내려가지는 않더라도 좀더 쉽게 쓰자는 얘기 같아요. 

현기영 : 중간문학, 즉 최인호 씨가 하는 중간문학이 많이 번성할 거예요.

김윤영 :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현기영 : 블록버스터라는 무책임한 영화 보는 것보다는 낫죠.

김윤영 : 맞아요. 요즘 친구들을 책을 읽느니 영화를 보러 가거든요. 영화와 책이 경쟁하는 시대가 돼버렸어요. 일찍 태어난 작가들은 행복했다고 저희들은 부러워해요. 몇 만부씩 나가다니! 이러면서요.

현기영 : 김윤영 씨 글 솜씨 보니까 앞으로 독자 많이 생기겠더라고.

김윤영 : 감사합니다. 첫 책 낸지 불과 4년밖에 안 됐는데 4년 전과 지금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해요. 그때만 해도 몇 쇄 나가는 것이 당연했는데 지금은 2쇄 나가기도 너무 어렵다고요. 선생님께서도 새로 책을 내실 텐데 기대치가 있으시지 않나요?

현기영 : 나는 안 팔려도 좋아요.

 

 

젊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김윤영 : 지금은 ‘느낌표!’ 방송도 없거든요. 심지어 예전에는 책 소개 프로그램도 많았는데 지금은 하나밖에 안 남았어요. 책이라는 게 작가와 독자들이 서로 주고받는 것인데 말이지요. 선생님 책을 대학 신입생 때 읽은 사람들도 많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요즈음은 출판시장도 안 좋고 독자들의 반응도 알 수 없어서 결국 좋은 작가분들이 붓을 꺾는 일이 벌어져요. 다같이 자활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하는데요.

앞으로 계속 선생님 책을 읽을 젊은 독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쓸 것이다라고 한 말씀 해주시지요. 아까 말씀하신 『누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해주셔도 좋구요. 기다리고 있어 봐라, 내가 이런 책을 낼 거다라고요.

현기영 : 나는 4.3 항쟁을 필생의 화두로 삼아서 글을 써 왔고 그것이 내 할 일라고 열중했어요. 이제 국회에서 국회 입법으로 4.3특별법이 제정되고 그것에 따라 정부에서는 진상규명을 하고 있는데, 그게 제대로 되고 있질 않습니다. 너무나 미흡한 상황인데도 모든 것이 해결된 걸로 대중들은 생각하고, 4.3에서 멀어져 버리고 있어요. 여하튼 4.3을 붙잡고 내가 분투했을 때는 보람이 있었지요.

그런데 4.3도 잊혀지고 80년대적 가치도 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완전히 부정당하고 폐기처분 당했어요. 오로지 소비만능시대, 욕망 극대화시대가 된 거지요. 데카르트 명제를 바꾸어 말한다면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런 식의 세태거든요.

그래서 인간에 대해 실망하고 있어요. 인간 자체에 대한 실망이지요. 요즘은 공원에도 가고, 산에도 많이 가요. 풀과 나무 이름도 많이 알게 되었어요. 또 이름을 아니까 더욱 사랑스러워지고. 나무를 만져보기도 해요. 인간보다는 그들이 더 좋아 보이는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싫다는 의미에서 『누란』을 쓰겠다는 것이죠.

김윤영 : 경종을 울리는 의미에서요?

현기영 : 경종보다도. 경종 울린다고 말 듣겠어요? 지금 이 사회는 망하는 데로 가는 거죠.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의 질주와 같아요. 소혹성이 와서 부딪히기도 전에….

김윤영 : 그렇게 강하게 질타하는 소설을 앞으로 써 보시겠다는 것이지요? 빨리 읽어보았으면 좋겠네요. 기억나는 젊은 작가들이나 작품이 없다고 하셨는데 문학을 시작하는 문청들이 계속 나오잖아요. 그런 문학청년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현기영 : 이창래의 경우를 생각하라 이거죠. 이창래가 글을 잘 쓰는 친구예요. 미문의 문장을 쓰는 친구지요. 재미교폰데, 자기 아버지 고향인 한국의 전 시대에 있었던 정신대 이야기를 가지고 훌륭한 문학으로 격상시켜 놓았단 말이죠. 이런 소재를 외국에 뺏긴 거예요. 이창래는 미국작가지 한국작가가 아니예요.

국내에서는 소비주의에 함몰되어서 너무 경쾌한 소설만 쓴다거나 소비주의에 영합했어요. 우리 삶은 과거와 더불어 사는 거예요. 과거를 폐기한 삶은 무의미한 삶이 됩니다. 과거를 폐기처분한다는 것은 토대가 없는 삶이에요. 그런데 역사를 무시하고 공동체를 무시하고, 한 가족 내에서도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경험을 무시해 버린단 말이야. 한 가족 내에서 할아버지의 경험은 역사의 한 분자로서 살았던 경험 아니겠어요? 이런 세태 속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입지가 굉장히 좁잖아요. 과거 탐구도 현재 못지않게 중요시해야 한다고 젊은 작가들에게 부탁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정통리얼리즘 말고도 포스트모던한 수법이랄지, 환상 수법이랄지, 코미디 등을 동원해서 쓰면 훌륭한 세계적인 작품이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김윤영 : 문학청년들이 대가들의 책을 읽으면서 문학의 꿈을 키우잖아요. 알게 모르게 고전이라고 부르는 작품들에는 역사에 대한 정수가 문학에 잘 접목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젊은 청년들이 쓰려고 하는 걸 보면 그런 것이 아니거든요. 어떻게 보면 독서훈련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선생님 세대와 제 세대가 다르듯이 요즘 더 젊은 문학청년 세대가 읽는 독서목록이 다르더라고요. 추천해주고 싶은 목록이 있으면 몇 가지만 말씀해 주세요.

현기영 :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추천하고 싶어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김윤영 : 선생님께서 옛날에 읽으신 책도 괜찮아요.

현기영 : 난 참 잘 안 읽었어요.

김윤영 : 그래도 기본적인 철학 같은 것은.

현기영 :  톨스토이도 도스토예스키도 안 읽고.

김윤영 : 요즘 학생들은 더 안 읽는데요. 선생님은 그 시대에 이런 것을 부정하고 한국문학에 매진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요.

현기영 : 다 읽긴 읽어야 하겠는데, 예를 들어서 대학교 가서 『죄와 벌』 같은 것을 이왕이면 영어공부 할 셈으로 영문판을 사다놓고 읽어야지 하면서 읽지 않았어. 뭐가 그렇게 바쁜지. 그러면서도 읽은 것과 다름없는 그런 느낌이 있는 거야. 소냐도 알고, 라스콜리니코프도 다 알고. 초인사상도 알고 말이야.

김윤영 : 그런 이야기 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요즘 학생들은 실기 위주, 잘 쓰는 법 위주로 공부하는 것 같아요.

현기영 : 입시교육과 비슷한 것인데, 우리나라 입시교육의 문제점이 창의력을 끄집어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느림과 여유로움 속에서 창의력이나 상상력이 나오는 것인데 지금 문창과에서는 교육과정을 통해 레포트로 시와 소설을 제출하게 합니다. 또 문장을 이렇게 쓰라고 고쳐주는데 모범 문장이라는 것이 없어요. 교수들이 고치는 문장이 그게 모범문장입니까? 문장은 개인이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천편일률적인 문장이 나와요. 나도 신춘문예 심사를 해봤지만 개성이 없는 문장들이에요. 나는 문창과의 존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김윤영 : 저는 습작을 해본 경험 없이 덜컥 등단을 해서 문장을 잘 쓰는 친구들을 보면 참 부러워요. 얘기를 들어보면, 오정희 선생님 책을 놓고 베끼곤 했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던데,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다 보면 자기 문장으로 바뀌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선생님께선 워낙 오래 교단에 계셨으니까 입시문제에 대해서도 잘 아실 것 같아요. 20년 넘게 계셨죠?

현기영 : 그렇지. 만 20년 넘게 있었죠.

김윤영 : 문청들에게 주시는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선생님 얼굴을 직접 뵙지 못한 독자들 같은 경우에는 워낙 4.3과 제주도가 뇌리에 박히다 보니 현무암 같은 이미지가 있을 것 같은데요.

현기영 : 성씨도 현이에요, 하하.

김윤영 : 실제로 뵙는 선생님 모습은 젊은이들과도 격의 없이 통하실 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저희에게 롤모델이 될 것 같아요. 어서 좋은 작품 빨리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아직 노년은 아니고 중년이시잖아요. 청년이라고 하기엔 너무 낯간지러우시지요?

현기영 : 과찬입니다. 나도 김윤영 씨 같은 젊은 작가들과 겨루면서 어서 작품활동 할 생각입니다. 끼워주지 않겠어요?

김윤영 : 경쟁해야 될 작가가 또 늘었네요. 오늘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장 웹진/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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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30
시 쓰고 자빠졌네

시 쓰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누군가에게 자주 두들겨 맞았고, 누군가에게 가끔 린치를 가하던 시절이었다. 이웃 여고 문예부 아이들이 어쩐지 예쁠 거 같아서 문예부실을 전전했다. 그리고 백일장에 나가곤 했다. 물론 남달리 예쁜 아이는 없었지만, 어쨌든 17세 남녀가 교복을 입은 채로 노래방에서 듀스나 룰라, 혹은 투투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은 남달리 아름다웠다. 되도록 빨리 노래방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바사바, 시를 썼다. 빨리 써야 했다. 시는 최초의 노래였으므로. 엉덩이를 두드리듯, 천사를 찾아. 발라드를 부르며 감정 과잉에 빠지는 철수에게 영희는 이렇게 말한다. 시 쓰냐? 그때 우리는 원고지를 눕히던 누런 잔디에서, 어두운 노래방에서, 혹은 밀도가 높은 교실에서 어떤 감정 속에 놓여 있었을까. 난 누군지 또 여기는 어딘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분노에 가득 차 교복을 줄이고 담배를 숨기고 몰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수채화 대신에 야간 자율 학습 감독을 주로 하던 미술 선생은 또 말했다. 또, 또 시 쓰냐? 시화전 제출 작품에서 피 흘리는 고등어를 그려 놓고 ?어느 고딩의 죽음?이라 제목을 붙이며 나는 전위를 담당한 듯 당당했다. 부끄러움이 없는 남자였다. 미술 선생에게 욕을 먹을 때에도, 맞을 때에도 나는 부끄러움을 몰랐다. 대한민국 학교 다 족구하라 그래. 시 쓰고 자빠졌다, 정말. 정말이란 말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다. 오래 생각하는 버릇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사고한 것으로 보이는 일들이 생각보다 빠르고 무식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말? 시집을 묶어내던 중에 바위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그 부엉이는 정말 새였을까. 도심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 그 망루는 정말 구름이었을까. 모두 정말이냐고 정색하며 물어 볼 만한 일들이었다. 분노가 치민다. 지금 나와 싸우자는 건가? 그런데 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아니다. 싸움은 끝났다고, 이제 싸움이 아닌 경쟁의 시대라고 배웠다. 나는 그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화가 났다. 사실 싸움보다 훨씬 경쟁이 무서웠다. 사건은 이미지가 되는 순간 거짓말이 된다. 이 모든 게 차라리 멋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지만, 이것은 너무나 끔찍한 거짓말. 난삽한 이미지.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 그러므로 차라리 보이는 게 진실이라고 믿어 본다.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진실이 시의 배후가 되어 시에 맘껏 개입해도 나는 좋다. 시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기꺼이 네가 그렇게 하라.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 이제 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리얼리스트 되자. 모던한 리얼리스트가 되자. 모더니스트가 되자. 리얼한 모더니스트가 되자. 장난하느냐고? 그렇다면, 불길한 장나니스트라고 해 두지 뭐. 꼴에 시랍시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시가 좋다. 그리고 시가 밉다. 사랑하고 미워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처음 증상을 보일 때는 이렇게 데뷔를 하고 시를 쓰리라 짐작하지 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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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5
일본 소설, 한국 시

일본 소설, 한국 시 한성례 한국에서 일본소설의 베스트셀러 현상 한류바람이 뜨겁게 일본 열도를 달구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왔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작가가 나올 정도로 한국은 일본소설 홍수 시대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일본소설가들조차도 왜 일본소설이 한국에서 그렇게나 많이 팔리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한 일본 신문의 인터뷰나 원고의뢰가 있을 적마다 나는 현재 한국에서의 한국시에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종종 많이 팔렸다. 70년대 중반에 첫 출간된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해적판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출판금지서임에도 안 읽은 사람이 없을 만큼,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필독서이고 바이블이었다. 1999년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 커버에 비닐을 씌워 19세 미만 구독불가로서 출간된 후에도 쇄를 거듭하며 읽히는 소설이다. 또한 1989년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은 당시 크게 각광을 받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읽힌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 쟁취와 맞물려 자의식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향하던 시기였다.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고,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 고독, 상실감 등이 당시 한국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겹쳐지면서 이 소설에 크게 공감했다. 더욱이 하루키의 가독성 높은 문장은 금방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한편으로 문학의 구도자 같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소설도 여러 편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주로 문학 창작자들이 마니아였다. 하지만 일본소설의 인기는 단편적일 뿐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구소설이 중심을 이뤘다.그러던 것이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쓰지 히토나리, 히라노 게이치로, 요시다 슈이치 등 젊은 작가와 미야베 미유키, 스즈키 코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미스터리 소설과 나오키 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 수상작이 2000년 이후에 대거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고, 대형서점에는 코너가 별도로 마련될 만큼 일본소설은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일본소설은 재미있다. 독자를 의식하고 소설을 썼다는 게 금방 느껴진다. 말하자면 자신의 상품을 사줄 소비자의 위치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통해 현실에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일탈을 꿈꾸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일본소설의 주인공 젊은이들은 특별한 목표도 없고, 무기력하며 수동적이고, 나약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기존 질서에 따르지도 않고, 세상을 약간은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부와 명예, 사회적인 안정 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독특한 상상력과 가독성 높은 문장도 한 몫 한다. 최근 일본과 한국에서 밀리언셀러 판매 기록을 갱신하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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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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