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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지니는 신비한 역동성의 탐색

  • 작성일 2007-03-12
  • 조회수 3,708

 

삶이 지니는 신비한 역동성의 탐색


대담 서영은(소설가)

진행?정리 신영철(소설가)


intro 

요즘 소설의 경향 

김동리 선생 

작품 

페미니즘 

원고지 

사범학교 시절 

궁금한 이야기 

탱고 

유언장 

매일 매일 한발 더 해서 끝까지 


삶에서 벗어나 있는 젊은 소설들


신영철 안녕하십니까. 뜰에 들어서 보니 작년 이맘때 봤던 산목련이 촉을 틔우고 있더군요. 정말 봄이 온 것 같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서영은  오시느라 수고하셨어요. 작년 꽃필 때 왔다가 다시 꽃필 때 오셨으니 어느새 1년이 지났군요. 잘 지내셨어요?

신영철  그럼요, 잘 지냈습니다. 세월이 무상한 것 같습니다. 이번 연말은 굉장히 바쁘셨죠?

서영은  예, 좀….

신영철  어디 중앙지(紙)의 신춘문예 심사도 하시던데, 요즘 문학판은 위축되고 있지만 신춘문예 응모작품 편수는 더 늘어났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다 읽으시느라 엄청 고생하셨을 것 같습니다만, 요즘 소설은 어떻게 작법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선생님 생각은 어떠세요?

서영은  제가 그걸 다 읽은 건 아니구요.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만 읽었어요. 신춘문예 두 군데 하고 ‘이상문학상’후보작까지 40여 편을 읽었는데, 요즘 우리 소설이 좀 걱정스러워지더군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소설에서 삶이 사라지고 있어요. 소설이 재미가 없고, 독자가 공감할 수 없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 눈에 보여 걱정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작가에게서도 삶이 사라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글쓰기와 삶은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에, 작가들이 삶의 현장 속으로 두려움 없이 뛰어들어 체험을 더 많이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책상 앞에서는 삶을 만들어서 쓰게 되지요. 르 끌레지오는 작가에게 상상력이란 없다, 체험을 전제로 한 상상력이 있을 뿐이라고 말해요.

신영철  신춘문예 응모작들, 요즘 소설의 문제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결국 작가의 체험과 깊은 고뇌가 녹아들지 않는다면, 책상에서 억지로 만든 소설이라는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서영은  기교나 문장력, 이런 것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볼 수 있는데 중요한 핵심이 빈약하다는 것이죠. 여기서 한 가지 짚고 싶은 것은 젊은 작가들 중에는 발로 뛰어서 취재를 철저히 하는 것과 삶의 체험을 혼동하는 경우예요.

신영철  그러면 발로 뛰는 취재와 체험은 어떻게 다른가요?

서영은  체험은 우리가 매순간 전존재를 다 던져서 그 상황을 사는 것이고, 취재를 통해 얻는 것은 정보나 지식일 뿐인 거죠. 그런 점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 삶에서도 마음 다하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상처 입을까 봐서.

신영철  그러면 작가의 철학이란…….

서영은  예. 상처가 제 살이 된 거죠. 인생관도 그렇고. 때문에 양식에서는 새로워 보여도 내용이나 주제는 의외로 너무나 상투적이에요. 젊은 작가들이 오히려.

신영철  젊은 작가들이 좀 더 고민하면서 글을 써야 할 텐데 상투적인 수사의 나열로 소설을 꾸민다고 지적하시는 것 같습니다. 방에 들어오면서 보니까 선생님의 아버님 사진이 걸려 있더군요. 정말 많이 닮으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말 많이 들으시죠?

서영은  네. 형제들 중에서 제가 아버지의 외모뿐만이 아니고 내면이나 성격도 제일 많이 닮은 것 같아요, 제가 봐도.  




 

인연의 끝에서 얻은 것


신영철  요즘 서영은 선생님이 옛날보다 마음의 평안을 많이 얻으신 것 같다고 주변에서 듣고 있습니다. 집에서 성경공부를 십년 넘게 해오셨다고 들었는데 아버님도 신학교 출신이시죠?

서영은  목회는 안 하셨지만 삶은 목회자의 자세로 사셨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종교적 분위기에서 살았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제가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받아들인 것은 김동리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였어요. 저는 사랑이나 문학이 인생의 무상함을 넘어설 수 있는 절대적 의미가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제가 겪은 무상함은 죽음 그 자체였기 때문에 종교만이 그 해답을 지니고 있었던 거죠.

신영철  그러시군요. 말이 나왔으니 여쭙겠는데요. 선생님을 말할 때는 늘 김동리 선생님이 언급돼요. 모든 매체에서도 그렇고. 저 역시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사실 선생님의 삶이 정말 순애보적이고, 극적이어서 삶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선생님의 삶에서 김동리 선생님은 어떤 의미를 지닌 분이셨습니까?

서영은  그분 이야기를 한마디로 할 수는 없고요, 우선은 그분하고 거의 평생을 함께했다는 사실은 제게 엄청나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어린 나이에 그분을 만났고, 조강지처로 만난 것도 아니었어요. 사회적으로 불륜인 사랑이었기 때문에 항시 깨어질 요소들이 잠재되어 있었지요. 저는 평생 가슴에 주홍글씨를 달고 살았어요. 그 때문에 몰매를 맞아 죽게 되더라도 피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저는 90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의식이 없는 그분 옆에서 한 마디 자기 변명도 없이 온갖 수모를 고스란히 감수했습니다.

신영철  그 마음이 사람들에게 지순하게 느껴진 걸까요?

서영은  아이구, 지순할 거까진 없구요. 외골수인 제 성격의 일면과 그분의 파쇼적 소유욕이 합작해서 이룬 거지요.

신영철  파쇼적 소유욕이라구요? 글쎄, 저는 상상이 잘 안 되는군요.

서영은  그분은 저에게 일기를 매일 쓰게 하시고, 나중에 그걸 검열하고 그 옆에 당신의 일기를 써놓으셨어요. 당시 저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집에 들어오면 전화를 꼭 걸라고 하셨어요. 저에겐 고문 같은 주문이었죠. 어쨌든 그 호된 터널을 다 지나서, 이 자리에 왔어요. 경주의 동리기념관 작업을 다 마무리 짓고 오픈한 날을 기점으로 저는 동리와의 인연을 살아서 제 손으로 풀었어요. 자료도 모두 넘겼습니다. 조금 남아 있는 건 앞으로 영인문학관이 새로 지어지면 그곳에 기증하려 해요. 그러면 자료로부터도 해방됩니다.

신영철  살아서 인연의 사슬을 푸셨다는 말씀이…….

서영은  듣기만 해도 시원해요?(웃음)

신영철  시원해지는데 한세상 걸렸다니…….

서영은  어쨌든 그렇게 인연의 값을 혹독하게 치르며 죽을 것 같아서 어떤 문을 열어 젖혔는데 거기에 절대 진리, 하나님이 있었고, 하나님을 만나고 보니 지금의 평화와 안식, 이런 것이 주어진 것이죠.

신영철  그래서 선생님 얼굴이 그렇게 평안해 보였구요.

서영은  사람들이 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신영철  근래에도 작품을 쓰고 있습니까?

서영은  예, 금년에 장편을 출간할 계획이에요. 제 욕심은 5월말까지 끝냈으면 하지만, 모르겠어요.

서영은  장편을 쓰고 계신 게 중편으로 발표되었던 작품인가요?

서영은  《작가세계》에서 제 특집을 마련한다고 해서 장편으로 구상했던 부분을 300매로 압축해서 발표한 거죠. 이 장편을 완성하면 일단 작품을 통해서도 제 삶의 화두 한 부분이 완전히 마무리된다고 생각해요.

신영철  저도 그 작품을 읽었습니다. 늘 선생님을 영광스럽게도 하지만 때로는 곤혹스럽게도 만드는 김동리 선생님에 대한 선생님의 자전적 소설이 아닌가 생각해 봤습니다만…….

서영은  소설을 쓴 지 어느새 수십 년 되다 보니까 옛날에는 3인칭으로 써도 자기가 더 많이 투영됐는데, 지금은 1인칭으로 써도 3인칭, 말하자면 타인의 삶을 그리는 느낌이에요. 1인칭적 내면의 눈으로 삶을 바라봐도, 그것이 결국 존재론적 문제이기 때문에, 삶의 본질에 이르는 관점을 갖게 됐어요.  

 


 

작가의 내면은 샤먼


신영철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는데, 지금은 1인칭적 관점을 가지고도 선생님의 내면을 관조하듯 표현할 수 있다고 이해를 합니다만…….

서영은  1인칭으로 써도 제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죠, 더 이상은.

신영철  1인칭으로 써도 다른 대상을 아우르며 관조하게 된다는 말씀…….

서영은  저는 항상 인간성에 대한 탐구 내지 삶이 지니는 신비한 역동성, 이런 것을 실제에 가깝게 담아내는 데 역점을 둬 왔는데, 그런 점에서 아주 중요한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아요.

신영철  선생님의 초기 작품은 거의 여성들이 주인공이었는데요.

서영은  아뇨, 오히려 초기에는 남성들이 많았어요. 남성을 주인공으로 했던 이유는, 초기에는 상당히 철학적 사유를 담은 관념적 소설을 많이 썼기 때문에 그래요. 여성보다는 남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 훨씬 적합했지요. 그렇게 쓰다 보니까 자기 내면이 주인공에게 투영되는 부분에서 성에 차지 않는 거예요. 구체적인 묘사에서도 남성의 생각이나 몸짓의 세세한 디테일, 행동이나 심리에 대해 완전히 알지 못하니까. 그런 점이 소설에 틈으로 남아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여성을 등장시킴으로써 자기를 훨씬 많이 투영하는 작품을 써보니, 작품을 쓰고 난 뒤의 성취감이 커졌어요.

신영철  제가 잘못 알고 있었군요. 초기 작품에도 남성이 주인공으로 많이 등장했는데 제가 여성이 많이 등장했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아마 선생님의 『먼 그대』라든가, 『사막을 건너는 법』 등의 작품에 여성의 심리 묘사가 리얼하게 들어간 것 때문에 아주 강렬한 인상을 받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서영은  『사막을 건너는 법』의 실제 주인공은 남자예요. 거기서 제가 월남전을 묘사하기 위해서 자료를 많이 봤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사실에서 틀린 점을 발견하게 됐어요. 월남전에는 공중전이 없었대요. 저는 그 작품의 중요한 부분 묘사에서 폭격하는 장면을 넣었는데, 월남전에 직접 참전했던 분이 그러는데 월남전에는 공중전이 없었대요. 밀림에서 전투가 벌어졌기 때문에 공중에서 폭격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답니다.

신영철  선생님도 잘못 알고 계셨던 것이네요.

서영은  그랬어요.(웃음)

신영철  선생님의 작품 중에 강한 인상을 남긴 인물의 캐릭터를 이야기하자면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신 『먼 그대』와 연암문학상 수상작인『사다리가 놓인 창』, 『그녀의 여자』에 나오는 문자, 정애, 현 여사지요? 이 세 인물의 캐릭터가 어떤 면에서는, 독자 입장에서 바라보면, 서로 공통되는 것도 같은데요. 또 이질적인 것도 같고.

서영은  모든 작품에 투영된 캐릭터는 작가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신영철  그렇습니다.

서영은  작가에게 ‘나’는 일반적인 의미로서의 ‘나’와는 다르죠. 작가에게 ‘나’는 모든 캐릭터를 아우르는, 말하자면 ‘무당’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작가의 ‘나’는 일반적인 의미의 ‘나’와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저만 그런 것이 아니고 작가들이 그리는 모든 인물들의 캐릭터는 다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아닌가요? 모델이 있다 해도 자기의 어떤 부분을 통과하고 나서야 묘사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신영철  어떤 모델이 있다고 해도 자신에게 한번 걸러지면서 새로운 캐릭터로 탄생하지요. 우문이 되겠습니다만, 세 주인공 중에 애정이 가는 주인공이 있다면? 누구에게 애정이 더 가시나요?

서영은  세 작품은 저한테 굉장히 중요한 작품들인데, 『먼 그대』의 문자는 나의 중요한 인생관을 담아낸 인물이고, 또 『사다리가 놓인 창』의 정애는, 연대적으로 거꾸로 된 감이 있는데, 주인공의 나이가 20대예요. 제가 그 소설을 쓴 것은 40대 후반의 결혼 생활 중이었지요. 그 이전의 삶에 대한 관념적인 생각들 중 어떤 부분들이 결혼 생활 중에 아주 여지없이 깨지면서 ‘삶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 점에서 『사다리가 놓인 창』은 『먼 그대』가 담고 있는 관념적인 인생관을, 삶을 통해서 확인하는 작품이었어요.  어떤 혹독한 시련이나 고난이 앞에 놓일지라도 피하지 않고 대면하고 치러내겠다는 의지를 확인했지요.

신영철  그렇다면 결국은, 느슨한 연결 고리를 갖고 있지만, 연작이라고 봐도 괜찮겠네요.

서영은  그것은 전혀 아니죠.

신영철  스토리는 전혀 다르지만 한 여성으로서 겪은 것을, 이전의 『먼 그대』에서는 경험을 못해 보고 쓴 글이라고 하셨고…….

서영은  제 삶에 특수한 점이 있어서 그런 거지요. 사실 대개 20대에 결혼해서 자식 낳고 시댁과 친정, 기타 여러 상황들 곧, 중년이 될 때까지 겪게 되는 일반적인 삶의 과정들이 저는 독신이었기 때문에 쏙 빠져 있는 상태에서 『먼 그대』를 썼던 것이고, 『사다리가 놓인 창』은 거꾸로 다른 사람들이 20대에 겪은 것을 40대 후반에 겪고 나서 쓴 거지요. 겪어보니까 ‘야, 이거 정말 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찌 됐건 치러내고 겪어내기로 했었습니다.

신영철  선생님이 『먼 그대』로 7회 이상문학상을 탄 것이 1983년이죠. 그 작품의 주인공 문자의 외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발이 없으면 몸뚱이로, 몸뚱이가 없으면 모가지로라도 설 테야” 라는 절규가 생각나는데, 어떻습니까. 궁금한 점이 하나 생기는데요. 선생님이 지금 쓰고 계신 작품도 맥락은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요.

서영은  예, 그런데 그 맥락을 따라서 제가 실제로 치러내고 보니까 마치 백척간두에서 뛰어내린 상태, 정신적 죽음 같은 것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정신적 죽음을 통해 죽은 것은 두려움이고 사실은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죠. 그러니까 삶에 대한 인식의 차원이 바뀌어 불멸?영원?신과 하나됨을 믿게 되었어요. 그 때문에 후배 작가들에게 또는 다른 분들에게 얘기할 기회가 있을 때, 정말 인생의 결론이 진리를 만나는 것에 있다면, 정통 코스를 따라서 끝까지 치러내야만 한다고 말해요. 제가 체험했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는 것이죠.

신영철  체험보다 더 훌륭한 글쓰기 밑천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늘 선생님 글을 읽으면서 그런 것을 떨칠 수 없습니다. 저는 선생님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공통된 아픔을 깊이 있게 살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선생님은 페미니스트입니까?

서영은  저야말로 아주 본질적인 차원을 다루고픈 페미니스트죠. 페미니스트는 여성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여성성을 더 밀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여성성이라는 것이 표피적인 페미니즘하고 어느 부분에서 상충하는데, 사회적 제도를 우선시하는 페미니스트의 주장을 저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편협한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마치 남성과 여성이 대립해야 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전혀 아니죠. 여성이 자기의 평등권을 쟁취하려면 남성보다 우위에 섰을 때 가능한 것처럼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어요. 평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존’입니다.  

 

 

찢겨진 세상의 육신을 꿰매는 여성성


신영철  협소한 범위의 페미니즘을 넘어서서, 결국은 대립과 반목이 아니라 상생을 원하신다는 말씀이시죠?

서영은  상생뿐만이 아니지요. 여성이 끌어안는 힘은 대지적 힘과 같습니다. 이집트 신화에 보면 이시스는 갈가리 찢겨서 죽은 남편의 시체를 놓고 조각조각 찢겨진 살점들을 실로 꿰매요. 그게 여성성의 진정한 예라고 볼 수 있어요. 그 갈가리 찢겨진 남편의 육신을 꿰매는 부인의 심정이란 살아 있는 지옥이겠죠. 시체를 온전하게 꿰매서 다시 살리는 데까지 가는 것이니까, 여성의 힘이야말로…….

신영철  그러니까 여성성의 힘이야말로 대지적인 힘이다, 즉 끌어안는 대지의 무한한 힘이 곧 여성성이라고 말씀하시는 거군요.

서영은  거기에 이르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헌신을, 어머니 세대는 일반적으로 다 치러냈죠. 치러내고 겪어내는 일을 수없이 한 다음에 그 자리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아름답던 여성의 외모는 거의 다 마모되어서 주름밖에 없고, 손은 옹이투성인 데다 허리는 굽고…… 그런 상태까지 가는 것이죠.

신영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질문을 하리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녀의 여자』에서 현 여사가 여자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 다시 말해서 ‘이것은 동성애 소설이다’라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서영은  최근에 어느 출판사로부터 연애소설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저는 소재로서는 사랑 얘기를 많이 썼지만, 사랑의 얘기를 지나서 존재의 문제가 항상 마지막 지점에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어떤 의미에서는 연애소설을 한 번도 못 써봤다고 할 수 있죠. 『그녀의 여자』는 출판사에서 책을 내면서 좀 팔릴까 해서 제목을 그렇게 붙인 것이고, 원래 제목, 연재 당시의 제목은 ‘시간의 얼굴’이었어요. 거기서 중요한 것은 시간 속에서 삶이 역동하는 서사과정, 믿고 의지했던 가치나 의미들이 상실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생기는 결핍감이 병적인 집착으로 변형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죠.

신영철  병적인 집착으로 변형되는 심리 묘사라면…….

서영은  중요한 핵심은, 삶의 폭력성이 여성에게 끼친 상실감이나 덧없음, 슬픔 등이 다른 차원의 것으로 바뀌기 이전의 비극적 심리 상태를 소재로 한 것인데, 그 작품에서 동성애가 된 것은 현 여사의 내면이 그만큼 절박했다는 것, 상대가 누구냐를 생각할 여지조차 없을 만큼 현 여사의 내면이 절박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할 것 같아요.

신영철  덧없음, 상실감, 슬픔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현 여사의 몸부림이라는 거죠?

서영은  절박하다는 것은, 그 같은 상황의 주인공에게는 삶이 삶이 아니라 죽음 같은 거죠. 자기가 죽지 않으려면 다른 것을 찾아내야 하는 상태에서 인생의 의미나 목표들이, 너와 내가 하나로 합일되는 사랑이라는 게 가능한가, 우리가 ‘함께 나누고’라는 말을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 많이 쓰는데, 그것이 어디까지 가능한가를 탐구해 본 것이죠.

신영철  그런 지고지순한 사랑은 우리가 더 생각해 봐야 한다는 말씀으로 들리는데……. 그렇군요. 이게 단순한 동성애 소설이 아니라 그 이면에는 왜 사는가에 대한, 죽음과의 경계에 맞닿아 있는 한 여자의 절박한 삶의 문제에 접근한 것이기 때문에 동성애 소설이라고 간단하게 정의내리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의 삶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이렇게 정리하겠습니다. 원래 작가보다 독자가 해석을 더 잘 하거든요.

서영은  (웃음).

신영철  선생님은 아직도 원고지에 글 쓰는 것으로 소문나 있잖아요. 요즘엔 컴퓨터 작업을 하지 않으면, 말은 안 하지만, 출판사 실무자들이 짜증내요. 컴퓨터로 안 쓰시는 분이 또 계신가요?



기억의 자리에 서있고 싶다


서영은  최인호 씨하고 또 한두 분 더 있는 것 같아요. 시대의 흐름을 외면하고 사는 것은 아니고, 인터넷을 통해 자료 검색이나 이메일은 주고받지만 종이에 글 쓰는 습관은 제가 소설을 쓰기 훨씬 전부터였어요. 돌 때 연필을 잡고 종이에 뭘 끼적거릴 때부터 시작된 일이기 때문에 컴퓨터가 출현했다고 해서 갑자기 이것은 불편하고 저것은 편리하다, 그렇게 금방 몸이 돌아서지지 않더라구요. 저는 지금 상태가 좋고, 원고지 한 칸 한 칸을 글자로 메울 때는 마치 글자의 수(繡)를 놓는 것 같아요. 컴퓨터를 쓰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육필 작업의 불편함이라는 게, 저는 오히려 편하고 자연스러워요. 수정 테이프로 지운다든가, 지울 부분이 많으면 가위로 오려서 붙이고……. 그래서 가위, 칼, 청테이프, 풀 이런 게 글을 쓸 때는 필수품이죠.

신영철  선생님 작품 속에서는 현대적인 캐릭터가 나오는데, 작업 과정을 보면 전근대적이네요. 가위, 칼, 청테이프. 지울 게 많을 때는 오려내서 붙이시고?

서영은  완전히 수작업이죠. 이런 과정 속에는 남이 모르는 즐거움이 있거든요. 워드로 툭툭 쳐서 휙 날리는 것이 뭐가 재밌을까.

신영철  컴퓨터 세대는 모르는 재미, 한 땀 한 땀 글자 수를 놓는 혼자만의 즐거움이군요.

서영은  영인문학관에서 글 쓰는 도구에 대한 전시회를 하나 봐요. 글을 써달라고 해서 ‘기억의 자리에 서있고 싶다’는 제목으로 원고를 보냈죠. 남이 다 떠나가는 원고지에 글 쓰는 것은, 추억 속의 일처럼 되고 아니 이미 그렇게 된 상태죠. 그 자리에 저는 있겠다는 것이에요.

신영철  그래서 ‘기억의 자리에 서있고 싶다’가 제목이군요. 옛날 얘기를 한번 들려주시지요. 선생님 고향인 강릉은 신사임당의 고향이고, 산수경계 수려한데다가 교육의 도시, 예향의 도시잖아요. 그 당시 선생님이 수학했던 사범학교라면 수재들이 모이는 곳이었지요. 사범학교는 어느 도시든 그랬습니다. 가난한 수재들이 즐겨 찾는, 전부 교육자로 가는 과정이었죠. 그런데 선생님이 가난하게 성장하신 것 같지는 않아요. 아버님도 선각자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범학교를 가셨는데, 제가 들은 이야기와 자료에 의하면 선생님은 필기시험에서 2등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실기시험에서 ‘유희’를 거부해서 결국 임용이 안 됐다고 들었는데, 그때 말씀 좀 듣고 싶습니다.

서영은  제가 졸업하기 전까지는 사범학교 졸업하면 자격증이 주어지고 도내 초등학교에 자동적으로 발령이 났어요. 그런데 제가 졸업하던 해부터 임용고시를 한 번 더 치르게 됐어요. 저는 중학교 때부터 이런저런 책들을 보면서 속물적 삶에 대해 깊은 회의를 품었어요. 그 때문에 우등생인 급우들의 조숙한 태도에 거부감이 심했어요. 저는 가르치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에요. 남을 가르칠 때 서있는 자리라는 것이, 한 꺼풀 치장을 하고 상대를 내려다보는 자세로 ??쇼우업??하는 상황이, 저는 별로 탐탁치 않았어요. 타고난 수줍음도 있고 내성적이니까, 잘난 척 하는 것을 제일 싫어했어요. 그런 성격 탓에 선생을 하고 싶지 않았던 거죠. 그때 제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생활이 어려웠어요. 그런데도 저는 교사가 되지 않겠다고 버텼어요. 어머니는 시험이라도 봐둬라 하셨어요. 자격증은 이미 나왔지만 발령을 위한 임용고시가 남았었으니까요. (소설에서는 픽션을 약간 가미했지만) 시험관 앞에서 유희를 하는 실기시험에서 제가 춤을 안 추었어요. 풍금 치는 분이 세 번이나 기회를 줬는데, 아주 꼿꼿이 반항하듯이 서 있었죠. 그것은 시험관에게가 아니고, 생으로부터 선생을 할 수밖에 없는 듯이 강요받는 상황에 대해서였죠. 결국 실기시험에서 실격한 저는 사범학교 졸업생으로서는 발령을 받지 못한 유일한 졸업생이 되고 말았어요.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죽도록 고생했는데, 그 고생 속에서 오늘의 제 길이 희미하게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 제가 입에 달고 지냈던 시는 「나는 너의 반대로 간다」라는 불란서 시였어요.

신영철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공무원 중에서도 교사라고 그러던데요.

서영은  글쎄요, 제가 현실감이 없어요. 따지고 계산하고 그런 걸 잘 못해요. 그 당시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사회적으로 행세하는 높은 지위 같은 것이 부러운 게 아니고, 내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으려 애썼어요. 몇 년 뒤에 그것이 소설 쓰는 것이다, 작가가 되는 거다, 이렇게 맞물려졌는데, 그때는 내가 원하는 것이 작가라는 것을 아직 모르는 상태였어요. 『사다리가 놓인 창』에서 정애에게, ??울타리에 탱자나무가 심어져 있는 바닷가 옆의 조그만 초등학교의 햇빛 밝은 교정에서 애들하고 하나 둘 하나 둘 하면서 선생을 해도 좋겠다??고 말을 시킨 것은 내 나이 마흔이 넘어서였지요.

신영철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니 그때 그 고집스러움이 괜한 것이었다 싶던가요?

서영은  하지만 그때 그 고집이 없었으면, 저는 현실에 밀려 작가가 되지 못했을 거예요.

 

백척간두 이후


신영철  선생님 참 대단하신 것 같아요. 조카 사업을 밀어줬다가 큰 손해를 보셨잖아요. 그 이야기가 독자들은 또 궁금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평생 원수로 사는데, 만나십니까?

서영은  그 얘기를 조금 하자면, 그 조카는 제 여동생의 아들이에요. 여동생의 남편이 목사님이셨는데 이 사람이 과로를 해서 길을 가다가 쓰러졌어요. 그리고 이틀 뒤에 사망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 아이가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상태가 된 겁니다. 머리가 아주 우수하고 그런 점에서 평소에 믿음을 준 아이였어요. 저 나름대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었지요. 성경을 공부하면서 사람을 기른다는 것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고요. 조카가 극동가스 회사에 시험을 봐서 잘 다니다가 나와서 사업을 한다고 저를 찾아왔어요. 저는 애 말을, 그 당시만 해도 그대로 믿고 밀어 준 것이죠. 그런데 제가 믿은 것과는 달리 머리가 좋다고 사업이 금방 궤도에 오르는 것은 아니잖아요. 세상 자체를 걔도 모르고 나도 몰랐던 거죠. 굉장히 크게 깨졌죠. 깨진 뒤에 오히려 제가 조카를 진짜로 믿게 되고 사랑하게 됐어요. 물론 힘들었죠. 아파트 두 채를 담보로 해서 빌려준 돈을 십 원 한 장 못 건지게 되었어요. 제가 그때부터 매달 이자니 뭐 이런 것을 갚아나가야 했죠. 뿐만 아니라 애 보증을 서놓은 것까지 다 달려드는 거예요. 한번은 누가 벨을 눌러서 나가보니까 집에 딱지를 붙이러 왔다는 거예요. 제가 보증 선 건이었지요. 그렇게 하나하나 겪어가면서 집도 하나 팔고, 그러면서 갚아가는 과정에 원망이 쌓여 처음에는 모든 책임을 걔한테 다 씌웠죠. 제가 잘못한 것, 제가 세상을 모르는 것까지도 애한테 다 씌운 거죠. 그러다가 차츰차츰 실패가 오히려 이 아이를 정말 강하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애가 직장의 월급쟁이로 있었으면 겪지 않을 일을 겪으면서, 자기 안에 있는 능력을 다 끌어올리더라고요. 영어는 원래 잘했지만, 더 잘하게 되고, 일어, 스페인어, 중국어까지 술술 말하게 되더군요. 거기다가 아르바이트로 회사에 들어가서 그 회사를 철저하게 시스템화해 궤도에 올려놓고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아주 밑바닥에서부터 일을 배우면서 성장을 한 거지요. 

신영철  집달리까지 찾아올 정도면 얼마나 막다른 골목이고 안타까웠겠어요. 화도 나고.

서영은  부산 광안리에 굉장히 좋은 54평 아파트를 팔고 나니, 당장 2억이 오르는 거예요.  그렇게 되니 너무 약이 오르잖아요. 그런데 아이가 능력을 키우고 성숙한 것에 비하면 내가 치른 돈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는 걔가 거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해요.

신영철  그동안 마음 고생하신 것, 굉장히 큰돈까지 손해 본 건 거부가 되어서…….

서영은  저한테 갚는 것보다 걔가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게 된 것이 중요하죠. 저도 그것을 알게 된 것이 무엇보다 값진 소득이고요.

신영철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네요. 조카도 그렇지만 선생님도 돈이 어디에 쓰여야 하는지 알았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군요. 비상상황이라고 해야 하나요, 사태라고 해야 하나요, 이건 큰 사태인데 선생님 참 대단하세요. 큰 손해를 끼친 조카와 웃으면서 말하는 것이 참 대단하신데, 신앙생활과 작가로서 인간의 본성에 접근하려는 것이 큰 도움이 됐겠습니다만, 또 하나 있다면 여행이 아닌가 싶은데요. 선생님은 여행광이시잖아요.

서영은  여행도 도움이 됐겠지요. 중요한 것은 선생님(김동리-편집자)이 쓰러지신 다음에 제가 겪은 것을 통해서, 인간 본질의 바닥을 저 자신과 주변사람에게서 보고 나니까 나를 내세울 것이 정말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누가 어떤 악이나 잘못을 저질러도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는 본성이어서, 그 악이나 잘못은 그 사람만의 것이라 할 수 없어요. 또한 인간은 수치를 당해야 자기를 볼 수 있고, 자기를 봐야 성숙할 수 있는 단초를 얻게 되지요. 그런 점에서 여행을 통해 세상을 넓게 발로 체험한 것에서 얻은 깨달음도 있지만, 제가 인간의 바닥까지 내려가서 정말 낮은 자리에서 무릎을 꿇어보니까 백척간두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여기서는 뭐든지 다 끌어안을 수 있고 포용할 수 있다, 그런 마음이 생기더라구요.

신영철  조카 얘기를 들으면서, 세월이 좀 지났다고 해서 그렇게 허허허 웃을 수 있는 게 선생님을 버티게 한 여유로움 때문인지, 인간의 본성에 접근해봤던 경험 때문인지 모르겠군요.

서영은  저는 실패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실패는 그냥 하향곡선의 어떤 지점일 뿐이고 그 지점은 위로 올라가는 것과 연결되어 있지요. 

신영철  바닥을 치고 올라간다?

서영은  그럼요.

신영철  여행 얘기를 한다는 게 조카 얘기로 돌아갔네요. 선생님한테는 묘한 취미가 많이 있으세요. 가야금도 그렇고, 몇 년 전부터는 탱고를 춘다는 소문이 났잖아요. 탱고 얘기 좀 해주세요.



춤 이야기


서영은  제가 뭘 배우는 것을 그렇게 좋아해요. 지금까지 보면 플루트, 가야금, 검도, 그밖에 몇 가지가 더 있어요. 살풀이도 배웠고요. 그런데 탱고는 살풀이 뒤에 배웠어요. 살풀이를 추다가 동티난다고 하는 것 있잖아요, 귀신 들릴 뻔한 것. 살풀이춤에 곁들여지는 노래가 한스런  넋을 위로하는 것이있어서 그런지,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속이 수박처럼 쪼개지는 듯이 아프고 정신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 춤을 배울 때는 와인을 마셔서 아픔을 한숨 죽인 다음에야 연습을 했어요. 맨 정신으로는 노래가 너무 찌르니까. 내 아픔과 슬픔을 타고 다른 한스런 혼이 제 속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어떤 사고로 이어지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너 죽는다는 경고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살품이춤 배우던 것을 끊고, 그때부터 산행을 몇 달 하면서 틈이 아물어갔지요. 탱고의 경우는… ‘포에버 탱고’라는 팀이 우리나라에 왔었어요. 그 공연을 보니까, 그 전에 본 〈탱고 레슨〉이라는 영화가 떠올랐어요. 그 영화가 굉장히 인상이 깊었었어요. 그래서 탱고를 꼭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가 국민대학에 스포츠댄스 하는 데가 있어서 나가기 시작했지요. 처음에는 ‘룸바’, ‘차차차’를 하다가 탱고를 따로 배우기 시작했어요. 탱고도 살풀이처럼, 춤추는 사람의 내면에서 즐거움이나 기쁨을 표현한 것이 아니고, 어떤 비극감을 표현한 춤이더라고요. 비극감을 담아낼 때 춤 태가 나는데, 그것도 또한 자기 안의 아픔이나 슬픔을 찌르는 것이더라고요. 그리고 춤이 굉장히 어려워요.

신영철  어려워요? 제가 보기에는 경쾌하던데요. 짠~ 짠~ 짠짠.

서영은  보기에는 그런데 어려워요. 한때는 아르헨티나 가서 살면서 1년쯤 춤을 배워올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신영철  그런 생각까지 하셨어요?(웃음) 왜 어렵죠? 경쾌한 음악에 맞춰서 남녀가 추면 될 것 같은데.

서영은  테크닉이 굉장히 필요한 춤이구요.

신영철  어렵기는 발레가 더 어려운 춤 아닙니까?

서영은  탱고는 무릎을 약간 굽힌 채로 수평으로 이동해야 되기 때문에 중심을 잡는 것이 오랜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 같아요. 지금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아르헨티나에 가볼 수도 있죠.

신영철  좋습니다. 그래서 저희에게 전수도 해주시고, 소설 쓰시는 분들 사이에 탱고 열풍도 불러 일으켜보세요. 이사도라 던컨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는데 아주 인상적인 말로 기억합니다.

서영은  이사도라 던컨은, 발레를 몸을 혹사하는 춤이라고 했어요. 몸을 자유롭게 풀어주고 생명을 꽃피우듯이 하는 춤이 자기는 더 좋다, 그래서 자기 식의 자유로운 춤을 고안해 낸 것이다, 라고 말했죠. 지금도 발레를 보게 되면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이 어떻게 저기까지 갈 수 있나, 이런 감탄을 하지요. 그러면서도 발레 슈즈 안의 발에 얼마나 많은 굳은살이 생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걸 감수한 발을 보고 이사도라 던컨이 발레를 아주 가혹한 예술이라고 한 거예요. 

신영철  이사도라 던컨은 발레를 경멸스럽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만, 발레를 보는 눈이 다르고 발레를 하는 사람의 입장이 다르다는 말씀은, 소설 쓰기에서도 똑같지 않겠어요? 책상 앞에서 피 흘리듯 한 땀 한 땀 글로 수를 놓으신다고 하셨는데, 쓰시는 입장과 그것을 읽는 독자의 입장이 다르지 않겠어요? 

서영은  예술의 창작 과정이 대개는 혹독한 고통과 훈련을 통해 나오는 것이지만 몸으로 하는 예술은 규칙과 규격 속에 몸을 넣어야 하잖아요. 그것이 몸이 지닌 자유로운 욕구와 반대되기 때문에 이사도라 던컨은 그 훈련을 뭣 때문에 해야 하는지 자기는 모르겠다 그랬던 거예요.

신영철  아주 좋은 비유이신 것 같아요.

서영은  탱고조차도 해보니까 일정 규칙을 따라 몸을 훈련시켜야 했어요. 모든 춤은 그 춤맛을 내려고 하면 평생 걸려서 그 규칙을 육화시켜야겠더라고요.

신영철  선생님은 규격과 규정을 싫어하시는 편이죠?

서영은  예, 아주 많이.

신영철  2002년에 선생님이 유언장을 공개하셨어요.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 유언이 지금도 유효하신지요. 무슨 말인고 하면 그 당시 유언장에 장례식은 가까운 친지 몇 사람만, 그리고 화장을 할 것, 산의 나무 아래 뿌려줄 것, 이렇게 유언하셨는데요, 저한테 기억에 남는 것은 화장해서 나무들에게 뿌려 달라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으세요?

서영은  예, 저는 예전부터 수목장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현재 상태에서 제가 죽는다면 지금 사는 집을 성경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물려줘서, 제가 없더라도 성경공부 모임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놓을 것이고, 그 모임을 통해 매 맞는 아내라든가, 외국인 여성들을 돌볼 수 있는 기금을 마련해 놓으려고 해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시스템을 제가 만들어놓고 죽으려구요.

 




사랑, 삶의 차원을 바꾸는 예술


신영철  지금 뼈아픈 선생님의 삶의 궤적을 좇아오면서, 그리고 선생님 작품 세계에 대한 오랜 시간 대담을 나누면서 충만한 허허로움이라는 느낌이 드네요. 허허로운 충만감 또는 충만한 허허로움, 자유롭게 사시는 것 같아서 보기 좋습니다.

서영은  그렇게 봐주시니까 고맙습니다.

신영철  마지막 질문을 드리고자 하는데요. 후학들에게 글 쓸 때 마음가짐, 또는 어떻게 해야 옳은 글, 남는 글, 글다운 글을 쓸 수 있는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서영은  거기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구요. 삶 속으로 좀 더  걸어 들어가 부딪혀라, 상처 입는 것을 두려워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사실 상처가 삶의 중요한 지혜로 바뀌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술도 예술 자체로 남는 것이 아니고 예술가 자신의 삶을 한 차원 바꾸는데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저는 예술가가 예술가로만 머무는 걸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면 아주 탐미적인 세계를 추구해온 사람들을 보면, 자기 자신은 굉장한 지옥에 살았거든요. 지옥의 일면을 작품을 통해 보여준 것까지는 좋았는데 자신이 그 지옥의 상태에서 죽었을 때, (저는 영혼의 불멸을 믿기 때문에) 어떤 예술가도 영혼의 안식 없이 죽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해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마지막에 도달할 곳은 사랑이에요. 자기애를 떠난 이타적인 사랑, 전체를 아우르는 큰 인간이 되는 것, 그 방향으로 예술도 가는 것이지 예술이 삶에서 동떨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작품을 책상 위에서만 만들어내지 말고 자기를 삶에다 던져서 아픔이든 뭐든 깊게 체험하라,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신영철  상처는 지혜가 될 수 있으니 책상에서 쓰기보다는 삶 속에 자기 몸을 던져라가 되겠네요.

서영은  예, 제 말을 여행하라는 식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이 아니고 우리 앞에 놓인 삶이 수많은 겹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냥 우리가 누구하고 만나서 얘기를 하더라도 온 마음을 다해서 만나라, 그거죠. 마음은 뒤에 숨긴 채로 입으로만 10시간을 말한들 그 만남은 공허할 뿐이지요. 가슴으로 살라는 말이지요.

신영철  가슴으로 살고 가슴으로 써라! 좋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이론서에는 나오는 말이지만 실제로 하려면 그것처럼 어려운 것이 없잖아요.

서영은  마음을 다치면 아프죠. 나부터도 어떤 경우는 방어적 자세로 사람을 대할 때가 있어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사실은 그것보다 더 나가야 해요. 그렇지 않고는 삶의 핵심을 알 수가 없죠.

신영철  오늘 핵심은 마지막 말씀, ‘한. 발. 더.’로 이해하게 됩니다.

서영은 ‘한 발 더’가 아니라 끝까지 가라는 것이죠.

신영철  알겠습니다. ‘한 발 더’, ‘한 발 더’ 해서 끝까지.

서영은  매일 매일 ‘한 발 더’ 해서 끝까지.

신영철  장시간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담 중에 개인적으로 많은 지혜를 배웠구요,  대담을 끝내면서 하신 말씀, 한 발 더, 머물지 마라, 한 발 더, 선생님의 이 말씀을 새기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이나 영상을 보는 사람들도 한 발 더 가는 그런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서영은 1943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1968년 《사상계》에 단편 「교」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1983년 중편 「먼 그대」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고, 1990년 『사다리가 놓인 창』으로 연암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꿈길에서 꿈길로』『황금깃털』『사막을 건너는 법』『술래야 술래야』『사다리가 놓인 창』『살과 뼈의 축제』『내 사랑이 너를 붙잡지 못해도』『타인의 우물』『시간의 얼굴』 등이 있다.


신영철  1951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충북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열여덟 차례에 걸친 히말라야 원정 경험이 있으며, 산악 전문지 《사람과 산》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00년 미주 한국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됐으며, 문학사상사 장편 공모에 『가슴 속에 핀 에델바이스』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자전적 산악 에세이집 『히말라야 이야기』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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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30
시 쓰고 자빠졌네

시 쓰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누군가에게 자주 두들겨 맞았고, 누군가에게 가끔 린치를 가하던 시절이었다. 이웃 여고 문예부 아이들이 어쩐지 예쁠 거 같아서 문예부실을 전전했다. 그리고 백일장에 나가곤 했다. 물론 남달리 예쁜 아이는 없었지만, 어쨌든 17세 남녀가 교복을 입은 채로 노래방에서 듀스나 룰라, 혹은 투투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은 남달리 아름다웠다. 되도록 빨리 노래방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바사바, 시를 썼다. 빨리 써야 했다. 시는 최초의 노래였으므로. 엉덩이를 두드리듯, 천사를 찾아. 발라드를 부르며 감정 과잉에 빠지는 철수에게 영희는 이렇게 말한다. 시 쓰냐? 그때 우리는 원고지를 눕히던 누런 잔디에서, 어두운 노래방에서, 혹은 밀도가 높은 교실에서 어떤 감정 속에 놓여 있었을까. 난 누군지 또 여기는 어딘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분노에 가득 차 교복을 줄이고 담배를 숨기고 몰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수채화 대신에 야간 자율 학습 감독을 주로 하던 미술 선생은 또 말했다. 또, 또 시 쓰냐? 시화전 제출 작품에서 피 흘리는 고등어를 그려 놓고 ?어느 고딩의 죽음?이라 제목을 붙이며 나는 전위를 담당한 듯 당당했다. 부끄러움이 없는 남자였다. 미술 선생에게 욕을 먹을 때에도, 맞을 때에도 나는 부끄러움을 몰랐다. 대한민국 학교 다 족구하라 그래. 시 쓰고 자빠졌다, 정말. 정말이란 말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다. 오래 생각하는 버릇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사고한 것으로 보이는 일들이 생각보다 빠르고 무식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말? 시집을 묶어내던 중에 바위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그 부엉이는 정말 새였을까. 도심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 그 망루는 정말 구름이었을까. 모두 정말이냐고 정색하며 물어 볼 만한 일들이었다. 분노가 치민다. 지금 나와 싸우자는 건가? 그런데 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아니다. 싸움은 끝났다고, 이제 싸움이 아닌 경쟁의 시대라고 배웠다. 나는 그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화가 났다. 사실 싸움보다 훨씬 경쟁이 무서웠다. 사건은 이미지가 되는 순간 거짓말이 된다. 이 모든 게 차라리 멋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지만, 이것은 너무나 끔찍한 거짓말. 난삽한 이미지.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 그러므로 차라리 보이는 게 진실이라고 믿어 본다.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진실이 시의 배후가 되어 시에 맘껏 개입해도 나는 좋다. 시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기꺼이 네가 그렇게 하라.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 이제 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리얼리스트 되자. 모던한 리얼리스트가 되자. 모더니스트가 되자. 리얼한 모더니스트가 되자. 장난하느냐고? 그렇다면, 불길한 장나니스트라고 해 두지 뭐. 꼴에 시랍시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시가 좋다. 그리고 시가 밉다. 사랑하고 미워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처음 증상을 보일 때는 이렇게 데뷔를 하고 시를 쓰리라 짐작하지 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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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5
일본 소설, 한국 시

일본 소설, 한국 시 한성례 한국에서 일본소설의 베스트셀러 현상 한류바람이 뜨겁게 일본 열도를 달구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왔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작가가 나올 정도로 한국은 일본소설 홍수 시대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일본소설가들조차도 왜 일본소설이 한국에서 그렇게나 많이 팔리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한 일본 신문의 인터뷰나 원고의뢰가 있을 적마다 나는 현재 한국에서의 한국시에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종종 많이 팔렸다. 70년대 중반에 첫 출간된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해적판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출판금지서임에도 안 읽은 사람이 없을 만큼,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필독서이고 바이블이었다. 1999년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 커버에 비닐을 씌워 19세 미만 구독불가로서 출간된 후에도 쇄를 거듭하며 읽히는 소설이다. 또한 1989년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은 당시 크게 각광을 받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읽힌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 쟁취와 맞물려 자의식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향하던 시기였다.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고,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 고독, 상실감 등이 당시 한국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겹쳐지면서 이 소설에 크게 공감했다. 더욱이 하루키의 가독성 높은 문장은 금방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한편으로 문학의 구도자 같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소설도 여러 편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주로 문학 창작자들이 마니아였다. 하지만 일본소설의 인기는 단편적일 뿐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구소설이 중심을 이뤘다.그러던 것이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쓰지 히토나리, 히라노 게이치로, 요시다 슈이치 등 젊은 작가와 미야베 미유키, 스즈키 코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미스터리 소설과 나오키 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 수상작이 2000년 이후에 대거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고, 대형서점에는 코너가 별도로 마련될 만큼 일본소설은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일본소설은 재미있다. 독자를 의식하고 소설을 썼다는 게 금방 느껴진다. 말하자면 자신의 상품을 사줄 소비자의 위치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통해 현실에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일탈을 꿈꾸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일본소설의 주인공 젊은이들은 특별한 목표도 없고, 무기력하며 수동적이고, 나약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기존 질서에 따르지도 않고, 세상을 약간은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부와 명예, 사회적인 안정 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독특한 상상력과 가독성 높은 문장도 한 몫 한다. 최근 일본과 한국에서 밀리언셀러 판매 기록을 갱신하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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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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