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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침묵

  • 작성일 2012-12-26
  • 조회수 1,260

 

   사유의 드로잉_제5회

 

 

바벨의 침묵

 

 

강수미

(미학,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술연구 교수)

 

 

 

 

   “신이 듣기를 원하는 유일한 인간의 언어, 라틴어를 상실한 비극적인 양들의 무리인 우리는 메에 하고 우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1)

 

   논쟁과 관련해서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내게는 몇 있다. 그중에 특히 내가 사회적으로 발언할 권리가 더 많아지고, 내 주장에 힘이 더 실리면 실릴수록 더 씁쓸하게 되살아나고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는 기억이 있다. 그것은 요컨대 논쟁 당시에는 꽤 유창한 언변과 분명한 논리를 펴 논쟁 상대로부터 동의 내지는 항복을 받아냈으나, 결국 그 사람과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나중에 예상치 못하게 비판의 부메랑을 맞은 기억이다. 대체로 그런 기억 속에서 상대방은 내 의견에 반박하거나 항변하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듣고 있다가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자리를 마무리했을 뿐이다. 그래서 당시 나는 안일하게도 내 주장이 설득력 있게 그 사람에게 전달됐거니 생각했고, 나아가 어리석게도 서로 잠깐 불편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더 좋은 쪽으로 우리가 함께 가게 됐다고 기뻐했던 것 같다. 그것이 착각이자 오만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실제로 그 사람은 논쟁의 순간 정작 침묵함으로써 나를 공박했을 뿐만 아니라 아마도 가장 실리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생 굽이굽이에서 깨달았다. 이를테면 침묵은 논쟁의 기술 중 매우 은밀한 힘을 가진 공격 무기였던 것이다.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며칠이 지난 2012년 12월 말 현재, 대한민국의 대중 미디어는 물론 개인 사용자를 기반으로 한 SNS에서 말들이 넘쳐난다. 그 말들의 양은 선거를 치르기 전 상태를 압도하지만, 내용은 그보다는 훨씬 단조롭다. 예컨대 당선자가 된 후보의 소감에서 시작해 당선 후 국민에게 보내는 첫 ‘메시지’, 유력 인사들의 축하 인사말과 당선자의 답사 등이 속속들이 전달되고 있다. 또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과 선거 성공담이 거듭거듭 매체를 통해 회자되고, 대한민국의 새 통치권자가 될 당선자에 대한 각계의 바람과 조언이 줄을 잇고 있다. 동시에 대통령 당선자를 둘러싼 그런 정치적인 말들과 비등한 양을 차지하는 말은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 담론이다. 최종 투표율 75.8%로 1987년 직선제 시행 이후 계속 하락 추세를 보였던 투표율이 처음 반등했다는 사실에서부터, 투표율이 70%가 넘으면 야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관성적 예측을 깨고 어떻게 여당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는가에 대한 분석에 이르기까지 범주상 비슷한 말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담론 중 특히 의미심장하고 주목할 자료가 있다. ‘방송 3사 출구조사’를 기초로 전체 유권자 중 투표에 참여한 75.8%를 지역·세대·직업·학력·소득 등을 기준으로 나누고, 그 사람들이 여당 후보와 야당 후보 중 누구를 지지했는가를 분석한 통계 자료가 그것이다. 여기서 그 자료들의 세목을 하나하나 열거하지는 않겠다. 대신 나는 특별히 50대 유권자 중 ‘89.9%’가 18대 대선 투표에 참여했고, 그중 ‘62.5%’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를 지지했다는 사실 자료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언론사들은 그 통계치를 토대로 이번 대선이 ‘세대 간 대결’이었다고 논평하고 있다. 한 일간지의 분석에 따르면 “2030세대의 투표열기와 이를 겨냥한 대선 캠프의 캠페인이 50대 이상 유권자들에게 소외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한마디로 선거법상 투표권을 가진 모든 이들이 ‘일인 일표제’의 동등한 조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과정 동안 특정 세대는 더 각광을 받고 선거 판세를 결정할 힘이 더 센 것으로 간주된 반면 다른 세대는 그렇지 못했다는 말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취급됐거나, 심지어 선거 지형에서 부정적인 주체들로 폄하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는 말이다. 앞서 일간지 기사에서 인용한 50대 어느 유권자의 말이 그런 심리적 상황을 대변한다. “정작 유신체제를 경험한 것은 우리인데 ‘중장년층은 역사인식이 부족하고 비이성적이고 2030이 나서야 해결된다’는 식의 말이 여기저기에서 나와 상처를 받았다.”2) 문맥상 이 유권자의 말은 지난 시절 한국의 산업화를 견인한 동시에 독재정치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했다는 양가적 평가를 받는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 21세기 새로운 시대의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는 진보 진영의 논리에 거부감을 느꼈다는 얘기다. 또 그에 동조하며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개인 미디어를 통해 노골적으로 중장년층의 의식과 태도를 평가 절하한 젊은 층에 심리적으로 타격을 받았다는 얘기다. 해서 기사에 따르면 그 유권자는 투표 당일 주위 친구들에게 투표 독려 메시지를 돌리며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한다. 비단 그 사람뿐만 아니라 투표율 90%에 육박하는 수치가 그 세대의 실체를 보여준다. 즉 50대 거의 다수가 흘러가는 말이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세대의 힘을 드러냈던 것이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선거 운동 기간 동안 2030세대의 겉으로 드러난 여론몰이에 50대 이상 세대는 소외감을 느끼고 상처를 받으면서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가 실제 투표를 통해 실력행사를 했다는 뜻이 된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대선과 관련해 선거 운동이 공식적으로 허용된 23일간, 그리고 그보다 훨씬 전인 2008년 17대 대선 때부터 본격적으로 젊은 유권자들이 각광을 받았고 그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모두 20~30대에게 노골적인 구애작전을 폈고, 그들의 표가 승패를 좌우한다고 부추겼으며, 어디서든 그들의 요구와 생각을 듣겠다고 했다. 선후 관계는 따질 수 없지만 그러는 와중에 젊은 층은 다양한 미디어를 이용해 언로를 확장해 가며 자신들의 주장을 쏟아냈다. 확연히 말의 헤게모니가 젊은 층으로 이동했고, 그 말의 파워가 중장년층을 압도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문제의 골, 구체적으로 말해서 대한민국 사회를 구성하는 세대들 간에 감정의 골이 깊이 패어 들어갔다. 한쪽 세대가 떠들면 떠들수록 다른 세대는 침묵했으며, 한쪽 세대가 가시적으로 힘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다른 세대는 보이지 않게 소위 ‘결정적인 한 방’을 준비하는 형국이 됐다. 20세기 후반 한국 정치 지형을 잠식했던 ‘지역 간 대결’ 또는 ‘지역주의’가 엄연히 잔존하는 가운데, 이렇게 현재는 ‘세대 간 대결’이라는 골까지 더해진 것이다. 이처럼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고 그 양상의 주체와 원인이 분화하는 상황은 누가 봐도 좋지 않다. 누구나 그 상황을 염려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가장 위험한 점이 우리 사회 논쟁의 소멸이라고 생각한다.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공론장의 비틀림 내지는 편중이 문제이고, 미시적인 차원에서는 공적 담화로든 사적 이야기로든 대화의 경색이 진정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 사회는 비약적인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온갖 미디어의 편재 속에 말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그러나 각자가 내뱉는 언어의 착종, 자기중심적 주장의 난무는 도처에 있을지언정 생각이 섞이고 입장이 교류하는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의미의 논쟁은 찾아보기 힘들다. 군사문화의 잔재인 진영(陣營) 논리에 입각해 나와 적을 나누고 서로를 죽일 듯 공격하는 언어의 비수는 쏟아질지언정, 심리적으로는 불편하더라도 기꺼이 서로 인내하면서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자신의 말을 전하려는 대화의 의지는 멈춘 지 좀 됐다. ‘자격 없으면 나대지 마라’는 식으로 상대방을 대화·토론·논쟁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마치 카리스마의 일종인 것처럼 칭찬하는 분위기. ‘두고 보자’는 식으로 침묵하다가 뒤통수치기를 유효하고 실리적인 전략으로 추대하는 상황. 이것이 지금 여기 대한민국이 보여주는 ‘말들의 풍경’이다.

   내가 속해 있고 나 또한 그에 일조하고 있을지 모를 우리 사회 그 말들의 풍경은 내게 바벨탑 이야기의 전통적 해석을 넘어 최근 제기된 흥미로운 주장을 환기시켰다. 그것은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듯이 ‘성경의 바벨탑’을 인간들이 서로 소통할 수 없는 말들로 분쟁과 쟁투의 역사를 시작했다는 식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대신 바벨탑 이야기는 그 자신의 도시를 건설하고 한데 모여 살며 스스로의 이름을 빛내고자 했던 창세기의 인간들, 그리고 그런 인간의 욕망과 행동을 정지시키고 인간에게 언어 착종과 이산(離散)이라는 반대급부를 내린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로 읽힌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바벨탑 이야기는 구약성서 「창세기」 11장 1절부터 9절까지 담긴 내용이다. 이제까지 성경의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대체로 바벨탑이 지상에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하려 한 인간의 교만에 내린 하나님의 심판, 즉 모두가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함으로써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고 도처로 뿔뿔이 흩어져 살 수밖에 없는 벌에 처해진 인간이라는 의미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 학자들 중에는 바벨이 상징하는 언어 착종과 삶의 분산이 하나님의 벌 또는 심판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언어 및 문화의 기원을 의미한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 이들이 있다.3) 아마도 이러한 성서 해석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그리고 글로벌리즘과 다문화사회의 도래와 함께 신학에도 관점의 전환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그 같은 주장은 절대적으로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시대성을 배면에 깔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러한 새로운 관점이 그간 바벨탑을 부정적으로만 해석해 온 문화에 다른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언어가 무질서하게 섞여 있는 상황은 다양한 언어의 공존으로, 뿔뿔이 흩어진 삶은 다양한 문화의 전개 및 발전으로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사태가 가령 이와 같을 경우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언어의 고갈, 삶의 고착이다.

   「창세기」 11장 7절에서 하나님은 “자! 내려가서 이들의 입술을 혼란케 하여 저희 동료들에게 말을 건네도 서로 알아들을 수 없도록 하리라” 했다. 그리고 곧이어 8절에 담긴 바 하나님은 “그들을 분산시켜 지상 전체에 흩어지도록” 했다고 한다. 이는 분명 제아무리 새로운 신학의 시의적절한 해석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부정성을 띤 언명이다. 동료에게 말을 건네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은 의사소통의 불가능성이며, 지상 전체로의 흩어짐은 화합과 연대와 교류의 불가능성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의사소통을 향한 의지 자체가 인간 상호 간에 부재하게 된다면, 이산과 분산에 대한 과도한 긍정 내지는 그런 삶에 대한 조증에 가까운 열광이 우리 내면을 장악하게 된다면 어떨까? 그런 상태야말로 공포가 아닐까? 서로 알아들을 수 없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서로에게 말을 건네는 일이 차갑게 분리된 채 침묵에 잠긴 세계보다는 더 나은 세계로 우리를 이끌지 않을까? 나는 바벨탑에서 언어가 혼재하고 말의 소란이 들끓는 면모가 유일무이한 신의 이름 아래 정적에 싸이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현재는 절대자가 던져 놓은 다양한 언어와 다양한 문화의 조건이 긍정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런 다양성의 기초로서 침묵하지 않고 한 곳에 고착되지 않으려는 인간의 진보적 의지가 더 긍정 받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1) 미슐레, 『마녀 La Sorcière』2장(Julliard, 50쪽)을 Michel Foucault, Moi, Pierre Rivière, ayant égorgé ma mère, ma soeur et mon frère…, 심세광 역, 『내 어머니와 누이와 남동생…을 죽인 나, 피에르 리비에르』, 서울: 앨피, 2008, p. 369에서 재인용.

 

   2) 이상 2012년 12월 22일자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212/h20121222023546129750.htm

 

   3) Bernhard W. Anderson, “The Tower of Babel: Unity and Diversity in God’s Creation,” in: From Creation to New Creation: Old Testament Perspective, 1994, pp. 165-78; Theodore Hiebert, “The Tower of Babel and the Origin of the World’s Cultures,” JBL 126, no 1., 2007, pp. 29-58.

 

  《문장웹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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