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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극]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제3막

  • 작성일 2014-07-01
  • 조회수 847

 


시극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는 김경주 시인의 시집에 실린 동명의 제목 시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에서 출발한 희곡입니다. 시극은 일반적인 희곡의 전개와 달리 시적인 언어와 알레고리적 전개를 통해 드라마를 구성해 가는 이야기입니다. 시극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는 2006년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서 초연을 시작해 국내 무대에 여러 차례 공연되었으며, 일본에서도 매혹적이면서도 독창적인 희곡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곳에 시적 질감을 채우고 언어를 비우고 그곳에 침묵의 질을 배치하며 독특하고 매혹적인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시극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는 총 3회에 걸쳐 3막으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詩劇]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제3장)

 

 

 

김경주

 

       2006 혜화동 1번지 페스티벌
       2007 대학로 페스티벌 극단 <바람풀> 기획앙코르공연
       2011 밀양연극제 참가 공연

 

 

 

    이 극에서 인물은 늑대처럼 보일 수도 있고 늑대가 아닐 수도 있다

 

    때 : 아주 상이한 시간들이 충돌하는 시간

 

 

    등장인물

 

    어머니
    아들
    경찰1, 2
    여자
    새끼늑대 1, 2(인형)

 

 

    공간

 

어두운 숲 속,
죽은 나무의 뿌리 안
캄캄하다
여기저기 뿌리들이 치렁치렁 뻗어 나와 있다

 

 

    3장

 

    여자가 흔들의자에 앉아 이따금 자기 배를 바라본다
    뱃속의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고 있다

 

    어디선가 미미하고 단조롭고 선명하지만 아득한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햇빛이 깨진 종소리를 물고 가는군요. 당신, 밤이 깊어 갈수록 내가 쓰는 언어는 짐승의 빛깔이 되고 새벽이 밝아 오면 식물의 빛깔이 되어 갑니다. 밤이면 내 언어는 짐승이 되고 새벽엔 식물이 되는 거예요. 무슨 소리냐고요. 어떤 생명은 피를 토하고 죽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 안에 있는 식물들을 다 토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당신, 인간은 전체가 아닌 부분을 앓다가 가는 것 같아요. 당신, 당신을 향한 시간은 내내 짐승이거나 식물이거나, 나는 지금 내 안의 생태계에 오염되고 있어요. 당신은 야만이고 나는 이 시간에 길들여지는 무수한 가면들입니다. 손님인 당신, 어서 오세요.

 

    이때 초인종 소리 느리게 한 번, 어머니가 검은 선글라스를 쓴 채 지팡이를 짚은 채 등장한다
    여자 동화책을 뒤로 숨긴다

 

 

여자 아니 어머니!
어머니 얘야…….
어머니 앞이 안 보인 듯 벽을 더듬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여자 갑자기 집엔 웬일이세요?
전화도 안 주시고……. 집 안에 남자라도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어머니 (기침을 하며) 전화번호를 또 바꾸었더구나.
여자 여긴 둘이 살기엔 좁아요.
어머니 흔들의자에 와서 앉는다
어머니 얘한테 소식은 왔니?
여자 아직요.
어머니 아들 말이다.
여자 또 그 소리, 어머니 이젠 지겨워요.
그인 얼어 죽은 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 가요.
어머니 얼어 죽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여자 어머니, 지겹지도 않으세요. 이제 그 얘긴 그만 하고 싶어요.
그인 숲 속으로 달아나서 어슬렁거리다가 덫에 걸린 채 얼어 죽었어요.
어머니 내 아들은 시를 썼단다.
여자 그건 어머니의 추측일 뿐이야. 그이는 병신에 불과했어요.
어머니 나는 그 앨 지우려 했을 때 뱃속의 아들이 지르는 비명을 분명히 들었단다.
여자 어머니 삶은 매일 비명투성이에요. 모르셨어요?
어머니 그건 아들이 마지막에 네 입에 물리고 간 말이잖아.
여자 맞아요. 그인 늘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고 떠나버렸죠.
어머니 난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거다.
여자 어머니, 절 한번 안아 주세요. 더 세게.
어머니, 절 굶겨죽일 생각이세요. 뱃속의 애까지 굶어죽을 지경이에요.
이제 그만 정신 차리고 일을 하셔야죠. 이번엔 얼마나 받아 오셨어요.
어머니 여자에게 바구니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준다
어머니 미안하구나. 하지만 난 이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단다. 늙고 힘이 없어.
여자 이러다간 똥구멍이 말라붙겠어요.
어머니 얘야, 지난번에 받아온 돈은 벌써 다 쓴 거냐?
여자 어머니, 벌써 시간이 한 달이나 지났어요.
어머니 지하철에서 구걸해서 받아온 돈은?
여자 그건 어머니 선글라스를 사는 데 다 썼죠.
어머니 육교에 쭈그려 앉아 받아온 돈은?
여자 그건 어머니 하모니카를 사느라 다 썼고요.


어머니 얘야, 난 이제 좀 쉬고 싶구나.
여자 어머니, 그렇게 매사를 쉽게 포기해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어요. 일어나서 어서 다시 나가세요. 스스로 거리로 나선 건 어머니라고요.
어머니 의자에서 일어난다. 지팡이를 짚고 문 쪽으로 더듬거리며 간다
어머니 아들이 숲 속을 어슬렁거리다가 들어올지 모르니 문을 열어 두자꾸나.
여자 미친년.
어머니 얘야…….
여자 또 왜 그러세요?
어머니 난 눈을 잃은 것이 아니라 눈을 뜨지 못하는 거란다.
여자 어머니, 제 우주도 밤마다 끙끙 앓고 있어요.
어머니 기침소리 깊어진다. 문을 열다 말고
어머니 뱃속의 애는 잘 자라고 있니?
여자 며칠 전엔 귀가 하나 생겼고요. 조금씩 밖의 소리를 듣고 배를 두드려요.
어머니 늑대는 눈알부터 자라는 법이란다. 동화를 많이 읽어 주거라.
여자 동화는 어른이 꾸는 악몽이래요. 저는 그런 건 애한테 읽히지 않겠어요.
어머니 얘야, 난 네가 다 자라면 네 곁에서 길을 잃고 싶었단다.


여자 어머니, 그 말은 그이가 제 배에 대고 아이에게 해준 말이에요.
어머니 그래 고맙구나.
여자 어머니도 그이를 닮아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말만 하시는군요. 바쁘실 텐데 제가 문을 열어 드릴게요.
어머니 그래 고맙구나.
여자 오실 때 전화하는 거 잊지 마세요.
어머니 알고 있다. 이번엔 잊지 않으마.
어머니 문 밖으로 퇴장하고 여자 문을 닫는다 잠시 정적
다시 여자 의자에 와서 앉는다. 다시 동화책을 든다
여자 문득 자신의 배 안을 바라보는 듯하다
갑자기 여자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한다
여자 벌써 스무 개월째야. 나오려고 하지 않아. 출산 날이 훨씬 지났는데도 뱃속에서 계속 울고만 있어……. 아무래도 병신을 뱃속에 담고 있는 것 같아.
여자 구석으로 가서 요강 위에 앉는다
엉덩이에 힘을 주고 있다 힘이 든 표정
안 되겠다는 듯이 싱크대 쪽으로 가서 병을 하나 꺼낸다
병 속엔 살모사 한 마리가 꽈리를 틀고 있다
병을 들어 마시려 할 때쯤,
볼륨소리 점점 높아지면서
떨어지는 흰 흙들
어디선가 울음소리 퍼진다
마치 이 세상의 자궁 안에 있는 모든 울음들처럼
갑자기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어머니 여자에게 달려든다
어머니 안 돼!

보여…… 보여…….
늑대 울음소리 길게 울려 퍼진다
조명 서서히 암전

 

- 끝.

 

 

poem-move3

 

 

 

   《문장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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