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젊은작가의 樂취미들] 미운 정이 무섭다더니

  • 작성일 2015-12-01
  • 조회수 857

 

[젊은작가의 樂취미들]

 

 


미운 정이 무섭다더니

 

 

 

강지혜

 

 

 

 

    나는 운동이라면 질색에 팔색을 더한다. 그런 내가 최근 몸을 움직이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째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때는 바야흐로 작년 가을, 홀로 여행을 떠난 것이 그 시발(始發)이었던 듯하다. 작년 10월 중순, 영주에서 시작하여 경주에 들르고, 부산과 제주를 찍고 돌아오는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결혼 이후 오랜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인지라 나는 매우 들떠 있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여행 가방을 챙겼고, ‘첫 번째 시집에 들어갈 원고를 정리하겠어!’라는 원대한 꿈도 품었다. 옷가지와 세면도구, 두툼한 원고 뭉치와 필통, 이동 시 읽을 시집을 몇 권 챙겼고, 그리고…… 챙기고야 말았다. 크루저 보드.
    당시 그걸 구입한 지 한 달이나 되었을까? ‘타면 얼마나 탄다고 그걸 산다고 난리냐. 일주일 타면 많이 타겠다!’는 남편의 핀잔에도 꿋꿋이 결제하고 만 샛노란 나의 크루저 보드. 사놓고 집 안에서 한두 번 올라타 본 것이 전부인 나의 크루저 보드. 그리하여 거대한 여행 가방과 보드를 든 채 홀연히 집을 떠나 기차역으로 향했다. 나의 새 보드는 들고 나간 바로 그 순간부터, 집에서 10m도 채 가지 않아 온전히 짐이 되었다. 아니, 사실대로 고백컨대 채 열 발자국도 못 가 어마무시한 짐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네가 그러면 그렇지’라는 소리는 곧 죽어도 듣기 싫었다. 멍청하게도 말이다. ‘네가 그러면 그렇지’라는 소리 한 번 듣고 귀 한 번 씻으면 되는 것을. 여행을 떠나면서 보드를 들고 나온 나 자신을, 이 짐짝을 사겠다고 일주일 동안 온갖 홈페이지를 뒤져 가며 설렜던 나 자신을 머저리 취급하며 기차에 몸을 실었다.
    영주에서 일박 후, 경주에 도착했을 때 ‘혹시나’ 하고 챙긴 우비가 빛을 발했다. 경주역에서부터 숙소까지 걸어서 10분 남짓. 폭우가 쏟아졌다. 가방이 워낙 거대한 탓에 우비 단추는 다 잠기지 않고, 비는 퍼붓고, 보드는…… 말해 뭐 하랴. 게스트 하우스 주인은 보드를 꼭 안은 나를 측은하게 쳐다봤다. 객실로 올라와 침대에 짐을 대충 풀고 비에 젖은 보드를 닦으며 나는 크게 웃었다. SNS에 경주역에서 보드를 꼭 안고 찍은 사진을 올렸는데, 친구가 이런 댓글을 달았기 때문이었다. ‘비 오는데 보드 타지 마라 휠체어 타고 서울 오기 싫으면’
    다행히 경주의 밤은 비구름을 멀찍이 몰아내 주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꾸역꾸역 일어나 모닝 보드를 탔다. 거대한 나무가 두 그루나 솟은 오래되고 웅장한 무덤 앞이었다. 한(恨)을 풀어내는 보딩이었다. 무덤 앞에서 아침 댓바람부터 봉두난발을 한 여자가 보드를 타고 있으니 사람들도 신기한 모양이었다. 엄마 손을 잡고 지나가던 꼬마가 “지금 타는 거 뭐예요?”라고 물었고, 나는 미소가 만개한 얼굴로 “크루저 보드~~~”라고 외쳐 주었다. 한(恨)풀이 보딩 이후 나는 보딩에 자신감이 붙었다. 신경주역은 보드 타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매끈매끈한 바닥이 얼마든지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신경주역 광장과 대합실, 플랫폼 위에서까지 신나게 보드를 타며 녀석을 하등 쓸모없는 ‘짐짝’에서 ‘약간 귀찮게 굴지만 악의는 전혀 없는 친구’ 정도로 신분을 상승시켜 주었다.
    친척들이 부산에 살기도 하거니와 김해 남자를 만나 가약을 맺은 덕에 부산은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생각했는데, 보드와 함께 도착한 부산은 느낌이 색달랐다. 가을비에 곱게 씻긴 남도의 가을은 매우 청명했다. 숙소로 이동하면서 몇 번이나 ‘보드타기 딱 좋은 날씨야’ 하고 되뇔 정도였다. 이제 누가 나더러 ‘할 줄 아는 운동이라곤 숨 쉬는 게 전부’라고 말할 수 있지? 난 이렇게 레저인간으로 거듭났다! 게다가 짐을 푼 게스트 하우스는 무려 용두산 공원 바로 밑. 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보드와 함께 용두산 공원으로 향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나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기질이 있었다. 용두산 공원을 스키 코스에 비유하자면 중상급 즉, 초보가 보드를 타기엔 경사가 급한 곳이었다. 주위에 나를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왠지 주눅이 들었다. 그나마 평평한 곳도 속도를 내서 보딩을 하기엔 코스가 짧았다. 쓰라린 마음을 부산의 가을 풍경으로 달래고 다음 코스로 이동했다. 이기대 해양공원에 가면 눈앞에 바다가 펼쳐지는 산책로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고, 그 길에서 보드를 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걸음을 재촉했다. 버스를 타고 용호동에서 내려 유명하다는 팥빙수 집에서 빙수 한 그릇을 혼자 다 먹고, 옆구리에 보드를 끼우고 이기대 공원을 향해 열심히 걷는데, 갑자기 허리에 통증이 찾아왔다. 급한 대로 약국에 가서 여차여차해서 허리가 아프다고 설명했더니 약사가 가방이 몇 킬로쯤 되냐고 물었다. 무게를 재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고 우물거리자 내 옆구리에 끼어진 보드를 슬쩍 보곤 “무리하지 마세요” 하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나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애니까. 결국 꾸역꾸역 보드를 들고 이기대 공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이기대 ‘공원’이라고 부르지? 이기대 ‘산’인데?’ 용두산 공원과 마찬가지로 이기대 해양공원은 초보자가 보딩을 할 수 있는 경사가 아니었다. 헛웃음이 나왔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일. 딱 감질날 정도로 보딩을 한 나는 거세지는 바닷바람에 콧물을 훌쩍였다. 결국 몸을 녹일 겸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우유를 마셨다. 보드는 ‘친구’에서 다시 ‘짐짝’이 되었다. 저녁 일찍 숙소로 돌아온 나는 왜인지 모르지만 여행 시작 전보다 무거워진 가방에서 시집 원고를 꺼내어, 천천히 살펴보기는 개뿔. 정말 오랜만에 꿀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침대 맡에 고이 놓여 있는 보드를 보며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쯤에서 게스트 하우스 주인에게 보드를 팔까?’ 고민도 잠시, 나는 보드와 함께 바다를 건너 제주도에 도착했다. 어느 순간 나와 보드는 운명 공동체가 된 듯했다. 제주에서는 작은 차 한 대를 빌려서 이동했으므로 보드를 탈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운명 공동체라는 느낌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제주에서의 첫날은 서쪽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보냈는데, 일정 금액을 내면 투숙객을 모아 놓고 바비큐 파티를 해주는 곳이었다. 여행의 대부분 시간 동안 혼자 밥을 먹다가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으니 제법 흥이 났다. 그게 발단이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고 있는데,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아랫배가 아파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대로 차를 세우고 내비게이션에 가장 가까운 화장실이 있는 곳을 검색했다.
    그래서 도착한 곳이 ‘제주 우주항공 박물관’이다. 평소에 우주과학에 관심이 있긴 했지만, 내가 내 발로 제주 우주항공 박물관에 가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급한 불이 꺼지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제주 우주항공 박물관 로비에는 거대한 비행기 실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비행기를 구경했다. 비행기는 정말 멋졌다. 그런데 나는 제주 우주항공 박물관까지 가서 바닥만 보는 게 아닌가. 망설이지 않고 차로 달려가서, 보드를 꺼내 들고 다시 박물관 로비로 돌아와 보드를 탔다. 단언컨대 보딩에 가장 좋은 장소는 전철역, 공항, 박물관, 도서관 등 공공기관 로비다. 물론 채 5분도 못 타고 안전요원에게 저지당하긴 했지만.
    ‘사색에 잠긴 혼자만의 여행’을 생각하며 떠났다가 ‘보드와 나의 대모험’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나 지금이나 내 보딩 실력은 변함이 없다. 군데군데 푹푹 팬 아스팔트에서 보드를 타는 건 나 같은 초보에겐 위험한 일이다. 게다가 취직을 한 이후에는 시간적인 여유도 부족해졌다. 그럼에도 매끈매끈한 바닥만 보면 보드가 떠오르니, 누가 들으면 보드 꽤나 타는 줄 알겠다.
    실력은 아직 형편없지만 보드와 정이 많이 든 것 같다. 영화 《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에서 월터가 롱보드를 타고 아이슬란드의 다운힐을 시원하게 내달리는 모습에 나를 대입해 보기도 한다. 미운 정이 무섭다더니 딱 그 짝이다. 언제쯤 그렇게 멋진 라이딩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꿈꾼다고 누가 잡아가지는 않을 테니까. 열심히 꿈꾸다 보면 언젠가 한 번은 가슴이 탁 트일 만한 멋진 보딩을 하게 되지 않을까.

 

강지혜-본문

 

 

작가소개 / 강지혜(시인)

- 2013년 《세계의 문학》 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문장웹진 12월호》

 

추천 콘텐츠

책쾌의 여정

[에세이] 책쾌의 여정 우당탕탕 독립출판 북페어 기획자 도전기 임주아 뜻밖의 부재중 이름이 폰에 떠 있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S 팀장이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일로 만난 공무원이 퇴근 시간을 넘어 전화 문자 콤보로 연락했다는 건 모종의 긴급 상황 아닌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딘가 다급해보이는 목소리였다. “헉 제가요?” 요지는 전주에서 처음 독립출판박람회를 여는데 내가 총괄 기획을 맡아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시기는 6~7월이라 했다. “오늘이 벌써 3월 7일인······” 기간도 기간이지만 독립출판 전문가도 아닌 내가 총대를 메는 게 맞는지 주제 파악에 나섰다. 그러자 팀장은 전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동료와 팀을 꾸리면 어떻겠냐며 인건비도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눈에 광이 돌았다. 단기간에 아이디어를 짜고 사람 모으고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일은 내 주특기 아니던가. 그렇게 살아온 임시변통스러운 삶에 드디어 어떤 보상이 따르려나. 함께할 내 기쁜 동료는 누구인가. 기획자 동료 구하기 첫 타깃은 전주에서 10년 가까이 독립출판 전문책방을 운영중인 뚝심의 M이었다. 그의 책방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기성으로 출간된 도서는 입고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단호하게 적혀 있다. 설사 혈육이 역사에 남을 명저를 썼다 하더라도 독립출판이 아니면 가차 없이 거절 메일을 전송하고야 말 꼿꼿함이었다. 그런 M의 책방에는 개인이 스스로 쓰고 만든 각양각색의 독립출판물이 대거 진열되어 있는데 그 큐레이션된 목록에는 웰메이드 작품인 ‘책방을 꾸리는 중입니다’라는 에세이도 있다. 화학공학과를 나온 공대생이 어쩌다 모교 대학로의 한 건물 지하에서 책방을 시작해 지금 모습에 이르게 됐다는 애환 서사가 담긴 책이다. 그는 그 책을 들고 전국을 쏘다니며 독자를 만났다. 주6일 책방 문을 여는 그가 문 닫는 날엔 어김없이 북페어 현장에 가 있었으니까. 캐리어를 끌고 고속버스를 타고 기꺼이 책 보부상으로 분해온 그는 힘들다 힘들다 해도 매년 매회 출전을 멈추지 않았다. 전주에서 오로지 독립출판만을 다루는 책방 주인은 M이 유일해서 대표성도 남다른 터다. 때문에 함께 하자는 내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그의 눈높이도 짐작이 간다. 일찍이 S 팀장이 독립출판박람회 관련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여러 번 M의 책방을 찾았으나 그는 ‘박람회’라는 명칭부터 맞지 않다고 생각해 소통에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독립출판 행사는 스스로 책을 낸 제작자나 책방 운영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해 열리는데 전주에선 도서‘관’ 주도로 만들어질 행사라 생각하니 최대한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나는 M이 적극적으로 합류해 의견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되면 그가 책방 꾸리는 일에도 전환점이 올 거라

  • 관리자
  • 2024-05-01
도깨비 이야기

[에세이] 도깨비 이야기 한정현 최근 친구의 부탁으로 점집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사실 무속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이건 민속 문화의 하나이지,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무속 때문에 큰 피해를 본 경우도 있어서 나같은 경우는 사실 이제 거의 점괘를 안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친구가 갓 신내림 받은 애동이라기에 나 또한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문화로서의 무속은 여전히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옆에서 들어보니 그 영검하다던 무속인의 점사는 무척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 ‘밤에 늦게 자지 않느냐’ ‘두통이 가끔 오지 않느냐’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친구의 직업상 대부분 추측 가능한 증상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불면증도 없고 두통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친구는 자신이 혹시 두통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그 말에 순간 따라가고 있더란다. 하긴 나도 그 당사자가 되면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할 것 같다. 말 그대로 이런 걸 보고 도깨비에 홀린다고 하나 보다. 다행히 친구는 도깨비에 홀려 도깨비가 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후 나는 왜인지 내내 도깨비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도깨비 만나기 사실 어렵지 않군,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사실 어릴 땐 도깨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산을 끼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온갖 민간 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인 것 같다. 흔히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이길 수 없고 오로지 속일 수만 있다고들 한다. 그들이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것인데 특히 도깨비에 대해서는······. 얼마 전 영화 〈파묘〉에서도 나왔지만, 도깨비들은 주로 안 쓰는 물건에 혼이 깃들어 만들어지는 귀신이다. 이후엔 도깨비가 그 사물을 대신하여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혼령하고는 아주 다른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한데 찾아보니 이 험상궂은 도깨비는 사실 일제강점기 이후 도입된 ‘일본식 도깨비’ 이야기가 일부 섞여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혹부리 영감이 그러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에서는 영감이 부러 도깨비를 속여 혹을 떼지만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원래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도깨비가 그리 나쁜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영감과 같이 어울려 놀던 도깨비들이 서로의 교감을 통해 친밀해진 후 먼저 나서서 영감의 혹을 떼준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혼령이 물건에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 도깨비라고 한다면 무슨 혼령이냐에 따라 좋은 도깨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도깨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이고지고 다니

  • 관리자
  • 2024-05-01
어떤 기준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

  • 관리자
  • 2024-05-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