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_신작시_입] 완벽한 입
- 작성일 201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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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_신작시_입]
완벽한 입
오성인
세상에서 가장 빈틈없는 표정을 위해 종속(從屬)을 강요받은 입은 길들여지지 않는 말들을 가차 없이 내다버린다 버려진 말들도 그런 입을 버린다 입안에 쌓인 버려진 입들을 먹고 자라난 기름기 번지르르한 말들이 입의 구령에 맞춰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퍼즐을 맞추듯 표정의 빈 공간을 메운다 한 치의 균열도 용납 않기 위해,
놀려져야 하는 혀는 악역을 감수해야만 한다 자칫 봇물처럼 터져버릴 말들을 옭아맸다가 풀어 주기를 능구렁이처럼 능숙하게 하는, 그의 이면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십 년 만에 우연히 연락이 닿아 함께 술을 나눠 마셨던 벗의 곰삭은 울음이 뼈만 남은 채 발견되었고 오랜 시간 끝에 백수에서 벗어났다는 또 다른 벗은 벌거벗은 채 아직 식지 않은 웃음을 꽉 끌어안고 호쾌했던 모습 그대로 죽어 있었다 괜찮아, 라는 말과 아무 일 없는 듯한 표정을 유일한 유품으로 남긴 그들은 정말로 괜찮았던 것일까, 두 벗이 남긴 유품 앞에서 한동안 괜찮은 척 서 있는 나에게 당신은 괜찮은 건가요?, 라고 한 여자가 물었다 잔뜩 무거운 혀가 무서웠지만 괜찮다고 했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오늘 밤 거기 있는 당신에게 용기를 내 편지를 쓸 것이다 세상의 모든 표정들이 잠든 시간에 몰래 끓어오르고 있음에도 뜨겁다고 감히 어느 누구에게 발설하지 못했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피로, 살아 있는 모든 이들에게 미안하다 말하지 못했고 죽어버린 모든 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미처 말하지 못했다고 피 묻은 입술로 고백할 것이다 가만히 있으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입과 그 입이 변호하는 표정의 참혹함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함구(緘口)하며 함구(含垢)하고 있는 나는 정말로 괜찮은 것일까 입으로부터 버려진 말들의 행방은 어떻게 됐을까
부정한 표정의 변호를 위해 희생된 입들의 장례식, 마음껏 곡하지 못하고 숨만 죽이다 끝내 시든 잎사귀 같은 몸을 수습해 돌아서던 혀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당신들이 불신의 시간을 쟁이고 있었을까 * 당신들은 정말로 괜찮은가 입은 부패한 표정들의 무덤 가장 완벽한 표정은 가장 불온하고 불안하며 불완전하다 망설임 없이 표정의 균열을 이야기할 때 비로소 공허한 공기의 입자들 틈에서 하나 둘 귀환하는 버려졌던 말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입을 위해,
악역을 끝낸 혀가 가볍다, 그러나 무겁고 무섭다
우리는 여전히
* 기형도의 시 「입 속의 검은 잎」 중,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라는 구절을 인용해 변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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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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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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