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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게임을 한다 4 -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 오리지널

  • 작성일 2017-09-01
  • 조회수 1,264

[serialization]



우리는 게임을 한다

-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 오리지널



염성진





Good Game


한국이 스타크래프트에 푹 빠졌던 때를 게이머라면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가 놓인 경기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치던 선수들, 화려하게 펼쳐지던 게임 속 전투의 모습, 또 그것에 매료되어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꿈꾸는 아이들까지. 이러한 영향으로 한국 게이머들에게 ‘민속놀이’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한 스타크래프트가, 올해 여름 ‘리마스터’ 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리메이크가 원작을 기반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리마스터는 게임의 밸런스와 같은 내적 요소들을 수정하지 않고 그래픽이나 사운드 등을 현재 게임의 질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말하는데, 때문에 스타크래프트의 리마스터는 20년 가까이 된 스타크래프트의 역사를 존중한다는 뜻으로도 비추어져 올드 게이머들의 큰 지지를 받기도 했다. 바둑이나 장기 같은 장수 게임이 쉽게 변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면 스타크래프트가 리마스터 될 정도로 ‘재미있는 게임’이 된 데에는 어떤 비결이 있을까. 게임 자체의 높은 완성도는 물론이고, 대전 게임의 특성을 살려 생겨난 프로게이머 문화 등 많은 게이머들이 동의하는 이유들이 있겠지만, 오늘 나는 그 재미를 스타크래프트의 캠페인 모드, 즉 스토리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영어를 조금도 할 줄 모르던 어린 시절 컴퓨터에서 튀어나오던 낯선 말들은 무엇이었는지. 테란, 저그, 프로토스 세 종족이 광활한 우주에서 벌이는 일들이 리마스터라는 이름으로 나를 찾아왔다.




도망자들


스타크래프트는 플레이어가 자신 휘하의 세력을 키우고 전투를 하는 것까지 모두 실시간으로 컨트롤해야 하는 실시간 전략(Real-Time Strategy) 게임이다. 때문에 캠페인 모드는 플레이어가 각 종족이나 세력의 일원으로서 임무를 맡고, 그렇게 이야기에 직접 참여하면서 게임 캐릭터들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에피소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테란, 저그, 프로토스 순서로 플레이하게 되며, 플레이어는 우선 식민지를 상대로 폭정을 펼치는 테란 연합의 행정관이 되어 식민지 행성 마 사라를 공격하는 프로토스 외계 함대로부터 거주민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행성 현지의 보안관인 짐 레이너를 만나고, 행성을 습격하는 저그 무리와 조우하게 된다. 레이너는 공격받는 주민들을 위해 저그 기지와 감염된 테란의 건물을 파괴하지만, 지원군을 보내준다던 연합은 핵심 시설을 파괴했다는 이유로 레이너를 체포해 버린다.



마 사라를 향한 저그의 공세는 계속되고, 연합 역시 이 사태를 방관하는 중 ‘코랄의 후예’라는 극단주의자 단체의 대표 아크튜러스 멩스크가 생존자들을 탈출시켜 주겠다는 제안을 보내온다. 플레이어는 연합에게 무법자로 낙인찍힐 것을 각오하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멩스크의 계획에 협력하기로 한다. 이때 짐 레이너 역시 멩스크의 도움으로 탈옥에 성공하고, 연합에 대한 반감이 일치하기에 코랄의 후예와 함께하게 된다. 플레이어는 레이너와 함께 마 사라를 떠나기 전 연합 시설에 침투하여 데이터를 탈취하고, 행성은 후에 나타난 프로토스 전함의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어버린다. 이제부터 플레이어는 멩스크에게 사령관이라고 불리며 코랄의 후예와 함께 혁명의 이야기에 본격적으로 가담한다. 그의 부사령관인 케리건 중위와 레이너를 데리고 연합 세력을 공격하며 억압받던 거주지들을 해방하면서 말이다. 그러는 중 레이너를 체포했던 연합의 장군 에드먼드 듀크가 저그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멩스크는 레이너에게 듀크를 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모두가 반대했지만 멩스크는 ‘마음에 들라고 안 했지, 하라고 했다.’며 강경한 태도를 취한다.



듀크를 구하라는 멩스크의 명령


이렇게 듀크 또한 코랄의 후예에 합류하고, 연합은 이들의 위치를 알아내 공격을 개시한다. 마 사라에서 훔쳤던 데이터는 저그를 유인할 수 있는 초능력(사이오닉 에너지) 방출기의 설계도였는데, 멩스크는 마 사라를 침공한 저그 역시 그렇게 꾀어낸 것이라며 저그가 연합의 비밀 병기라고 주장한다. 이어 그는 사이오닉 방출기를 이용해 저그를 유인하고 연합에게 이것을 그대로 돌려주는 전략을 제시하여, 코랄의 후예는 연합의 공격에서 유유히 빠져나가게 된다. 이후 저그로 뒤덮인 이곳에 프로토스의 함대가 찾아와 또다시 행성 소각을 벌인다. 멩스크는 연합 방어 체계에 해박한 듀크 장군의 도움을 받아 연합의 수도 타소니스를 공격하고, 사이오닉 방출기를 설치한다. 레이너와 케리건은 무고한 시민들까지 죽일 수 있는 저그를 유인하는 것을 반대하지만, 역시 멩스크는 독단으로 이를 진행하기에 이른다. 이어 수십억 마리의 저그가 타소니스를 공격하고, 그는 이를 박멸하러 온 프로토스가 저그와 교전하는 사이 연합이 탈출하면 안 되니 케리건에게 프로토스를 물리치라는 명령을 내린다.



케리건의 구조 요청을 외면하는 멩스크


케리건은 명령대로 프로토스를 막는 데 성공하지만, 자신이 지키던 저그 무리에게 습격당하고 멩스크는 레이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구조신호를 무시한 채 타소니스에서 퇴각한다. 레이너는 플레이어에게 코랄의 후예에서 탈출할 것을 제안하고, 멩스크는 누구도 자신을 막을 수 없다며 이 구역을 자신이 지배할 것이라고 본색을 드러낸다. 그렇게 플레이어와 레이너는 멩스크로부터 도망치게 되고, 멩스크는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며 ‘테란 자치령’을 세우는 것으로 테란의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된다.


게임에서 제시된 상황으로만 인물들을 살펴볼 수 있는 플레이어는 코랄의 후예가, 그러니까 멩스크가 처음부터 권력을 향한 야욕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니면 점차 타락해 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그걸 따질 필요가 없었기에 게임은 그 사실을 보여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다만 게임 속에서 드문드문 보이던 멩스크의 속내로 플레이어는 이런 엔딩을 예감했을지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던 레이너는 멩스크를 도왔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이후에는 자신만의 세력으로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끼리의 이야기를 그린 테란 에피소드를 지나, 이제는 저그의 이야기를 시작할 차례이다.




칼날 여왕 메이커


저그라는 종족은 독립 개체의 의지가 존재하지 않고, 이들은 모두 군단의 영원한 의지인 초월체(Overmind)를 섬기는 정신체들에 의해 움직인다. 플레이어는 초월체에 의해 갓 창조된 정신체가 되어 초월체의 명령을 받들게 된다. 초월체는 뛰어난 다른 정신체들 곁에서 그들의 지혜와 경험을 흡수하라고 지시하며, 다른 정신체들과는 다르게 단 하나의 과업만을 주겠다고 한다. 바로 초월체의 자식이 될 생물이 자라고 있는 번데기를 지키는 보모가 되는 것. 플레이어는 정신체들의 도움을 받아 번데기의 위협이 될 수 있는 테란 잔당을 소탕하며 저그의 플레이 방식을 자연스레 익혀 나가게 된다.


타소니스의 잔당들을 모두 제거한 플레이어는 번데기를 데리고 저그의 본거지인 차 행성으로 차원 이동을 한다. 번데기에서는 강력한 사이오닉 에너지가 발산되고, 이것을 감지했는지 자치령의 황제 멩스크의 명령을 받은 듀크 장군의 테란 병력이 공격을 해와서 플레이어는 계속해서 번데기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는다. 그리고 차 행성에 레이너의 부대까지 찾아왔을 때 비로소 번데기 속 생명이 태어나게 되는데, 초월체의 이상적인 자식은 바로 저그가 된 케리건이었다. 깨어난 케리건은 자신이 번데기 속에서는 멩스크와 레이너에게 구조를 요청하는 텔레파시를 보냈지만 지금은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며, 레이너를 놓아 주며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말한다.




칼날 여왕 케리건의 탄생



이후 정신체인 플레이어는 고스트(테란의 초능력 특수 요원) 시절의 정신 구속이 자신의 힘을 억제하고 있다는 케리건을 도와 고스트 프로젝트의 비밀을 찾고, 그녀는 곧 고스트에게 걸린 제약을 해제하게 된다. 완전한 힘을 되찾은 저그의 여왕 케리건은 차 행성에 침입한 프로토스 세력을 제거하지만, 정작 그들의 수장인 태사다르는 환영에 불과해 죽일 수 없었다. 이후 도망친 태사다르 때문에 분노에 빠져 있던 케리건에게 돌연 정신체 자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정신체는 본래 초월체의 힘에 의해 몇 번이고 부활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프로토스가 부활을 무효화하고 초월체에도 강력한 영향을 준 새로운 공격을 해왔다는 것이다. 케리건은 곧바로 자신이 태사다르에게 유인 당했음을 깨달았으며, 플레이어는 주인을 잃어 날뛰는 저그 무리를 소탕하는 임무를 맡는다.


오랜 침묵 끝에 회복에 성공한 초월체는 정신체를 쓰러뜨린 프로토스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힘을 사용하는 다크 템플러라는 자들이며, 이들이 사용하는 에너지가 자신과 비슷하기에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다크 템플러 제라툴이 자스를 살해할 때 서로의 정신이 연결되어 프로토스의 본거지인 아이어 행성의 위치를 알아냈다고. 초월체는 아이어를 침공하기 전에 다크 템플러가 차 행성에서 탈출하는 것을 막으라고 지시한다. 결국 태사다르와 제라툴은 살아남지만, 그들의 프로토스 군대는 몰살되고 만다. 케리건은 프로토스 잔당을 추적하기 위해 차 행성을 뒤지고, 저그 군단 전체는 본격적인 아이어 침공을 개시한다.


초월체는 이 아이어에서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종을 흡수하기만 하면, 자신들이 창조주의 가장 위대한 자손이 될 것이며 완벽해질 것이라고 한다. 초월체의 명령에 따라 정신체인 플레이어는 프로토스도 모르는 힘이 담긴 케이다린 수정을 확보하고, 초월체 자신의 창조주인 젤나가가 세운 사원을 파괴하여 수정과 함께 그곳에 강림한다. 그때 비로소 초월체의 목적이 드러나게 되는데, 프로토스와 저그는 모두 본래 젤나가의 피조물이며, 프로토스가 부여받은 것은 형체의 순수함, 저그가 부여받은 것은 정수의 순수함이라고 한다. 초월체의 목적은 양 극단에 위치한 두 종족을 결합하여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고. 이후 침공으로 전쟁터가 되어 가는 아이어의 모습을 보여주며 저그의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저그 캠페인의 스토리는 초월체의 의지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나는 플레이하면서 조금 불만을 느끼기도 했다. 초월체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는 정신체로서, 게임 속 플레이어가 느끼는 감정이 없다고 해야 할까. 모든 저그가, 그러니까 정신체인 플레이어까지 게임 클리어를 위해서는 어떤 생각도 필요 없이 초월체의 명령을 따르기만 하는 것이다. 플레이어가 이야기에 참여하는 비중이 적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저그의 이야기는 곧 초월체 하나의 이야기인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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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스의 이야기는 그들의 고향인 아이어 침공 직후부터 시작한다. 아이어 전역에 자리 잡은 저그를 몰아내기 위해 플레이어는 이번에 새롭게 임명받은 프로토스의 집행관이 되어 게임을 시작한다. 프로토스 대의회에서 보낸 보좌관 알다리스는 전임 집행관 태사다르가 저그에 감염된 테란 행성들을 불태우라는 명령을 어기고 그들의 목숨을 구하면서 저그를 처치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플레이어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다그친다. 이후에는 안티오크의 전초 기지를 강화하고 오랜 전우인 피닉스를 만나라는 임무를 주며, 첫 임무를 클리어하면 돌연 태사다르로부터 연락이 닿는다. 태사다르는 타소니스 행성이 저그에게 함락당한 뒤 강한 사이오닉 에너지를 느꼈고, 그곳에서 프로토스의 옛 형제 다크 템플러들을 만났다고 한다. 그는 초월체가 정신체를 부려 저그를 조종하니 정신체를 공격하면 군단을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고 하는데, 알다리스는 타락한 자와의 접촉은 이단 행위라고 의심하지만 플레이어는 피닉스와 힘을 합쳐 정신체를 공격하기로 한다.

1) 프로토스어로 ‘태사다르를 위하여’


그러나 피닉스와 힘을 합쳐 정신체를 무찔렀음에도 정신체는 다시 부활하여 공격을 재개했다. 이에 분노한 알다리스는 태사다르를 배신자로 낙인찍고, 저그에게 함락당한 사이온 지역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플레이어의 사이온 공격은 성공하지만, 안티오크에 남아 있던 피닉스는 저그의 압도적인 공격에 전사하고 만다. 자신들의 공격이 먹히고 있다고 안일하게 믿고 있던 대의회가 방어에 소홀했던 것이다. 알다리스는 태사다르를 찾아 구속할 것을 대의회로부터 명령받고, 프로토스의 위협이 저그가 아니라 배신자인 태사다르라고까지 하며 플레이어와 함께 차 행성으로 떠나게 된다. 그가 다크 템플러의 타락한 사상을 퍼뜨리려 하면 모든 것이 끝장이라고 하면서.



태사다르와 알다리스의 만남


태사다르는 테란 짐 레이너와 함께 차 행성에 남아 있는 저그에게 고립되어 있는 상태였다. 태사다르가 동료를 받아들이는 기준을 이해하지 못하는 알다리스는 그를 연행하려고 하고, 그는 플레이어에게 정신체를 쓰러뜨릴 수 있는 다크 템플러 제라툴을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일이 끝나면 스스로 심판대에 오르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알다리스는 태사다르를 돕는 플레이어 또한 배신자 취급을 하려 하고, 그 경고를 뒤로 하고 플레이어는 태사다르와 함께 제라툴을 찾아 나선다. 플레이어는 테란 시설에 고립되어 있는 제라툴을 찾아내는 데 성공하고, 아이어로 향하자는 태사다르의 말에 제라툴은 추방자인 자신들을 대의회가 환영할 리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하겠다고 한다.


아이어로 돌아간 플레이어는 부상당한 몸으로 로봇인 드라군 속에서 싸움을 계속하는 피닉스를 만나고, 대의회가 플레이어인 집행관과 태사다르를 구속하고 제라툴을 처형하려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태사다르는 동족이 멸망할 위기에 놓인 때에 낡아빠진 전통에 매달리는 대의회의 모습에 개탄하며, 동족과 싸우는 일은 괴롭지만 다크 템플러를 보호하기 위해 대의회를 파괴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이 임무가 한창일 때 태사다르는 더 이상 형제들이 서로를 학살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다며 투항하고 플레이어에게 뒷일을 맡긴다.



체포되는 태사다르


피닉스와 레이너, 그리고 다크 템플러들 역시 대의회에서 탈출하고, 플레이어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태사다르를 구출한다. 이후에는 드디어 제라툴로부터 정신체를 처치했을 때 겪은 일들에 대해 듣게 된다. 제라툴 역시 초월체처럼 저그가 젤나가의 피조물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초월체는 젤나가의 통제를 벗어나 모든 피조물을 파멸로 몰아넣으려 한다고, 태사다르는 이 광기를 끝내는 일이 우리의 몫이라며 정신체 암살 작전을 시작한다. 그렇게 정신체를 처치하면 드디어 초월체로 향하는 길이 열리고, 이들은 곧바로 마지막 목표인 초월체로 향한다. 대의회 또한 정신체를 쓰러뜨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알다리스는 자신이 그릇된 생각을 했다며 뉘우친다. 초월체 처치라는 하나의 목표로 영웅들이 뭉친 이 마지막 임무에서 플레이어는 프로토스뿐만 아니라 레이너의 테란 세력까지 조종할 수 있다. 어려운 싸움 뒤 초월체를 약화시키는 데 성공하면, 태사다르는 초월체를 확실히 끝장내기 위해 자신의 기함 간트리서에 다크 템플러의 에너지를 모아 충돌시킨다. 그의 희생으로 초월체는 끝내 죽음을 맞이하고 저그 군단은 흩어졌지만, 폐허가 된 아이어를 바라보며 살아남은 자들은 불안한 미래와 마주하게 된다. 이어 차 행성에 남아 ‘승천’의 때가 다가왔음을 깨달았다는 케리건의 모습을 비추어 주며, 스타크래프트 : 오리지널은 끝이 난다.


프로토스의 이야기는 저그 침공에 휘말린 전시 상황에서 대립하는 대의회와 태사다르의 구도로 요약해 볼 수 있다. 플레이어는 프로토스 종족, 나아가 우주의 모든 생명체들이 생존의 위협에 놓인 상황에서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대의회의 말보다는 구원의 희망을 찾아 움직이는 태사다르의 입장에 자연스레 마음이 향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종족이 타락했다고 가르친 이단자들을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다른 종족과도 협력하며 나아가는 태사다르의 진보적 움직임에는 성공할 가능성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저그 시나리오에서 정신체를 죽인 제라툴의 가능성을 플레이어가 직접 확인한 것처럼 말이다.




세계는 넓으니까 안심해


스타크래프트는 우주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플레이어는 각 종족의 일원이 되어 가며 이야기에 자연스레 빠져든다. 돌이켜보면 저그는 개인의 의지가 선천적으로 배제되어 있는 종족이며, 프로토스는 동족 간의 결속이 매우 강하고 계급이 뚜렷한 종족이다. 이들이 인간과 완전히 다른 삶을 가졌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동시에 인간과 닮은 점도 있어서 흥미롭기도 하다. 게임 내부에서는 종족을 바꾸어 가는 플레이어가 캐릭터들에게 ‘이방인’이 아니기 때문에 세 종족이 어떤 역사와 삶의 양식을 가지고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지만, 그렇다고 게임의 몰입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줄줄이 배경이 설명되는 이야기였다면 몰입의 재미가 반감됐을지도 모른다.


제작사인 블리자드는 이렇게 세계관이 커다란 게임의 설정을 소설 등으로 풀어내는 것을 좋아하는데, 게임에 등장하지 않은 시간의 모습이나 캐릭터들의 자세한 생각들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런 것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게임 자체로도 흥미로운 이야기이지만, 적당한 서사의 빈틈은 게임을 넘어서 스타크래프트 세계관 자체에 몰입하도록 플레이어들을 유인하고 있는 셈이다. 다음에는 초월체 사후 세 종족의 행방을 담은 오리지널 이후의 이야기, 확장팩 브루드 워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작가소개 / 염성진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국어국문학과
글을 쓰고 싶고, 음악을 하고 싶고, 게임을 하고 싶습니다.


《문장웹진 2017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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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01
K-할머니의 이름은

[리뷰 - 청소년소설]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K-할머니의 이름은 유은실, 『순례 주택』(비룡소, 2021) 김젬마 불편한 것들에 대하여 동화나 청소년소설에서 노년 여성 캐릭터는 대개 죽음이라는 소재와 연관되거나 주인공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주고 성장을 돕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주로 돌봄 노동과 모성의 주체로 호명되다 보니 자신의 이름보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불려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규정하는 호칭들에 매우 민감한 이가 있으니, 바로 『순례 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다. 75세인 순례 씨는 어머니, 할머니, 사부인, 동거녀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과 가족 단위로 엮이는 호칭들을 불편해한다. 이러한 호칭들은 순례 씨의 다채로운 삶과 이력들을 괄호 칠 뿐 아니라 순례 씨의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무례함을 담고 있다. 순례 씨는 사별한 남자친구의 손녀인 수림을 손녀가 아닌 최측근으로 호칭 정리하며 할머니와 손녀라는 전형적인 관계 방식에서 벗어난다. 그는 ‘순하고 예의바르다’의 순례(順禮)에서 남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 순례(巡禮)로 개명할 만큼 자신의 이름에 대한 애착과 소명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소환될 뿐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경험이 없는 ‘K-할머니’의 이름은 자신을 옭아매는 규범적인 호칭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재정의 된다. 순례 씨는 호칭뿐만 아니라 물질과 돈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필요 이상의 것들을 덜어내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과 쓰고 남는 돈, 썩지 않는 쓰레기가 인생 최대의 고민인 그는 푸짐하고 손 큰 할머니의 밥상이 아닌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하는 간단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순례 씨는 정직하게 땀 흘려서 노동하는 삶을 추구하며 세상과 물질에 욕심 없는 다소 초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기만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인물이다. “월세 밀리는 건 참아도, 분리배출 제대로 안 하는 건 못 참”(80쪽)을 만큼 그는 순례 주택의 생활 수칙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단호하다. 이렇게 순례 주택 입주민들은 공용 생활 수칙과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며 사는 것을 중요시하고, 무엇보다 이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53쪽)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유은실의 『순례 주택』은 고정된 공간과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며 기본적으로 순례 주택이라는 공동체의 복작거리는 삶을 그린다. 이는 사건이 인물과 장소의 활용도가 높고 이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시트콤의 형식과 비슷하다. 『순례 주택』은 등장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특징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이

  • 관리자
  • 202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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