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까치」 외 6편
- 작성일 2023-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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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시]
물까치
최지안
나무봉지는 과자다
흔들면 새가 쏟아졌다
상추밭에서 저녁을 쪼더니
쥐똥나무로 갔다가 단풍나무 속으로 퐁당 빠졌다
찰칵찰칵 핸드폰으로 찍자 찌르르 경보를 울린다
일제히 합세해서 울어 댔다 새들에게 나는
침입자
내 집에서 나가라
새들도 나무에게 방세를 주었을까
출입문을 여닫을 때마다 나무가 주섬주섬 새들을 삼켰다가 도로 뱉어 내었다
물까치는 꽁지깃이 연한 하늘색이다 몸보다 꽁지가 길어 작은 소리에도 파드득 놀라 옮겨 다니며 운다
약한 것들은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가 보다
열몇 번의 주소지를 바꾸며 살던 아비처럼
방 빼라는 말을 늘 머리 위에 얹어 놓고 말이지
아비를 흔들면
시큰한 술 냄새와 기약 없는 희망이 주머니 속 구겨진 천 원짜리처럼 떨어지곤 했다
밟으면 과자처럼 바삭하게 부서지지도 않았다
물까치 저녁으로 귀가 중이다
나무의 지퍼를 채우고 잎사귀에 하루를 파묻는다
좋겠다
돌아갈 집이 있어서
날개조차 없던 아비는 평생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했다
덫
바다로 걸어간 발자국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얗게 떠오른 이름은 가장자리부터 젖어들고 허기진 발목은 모래밭에 시시한 생애를 꾹꾹 찍어놓았다 물살이 가벼운 중량을 지울 때마다 흔적은 흔적위에 겹치고 무너졌다 존재와 부재를 한 몸에 지니고 그렇게 잊히는 것이라고
바다를 따라간 날들은 짜디짰다 불면이 패인 고랑마다 소금기가 버석거렸다 야윈 삶을 비틀어 짜면 푸르고 짠 물이 똑똑 떨어졌다 흔들리는 날에 물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파도가 남루한 생을 야금야금 집어 먹으면 아니 삼켜버렸으면 소실점으로 남았을 때 뒤돌아봤을까
제방 가장자리를 따라 피어난 수초는 하늘하늘 몸을 흔들었다 내려가는 속도를 견디지 못한 발들은 수초에 미끄러지기 쉬웠다 갯바위를 베고 누운 하얀 뼈가 달밤이 이슥하도록 달그락거렸으리라 시린 풍경을 떠올리면 구멍이 뚫린 곳으로 물살이 스며들었다 허술하고 낮은 곳부터
파도가 흔적을 지우고 나면 모래밭은 새로운 덫을 놓았다
또 다른 발자국을 기다리면서
유성이 쏟아지면
- 부제 nightly calm1)
눈이 감기지 않아요 차를 마시면 괜찮을 거예요 카모마일이 도와줄 테니
스피어민트, 민트향이 들어간 초콜릿을 좋아하죠 입안을 헹구어 주는 느낌이 좋아요 설거지는 헹구는 것이 중요하죠 날마다 나를 헹구어도 일은 끝도 없이 나왔어요 점점 쌓여요
레몬그라스, 붕어빵엔 붕어가 없어요 레몬그라스에는 레몬이 없어요 결재서류엔 결재가 없고요 돌려받은 서류는 서랍으로 숨어요 사직서가 숨어 있는 곳에
보리수 꽃을 아는지요 발자국 같은 연노랑이 자잘해서 잘 보이지 않아요 잎들이 반짝이며 재잘거리는 소리에 신경이 끊길 듯 말 듯했지요 그 봄이 기울어질 때 애인의 발자국을 주워 양지바른 책갈피에 묻어 두었죠
산사열매는 붉어요 아침은 마개 없이 열리지만 저녁은 툭 터져 저물곤 하죠 한 번 터진 울음은 잘 닫히지 않아요 문제는 늘 가운데가 터져 버린다는 것이에요 가을이 깊도록 애인은 발자국을 가지러 오지 않았어요
잠을 가져다줄 것들을 불러와요 오렌지 잎사귀, 오렌지 블로썸, 레몬필, 로즈버드스, 낮 동안 가죽 속에 숨겨 두었던 가련한 발을 베개에 올려요 팽팽했던 긴장들이 줄을 풀어요
휴일의 늦잠, 보너스와 연휴와 여행가방에 묻어 온 지중해의 물빛 같은 행운이 먼 곳에서 걸어오길 기다리면 밀린 명세서도 밀려 버릴까요
말똥말똥한 불면을 우려내면 불어터진 내가 희석되어요
유성이 쏟아지면
소원을 빌 거예요
여행 가방에 월요일부터 시작하는 일주일의 밤을 접어 넣고 낯선 지붕 밑에서 잠속으로 휘말리는 것을
1) twinings 차 브랜드에서 나온 불면증과 긴장 완화에 좋은 차 이름
느릅나무 일기
쉽게 부서지는 울음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했다
야트막해서 훔쳐보기 수월한 여자의 집
이따금 흐느끼는 소리가 담 너머 발밑으로 스며들기도 했다
툭 하면 무언가를 흘리곤 하는 여자는 수분 많은 식물처럼
수척해진 발걸음이 부엌을 서성거리기도 했다
노을이 어김없이 창문으로 찾아들면
또드락또드락 한때의 부엌을 추억하는 여자
습관처럼 도마 앞에서 칼을 들고 어쩔 줄 몰라서
유리로 만든 가족은 깨어지기 쉬웠다고
투명한 관계들은 불투명한 속을 가지고 있다며
잎사귀 주름만큼이나 촘촘한 슬픔을 닦아 내기도 했다
그녀의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발밑 소루쟁이가 아무도 몰래 발자국 옮기는 걸 눈감아 주었다
나는 창가 쪽으로 기우뚱 비켜 주었다
여자도 무언가를 위해 비켜 주었을 것이다
방문객 없는 뜰엔 낙엽이 수북했다
늦도록 현관 등을 켜 놓는 밤이면 바람도 낮게 불었다
나는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적막을 가만히 주워서 가지에 끼워 넣었다
그것들은 삭풍이 불면 알아서 흩어질 것이다
곤줄박이가 식구를 늘였다
내년에는 해가 뜨는 쪽으로 가지를 내밀어야겠다
월요일의 골목
가을이 땅에 묻고 간 풀씨들의 안부가
시멘트 블록 틈으로 고개를 내밀고
겨울이 흘리고 간 장갑 한 짝이 얼다 녹다
나뒹구는 골목이 있어
그 골목
끝에서 두 번째 집 창가에서
월요일을 끄집어내면
지금껏 소유해 보지 못한 것들의 목록이 줄줄 나오는 거야
하도 많은데 그중에서도 말이지
어떤 이름만 들으면 눈물이 나와
뒤로 반은 이기고
앞의 반은 이겨 보지 못하던 월요일의 생애 중
뭔가를 갖겠다고 생각한 것은
어쩌면 우스운 일일지도 몰라
뽀얗게 비비크림 바른 봄이 어느 집 정원에 햇살을 쏟아 놓고
필 듯 말 듯 매화는 담장 밖을 기웃거리는데
간밤 얼룩도 못 지운 월요일이 짐승처럼
제 몸의 상처를 핥고 있는 오후야
그래도 남은 요일 4개를 더 지나야 하니까 풍선을 달려고 해
노트북 꺼내 햇살을 충전해야지
월요일을 다 쓰기 전에
수요일의 브런치
꽃을 저장한 개나리 주유소
담장을 붙잡고 바람에 흔들립니다
이 꽃은 리터당 1,569원입니다
평일을 접으면 수요일에 주름이 집니다
월화는 지났고 목금이 남은 오늘
머리만 질끈 올려 묶고 카페에 있습니다
주유소를 붙잡고 흔들거리는 카페
이 커피는 350밀리리터당 3,500원입니다
뜯어먹다 반을 먹고 남긴 빵 같은 수요일
물끄러미 봅니다
햇살을 만지작거리는 오전 11시
간밤에 두고 간 누군가의 안부가
아침이기도 점심이기도 한 이 시간에 식어 가고 있습니다
올 것 같기도 하고 오지 않을 것 같기도 해서
수요일은 점점 미지근해지는데
확신할 수 없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듯이
뒤집어 봐도 별 볼 일 없는 일과에서
꽃이지만 꽃이 아닌
피어 있지만 피지 않은
남아 있지만 남아 있지 않은 수요일을 야금야금 먹습니다
나는 어쩌면 수요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들에 대하여
생강나무 꽃 봄볕에 졸고 있는 물가
잠을 자듯 죽은 고양이
연분홍 리본 목에 두른
옆으로 누워 네 발 가지런히 한 방향으로 둔
한때 내 발도 한쪽으로 향했던 적이 있었다
거칠던 뒤꿈치 들키고 싶지 않은 날들
바람이 물결을 밟자 하늘이 통째로 흔들렸다
윤슬이 술렁이고 무늬는 계속 흐트러졌다
파랗게 날이 좋았다
죽은 고양이가 나를 따라왔다
밥을 먹을 때에도 책을 읽을 때에도
내 옆에 누웠다
네발 가지런히 한쪽으로 향한 생각
고양이는 화장실 세면대 옆에도 누웠다가
내 침대까지 따라와 머리맡에 누웠다
강아지처럼 며칠을 따라다니는 말이 있다
지분거리기도 했다가 물어뜯기도 하는 말
분홍리본을 맨 고양이 사진 전단지
찾아 주면 후사하겠다는 손 글씨 간곡한 필체를 말아 쥐었다
고양이는 제 맘대로 나갔다가 들어오는 습성이 있지
아주 오래전에 들었던 말
사람은 제 맘대로 생각하고 해석하는 법이지
최근에 중얼댄 혼잣말
만지면 갈고리처럼 걸리는 말은
껄끄러워 여기저기 걸리기도 하지
민들레가 노랗게 웃고
길게 드리운 해의 끝자락이 싸늘했다
집을 나간 고양이를 찾습니다
나를 뛰쳐나간 나를 찾습니다
어떤 문장 하나 목에 걸린 며칠
별거 아니지만 별거 아니라고 할 수 없어서
전화를 걸었다
주인이 죽은 고양이를 찾은 것 외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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