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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외 6편

  • 작성일 2023-11-08
  • 조회수 531

합창

박기동


일제히 모은 입이 닫히지 않는다

저마다 목을 내민 하나같은 발성법에

바다를 들인 산길은 시끄러운 계절


할 말이 없어지면 없는 말 만들어서

다 하고 없을 때는 했던 말 또 하는

입술이 그린 원형은 황태들의 화법이다


떼를 지어 내미는 그들만의 창법 역시

동그란 입짓대로 발음하고 따라 불러

덕장을 가득 채운 O와 O의 집합들은

가장 잘 들리는 잡담으로 남았다


녹다가 다시 얼다 동해물 다 말려서

열어 둔 채 굳어 가는 서로는 

둘레를 구하는 원의 형식


더러는 거품 같은 헛소리도 영원을 발음하니

못 다문 입버릇엔 완창이란 말이 없다

그저 어디서나 어울리는 화음으로

미시령 고음부를 쉴새 없이 넘나드는


삼사조의 운율 따라 도달한 삼한사온

비탈에 울려 퍼지는 눈보라를 따라간다

말라서 굳어 가는 혼잣말도 함께 한다






비행紀 



계단을 애용하는 다이어트 의지는

적정량 초과치로 진땀을 소비한다

덕분에 승강기보다 쥐라기에 먼저 갔으나

줄어든 먹이를 찾아 오른 등마루였다


늘어난 행렬 탓에 금지된 난간이 되고

발 디딜 틈조차 없어 도약대로 남겨진

옥상이 준비했던 바람은 가벼웠나


줄지 않는 살에 절제술을 동원했듯

감량에 적용된 칼은 계체량 통과를 도왔고

활강은 신생대를 연 시발점이 되었다

때문에 계단은 무럭무럭 자라나

추락은 감원설을 주도한 업적이 되었다


늘어난 허기와 줄지 않는 크기 사이

수각류* 공룡들을 조류로 분류시킨

지금은 석탄기(紀)에서 페름기(紀)를 지나온


* 이족 보행을 한 용반류 공룡




종이접기



배가 된 책은 동화에서 만든 상상

건너편을 만든 강에 들면

독자를 미치게 만든 마법도 통할까

책이든 강이든 빠져도 몰라

동심으로 돌아간 어른이 돌아오지 않는 저녁은

어른을 찾으러 다녔다


젖어서야 돌아온 밤은 

걸어서 건넌 강을 읽었는지

얼마나 빠져야 강을 건널 수 있는지

찢어 낸 페이지는 배가 되어 떠나지만

자꾸만 가라앉는 현실의 항로를 만나야 했다


먼저 먹은 나이가 짐이 된 아이에겐

항해를 거부한 이상한 물길이라

배가 된 페이지를 강이 읽었다면

멈춰진 성장을 알릴 수도 있을 텐데


먹어 버린 나이엔 회항이 없다

책 밖을 흐르는 강은 어려워

나이 든 종이접기는 미쳤다는 말만 듣고

제정신으로 돌아오기 싫은 날들은 난파선이 되었다


배를 만들다가 새가 되었다

강이 읽은 페이지 탓에 펄럭이는 여울은

넘기는 책장에서 날갯짓을 보았을 터

날아가는 배를 만드는 건 

동화 밖에서도 가능한 상상이었다


배라고 우기던 페이지가 새라고 불린 나날

침몰은 날개 달린 배의 출현을 알렸고

둑을 높인 범람은 어른을 데려갔다

미치는 데 참고가 된 책들은 남아 있어

들려줄 게 많아진 강과 강의 저녁은

어른을 싣고 돌아올 비행기를 날리고






수렵 구역



감자의 행선지를 알리는 게 나았을까

멧돼지의 수소문에 찢어진 봉지는

담은 적이 없던 감자를 말할 수는 없었다


담는 게 목적이던 봉지의 입장에선 

가리킬 방향보다 봉합이 우선인데

봉지는 담은 적이 없던 멧돼지를 

쓰레기로 인식하지 못했다


당장 쫓기는 신세가 된 멧돼지에겐

팔려 간 감자보다 뒤집어쓸 봉지가 필요했고

문제는 온몸을 가릴 큰 용량이 없다는 거


어쩌면 숨고자 했던 멧돼지는

사냥꾼과 내통한 봉지를 찾으려 했는지

아니면 숨을 만한 봉지의 크기를 살폈는지 

도시의 쓰레기통들은 알 바가 아닌


그러한 봉지와 돼지 사이

도시로 간 감자와 엽사 사이

수렵기를 맞이한 표적의 입장에선

봉지의 집단서식을 탓할 총도 없다






미다스의 수화



손을 놓은 손들이 주머니로 돌아간다 

서로의 악수가 불편해진 지금은 

각기 바람을 피해 등 돌리는 시간 

햇볕 쪽으로 돌아서는 이 계절은 섣불리 손 내밀지 않는다


질긴 톱날에 사라진 숲에서는

달랑대는 잎이 곧 살아남은 신호였다

통하지 않는 말 대신 손을 들어 아직, 이라고 말하는 시간이다

지켜봐야 하고 두고 봐야 하는


놓기 위해 펴야 했다 

잡기 위해 펴 놓은 채

구겨진 수전증은 어디에도 닿지 않아

찢어지든 오그라지든 함부로 결탁을 말하지 않는다


날리거나 뒹굴거나 뿔뿔이 흩어지는 

이 들에는 손잡이가 없다 

저 강에겐 걸어야 할 손가락이 없다 

포크레인의 억센 손에 무너진 강안에는 

주인을 먼저 보낸 집들이 문 닫아 주기를 기다린다


주머니에 빈손의 침묵이 갈고리 같은 희망을 꼼질대도

아직은 접어 둘 얘기이고 잠시 기다려야 할 약속

마주해도 만날 수 없고 손 없는 인사이기에 빈 가지로 흔들리는

제 손을 자를지언정 쉽사리 접근을 묵과하지 않는다






꼬리잡기



술래를 찾고 있다 

목을 뺀 기슭에서 목이 쉰 골짝까지

못 찾은 꾀꼬리 대신 메아리로 돌아오는

이름의 행방을 쫓고 있다


장독 뒤를 지나치던 그대로

내민 손 마다하고 제 자일을 끊은 자

늦어진 숨바꼭질이 귀갓길을 지운 그 순간

술래의 의무에서 벗어났다 


잡히면 안 된다는 꼬리를 잡았지만

길어서 잡힌다며 꼬리를 잘라 버린

술래가 선택한 건 높이가 아닌 나락

대가라는 말이 차라리 미안한 곳

머리카락도 장독도 보이지 않는 크레바스였다


잡기보다 놓기가 쉽지 않아 

차라리 저를 놓은 스스로를 숨겼으니

실종으로 처리된 술래는 집에 갈 일이 없다

집에서 혼날 일도 없다


꼭꼭 숨어서 깊어지는 설산에선

꼬리를 문 이름들이 자란다

아무 대답 없는 은둔자의 영토가 된

숨을 곳이 많은 산엔 술래가 더 많았다






⸱ ⸱ ⸱ ⸱



눈 덮인 비탈에선 발자국이 길이라네

지도에 없는 길을 만드는 걸음은

도면에 망점을 찍던 연필의 역할이네

갈아엎은 묵밭에서 고랑을 내던 화가

남자를 쓰러뜨린 술병들 곁에서

밤마다 지도에다 연필을 찍어대곤 했네

연필로 지도 위에 길을 내곤 했었네

그 뒤를 밟는 발자국은 밑그림으로 남아

떠나온 먼 나라에 도착하곤 했네


붓 대신 호미를 쥔 이국의 화풍이라

발이 다 닳은 연필에겐 더욱 낯선 필치였네

눈 내리는 밤이 오면 숨은 그림이 되어

구멍 난 지도에선 발이 자꾸 빠졌네

필적과 족적 사이 국적이 바뀌어도

등고선 바깥까지 앞장선 연필 자국

지도엔 갈 데가 많아 길을 묻는 연필은 없었네

두고 온 나라의 길을 점묘화로 이어 내는

화가는 그림 속에서 나오지를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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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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