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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외 6편

  • 작성일 2023-11-10
  • 조회수 680

플라멩코 

방윤후


느리게 한 손이 올라간다

천천히 리듬 타듯 치마가 들어 올려질 때


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왜 이 구절이 떠올랐을까 

집시 여인이 딸의 손을 잡고 있다

관광객들 무심코 지나칠 뿐


기타의 선율이 챙! 울리자 

아들이 일어나 춤을 추고 

아버지가 그리고

딸을 옆 사람에게 맡긴 여인이

차례로 손뼉 치며 발을 구르고 노래한다 


길고 긴 떠돌이 생활이 있었는지

신발 굽이 닳아 있다

격렬한 음악과 춤이 

동굴 속에서 울려 나오듯

거리를 가득 메운다


사람들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고

무대 주위로 둘러선다 


허리에 착 붙은 빨간 옷이 

아래로 갈수록 넓게 퍼져 있다

턴할 때마다 색이 흩날린다


땀으로 범벅된 춤사위

색색의 알갱이들처럼 부챗살로 

바닥에 퍼져나간다


박수가 잇따르자 

크리스탈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사파이어의 땀방울들

내딛는 발걸음마다 흩뿌려진다


플라멩코를 출 때만큼은 

가난도 슬픔도 기쁨도 스텝 안에 있다

착착착!


女人은 나이 어린 딸을 안고 가을밤처럼 차게 춤추었다

어린 딸은 장미꽃이 좋아 한아름 웃었다


* 여승(女僧): 백석 시인의 시




어쩌다 창밖전(展) 



아파트 2층 베란다에서 내다본 오후 세 시 풍경

또 하나의 아카이브*

저 햇볕의 뉘앙스, 그림자로 드러나 있다


빽빽한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통과할 때

시간은 허물어진다 

눈부신 미래가 기억으로 찾아온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나무는 산수유나무

잎을 색으로 번역해 

빛의 입자를 해체 조립한다


나는 여기서 계명을 찾는다

1) 예술은 지워져 머릿속에 남는다

2) 판단을 멈추면 가치가 드러난다

3) 두려운 것은 실수와 실패가 나를 떠나는 것

4) 시련을 주목하라 즐겨라


나무 그림자는 서로 섞이고 선택하고 

스스로를 극복하고 있다


예술은 어쩌다 작동되는 것이니

나의 설치물들

나만의 전시작들

새롭고 산뜻하다, 창의적이다, 푸르고 싱싱하다 


바람이 불자 창밖 풍경이 

두 번째 개인전으로 디스플레이하고 있다


* 기록이나 문서를 의미하는 '보존 기록'이라는 의미




울음이 틔운 웃음 



호스피스 병동 강당, 웃음 치료 강연이 한창이다

울었던 얼굴이 웃는 얼굴 되는 동안

창밖 배롱나무꽃들이 틔워진다

여름도 감정의 한통속이라고


환자와 가족들, 신나는 노래와 춤에 

하하하 히히히 호호호 까르르

제각각 웃음 개화 속도가 다르다


그렇게 웃다가 눈물이 질금거리는 건

병(病)도 몸 밖으로 마실 나와 길을 잃는 것


말기 암 이정표 끝에 어느새 들녘이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르게 지저귀는 새들 

꽃들은 향기 좋은 기억을 불러 모은다


농담으로 시작해 농담으로 끝나지만

괴로움이 행복에게 옮는 시간

 

그리 우습지도 않은데 

찔끔찔끔 눈물을 저리는 사람들

물렁하게 짓무른 자리에 웃음이 맺혀 있다


무덤 속, 고인 울음도 

나무들 뿌리가 겨드랑이 간질이면 

웃음이 핀다




 


사랑은 서로에 걸쳐 핀다 



볕 드는 요양원 화단에 휠체어가 나와 있다

그녀가 싱크홀 같은 눈빛으로 화를 낸다

누가 꽃을 꺾어갔지?

의심하고 우기고 떼쓰다 급기야 운다


딸인 듯 상냥한 목소리,

누가 가져갔을까요, 저도 궁금해요

제라늄 꽃봉오리들도

저들끼리 쏙달대고 있다


상처라고 믿으면  

의심은 반복되고 

분노는 폭발한다

사람이 변해간다는 건 

두려움 껴입는다는 것


휠체어가 가만가만 졸음을 밀어준다

측은에게 마음을 내어주게 되면

어둠도 빛을 거둬간다는 걸

딸은 알았을까


누구에게나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이 있었다고

그 순간 찾아 그녀는 잠 속을 여행하는 거라고

휠체어가 나선형 경사를 오른다


매일의 오늘, 감정에 남을 영향력이 

호의로 환한 다음 날, 볕뉘에 다시 나와 있다 

딸이 어깨에 손 얹고 말을 건넨다

어머, 꽃을 누가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놨어요

그녀의 눈시울이 촉촉해지고 있다


망울졌던 사랑이 피었다






결 따라 산다 



세상은 누군가의 판화다

켜 따라 조각도로 파 내려간 현실,

나무에도 결이 있듯 

시간에도 결이 있다

새기고 찍어낸 날들


높게 일렁이는 파도도 

세심하게 결을 낸 순간의 터치,

엉겁결 휩쓸려 있는 도시도

거시적인 판이다


의미의 결에 닿으니 

양각 음각의 선, 명암이 햇살로 나부낀다

부드럽다가도 돌연 거칠어진다  


낮게 뜬 구름, 바다, 안개 낀 산 

시암리 초소, 전류리 포구, 강화만

속속 에디션으로 찍혀 있다

 

불규칙한 선, 흰 여백은 

무심(無心)이 새겨 넣은 방식


세상은 단 한 번만의 원본일 수는 없다 

찍고 칠하는 그 사이에

우리가 있다


순리란 생생한 인과의 결이다

나는 오늘의 작품 안에서

지극해진다 마땅해진다 겸손해진다






목련 면접 



목련나무 가지 끝 봉오리가 앉혀 있다

봄에 지원한 꽃의 면접이다


보일락 말락 흰 와이셔츠, 정돈된 꽃받침, 

구름이 조명을 높여준다 

한낮 뜨겁게 어필하는 다짐,

목련 잎은 호흡을 가다듬는다


음색도 표정도 떨림도 없는 봉오리 안에서

번득이는 저 탐색, 

긴장의 순간이다


만개의 주제에서 캐릭터 하나가 

완성되어 가고 있다

자신 있게 스타성이 느껴지도록,


꽃의 호감도는 눈빛 뉘앙스에서 결정된다 

단조롭지 않은 톤으로

봉오리가 서서히 열리고 있다


어떤 피드백도 느낄 수 없는 

공중의 긴장과 떨림


얼마나 집중되는지

어떻게 색을 표출하는지

한순간 어디까지 추진되는지

저 한 점의 포커스


봄볕의 쓱싹이는 소리가 들린다






START-UP 



좁은 화분 안에서 빨간 꽃 틔우는 다육이 보고 있으면

몇 년 후 무엇이 된 내가 그려진다 


실뿌리 따라 물관을 따라 

거슬러 올라오는 저 색깔은 

기를 쓰고 노를 저어온 생명력일 터


꽃들은 스타트업이다 실리콘밸리다 

성공하면 볕 드는 조망권으로 

실패하면 어둑한 베란다 구석으로 밀린다


박동하는 세포들, 불붙는 열정과 야망의 생장점들 

수직 로켓 상승한 줄기 하나,

고수익 고성장만이 살길이다


개화의 요건에는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가 필요해

물 햇볕 손길이 

네가 나이고 우리인 팀을 이루어야 해


창문 구석구석 먼지를 닦아내다가 

완벽한 남향이 아이디어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저 붉은 꽃은 키포인트

나의 프레젠테이션


Oh my goodness! 완벽해

김 서린 유리창 너머가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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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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