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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퀘어」외 6편

  • 작성일 2023-11-15
  • 조회수 767

폴리스퀘어

조원


그만 부서지고 말았다

오토바이의 기억,


12월 벚나무는 벽돌처럼 단단했다


악몽과 흉몽에 

번갈아 머리를 처박히는 순간

도형이 어긋났다


발목 하나가 

피의 양념 두르고 

버스 정류장까지 튕겨 나갔다

보드를 잃은 조각들


변질되고 싶지 않아서

서둘러 탑승하고

벚꽃 피기 전

입체 공간으로 전력 질주했다


헬멧 조각이 볼링공처럼 

우뚝 선 가로수를

원 스트라이크 아웃시킬 때

봄이 찾아왔다. 빨갛게


육계를 벗어나 해체된 뼈를  

온전히 끼워 맞추려고

안간힘을 썼다


회색 제복의 비둘기

구구구 사이렌을 울리며

회식을 즐겼다






강박



닫은 문이 닫힌 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닫은 문이 열린 문일 수도 있다


씻은 손에서 씻지 않은 손들이 태어난다

위쪽 구멍을 막으니

아래쪽 구멍이 뚫리고

신발, 배수구, 화장실, 혓바닥, 겨드랑이


귀신은 물 만난 고기처럼 떠든다

아가미도 없는 것들이

불을 지른다. 신문을 읊는다. 쌍욕을 한다. 담배를 피운다.

노래를 부른다. 가래를 뱉는다. 음흉하게 웃는다. 입 냄새를 풍긴다. 이히히히


이승에서 저승까지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걸어서 십 분 정도?

도망가기 위해 기차표를 산다. 기차는 없고

기적소리만 귀를 짓누른다


불면과 불안이 한이불 덮고

집요하게 사랑을 고백한다 

나는 몸을 버려야 하나

마음을 버려야 하나


가스와 전기, 창문과 열쇠, 시계와 손수건,

서류 가방과 냉장고, 밥통과 수도꼭지, 핸드폰과 컴퓨터

사물의 소리가 저벅저벅 공기를 가른다. 눈을 뜬다. 감는다. 다시 뜬다

물질과 의식이 한바탕 접전을 벌인다






고독한 장애



혼자가 좋다

숟가락 고봉으로 떠서

입안 가득 밀어 넣는다. 미련하게


모자, 장갑, 신발 같은 거

파묻은 지 오래


거북이 새끼는 바다로 가기 전 

갈매기에게 잡아먹힌다

앵무새는 반복어를 쓰다, 

예민한 주인에게 목이 잘리고


당신은 느리거나

되풀이하는 걸 참지 못한다


속으로 많은 노래를 불렀으니까

발음이 맞지 않는 말로

걸음이 맞지 않는 발로

당신의 경직된 얼굴을 피해 간다


혀가 끊기는 밤에는

숟가락에 모래를 퍼 담는다. 목이 막힐 때까지


해파리처럼 너절한 몸으로 

뛰어든 바다

당신들 모두 절벽이어도 좋다

혼자 부서지는 법을 아니까 


모른 척 좀 하지 말라고

정말 몰라서 그런 거니까

나는 조수간만을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밀물과 썰물의 차이를 조율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당신의 권위가 권총보다 무섭다

한 방 쏠 때마다

출렁출렁

춤추는 포말


내 몸은 절벽에 부딪힌

파탄의 물방울이다






신혼



한 칸의 방이라도 장만하면

우리 결혼하자. 작은 방 두 개쯤 

거뜬히 잉태할 수 있겠지


십 개월만 품으면 새끼 방들 줄줄 태어나고


문틀에 그네를 매달아도

우리의 방은 생명력이 강하여

튼튼하게 잘 자랄 거야


벽돌이 벽돌을 낳고

기둥이 기둥을 낳아서

초록색 지붕 환하게 비치면

넝쿨 아래 멍든 몸 숨기고

밤마다 키득키득 웃어보자


깜깜한 데서

당신과 나

상스러운 표정 지우고

개 같은 성질도 잠시 멈추고


씨앗이 문제인 거야? 밭이 문제인 거야? 


약간의 바람에도 

으르렁거리는 창문 소리

가까스로 틀어막고


우리의 방이 무사히 태어날 때까지

혈기 왕성한 두 다리는 

루프로 묶어 두자






여전히 대걸레



당신의 뇌는 흑백이 가득하군요

낡은 가족사진 한 장 

만 원짜리 지폐 

꾸중 물 흐르는 작은 실개천


누군가 바닥에 껌을 뱉습니다

물컹한 것이 꾸덕꾸덕 마르면

끌을 준비합니다. 바닥에서 껍질을 일으키려고


물구나무서서

계단으로, 모서리로, 로비로 풍랑을 만난 유령처럼

관 속을 흐느적거리고 있군요


여기가 바다입니까. 바닥입니까

발자국은 물고기 떼처럼 수문을 열어

살랑살랑 영화관 안으로 사라집니다


당신의 머리는 심해에 갇혀

두상 풀린 메두사처럼 무덤을 휩쓸고 다니는데


가래를 삼킨 목청에서 

묵은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어둠의 맛을 완벽히 이해한 표정


여기는 21세기 영화관, 10관까지 생기발랄한 목숨이

모두 죽음을 관람했지요. 당신은 부활도 잊은 채 

꽃핀 풀어 바닥에 던집니다

긴 머리 예수처럼

그들의 과오를 닦고만 계십니다






휴일



비둘기를 닮은 사람이 공원에 모였다

사람을 닮은 비둘기도 먹이를 쪼았다

분주한 발걸음을 오롯이 삼켰다

돗자리 안의 사람은 자주 돗자리 밖으로 이탈했다

비둘기는 호시탐탐 사람의 영역을 노렸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맙시다.” 현수막이 매달렸다

평화의 상징은 돗자리 안으로 부리를 찔러 넣었다

사람은 꼬챙이를 들어 그들의 눈알을 찔렀다

상징을 벗어난 눈초리가 사납게 덤벼들었다

화들짝 놀라 새우깡 봉지를 집어 던졌다

비둘기는 노획물에 착지하여 만찬을 즐겼다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고 사람은 분노했다

청정한 공원에서 난장 치는 유해조류를 

더는 용서할 수 없었다. 귀소본능의 종족답게 

본거지로 돌아가길 기도했다. 예배당 첨탑에 

똥이나 싸지르는 더러운 평화들

사람이 던지는 돌멩이에 대가리를 맞았다

비둘기는 유해 인간의 독점 판을

더는 수용할 수 없었다. 지구별의 손님답게 

겸손하길 바랐다. 대낮부터 붉어진 얼굴로

삿대질이나 해대는 난잡한 상징들

비둘기를 닮은 사람이 사방을 주시하며 디저트를 먹었다

사람을 닮은 비둘기도 맹렬히 먹이를 쪼았다

일상을 잃은 비둘기와 

휴일을 잃은 사람 사이

분수는, 치솟는 물길로 새똥을 씻어냈다

만물의 경계가 흐려지는 날이었다






고급 독자



전철 타고 가다 역을 놓쳤다지요

딸의 첫 시집 넘겨 읽느라 정신을 빼앗겼다지요

한글도 겨우 깨친 분이 한 편 한 편


당신이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을 써놓고

시집마다 사인을 했습니다


어쩌다 한 줄 알아들으면 

딸의 심장이 만져져 숨이 콱 막힌다 하였지요

사랑도 자식도 놓치기만 하더니

그 잘난 시집 때문에

다음 장 다음 장, 또 다음 역 다음 역


봉숭아 꽃대 앞에서

양 갈래 땋은 머리로

환하게 웃던 당신의 흑백 사진

눈물샘 꾹꾹 눌러 쓴 

뒷면의 글귀가 아직도 생각납니다


꽃봉오리 맺힌다. 언젠가 이내 몸도 하얗게 피어나겠지


그 꿈 다 이룬 듯 글썽이며 읽었다지요

백지 펼쳐두고 자판만 두드린 딸,

진정 시인이 되고 싶던, 어느 시인의

소중한 역만 놓치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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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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