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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錦江)

  • 작성일 2023-09-15
  • 조회수 343

금강(錦江)

이용호


   ‘투수(投手)와 포수(捕手) 사이의 거리가 18.44미터인 까닭은?’

   이것은 『야구의 미학(美學)』이라는 산문집 속에 나오는 문구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예상외로 ‘그리움’이었다. 야구(base ball) 해설가이며 시인(詩人)이라는 이 책의 저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야구의 규정(規定)처럼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친구 사이에도,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너무 가까우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쉽고, 너무 멀어지면 친구 자체가 깨진다는 것. 그 적절한 거리가 바로, 투수와 포수 사이의 거리인 18.44미터라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움의 거리란다. 대자연의 나무들도 그리움의 간격으로 서 있단다. 인위적으로 식재된 나무가 아닌 자연적인 나무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서 있는 것이란다. 그 자연스러운 간격이 그리움의 거리라는 것. 그 그리움의 거리가 모든 두 존재 간의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는 것.

   ‘그리움’이란 낱말을 떠올리자 금세 눈앞에 노래 하나가 강(江)을 배경으로 흘러가고 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금강’ 살자.


   어린 시절, 고향인 ‘금강(錦江)’의 강변 마을에 살았을 때, 이 노래는 우리 친구들의 합창곡이었다. 그 시절의 그리움이, 지금 내 눈앞에서 강처럼, 내 가슴속에선 동화처럼 계속 흘러가고 있다. 그 이유는, 지금 바로 눈앞에서, 그 시절의 어깨동무 중 한 친구와 눈싸움, 아니 감정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초록빛 어린 시절이, 그 강물빛 어깨동무 시절이 오늘따라 더욱더 그리워진다.

   『야구의 미학(美學)』, 이 책은 내가 산 것이 아니다. 나의 팬을 자처하는 50대의 여성으로부터 선물로 받았다. 지난 한국시리즈 시즌 마감 행사의 사인회장에서였다. 그녀는, 투수인 나의 사인을 받고는 ‘야구의 미학(美學)’이라는 책 한 권을 나에게 주었다. 하얀 핸드백에, 하얀 구두를 신고, 왼손엔 하얀 야구공을 움켜쥐고 있던 여인. 여고 시절부터 야구를 사랑했다는 여인.

   야구 경기가 잠시 중단되어 있다. 1루( 쪽 관중석에서 한 남자가 ‘물병’을 던지며, 우리-팀의 포수를 향해서 계속 야유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착용하고 있던 코로나-19 마스크도 벗어버린 채 욕설 같은 고함을 지르고 있다. 그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주심(主審)이 경기를 잠시 중지시킨 상태이다.

   “우리 팀의 포수, 김경수를 즉각 바꿔라.”

   민망하게도 저 항의자는 우리 팀을 응원하는 사람이다. 더욱이 우리 팀의 포수는 내 친구다. 어깨동무 씨동무. 그렇기에, 내 마음이 더 복잡하다. 친구 경수와 나는, 중학교 야구부 시절부터 성인 야구까지, 같은 팀의 동료 선수로 뛰고 있다.

   그 항의자가 던진 물병을 치우고, 주심이 그 관객에게 자제를 요청하느라, 경기 중단이 예상보다 더 길게 이어지고 있다. 우리 팀을 응원하는 그 항의 관객의 주장은 이런 것이다. 투수인 나를 위해, 우리 팀의 포수를 즉각 교체해 주어야만 한다는 것. 그 이유는 간명했다. 벌써 세 번이나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다는 것. 그것도 고의성이 다분하다는 것.

   첫 번째 실수는, 파울볼을 잡아 주지 못했다. 공중으로 높이 솟구친 파울볼을 잡으러 달려가던 포수가, 갑자기 넘어져버린 것이다. 우리 팀 관중석에선 샛노란 탄식이 터지고, 상대 팀 관중석에선 검푸른 탄성이 터졌다. 고의인지 실수인지 알 수는 없다. 그 진실은 오직 친구이며 팀의 동료인 포수 자신만 아는 것. 포수가 그 공을 잡아 주지 못한 결과, 나는 그 기사회생한 ①번 타자에게 기습 –번트(bunt)의 안타를 맞고 말았던 것. 두 번째 실수는, 내가 던진 회심의 결정구를 잡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투-쓰리(2-3)’, 풀 카운트에서, 내가 결정구로 

   던진 커브 볼에, 상대 팀의 ②번 타자가 멋지게 헛스윙을 해 주었다. 그런데, 그 볼을 우리 팀의 포수가 잡지 못하고 그만 뒤로 빠뜨리고 만 것이었다. 갑자기 낫 아웃 상태가 발생하여, 헛스윙으로 아웃이 선언되어야 할 타자가, 어이없게도 살아나서, 1루까지 진출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그 낙차 큰 커브 볼이 땅에 튀기며, 불규칙 바운드가 일어났기에 포수가 정상적인 자세로 잡기는 어려운 볼이었다. 하지만 방법은 있었다는 것. 일단 가슴으로 막아 그 공을 눈앞에 떨어뜨렸어야만 했다는 것. 그러고 나서 그 공을 잡아 1루에 던져도 충분히 타자를 아웃시킬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지금 저 항의하는 관객은, 야구의 이론 측면에서만큼은 상당한 지식을 갖춘 것 같다. 그 관객이 아직도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고 소리까지 지르고 있다. 제발 코로나-19 마스크는 좀 써 주었으면 좋겠다. 어제 어느 야구장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단다. 그것 때문에 관중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 경기를 치르고 있다. 당장 내 친구인 포수에게 달려가 그 실책의 이유를 묻고 싶지만, 포기한다. 요즘 내 친구인 포수와 나 사이가 너무 멀어져 있다. 눈을 맞추기도 어려울 만큼 부담스러운 사이가 되고 말았다. 우리 둘 사이는, 야구 규칙으로, 18.44미터 떨어져 있다. 하지만 그 ‘18’미터가 지금 이 순간엔 ‘180’미터쯤 멀어져 있는 것으로 느껴지고 있다.

   모처럼 관중석을 둘러본다. 나에게 『야구의 미학(美學)』이란 책을 선물한, 그 50대 여인도 지금쯤 관중석 어딘가에 앉아서 이 경기를 관전하고 있을 것이다. 그 책 속에는 ‘야구공의 미학(美學)’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야구공에는 ‘일백팔(108)’ 개의 땀(실밥)이 새겨져 있단다. 매일 야구공을 다루는 나도 그 정확한 숫자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 ‘108’개의 붉은 실밥이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야구공에 새겨져 있다는 것. 그것이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것 같기도 했다고···. 그녀도 조금 전에 포수의 수비 동작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우리 포수의 수비 실수를, 그녀는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아, 1루 쪽 관중석에서 지켜보고 계시는 우리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오 중앙의 지정석에서 지켜보시는 친구 경수네 아버지께서는 어떤 생각을 하실까?

   투수판에서, 포수에게 공을 던지려고 할 때면 가끔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투수와 포수 사이의 거리가 왜 18.44미터일까?’

   선수 9명으로 구성되는 야구 경기에서, 투수와 포수는 가장 가까운 포지션이다. 그런데 나는 친구이며 우리 팀의 포수인 경수와의 거리가 아득하게 느껴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그 옛날 꼬맹이 시절, 경수와의 어깨동무 시절이 생각나곤 했다. 강처럼 순수했던 그 시절이 그리웠다.

   어린 시절, 경수와 나는 정말 불알친구였다. 우리는 금강이 흐르는 강변 마을에서 살았다. 금강은 우리의 놀이터였다. 여름철에는 아예 강변에서 살다시피 했다. 갈대가 무성할 때는 옷 하나 걸치지 않고 알몸으로 멱을 감으며 놀 때도 있었다. 서로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고, 감출 필요도 없었다. 경수는 내 엉덩이에 불에 덴 상흔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나는 경수의 잠지에 검고 큰 점 하나가 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는 것.

   경수와 나에게, 금강(錦江)은 세상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이 노래는 우리 동네 친구들의 합창곡이었고, 특히 내가 좋아하는 노래였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경수네 고모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노래였다. 경수네 고모님이 이 노래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며 특별히 강조를 했던 말도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금강에 사는 사람들은 이 노래만큼은 꼭 알아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이 노래는 금강처럼 아름다운 이상 세계를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꼬맹이 시절, 우리 친구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물놀이를 시작했고 집으로 돌아갈 때도 이 노래를 불렀다, 마치 야구의 규칙처럼.

   그동안 경수와 나는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사이였다. 우리의 거리가 멀어지게 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엉뚱하게도 ‘코로나-19’ 때문이었다. 우리 할아버지가 공주(公州)의 요양병원에서 몇 년째 생활하시다가 갑자기 코로나-19에 감염되어, 그만 세상을 떠나셨다. 할아버지의 상(喪)을 치르고 난 후, 프로야구팀에 복귀하여 훈련을 시작한 날이었다. 그날 경수와 나는 운동을 마치고 시내의 한 카페로 들어갔다. 상을 당한 내 마음을 위로해 주겠다는 경수의 제의를 내가 받아들인 것이었다. 커피 대신 맥주를 마셨다. 나는 커피를 원했지만 경수는 맥주를 원했고, 나도 금세 동의했다. 생맥주 한 컵을 거의 마셨을 때, 우리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아버지는 몹시 흥분되어 있었다.

   그 전화 내용의 골자는, 경수네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오리발을 내민다는 것이었다.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와의 오래된 약속을 깨고 엉뚱한 소리를 한다는 것. 그 약속이란 이런 것이었다.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가 살았던 금강변의 집터와 논은 법적으로는 경수네 할아버지의 땅으로 등기가 되어 있다. 하지만 그 땅은, 수십 년 전부터 경수네 할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에게 소유권을 이전시켜 주기로 약속이 된 땅이었다는 것. 그 약속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그 당시 우리 할아버지는 경수네 집안에서 머슴살이를 했단다. 그 머슴살이의 대가로, 우리 할아버지가 살고 있던 땅, 집터 79평과 천수답(天水沓) 세 마지기를 품삯 대신 받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던 것. 그 보잘것없던 천수답이, 어느 날 갑자기 금싸라기 같은 땅으로 변했단다. 그 땅 주위가 친환경 첨단산업단지로 개발된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 그날부터, 우리 할아버지는 그 땅의 명의를 바꾸어 달라고 요청해 왔었단다. 하지만, 경수네 할아버지는 차일피일 미루어 왔었다는 것.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가 코로나-19 사태로 갑자기 돌아가시자, 경수네 할아버지는 돌연 태도를 바꾸었다는 것. 문서도 없이 구두로 약속을 했던 당사자가 사라져버리자, 경수네 할아버지가 당당하게 오리발을 내민다는 것이었다. 억울하면 코로나-19에게 하소연해 보라는 것이란다.

   아버지로부터의 전화 내용을 경수에게 설명하자 경수가 곧바로 맞받았다.

   “채동우, 우리는 그것에 상관하지 말자. 할아버지들의 문제였잖아.”

   “김경수, 그건 아닌 것 같다. 물론 직접적으로 너와 나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 집안과 너희 집안의 문제잖아. 그리고 그것이 약속 위반의 문제라는 것이야. 야구에 비유하면, 야구 규칙 위반.”

   “채동우, 네 말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약속 위반을 주장하려면 그 증거가 있어야지. 돌아가신 너희 할아버지의 일방적인 주장일 수도 있잖아? 금강의 강변에 위치한 그 땅은 지금도, 법적으로 우리 할아버지의 명의로 되어 있단다.”

   “김경수, 너의 말도 일리는 있구나. 하지만 만일 우리 할아버지께서 코로나-19로, 갑자기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너희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노골적으로 증거가 없다고 주장을 할 수 있겠냐. 그렇게, 갑자기 오리발을···.”

   경수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내 말을 중간에서 잘라버렸다.

   “야, 말조심해. 오리발이라니? 그건 우리 할아버지를 능멸하는 짓이야.”

   “야, 그 원인을 누가 제공했는데?”

   그에 경수가 맥주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켜고 나서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어 직구보다는 변화구에 가까운 실소를 던졌다.

   “야, 동우야. 내가 이런 말은 정말 안 하려고 했는데, 딱 한 번만 해야겠다. 에~ 너희 집안은 대대로 우리 집안의 머슴이었단다. 머슴살이. 중요한 것은 그 머슴살이를, 너희 집안의 사람들이 간청했다는 것이야. 간청.”

   “···.”

   내 말문은 닫혀버리고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경수의 말 폭탄은 계속되었다.

   “그것을, 우리 집안의 사람들이 마지못해 받아 주었다는 것이지. 만일 우리 집안의 어른들이 그 간청을 받아 주지 않았다면 너희 집안의 사람들은 굶어 죽었을지도 모를 형편이었단다. 너희 조상들은 물론 너도 우리 집안사람들에게, 고마운 줄 알아야만 돼. 금강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짐 내라 하는 격이지.”

   “···.”

   순간 내 얼굴은 더욱 붉게 달아오르고, 복부를 발로 차인 듯 통증이 일어나 가슴속에서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 집안사람들이 경수네 집에서 대대로 머슴살이를 했다는 사실을, 나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친구에게 직접 듣게 되자, 그 충격이 더욱 크고 아프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경수에게 잽을 날리고, 그 대가로 카운터 펀치를 얻어맞은 격이었다. 그 통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해병대 출신인 경수는 내게 또 한 방의 날카로운 어퍼컷을 날렸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듯이, 한번 ‘머슴’은 영원한 ‘머슴’이야. 야, 동우야. 앞으로는 주제 파악 좀 하고 행동해라.”

   그 순간 내 입에서 탄성 같은 탄식이 터져 나와버렸다.

   “한번 머슴은 영원한 머슴!? 김-경수, 네가 이렇게도 치사한 놈인 줄은, 예전엔 정말 미처 몰랐구나?!”

   나는 마시던 맥주를 경수의 얼굴을 향해 들이부어 버렸고, 경수는 곧바로 나의 뺨을 갈겼다. 결국 우리는 멱살잡이에 이어 치고받는 데까지 가고 말았다. 그날 나는 경수의 오른손 주먹 한 방에 티케이오 패를 당했다. 코피가 터지고, 유니폼이 피로 물들었지만 큰 부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카페의 사장이 경찰(112)에 신고를 하는 바람에, 작은 다툼이 큰 사건이 되어버렸다. 우리의 부모님까지 사건 현장으로 달려오게 되었고, 그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그 사건 이후, 우리는 물론 양쪽 집안의 사람들까지 멀어지게 되었다. 가장 가까워야 할 투수와 포수 사이가, 대중가요 제목처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버렸었던 것.

   오늘 이 경기는, 꼭 승리하고 싶다. 아니 반드시 잡아야만 하는 경기이다. 이 경기는 한국 –프로야구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홈경기이다. 우리 구단의 창립기념일에 열리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것도 아니고 우리 팀의 포수 때문에, 투수인 내가 위태로운 상황을 맞아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문제의 항의 관중은 아직도 진행요원 2명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제 코로나-19 마스크는 착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 관객은 아마도 술까지 한잔 걸친 모양이다. 끝까지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주심의 입에서 또 한숨이 터진다. 내 의견에 동의하며 나를 응원하는 관객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하지만 너무 지나친 행동에 내 마음도 부담스러워지고 있다.


B


   포수인 나 때문에 경기가 잠시 중단되어 있다. 나를 비난하는 관중이 난동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득 눈앞에 문장 하나가 떠오른다.

   ‘신(神)은 디테일에 있다.’

   우리 감독님이 자주 쓰는 말이다. 경기 시작 전, 작전회의를 할 때 자주 사용하는 것이다. 작고 사소하게 여겨지는 수비 동작 하나에도, 항상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 그 작은 원칙이, 팀의 승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묘하게 변형시켜 사용하실 때도 있다. 특히,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 선수 앞에서 이렇게 한마디 툭 던질 때가 있다.

   ‘악마(惡魔)도 디테일에 있다!’

   포수인 나는 후자에 더 신경이 쓰이곤 한다. 지금도 우리 감독님은 내 뒷모습에 눈총을 쏘아대고 있다. 내 실책이 고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하지만 나는 감독님이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술 취한 관객이 ‘포수를 바꾸어 달라’고 소리치며 나를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동의할 수가 없다. 저 관객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판하고 싶다. 너무 순진한 사람인 것 같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아마추어다. 여기는 지금, 아마추어 경기가 열리고 있는 곳이 아니다. 프로야구 경기장이다.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 냉정한 프로의 세계인 것이다. 순간순간의 결과가 연봉과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의적으로 실수를 저지를 프로선수가 있겠는가?

   조금 전, 나는 투수가 던진 공을 잡아 주지 못하고 뒤로 빠뜨렸다. 우리 팀의 투수인 채동우는 내 친구이다. 일단 고의가 아니었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현재 스코어는 ‘1 대 0’으로, 우리 팀이 한 점 앞서고 있다. 더욱이 5회 말이다. 우리 팀의 투수가 승리투수의 요건을 달성하기 직전의 상태인 것. 무엇보다도, 오늘 이 게임은 올해의 ‘한국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홈경기이다. 우리 구단의 창립기념일에 열리는 경기인 것. 또한 수많은 야구팬들이 TV 중계방송으로 지켜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완전히 종식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관중은 줄어든 상태이지만, 관중석에서는 마니아 관중들이 관전하고 있다. 특히, 우리 구단주께서도 직접 야구장까지 나와 지켜보고 계시다. 이런 중요한 경기에서, 고의로 실수를 저지를 바보멍청이는 없을 것이다.

   긴장한 상태에서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잘못 나왔을 뿐이다. 투수가 던진 공은 낙차가 큰 커브 볼이었다. 또한, 내가 투수에게 요구한 사인에서도 약간 벗어난 볼이었다. 땅바닥에 튀길 정도로 나쁜 볼이었기에 그 공을 정상적인 자세로 잡기는 불가능했다. 더욱이 1루에 주자가 있는 상태였기에 1루 주자가 2루로 도루하는 것까지 신경을 써야만 하는 상황이었던 것. 우리 팀을 응원하는 관중들과 투수는 내게 이런 원망을 할 것이다. 일단 몸으로 그 볼을 막아서 앞에 떨어뜨린 다음, 다음 동작을 취해야만 했었다고. 그래도 늦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렇게 하자니 1루 주자의 2루 도루를 막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더욱이 1루에 진출해 있던 주자는 지난 시즌의 도루왕이다. 주자의 도루에 대한 판단은, 투수가 하는 것이 아니라 포수가 하는 것이다. 포수의 권한이기도 하다.

   물론 그 순간의 바로 직전 내 마음을 움직인 변수 하나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중요한 순간에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의 분노한 얼굴 모습. 우리 할아버지께서 분노한 이유는 친구 채동우의 배신이었다. 채동우는, 우리 할아버지 덕분에 야구선수가 되었다. 우리 고장의 유지였던 할아버지와 체육계의 마당발인 우리 아버지의 힘이 없었다면 동우는 야구선수가 될 수도 없었다. 그런 놈이 감히, 우리 할아버지를 비난한 것이다. 아니 우리 집안을 무시하고 있는 것.

   “금강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짐 내라고 하는 격이구나.”

   우리 할아버지는 동우네 집을 향하여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시곤 하셨다. 그러고 나서는, 고향의 동우네 집 울타리 안에 서 있던 100여 년 묵은 감나무를 톱으로 베어버렸다. 뿌리 부분까지 싹둑 잘라버렸다. 그 감나무는, 동우네 집안사람들이 심어 놓은 것이 아니라 우리 집안사람들이 심어 놓은 것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금강의 강변 가장자리,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한 동우네 집터는 현재에도 우리 할아버지의 땅이다. 동우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우리 집안에서 머슴살이를 할 때부터 임시로 빌려준 집터였단다. 사실상 무료였단다. 동우네 집안은 그 빌린 땅에 집만 짓고 살았었던 것.

   그 분노한 우리 할아버지의 얼굴 장면에, 친구이며 투수인 동우가 내 작전 사인을 받으며 갑자기 묘한 미소를 짓는 장면이 오버랩되고 있었던 것. 마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고 비웃는 것 같은 투수의 묘한 미소에, 내 가슴속에서는 검붉은 파문이 일었다. 그것 때문에 순간적으로 마음이 흔들렸을 수도 있는 것. 그 순간 나는 동우에게 한마디 날리고 싶었다.

   ‘야, 채동우. 너는 우리 할아버지의 도움이 없었다면 야구선수가 되는 것, 그 자체가 불가능했어. 그런 놈이 우리 할아버지를, 비난하다니. 배은망덕이구나.’

   그 말은 꿀꺽 삼키고, 대신 헛기침 한 방을 허공을 향해 내뱉었다. 투수인 아니 내 친구인 채동우는 우리 팀의 제1의 에이스다. 작년 우리 팀의 종합 우승은, 우리 팀의 투수 채동우의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이후 동우는 마치 새로 태어난 선수 같았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페넌트 레이스(pennant-race)에서 ‘7승 9패’의 보잘것없는 성적을 기록한 선수가 코로나-19 사태를 겪던 해에는, 갑자기 ‘12승 7패’의 성적을 거두었다. 코로나-19 사태가 더욱 확산이 되자 채동우의 성적은 더 좋아졌다. 다음 해에는 ‘15승 7패’라는 성적을 거두더니 작년에는 ‘19승 5패’라는 빛나는 성적으로 비로소 MVP를 차지했었다. 동우는 우리 구단주의 칭찬을 한 몸에 받는 선수다. 우리 팀을 응원하는 팬들에게도 우상이 되어 있다. 우리 팀 감독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정말 특별한 선수가 되어 있는 것.

   ‘감독님, 포수 좀 바꿔 주세요. 서로 사인이 잘 맞지 않습니다.’

   만일 이렇게 동우가 감독님에게 건의한다면, 나는 금세 선발에서 밀려나 벤치에 앉아 있는 후보선수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동우는 갑이고 나는 을이다. 야구에선 투수가 갑이고, 포수는 을인 셈이다.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동우가 을이고, 내가 갑이었다. ‘공주고’ 야구부 시절까지만 해도, 내가 투수였고, 채동우는 좌익수 겸 포수였다. 그런데 프로에 진출한 다음 나는 포수로 전락되고, 채동우는 코칭스탭의 추천으로 투수가 되었다.

   한 스포츠신문의 칼럼에서, 어느 야구 해설가는 야구 경기의 특징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야구의 특징은 세 가지란다. 첫째, 야구 경기는 타 스포츠에 비해 민주적이란다. 그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축구 경기와 비교를 했다. 스포츠 경기에서 강팀과 약팀이 만났을 때, 축구에서는 강팀이 일방적으로 공격을 하고, 약팀은 경기 내내 수비 또는 방어만 하는 양상이 벌어진단다. 그에 비해, 야구에서는, 약팀에게도 반드시 공격 기회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강팀이 공격을 한 횟수만큼, 약팀에게도 똑같이 공격할 기회를 준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 집안에서 대대로 머슴살이를 했던 동우네 집안사람들에게 우리 집안사람들은 단 한 번이라도 공격할 기회를 주었을까?

   둘째, 야구 경기는 진보적 사고를 가진 자와 보수적 사고를 가진 자의 협력 시스템으로 이루어지는 스포츠란다. 좌익수와 우익수의 개념도 그곳에서 출발이 되었단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동우는 진보이고, 나는 보수이다. 우리 집은, 정말, 정통 보수 집안이었다. 물론, 나도 보수의 피를 물려받아, 내 몸속엔 보수의 피가 흐르고 있다. 우리 집안 사람들은 동우네 집안 사람들에게 행동은 물론 생각마저도 보수적으로 할 것을 요구했었던 것 같다. 각종 선거(選擧)에서도, 보수를 표방하는 후보를 찍도록 강요까지 했었던 것.

   “금강아~, 나는, 오늘 처음으로, 주인댁 몰래, 진보를 찍어버렸다~!”

   내가 꼬맹이 시절, 친구들과 강변 억새밭에서 숨바꼭질할 때였다. 동우네 할아버지께서, 금강 앞에 홀로 서서, 두 주먹을 불끈 쥐어 흔들어대며, 강에게 외치는 소리를, 나는 정말 우연히 들었다. 그분은 내가 엿듣고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 할아버지께 그것만은 일러바치지 않았다. ‘진보’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셋째, 야구 경기는 투수와 포수 사이의 협력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 그런데, 투수인 동우와 포수인 나 사이에서는, 지금 묘한 상황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협력은 고사하고, 적과 같은 동료가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 동네를, 이웃 마을 사람들은 ‘목련(木蓮)마을’이라고도 부른다. 마을 곳곳에 목련나무가 서 있다. 우리 집안사람들이 대대로 꾸준히 심어 놓고 가꾼 결과란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우리 집에는 백목련(白木蓮) 나무만이 서 있다. 백목련은 우리 집안의 상징이란다. 반면 동우네 집 뜰에는 자목련(紫木蓮) 나무만 서 있는 것이다. 그 자목련 나무는 동우네 집안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무란다. 두 나무가 목련과(木蓮科)에 속하는 나무라는 것에서는 서로 일치하지만, 꽃의 색깔이 하얀색과 자주색으로 다르다. 백목련과 자목련의 차이처럼 우리 집안과 동우네 집안은 그 정서적, 정치적 색깔이 달랐던 것 같다. 그래서 동우와 나의 협력도 쉽지 않은 것일까?

   코로나-19 사태가 세상을 바꾼다더니 나에게도 그 말이 적용되고 있는 것 같았다. 친구이며 우리 팀의 투수인 동우와 나 사이가 깨지기 시작한 계기도, 코로나-19 사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동우가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한 것도, 묘하게도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다음부터였다. 정확히 표현하면, 코로나-19 사태로 동우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다음부터였다. 7승 9패로 평범했던 투수가 다음 해엔 12승 7패의 좋은 성적을 올렸다. 그리고 그다음, 그다음 해엔, 15승 7패와 19승 5패라는, 마치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정말 믿기 어려운 성적을 연이어 거둔 것. 연봉도 껑충 뛰었다. 내 연봉의 2.8배가 되는 돈을 받고 있다. 우리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던 자의 손자가, 하루아침에 주인이었던 자의 손자 머리 위에 올라선 격이다. 억장이 무너지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문득 눈앞에 야구계의 명언 하나가 떠오른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투수가 한 말이란다. 이 명언은 공주고등학교 야구부 시절, 감독님에게 들었다. 내가 투수이던 시절이었다. 참패를 당하고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 감독 선생님이 인용한 말이었다.

   

승리하면 조금 배울 수 있다.

그러나 패배하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이 명언으로 지금 이 순간, 위안을 삼아 보려고 하지만 가슴 두근거림은 좀처럼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19승 5패로 지난 시즌 MVP가 되던 날, 채동우는 우리 야구단 선수들 앞에서 이런 말도 했었다.

   “내가 19승으로 MVP가 된 것은 코로나-19의 덕분이라고 생각해. 사회학자들에 의하면,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꾸고 역사의 전환점이 된단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덕을 본 사람들도 있단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지. 19승이라는 이 빛나는 나의 성적도 코로나-19 덕분이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야. 19승과 코로나-19?! 어쨌든 나는 코로나-19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 하하하 허허허허···.”

   지켜보고 있던 우리 야구단 선수들 중, 몇 명은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대부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친구 동우의 그 묘한 주장은 나를 조롱하기 위한 술책 같았다. 그 코로나-19 때문에 자기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면서 짧은 유언을 남기셨단다. 금강으로 시작해서, 금강으로 끝났다는 유언. 그 유언을 전해 들은 동우네 가족들은 금강을 바라보며 종일 울었다고, 아니 통곡했다고···. 그 ‘금강 유언’이 자극이 되어 자기는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는 논리였다.

   우리 팀의 투수이며 친구인 동우를 미워하면서도, 동시에 옛날이 그리워진다. 어린 시절엔 동우와 나, 두 사람은 둘도 없던 친구 사이였다. 매일 강에서 살다시피 했었다. 봄-여름-가을-겨울 강변길을 어깨동무를 하고 쏘다니던 어깨동무 –씨동무.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동요는, 우리의 주제곡이었으며 합창곡이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

♩엄마야 누나야, <금강> 살자.


   작은 다툼이 일어 서로 어색해질 때면,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이 노래를 먼저 불렀다. 가운데 소절에는 그 노랫말 대신,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을 넣기도 했다. 그러면 우리 두 사람의 얼굴엔 금세 웃음꽃이 다시 피어나곤 했었다. 갑과 을이 무엇인지, 진보와 보수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머슴이란 낱말조차도 그때는 정말, 몰랐었다.

   그런 우리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마치 적(敵)처럼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했다. 아니 우리 집안과 동우네 집안의 싸움으로 번지고 말았다. 하지만 동우와 나 사이에는 약속 하나가 있었다. 그 약속은 지금도, 동우와 내 어깻죽지에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 공주고 야구부 시절,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기념으로 내가 제안을 하여 새긴 것이었다. 하트(♡) 모양 속에 ‘금강(錦江)’을 써 놓은 모양이었다.

   이 문신을 새기기 전에 나는 하트(♡) 모양 속에 ‘公州高’를 새겨 넣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동우는 다이아몬드 모양(◈) 속에 ‘錦江’을 새겨 넣자고 주장했다.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동우는 ‘다이아몬드’ 모양은 양보하고, 내 주장인 ‘하트’ 모양에 동의해 주었다. 하지만 그 안에 넣을 낱말에서는 자기의 주장을 고집했다. 내 말에 동우가 끝까지 반대한 것은,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자존심 대결이 벌어진 것. 나의 제안으로 우리는 각자 부모님에게까지 여쭈어보기로 했다. 결과는 나의 패배였다. 동우네 부모님은 물론, 우리 부모님도 ‘公州高’가 아닌 ‘錦江’을 선택했던 것. ‘公州高’가 두 사람 사이의 의미라면 ‘錦江’은 그 의미를 두 집안으로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그 錦江의 의미가 公州高보다 더 넓고 깊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금강은 두 집안의 영원한 고향이라는 것.

   그 금강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동우와 나, 우리 둘의 가슴속에선 계속 흐르고 있지 않을까?


A


   결국 술에 취한 그 관객이 경기장 운영원들의 강제력에 이끌려 관중석 밖으로 쫓겨나듯 사라지고 있다. 내 친구를 비판하며 나를 응원하는 관객이다. 하지만 그의 과격한 행동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주심이 다시 플레이를 선언한다.

   이제 1루와 2루에 주자가 있는 상태에서, ③번 타자를 맞이해야 한다. 강타자다. 지난해 타율이 리그 전체에서 3위를 차지한 타자다. 3할 2푼 9리. 투수의 변화구에 잘 속지 않는 영리한 타자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런 정교한 타자에게도 약점은 있다는 것이다. 홈런이 거의 없다는 것. 호쾌한 타격보다는 안전한 타구를 날리는 것이 목표인 타자다. 투수의 입장에서 보면, 홈런을 맞을 확률이 적기에 변화구보다 직구를 많이 던져도 된다는 것이다. 포수도 그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 경수가 내게 직구를 던지라는 사인을 보내고 있다. 타자 몸 쪽에 바짝 붙는 인코스(in-course)의 직구를 던지라는 사인이다. 그것은 내 주특기이기도 하다. 이것만으로 판단해 보면 친구 경수가 나와 엇나가려고 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순간 내 가슴속이 더 복잡해진다.

   경기가 지연되어 관중들의 기분이 가라앉아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친구인 포수의 의견도 인정해 줄 겸하여 제1구는 빠른 직구를 던졌다. 그 ‘50대・여성・팬’의 표현대로 백팔번뇌를 던졌다. 스트라이크존(strike-zone)에서 9㎝쯤 안쪽으로 벗어나게 던지려고 했는데 형편없이 빠져버렸다. 몸 쪽을 파고드는 직구였지만 타자의 왼쪽 종아리를 때리는 ‘데드볼(dead-ball)’이 되고 말았다.

   이 사구로 이제 무사 만루의 상태가 되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위기를 자초했다. 이제 만일 포수가 내가 던진 공을 고의로 빠뜨리기만 해도, 상대 팀에게 1점을 헌납할 수 있는 상황이다. 나의 승리투수 요건이 날아가 버릴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태가 된 것.

   ‘이것이 바로, 포수의 전략? 내 친구 경수의 노림수!?’

   순간 내 가슴속에서는 또 샛노란 의심이 솟구치고, 가슴속 파고가 높아진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뒤로 돌아, 2루 주자에게 형식적인 견제구를 던지며 잠시 생각할 시간을 벌어 본다.

   요즘엔 우리 팀의 포수 때문에, 고민 아닌 고민을 하고 있다. 포수이기 이전에 친구이기에 더욱 그렇다. 경기 때마다 눈을 맞추고 마음까지 맞추어야만 하는 포지션이 투수와 포수다. 하지만 우리는 눈도 맞추기가 어려울 정도로 사이가 벌어졌다. 경수와 나는 포수와 투수 관계이기에 사인 교환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매번 눈을 맞추어야만 한다. 그런 까닭에 매 순간 더욱 불편하다. 등에서 땀이 나고, 지금은 손에도 땀이 흥건하다. 1구 1구를 던질 때마다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투수는 한번 밸런스가 깨지면 다시 회복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포수인 경수도 잘 아는 상식이다. 그것을 친구가 악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가슴속 두근거림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제 ④번 타자, 강타자를 맞이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 조절을 위해서 1루에 천천히 견제구를 던진다. 주심이 내게 경고를 한다, 경기를 지연시키고 있다고. 투구의 밸런스가 깨질까, 걱정이 밀려온다. 이번에는 포수이며 친구인 경수가 변화구를 요구하고 있다. ‘포크볼(fork-ball)’을 요구하고 있다. ‘포크볼’의 장점은 헛스윙을 유도하기가 좋다는 것이다. 반면 단점은 타자의 몸에 맞는 볼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 만일 다시 데드볼이 발생하면 상대팀에게 1점을 헌납하고 동점 상황이 되어, 나의 선발 승(勝)은 허공으로 날아가고 말게 되는 것.

   나는 고개를 흔들며 구질을 바꾸라고, 다시 포수에게 사인을 보낸다. 하지만 포수는 다시 포크볼 사인을 내며 엄지손가락까지 치켜들고서는 나를 압박하고 있다. 포수가 투수에게 사인을 보내며 엄지를 치켜드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감독의 지시가 실린 사인이란 뜻이다. 감독이 특별히 투수에게 사인을 보내는 것. 감독과 투수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 감독은 먼저 포수에게 사인을 보낸다. 그러면 그것을 포수가 받아서 투수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포수를 바라본다. 포수, 아니 친구인 경수의 사인이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18.44미터란 거리 때문에 포수의 눈빛까지, 눈떨림까지 정확히 살펴보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더그아웃(dug-out) 속에 앉아 있는 감독님에게 달려가서 직접 확인해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별수 없이 변화구는 던지되 포크볼 대신 슬라이더(slider)를 던진다. 정확하게 구사되지는 못했지만 타자 가까이에서 미끄러지듯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공이 되었다. 고맙게도 그 공에 ④번 타자가 헛스윙을 해 준다. 크게 헛스윙을 하며 야구방망이까지 놓쳐버리고 주저앉은 타자가, 오른쪽 팔목을 잡고 땅바닥에 누워버린다. 헛스윙을 하다가 팔목에 이상이 발생한 모양이다. 상대 팀 코치가 뛰어나온다. 또 경기가 잠시 중단될 것 같다. 경기시간이 일정하게 규정되어 있는 축구 경기와는 다르게 야구 경기의 특징은 시간의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경수네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의 사이도 최악이다. 우리 할아버지의 별세 사건이 일어나던 날부터 사이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하다가 경수와 내가 멱살잡이를 하던 날, 우리 두 집안은 서로의 적이 되었던 것. 그 이전에는 사이가 비교적 좋은 편이었다. 경기장에서 자주 만나 맥주 한 잔씩을 나누는 사이였다. 경기가 없는 월요일에는 경수와 나까지 참석하여, 두 가족은 금강 강변의 음식점에서 만나곤 했다. 커피가게와 음식점, 그리고 노래방까지 겸하고 있는 그 카페의 상호도 〈금강(錦江)〉이다. 그런 날에는 하나의 규칙이 있었다. 식사를 하고 노래방을 거쳐, 강이 내려다보이는 옥상 전망대에 오르는 것. 그곳에 오르면 우리 두 집안사람들은 항상 한 팀이 되어, 강을 바라보며 하나의 노래를 불렀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금강’ 살자.



   금강은 우리 두 집안의 공통분모였으며, 두 집안 조상님들이 대대로 살아온 지리적인 고향이었으며, 두 집안 공통의 정체성(正體性)이었던 것.

   재작년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악화되고, 페넌트 레이스가 시작되어 약 10경기를 치렀을 즈음, 고민 끝에 아버지가 내게 검푸른 제안을 하셨다.

   “얘야, 동우야. 많이 고민했다. 감독님에게 포수를 바꿔 달라고 요청하자. 너에게는 경수가 포수이기 전에 친구이겠지만, 그 친구 때문에 투수의 승률이 떨어진다면 팀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런 사유를 감독님께 말씀을 드리고 포수의 교체를 요구한다면, 허락해 주실 것 같구나? 동우야, 부담스러우면 너는 아무것도 모른 체하거라.”

   “···.”

   아버지의 제안에 나는 침묵했다. 아버지께서도 쉽게 결정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며, 간단한 문제도 아니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직접 감독님을 찾아가 포수 교체를 요구하셨다. 그 결과로 포수가 김경수에서 후배인 최용갑으로 교체되었고, 나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부터 내 가슴을 콕콕 찌르곤 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친구 경수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었다. 중학교 시절, 친구 경수와 나 사이에 있었던 추억들이 눈앞에 자꾸 떠올라 나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 친구 경수가 없었다면 나는 야구선수가 될 수도 없었다. 친구 경수네 집은, 우리 고장에서 제일 부잣집이었다. 경수는 부잣집 아들답지 않게 게임과 만화를 좋아했다. 혼자 가기가 심심했던지 경수는 나를 데리고 다녔다. 가난한 집의 막내였던 나는 만화비와 게임비도 없었지만, 공주 시내까지 나갈 버스차비도 없었다. 경수는 나를 위해 게임과 만화비는 물론 차비도 내주었다. 경수와 나는 만화책과 컴퓨터게임에서 야구를 알게 되었다. 미국의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를 알게 된 후에는 야구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것. 하지만 나는 야구 글러브 하나를 살 돈이 없었다. 그 당시 야구 글러브 하나의 값은 내 1년 치의 용돈보다 더 큰 액수였던 것. 야구 글러브 하나 소유하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느 봄날, 기적이 일어났다. 경수의 생일날, 경수가 야구 글러브 2개를 사서 절망하고 있던 나에게 하나를 주었던 것. 그 야구 글러브를 받는 순간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그렇게 세월이 흘러 중학교 3학년 때 우리 고장의 서슬 퍼런 유지였던 경수네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경수와 나는 야구부가 있는 도시, 공주의 중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경수와 나는 같은 집에서 하숙을 했고, 나의 하숙비도 경수네 할아버지께서 모두 부담해 주셨다. 나의 야구 인생은 그렇게 경수와 경수네 할아버지의 전폭적인 도움으로, 비로소 시작될 수 있었던 것. 내 야구 인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 주셨던 경수네 할아버지를 나는 자못 존경했다. 그분은 시인(詩人)이었다. 우리 민족시인, 시조(時調)를 창작하는 시조시인이란다. 정통 보수를 자처하는 경수네 할아버지가 시조를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같았다. 내가 그분의 작품 중에서 특별히 좋아했던 시조 한 편이 있었다.


   강(江)에게


   너를 사랑할 땐,

   너에게 퐁당 빠졌지.


   너를 시기할 땐,

   너에게 돌멩이를 던졌어.


   오늘은,

   가슴속에도,

   강(江) 하나가 흐르네.


   강변 마을에 살았던 나는 이 짧은 시조를 무척 사랑했다. 어려운 낱말 하나 없고, 마치 동시 같은 느낌이 드는 정형시이다. 그런데 읽고 나면 그 감동은 강처럼 길고 깊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 시조는, 지금도 우리 고향마을 강변에 시비(詩碑)로 서 있다.

   고민 끝에 먼저 아버지를 설득하고 이어 감독님을 설득하여 올해 페넌트 레이스가 시작되고, 백목련 꽃이 지고 자목련 꽃이 막 피어나던 날부터 내 친구 경수를 다시 내 파트너(partner) 포수로 삼았던 것. 그런데 경수는, 가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러 나를 패전 투수로 만들어버리곤 했다. 게다가 오늘 또다시 문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 구단의 창립기념일인 오늘, 문제가 또 터진 것이다. 공교롭게도 오늘이 경수네 할아버지의 생신이란다. 매년 경수네 할아버지의 생신날이면 우리 집에서는 관행처럼 해 오던 것이 있었다. 생신을 축하하는 선물로 백목련 분재(盆栽) 하나씩을 바쳐 왔던 것. 하지만 우리 할아버지가 코로나-19로 돌아가신 후로는 그 야구 규칙 같던 행사를 우리 아버지께서 거부하셨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우리 집터에 고사목처럼 남아 있던 수십 년 묵은 백목련 한 그루를 뿌리째 캐버리고, 그 자리에 자목련 한 그루를 더 심었다. 오늘 경수와 나의 문제도 바로, 그것 때문일까?

   경수가 저지른 그 의문의 실책 때문에 지금이라도 내가 감독님에게 포수를 바꾸어 달라고 요청한다면, 당장 들어줄 것이다. 아니, 엄지를 곧추세우며 환영할 것이다. 내 친구 경수가 주전 포수가 되는 것을, 우리 감독님은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 우리 팀에는 4명의 포수가 있다. 그중 내 친구 경수는, 포수들 중에서 성적이 좋은 편이 아니다. ‘도루 저지율’, ‘타율’, ‘수비 능력’ 등에서 3위에 불과하다. 특히 타율은 ‘1할 7푼 8리’로 꼴찌다. 사실상, 선발 라인업(line-up)에도 들기 어려운 포수이다. 하지만 나는 내 파트너 포수로 친구인 경수를 다시 지명하여 감독님께 청했고, 감독님이 제1 에이스가 된 내 청을 들어준 결과로 경수는 다시 나의 ‘파트너-포수’, 배터리(battery)가 될 수 있었던 것.

   우리 팀을 응원하는 팬들을 위해서, 우리 아버지의 자존심을 위해서, 이 게임에선 승리해야 한다.

   ‘내 유골은 반드시 금강에 뿌려 주거라. 그리고 우리 집안사람들이 머슴살이를 하며 당했던 그 멸시와 그 수모는, 결코 잊지···.’

   특히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의 유언을 받드는 의미에서는, 기필코 승리하고 싶다. 순간순간의 분위기에 민감한 포지션이 바로 투수다. 그 때문에 투수에게 포수는 너무도 중요하다. 포수의 실수 하나가 잘 던지던 투수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 팀의 투수 중에서 제1 에이스다.

   ‘감독님, 포수 좀 바꿔 주세요.’

   가슴속에서 샛노란 생각이 다시 돋고, 우리 팀 포수를 노려보는 순간 내 왼쪽 어깻죽지가 가렵기 시작한다.

   내 왼쪽 어깻죽지에는 문신(文身) 하나가 새겨져 있다. 하트(♡) 모양 속에 금강을 새겨 넣은 것이다.

   경수의 오른쪽 어깻죽지에도 나와 똑같은 ‘錦江’이란 문신이 새겨져 있다. 공주고 야구부 시절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하던 날, 경수와 내가 우승을 자축하는 의미로 영원히 변치 말자는 우정의 맹세로 새긴 것이었다. 나는 역동적인 다이아몬드(◈) 모양의 그림 안에 금강을 새겨 넣자고 제안했지만, 경수는 하트(♡) 모양 속에 공주고를 새겨 넣자고 주장했다.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심한 말다툼을 했었다. 경수 앞에만 서면 항상 작아지던 나. 그런데 그날만큼은 아니었다. 야구의 명문 ‘公州高’에 동의하면서도 왠지 내 마음은 ‘錦江’ 쪽에 자꾸 기우는 것이었다. 결론은, 예상외로 내가 이겼다. 내가 경수를 이겨 본 것은 그때가 난생처음 같았다. 내가 이기게 된 그 이유도 특별했다. 경수네 부모님도 내 의견이 더 좋다고 흔쾌히 동의해 주셨던 것이다. 아니, 경수네 할아버지마저도!

   그 문신을 오른손으로 어루만지자 내 가슴속에서는 가늘디가는 통증 하나가 또다시 피어오르고 있다. 이어, 내 가슴속에서는 금강이 흐르기 시작하고···. 그 강에 바람이 불고, 은빛 물결이 높아지고 있다.


B


   ‘1스트라이크, 0볼’ 상태에서 투수 동우에게 제2구로는 높은 직구를 요구한다. 내가 직구를 요구하면 친구인 투수는 내 의견에 반대하기 위해 일부러 낮은 변화구를 던질 확률이 높다는 판단이다. 요즘 친구 동우와 나 사이의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 변화구를 일부러 빠뜨리고 싶은 맘이 순간적으로 발동했기 때문···?!?

   헛스윙으로 팔목을 다친 ④번 타자가 주심에게 다시 타임을 요청한다. 아직도 팔목의 부상이 회복되지 않은 것 같다. 상대 팀의 코칭스텝들이 뛰어나오고 있다. 경기가 또다시 잠시 중단될 것 같다.

   조금 전 제1구에서 내가 동우에게 보낸 사인도, 사실은 거짓이었다. 엄지를 치켜세워 감독의 사인이라고 표시한 것도, 감독의 의사가 아닌 내 단독의 사인이었던 것. 왠지 동우와 매 순간 엇나가고 싶어진다. 사실, 나도 괴롭다. 친구이며 같은 팀의 동료인 동우와 싸우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 둘의 문제는, 이미 두 집안의 문제로 광범위하게 번져 있다. 특히 우리 할아버지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아뿔싸~,···. 코로나-19 사태가 세상을 바꾼다더니, 인류 역사의 전환점이라더니? 상전과 ‘머슴’의 위치가 이렇게도 쉽게 바뀔 수도 있는 것이구나. 갑과 을의 위치가 이리도 쉽고 빠르게, 바뀔 수도 있는 것이구나.”

   코로나-19 사태가 전국적으로 확산이 되고 내가 주전 포수에서 밀려난 후 동우가 우리 팀의 에이스가 되던 날, 우리 할아버지의 탄식이었단다. 그날 할아버지는, 금강을 바라보며 홀로 자작을 하면서 아무도 몰래 눈물까지 흘리셨단다. 우리 아버지는 그 장면을 감나무 뒤에 숨어서 지켜보아야만 했었다는 것. 오늘 오전, 생신을 맞은 할아버지께 축하 전화를 드렸지만, 할아버지께서는 천식을 앓듯 기침만 해대셨다.

   갑자기 야구장 상공에 작은 드론 한 대가 나타나 야구장 상공을 맴돌고 있다. 경기가 좀 더 지연될 것 같다. 그 드론을 바라보며 양 팀의 관중들이 서로를 향하여 야유를 보내고 있다. 서로 상대 팀에서 띄운 것이라고 주장을 하며, 서로 삿대질까지 하며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우리 편의 관중 한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까지 흔들며, 소리친다.

   “상대 팀이, 우리 투수의 사인을 훔치려고 일부러 띄운 것이다.”

   그러자 또 상대 팀의 관중석에서 한 사람이 소리친다.

   “너희 팀이 우리 감독님의 사인을, 훔치려는 것이야.”

   누가 띄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양쪽 팀의 관중들이 주장하는 것은 근거가 없고 단지 감정싸움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드론이 어느새 야구장 밖으로 날아가고, 다시 경기가 속행된다. 친구, 투수를 쏘아본다. 나와 눈을 맞추던 동우가 내 눈을 피하려고 돌아서고 있다. 천천히 2루를 견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나와 눈을 맞추기가 부담스러운 것이다. 주심이 투수에게 눈빛으로 경고를 보내고 있다. 시간 좀 끌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주자가 있는 상태에서는, 견제구를 던지는 것은 투수의 고유 권한이다.

   다시 채동우가 나를 바라보며 사인을 요구하고 있다. 나는 변화구를 요구한다. 변화구 중에서도 횡(橫)이 아닌 종(縱)으로 떨어지는 구질을 요구한다.

   ‘이 배은망덕한 놈아, 내 앞에서 고개를 숙여라.’

   그런 의미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구질을 요구했다. 하지만 친구 동우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내가 요구하는 구질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가 요구하는 공의 구질이 맘에 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할아버지의 주장을 옹호하는 내가 자기 맘에 들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시즌을, 내가 주전으로 뛰지 못한 것은 바로, 동우의 요청이었을 수도? 아마 틀림없을 거야!?’

   또다시 가슴이 뛰고, 검붉은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간다. 헛기침을 한 다음, 도리질로 그 생각을 지우고 나자 이번에는 눈앞에 강변의 추억 하나가 떠오른다.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금강의 강변 마을에 살았던 동우와 나 사이에는 강에 대한 추억이 많다. 그중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추억 하나가 있다. 유난히 무덥던 날, 동우와 나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금강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흐르는 강물 위로 하얀 물체가 둥둥 떠내려오고 있었다. 뽀얀 호기심에 그것을 잡으려고 손을 뻗다가 미끄러져, 나는 그만 강물 속에 빠지고 말았다. 예상외로 그 강물 속은 깊었다. 게다가 세찬 소나기가 막 지나간 뒤라 물살도 거셌다. 당황하여 물을 몽땅 먹은 나는 허우적거리며 떠내려갔다.

   “아~아, 경수야~. 어~어···, 경수야~···.”

   여러 명의 친구가 발만 동동 구르며 내 이름을 불러댔다. 하지만 소리만 칠 뿐, 그 누구도 나를 구하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있었다.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약 50미터쯤 떠내려갔을 때, 비로소 동우가 강으로 뛰어들었다. 신발만 벗고, 옷은 벗을 시간도 없이. 물을 너무 많이 먹어 혼비백산이 된 나는 동우의 목을 잡고 늘어졌다. 그 결과 동우와 나는 흙탕물을 벌꺽벌꺽 마시며, 허우적거리며 함께 떠내려갔다. 하늘이 도왔을까. 약 50미터를 더 떠내려갔을 때 동우가 강변 쪽에서부터 흘러내린 검은 밧줄을 왼손으로 붙잡았다. 평소 강변에서 풀을 뜯는 염소와 소를 말뚝에 매 두는 용도로 쓰는 두꺼운 고무줄이었다. 그것을 동우가 잡아당기자 우리 둘의 몸이 동시에 강의 가장자리 쪽으로 끌려갔다. 그 결과 우리는 한 모래톱에 다리가 닿아, 겨우 멈출 수가 있었다. 둘 다 죽을 고비를 넘겼다. 배가 불룩하도록 물을 먹은 동우와 나. 우리는 죽도록 토하고 나서 모래밭에 벌렁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실컷 웃었다. 우리의 웃음소리가 금강에 메아리쳤었다.

   지금 심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말 그대로 애증이 교차하고 있다. 동우와 동우네 집안사람들의 배신에 대한 반감과 그 옛날 동우가 내 목숨을 살려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 내 가슴속에서 밀물과 썰물처럼 수시로 교차되고 있는 것.

   ④번 타자가 손목에 하얀 붕대를 감고 다시 타석에 들어선다. 가슴속 파고가 더 높아지는 순간, 동우가 이번에는 내가 요구한 대로 변화구를 던지겠다는 사인을 보내온다. 투수, 동우 놈의 마음을 종잡을 수가 없다. 동우가 변화구를 던졌다. 타자가 방망이를 크게 휘두르고, 또 헛스윙을 한다. 땅에 떨어져 한 번 튀긴 공이 내 가슴 중앙을 때리자 통증이 일어난다. 145그램밖에 되지 않는 야구공에 맞았는데, 145킬로그램의 쇳덩이에 맞은 것처럼 가슴이 아프다. 가슴 보호대를 차고 있기에, 사실 위험하지는 않다. 하지만 내 가슴속의 통증이 온몸으로 퍼진다. 공에 맞아 일어난 검푸른 통증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돋아난 자줏빛 통증처럼 느껴진다. 순간 뜨겁게 달구어진 내 가슴속에서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 같은, 적심(赤心)이 터진다.

   ‘동우야, 미안하다. 너희 집안을 머슴 집안이라고 표했었던 것. 너를 머슴 집안의 손자라고 표현했었던 것. 그것만큼은 정말, 아무 조건 없이 사과하고 싶다. 금강의 이름으로, 맹세한다. 금강의 권위로.’

   순간 가슴의 자줏빛 통증이 시나브로 잦아들고 있다. 하지만 나는 심한 통증이 계속 느껴지는 것처럼 일부러 복부 쪽을 움켜쥐며 땅바닥에 엎드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좀 더 번다.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주심이 잠시 경기를 중단시키고, 내 등을 오른손으로 두드려 주고 있다.


A


   내가 던진 변화구에 가슴을 얻어맞은 포수가 땅바닥에 엎드려 있다. 가슴 보호대를 차고 있지만 통증이 클 것이다. 경수가 얼굴을 들어 나를 바라본다. 지켜보던 내 눈빛과 경수의 눈빛이 허공에서 맞부딪친다. 그곳에서 불꽃 하나가 튀어 오른다. 순간 내 가슴속 왼쪽 갈비뼈 밑에서도 통증이 일어, 가슴속을 가로지르고 있다.

   문득 중학교 시절의 결코 잊을 수 없는, 한순간이 또 눈앞에 떠오른다. 경수가 나에게 야구 글러브를 사 주고 나는 감격하여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던, 목련꽃 향기가 흩날리던 바로, 그 봄날의 한 장면.

   “야, 채동우. 그까짓 것 가지고, 계집애들처럼 그렇게 계속 울 거야?”

   경수는 폭소를 터뜨리며 내 엉덩이를 툭 치더니, 하얀 목련꽃 한 송이를 따서 그것으로 내 눈물을 장난스럽게 닦아 주었던 것.

   그날의 장면이 또 눈앞에 아른거리고, 나를 쏘아보는 경수의 눈빛이 새삼 부담스럽다. 나는 경수의 강렬한 그 눈빛을 피하기 위하여, 1루( 주자를 견제하는 시늉을 하며 몸을 돌린다. 순간 머릿속이 빙 도는 것 같은 느낌에 두 발이 꼬이며, 몸이 휘청한다. 공을 1루수에게 제대로 던지지도 못하고, 넘어지고 만다. 주심이 앞으로 튀어나와 검지로 나를 가리키며 외친다.

   “투수 보크(balk).”

   순간 등에서 땀이 솟는다. 등에 있는 땀구멍들이 일제히 열린 느낌이다. ‘보크(balk)’란 주자가 루 상에 있을 때, 투수가 규정에 어긋난 투구 동작을 했다는 의미이다. 투수가 반칙 행위를 했다는 것. 그 벌칙으로, 각 주자들에게 1루씩의 진루를 허용하는 규칙이다. 이 보크는 내가 자초한 것이지만, 왠지 포수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싶어진다. 아, 이 오락가락하는 내 마음···. 이 순간만은 내 자신이 참 밉다. 상대 팀에게 1점을 헌납했다. 결국 일 대 일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나의 선발 투수 승리 요건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나의 금쪽같은 1승이 갑자기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 것. 이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약 삼천만 원쯤 될 것 같다.

   이제 무사에, 주자는 2루와 3루 상태인지라, 스퀴즈 플레이(squeeze-play)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스퀴즈 플레이란, 3루 주자를 불러들이기 위해 타자가 희생 번트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1 대 2’로 역전이 되고 마는 것. 나는 패전 투수가 될 위기. 말 그대로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했다.

   드디어 우리 감독님이 주심에게 타임을 요청하며 뛰어서 나오신다. 투수 코치를 내보내지 않고 직접 나온다는 것은, 이 상황을 승패를 가를 수 있는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먼저 포수에게 가서 포수의 의견을 물을 것이다. 투수의 컨디션은 포수가 제일 잘 아는 것이다. 투수가 던지는 볼을 직접 받아 내는 포수는, 투수가 던진 공을 포구(捕球)하는 그 순간의 감각만으로도 투수의 컨디션을 간파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감독님은 포수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곧바로 내게로 걸어오신다. 뒤를 따라오려는 포수에게 오히려 따라오지 말라고 손짓을 한다. 투수인 나와 단둘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뜻이다. 나도 감독님에게 할 말을 미리 준비하고 싶은데 머릿속이 하얗다.

   “야, 채동우. 오늘따라 왜 그렇게 흔들리고 있냐? 에이스답지 못하게.”

   “···.”

   “야, 동우야. 너 혹시 포수 때문에 그러냐?”

   “아···, 그건 아닙니다.”

   “야, 동우야. 네가 원한다면 곧바로 포수 교체해 줄게.”

   “감독님, 그, 그건, 아닙니다.”

   “동우야,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여기서 더 흔들리면 투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포수를 바꿀 것이다. 너의 친구인 포수를 교체해 버릴 것이다.”

   “감독님, 포수 교체의 문제는, 저에게 맡겨 주시지요?”

   순간 주심이, 우리 감독님에게 그만 들어가 달라고 요청한다. 경기가 너무 지연되고 있다는 뜻이다. 감독님이 돌아서려다가 한마디를 보태신다.

   “채동우, 너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다. 그리고 동우야. 우정이 밥 먹여 주는 것, 결코 아니다?!”

   감독님이 나를 위해 한 조언이 오히려 내 가슴을 아프게 찌르고, 가슴 두근거림이 더 거세지고 있다.

   잠시, 1루 쪽 관중석에서 나를 지켜보시는 우리 아버지에게 눈을 돌린다.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내 입에서 하소연 같은 혼잣말이 터져 나와버린다.

   “아~, 아버지. 대한민국의 진보와 보수의 화합은, 결코 불가능한 것인가요? 자목련만을 고집하지 말고, 우리 집터에도 경수네 집안이 사랑한다는 백목련을 심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우리 집터와 천수답 세 마지기 중에서 어느 하나는 경수네 할아버지께 양보하면, 아니 되겠습니까? 경수네 할아버지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야구선수가 될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안이 추구하는 진보의 미학은 무엇인가요?”

   패전 투수가 될 위기에 빠진 나를 지켜보시는 우리 아버지는, 어느새 고개를 숙인 채 장고 중이시다.

   야구공을 움켜쥐고 있는 내 손바닥에선 땀이 솟는다. 그 땀을, 두 손으로 야구공을 어루만지며 야구공에 닦아 본다. 내 땀을 머금은 야구공이 갑자기 묵직해진 느낌이다. 145그램의 야구공이 145킬로그램으로 느껴진다. 내 몸무게보다도 더 무겁게 느껴지는 야구공. 나의 팬인 그 50대 여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백팔(108) 개의 땀(실밥)으로 이루어진 야구공에서 백팔번뇌가 연상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야구공의 미학이란다. 내가 손에 움켜쥐고 있는 야구공에서, 아니 친구 경수와의 문제에서, 나는 지금 백팔번뇌를 앓고 있는 셈이다.

   야구공을 세게 움켜쥔 내 손에 다시 땀이 흥건해진다. 내 가슴속에서는 회오리바람 하나가 일어난다. 그 회오리바람이 가슴속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니며 가슴속에 쌓여 있는 분홍빛 추억과 검푸른 응어리들, 하얀 백팔번뇌를 쓸어 모아 하나의 바람기둥에 싣고 휘돌아 가고 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등에선 땀이 흐른다. 그 회오리바람에, 백팔번뇌가 어느새 그리움으로 변하고 있다. 그 회오리바람이 결국 내 목구멍을 통해 솟구친다. 친구 경수를 바라보면서 나는 뜨거워진 마음을 던진다. 내 마음을, 금강의 맑은 물로 한 번 씻은 다음,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노래에 함초롬히 담아서 독백으로 던진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경수야. 걱정, 하지 마라. 포수를 바꾸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감독님이 포수 교체를 또다시 제안해도 나는 단호하게 반대할 것이다. 지금 내 가슴속에는, 강 하나가 시(詩)처럼 흐르고 있다. 어린 시절 너와 내가 알몸으로 물장구치며 놀던, 그 금강···. 그 누구도, 이 강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신 우리들의 가슴속에 흐르는, 그 강의 폭은, 항상 18.44미터로 유지하자. ‘투수와 포수의 거리는 18.44미터로 한다’라는 야구의 규정처럼, 우리 사이도 18.44미터로 유지하자. 너무 멀어지면 ‘친구’가 깨지고, 너무 가까우면 서로 상처를 준단다. 50대의 아줌마 야구팬이 선물로 준 『야구의 미학(美學)』이라는 산문집 속에 나오는 문구인데, 그 18.44미터가 바로, 그리움의 거리란다. 그리움의 거리. 그 산문집에는 이런 문장도 있었다. ‘나무들은 그리움의 간격으로 서 있다’. 그 문구처럼 너희 집안과 우리 집안도 백목련과 자목련처럼, 그 그리움의 간격을 유지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경수야 친구야, 강변 살자.

   친구야 경수야, ‘금강’에 살자.


B


   친구가, 아니 투수가 공을 던지지 못하고 자꾸 머뭇거린다. 투수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투수의 인터벌(interval)이 길어지자 주심이 또 투수에게 눈총을 쏘아댄다. 시간 좀 끌지 말고 빨리 던지라고, 경고를 하는 것이다. 투수가 주심에게 잘못 보이면 무조건 불리하다. 투수가 던진 볼의 판정은 주심의 고유 권한이다. 스트라이크를 볼로 판정해도, 결코 항의를 할 수가 없다. 야구의 규정이기 때문이다. 그 주심의 경고를, 친구가 받은 것이 아니고 마치 내가 받은 것처럼 내 속이 불편하다.

   주심의 경고에 투수가 나와 제대로 사인도 교환하지 못한 채 공을 던져버렸다. ④번 타자가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 공이 파울볼이 되어 우리 팀 벤치 쪽으로 날아갔다. 감독님이 그 볼을 피하느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쏘아보신다. 지금, 감독님은 눈빛으로 내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지금 우리 팀이 맞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 내 책임이라는 것 같다. 아니, 내가 고의적으로 만든 상황이라는 뉘앙스도 내포하고 있는 것. 억울하지만 변명할 방법이 없다. 이미 상황은 끝났고, 결과만 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가 문제다. 이 경기를 잡지 못하면 포수인 나에게도 치명적인 결과가 닥쳐올 것이다. 올 시즌에도, 주전 포수에서 다시 밀려나서 후보 선수로 떨어져버릴 수도 있는 것. 그렇게 되면 내년도 내 연봉은 인상은커녕 삭감될 것이다. 이 경기가, 내 야구 인생에서 중대한 갈림길이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밀려들고 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벌려는 듯, 투수 동우가 다시 2루에 형식적인 견제구를 던진다. 그 틈을 이용하여 나는 중앙 지정석에서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 우리 아버지 쪽으로 눈을 돌려 본다. 아버지는 나보다 더 고민이 많은 모양이다. 마치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듯하다. 내 가슴에서 한숨이 저절로 터진다.

   “아버지, 우리 보수가 진정으로 지키고자 하는 가치는, 대체 무엇입니까?”

   혼잣말로 터뜨린 내 말을 옆에 서 있는 주심이 엿들어버렸다. 주심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미소를 짓는다. 이번에는 내 생각을 질문으로 던진다.

   ‘아~ 아버지, 동우네 집안과 화해하고 살 수 없을까요. 백목련만을 고집하지 말고, 우리 집터에도 자목련을 심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되고 있는 토지 중에서 금강변에 위치한 동우네 집터만큼은 동우네 아버지 명의로, 등기이전해 주면 아니 되겠습니까?’

   관중석의 아버지는 아직도 손으로 턱을 받친 채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주심이 홈 플레이트(home-plate)에 쌓인 흙과 먼지를 정리하고 다시 플레이를 선언한다. 이제 무사에, 주자는 2루와 3루 상태다. 한 점도 주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 같다. 현재 타석에 있는 ④번 타자의 처리 방법을 고민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먼저, 고의(故意) 사구(四球)로 강타자를 1루로 내보내버리고, ⑤번 타자와 승부를 걸자. 투수에게 고의 사구의 사인을 보내자 투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럼 ④번 타자의 장단점을 생각해 본다. 홈런을 잘 치는 타자이지만 삼진도 자주 당하는 타자이다. 투수에게 싱커(sinker)를 요구한다. 타자 앞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변화구. 하지만 채동우는 또 고개를 가로젓는다. 실투(失投)가 되어 장타(長打)를 맞을 가능성을 염려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가 필요할 것 같다. 투수에게 슬라이더를 던지라고 사인을 보내자 투수는 이번에도 고개를 가로젓는다. 결국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상황에선 감독님이 지시를 내려 주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무런 사인이 없다. 투수 코치도 사인을 내고 있지 않다. 답답한 마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심에게 타임을 요청한다. 주심이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주심도 이 상황이 엄중한 상황이라는 것만은,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포수 마스크를 벗어 손에 들고, 친구가 서 있는 투수 -마운드 쪽으로 걸어간다.

   친구 동우와 마주 서자 등에서도 식은땀이 흐르고 있다. 눈을 맞추기가 부담스러워 잠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데 친구 동우가 내 어깻죽지에 새겨진 문신, ‘錦江’을 움켜쥐며 한마디 던지려다가 뚝 멈춘다. 그 입술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이어 눈을 돌리더니 하늘을 올려다본다. 순간 오히려, 내 가슴속에서 뜨거운 한마디가 솟구쳐 올라 금세, 터져 버린다.

   “동우야, 갑자기 추억 하나가 생각나는구나. 초등학교 시절의 소낙비 내리던 날. 금강에서의 그 추억. 물에 빠진 나를 구해 주기 위해 강물로 뛰어들던 너의 그 얼굴 모습···! 자목련 꽃처럼 붉던 너의 그 얼굴이 눈앞에 생생하구나. 그건 그렇고 감독님에게 요청해라, 포수 좀 바꿔 달라고. 우리 팀과 너의 승리를 위해 내가 양보하겠다. 대신 한 가지만 부탁하자. 너와 나의 어깻죽지에 새겨진 그 금강만큼은 결코, 지우지 말자. 영원히···.”

   순간 동우의 눈에서 눈물이 핑 돈다. 그 눈물을 감추려는 듯, 동우가 재빨리 뒤로 돌아선다. 나는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노래를 읊조린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친구야 동우야, ‘금강’에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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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 이혜오 휴대폰 알람은 새벽마다 나를 밀쳤다. 나는 미지근해진 자리끼처럼 엎질러졌다. 바닥에 쏟아진 나를 겨우겨우 주워 모아 연습실로 출근해서 스트레칭을 하면, 그제야 팔다리가 달린 사람의 몸을 감각할 수 있었다. 확실히, 그 시절의 나는 이미 엎질러진 나를 어떻게든 수습하는 기분으로 살았던 것 같다. * 댄스 학원에 다닌 것은 열네 살 때부터였다. 길거리 캐스팅이 될 만큼 뛰어나게 예쁘지 않은 나 같은 애들은 대개 그때부터, 혹은 그전부터 학원을 다니며 오디션을 준비했다. 대형 기획사의 공채 오디션에서는 번번이 떨어졌고, 열여섯, 중3 때 중소형 기획사 하나에서 내 영상을 보고 대면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제안을 했다. 엄마와 함께 서울에 가서 대면 오디션을 봤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가득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당시 사옥이 위치해 있던 청담동은 내가 살던 동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보였다. 동네 전체가 백화점 같았다고 할까. 깨끗하고, 반들거리고, 비싼 것들과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가득한. 그 세계의 일부가 된 것이, 나는 기뻤다. 그다음부터는 새벽에 일어나 아침 연습을 하고, 학교에 갔다가 하교 후에는 연습실에 가서 레슨을 받고, 레슨이 끝나면 밤까지 연습을 하다가 숙소에 가서 잠을 청하고 다시 학교에 가는 패턴의 반복이었다. 연습생 숙소에는 나처럼 지방에서 올라온 연습생들이 때에 따라 열 명에서 열네 명까지 모여 살았다. 어깨선을 넘는 긴 머리를 한 여자애 열네 명이 한 공간에 모여 살면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진다. 끝없이 쌓이는 머리카락을 줍고, 줍고, 또 줍다 보면 문득 인간의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계속 자란다는 사실이 지긋지긋해지곤 했다. 그곳에선 언제나, 모든 자원이, 부족했다. 동진에서 부모님과 살 때는 부족할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해 보지 못한 것들까지. 화장실과 콘센트의 개수나 냉장고와 옷장과 침대의 넓이, 그리고 프라이버시 같은 것들. 내가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이불 속밖에 없었다. 나는 좁다란 이층 침대에서 늘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어폰을 꽂은 채 잠들었다. 그 어둡고 텁텁한 공간만을 편안하다고 느꼈다. 나는 천천히, 깨끗하고, 반들거리고, 비싼 것들과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가득한 세계에는 내 자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 갔다. 회사가 작아서인지 제대로 된 트레이닝 시스템이랄 게 없어서, 데뷔 조가 아닌 연습생들은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했다. 어린애들이 우르르 들어왔다가 또 우르르 나갔다. 들짐승처럼 방치된 우리는 서로를 경계하고 미워했다가 또 끌어안았다가 하며 그 시간을 견뎠다. 물론 견디지 못하는 애들이 더 많았다. 고참들은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을 텃세로 풀었고, 신입들은 눈치만 보다가 나가떨어졌다. 매일 갈등이 있었고 매일 누군가 울었다. 누가 언제 집으로 돌아가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기란 어렵다는 것. 그 정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남을 미워하지 않고 버티기는 힘들다는 것.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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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15
물을 잡으면

물을 잡으면 호인 티브이 화면 가득 연한 푸른색의 거인이 누워 있다. 거인의 배가 천천히 오르내리며 숨을 쉬는 동안 배꼽에서 꿈틀꿈틀 연두색 싹이 올라온다. 카메라가 뒤로 빠지듯 시야가 확 멀어지며 줄기가 솟구쳐 오른 끝에 등불처럼 맑고 밝은 꽃봉오리가 피어나고, 봉오리가 활짝 연꽃으로 벌어지자 그 안에서 한 남자가 나타난다. 화면이 빙글 돌며 보여 주는 남자는 사방마다 하나씩 네 개의 얼굴을 가졌다. 남자가 눈을 뜨자 주변의 어둠이, 캄캄한 태초의 우주가, 섬세하게 일렁이며 여명이 밝아 온다. -멋있다. 저거 뭐니? 말을 걸 기회를 노리던 입에서 나도 모르게 탄성이 튀어나온다. -멋지구리하면, 게임 광고일 걸요? 한솔이는 티브이 쪽을 보지도 않고 중얼댄다. 그래도 그 정도면 근래 보기 드물게 긴 대답이다. 나는 용기를 얻어 질문을 계속해 본다. -게임? 무슨 게임인지 아니? 한솔이는 티브이를 흘끔 보더니 곧 다시 고개를 숙인다. 대답은 짧고 무성의해진다. -인도 신화예요. 지난해 동남아 여행에서 본 기억이 난다. 저 거인들은 비슈누나 브라마 같은 힌두교의 신들이겠구나. 티브이 화면이 휙휙 바뀌더니 중세 유럽풍 갑옷을 입은 힌두 신들의 영상이 번쩍거리면서 브라흐마가 눈을 뜨면 새로운 칼파가 시작된다아, 낮고 웅장한 소리가 울린다. 나를 사로잡은 건 멋지구리한 신들의 모습보다는 칼파라는 단어다. 칼파, 겁파, 겁(劫). 내가 아는 하나의 겁은, 세상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하나의 주기, 천지가 한 번 개벽한 뒤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의 시간이다. 그 무한한 시간이 게임이 서툰 아이에게는 한순간에 끝나겠구나. 그리고 곧이어 하나의 겁이 새로 시작해서 금방 끝나고, 또다시 새로운 겁이 시작하겠지. -저거, 네가 하는 게임이니? 내 질문은 어딘가 건성이 되어 버린다. -아니요. -요즘 컴퓨터 게임은 여럿이 함께 한다며? 너도 그러니? 한솔이는 수저를 탁 내려놓고 자기 방으로 가 버린다. 티브이에서는 신들과 악마들이 단 몇 초 화려한 전쟁을 벌이다 엄청난 폭발을 일으킨다. 하나의 칼파가 끝나 세상이 캄캄해지고 티브이 화면 가득 게임의 이름이 반짝거린다. 광고가 끝나고 드라마가 시작하지만, 텅 빈 거실에서 티브이나 보고 있을 생각은 없다. 남편은 집을 나간 후 생활비를 보내지 않고, 나는 돈을 벌어야 한다. 비즈 팔찌를 만들려고 작업실로 가는데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든다. 무의식적인 곁눈질이 무언가 이상한 걸 감지한다. 고개를 돌리자 어항이 보이고, 역시나, 금붕어 한 마리가 불길한 수류를 따라 떠돌고 있다. 지난 보름 사이 네 번째. 금붕어가 죽었다. 이 년 전, 남편이 한솔이를 위해 사 왔던 금붕어가. 이 년 전 지나가 버린 그 시절 책임감 있던 가장이 착했던 아들을 위해 사 왔던 그 금붕어가. -*- 시조카 아이가 우리 집에 온 건 이 년 전, 그러니까 재작년 가을이었다. 툭하면 사람을 패고 다니는 시동생이 또 사고를 치고, 동서가 죽는다고 소동을 벌인 때문이었다. 부부가

  • 관리자
  • 202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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