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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이야기꾼

  • 작성일 2023-11-08
  • 조회수 882

전설의 이야기꾼

김두경


   1) 까만 머리빗


   장터 씨름판에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다. 몽돌이는 사람들 무리에서 한 걸음 떨어져 멀뚱히 서 있었다. 어깨에 메고 있는 엿판이 갈수록 무겁게 느껴졌다.

   “엿이요, 엿! 달달한 엿 사시오······.”

   힘껏 소리를 질러도 모자랄 판에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갔다. 

   “쯧쯧, 목청이 저게 뭐여? 병아리 새끼만도 못하구먼. 아, 그래 가지고 어디 엿 한 가락이나 제대로 팔겠누? 해가 두 번이나 바뀌었으면 얼굴에 철갑을 두르고도 남아야지. 저렇게 숫기가 없어서야, 원.”

   옆집 고산댁 할머니가 몽돌이를 보고 혀를 끌끌 차며 지나갔다. 때마침 떠들썩한 함성이 들렸다. 한 사람은 모래판에 엎어졌고 또 한 사람은 두 팔을 번쩍 치켜들고 있었다. 몽돌이가 고시랑거리는 소리는 함성에 묻혀버렸다.

   “병아리 새끼가 어딨다고? 병아리가 새낀데. 할머니는 나보고 맨날 숫기 없대.” 

   몽돌이는 쑥 들어간 배를 꾹 눌렀다. 아침을 병아리 모이만큼 먹고 나서 여태 아무것도 못 먹었다. 빈속으로 일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오늘은 유난히 배가 고팠다. 그때 누가 몽돌이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동네 꼬마들이 배시시 웃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깍지 낀 손을 턱밑에 받치고서 애원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형, 또 이야기해 줘.”

   “도깨비 이야기! 응?”

   남의 속도 모르고 떼쓰는 꼬마들이 야속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이야기를 떠올리는 순간만큼은 배고픔도, 걱정도 날아가기 때문이다. 

   “좋아. 해 줄게.”

   “와! 신난다!”

   “음, 오늘은 어떤 이야기가 좋을까나.”

   몽돌이는 입술을 감쳐물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머릿속에 그림이 화라락 펼쳐졌다. 눈동자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딱 맞는 이야기를 찾아냈다. 꼬마들의 눈이 반짝반짝했다.

   “옛날 옛적 호랑이 줄무늬도 없던 시절에, 한 도깨비가 살았지. 자고로 도깨비란 빨간 머리카락이 나는 법. 시뻘건 머리카락의 도깨비가······.”

   몽돌이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꼬마들은 단번에 도깨비 세상으로 빠져들었다. 근처에 있던 몇몇 어른들도 귀를 기울였다. 고산댁 할머니가 멀찍이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제 아비 닮아서 이야기는 곧잘 짓는구먼. 집 나갔던 숫기가 저럴 때만 돌아오니 참 희한하지. 에이구, 그럼 뭐하누? 사내 녀석이 힘아리 없이 입만 나불나불. 이야기는 지어서 어디다 써먹는다고. 돈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쯧쯧쯧.” 

   몽돌이의 이야기가 끝나자 아이들은 도깨비 세상에서 한바탕 놀고 온 것처럼 눈을 반들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씨름판을 둘러쌌던 사람들도 하나둘 흩어졌다. 노을빛 머금은 모래만 덩그러니 남았다. 몽돌이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야, 멋있다.”

   하늘은 엷은 주황빛으로 물들었고 해는 금빛 자국을 남기며 산등성이를 넘어가고 있었다. 몽돌이는 아름다운 하늘을 눈에 그득히 담았다. 눈 속의 노을은 어느새 그렁그렁한 눈물로 어른거렸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사람.

   “우와! 아버지, 저 하얀 들꽃 좀 봐요. 꼭 눈 쌓인 것 같아요!”

   “허허, 그리 보이는구나. 김이 솔솔 나는 하얀 쌀밥 같기도 하네.”

   “보송보송 목화솜 같기도 해요.”

   “몽실몽실 구름 같기도 하고.”

   “아, 또 뭐 할 거 없나?”

   “이번엔 내가 이겼지? 허허허.”

   아버지, 도대체 어디 계시는 거예요? 살아는 계시는 거죠? 그렇죠?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몽돌이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쳤다.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애꿎은 모래만 발로 툭툭 찼다. 신발 안에 모래가 들어와 까슬까슬했다. 

   툭.

   “어! 이게 뭐지?”

   발끝에 뭔가가 걸렸다. 모래를 헤집어 집어 들었다. 나비 문양이 그려진 까만 머리빗이었다.

   “누가 흘렸나 본데?”

   머리빗에는 머리카락이 몇 가닥 엉켜있었다. 

   “어? 잠깐만, 이거······.”

   머리카락을 쳐다보던 몽돌이가 흠칫 놀랐다. 눈을 잽싸게 비빈 다음 머리빗에 바짝 대고 들여다보았다.

   “빠, 빨간······ 머리카락?”

   몽돌이는 순간 더럭 겁이 나서 머리빗을 떨어뜨렸다. 붉은 노을이 비친 게 아니었다. 산수유 열매처럼 정말로 ‘빨간’ 머리카락이었다!

   “빨간 머리카락이 진짜 있다고? 그럼 그 주인도 진짜 있다는 말이야? 말도 안 돼!”

   몽돌이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노을빛을 받은 빨간 머리카락은 불타오르는 것처럼 새빨갰다. 팔다리에 소름이 쫙 돋았다. 몽돌이는 양손으로 팔을 문지르며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진짜 도깨비가 있다고?”

 


   2) 빨간 머리카락의 아이


   “어머니, 나 왔어요.”

   “우리 몽돌이 왔어? 내 새끼, 힘들었지? 어서 들어와 밥 먹어.”

   “또 밥 남긴 거예요? 난 밖에서 잘 먹는다니까. 어후, 아직도 배가 안 꺼지네.”

   어머니는 기침을 연달아 하고 나서야 겨우 대답했다.

   “괜한 소리 하지 말고 어서 먹어.”

   어머니는 언제나 밥을 남겼다. 몽돌이 먹을 밥이 없을까 봐 다 먹은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방에 누워서도 쌀독에 쌀이 얼마나 남았는지 훤히 알았다. 몽돌이가 쌀을 풀 때마다 쌀독 바닥에 드륵드륵 바가지 닿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몽돌이 어머니는 이 년째 앓아 누웠다. 아버지가 행방불명되고 나서부터였다. 좋다는 약도 써 봤지만 좀처럼 낫지 않았다. 그러니 엿장수 아버지를 대신해 몽돌이가 가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요즘 어찌나 쌀이 빨리 떨어지는지. 한창 클 나이에 우리 몽돌이 배불리 먹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말을 맺기도 전에 또 기침을 했다. 어머니의 기침 소리가 길어질 때면 몽돌이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어머니마저 곁에 없을 걸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했다. 

   몽돌이는 남은 밥을 먹은 뒤 마을 우물에 물을 길으러 갔다. 몽돌이네 집 뒤뜰에도 작은 우물이 있지만 바짝 마른 지 오래됐다. 우물 안으로 두레박을 던졌다. ‘풍덩’ 대신 ‘털커덩’ 소리가 났다. 가뭄은 끝날 기미가 안 보이고 이 우물물도 언제 마를지 몰랐다. 

   몽돌이는 마당 평상에 털썩 드러누웠다. 습관처럼 이야깃거리가 떠올랐지만 얼른 머리를 흔들었다. 이야기는 지어서 뭐 하겠다고. 난 왜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만 하는 걸까? 뭘 하고 살아야 배를 안 곯을지 그런 걸 고민해야 하는데. 그런데도 머릿속에서는 자꾸 상상의 세계가 만들어졌다. 이게 다 아버지 때문이야.

   아버지는 틈만 나면 이야기를 지어냈다.

   “바로 그때, 해치가 불을 뿜었어! 크악!”

   “뜨아악! 아우, 깜짝이야!” 

   “하이고, 우리 몽돌이 이렇게 겁이 많아서 어쩌냐?”

   “갑자기 소리치니까 그러죠. 그런데 아버지, 저번하고 이야기가 다른데요? 해치는 불을 막는다고 했잖아요.”

   “아, 그거야······ 흠흠, 그러니까. 불을 막는 해치가 불 뿜는 것쯤이야 뭐, 식은 죽 먹기지. 안 그러냐?”

   “에이! 그건 순 억지네요.”

   “억지라니? 상상의 세계는 무궁무진한 거야. 머릿속에서는 불가능도 없고 한계도 없는 거라고.”

   아버지를 떠올리니 쓴웃음이 나왔다. 치! 불가능도 없고 한계도 없다면서? 매일매일 아버지가 돌아오는 상상을 하는데도 나타나지도 않으면서······. 내 상상이 진짜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몽돌이는 엿판 밑에 끼워둔 머리빗을 꺼냈다. 만지기 찜찜해서 손가락 두 개로 집어 들었다. 께름칙한 빨간 머리카락은 버리고 까만 머리빗만 챙겨온 것이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들은 ‘소원 들어주는 도깨비’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그저 재미있다고만 여긴다. 아무 생각 없이 웃어넘기기 좋은 심심풀이 정도랄까. 하지만 몽돌이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믿는다. 이야기 속의 사건이 꼭 벌어질 것 같고 이뤄질 것 같다. 아버지가 실종된 이후로는 더더욱 철석같이 믿고 싶어졌다. 아버지가 도깨비는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어.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야. 이 머리빗 주인을 찾아서 소원을 말해보는 거야!

   몽돌이는 콧숨을 거세게 내뿜으며 머리빗을 꽉 움켜잡았다. 되든 안 되든 한번 해보겠다고 결심했지만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건 숨길 수 없었다. 

   다음 날부터 바로 도깨비 찾기 작전에 돌입했다. 

   “머리빗은 씨름판에서 발견됐어. 분명 씨름 구경을 하던 누군가가 떨어뜨렸을 거고, 그 중에 도깨비가 있다는 거야.”

   몽돌이는 저잣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찬찬히 지켜보았다. ‘도깨비’라는 말을 입 밖에 내는 것만으로도 한겨울 냇가의 얼음을 만진 것처럼 찌릿했다. 씨름하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들을 종일 살폈다. 딱히 의심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던 중 한 아이에게 눈길이 갔다. 

   몽돌이 또래의 작은 아이가 씨름판 주위를 서성이는 게 보였다. 아이는 발끝으로 모래를 휘적이며 수시로 바닥을 살폈다. 뭔가를 찾는 게 틀림없었다. 몽돌이는 그 아이에게 눈을 꽂고 몰래 곁눈질로 감시했다. 서늘한 바람이 메마른 모래 가루와 함께 휙 불어왔을 때였다. 구경꾼들의 옷자락과 머리카락도 바람과 함께 날렸다. 

   그 순간, 몽돌이는 보았다. 아이의 검은 머리카락 밑에 흩날리는 빨간 머리카락을! 

   캬옹!

   날카로운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리니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다. 온몸이 숯처럼 새카만 고양이는 사람들 다리 사이를 물 흐르듯 지나갔다. 뺏긴 시선을 다시 돌렸을 때 아이는 그 자리에 없었다.

   “어! 어디 갔지?” 

   몽돌이는 아이가 있던 모래판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눈을 부릅뜨고 살폈지만 아이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떻게 된 거야? 분명 빨간 머리카락이었어! 내가 똑똑히 봤다고!

   “어이, 여기 엿 하나 다오.”

   엿을 팔면서도 몽돌이는 온통 그 아이 생각뿐이었다. 그 애가 머리빗 주인일까? 그러면 걔가 도깨비란 말이야? 바람에 날리는 그 아이의 빨간 머리카락이 떠올랐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내일은 붙잡아 물고 늘어져서라도 꼭 묻고 말겠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딛는 걸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괜찮아. 조그만 아이인데 뭐. 난 겁 안나.”



   3) 도깨비에게 말 걸기


   다음 날, 몽돌이는 무거운 엿판을 벗어놓고 본격적으로 아이를 찾아 나섰다. 아침 일찍부터 씨름판이 잘 보이는 곳에서 왔다 갔다 하며 아이를 기다렸다. 아직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진짜 나타나면 어쩌지? 이러다 오늘 안 나타나는 거 아니야? 조바심이 났다가 안심도 되었다가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그렇게 한나절이 다 지났다.

   해질녘이 되자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떴다. 모두 떠난 씨름판에 언제 왔는지 그 아이가 앉아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식은땀도 삐질삐질 났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몽돌이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아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잔뜩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아이는 휙, 소리가 날 만큼 빠르게 돌아보았다. 느슨하게 묶은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며 옆으로 넘어갔다. 아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몽돌이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아이는 빤히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까이서 보니 남자 옷을 입은 여자아이였다. 몽돌이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태연한 척 말을 걸었다.

   “저······ 오늘 씨름 누가 이겼어?”

   아이는 몽돌이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입을 뗐다.

   “아까부터 봤으면 너도 알 거 아니야.”

   겨울바람이 할퀴듯 쌩한 기운이 지나갔다. 낭랑하고 또박또박한 목소리였다. 무슨 말을 할지 연습까지 했는데도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무 말이라도 지껄여야 했다. 

   “음, 난 열두 살이거든. 너, 너는 몇 살이야? 나랑 비슷해 보이는 거 같은데.”

   아이가 쌀쌀맞게 대꾸했다.

   “비슷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아이는 애매한 말을 남기고 홱 돌아섰다. 또 이대로 보내면 안 된다. 어떻게든 붙잡아야 한다. 몽돌이는 머리를 쥐어짜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랴! 이랴!

   갑자기 다급한 말발굽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어둑어둑한 장터에서 마차 한 대가 돌진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봤던 숯처럼 검은 고양이가 그 앞을 태연히 걷고 있는 게 아닌가. 이대로 있다가는 마차가 고양이를 덮칠 게 뻔했다. 

   몽돌이는 생각할 새도 없이 부리나케 달려가 고양이를 낚아챘다. 고양이를 품에 안고 몸을 틀자 마자 마차가 스치듯 지나갔다. 고양이는 놀라서 몸을 잔뜩 웅크렸다. 아이가 파래진 얼굴로 달려왔다. 고양이는 아이의 품으로 냉큼 뛰어 안겼다. 

   “몽아! 괜찮아?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아이는 고양이를 와락 끌어안고 연신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몽돌이를 쳐다보았다.

   “고마워. 네 덕분에 우리 몽이가 살았어.”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몽이? 고양이 이름이 몽이야?”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름은 몽돌이거든.”

   아이는 토끼 눈이 되었다.

   “뭐? 푸하하하. 이름이 우리 몽이랑 비슷하네?”

   “그러게.”

   몽돌이도 풉, 하고 웃었다.

   “정말 고마워, 몽돌아. 나는 요조라고 해.”

   요조는 도깨비 같지 않았다. 그냥 몽돌이 또래 아이 같았다. 막상 말을 터 보니 생각처럼 무섭지도 않았다. 몽돌이는 솔직하게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너 혹시 머리빗 잃어버렸니?” 

   요조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알아? 봤니?” 

   “내가 주웠어.” 

   “어디 있는데?” 

   “우리 집에. 한 가지만 대답하면 돌려줄게.”

   “뭔데?”

   요조의 눈이 살짝 커졌다. 몽돌이가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너······ 도, 도깨비니?”

   요조의 눈빛이 흔들렸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가 싶더니 깔깔거리며 웃었다.

   “도깨비? 참 귀여운 말이야. 뭐,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그게 무슨 뜻이야?”

   요조는 대뜸 딴소리를 했다.

   “너 이야기 잘 짓더라? 꼬마들한테 해 주는 이야기 나도 들었어.”

   “이야기?”

   몽돌이 눈이 소 눈만큼 커지는가 싶더니 금세 눈꺼풀이 스륵 처졌다.

   “잘 짓기는. 그런 거 잘해도 쓸데도 없는데 뭐.”

   “도깨비 이야기도 들었어. 그런데 그거 순 엉터리거든?”

   “뭐?”

   “도깨비가 무슨 뿔 달린 괴물에다 빨가벗고 돌아다닌다고? 거기다 머리는 덥수룩하고 눈도 하나밖에 없다고? 그거 죄다 엉터리라고!”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긴! 내가 바로······.”

   이야옹!

   고양이 몽이가 요조의 말을 잘랐다. 빨리 가자고 조르는 것 같았다. 

   “몽아, 잠깐만. 하던 말은 마저 끝내야지. 아무튼 난 사람들이 도깨비를 요상한 괴물 취급하는 거 정말 싫어. 하긴 아무리 설명해도 알 리가 없지. 직접 보면 모를까. 아, 이참에 직접 보면 되겠다. 한 번 가 보면 되지, 뭐.”

   “가다니, 어딜? 누가?”

   “우리 집에. 네가.”

   몽돌이는 다짜고짜 자기 집에 가자고 하는 요조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안이 벙벙했다. 

   “마침 해도 딱 넘어가네. 금방 갔다 오면 돼. 몽이를 살려준 보답이야.”

   “아니, 난 너희 집에 딱히 가고 싶은 생각이 없는······.”

   몽돌이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요조가 고양이를 불렀다.

   “몽아, 몽아, 털 하나 다오.”

   그러자 고양이가 꼬리를 높이 들어 올렸다. 요조는 고양이의 꼬리털 한 올을 쏙 뽑았다. 그런 다음 몽돌이의 손을 덥석 잡는 게 아닌가! 

   “헉!”

   여자아이의 손이라고는 난생 처음 잡아본 몽돌이가 화들짝 놀라 숨을 들이켰다. 요조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양이 털을 ‘후’하고 불었다. 그러자 모래판에 구멍이 난 듯 갑자기 몸이 밑으로 쑥 빠졌다.



   4) 망매계로 떨어지다


   “으아아아!”

   몽돌이는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질렀다. 아래에서부터 회오리바람이 일고 몸이 허공에 붕 뜨는가 싶더니 밑으로 확 떨어졌다. 짙은 안개 속을 지나듯 축축한 감촉이 온몸을 휘감았다. 추락하는 속도가 엄청났다.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파닥거리며 위로 솟구쳤고 끝이 없는 것처럼 땅속으로 빨려들었다. 

   꼭 감은 눈에서 눈물이 찔끔 배어 나올 즈음에 발이 ‘탁’ 땅에 닿았다. 희한하게도 떨어지는 속도가 저절로 줄어들면서 서 있는 채로 착지한 것이다. 몸이 약간 휘청할 뿐이었다. 

   몽돌이는 눈을 뜨기 전에 길게 숨을 내뱉었다. 엄청 겁이 나면서도 무진장 궁금했다. 완전히 새로운 딴 세상이 펼쳐져 있을 것만 같았다. 몽돌이가 살며시 눈을 떴다. 그런데 웬걸, 장터 모래판 위 그대로였다. 

   “뭐야? 그대로잖아.” 

   허탈했다. 그때 코에 볼에 뭔가 톡톡 떨어졌다. 

   “어! 비다! 비가 온다! 우와!”

   자그마치 이 년 동안 이어진 가뭄이었다. 몽돌이는 만세를 부르며 팔짝팔짝 뛰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거렸다. 요조도 몽돌이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아니, 왜······?”

   다들 발 벗고 뛰어다녀도 모자랄 판에 누구 하나 비 온다고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니. 왠지 이상했다. 분위기가 여간 어색한 게 아니었다. 몽돌이는 팔을 스르르 내렸다. 그제야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을 앞 당나무도, 집 생김새도, 장터도 비슷한 듯 보였지만 미묘하게 달랐다. 

   사람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다르다. 확실히 다르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자세히 보니 머리카락이 모두 빨간색이었다! 그곳은 몽돌이네 동네가 아니었다! 숨이 턱 막혔다. 가슴이 미친 듯이 벌떡거렸다.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면서 다리에 힘이 쭉 풀려버렸다.

   그때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하늘이 밝아지는 듯했다. 빗방울이 듣는 날씨지만 분명 동이 트고 있었다. 

   “어? 이상하다? 방금 해가 지고 있었는데, 어떻게 다시 해가 뜨지?”

   모든 게 다 이상했다. 요조가 입을 열었다. 

   “여기는 우리 망매들이 사는 ‘망매계’야. 인간들 말로 하면 도깨비 세상이지.”

   “헉!”

   몽돌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각오는 했지만 정말 도깨비라니! 얼떨결에 땅속으로 떨어진 게 이제야 제대로 실감이 났다. 이게 뭐야? 도깨비 세상에 데려오는 게 무슨 보답이야? 이제 나 어떡해!

   몽돌이는 속으로 벌벌 떨면서도 눈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도깨비들은 머리 색만 아니면 사람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전체가 빨간 머리도 있고 일부만 빨간 머리도 있었다. 요조처럼 겉으로는 전혀 티가 안 나는 도깨비도 있었다. 

   이 많은 도깨비 중에 아는 도깨비라고는 요조 하나뿐이었다. 요조도 이제 방금 알게 된 아이인데 말이다. 몽돌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요조는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몽돌이는 요조를 놓칠세라 바짝 쫓아갔다. 그런 몽돌이를 보고 요조가 피식 웃었다. 

   “너 겁이 좀 많구나?”

   “아, 아니거든?”

   “긴장할 것 없어. 이곳은 인간 세상과 비슷해. 다른 게 있다면 낮과 밤이 반대야. 인간 세상에서 해 질 때 왔기 때문에 여긴 해가 뜨는 거야. 또 이곳엔 망매들만 살고 있지.”

   “그럼 너도 도깨비인 거야?”

   몽돌이가 마른 침을 삼키고 물었다.

   “도깨비가 아니라 망매라고! 아까 내가 말했지? 망매는 너희 인간들이 생각하는 뿔 달리고 빨가벗은 그런 괴물이 아니라고. 인간과 똑같아. 다른 거라면 빨간 머리카락이 나고, 냄새를 잘 맡고,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사는 정도? 우린 몇 백년을 살거든.”

   “몇 백년? 그럼 넌? 넌 몇 살인 거야?”

   “내 나이를 말하면 놀랄걸? 여인의 나이는 묻는 게 아니란다, 꼬마야.”

   몽돌이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훗, 놀라기는. 나도 열두 살이야.”

   요조는 자분자분 설명을 이어갔다.

   “인간들은 망매를 잘 모르지만 우리는 인간을 잘 알고 있어. 모래판의 통로로 인간 세상에 왔다 갔다 할 수도 있지. 모든 망매가 그 방법을 아는 건 아니지만. 자, 여기가 우리 집이야. 들어가자.”



   5) 도둑맞은 하늘산 물수정


   요조는 멋들어진 기와집으로 들어갔다. 몽돌이도 쭈뼛쭈뼛 따라 들어갔다. 

   “어? 요조 너, 방에 있었던 거 아니었어? 얘는 누구니?”

   밥상을 들고 오던 한 아주머니가 요조와 몽돌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옆 동네에 사는 애야. 몽돌아, 우리 엄마한테 인사해.” 

   요조는 시치미를 딱 떼고 태연하게 말했다. 몽돌이에게 보내는 눈짓을 보니 정체를 숨기라는 뜻 같았다. 바짝 긴장한 몽돌이는 변변히 대꾸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꾸벅 고개만 숙이자 요조 엄마가 방긋 웃었다. 

   “몽돌이? 처음 보는 얼굴이네. 아침 안 먹었지? 들어가서 요조랑 같이 먹으면 되겠네.” 

   요조 엄마는 밥상을 방에 들여놓고서 밥 한 공기와 수저를 더 갖다 주었다.

   “차린 건 없지만 맛있게 먹으렴.”

   “가, 감사합니다.” 

   몽돌이가 넙죽 고개를 숙인 다음 우물쭈물하고 있자 요조가 등을 떠밀었다. 요조는 방문을 닫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비밀인데, 내가 인간 세상에 가는 거 우리 엄마는 몰라. 두 세상을 왔다 갔다 하는 건 사실 불법이거든. 그 방법을 아는 망매도 별로 없고.”

   “근데 넌 어떻게 아는 거야?” 

   “아빠한테 몰래 배웠지. 우리 아빠는 나쁜 망매를 잡는 수호 대장이야.”

   “수호 대장? 멋지다.”

   비밀 이야기를 들으니 요조가 한결 가깝게 느껴졌다. 몽돌이는 정갈하게 정돈된 요조의 방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상에 차려진 음식에 마음을 빼앗겼다. 하얀 쌀밥과 갖가지 반찬에 군침이 흘렀다. 이렇게 번듯하게 차려진 음식을 본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우와! 달걀도 있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그래?”

   몽돌이는 삶은 달걀 세 개를 집더니 공중으로 휙 던졌다.

   “야! 깨져!”

   요조가 놀라 소리쳤다. 몽돌이는 달걀 세 개를 손으로 탁 받았다. 그런 다음 자유자재로 이리저리 휙휙 던지고 받았다. 현란한 달걀의 움직임에 요조는 입을 헤벌쭉 벌렸다. 

   “오! 잘한다! 어떻게 그렇게 던져? 금 간 데도 하나 없잖아?”

   “먼저 힘을 빼야 돼. 힘이 들어가면 망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데?”

   “아버지랑 많이 했거든.”

   “그걸 왜 해?”

   “재미있으니까. 그냥 노는 거지.”

   “논다고? 논다는 거······ 참 좋은 거 같아.”

   “좋지 그럼, 근데 달걀 진짜 오랜만이다. 얼마 만에 보는지 모르겠다.”

   “보기만 하지 말고 얼른 먹어.”

   “잘 먹을게!”

   몽돌이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달걀 껍질을 깠다. 탱글탱글한 달걀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몇 번 씹을 것도 없이 꿀떡 넘어갔다. 솔솔 김이 나는 고슬고슬한 밥 한술을 시작으로 고기반찬이며 부침개, 나물까지 젓가락이 쉴 새 없이 오갔다. 젓가락으로 깨지락거리던 요조는 몽돌이가 정신없이 먹는 모습을 딱하게 바라보았다. 

   “인간 세상은 가뭄 때문에 먹을거리가 없다지?”

   “굶는 게 일이지 뭐.”

   몽돌이는 입안 가득 음식을 물고 우물거렸다.

   “그게 다 그놈의 고블 때문이야.”

   “고블? 고블이 사람, 아니 도깨비 이름이야?”

   “도깨비 아니고 망매라고, 망! 매!”

   요조가 발끈했다. 몽돌이는 개미 코딱지만 한 목소리로 중얼댔다.

   “알았어. 망매.”

   “아무튼, 고블은 천하의 못된 악당이야. 아주 악랄한 짓을 저질렀는데 이 년이 넘도록 못 잡고 있어. 이상한 건 누구도 고블을 봤다는 망매가 없다는 거야. 이렇게 코빼기도 안 보인다는 건 딱 하나. 인간 세상에 숨었다는 거지.”

   순간 몽돌이의 숟가락질이 멈췄다.

   “인간 세상? 그 악당이 사람도 해쳐?” 

   “사람을 해치진 못 할걸? 사실 망매들은 인간 세상에 오래 머물지 못하거든. 거기 가면 서서히 기운이 빠지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런 악당이 인간 세상에 숨어 버리면 찾기가 더 힘든 거지. 가끔 우리 아빠가 고블을 찾으러 인간 세상에 가시는데, 오래 머물진 못하신대.”

   “그런데 넌 왜 우리가 사는 데 매일 오는 거야? 기운이 빠진다면서.” 

   “재밌잖아. 인간 세상에는 재미있는 게 정말 많아. 씨름도 보고 노는 것도 구경하고 이야기도 듣고. 제일 좋은 건 따뜻한 햇볕이지. 비 오는 거 정말 지긋지긋하거든. 여기가 밤이 돼야 너희 세상에 해가 뜨니까 부모님이 잠들면 몰래 갔다 오는 거야. 혹시 알아? 인간 세상에 숨은 고블이라도 잡을지. 잡기만 하면 큰 상을 받거든.”

   “고블이라는 자가 무슨 나쁜 짓을 했길래 그러는 거야?”

   “소중한 보물을 훔쳤지. 바로 하늘산의 물수정!”

   “물수정?”

   “물수정은 주위의 물을 빨아들여서 두 세상을 조화롭게 해 주는 신비의 구슬이야. 그런데 고블이 그걸 훔치면서 이 세상 조화가 다 깨져 버렸어. 그래서 여긴 매일 비만 오고, 인간 세상은 가뭄으로 바짝바짝 마르는 거야.” 

   “그것 때문에 비가 안 온 거였다고? 우린 가뭄 때문에 집집마다 우물이 마르고, 곡식도 열매도 모조리 타버려서 먹을 게 없는데, 그게 다 물수정 때문이라고?”

   “물수정을 찾아서 원래 있던 하늘산 꼭대기에 올려놓아야 너희 가뭄도, 우리 비도 다 해결된대. 그러니까 무조건 고블을 찾아야 하는 거지.”

   “와아!”

   “보통 복잡한 게 아니지?”

   “그게 아니라, 진짜 재미있어! 하늘산도 보물도 다 신기해. 그 물수정이 어떻게 생겼을지도 정말 궁금하다.”

   몽돌이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자 요조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재미있다고?”

   “솔깃하잖아. 뭔가 으스스하면서도 흥미진진해. 이야기로 지으면 진짜 재미있을 것 같아.”

   “네 머릿속은 온통 이야기뿐이구나?”

   정곡을 찔린 몽돌이는 머리를 긁적였다. 요조 말대로 망매계라고 해서 사람 사는 세상과 다른 건 없어 보였다. 신비하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도 있고, 풍경도 생김새도 음식도 다 비슷했다. 겁낼 이유가 없었다.

   ‘도깨비라고 괜히 겁먹었잖아?’



   6) 흙 묻은 떡


   “자, 빗 여기 있어.”

   몽돌이가 엿판 밑에 끼워둔 머리빗을 건넸다. 

   “정말 고마워. 이걸 얼마나 찾았는데······. 내가 아끼는 빗이거든. 이 은혜 잊지 않을게.”

   “은혜는 무슨.”

   “망매계에는 이렇게 예쁜 머리빗이 없거든. 귀한 걸 찾아줬으니 은혜 맞지. 우리 망매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은혜는 꼭 갚는다고.”

   요조는 머리빗을 옷 속에 소중히 집어넣었다.

   “아, 우리 엄마가 너한테 이거 갖다 주래. 밥 한 톨 안 남기고 싹싹 비우는 게 예쁘다나? 입 짧은 나하고 비교된다 이거지. 우리 엄마는 밥 잘 먹는 걸 제일 좋아하시거든.”

   요조가 하얀 보자기를 내밀었다. 망매계에서 나는 향 좋은 풀을 넣은 떡이라고 했다. 

   “떡? 와아! 떡을 먹어 본 게 언젠지도 모르겠어. 고마워. 너희 어머니께 정말 감사하다고 전해줘.”

   뜻밖의 선물에 몽돌이는 떡 보자기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그런데 요조가 유달리 조용했다. 요조는 홀린 듯이 엿판을 보고 있었다. 밥상 앞에서는 시큰둥하던 요조가 눈이 달라붙기라도 한 것처럼 엿판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몽돌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엿이 먹고 싶은가? 

   “하나 먹을래?”

   “그래도 돼? 응! 응! 좋아! 먹을래!”

   요조가 재바르게 머리를 끄덕였다. 어린애처럼 두 손을 받쳐 들고 침까지 꼴깍 삼키며 기다렸다. 몽돌이가 손에 엿 하나를 놓아주자 무척 귀한 음식처럼 살며시 집어 입에 넣었다. 입안 이리저리 엿을 굴려 맛을 본 요조가 탄성을 질렀다.

   “으으음! 정말 달다! 너무너무 맛있어!”

   생전 엿이라고는 못 먹어본 사람 같았다. 몽돌이는 의아했다.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잘 차려진 밥상을 받는 요조가 왜? 요조는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를 짓다가 문득 몽돌이의 시선을 의식했다. 부끄러운 듯 입꼬리를 감추었다. 

   “헤, 내가 너무 좋아했나? 망매계에는 달콤한 게 없어서 그래.”

   “달콤한 게 없다고?”

   “왕께서 법으로 금지하셨어. 달콤한 걸 먹으면 몸이 늘어지고 게을러져서 열심히 일할 수 없다고.”

   “그런 법도 다 있구나. 신기하다. 자, 더 먹어.”

   “고마워, 몽돌아. 이 은혜도 잊지 않을게.” 

   요조는 엿 몇 가락을 받아들자 민망해하던 것도 잊고 신나게 모래판으로 달려갔다. 몽돌이는 그런 요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뭘 계속 은혜라고 그래?”

   요조는 처음 말투는 차가웠지만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낯선 세상에 사는 아이인데도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게 대해 주었다. 애초에 도깨비한테 소원 한 번 빌어 보려고 접근한 건데, 스스럼없이 잘해주기만 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은혜를 갚는다며 먹을 것까지 챙겨주니 더 고마웠다. 

   ‘나도 나중에 꼭 보답할게.’

   보자기 안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이 한 보따리 들어있었다. 어머니에게 한 덩이 드리고 옆집 고산댁 할머니에게도 몇 덩이 갖다 드렸다. 몽돌이도 호호 불어 맛나게 먹었다. 남은 떡은 보자기에 잘 싸서 솥뚜껑으로 덮어 놓았다. 다음 날 끼니 걱정을 안 해도 되니 잠이 솔솔 왔다. 어머니의 기침 소리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지만 이날 밤만큼은 마음 편하게 푹 잤다.

   이튿날, 몽돌이는 아침으로 먹을 떡을 꺼내려고 솥뚜껑을 들었다. 손을 더듬는데 아무것도 잡히는 게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뚜껑 안을 들여다보는데, 정말 없다!

   “어! 떡이 어디 갔지?”

   부뚜막에 있는 그릇들을 다 들추고 아궁이 속까지 들여다봤지만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도둑고양이는 무거운 솥뚜껑을 못 들 텐데? 이상하다?”

   몽돌이는 마당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다. 평상 아래며 싸리문 뒤, 담벼락 밑에도 없었다. 뒤뜰 장독대며 감나무 아래도 다 둘러봤지만 안 보였다. 

   “누가 훔쳐 간 게 분명해. 솥뚜껑을 들어서 꺼내 가 버린 거야!” 

   몽돌이는 씩씩거리며 온 집안을 몇 번이나 훑었다. 속상한 마음은 어느새 실망으로 바뀌었다. 어깨가 축 늘어졌다. 터덜터덜 뒤뜰을 돌아 나오던 몽돌이가 갑자기 걸음을 탁 멈췄다. 신발 밑에 뭔가 끈적한 게 묻은 거다.

   “에이, 뭐야?”

   투덜거리며 땅바닥에 발을 쓱쓱 비비는데 떡처럼 끈적끈적한 느낌이었다. 발밑을 보니 과연 진득하게 뭉개진 떡이 신발 바닥에서 떨어져 나오는 게 아닌가! 주위를 둘러보니 바로 옆 우물가에 떡 한 점이 더 떨어져 있었다.

   우물 옆에 떨어진 흙 묻은 떡을 보는 순간, 이상한 예감이 훅 들이닥쳤다. 불길하고 섬뜩한 예감이었다. 몽돌이는 눈을 치켜뜨고 우물을 쳐다보았다. 간담이 서늘해졌다. 뚜껑을 덮어 놓은 우물, 바짝 마른 그 안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무엇일지 단번에 감이 왔다. 

   순간 몽돌이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짧은 찰나에 별의별 생각이 지나갔다. 몽돌이는 떨리는 다리에 간신히 힘을 주고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바람 맞는 이파리처럼 다리가 후들거리는 통에 마음처럼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가까스로 뒤뜰을 빠져나와 모래판으로 내달렸다. 저 멀리 동네 꼬마들 노는 걸 구경하는 요조가 보였다.

   “요, 요조야!”

   애타게 외치는 소리에 요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몽돌아! 너 얼굴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알았어! 나 알았어.”

   “뭘?”

   “고, 고블!”

   “뭐!”

   “고블이 있는 곳을 알았다고!” 

   요조의 눈과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그게 어딘데?”

   “우물! 우, 우물 안에 고블이 있는 것 같아.”

   “우물?”

   “우리 집 우물 옆에 네가 준 떡이 떨어져 있었어. 아침에 떡이 없어졌는데, 고블이 훔쳐 먹은 것 같아. 우물 옆에 서 있는데 오싹한 느낌이 드는 거야. 고블 때문에 우리 집 우물물이 다 말라 버린 것 같다고.” 

   “잠깐만! 그럼 먼저, 우리 아빠한테 알려야 해. 아무리 힘이 빠졌다고 해도 고블은 위험한 놈이야.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아야 하니까 오늘 밤 자시에 아빠랑 같이 너희 집으로 갈게. 넌 밖에 나오지 말고 꼼짝 말고 방 안에서 기다려. 알았지?”

   몽돌이는 얼이 빠진 듯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조는 서둘러 망매계로 돌아갔다.



   7) 악당 고블


   하루가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불안과 두려움에 이어 걱정과 근심이 따라왔다. 어머니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다가 방금 잠이 들었다. 몽돌이는 잠든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앙다물었다. 근심은 어느새 원망으로 바뀌었다. 서서히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요조에게 악당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해도 그저 재미있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놈의 악당 고블이 지금, 뒤뜰 우물 안에 있다고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감나무에 감이 열매도 맺기 전에 뚝뚝 떨어진 것도, 아끼고 아꼈던 쌀이 금방 동난 것도, 어머니가 병 든 것도 다 고블 때문인 것 같았다. 

   쿨럭, 쿨럭.

   잠결에도 어머니는 계속 기침을 했다. 병세가 점점 더 심해져 갔다.

   ‘어머니, 오늘 밤까지만 기다려요. 고블이 잡히면, 그래서 물수정이 제자리로 돌아가면 모든 게 다 좋아질 거예요. 어머니도 금방 나을 수 있을 거예요.’ 

   애써 좋은 생각만 하려 했지만 금세 몹쓸 생각이 밀고 들어왔다. 세차게 고개를 저어도 몹쓸 생각이 자꾸만 맴돌았다. 어머니마저 잘못되면 어떡하지?

   이제껏 힘들어도 투정 한 번 부리지 않았었다. 어머니에게는 오직 아들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괜스레 투정 부렸다가 어머니 마음이 다치고 그 바람에 몹쓸 생각대로 될까 봐 무서웠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지만 재빨리 소매로 훔쳤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어머니를 보면서 몽돌이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멀리서 부엉이 소리가 들렸다. 

   몽돌이는 까치발을 하고 방을 나왔다. 지금 처한 모든 것들이 의문투성이였다. 고블을 떠올리면 온몸의 잔털이 삐죽 설 만큼 소름 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유를 알고 싶었다.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고블이 언제부터 우리 집 우물에 숨어 살았던 거지?’

   ‘어젯밤 어머니와 내가 자고 있을 때 보란 듯이 부엌에 들어왔단 말이잖아?’

   ‘저 악당이 무슨 짓을 했기에 어머니가 이렇게 아픈 거냐고?’

   몽돌이는 천천히 뒤뜰로 갔다. 밤하늘엔 둥근 보름달이 환하게 떠 있었다. 자시가 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다. 

   ‘왜 하필 우리 집이야? 왜 우리 집 우물에 숨은 거냐고? 왜!’

   몽돌이는 나무 뚜껑이 덮인 우물을 노려보았다. 

   “자, 몽돌아, 달걀 간다. 받아라. 읏차!”

   아버지가 삶은 달걀을 던졌다. 달걀은 몽돌이의 손끝을 살짝 스치더니 그대로 우물 안으로 빠졌다. 퐁!

   “으아! 어떡해! 어떡해요? 아버지?”

   “아이구, 이눔아! 잘 잡아야지. 하, 이걸 어쩐다? 가만있어 보자.”

   아버지는 두레박과 장대를 우물 안에 드리워 몇 번 휘적휘적 하더니 달걀을 꺼냈다. 

   “짜잔!”

   “와아! 우리 아버지 최고!”

   고블이 우물에 깃든 추억까지 엉망으로 만든 걸 생각하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내가 하루하루를 버티는 힘은 아버지와의 추억뿐이야. 함부로 거기 들어가지 말라고! 당장 거기서 나와!’

   몽돌이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부엌으로 갔다. 아침으로 마련해 둔 밥 한 공기를 들고 나왔다. 감나무 그림자가 달빛에 시커멓게 흔들리고 있었다. 

   몽돌이는 숨을 크게 들이쉰 다음 우물 옆에 밥공기를 내려놓았다. 요조가 도깨비는 냄새를 잘 맡는다고 했다. 부엌에 놓아둔 떡 냄새를 맡을 정도면 우물 앞의 밥 냄새야 말해 무엇하랴. 몽돌이는 멀찍이 물러나 뚫어질 듯 지켜보았다. 당차게 밥을 놓아둘 때와는 달리 팔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심지어 이빨 부딪히는 소리까지 났다. 달이 지나가던 구름 속으로 들어가 순식간에 주위가 어두워졌다. 그때였다. 

   덜컥.

   우물 뚜껑이 움직였다. 몽돌이는 눈 한 번 깜빡일 수 없었다. 뚜껑은 스윽, 소리를 내며 열렸다. 우물 안에서 어두운 밤보다 더 캄캄한 형체가 서서히 올라왔다. 우물 벽을 타고 올라온 그 형체는 머리였다. 풀어헤친 긴 머리와 가려진 달빛 탓에 얼굴은 온통 시커멓게만 보였다. 어두컴컴한 얼굴이 땅에 놓인 밥공기를 응시했다.

   그가 몸을 내밀어 우물 밖으로 나왔다. 구름이 지나가고 달이 서서히 뒤뜰을 비추었다. 아! 달빛에 비친 머리카락은 온통 빨간색이었다!

   “딸꾹!”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입 밖으로 나와 버린 딸꾹질 소리. 그가 고개를 홱 돌렸다. 컴컴한 얼굴이 몽돌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 발 내디디며 앞으로 나왔다. 지독하게 마른 해골 같은 몸이 중심을 잡느라 휘청거렸다. 몽돌이는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할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놀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네가······.”

   메마른 목소리에 몽돌이는 흠칫했다.

   “일부러 나를 불러냈구나.”

   깊은 동굴처럼 울림이 큰 그의 목소리는 의외로 구슬프게 들렸다. 말하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바람이 불어 빨간 머리카락에 가려졌던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입술은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졌고 눈빛은 매서웠다. 몽돌이는 입을 뗄 엄두도 못 냈다. 

   “네가 몽돌이지?”

   몽돌이의 눈이 튀어나올 듯 벌어졌다. 가슴이 미친 듯이 벌떡벌떡 뛰었다. 티끌만 한 용기를 비틀어 짜내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나, 나, 나를 아, 알아요?”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몽돌이의 심장이 철렁했다. 숨이 급속도로 거칠어졌다.

   “당신 고, 고블 맞죠? 나를 어, 어떻게 알아요?”

   쌕쌕 숨을 몰아쉬며 소리를 토해냈다. 

   “날 어떻게 아냐고요! 왜! 왜 우리 집이냐고요!” 

   쿠쿵.

   별안간 고블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미안하다, 몽돌아. 내가 죽을 죄를 지었다.”

   생각지도 못한 행동에 몽돌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두려움과 의심이 폭풍처럼 밀어닥쳤다. 우연히 숨어든 게 아니란 말이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고블은 괴로운 듯 흙바닥을 긁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빨간 머리카락이 엉킨 고개를 더 깊이 떨구었다.

   “네 아버지를 알고 있다.”

   “뭐라고요!”

   머리에 번개가 내리꽂히는 것 같았다. 저 악당이, 저 괴물이 아버지에게 몹쓸 짓을 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휘몰아쳤다.

   “우리 아버지를 어떻게 알아요? 우리 아버지 어딨어요? 어떻게 했냐고요! 으어엉, 흐엉!”

   몽돌이는 턱을 덜덜 떨며 어린아이처럼 울부짖었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몸을 가누지 못해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몽돌이의 흐느낌이 잦아들었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던 고블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네 아버지가 어디 계신지 얘기해 주마.”

   시린 달빛 아래 그렇게 고블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8) 고블의 이야기


   고블은 고운 나비 문양이 새겨진 까만 머리빗을 샀다. 저잣거리를 거닐고 동네 구경도 하니 꼭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 이게 진짜 사는 거지. 망매들은 지금 제대로 사는 게 아니야.’

   해가 기울자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아이들은 손을 흔들며 골목으로 사라졌고 수다 떨던 아낙들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장터 상인들은 전을 걷고 씨름판 엿장수도 엿판을 정리하고 있었다.

   야옹!

   까만 고양이가 다가와 꼬리를 올리자 고블이 털 한 오라기를 뽑았다.

   후.

   고양이 털을 부는 순간, ‘털썩’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엿장수가 엿판을 둘러멘 채 쓰러져 있었다. 

   ‘이런!’

   몸이 모래판 밑으로 쑥 빠지는데 아뿔싸, 엿장수도 같이 빠져버렸다! 와서는 안 되는 곳에 사람이 온 것이다. 엿장수는 가슴을 움켜쥐고 괴로워했다. 숨을 못 쉬는 것 같았다. 고블은 엿장수를 바닥에 바로 눕힌 다음 두 손으로 가슴을 강하게 누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엿장수의 입에서 터지듯이 숨이 흘러나왔다. 

   ‘살았다!’

   목숨을 건진 엿장수는 몽돌이 아버지 만수였다. 고블은 만수를 집으로 데리고 가 정성껏 간호했다. 만수는 차츰 기력을 회복해 갔다. 

   고블은 장터에서 산 머리빗을 여동생에게 건넸다. 여동생 자혜는 어릴 때부터 병약해 늘 누워 지냈다. 밖에 한 번 못 나가고 집안에서만 지낸 것도 여러 해가 지났다. 

   “자혜야, 선물.”

   “어머나! 어쩜 이렇게 예뻐! 고마워, 오라버니. 인간 세상에는 정말 예쁜 게 많다니까? 아, 거기 꼭 한 번 가 보고 싶다.” 

   “다 낫고 가면 되지.”

   자혜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못 갈 것 같아. 갈수록 몸이 더 나빠지는걸? 난······ 이대로 방 안에서만 살다 죽을 것 같아. 가망이······ 없다고. 흐흐흑.”

   자혜의 울음소리가 벽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졌다. 옆방에 머물던 만수는 자혜의 딱한 사정을 듣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다음 날 만수는 고블에게 자혜를 만나 봐도 되겠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까르르.

   자혜는 만수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푹 빠졌다. 

   “아저씨, 이야기 정말 재미있어요. 또 해 주세요. 네?”

   자혜의 얼굴에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좋아하는 자혜를 보니 만수는 더 마음이 아렸다. 한창 예쁘게 차려입고 돌아다닐 나이에 방에서만 지내니 얼마나 갑갑할까 싶었다. 모처럼 웃는 동생을 보고 고블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어났다. 

   “고맙습니다. 이야기라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건 줄 내 처음 알았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을지요.”

   “아이구, 은혜라니요. 내 목숨까지 살려줬는데 이깟 이야기가 뭐 그리 대수겠소?”

   “자혜가 저렇게 웃는 걸 얼마 만에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부터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만수 형님.”

   “허허, 이 먼 곳에 동생이 생길 줄이야. 허허허.” 

   만수는 자혜를 위해 몇 날 며칠에 걸쳐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상상으로 지어낸 꿈같은 세상은 자혜의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졌다. 자혜는 이야기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세상에! 그래서요?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데요?”

   “아앗! 안 돼! 거긴 가지 말라고 했잖아! 하, 어떡해······.”

   “잠깐만요, 아저씨. 너무 웃겨서 배 아파요.”

   “아! 너무 잘 됐다! 정말 다행이에요.”

   자혜는 이야기 속 세상에서 신나게 날고 마음껏 뛰어놀았다. 현실에서 못해 본 많은 일을 직접 보고 들은 듯 온몸으로 느꼈다. 하지만 즐거운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병이 싹 낫는 것 같다며 좋아하던 자혜는 어느 날 아침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동생을 잃은 고블의 슬픔은 참으로 깊었다. 그런 고블을 위로하느라 만수는 망매 세상에서 며칠을 더 보내야 했다. 

   고블은 가까스로 마음을 추슬렀다. 고블은 만수와 함께 자혜가 떠난 방에 들어가 보았다. 자혜가 늘 머리맡에 두었던 머리빗이 보였다. 고블은 주인 없는 머리빗을 어루만지고는 품에 넣었다. 

   “형님 덕분에 자혜가 웃으며 눈을 감았습니다. 이제 형님 몸도 거의 회복됐으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셔야지요. 아들 몽돌이가 눈 빠지게 기다리지 않겠습니까?”

   만수는 몽돌이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수는 고블과 함께 망매계의 모래판으로 갔다. 고양이 털만 불면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때였다. 

   슝, 슈웅!

   어디선가 방망이가 휙휙 날아오기 시작했다. 

   파박!

   “으윽!”

   방망이 하나가 만수의 다리를 강타했다.

   “형님! 만수 형님! 괜찮으십니까?”

   “잡아라! 배신자를 잡아라! 인간과 내통한 고블이 저기 있다! 무위왕의 명이다!”

   무장한 군사들이 벌떼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장군! 고블 장군! 어서 피하십시오!”

   어디서 나타났는지 고블의 부하들이 고블을 에워쌌다.

   “잠깐! 만수 형님을 구해야 돼!”

   군사들의 방망이에 부하들도 하나둘 쓰러졌다.

   “용서하십시오, 장군.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대로 모시겠습니다.”

   부하들은 고블만 데리고 자리를 떠나버렸다. 모랫바닥에 쓰러진 만수는 망매 군사들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9) 감추어진 진실


   “네 아버지는 살아 계신다.”

   고블의 이야기가 끝났다. 

   몽돌이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살아 계셔!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고! 아아! 정말 다행이다!

   이루 말할 수 없었던 슬픔과 걱정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하지만 이내 복잡한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아버지는 끌려가서 어떻게 되신 걸까?’

   ‘망매계에 있어야 할 고블은 도대체 왜 여기 있는 거야?’

   ‘듣던 것처럼 그렇게 나쁜 악당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고블이 한 말을 다 믿어도 되는 걸까?’

   ‘아, 다른 건 모르겠고. 망매계에 잡혀있는 아버지를 어떻게 구하지? 너무 막막해.’

   뒤죽박죽 엉킨 생각의 끝은 오직 아버지를 구해야겠다는 것뿐이었다! 몽돌이는 고블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우리 아버지는 지금 어디 있는 거예요?”

   “하늘산 꼭대기에 있는 감옥에 갇혀 계신다.”

   몽돌이는 비장한 각오로 단호하게 내뱉었다.

   “아버지를 구해야겠어요!”

   고블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곳은 철통같은 경비로 악명 높은 곳이야. 나도 구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다 실패했어.”

   “살아 계시잖아요! 그러니 어떻게든 내가 구할 거예요!”

   몽돌이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몽돌이의 눈빛이 불꽃처럼 활활 타올랐다. 그때였다.

   “히익!”

   뒤에서 급하게 숨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몽돌이가 홱 뒤를 돌아보았다. 요조가 입을 막고 비명을 삼키고 있었다. 

   “고, 고, 고블이······.”

   당찬 요조가 말까지 더듬는 걸 보니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었다. 몽돌이는 요조를 안심시킨 다음 고블과 아버지의 사연을 들은 그대로 전해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요조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넋 나간 표정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고블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몽돌이에게 속삭였다.

   “너희 아버지와 아는 사이였다고 해도 저 작자가 나쁜 짓을 한 건 사실이야.” 

   고블이 그제야 입을 뗐다.

   “그건 다 누명이다.”

   “흥! 누명은 무슨!”

   요조는 눈을 부릅뜨고 고블을 노려보았다. 고블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망매와 인간은 원래 사이가 좋았다. 무위가 왕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야. 무위는 인간들이 우리 망매를 괴물 취급한다며 두 세상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 버렸지. 하지만 그건 얄팍한 계략에 불과해. 망매들이 왕의 말만 믿고 따르게 하기 위해 일부러 인간을 혐오하도록 만든 거다. 그래야 군대를 더 강하게 키우고 무자비하게 다스릴 수 있거든. 그게 망매를 다스리는 가장 쉬운 방법이란 걸 아는 거야.” 

   “허! 세상에! 무위왕을 함부로 욕하다니!”

   요조는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망매들에게 일! 일! 오로지 일만 강조했지. 잠시도 한눈 팔거나 딴생각을 못 하도록 한 거야. 즐겁게 노는 것, 달콤하고 흥겨운 것들은 모조리 금지했지. 망매들은 고유의 흥과 유쾌함을 잃어버렸어. 그런데 정작 무위는 저 혼자 그 모든 걸 차지하고 누리고 있다. 아무도 그걸 모른다는 게 문제지. 온갖 거짓으로 왕의 자리를 꿰차고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요조가 발끈했다.

   “이것 봐요! 왕은 되고 싶다고 그냥 되는 게 아니에요. 청룡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거라고요.”

   “망매라면 누구라도 다 그렇게 알고 있지. ‘청룡의 선택을 받은 자가 왕이다. 하늘산 꼭대기에서 물수정을 지키는 청룡이 왕을 선택한다. 왕이 아닌 그 누구도 청룡을 볼 수 없다. 청룡을 보는 순간 얼음처럼 굳어버릴 것이다.’”

   “당연한 거 아니에요? 세 살짜리도 다 아는 걸, 쳇.”

   요조는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다들 속고 있어!”

   고블이 힘주어 말했다. 청룡 이야기에 몽돌이는 귀를 바짝 세웠다. 

   “무위가 망매들을 속인 거야.”

   요조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 그런 헛소리는 됐고요. 당신이 한 짓이나 설명해 보죠?”

   “하늘산을 지키는 장군이었던 나는 무위왕에게 언제나 쓴소리를 했다. 다시 인간과 소통하고 망매들에게 자유를 주라고. 그런 내가 왕에게는 눈엣가시였지. 무위왕은 어떻게든 날 없애고 싶어 핑곗거리를 찾아댔어. 때마침 몽돌이 아버지를 망매계로 데려온 것이 발각되는 바람에 나는 천하의 악당으로 몰리게 된 거야.”

   “그럼 아저씨가 물수정을 훔친 게 아니에요?”

   몽돌이가 물었다.

   “······ 그건 사실이다.”

   “그거 봐. 훔친 게 맞다니까!”

   요조가 보란 듯이 되받아쳤다.

   “나는 몽돌이 아버지 만수 형님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내내 시달렸어. 결국 목숨을 걸고 만수 형님을 구하기로 했지. 하늘산 꼭대기는 경계가 삼엄하지만 내 근무지였기에 몰래 뚫고 들어갈 수는 있었어. 다만, 청룡이 지키는 신전과 감옥만은 누구도 발을 디딘 적이 없었지. 무위의 심복인 눈먼 거인만 빼고 말이야. 난 죽을 각오로 신전에 들어갔지만 이내 거인에게 발각되고 말았어. 가까스로 빠져나오던 중에 물수정을 발견했고 그걸 훔친 거야.”

   “물수정을 왜요?”

   “물수정을 지키는 건 왕의 중요한 임무거든. 물수정을 지키지 못한 왕은 그 자리에서 쫓겨나야 하지. 물수정을 잃는 순간 청룡의 노여움을 사버리거든. 무위가 청룡의 노여움을 사고 왕의 자리에서 바로 쫓겨날 줄 알았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어. 영악한 무위는 지금도 여전히 왕의 자리에 버티고 있으니까. 오히려 나를 몹쓸 악당으로 만들어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린 거지. 그렇게 난 온 망매의 적이 된 거다.”

   “물수정을 잃어버렸는데도 무위왕은 용서받았어요. 너무나 훌륭한 왕이어서 청룡이 용서해 준 거라고요. 지혜로운 청룡은 진짜 나쁜 악당이 누군지를 아는 거죠. 무위왕을 끌어내리려고 한 당신이야말로 진짜 악당이라는 걸요.”

   요조가 조목조목 따지고 들자 고블이 한숨을 쉬었다.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흠흠.”

   요조가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내심 궁금해 하던 걸 물었다. 망매라면 누구라도 궁금해 할 질문이었다.

   “그런데······ 정말 청룡을 만났어요? 물수정 훔칠 때, 청룡을 보았나요? 눈이 마주치지 않았어요? 당신은 어째서 꽁꽁 얼지 않은 거죠? 청룡이 지키는 물수정을 도대체 어떻게 훔친 거예요?”

   폭풍처럼 쏟아지는 질문에 고블은 하늘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청룡? 허허허.”

   고블이 허탈하게 웃었다. 웃음은 어느새 분노로 바뀌었다. 고블은 턱이 불끈할 정도로 이를 꽉 물고 대답했다. 

   “청룡은 없다!”

   “네?”

   “네?”

   두 아이의 입이 동시에 떡 벌어졌다.

   “속고 있다는 게 그 말이야. 애초에 청룡은 없었다. ‘왕 이외에는 보면 안 된다’라는 말 자체가 속임수였지. 청룡이 왕을 선택하고, 청룡이 물수정과 왕을 지키고, 청룡을 보는 자는 얼음으로 변한다는 그 모든 것이 다 새빨간 거짓말이었던 거야. 처음부터 청룡은 없었으니까! 청룡은 평생 왕으로 살고 싶은 무위의 욕심이 낳은 가짜 전설이다!”

   “헉!”

   “말도 안 돼!”

   “물수정을 잃으면 청룡이 노한다고? 청룡이 그런 왕을 용서했다고? 하! 처음부터 없었으니 노할 것도, 용서할 것도 없지. 안 그러냐?” 

   몽돌이는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망매계의 모든 것이 뒤엉키고 어지러워 분간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우선 단순하게 정리를 해보자. 고블은 누명을 쓴 것이고 아버지는 지금 하늘산 감옥에 갇혀 있다. 무엇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아버지를 구하는 것이다. 다른 건 그 다음에 생각하면 된다.

   “말해주세요! 어떻게 하면 우리 아버지를 구할 수 있어요?”

   몽돌이가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당장 뾰족한 수는 없지만 우선 내가 다시 망매계로 가야 해. 보다시피 여기서는 기운을 잃어버려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단다.”

   고블이 우물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몽돌이가 요조에게 눈을 돌렸다.

   “요조야, 네가 좀 도와줄 수 있어? 넌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왔다 갔다 할 수 있잖아.”

   “내가?”

   “이 아저씨는 악당이 아닌 것 같아. 너희들의 왕인 무위왕이 나쁜 거야. 내 생각은 그래. 그게 아니라고 해도, 지금 난 이 아저씨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어. 그래야 우리 아버지를 구할 수 있으니까.”

   사실 요조도 고블의 말에 혹했지만 쉽게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망설이는 요조에게 몽돌이가 쐐기를 박았다. 

   “너 은혜 갚고 싶다고 했지? 이 아저씨 말을 믿고 나를 도와주는 게 나한테 은혜 갚는 거야.” 

   은혜라는 말에 요조는 모든 걸 내려놓았다. 

   “후, 알았어. 은혜는 꼭 갚아야 하니까.”

   “고마워.”

   “아 참!”

   요조가 갑자기 뭔가를 떠올렸다. 몹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어.”

   “뭔데?”

   “지금 우리 아빠가 오고 있어! 자시까지 군사들을 이끌고 오기로 했다고.”

   “아! 맞다! 어떡해!”

   때마침 부엉이가 울었다. 자시가 얼마 남지 않았다. 



   10) 따돌리기 작전


   자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요조야.”

   “아빠!”

   요조 아빠인 수호 대장 지휼이 군사 여덟 명을 데리고 도착했다.

   “고블은 어디 있니?”

   지휼은 눈을 번뜩이며 주위를 살폈다. 몽돌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다가갔다. 

   “저······.”

   “아, 네가 몽돌이구나. 그래, 고블이 어디 있다고?”

   “저, 죄송해요.”

   “뭐가 말이냐?”

   요조가 얼른 끼어들었다.

   “아빠, 몽돌이가 착각한 거래. 내가 준 떡이 우물 앞에 떨어져 있길래, 고블이 숨어 있다가 훔쳐 먹은 줄 알았다나 뭐라나. 내가 괜히 고블 이야기 해줬나 봐. 온종일 고블 생각만 한다니까? 알고 보니까 거지 꼬마가 훔쳐 먹은 거였대. 우물 뒤에 숨어있는 걸 몽돌이가 잡았대.”

   “거지가 확실하냐?”

   지휼이 몽돌이를 보며 눈을 부라렸다. 몽돌이는 목을 잔뜩 움츠리고 대답했다.

   “네, 거지 꼬마였어요.”

   “내가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 그 거지 꼬마 지금 어디 있느냐?”

   몽돌이와 요조는 당황해서 힐금힐금 눈을 마주 보았다. 두 아이의 눈빛이 안절부절 요동을 쳤다. 요조가 재빨리 둘러댔다.

   “포도청에 넘겼지. 조금 전에 포도청에서 잡아갔대. 거지 꼬마는 인간들이 알아서 하겠지, 뭐.”

   지휼은 그제야 넘어가는 눈치였다. 두 아이는 자그맣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흠, 괜한 헛걸음을 했구나.”

   “정말 죄송해요.”

   몽돌이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몽돌이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그때 요조가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몽돌이는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서 다음 작전으로 들어갔다.

   “저기······ 요조 아버님, 저 때문에 여기까지 오셨는데 잠깐 목 좀 축이고 가세요.”

   지휼이 의아한 눈으로 몽돌이를 쳐다보았다. 몽돌이는 처음에는 쭈뼛쭈뼛하더니 이내 능숙하게 연기를 했다. 이 정도 연기는 동네 꼬마들에게 이야기 들려줄 때 익히 많이 해본 터였다.

   “저희 어머니께서 술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담그시거든요. 평상에 좀 앉아 계세요. 제가 금방 술을 내올게요.”

   “술?”

   술이란 말에 지휼과 군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망매계에서 술은 당연히 금지였다. 정신을 흐트러뜨리고 즐거움을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지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근무 중에 술이라니. 당치 않다. 그리고 술은 금지된 음식이야.”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요조는 기다렸다는 듯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설득했다.

   “아빠, 여긴 인간 세상이잖아. 망매계도 아닌데, 뭐. 그러니까 전혀 불법이 아니라고.”

   지휼은 잠깐 고민하는 듯 보였다. 이에 몽돌이가 덥석 요조의 말을 받았다.

   “아, 그런데 변변한 안주가 없어서요. 간단하게 엿을 내올까 하는데······.”

   엿을 진귀한 음식처럼 쳐다보던 요조가 떠올라 작전을 짠 것이다. ‘엿’이라는 말에 군사들이 웅성거렸다. 술에 이어 달콤한 엿까지 맛본다는 생각에 모두 입을 헤벌리고 침을 삼켰다. 

   몽돌이는 준비해 둔 술과 엿을 재바르게 내왔다. 망설이던 지휼도 막상 눈앞에 차려진 먹거리를 보고는 입맛을 다셨다.

   “좋다. 이왕 허탕 친 거 몽돌이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먹고 가자.”

   대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군사들은 너도나도 달려들어 술과 엿을 맛보았다. 몽돌이와 요조가 눈을 마주치며 몰래 웃었다.

   ‘작전 성공!’ 

   군사들은 한바탕 왁자지껄하게 먹고 마셨다. 그동안 못 먹었던 한을 풀기라도 하듯 온 신경을 먹는 데 집중했다. 급히 먹은 탓에 오래지 않아 증상이 나타났다. 해롱해롱 술에 취하고 달콤한 맛에 취해 하나 둘 평상에 픽픽 쓰러진 것이다. 마침내 모두 단단히 곯아 떨어졌다. 심지어 지휼 대장도 마찬가지였다. 

   “됐다!”

   “휴, 다행이다. 너희 아버지 때문에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몰라.”

   “히힛, 우리 아빠 겉보기엔 험상궂어도 나한테는 꼼짝 못 해. 아빠, 미안하지만 여기서 잠깐 쉬다 와.”

   요조는 지휼을 향해 장난스레 고개를 까딱했다. 두 아이는 서둘러 창고로 달려갔다. 창고 안에 몸을 숨기고 있던 고블을 부축해 나왔다. 젖은 빨래처럼 마당 여기저기에 축축 널브러진 군사들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셋은 무사히 장터 모래판에 도착했다. 

   “몽아.”

   요조의 고양이 몽이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어디 있었는지는 몰라도 언제나 부르면 나타나는 신기한 고양이였다. 요조는 고블을 부축하느라 무거워진 어깨를 추켜세웠다. 그때 요조의 옷에서 머리빗이 풀썩 떨어졌다.

   “어휴, 덜렁이.”

   요조를 만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몽돌이가 머리빗을 주워 주었다. 머리빗을 내려다보던 고블의 몸이 갑자기 경직되었다. 

   “잠깐! 그거 좀 볼 수 있겠니?”

   고블은 머리빗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몽돌이가 머리빗을 건넸다.

   “맞아! 까만 바탕에 나비 문양. 내 동생 자혜의 머리빗인데! 이게 어떻게?”

   “네? 이건 우리 아빠가 주신 건데요?”

   고블의 말에 요조는 적잖이 당황했다. 별안간 잊고 있던 뭔가가 떠오른 것이다.

   “아, 맞다. 아빠가 모래판에서 주웠다고 했어요. 범인이 흘리고 간 거라고, 인간 세상의 물건 같다면서 저더러 가지라고 했는데······. 그때 그 범인이 아저씨였어요?”

   “아아! 만수 형님과 내가 망매군의 공격을 받던 그때 흘렸나 보구나! 동생의 유품을 어디서 잃어버린 지 몰라 얼마나 애를 태웠는데.”

   요조의 얼굴이 대번에 시무룩해졌다.

   “돌려드릴게요. 어차피 제 것도 아니었는걸요.”

   “그래도 괜찮겠니?”

   요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뜻 머리빗을 건넸다. 

   “고맙구나. 정말 고맙다.”

   고블은 머리빗을 두 손으로 받아들고 가슴에 꼭 품었다. 여동생을 다시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애틋한 표정이었다. 메말랐던 고블의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요조는 고블의 손에 든 머리빗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몽돌이의 눈에는 요조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훤히 보였다. 그 머리빗을 얼마나 아끼는 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망매계로 돌아가 볼까? 준비 됐죠?”

   요조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몽아, 몽아, 털 하나 다오.”

   고양이 몽이가 꼬리를 들어 올렸다.

   후!

   몽이의 털 한 오라기와 함께 셋은 망매계로 떨어졌다.



   11) 동네북이 된 몽돌이


   망매계로 온 고블은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기력을 회복했다. 고블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곳곳에 숨어 지내던 부하들도 번개같이 다시 모였다. 

   “지난 이 년간 모두 고생 많았다. 지금부터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하늘산에 갇힌 몽돌이 아버지 만수 형님을 구하는 것이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모든 활동은 철저히 비밀로 진행한다. 우리는 절대 밖으로 알려지면 안 되는, 비밀 결사대다. 알겠나?” 

   “예! 고블 장군님.”

   비밀 결사대에 따르면 이랬다. 그동안 하늘산의 경비는 더욱더 강화되었다. 사악한 무위왕의 계략대로 물수정을 훔친 고블은 대역 죄인으로 몰려 있었고, 누구든 고블을 잡으면 큰 상을 받는다. 어린 망매들까지 ‘지겹도록 비가 오는 건 악당 고블 탓’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또한 청룡은 지금 물수정을 도둑맞아 심기가 불편하고, 그런 청룡의 노여움을 살까 봐 모두 몸을 사린다. 모든 망매는 오로지 열심히 일하는 데에만 몰두해야 하며, 아름답거나 즐거움을 주는 모든 것은 더욱 강력히 금지된다. 망매계는 그 어느 때 보다 팽팽한 긴장으로 휩싸여있다.

   “음, 생각보다 상황이 더 안 좋군.”

   “장군께서 청룡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폭로해도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무위왕에 대한 망매들의 잘못된 믿음이 너무나 굳건합니다. 왕의 말이라면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니까요.”

   결사 대원의 말에 고블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하,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심각한 대화를 들으며 몽돌이는 생각에 잠겼다. 

   ‘가짜 전설, 가짜 청룡······. 망매들은 진짜보다 가짜를 더 잘 믿는구나.’

   요조는 어른들의 회의가 지루한지 몸을 배배 꼬았다. 

   “몽돌아, 우리는 나가서 노는 거 한 번 해보자. 전에 네가 하던 달걀 던지기 좀 가르쳐 주라.”

   “응? 응.”

   어른들 틈에서 딱히 할 게 없었던 몽돌이는 요조를 따라나섰다. 하지만 내심 요조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한시라도 빨리 아버지를 구할 방법을 찾아야 할 판에 철없는 어린애처럼 놀자고만 하니 말이다. 요조는 동그란 돌멩이를 주웠다. 

   “몽돌아, 이거 어떻게 하냐고.”

   몽돌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힘을 빼야 한다니까? 힘이 들어가면 망해.”

   “알았어. 이렇게 하면 돼? 봐봐.”

   그러더니 무턱대고 돌멩이를 위로 휙 던졌다. 손만 뻗으면 받을 수 있었는데도 돌멩이는 그대로 바닥에 뚝 떨어졌다. 누군가가 요조의 팔을 확 잡아당겼기 때문이다. 

   “아야!” 

   요조 엄마였다. 

   “아! 아파! 엄마, 왜 그래?”

   “요조 너! 인간 세상에 갔었다며?”

   이미 다 알고 온 눈치였다.

   “아니, 그게······.”

   요조는 어떻게 대꾸할지 몰라 얼버무렸다. 요조 엄마는 이마에 핏대까지 세우고 눈을 부라렸다. 

   “넌 가만 있어! 몽돌이 너!”

   요조 엄마가 이번에는 몽돌이를 보고 팩 소리쳤다.

   “너 인간이라며? 난 그것도 모르고. 네가 요조 아빠한테 술 먹인 게 사실이니? 술 먹여서 너네 포도청에 팔아넘기려 했다고? 그래! 도깨비를 팔아넘기면 얼마나 준다디? 응?”

   친절했던 요조 엄마에게 그런 표정이 있을 줄이야. 어안이 벙벙하고 정신도 아득했지만 일단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해요, 아주머니. 하지만 그건 오해예요. 팔아넘기다니요. 그런 거 아니에요.”

   “오해? 허! 술에서 깨보니 온 동네 인간들이 몰려와서 구경하고 있었다던데? 빨간 머리카락을 보고 누가 신고하는 바람에 포도청에서 잡으러 오고 있었다나? 다행히 그 전에 빠져나왔으니 망정이지.”

   몽돌이와 요조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휼 대장과 군사들이 그런 일을 당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술에 곯아떨어지게 하는 것만 생각했지, 그 이후의 일은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입에 엿을 물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 말도 못 하는 몽돌이에게 요조 엄마는 있는 대로 쏘아붙였다.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너 그러는 거 아니다. 우리 요조는 널 친구라고 얼마나 챙겼는데. 어휴, 속상해. 이런 게 배신이지 뭐야? 배신자 고블 하고 다를 게 뭐냐고!”

   “엄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런 거 아니야!”

   “시끄러워!”

   소리를 내지른 요조 엄마는 다짜고짜 요조의 팔을 잡아채 갔다. 요조는 엄마에게 질질 끌려가며 소리쳤다. 

   “몽돌아, 몽이를 데려가. 어떻게 하는지는 알지? 내가 하던 대로 하면 돼!”

   엄마한테 잡힌 요조는 계속 뒤돌아보았다.

   “알았냐고! 대답해!”

   “그래······. 알았어.”

   몽돌이는 멀어지는 요조를 착잡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고마워, 요조야.”

   자꾸 놀자고만 하는 요조에게 잠시나마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게 미안했다. 그제야 망매는 원래 노는 걸 좋아하고 흥이 많다고 했던 고블의 말이 떠올랐다. 

   “맞아, 그랬지. 지금은 노는 것도 다 금지돼 있다고 했지.” 

   자기 생각만 한 것 같아 요조에게 더 미안했다. 요조 엄마한테도 본의 아니게 속이고 걱정 끼친 것 같아 죄송했다. 몽돌이는 완전히 풀이 죽었다. 어디선가 몽이가 다가왔다. 몽돌이는 몽이의 등을 쓰다듬고서 속삭이듯 말했다. 

   “몽아, 몽아, 털 하나 다오.”


   집에 오니 더 난리가 났다. 마을 사람들이 몽돌이네 집 마당에 우르르 모여 있었다. 다들 단단히 벼르는 얼굴이었다. 어리둥절한 몽돌이에게 사람들이 퍼붓기 시작했다.

   “어이! 엿장수! 너 도깨비를 부린다며?”

   “야! 몽돌이! 네 아비가 도깨비라던데? 진짜냐?”

   “그래서 아비가 없어졌나? 자기가 살던 도깨비 나라로 갔구만, 그래.”

   “그럼 이 녀석도 혹시 도깨비 아니야?”

   사람들은 한꺼번에 달려들어 몽돌이의 머리카락을 뒤졌다. 빨간 머리카락을 찾는 거였다. 그때 버럭 소리가 들렸다.

   “지금 뭣들 하는 거엿! 그만두지 못해!”

   고산댁 할머니였다.

   “아니, 할머니. 저놈이 도깨비 자식이라니까요? 편들 걸 편들어요.”

   “이런 본 데 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어디서 버르장머리 없이 어른한테 대들어! 엉?”

   우렁우렁한 고산댁 할머니의 호통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도깨빈지 도둑놈인지 제 마음대로 들어와서 몰래 술 훔쳐 먹은 걸 가지고 누굴 탓해! 있을 때는 꼼짝도 못 하던 것들이 어디서 애먼 애를 잡아? 누구여? 누가 도깨비 자식이다 뭐다 헛소문을 만든 거여? 내 포도청에다가 당장 일러바칠 테니까! 어여 나와 보라고!” 

   고산댁 할머니의 말에 입 하나 뻥끗하는 사람이 없었다. 괄괄한 기세에 눌린 사람들이 저마다 구시렁거리며 돌아갔다. 그제야 고산댁 할머니가 털썩 주저앉았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괜찮다. 내 힘이 달려서 그래.”

   “고맙습니다, 할머니.”

   “고맙긴! 이웃끼리 이런 것도 안 하면 어째? 어지간히 말이 되는 소리라야 말이지. 그런 헛소문은 재깍 싹을 잘라야 돼. 원래 진짜보다 헛소문이 더 빨리 도는 법이거든. 아이구, 되다. 난 그만 쉬러 갈란다.” 

   고산댁 할머니는 손을 내저으며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다. 몽돌이도 진이 다 빠졌다. 몽돌이는 평상에 벌렁 드러누웠다. 참으로 많은 일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며칠 동안 겪은 복잡하고 믿기 힘든 사건들이 몽돌이에게는 무척 버거웠다. 

   몽돌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 가장자리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망매계에서는 요조 엄마에게, 마을에서는 사람들에게 호되게 당했다. 그야말로 동네북이었다.

   그래도 그럴 때마다 몽돌이 편이 돼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요조와 고산댁 할머니가 그랬다. 속상한 순간도 있지만 믿어주고 도와주는 이들이 있어 든든했다. 게다가 아버지가 살아있고, 어디 있는지도 알게 되었지 않은가. 이런 몽돌이의 머릿속에 내내 맴도는 생각이 있었다.

   ‘진짜보다는 가짜가, 진실보다는 오해가, 사실보다는 헛소문이 더 빨리 퍼진다.’

   인간 세상이든 망매계든 마찬가지였다. 가짜 전설인 청룡이 그랬고, 요조 엄마의 오해가 그랬고, 마을 사람들의 헛소문이 그랬다. 

   ‘이걸로 이야기나 지어 볼까?’

   감았던 눈을 뜨니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까만 밤하늘에 소금을 흩뿌려 놓은 것처럼 수많은 별이 떠 있었다. 지금 아버지가 곁에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지어 들려줄지 궁금했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면 열광하던 요조의 목소리도 떠올랐다. 

   “몽돌이 네 이야기는 참 신기해. 진짜 같이 들리거든. 네가 해 주는 이야기가 실제로 눈 앞에 펼쳐지면 얼마나 멋질까? 아! 생각만 해도 소름 돋아!”

   주위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밤하늘과 몽돌이만 오롯이 마주하는 듯했다. 별들은 몽돌이를 향해 반짝이는 별빛을 부어주었다. 은은한 별빛을 받으며 몽돌이는 이야깃거리를 떠올렸다. 별처럼 무수한 상상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12) 근사한 이야기


   몽돌이는 비밀 결사대의 근거지를 매일 들락거렸다.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싶었다. 뭐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고양이 몽이의 도움으로 두 세상을 오가는 건 문제없었다. 요조는 엄마의 눈을 피해 한 번씩 들렀다 가곤 했다. 

   “야! 일어나!”

   요조가 퍽, 소리가 나게 등짝을 때렸다. 

   “아야!”

   몽돌이가 꾸벅꾸벅 졸다가 눈을 번쩍 떴다. 등이 얼얼했다.

   “너 요즘 병든 닭처럼 왜 자꾸 졸아? 밤에 잠 안 자?”

   “그게······. 요새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거 좀 생각하느라고.”

   그때 한 대원이 뛰어 들어왔다.

   “장군! 알아본 바로는, 만수 형님이 무사하신 것 같습니다! 여전히 하늘산 꼭대기 감옥에 갇혀 있지만 잘 견디고 계신 것 같습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고블이 다가와 몽돌이의 어깨를 감쌌다. 몽돌이는 가슴께에 두 손을 꼭 모아 쥐었다. 

   ‘아버지,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반드시 구해드릴게요!’

   결사대의 회의는 한층 활기를 띠었다. 

   “망매들의 마음을 돌리고 하늘산의 경비를 허술하게 만들 방법. 그것이 핵심이다.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결사 대원들은 밤낮없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지만 좀처럼 방법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 뭔가 뾰족한 수가 없을까?” 

   고블의 한숨이 깊어지던 어느 날이었다. 말을 할까 말까 내내 망설이던 몽돌이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몇 가지 짚어야 할 게 있었다. 

   “저······ 아저씨, 그런데 무위왕은 어디 살아요?”

   “하늘산 아래에 있는 왕궁에 살지.”

   고블이 대답했다.

   “하늘산의 경비가 허술해지려면 왕궁에 엄청 큰일이 생기면 되지 않을까요?”

   “음, 그럴 수도 있겠구나.”

   “엄청 큰일이면 전쟁 정도는 돼야 할까요?”

   “하하하, 전쟁? 하기야 하늘산의 군사들까지 전부 모아들이려면 전쟁 정도는 돼야겠지. 왜, 무슨 뾰족한 수가 있니?”

   “망매들의 마음을 돌리려면 청룡이 없다는 걸 믿게 하면 되겠죠?”

   “그렇지. 하지만 그게 가장 어려워. 망매들은 좀체 믿으려 하지 않을 거야. 오랫동안 세뇌가 된 탓이지.”

   “청룡이 없다는 걸 모든 망매가 알게 하려면, 전쟁에 반드시 청룡이 나타나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요?”

   “응? 청룡이 나타나도록? 어디 보자. 청룡은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당연히 나타날 수 없을 테고 그러면 모든 망매가 그 사실을 알게 되겠구나. 지금껏 속았다는 것을! 이야! 몽돌이 너 생각하는 게 보통이 아니구나!”

   고블의 칭찬에 몽돌이가 머리를 긁적였다.

   “별거 아니에요. 제가 그냥 상상하고 이야기 짓는 걸 좀 좋아해서요.”

   옆에 있던 요조가 대놓고 편을 들었다.

   “에이, 그냥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에요. 몽돌이 얘가 이야기를 얼마나 기발하게 만들어내는지 몰라요!”

   고블이 애잔한 표정으로 몽돌이를 쳐다보았다.

   “이야기라······. 네 아버지도 이야기를 참으로 실감나게 지어내셨지. 몽돌이 넌 네 아버지를 꼭 닮았구나.”

   고블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청룡이 반드시 나타나도록 하는 방법이라, 그게 가장 어려운 문제겠구나.”

   몽돌이는 입술을 감쳐물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머릿속에 그림이 화라락 펼쳐졌다.

   “청룡은 물수정을 지키죠?”

   “다들 그렇게 알고 있지.”

   “그럼 물을 다스린다는 건가요?”

   “그런 셈이지.”

   “물의 반대는 불이죠?”

   “당연하지.”

   “불을 다스리는 걸로 청룡과 맞서면요?”

   “불을 다스리는 것? 그게 뭐지?”

   몽돌이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불을 막는 해치가 불 뿜는 것쯤이야 뭐, 식은 죽 먹기지. 상상의 세계는 무궁무진한 거야. 머릿속에서는 불가능도 없고 한계도 없는 거란다.’

   “해치요!”

   몽돌이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요조가 눈을 반짝였다.

   “해치? 그게 뭐야?”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상의 동물이야. 해치는 원래 불을 막는다고 알려졌지만 내 상상 속의 해치는 불을 막 뿜어. 상상으로는 뭐든지 다 가능하거든. 너 청룡이 진짜 있다고 생각했었지?”

   “부끄럽지만 그랬지.”

   요조가 멋쩍게 고개를 끄덕였다.

   “청룡은 상상의 동물인데도 망매들은 청룡이 진짜 있다고 믿잖아. 그것처럼 해치와 거짓 소문을 이용해 보는 거야.”

   “엥?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요조와 고블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몽돌이가 다시 싱긋 웃음을 지었다.

   “저한테 이야기가 하나 떠올랐는데, 한 번 들어 보실래요?” 

   몽돌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떠올린 별처럼 많은 이야깃거리 중 하나를 풀어놓았다.


   몽돌이가 상상한 이야기는 아주 그럴싸했다. 아니, 그럴싸한 정도가 아니라 기가 막히게 훌륭했다. 고블은 몽돌이의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탁, 쳤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거!”

   고블은 벌떡 일어나 왔다 갔다 하며 안절부절못했다.

   “몽돌이가 참으로 근사한 이야기를 지어냈어!”

   격렬한 반응에 몽돌이는 그저 눈만 끔뻑끔뻑했다.

   “몽돌아, 정말 끝내주는 생각이야!”

   요조는 손뼉을 치며 폴짝폴짝 뛰기까지 했다. 고블이 걸음을 딱 멈추었다. 그리고 한 손을 높이 들고 외쳤다.

   “모두 들어라! 지금부터 몽돌이의 이야기에 맞춰 작전에 들어간다!”

   몽돌이는 얼떨떨하면서도 사정없이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자신이 지은 이야기가 실제로 쓰인다는 건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구름에 붕 뜬 것처럼 벅찬 기분이었다.

   고블은 결사 대원들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모두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사대는 몽돌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고블은 바로 옆자리에 몽돌이를 앉히고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고블이 하는 모든 지시와 지휘는 몽돌이의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었다.

   결사대는 지시에 따라 즉시 준비에 들어갔다. 먼저 말과 수레를 있는 대로 사들였다. 짚이며 대나무, 싸리나무 빗자루도 닥치는 대로 끌어모았다. 질긴 가죽끈에 쇠사슬, 붉은 천도 대량으로 구해왔다. 그러고는 밤낮으로 뚝딱거리며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망매계에 희한한 말이 떠돌았다. 

   “악당 고블이 해치를 마음대로 부린다며?”

   “해치가 뭔데?”

   “인간 세상에서 잡아 온 짐승이라는데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대. 눈은 퉁방울만 하고 온몸은 비늘로 덮인 데다가 입에서는 불을 마구 뿜어댄대.”

   “헉! 그런 무서운 짐승을 고블이 잡아 왔다고?”

   “그저께 건넛마을에서 한 망매가 봤대. 고블이 그 큰 해치를 데리고 가더래. 고블이 해치 뿔을 딱 잡으면 아 글쎄, 해치가 꼼짝없이 말을 듣는대요.”

   소문은 바람에 산불 번지듯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이야기도 나돌았다.

   “고블이 무위왕을 없애려고 해치를 잡아온 거래.”

   “하이고, 걱정할 것 없어. 왕의 군대인 천하무적 무위군이 있지 않은가?”

   “아무리 무위군이라 한들, 불을 뿜는다는 해치를 당해낼 수 있을까?”

   “해치가 거대한 불길로 무위왕을 삼켜버릴 거라던데?”

   “이거 큰일이네! 그럼 그 무시무시한 해치한테 꼼짝없이 당하는 건가?”

   “청룡이 있잖아! 하늘산 꼭대기에 있는 청룡이라면 해치를 이길 수 있을 거야.”

   “맞아! 청룡은 물을 다스리니 해치의 상대가 되겠구만.”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청룡과 불을 뿜는 해치가 싸우면 과연 누가 이길까?”

   어디를 가나 해치와 청룡의 이야기뿐이었다. ‘이야기’가 없던 망매계에 이토록 재미난 이야기라니! 이야기는 순식간에 번져 이 이야기를 모르는 망매가 없을 정도였다. 



   13) 동짓날 미끼 작전


   이야기는 무위왕의 귀에도 들어갔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이야기냐?”

   무위왕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소리질렀다. 

   “전하, 망매들 사이에 떠도는 한낱 이야깃거리일 뿐입니다. 신경 쓰실 일이 아니옵니다.”

   신하가 고개를 숙이고 정중하게 말했다. 크고 우락부락한 체격의 무위왕이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신하를 노려보았다. 

   “해치가 뭔데 이 난리인 게야!”

   “고블이 인간 세상에서 잡아온 짐승이라 하옵니다.”

   “고블? 고블이 나타났단 말이냐?”

   “예, 그렇사옵니다.” 

   “고블, 고블! 하여튼 고블이 문제야! 그놈이 이런 이야기를 퍼뜨린 것이냐?” 

   “전하, 헛소문일 뿐입니다. 해치가 전하를 공격할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청룡이 수호하는 전하가 아니시옵니까? 그런 말을 믿을 망매는 없으니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청룡 이야기에 무위왕의 이마에 잔뜩 주름이 졌다. 신하는 한결같이 태연하고 차분했다. 무위왕은 속을 끓였다.

   “고블이 어디 있는지 즉시 알아보라!”

   “예, 전하.”


   한편, 고블과 몽돌이, 그리고 비밀 결사 대원들은 열띤 회의 중이었다.

   “장군, 소문이 도성에 퍼져 망매들은 온통 해치 이야기뿐입니다.”

   “하하하, 작전대로 잘 되고 있구나! 몽돌아, 네 말대로 하니 척척 맞아 들어가는구나.”

   걱정했던 몽돌이도 한숨을 돌렸다.

   “예상대로 돼서 진짜 다행이에요. 소문이라는 건 정말 빠르네요.”

   “헛소문은 더 빠르지. 이제 가장 중요한 작전들만 남았구나.”

   “네. 지금부터는 한 번의 기회뿐이에요. 절대 실패하면 안 돼요.” 

   “정신을 더더욱 바짝 차려야겠다. 그럼 슬슬 다음 작전으로 들어가야겠지?”

   고블이 묻자 몽돌이가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다음은 미끼 작전이에요. 왕은 겁을 먹으면 먹을수록 더 많은 군대를 모을 거에요. 우린 준비한 미끼를 잘 던지면 돼요.”

   “좋았어!” 

   고블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날카로운 소리가 왕궁의 아침을 갈랐다.

   피융! 

   탁!

   왕궁 기둥에 화살 하나가 날아와 박혔다. 화살에는 서찰이 묶여 있었다. 

   “전하! 큰일 났사옵니다. 이것 보시옵소서!”

   신하가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왔다.

   “화, 화살이 날아왔는데 서찰이 묶여 있었사옵니다.”

   “뭣이라? 서찰?”

   무위왕은 화살을 받아들더니 신경질적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부리나케 서찰을 펼쳤다. 서찰에는 시뻘건 글씨가 휘갈겨져 있었다.


   

   동짓날, 

   해치의 공격을 기다려라. 


   무위왕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치켜뜬 두 눈에서 시뻘건 핏줄이 터져 나올 듯했다. 

   “고블 그놈이!”

   “전하, 진정하시옵소서.”

   “내가 진정하게 생겼느냐! 고블은 지금 어디 있느냐?”

   신하는 더 이상 차분할 수 없었다. 언제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라 어깨를 바짝 움츠렸다.

   “저, 전하의 명을 받고 지금 조사 중이옵니다.”

   “뭣이? 아직도 조사 중이라고? 뭐가 이렇게 굼뜨냔 말이다! 그런 놈 하나 못 잡고 여태 뭘 하는 거야! 에잇!”

   북! 쫘악!

   무위왕은 입고 있던 용포를 잡아 뜯고 근처에 있는 집기를 집어 던졌다.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신하들이 들러붙어 무위왕을 말렸지만 포악한 몸부림에 모두 나가떨어졌다. 찢어진 채 너덜거리는 용포를 입고 무위왕이 소리쳤다.

   “고블이 선전포고를 했다! 당장 군대를 모아라! 도성에 있는 모든 군사를 불러 모으고 최정예군은 지금부터 내 주위를 호위하라. 무예가 출중한 자는 지위를 막론하고 왕궁으로 불러들여라. 옥에 갇힌 자들이라도 상관없다. 쓸 만한 자들은 전부 풀어서 배치하라. 무기란 무기는 모조리 거둬들여라. 악의 무리가 활개 치는 것을 결코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북방, 남방의 군사들도 속히 불러들여 왕궁을 에워싸게 하라. 한 치의 빈틈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야!”

   왕궁의 모든 것이 중단되었다. 동짓날로 예고된 해치의 공격을 막는 것에 총력이 집중되었다. 정면 공격에 대비하여 왕궁 안팎으로 물샐 틈 없이 군사들이 배치되었다. 허를 찌르는 급습에 대비해서 최정예군이 왕의 주변을 둘러쌌다.

   이윽고 동지가 하루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전하, 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마지막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든 태세를 갖추었으니 왕궁에 개미 새끼 한 마리 지나가지 못할 것이옵니다.”

   “마지막 하나라니?”

   “그야 당연히 청룡이시지요. 청룡은 언제 모셔 오실 건지 여쭙겠습니다.”

   “청룡은 왜?”

   “불을 뿜는 해치를 대적할 수 있는 건 오직 물을 다스리는 청룡밖에 없사옵니다. 전하를 수호하는 청룡만이 해치를 물리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니 속히 청룡을 모셔 오심이 좋을 듯합니다.” 

   무위왕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크흠, 무얼 그리 서두르느냐? 처, 청룡은 내일 올 것이다. 여기, 왕궁 안뜰에 내려올 것이니 얼지 않으려거든 그 누구도 안뜰에 들어와서는 안 될 것이야. 알겠느냐?”

   버럭대는 목소리와는 달리 무위왕의 얼굴은 근심으로 얼룩졌다.



   14) 해치 작전


   동짓날이 밝았다. 도성 안은 간혹 개 짖는 소리만 들릴 뿐 물속처럼 고요했다. 해치와 청룡의 결투 날, 밖을 나다닐 만큼 간 큰 망매는 없었다. 

   “싸움 구경하다가 청룡하고 눈이라도 마주치면 큰일 나지.”

   “어휴, 그러다가 꽝꽝 얼어버리면 어쩌려고! 절대로 밖을 내다보면 안 돼.”

   “해치는 어떻고? 하도 뜨거워서 근처만 가도 까맣게 타 버릴걸?”

   “해치가 불을 뿜으면 해처럼 밝다는데 쳐다보다가 눈이라도 머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집에 있는 불이란 불은 전부 다 끄고 꼭꼭 숨어 있어야 해.” 

   망매들은 저마다 창문 아래에 몸을 숨기고 집 밖의 상황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조용하고 긴장 가득한 도성에 어둠이 내렸다. 

   결사 대원들은 붉은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백 필의 말을 엇갈리게 세운 다음 길고 튼튼한 가죽끈으로 하나하나 수레에 이었다. 수십 대의 수레는 쇠사슬로 한데 묶여 연결되어 있었다. 그 모양을 멀리서 보면 한 대의 거대한 수레를 백 필의 말이 끄는 것처럼 보였다. 

   수레에는 그동안 모아들인 장비가 산처럼 높이 쌓여있었다. 장비란 짚과 천을 둘둘 감아 매단 장대, 싸리나무 빗자루를 켜켜이 동여맨 막대기, 키 크고 속을 채운 대나무 더미 따위였다. 하나같이 기름에 잔뜩 절은 상태였다. 하늘로 뻗은 장비들은 수레의 고정대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흙으로 만든 두꺼비집에 나뭇가지를 꽂은 것처럼 납작한 수레에 길쭉한 장대 기둥들이 빽빽이 세워졌다. 마치 나무들이 촘촘히 자란 숲 하나를 통째로 수레에 얹어 둔 모양새였다. 

   “하!”

   구령과 함께 붉은 옷의 대원들이 일제히 말에 올라탔다. 또 다른 대원들은 횃대를 들고 수레를 에워쌌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달마저 구름에 가려진 캄캄한 밤, 말들의 ‘투르르’거리는 숨소리를 빼고는 사방이 고요했다. 몽돌이는 요조와 함께 초조한 마음으로 고블 옆에 섰다. 고블이 몽돌이를 쳐다보았다.

   “시작하면 될까?”

   “네!”

   몽돌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블은 결사 대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블 장군의 우렁찬 명령이 떨어졌다.

   “오늘은 우리가 그토록 고대하던 날이다. 우리 망매계에 뿌리박힌 거짓과 속임수를 뽑아내는 날이 될 것이다. 오늘로써 무위의 시대는 끝이다! 자! 모두 준비됐나?”

   “예! 장군!”

   “좋다! 이제 불을 붙여라! 횃불 투하!” 

   명령과 함께 수레를 둘러싼 대원들이 횃대의 불을 수레 위로 던져 넣었다. 

   화르르!

   불은 기름 먹은 장대와 대나무에 닿자마자 무서운 기세로 타올랐다. 불길은 후끈한 열기와 함께 장대 기둥 전체로 순식간에 퍼졌다. 집어삼킬 듯 거센 불길에 불을 붙인 대원들도 놀라 화닥닥 뒤로 물러났다. 

   “왕궁으로 돌진한다! 무위를 무찔러라! 붉은 대원 전원 돌격!”

   “출발!”

   “해치가 나가신다!”

   “와! 와!”

   돌격 신호와 함께 붉은 옷의 대원들이 줄을 맞추어 말을 몰았다. 수십 대의 수레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은 하나로 뭉쳐져 거대한 불길이 되었다. 불길은 백 마리의 말에 이끌려 맹렬히 왕궁으로 나아갔다. 

   우렁찬 함성과 눈부신 불빛, 이글거리는 열기와 매캐한 냄새에 잠자코 숨어있던 망매들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 둘 실눈을 뜨고 빼꼼히 밖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해, 해, 해치다! 정말 해치가 나타났다!”

   “엄마야! 저거 좀 보라고!”

   “흐어억! 크다 크다 하더니만 저렇게 클 줄이야!”

   “아이고, 무서워라!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니야?”

   “왕궁이 홀라당 다 타버리겠어!”

   누가 봐도 무시무시한 해치, 그 자체였다! 도성 전체를 뒤덮은 완벽한 어둠에 홀로 불꽃을 휘날리며 전진하는 거대한 몸집! 불타는 수레를 이끌며 한데 펄럭이는 갈기! 높은 장대 기둥에서 타오르며 온몸으로 불을 내뿜는 뜨거운 불길!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감히 대적 못 할 해치로 완벽히 변신한 것이다! 

   불꽃은 바람에 흩날리며 시커먼 연기를 뭉게뭉게 피워 올렸다. 진정 살아 숨쉬는 해치 같았다. 빛 하나 없는 어둠은 해치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태양처럼 눈부신 화염은 칠흑같이 캄캄한 동짓날이었기에 더 빛을 발했다. 실패하면 안 되는 단 한 번의 작전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몽돌아! 됐어! 됐다고! 대성공이야!”

   요조가 환호성을 질렀다. 몽돌이는 자기 상상보다 더 크고 무시무시한 해치의 등장에 넋이 나간 듯했다. 그 정체를 아는데도 막상 무시무시한 불길을 마주하니 온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러다 서서히 가슴이 벅차올랐다. 설렘과 뿌듯함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몽돌이 너 진짜 대단해!”

   요조의 칭찬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환상적인 광경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해치, 정말······ 멋지다!”

   몽돌이 입에서 저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틈만 나면 상상하고 만들어내던 게 이야기였다. 이야기 짓는 순간은 어찌 보면 유일하게 마음껏 놀고 쉬는 시간이기도 했다. 동네 꼬마들에게 들려주던 게 다였던 그 이야기가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광경은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사내 녀석이 시시껄렁한 이야기나 짓는다며 핀잔 듣는 게 일이었다. 겁 많고 숫기 없다며 보는 어른마다 혀를 차기도 했다. 그런 몽돌이가 지금, 그 누구도 대적 못할 전설 속의 해치를 만들어 낸 것이다. 활활 불타는 해치는 천하제일이라는 무위군과의 전쟁을 앞두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몽돌이가 지어낸 환상적인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다!

   해치의 등장에 망매들은 홀린 듯이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왕궁으로 돌진하는 해치가 어떻게 청룡과 격돌할지 흥미진진한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저마다 청룡의 날개 끄트머리라도 보인다 싶으면 잽싸게 눈을 가릴 요량이었다. 

   붉은 옷의 대원들은 뜨거운 불길을 이끌고 왕궁 가까이 다가갔다. 날카로운 긴장감만 감돌던 왕궁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해치가 왔다!”

   “전원 공격 준비하라!”

   “겁먹지 마라! 물러서면 안 된다!”

   무위의 군사들은 왕궁을 향해 다가오는 엄청난 화염을 보고 기겁을 했다. 이글이글 타는 불길이 왕궁을 통째로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매캐한 연기를 뿜으며 공격해 오는 해치를 보자 군사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왕궁 안뜰이 있는 왕의 처소 쪽을 계속 힐금거렸다. 어서 빨리 청룡이 내려와 해치를 상대해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전하! 해, 해치가 왕궁을 덮치기 직전입니다!”

   한 신하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무위왕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안절부절못했다.

   “전하! 청룡은 도대체 언제 내려오신단 말입니까?”

   “이대로 있다가는 왕궁이 불바다가 될 것입니다! 전하!”

   “어서 빨리 청룡을 불러주시옵소서!”

   신하들이 앞다투어 무위왕을 재촉했다. 

   “에잇!”

   그 순간, 무위왕이 왕관을 거칠게 벗더니 바닥에 내팽개치는 게 아닌가!

   챙그랑, 챙채르르르.

   왕관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무위왕은 자신의 빨간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소리를 내질렀다. 

   “용은 무슨 용! 그딴 게 어디 있단 말이냐!”

   그 말에 신하들이 일순 멈추었다. 하나같이 얼음처럼 굳어버린 듯했다. 한 신하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 그게 무슨?”

   “애초에 용이 없는데 어떻게 데리고 오라는 거냐!”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어떻게!”

   신하들은 경악했다. 충격을 정통으로 받은 그들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무위는 입고 있던 용포를 잡아 뜯으며 바락바락 괴성을 질렀다. 

   “멍청한 것들! 무지한 것들! 나만 볼 수 있고 전부 얼음으로 변한다는 말을 어찌 믿는단 말이야? 한 번도 못 봤는데 곧이곧대로 믿다니 네놈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겠느냐! 제 마음대로 덜컥 믿어 놓고는 이제 와서 용을 보여 달라니! 참으로 어이가 없구나! 네놈들은 당해도 싸! 싸단 말이다! 우하하하!”

   무위는 정신 나간 것처럼 웃어댔다. 어떤 신하는 절망의 눈물을 흘렸고 어떤 신하는 눈을 뒤집으며 쓰러졌다. 자신들이 지키는 왕이 그 지경인 것도 모르고 군사들은 해치와 맞닥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왕궁 가까이 다다르자 해치가 서서히 속도를 늦추었다. 붉은 대원들은 동시에 말에서 뛰어내렸다. 일제히 가장자리로 물러선 다음, 신호와 함께 줄지어 선 말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히히이힝!

   푸르르르!

   가장자리의 말들이 화들짝 놀라 뛰자 서로 연결된 다른 말들도 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멈칫하던 해치가 전속력으로 왕궁으로 돌진하는 모양새였다. 붉은 대원들이 몰 때와는 달리, 이쪽저쪽으로 왔다 갔다 하며 군사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 수레와 말을 연결한 기다란 가죽끈이 서서히 녹아내렸다. 

   투두둑. 툭툭.

   가죽끈이 녹아서 끊어지자 백 마리의 말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말들은 사방팔방으로 달아났다. 이미 엄청난 속도로 돌진하던 수레는 앞에서 끄는 말이 없어도 속도가 줄어들지 않았다. 불타는 수레는 그대로 왕궁을 향해 나아갔다. 

   “으악! 해치가 달려든다!”

   “정신없이 날뛰면서 쳐들어온다!”

   “막아라! 무조건 막아야 한다!”

   “무위군은 총공격하라!”

   왕궁의 군사들은 해치를 향해 총공격을 퍼부었다. 화살과 창, 대포와 방망이들이 허공을 갈랐다. 무위군의 무기들은 불타는 장대를 매단 수십 대의 수레에 맥없이 꽂혔다.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청룡은 결국 내려오지 않았다. 불과 물의 대결이 예고되었던 동짓날 밤, 망매들의 세상 어디에도 전설의 동물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15) 하늘산 꼭대기 감옥


   청룡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왕궁으로 돌진한 해치가 사실은 말과 수레였다는 것도 드러났다. 달이 구름을 벗어났을 때, 모두가 그 광경을 또렷이 보았다. 

   망매들은 해치가 가짜였다는 것에 크게 안심했다. 그러나 청룡이 가짜였다는 사실에는 엄청나게 허탈해했다. 이제껏 자신들을 감쪽같이 속인 무위왕에 대한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다. 

   “그런 새빨간 거짓말로 우릴 속였단 말이야?”

   “그런 위선자가 왕이라고? 말도 안 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무위를 쫓아내자! 거짓말쟁이 사기꾼을 끌어내리자!”

   망매들은 무위를 몰아내기 위해 결사대와 함께 우르르 왕궁으로 쳐들어갔다. 왕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르던 걸 생각하니 억울해서 참을 수 없었던 거다. 왕궁으로 밀고 들어온 망매들은 왕의 처소를 점령했다. 

   왕의 처소는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망매들에게는 철저히 금지된 휘황찬란하고 멋들어진 온갖 보물과 예술품들이 그득그득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별의별 재료로 만든 술병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꿀이 뚝뚝 떨어지는 오만가지 달콤한 간식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세상에! 우리한테는 금지라고 해 놓고 저 혼자 실컷 누리고 살았잖아!” 

   “무위! 이 괘씸한!”

   “잡기만 해 봐라. 내 가만두지 않을 테니!”

   망매들의 분노는 대폭발했다. 모두 이를 부득부득 갈며 왕궁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어디에도 무위는 보이지 않았다. 

   “없어!”

   “벌써 도망친 거 아니야?”

   “끄악! 열불 나서 못 살겠네!” 


   근거지에 있던 대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작전 성공이다! 와와!”

   기쁨의 환호를 일순간에 잠재운 건 요조의 한마디였다.

   “아직 안 끝났어요. 몽돌이 아버지 구하러 가야죠! 그게 제일 중요하잖아요. 빨리 출발하자고요!”

   요조의 말에 일행은 기쁨을 뒤로하고 즉시 하늘산으로 향했다. 요조와 몽돌이는 고블을 앞세운 결사대와 함께 부지런히 산을 올랐다.

   하늘산 꼭대기는 휑했다. 신전 입구를 지키던 무위군들이 해치와의 전쟁에 동원되어 내려갔기 때문이다. 신전은 하늘산 꼭대기에 있는 거대한 자연 동굴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모두 신전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신전 내부는 눈부시게 하얬다. 온통 암석이라 할지, 보석이라 할지 모를 빛나는 하얀 돌로 되어 있었다. 천장은 바가지를 엎어 놓은 것처럼 둥근 모양이었고 바닥은 편평했다. 하얀 신전은 그야말로 딴 세상처럼 고요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발소리가 동굴 전체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텅 비어있는 공간 한가운데에는 작은 옹달샘이 하나 있었다. 고블은 옹달샘으로 다가갔다. 보기에는 작은 샘이지만 그 속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다고 했다. 고블이 옷 속에 감추어 둔 물수정을 꺼냈다. 갓난아기 주먹만 한 구슬은 먼지 묻은 눈덩이처럼 탁한 잿빛이었다. 

   ‘저렇게 작은 구슬에 그렇게 엄청난 힘이 있다니!’

   몽돌이는 물수정을 보고 내심 놀랐다. 고블이 물수정을 옹달샘 위에 조심스럽게 올렸다. 물수정은 가라앉지 않고 동동 떠 있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칙칙하고 탁하던 구슬이 마법처럼 영롱한 푸른색으로 변한 것이다!

   “와아! 아름답다!”

   몽돌이는 그 오묘한 빛깔에 감탄했다. 물수정은 홀로 빛나지 않았다. 뿜어져 나온 푸른 빛이 천장과 바닥에 닿아 하얀 동굴 전체가 청아한 하늘빛으로 신비롭게 빛나기 시작했다. 황홀하고 아름다운 빛과 색의 향연이 모두의 마음을 감동으로 물들였다.

   “드디어 물수정이 제자리를 찾았구나.”

   고블의 목소리도 벅차올랐다.

   “그럼 가뭄이 끝나겠네요?”

   “그럼 비가 그치겠네요?”

   몽돌이와 요조가 동시에 말했다. 

   “그래. 이제 두 세상 모두 원래대로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물수정을 훔치면 무위가 쫓겨날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내가 괜스레 사람들과 망매들만 힘들게 한 거야. 그 벌은 달게 받아야겠지······. 자, 이제 몽돌이 네 아버지를 구하는 일만 남았다. 감옥으로 가자. 이쪽이다.” 

   몽돌이와 요조, 그리고 대원들은 신전 안을 두리번거렸다. 이 아름다운 공간에 감옥은 어울리지도 않을뿐더러, 감옥이 있을 만한 곳도 보이지 않았다. 고블은 옹달샘 너머에 있는 맞은편 벽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벽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후’하고 입김을 불었다. 

   스윽, 슥.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동굴 벽이 저절로 열렸다. 그것은 하늘산 감옥으로 통하는 쪽문이었다.

   “오오! 진짜 신기하다!”

   몽돌이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입김 한 번에 두꺼운 암석 문이 열리다니. 

   “지금 그런 거 감탄할 때야?”

   요조가 흘겨보자 몽돌이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일행 모두는 신전 뒤에 감추어진 쪽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쪽문 안쪽은 캄캄한 통로였다.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 정도로 좁았다. 앞사람의 옷깃을 잡고 모두 한 줄로 서서 통로를 따라 들어갔다. 통로는 신전의 둘레를 따라 도는 모양으로 길게 길게 이어져 있었다. 함께 걷는 사람이 없으면 그대로 포기하고 주저앉을 만큼 먼 길이었다. 하늘산 감옥은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실감 났다. 마침내 갑갑한 통로가 끝나고 한층 넓은 공간이 나왔다. 통로가 끝난 그곳이 바로 감옥이었다.

   “아버지?”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 몽돌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암흑 속에서 몽돌이는 고블의 옷깃을 꽉 쥐었다. 뭔가 이상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희미한 형체가 보였다. 한 대원이 횃불을 찾아내어 불을 밝혔다. 

   “아버지!”

   열린 감옥 문 안에 몽돌이 아버지 만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뒤에 또 다른 형체가 서 있는 게 아닌가! 그 형체는 왕궁에서 죽기 살기로 도망친 무위였다! 무위는 우락부락한 팔로 만수의 목을 옭아매고 있었다.

   “끄허어헉! 모, 몽돌이? 설마!”

   뜻밖의 장소에서 아들을 본 만수는 헛것이라고 여겼다.

   “아버지! 으흐흑. 아버지! 아버지이이!”

   몽돌이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저 아버지를 목 놓아 부르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이 년 만에 만난 만수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깡말라 있었다.

   “몽돌아! 네가 왜? 네가 어떻게 여기 있어? 응?”

   만수는 놀라고도 안타까운 마음에 몽돌이를 다그쳤다. 무위가 힘을 줘 목을 더 옥죄었다. 팔 하나의 힘에도 만수는 허수아비처럼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았다. 무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조용해! 뭐가 이리 시끄러워!”

   “무위! 고작 한다는 게 인간을 인질로 삼는 것이냐!”

   고블이 몽돌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너야말로 인간의 힘을 빌려 나를 모함했겠다?”

   무위가 다른 손으로 날카로운 징이 박힌 방망이를 땅에 ‘콰쾅’내려찍었다. 방망이의 울퉁불퉁한 표면을 따라 붉은 액체가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헉!”

   몽돌이는 놀란 숨을 들이켰다. 붉은 액체가 흥건한 바닥 모퉁이에 엄청난 덩치의 거인이 쓰러져 있었다. 감옥을 지키는 자기 심복마저 처치한 모양이었다. 무위가 몽돌이를 보고 야비한 웃음을 지었다.

   “이런, 많이 놀랐나 보지? 잘 봐 둬라. 이게 바로 배신자의 최후니까. 네 아비를 감시하라고 붙여놨더니 이제 와서 네 아비를 도우려 하지 뭐냐? 그러니 제거할 수밖에.”

   만수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이 잔인한 놈 같으니라고! 몽돌아, 어서 여기를······.”

   만수는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다시 목이 졸렸다. 

   “아버지!”

   감옥 안으로 달려 들어가려는 몽돌이를 고블이 붙들었다. 눈앞에 아버지를 두고도 다가가지 못하는 몽돌이의 가슴은 터질 듯이 답답했다. 고블이 무위를 향해 소리쳤다.

   “인간은 우리와 관계없다. 인간들은 그만 풀어주고, 싸우려면 나한테 덤벼라!”

   “역시 내 직감이 맞았어. 네가 이 인간을 감쌀 줄 알았지. 흥! 인간 세상과 소통을 하자고? 네놈의 그 오지랖이 널 무너뜨릴 것이야. 모두 비켜! 내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이 인간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고블이 만수를 쳐다보았다. 두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고블의 얼굴이 먼저 일그러졌다. 자신의 실수로 망매계에 와서 갖은 고초를 겪는 사람, 환상적인 이야기로 여동생 자혜가 웃음 띤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사람, 자신 탓에 가족과 이 년이나 생이별해야 했던 사람. 은혜를 갚지는 못할망정 이런 고통을 겪게 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 고블에게 만수는 무언가 애원하는 눈빛을 보냈다. 눈으로 몽돌이를 가리키며 간절한 눈으로 고블을 쳐다보았다. 고블은 그 눈빛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몽돌이를 지켜달라는 뜻이었다. 만수 자신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말고 오직 하나뿐인 아들을 지켜달라는 말이었다. 고블은 눈을 지그시 감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고블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길을 터 주었다. 대원들도 고블을 따라 뒤로 물러났다. 무위는 만수를 앞세우고 감옥의 길고 긴 통로를 빠져나갔다. 



   16) 물수정을 사수하라!


   쪽문을 지나 넓은 신전으로 나가자 고블이 무위를 불러세웠다.

   “거기 서라, 무위! 여기를 빠져나간다 해도 망매계에 네가 설 땅은 없다. 너도 달리 도망갈 데가 없어 여기 온 것이 아니냐. 너의 파렴치한 속임수는 이미 다 들통났다. 버티는 건 시간 낭비일 뿐이다. 우리 대원들이 네가 무서워서 가만히 있는 줄 아느냐!”

   “우하하하하! 그래, 내가 달리 여기 온 게 아니지. 나한테는 인질이 있다는 걸 잊었느냐? 네놈이 순순히 길을 터 주는 걸 보면 이 인간하고 보통 인연이 아닌 게지. 내가 이 인간을 놓아줄 것 같으냐!”

   그때였다.

   “하, 창피하다, 창피해.”

   일행 틈에서 내내 무위를 노려보던 요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무위의 눈이 번뜩였다.

   “뭐야? 저 계집애는?”

   요조는 비웃음을 날리며 쏘아붙였다. 

   “저런 작자를 왕이라고 모신 게 창피해 죽겠네.”

   “뭣이?”

   “파렴치한 거짓말로 온 망매를 속인 것도 모자라서 이런 치사한 짓까지. 자기보다 약한 자는 악랄하게 짓밟으면서 강한 자 앞에선 꼼짝 못 하는 비겁한 작자! 하긴 자기가 얼마나 한심한 줄 알 리가 없지. 저기요, 그 욕심 덕지덕지 붙은 얼굴 역겨워서 더는 못 쳐다보겠거든요? 제발 얼굴 좀 돌리면 좋겠는데. 저런 작자를 왕이라 불렀으니 인간들이 우리를 우습게 봐도 할 말 없지. 어휴, 창피해!”

   요조의 독설에 내내 느물거리던 무위가 발끈했다.

   “하! 이 천하의 무위가 창피하다고? 그리고 뭐? 나보다 강한 놈이 어디 있다고! 누가 누굴 우습게 본다는 거야!”

   이제껏 기분 나쁠 정도로 차분하던 무위가 악을 쓰며 날뛰기 시작했다.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무위의 손아귀에서 만수가 이리저리 비틀거렸다. 혼자서는 서 있지도 못할 만큼 온몸의 힘이 풀려 있었다. 앙상하게 야윈 아버지가 풀잎처럼 휘청이는 걸 보고 몽돌이는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화를 참지 못하고 길길이 날뛰는 무위 따위 더는 두렵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자기 잘못을 모르는 추악하고 비겁한 괴물에 불과했다. 그런 괴물에게 아버지가 잡혀있다는 사실이 분하고 원통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몽돌이의 얼굴이 서서히 달아올랐다. 기진맥진한 만수와 몽돌이의 눈이 마주쳤다. 만수가 젖은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눈물에 몽돌이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나는 아버지를 구하러 여기까지 왔어. 나는 더 이상 숫기 없고 겁 많은 몽돌이가 아니야. 겁내지 않겠어! 물러서지 않겠어! 바로 지금이 그래야 할 때야!’

   몽돌이는 주먹을 불끈 쥐고 다짐했다. 그리고 무위를 향해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우리 아버지 놔 줘! 대신 내가 갈 테니까! 아버지 대신 나를 인질로 데려가라고!”

   무위가 몽돌이를 힐끔 돌아보더니 입을 비죽이며 비웃기 시작했다.

   “끄하하하하! 효자 났네, 효자 났어. 이거 눈물겨워서 볼 수가 없구만.”      

   무위는 몽돌이에게 가까이 오라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몽돌이는 울분으로 부들부들 떨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몽돌아!”

   뒤에 있던 요조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때였다. 

   “이노무 자식! 어딜 오는 거야! 저리 가지 못해!”

   만수가 갑자기 몽돌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른 것이다. 

   “아버지······.”

   만수의 처절한 외침에 몽돌이가 멈칫했다. 만수는 이글이글 타는 눈으로 몽돌이를 쳐다보았다. 그런 다음 목을 뒤틀어 눈 깜짝할 사이에 무위의 팔을 냅다 깨물었다.

   “으악!”

   급작스러운 공격에 무위가 비명을 질렀다.

   “가! 어서 가! 여길 빠져나가라고!”

   만수는 팔을 문 채로 있는 악착같이 버티며 몽돌이를 향해 울부짖었다. 무위는 들고 있던 방망이를 떨어뜨리고 만수를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 틈을 타고 결사 대원들이 무위를 향해 벼락같이 달려갔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대원들이 무위를 덮치려는 바로 그 순간. 

   “크아악!”

   위기를 감지한 무위가 괴성을 지르며 만수를 떨쳐냈다. 그런 다음 눈을 희번덕거리며 씩 웃더니 난데없이 옹달샘으로 몸을 날리는 게 아닌가!

   “아!”

   모두가 동작을 멈추고 일순 정지했다. 무위의 손에 물수정이 들려 있었다! 

   “음하하하! 나 혼자 망할 순 없지. 그동안 쌓은 내 공적은 깡그리 무시하고 헌신짝처럼 나를 버린 망매들, 그리고 나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인간들 모두! 동시에 똑같이 망해야 공평하지. 안 그래? 이깟 구슬이야 깨버리면 그만이야. 세상이 어찌 되든 내 알 바 아니니까. 이 모든 건 나 때문이 아니거든. 모든 건 고블! 바로 네 놈 때문이다!”

   무위는 물수정을 들고 위협했다. 물수정이 깨지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닐 거라는 것이다. 그때, 무위가 물수정을 허공으로 툭 던져 올렸다. 

   “앗!”

   모두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무위는 아슬아슬하게 물수정을 받았다. 

   “휴우.”

   안도의 숨이 터져 나왔다. 무위는 일부러 물수정을 던졌다 받았다 하며 슬슬 약을 올렸다. 마치 자기가 이 세상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세상의 운명이 자기 손에 달려있다는 걸 과시하는 것처럼. 

   물수정이 공중으로 휙휙 올라갔다가 떨어질 때마다 지켜보는 모두의 심장도 따라 철렁거렸다. 몽돌이는 동그란 물수정이 위태위태해지는 순간을 뚫어지게 지켜보았다. 

   틈만 나면 떠올리던 상상, 무얼 보든 머릿속에 그려내던 이야기. 습관처럼 눈앞의 장면에서 이야기를 떠올리던 몽돌이에게 어김없이 무언가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가능할 것 같았다. 아니, 분명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몽돌이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일이었으니까. 몽돌이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애써 밝은 표정을 지은 다음 만수를 불렀다. 

   “아버지.”

   마치 마당 평상에 앉아있을 때처럼 편안한 목소리였다. 만수가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달걀 던지기 알죠?”

   몽돌이의 말에 만수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눈이 커다래지는가 싶더니 빙긋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먼저 힘을 빼야지.”

   몽돌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힘이 들어가면 망하니까요.”

   아버지와 아들이 주고받는 말에 무위는 코웃음을 쳤다. 웬 시답잖은 소리냐는 표정이었다. 무위는 물수정을 갖고 놀듯 휙휙 던지고 받았다. 모두의 눈이 경악에 가득찬 채 자기에게 쏠려 있는 그 순간을 한껏 즐기는 중이었다. 물수정은 어느새 빛을 잃고 다시 탁해져 있었다. 

   후.

   몽돌이는 숨을 내쉬었다.

   후우.

   만수도 숨을 뱉었다.

   무위가 물수정을 던져올리는 찰나, 몽돌이는 만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신호를 보냈다. 물수정이 휙 소리를 내며 떠오른 순간, 몽돌이가 제자리에서 팍 튀어 올랐다. 그리고 공중으로 손을 쭉 뻗었다. 몽돌이의 손이 허공에 떠 있던 물수정을 ‘툭’ 쳤다! 물수정이 반대쪽으로 훅 날아갔다.

   “아! 안돼!”

   “으아악!”

   모두가 비명을 질렀다. 물수정은 빨려 들어가듯 만수의 손으로 날아갔다. 

   탁.

   ······.

   만수의 두 손이 조개가 입을 다물 듯 물수정을 품었다. 모두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정적이 흘렀다. 

   모든 것이 정지했다.

   모두의 눈이 만수의 손에 가 있었다. 만수가 두 손을 살며시 펼쳤다. 

   물수정이 찬란한 빛을 뿜으며 빛나고 있었다!

   “와! 와!”

   “잡았다! 잡았어!”

   “우와아!”

   모두 환호를 질렀다. 결사 대원들은 득달같이 무위를 덮쳤다. 무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모든 것을 포기한 무위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지막 발악까지 실패하자 그제야 맥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만세! 만세!”

   “몽돌이 만세! 만수 형님 만세!” 

   고블과 요조, 대원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외쳤다. 

   몽돌이는 만수를 바라보았다. 만수가 몽돌이에게 달려왔다. 

   “아버지!”

   “몽돌아! 아! 우리 아들!”

   아버지와 아들이 힘껏 부둥켜안았다. 그 이상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꽉 끌어안은 손을 풀지 않았다. 망매들의 환호 소리가 하늘산 너머 멀리멀리 울려 퍼졌다.

 


   17) 이야기꾼 몽돌 선생


   “어머니, 제가 장터에 나갈게요.”

   “으응? 무슨 소리야? 이게 어떻게 얻은 자린데! 이제 우리 동네 엿장수는 나라고. 어머니는 장에 나가서 엿 파는 게 참말 재미있구나. 넌 어서 서당에 가야지.”

   어머니는 몽돌이가 멘 엿판을 뺏어 들었다.

   “글자 배우는 거 영 재미없다고요.”

   싸리문으로 고산댁 할머니가 설렁설렁 걸어 들어왔다. 고산댁 할머니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한소리를 했다. 

   “예끼, 이 녀석아! 글자를 재미로 배우냐? 나중에 이야기 서책 쓰라고 네 어머니가 보내주는 거구먼. 훈장님이 널 예쁘게 봐서 특별히 가르쳐 준다 했으면 고맙습니다, 하고 배워야지. 쯧쯧, 저렇게 공부를 게을리 해서야 원.” 

   입이 삐죽 나온 몽돌이를 아버지가 달랬다. 

   “몽돌아, 너 서당 갔다 오면 내 달걀 삶아 놓으마.”

   “어? 오늘 또 낳았어요?”

   “그래, 이번에 날아온 닭은 달걀을 아주 잘 낳는구나. 어디서 닭이 자꾸 날아드는지는 몰라도 정말 신통방통하다니까?”

   닭 이야기에 몽돌이는 짐작 가는 데가 있었다. 서당으로 걸어가며 몽돌이는 지난 몇 달을 떠올렸다. 

   물수정은 하늘산 꼭대기 옹달샘에 다시 놓였다. 그러자 마법처럼 몽돌이네 마을과 온 나라에 비가 내렸다. 쩍쩍 갈라졌던 논바닥과 우물에 물이 찼고 냇가에도 콸콸 물이 흘렀다. 망매계를 덮고 있던 먹구름은 걷히고 밝은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망매계에는 이것 말고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요조의 말에 따르면 이랬다.

   무위는 축축한 지하 감옥에 갇혀 죗값을 받고 있다. 몇 백년은 갇혀 있을 거다. 악당이라는 누명을 썼던 고블은 망매들의 영웅이 되었다. 해치 사건을 겪은 모든 망매들이 고블을 칭송하고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물수정을 훔친 사실 때문에 재판을 받아야 한다. 

   비어있는 왕의 자리는 채워지지 않았고 당분간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망매들은 왕궁을 자유롭게 드나들게 되었다. 지위의 높고 낮음 없는 새로운 망매계가 열린 것이다. 이제 망매는 모두가 귀하고 평등하다. 예전처럼 마음껏 흥겨워하고 마음껏 즐기는 행복한 망매가 된 것이다. 

   딱 한 명, 안절부절못하는 이가 있었는데 바로 요조 엄마였다. 요조 엄마는 몽돌이만 보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몽돌아, 네가 그런 멋진 이야기를 생각한 줄도 모르고 그렇게 몰아세웠으니. 아줌마가 정말 미안해.”

   “아니에요. 괜찮아요.”

   사과를 하고도 요조 엄마의 미안한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하루는 요조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요조야, 내가 몽돌이한테 두고두고 은혜를 갚고 싶어.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몽돌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아니?”

   “몽돌이가 좋아하는 거? 달걀!”

   “달걀? 음, 그렇단 말이지?”

   다음 날 몽돌이 집 마당에 닭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난데없이 들어와 홰를 치는 닭을 보고 만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 갑자기 닭이 어디서 날아왔지? 도깨비 장난도 아니고 참 희한한 일도 다 있네.”

   닭은 몽돌이 집 뒤뜰에 자리를 잡았는데 알을 낳지는 못했다. 며칠 후 날아든 닭은 가끔 알을 낳았고, 그저께 새로 들어온 닭은 꼬박꼬박 알을 낳았다.

   “이제 우리 몽돌이, 달걀 하나는 원 없이 먹겠네.”

   몽돌이네 집에 매일 알 낳는 닭이 날아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나서야 요조 엄마는 간신히 마음을 놓았다.


   글공부는 더뎠지만 몽돌이의 이야기 솜씨는 날이 갈수록 늘었다. 동네 꼬마들 뿐 아니라 이웃 마을 어른들까지 이야기를 들으러 찾아올 정도였다.

   “자자, 여러분. 지금부터 우리 몽돌 선생의 이야기가 시작되겠습니다.”

   “와! 와!”

   “자, 모두 조용!” 

   한 아저씨가 분위기를 잡으면 몽돌이가 성큼성큼 등장했다. 모두 숨을 죽이고 몽돌이가 입을 떼기를 기다렸다.

   몽돌이는 입술을 감쳐물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머릿속에 그림이 화라락 펼쳐졌다. 눈동자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서 딱 맞는 이야기를 찾아냈다. 

   “옛날 옛적 호랑이 줄무늬가 생길락 말락 할 시절에, 한 도깨비가 살았어요. 혹시 도깨비가 어떻게 생긴 줄 아는 사람?”

   “저요! 더벅머리에 뿔이 났어요.”

   “눈은 하나고 웃통은 벗고 다니지.”

   꼬마와 노인이 번갈아 대답했다. 몽돌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두 사람 다 꽝이요! 진짜 도깨비는 사람하고 똑같이 생겼다는 사실. 도깨비는 노는 걸 너무너무 좋아하는데 같이 놀아주는 사람에게는 꼭 은혜를 갚는답니다. 바로 도깨비방망이로 뚝딱, 소원을 들어주지요.” 

   “우아!”

   “그 이야기를 지금,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몽돌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모두 신기하고 심장 쫄깃쫄깃해지고 재미있는 도깨비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웃었다가 놀랐다가 조마조마해 하며 이야기 세상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저마다 표정은 달랐지만 모두 꿈꾸는 듯 행복한 얼굴인 것만은 분명했다. 

   사람들 틈에는 고산댁 할머니도 있었다. 신명 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 몽돌이를 바라보며 고산댁 할머니가 중얼거렸다.

   “아니, 저 녀석이 숫기 없던 옆집 몽돌이가 맞나? 입만 나불거려서 뭐 먹고 살려나 했더니 저렇게 훌륭한 이야기꾼이 됐네, 그려. 컬컬컬.”

   몽돌이의 이야기 속 도깨비는 흥이 많고 마음씨 착한 친구 같은 도깨비였다. 방망이를 두드리면 소원을 들어주는 도깨비 이야기는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도깨비 이야기는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전해져 온 나라 사람들이 다 알게 되었다. 

 


   18) 이야기 씨앗, 이야기꽃


   몽돌이와 요조는 모래판 둘레에 나란히 앉았다. 주황빛 노을이 하늘과 구름, 지붕과 모래판, 두 아이의 얼굴까지 발그스름하게 물들였다.

   “나 너한테 줄 게 있어.”

   몽돌이가 괜히 먼 산을 쳐다보며 말했다.

   “뭐?”

   “이거.”

   몽돌이가 내민 건 머리빗이었다.

   “어머! 정말 예쁘다!”

   물수정처럼 맑은 파란색에 오색 꽃이 새겨진 빗이었다. 요조는 머리빗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렇게 예쁜 빗은 처음 봐!”

   “마음에 들어?”

   몽돌이는 빗을 들고 좋아하는 요조를 보며 뿌듯해했다. 자꾸만 헤벌쭉 벌어지는 입을 애써 다물면서. 

   “당연하지! 너무너무 맘에 들어. 그런데 이걸 왜 주는 거야?”

   요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몽돌이는 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보답하고 싶었거든. 네 말대로 하자면 은혜를 갚는다고 할까?”

   “무슨 은혜?”

   “아버지가 사라지고 어머니는 아프고 가뭄으로 먹을 것도 없을 때, 네가 나에게 힘이 돼줬잖아. 네가 준 떡 한 보따리, 네가 해 준 말 한마디가 나한테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몰라.”

   “난 또 뭐라고. 별것도 아니었는데 뭐.”

   “진짜 힘들 때는 아주 작은 것에서도 힘을 얻는 법이거든.”

   “누가 이야기꾼 아니랄까 봐 엄청 거창하게 말하네.”

   요조는 민망한지 어깨를 으쓱였다. 

   “그뿐 아니야. 네 덕분에 아버지가 다시 돌아왔고, 어머니는 씻은 듯이 나았고, 날씨도 다 제자리를 찾았잖아. 정말 고마워.”

   “그런 걸로 따지면 우리 망매들 모두가 너한테 고마워해야지. 넌 더 큰 일을 해냈잖아. 그 은혜를 다 갚으려면 평생을 해도 모자랄걸.” 

   그 말에 몽돌이는 뭔가 할 말을 떠올렸다.

   “아, 그런데······ 우리끼리는 이제 은혜 갚는 거 그만하자.”

   “왜?”

   “친구잖아.”

   “뭐?”

   “친구끼리는 그냥 도와주는 거야. 은혜라든가 이유라든가 그런 거 상관없이. 그게 진짜 친구지. 안 그래?”

   “친······구라고?”

   “그래. 친구!”

   요조는 파란 머리빗을 어루만지며 배시시 웃었다. 몽돌이도 흐뭇하게 웃었다. 두 아이의 머리 위로 저녁달이 새초롬하게 떠올랐다.


   몽돌이가 들려주는 가지각색의 이야기는 돌고 돌아 망매계까지 전해졌다. 이야기를 처음 전해 준 건 당연히 요조였다. 요조의 입에서 전해진 이야기는 삽시간에 퍼져 망매들에게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몽돌 선생 이야기는 이래서 좋다니까? 도깨비가 이상한 괴물로 안 나오잖아.”

   “도깨비방망이는 어떻고? 무위 군사들의 무기를 요술 방망이로 둔갑시켰지. 몽돌 선생 재치가 보통이 아니시라고.”

   “자네, 몽돌 선생이 몇 살인 줄 아나?”

   “그야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겠지.”

   “무슨 소리? 열두 살 먹은 아이라는데?”

   “뭐? 열두 살짜리 어린애가 이런 이야기를 지었다고? 와! 참말로 대단하네, 대단해!”

   “내 장담하는데 장차 몽돌 선생은 전설의 이야기꾼이 될 거구먼!”

   “암, 그렇고말고.” 

   한편, 고블은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망매들에게 왕의 감추어진 진실을 알리고 망매계의 평화를 위해 벌인 일이기에 무죄라고 했다. 

   재판을 마치고 홀가분해진 고블은 이따금 만수를 찾아왔다. 둘은 함께 술을 나누는 술친구가 되었다. 

   “형님, 집에서 살림하는 맛이 어떠십니까?”

   “허허, 안사람이 말끔하게 나아서 뒤를 이어 엿장수가 되고, 나는 살림을 하니 그 재미도 쏠쏠하구만. 허허허.”

   “하하하하. 그런데 형님, 하늘산 감옥을 지키던 눈먼 거인이 형님을 도우려 했던 게 사실입니까?”

   “그 친구······ 힘이 장사인 데다 앞을 못 보니 단번에 무위 눈에 들었다더군. 청룡의 존재를 들키지 않으면서도 감옥을 지키기에 딱 맞았으니까. 캄캄한 감옥에서 그와 나는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러다 친구가 되었지. 그리 허망하게 갈 줄이야······. 이렇게 좋은 날을 눈앞에 두고······.”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망매계는 이제야 비로소 살맛이 나는데 말입니다. 형님과 몽돌이 덕분에 우리 망매들은 아름다운 것을 만끽하고 마음껏 즐기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도 생겨났지요. 그중 최고 인기는 청룡과 해치 이야기랍니다.” 

   “허허, 망매들도 이야기를 무척 좋아하더군. 거인 친구도 이야기 듣는 걸 즐겼다네.”

   “장담하는데 망매계 최초의 이야기꾼은 형님입니다.”

   “응?”

   “자혜한테 이야기를 들려주셨잖습니까?”

   “허허허.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이야기가 없을 수 없지. 이야기 안에 인생이 있고 꿈이 있고 사는 맛이 있으니 말일세. 그러니 재미난 이야기는 순식간에 퍼질 수밖에.” 

   “맞습니다. 지금도 하나의 이야기가 두 세상을 넘나들며 두루 퍼지고 있지요. 제가 꿈꾼 세상이 바로 그런 세상입니다. 사람과 망매가 소통하는 세상 말입니다. 형님과 자혜, 형님과 거인 친구, 몽돌이와 요조처럼요.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요. 요조같이 인간 세상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망매가 많아지면 말이지요.”

   고블의 말에 만수가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러고 보면 요조도 참 엉뚱한 아이야. 망매계에 이야기를 전해 준 게 요조라지?”

   “요조가 이야기 전달자가 된 셈이지요. 그렇게 호기심 많고 당돌한 아이가 불쑥불쑥 나타나 줘야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많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도깨비가 나타났다!’ 하면서 말입니다. 하하하.” 

   고블은 거나하게 취해서 돌아갔다. 


   만수는 오랜만에 아들과 평상에 누웠다. 밤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 촘촘하게 박혀있었다. 

   “몽돌아, 이렇게 너하고 다시 밤하늘을 볼 수 있는 게 꿈만 같구나.”

   아버지와 아들은 손을 꼭 잡았다.

   “그런데 몽돌아, 도깨비 이야기는 그냥 그렇게 끝나는 거냐?”

   “예?”

   “도깨비는 몇 백년을 산다잖아. 그렇다면 몇 백년 후의 사람들도 도깨비를 만날 수 있는 거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죠. 오, 그거 꽤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겠는데요?”

   “아버지가 너한테 이야기 씨앗 하나 준 거다.”

   “이야기 씨앗요? 그럼 내 이야기는 아버지한테 받은 씨앗으로 싹 틔우고 꽃 피우는 거네요? 해치 작전도 그랬거든요. 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에서 생각해 낸 거예요.”

   “이야! 이거 영광인데? 몽돌 선생의 이야기꽃이 아비의 이야기 씨앗에서 비롯됐다, 이 말이구나. 하하하.”

   몽돌이와 아버지의 웃는 얼굴 위로 밤하늘의 별빛이 축복처럼 뿌려졌다. 눈동자 가득 별을 품으며 몽돌이는 생각했다. 세상에 이야기꾼이 있는 한, 이야기 씨앗과 이야기꽃은 별처럼 무수히 피어날 거라고. 그래서 세상은 한층 더 아름답게 빛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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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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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0
「어떤 겨울밤」외 6편

어떤 겨울밤 김미혜 눈보라가 휘이잉 몰아치는 밤, 하얀 옷을 입은 눈 아이가 어깨에 소복 쌓인 눈을 털며 들어왔어. 가늘고 새하얀 손을 비비며 추워라, 추워라, 달달 떨었어. 이리 와 불을 쬐렴. 할아버지가 난로에 불을 켰어. 눈 아이 손이 흐물흐물 녹고 발목도 녹고 종아리도 녹았어. 스르르 무너져 내리는데 아, 따스해라, 따스해라 입은 녹지 않았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코코아를 내오던 할아버지는 그만 얼어 버렸어. 쨍그랑 찻잔이 깨져 버렸어. 할아버지는 얼른 난롯불을 껐어. 웃을락 말락 철창에서 빠져나온 흰둥이 요리 폴짝 조리 폴짝 배롱나무 뒤로 갈락 말락 잡힐락 말락 마당 밖으로 발을 디딜락 말락 숟가락 내던지며 달려 나와 저놈 좀 잡아라, 할아버지가 소리치면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한테 오지 마, 제발, 제발, 흰둥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도 가, 멀리 가 어둑어둑 붉어지는 논둑을 가로질러 갑니다 흰둥이가 멀어집니다 개와 늑대 사이를 달립니다 울락 말락 웃을락 말락 밤이 옵니다 족제비 일기 기름진 고기 냄새가 닭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막아요. 삼겹살 한 점이 끌어당겨요. 철커덕 철창문이 닫혀요. 오르락내리락 두리번두리번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어요. 힘이 풀려요. 잠잠해지기로 해요. 가만히 기다리면 비상구가 나타날 거예요. 어쩌나, 날이 밝아 오는데 아무 데도 뚫리지 않아요. 닭장 문이 열려요. 할아버지가 덫 안에 든 나를 안아요. 바르르 떨고 있는 나를 자동차에 태워요. 망할 놈의 족제비, 다시 잡히면 안 놔 준다, 욕하며 겁주며 구박하며 풀어 주러 간대요. 잡히기만 해 봐라, 닭이 죽어 나갈 때마다 잡히기만 해 봐라 잔뜩 벼르더니, 구불구불 강 건너 멀리 놓아 주러 간대요. 큼큼, 냄새를 맡아요. 메모를 해 둬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서는 안 되거든요. 여우양말꽃이 피었습니다 여우 양말을 알록달록 걸어 놓았으니 여우가 오겠지요? 오늘 밤에는 분홍 양말 흰 양말 맘에 드는 양말 골라 신고 발소리 숨기고 신나게 놀다 가겠지요? 양말이 시들기 전에 오겠지요? 우리 집 꽃밭에는 여우양말꽃이 여러 켤레 활짝 피었답니다 민들레 걱정 민들레를 피하려다 개똥을 밟았다 “야, 개똥을 왜 밟아?” “그럼 민들레를 밟아요?” 시 선생님이랑 꽃 보러 가면 내가 아닌 것 같다 개꿈 어둠 속에 툭 던져 놓고 쌔앵 달아나는 자동차를 쫓아가요 “멈춰요! 잊은 게 있어요!” 달려가던 자동차가 지쳐 헉헉거려요 이때다, 가속페달을 밟아요 두 발로 서서 앞을 가로막아요 창문 너머로 뺨을 핥으며 인사해요 “그냥 헤어지는 게 어디 있어요.” 나는 꼬리를 흔들며 보내 줘요 “안녕!” 앗, 이건 꿈이야 깨면 안 돼 나는 꿈속에서도 꿈꾸고 있다는 걸 알아요 어서 자, 계속 자 번개처럼 꿈속으로 돌아가야 해요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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