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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반고등어」 외 1편

  • 작성일 2023-04-07
  • 조회수 1,6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수필]




자반고등어

조현숙

갈바람에 가랑잎들이 나무를 떠난다. 그 자리에 발덧 난 햇살이 내려앉는다. 늘비한 국수 난전에서 끓어오르는 육수 냄새가 시장통에 목을 매고 사는 삶들을 둥실한 온기로 채우고 있다. 여기쯤일까? 아들 혼사 때 입을 한복을 맞추러 나선 길에는 가을을 먹는 사람들, 가을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다.

무릎에 염증을 달고 사는 남편이 시장 어귀 가로수 아래서 숨을 고른다. 힘차게 헤엄치던 푸른 바다의 시절을 저만치 밀어 놓고 누런 잎사귀들, 후두두 떨어지는 길에 우리 같이 서 있다. 노량으로 걸었어도 이만큼 오느라 가쁜 숨을 내쉬는 발밑에서 낙엽들이 부스럭 몸을 일으킨다. 작은 새 떼들이 가랑잎 파들거리며 떠는 나뭇가지 안에서 소란스럽다.

나란히 걷던 남편이 나를 앞세운다. 와그작대는 시장통에서 행여 다른 이의 통로를 막을까 걱정하는 마음이다. 그걸 알기에 잰걸음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복집으로 올라가는 상가 계단 아래 생선 좌판이 보인다. 생뚱맞기도 하다. 그나마 자반고등어, 갈치, 반건조 가자미 등속으로 구색을 맞추고 있다. 좌판을 펼친 할머니는 단단한 앉음매가 세월을 부려 깔고 있는성싶게 강단져 보인다. “사 가소. 제자리 간이라 맛있네.” 내 시선을 느꼈을까. 할머니가 자반고등어를 가리키며 말한다. 잡은 자리에서 바로 소금으로 간을 치는 고등어를 제자리 간이라고 한단다.

하늘색 납작 바구니에 큰 고등어와 작은 고등어가 한 손이 되어 얌전하게 포개져 있다. 바다의 기억을 잃은 고등어 눈이 인공눈물을 달고 사는 남편의 눈과 닮아 있다. 볼일 보고 오는 길에 사겠다고 하자 할머니의 굵은 주름살이 웃음살로 바뀐다. 흘러내린 은빛 머리카락 위로 햇살 한 줌이 반짝거린다.

자반고등어의 시간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상가 계단을 오르는 나는 바닷물에 발을 내딛는 듯 기우뚱거린다. 남편이 재바르게 잡아 주면서 안과 좀 제때 가라고 구시렁거린다. 바다와 산간의 차이만큼이나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남편과 나, 세상살이 짜고 쓴 소금을 만나 깃들고 길들이면서 이제는 말간 웃음으로 서로를 품어 줄 만큼 이력을 쌓았을까.

고등어잡이 배들이 바다를 가른다. 때를 가늠해 재빨리 둘러친 그물을 끌어 올려 벼리를 당기면 한바탕 와르르 쏟아지는 고등어들, 쉬지 않고 튀어 오르고 펄떡거린다. 함께 태평양 바다를 누볐던 눈부신 생들은 곧장 얼음창고로 던져졌다가 항구에 닿으면 등급이 매겨지고 흩어져 소금에 재워지거나 생물로 떠난다.

한 시절, 고등어는 바다를 본 적도 없고 바다로 가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푸른 바다를 보여 주느라 떼 지어 산등성이를 넘기도 했다. 동해를 떠난 고등어 떼는 소달구지나 등짐에 실려 험준 산길, 구불구불한 수렛길을 넘어 뜸 마을 어디쯤에서 한밤을 지새웠다. 바다 떠난 서러운 달빛이 꾸덕꾸덕 마를 때쯤 간잽이들은 칼을 들어 고등어 배를 가르고 붉은 속살에 왕소금을 쳐서 빳빳하던 결기를 가라앉히고 꿈을 잠재웠다.

분기탱천한 푸름을 내려놓고 조금씩 바래는 법을 배웠다. 바다가 제 몸을 졸여 만든, 단단하고 짜디짜고 반듯한 말씀을 품에 새겨 낯선 길에서도 시들부들 마르지 않고 어엿한 자태로 거듭날 줄도 알게 되었다. 치솟고 펄떡이는 것들이 삶의 소금기에 부들부들해진다고 순응이라고만 할까. 타협이라고만 할까. 미망에, 유혹에 빠져 부패하지 말라고 자신을 담금질해 온 방식이다. 숙성의 시간이고 거듭난 새로움이다.

불의한 것에 각을 세우고 찬란한 꿈을 품었던 시절이 가장의 무게에, 덜미 잡힌 생에, 부모의 이름으로 깨지고 고꾸라져 처박히던 시간도 있었다. 그때마다 고등어 두 마리는 한 손으로 부둥켜안고 시퍼런 바다의 수심이 얼마인지, 허방이 어디인지, 느닷없는 파랑은 또 언제 닥칠지 가늠하고 싸우느라 푸른 등에 물결무늬 상처를 만들기도 했다. 생존의 길 위에서 방향과 지향과 의지를 잃지 않으려고 검푸른 지표를 새긴 적도 있다.

비린 것을 좋아하는 그와 비린 것을 목에 넘기면 두드러기가 나던 내가 서로 품어서 만든 푸른 생. 촉촉하길 바랐지만, 가슬가슬하고 푸석거리는 날이 더 많았다. 서로에게 성실했지만, 마냥 따듯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서로의 염장을 질러 한숨과 분노가 허연 더께처럼 앉았던 시간인들 없었을까. 그래도 우리의 서사를 만들며 여기까지 왔다. 끝내는, 기꺼이 서로에게 염장이 되어 주면서 다독이며 살아온 생이다. 지난하고 각다분한 삶이라고 짜고 쓴 곡절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밍밍하고 싱거운 삶에는 짭조름함을 더하고 쓰디쓴 시간에는 달고 고소한 맛도 더하면서, 귀한 대접 받는 생선이 아니기에 더 애틋하게 온기를 주며 함께 걸어왔다. 고달픈 재 넘어 한고비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놓이는 게 인생길이지만, 훌쩍 커 버린 자식의 독립을 앞두고 있으니 이만하면 여기까지 무사하지 않은가.

지금 선 자리가 우리 생의 어디쯤 될지 알 수 없지만 비틀거리거나 뒤뚱거려도 한 몸이 되어 나머지 서사도 엮어 갈 것이다. 간이 쳐지면 어떠리. 생물이어도, 간고등어여도 그 누구의 밥상에서 일용할 양식이 되어 줄 것을. 그와 나, 우리 얼싸안은 생 또한 세상살이에 소박하게 스며들고 젖어 가며 누군가에는 꼭 필요한 삶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어느 난전에 놓였다가 투박한 아비의 손에 들려가는 땟거리가 되어도 좋겠다.

거칠 것 없이 바다를 누볐던 고등어들은 지쳐 죽을 때까지 팔딱거리며 뛰어오르는 걸 멈추지 않는다. 그 자유의 속성을 버리고 비린내 배인 좌판에 한 생을 뉘었다. 기꺼이 자식들의 밥이 되고자 했던 아비, 어미도 한때는 뜨거운 자유였다는 걸, 시퍼런 신념이고 열망이었다는 걸, 이제 자식들도 그들의 길에서 알게 될 것이다. 짐승의 시간이, 폭풍의 바다가, 비린내 나는 눈물이 그들의 길을 완성해 간다는 것을.

상가 건물 모서리에 걸려 있던 노을이 색색으로 고운 저고리 빛깔들을 흘리고 있다. 그중에서 한 색을 골라 몸피를 재고 셈을 치르는 동안 먼저 한복집을 나갔던 남편이 좌판 앞에 앉았다가 까만 비닐봉지에 한 생을 담아 들고 염증이 끓어오르는 무릎을 일으킨다. “쪼그리고 앉지 좀 말라니까.” 기어이 하나 마나 한 잔소리를 뱉는다.

길은 끔찍하다고 누가 말했던가. 모든 생은 길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남편이 천천히, 땅을 다지듯 걸어간다. 햇덧이 내 발걸음을 보챈다. 바다를 차오르고 등 푸른 산을 발맘발맘 걸어온 고등어 두 마리가 파시의 길 위에서 벙긋 웃고 있다.




가볍거나 무겁거나


어둠이 바림질을 시작한 하늘은 서서히 푸른 빛을 버리고 묽은 먹빛으로 물든다. 그 정갈한 담묵화에 달이 떠오르고 두어 개 별이 깜박이면 천변 광장에서는 에어로빅이 시작된다. 수십 명, 사람들이 다 같이 팔을 뻗친다. 같은 듯 다른 모양새이다. 달이라도 딸듯한 기세로 허리를 비틀며 손목에 바운스를 주는가 하면 시계추처럼 한 발을 땅에 고정하고 팔만 휘두르기도 한다. 어때도 하늘을 향하는 그 손들은 허공의 공기를 팽팽하게 당겨 들숨, 날숨을 만든다.

머리 위로 펼쳐지는 저마다의 손은 떼 지어 나는 작은 새들의 날개처럼, 허공을 날다 떨어지는 낙엽 비처럼 허허로운 여백에 무늬를 그린다. 튀어 오르는 공이 되어 짊어진 짐을 힘껏 퉁겨 가벼이 날려 버리는 시간이다. 밤의 천변에서 벌이는 에어로빅은 하늘과 공간과 땅을 흔들어 어둠의 빛깔을 덮어쓴 물상들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하루의 흔적들로 꽉 찬 공간에 숨통을 터준다. 천변의 풀과 나무, 물과 돌과 벌레들은 땅을 밟고 굴리고 차오르면서 만나고 보듬고 어우러진다.

경쾌한 음악이 바람에 섞여 흐른다. 사람들은 모였다가 다시 흩어지고 줄을 맞췄다가 흐트러뜨린다. 너와 나는 앞과 뒤에서 서로의 등과 배를 보고, 보이면서 스텝을 밟는다. 양옆으로 어깨를 세우고 서로의 옆구리 살도 슬쩍 훔쳐보면서 괜히 안도의 웃음을 날리기도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반대로 돌고 마는 그녀의 미간에는 사뭇 진지한 주름이 잡힌다. 말을 하지 않아도 이야기가 흐른다. 각을 맞춘 군무처럼 절도 있거나 아름다운 흐름을 보여 주는 춤선 같은 건 없다. 그저 질박한 몸짓들이 달빛을 흔들고 열기를 내뿜고 생생한 기운으로 살아있는 것들을 흔들어 댄다.

에어로빅은 여럿이서 함께 하지만 협력과 결속을 바탕으로 하는 단체 운동이 아니다. 무리가 같이 있어도 혼자 하는 운동이고 혼자여도 같이 하는 운동이다. 저마다의 인생길, 각자 걸어가면서도 주변과 보조를 맞춰 주는 어울림이다. 광장에서의 에어로빅은 기교와 세밀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단순하고 집약적이다. 그래서 집중의 힘을 준다. 그 안에 내재한 강한 에너지를 발현한다. 직선의 뻗침에서는 힘이 나오고 둥글게 마는 곡선은 순발력을 채워 준다. 강함과 부드러움이 어우러져 몸짓을 만들고 선과 리듬이 만나 동작을 완성한다. 심장을 펌프질해서 무거움도 살랑, 공기처럼 가벼이 흩날리게 한다.

달밤에 많은 이들이 모여 함께 하지만 큰 뜻을 은유하지도, 목적의식을 함유하지도 않는다. 화려한 치장도, 화장도 없다. 우아하지도, 우울하지도, 흐느적거리지도 않는다. 관능과도 거리가 멀다. 담박하고 거칠고 우직하다. 마당놀이처럼 흥이 넘친다. 평범하고 상투적이다. 땀내가 나고 날것의 육성이 존재한다.

때로 묻는다.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우리의 삶은 꼭 가치 있는 것이야 할까? 존재 이유를 피력하고 유의미한 뜻을 세워 가며 살아야 하는 걸까? 또 묻는다. 가치의 기준은 뭘까. 어쩌면 나는 의미 없는 흔적에 자꾸 의미를 새기려 하는 건 아닐까. 천변의 에어로빅은 일상의 모습 그대로 족하다.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면 된다. 흙길이어도 괜찮다. 가볍거나 무겁거나 그냥 가면 될 일이다. 잘난 것도 없이 혼자 저벅거리는데 또 둘러보면 어우렁더우렁 함께 걸어가고 있다. 조금 삐뚤면 어떠리, 조금 엇박자이면 어떠리.

달빛이 따뜻하게 흐르는 밤의 운동은 마음을 둥글게 말아 준다. 설령 누군가 지각을 하고도 주춤주춤 앞줄로 들어와 떡하니 서도 뒷줄 사람들은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그 누군가는 고개를 돌려, 남편 밥 챙겨 주고 설거지까지 하느라 늦었다고 변명처럼 웃는다. 수십 년이나 밥을 챙겨 줬으면 지 손으로 밥도 만들겠건만, 한 줄 서사에서 살아온 내력을 짐작한다. 그녀의 시린 등에 제각기 자기의 삶을 투영하며 그랬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같이 웃어 준다. 이백 년 전에도 그대를 속였던 삶이 지금인들 솔직할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관되게 뒤통수치는 바닥 같은 삶 따위, 뚝기로 박차고 뛰어오르면 되는 거라고 그렇게 웃어 버린다.

나라고 처음부터 그랬을까. 내가 짊어진 짐이 제일 무거운 법인데, 쉬웠을까? 강박은 열등을 낳고 열등은 과함을 낳는다. 젊은 시절에는, 아니 더 어릴 때부터 맏이라는 이름이 어깨를 짓눌렀다. 스스로도 그랬고 가족들도 운운했다. 뭐든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릇은 작은데 담아야 할 게 많았다. 소나기처럼 느닷없이 닥친, 낭떠러지의 시간이 그대로 질척대는 우기로 이어질 때도, 햇살이 눈두덩이를 찌르는 새날마다 눈을 떠야 하는 아침이 비루하기만 하던 때도 절대로 내 실패를 인정할 수 없었다. 가족에게, 주변에 장한 모습만 보이고 싶었다. 남들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가 너무나 중요했다. 늘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고 숨이 목까지 차서 벌게지도록 뛰기만 했다. 그래서 3, 40대의 내 에어로빅은 성성한 푸성귀처럼 펄떡거리고, 싸움닭처럼 악을 써 대는 거였다. 복장에 신경 쓰고 가운데 자리만 고집했다. 50대로 들어서면서 어느 순간 삶이 단순해졌다. 강박을 내려놓으니 못난 실체가 드러났고 그것도 나라는 수긍이 쉬워졌다. 내동댕이쳐질 때마다 바닥을 치고 오르는 법을 조금씩 터득했을까. 어쩌면 실내에서 천변 광장으로 나오면서부터였는지도 모른다.

갈까 말까 스텝을 하다가 발이 꼬인다. 몸이 출렁거린다. 머리는 신명이 나서 통통 튀는데 몸은 둔탁하고 통통한 골반이 무거워 삐거덕거린다. 균형을 잃고 콰당, 주저앉는다. 조금 민망하지만, 씩 웃고 나면 그만이다. 동작이 어려워도 스텝이 꼬여도 순서가 생각나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일이다. 한 곡이 끝나고 다른 곡으로 바뀌는 짧은 한순간을 둘러본다. 건강을 위해,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위해. 취미를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싱싱한 숨소리가, 땀내가, 무념무상의 몸짓들이 정겹다.

천변의 에어로빅은 두서없는 발걸음을 탓하지 않는다. 오다가다 아무나 그 공간에 들어오면 그만이다. 하나둘 모여 어느덧 군상을 이루다가 뒤끝 없이 헤어진다. 오늘만 사는 하루살이처럼 몰려들기도 하고 백 년을 살 것처럼 달려들기도 한다. 앞줄을 차지한 고정 멤버들도 있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오는 젊은 부부도 있다. 엉거주춤 서툰 스텝을 밟는 늙수그레한 남자도 꼭 한두 명 끼어 있다.

오늘의 이들이 내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그렇더라도 이들이 땅을 당겨 만들어 놓은 탄탄한 생명력의 자리를 내일이면 또 다른 누군가가 채울 것이다. 이들은 묵직한 역사를 만들지는 않지만 춤의 언어로 가벼운 삶의 서사는 만들어 간다. 가볍거나 무겁거나 살아있는 통속의 이야기가 오늘도 천변의 달빛을 흔들고 있다. 따뜻하게.

작가소개 / 조현숙

제15회 동서문학상 수필 금상 / 월간문학 등단 / 제19회 기독신춘문예 수필 당선 2022 흑구문학상 동상, 제13회 천강문학상 수필 우수상 수상

《아르코문학창작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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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15
「상처가 주는 울림」외 1편

상처가 주는 울림 공화순 페북을 끊은 지 서너 달이 지났다. 가끔 궁금하고 친구요청 알림이 뜨면 어쩌다 휙 눈팅을 하게 된다. 그러다 낯익은 사람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왜 사람들은 오래된 상처를 쉬이 털어버리지 못할까? 아니, 상처는 왜 쉬이 아물지 못하는 것일까. 나도 어릴 적 실수로 정강이에 깊은 상처를 얻었다. 일곱 살 즈음의 일이다. 안마당에 무를 담아놓은 고무 대야가 하필 어린 계집아이 눈에 띄었다. 대야 안에 가득한 무와 함께 커다란 부엌칼도 눈에 확 들어온 건 비극의 서막이었다. 고무 대야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손으로 커다란 칼을 집어 들었다. 무를 잘라보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무를 힘껏 내리쳤지만, 힘에 부쳤다. 칼은 무에 박혔고 얼마간 실랑이를 벌이다가 있는 힘을 다해 칼을 뽑았을 땐 순식간에 칼끝이 정강이를 깊이 도려내고 바닥에 떨어진 뒤였다. 눈 깜짝할 새 정강이 살점이 파이고 하얀 뼈가 보였다. 순간 놀란 가슴보다 정강이가 더 놀란 듯, 피도 나오지 않고 시간이 딱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명도 눈물도 없었다. 뒤미처 엄마한테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광목천을 두르고 숨기기에 급급했다. 얼마 후, 들에서 돌아온 엄마는 다리를 처맨 것을 보셨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병원놀이를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상처는 아직도 깊숙한 자리로 남아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상기시키곤 하는데 상처를 치료했던 기억이 없다. 병원놀이가 며칠째 계속되자, 엄마가 벗겨봤지만 이미 치료 시기를 놓친 뒤였다고 한다. 상처를 제때 치료했다면 흉터가 가볍게 남진 않았을까, 뒤늦게 후회도 해봤다. 정강이의 깊은 상처는 사춘기 시절 내내 치마 입는 것조차 신경이 쓰이게 했다. 크도록 짧은 치마를 입는 데 불편을 겪었다. 치마를 입을 때마다 스타킹은 필수요건이 돼버리고 겨울엔 두꺼운 스타킹과 부츠를 신으니 차라리 편했다. 페북의 그도 어릴 적 자전거를 타고 넘어져 앞니 두 개를 잃고 사십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그 상처에 붙들려 살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상처 한두 개쯤 지니고 살기 십상이다. 누군가는 쉬이 상처를 아물리고 다독이며 잘 살기도 할 것이다. 오랫동안 정강이 상처를 의식하고 살아온 나는 처음으로 내 상처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벌써 50년을 넘게 내 몸에 지녀온 상처인데 한 번도 보듬어주지 못했다. 몇 년 전, 잡지에서 배에 있는 수술 흉터를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찍은 모델 사진을 보았다. 완벽한 아름다움 속에서 상처는 꽤 도드라졌다. 그것이 내게 신선한 도발이었다. 부조화에서 온 변화가 자꾸 눈길을 끌었다. 너무 지루한 고요 속에 쨍하고 금을 긋는 울림 같았다. 고등학교 들어갈 때, 시내에서 꽤 알아주는 의상실에서 교복을 맞춰 입었다. 학생들 무리에서 몸에 곡선을 매끈하게 빼준 교복 덕에 선배들 눈길을 사로잡곤 했다. 다행인지 남들보다 치마 길이가 길게 맞춰져서 정강이 절반 아래로 날씬한 다리만 보이고 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어쩌다 내 정강이 상처를 발견하면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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