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껍데기」외 1편

  • 작성일 2023-11-03
  • 조회수 349

껍데기  

박은실


   애플망고 먹는 법을 검색했다. 가장 가운데 깊은 곳에 씨가 있으니 대략 삼분의 일 지점을 칼로 썰으란다. 가르쳐준 대로 썰어놓은 망고를 쟁반 위에 올려놓고 바둑판 모양으로 속살에 칼집을 넣는다. 이때 껍질이 터지지 않도록 세운 칼끝에 적당한 힘을 주어 작업을 해야 한다. 타원 모양으로 재단된 망고를 두 손으로 감싸 쥔다. 망고 양쪽 끝을 엄지와 검지로 붙잡고 받쳐 든 나머지 세 손가락에 힘을 주어 배가 뒤집히도록 껍질 바깥쪽을 쑥 밀어 올린다. 그러면 과육이 볼록하게 올라오면서 깍두기 모양으로 벌어진다. 다됐다. 이제 티스푼으로 똑똑 떠먹기만 하면 된다. 부드럽고 달달한 맛에 껍질 안쪽에 붙어 있던 마지막 살점까지 박박 긁어 먹었다. 망고는 옻나뭇과(科) 과일이라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껍질을 조심하라고 나와 있었다. 알레르기는 없지만 꺼림칙해 냉큼 손을 닦았다. 애플망고 몇 개를 그렇게 해치우고 나서 부른 배를 한참 동안 두드리다가 쟁반 위를 보았다. 탱탱했던 껍질이 그새 사과 색을 잃고 주글주글 말라가고 있었다. 속을 몽땅 내어주고 가죽만 남아 벙벙하게 엎어져 있는 껍질을 보다 돌연 서글퍼졌다. 끼고 안아 배불리 먹여 놓았더니 젖만 똑 떼어먹고 앵돌아져 잠들어 버린, 갓난아기에게 버림받은 어미의 빈 젖가슴 같았다.         여름이 지천이었던 어느 한 날, 모처럼 근교에 있는 식당으로 점심 나들이를 했다. 옹골지고 단단한 아이를 둘씩 길러낸 여자들이 사치 좀 부려보자며 선택한 곳이었다. 식당 밖에는 조금 전 먹은 음식처럼 정갈하게 정원이 꾸며져 있었다. 담장 주변으로는 요염을 떨며 주홍빛 능소화가 피어 있었고, 에움길 가에는 노란 장미가 정원사의 손길을 받으며 까칠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소나무도 위풍당당하게 가지를 뻗치고 여름을 만끽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유독 모과나무가 많았는데 가지마다 내 주먹만 한 모과를 여러 개씩 달고 있었다. 지인이 기이한 물건이라도 발견했다는 듯 ‘어머나!’라는 외마디와 함께 멀리 무언가를 가리켰다. 여자의 손길을 따라간 곳에는 속이 빈 모과나무 한 그루가 외따로 서 있었다. 멀리서 보기엔 모형 같기도 했다. 진짜 나무일까 궁금해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았다. 속이 빈 나무는 살아있는 진짜였다. 키는 작았지만, 수령은 오래됐는지 다른 나무에 비해 껍데기는 더 거칠고 유난히 메말라 보였다. 살짝 힘을 주어 밀면 곧 땅으로 푸석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나뭇가지 끝에도 아기 주먹만 한 모과 몇 알이 양분을 빨아먹으며 착실하게 몸집을 키워가고 있었다. 가지 끝에 매달려있는 초록 열매가 아웅다웅 섞여 엄마 젖 나누어먹고 자랐던 우리 형제들만 같았다.   물기 없는 빈껍데기 어디에 남은 힘이 있어 단물을 저 끝까지 밀어 올려 주는 것일까. 늙은 저 나무는 내년 여름에도 모과를 매달 수 있을까. 죽어가는 순간까지 제 일을 감당해 내는, 아무짝에 쓸모없을 것만 같은 껍데기가 존경스러웠다.        그날 밤, 늦도록 쏘다니다 돌아와 누운 잠자리에서 새삼 깨달았다. 껍질이든 껍데기든 아무리 변변찮은 천덕꾸러기 일지라도 세상 모든 외피는 오로지 알맹이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풋것 먹고 배앓이 할 적,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배 문질러주던 엄마 얼굴이 어둠 속에서 여릿하게 지나갔다.











연회색 악수


   회색은 11월의 나무다. 가을 끝자락을 물고 있지만 서둘러 온 첫눈에게 못이기는 척 곁을 내주고, 다 떠나보내고 돌아서서 헛헛한 속울음 삼키는 늦가을 나무다. 회색은 맛으로 치자면 참외와 오이의 중간으로 달지도 싱싱하지도 않은 잘못 고른 메론 맛이랄까. 그 색은 결코 타협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결점의 색 하양과 절망과 침묵의 색 까망이 섞이는 사이에 있다. 타고 남은 재의 빛깔이라는 그것은 무채색으로 모호함과 어눌한 느낌을 준다. 내가 갖기는 싫고 그렇다고 남 주기는 아까운 남사친이라고나 할까.  허무함과 신비감이 뒤섞여 돌아가는 듯한 그것은 yes와 no 사이에서 서성이는 어정쩡한 이미지로 결정 불가의 표본이기도 하다. 그래서 ‘회색인간’이라는 말도 생겨났으리라. 그런 미적지근함 때문에 회색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적도 있다. 겉으로야 이래저래 탐탁지 않은 색이지만 안으로는 감출 수 없는 로맨스와 침착하고도 격조 있는 지성을 품고 있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회색은 안나의 색깔이다. 『안나카레리나』에는 모든 여인의 남자 브론스키와 모든 남자의 여인 안나가 열차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다. 객차 입구에서 우연히 스친 안나를 본 브론스키는 한 번 더 그녀를 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비단, 그녀에게서 풍기는 몸에 밴 귀족적 우아함이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상냥하고 부드러운 그렇지만 절제된 무언가가 있었다. 브론스키가 안나의 첫 모습을 그렇게 생각한 건 아마도 그녀의 회색 빛 눈동자 때문이었으리라. 안나의 눈동자는 겨우내 쌓인 흰 눈이 깊고 푸른 바이칼 호수에 비추어진 맑은 청회색이었지 않았을까. 그녀에게는 밤마다 펼쳐지는 러시아 귀족의 화려한 무도회 뒤에 ‘산문적’이라고 표현된 나이 차이 많은 남편과의 결혼생활에서 생긴 고독과 우울이 감춰져 있었으리라. 그것이 그녀의 청회색 눈동자를 통해 브론스키의 눈 속에 감지됐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녀도 길고 짙은 속눈썹을 들어 올리며 다정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연의 마주침이 운명이 되고 마는 순간이었다. 무도회에서 입었던 안나의 검정 드레스와 회색 눈동자의 지적인 조합은 브론스키를 꼼짝 못하게 하는 매력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부럽긴 하지만 회색 눈동자의 소유자도 아니고 깻잎 한 장 두께의 지성도 갖추지 못한 내가 감히, 안나의 지적 로맨스를 흉내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회색을 여전히 결정유보의 색으로 남겨 방구석 모퉁이로 밀어놓고 싶지도 않았다. 외롭지도 어눌하지도 않은, 지성과 품격을 겸비한 이름을 회색에게 붙여주고 싶었다. 그러던 날에 최인호 작가의 소설 『공자』에서 이 모든 걸 넘어설 적절한 문장을 만났다. 

   제자 자공이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더 낫더냐고 공자께 물었다. 스승은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라고 답했다. 자공이 “그렇다면 자장이 더 낫겠네요.”라며 공자님께 다시 물었다. 그러자 현자께서 대답했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여기서 공자님 어록 중 최고로 유명한 문장인 과유불급(過猶不及)!이 탄생한다. 이는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중용의 의미로 유가에서 극치로 삼고 있는 문장이다.  


   정수리에 허연 머리카락이 늘어나서일까. 이제는 까다로움과 날카로움이 뾰족하게 올라오는 새치만큼이나 성가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아도 로맨틱 중년이 아니어도 전혀 섭섭하지 않다. ‘과유불급’이란 문장 하나면 족하다. 어차피 중간치 삶이란 것이 윷놀이 판의 개나 걸쯤 일 터. 연회색과 진회색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게 흔하디흔한 우리네 인생일 까닭에서이다. 회색에서는 극으로 내 쏘지 않는 차분함과 깊이가 보인다. 회색 앙고라 머플러를 마지막 선물로 등을 돌린 남자가 있었다. 그의 눈빛은 제법 따뜻했지만 그 선물은 아마도 뜨뜻미지근한 관계를 청산하려는 의미였을 것이다. 만약 이제쯤 그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중용의 실천이라도 되는 양 미지근한 연회색 악수를 내밀 용기도 있다. 

    낮과 밤이 섞이는 퇴근 무렵, 희끄무레한 저녁이 내려앉는다. 여느 때야 새뜻한 달 하나가 떠오르길 바랐겠지만 이번만은 그렇지 않다고 해도 성내지 않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닐까 말까를 고민하는 직장인인 내가 중용의 도를 겨자씨만큼이나마 깨우친 까닭에서일까. 직장생활의 날카로운 피로가 한 김 나간 숭늉 같은 회색에 섞여 후틋하게 녹아 풀어진다. 희끄무레함 속에서 남들이사 알 리 없는 수수한 미소를 허공에 대고 지어본다.


추천 콘텐츠

「스케치하는 시간」외 1편

스케치하는 시간 류미월 권태는 새로움을 갈구한다. 그렇고 그런 날이 계속될 때 훌쩍 집을 떠나 낯선 여행지를 걷다 보면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여유가 생긴다. 지루한 ‘코로나 19’ 마스크 시대와 어제 같은 오늘이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갈 무렵 문뜩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그림 그리기가 생각났다. 유화나 수채화보다는 기초를 다지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연필 스케치를 시작했다. 사각사각 슥슥 연필심이 도화지를 채워나가는 소리가 좋다. 사진보다 섬세할 정도로 잘 그리는 중급반 동호인들을 볼 때면 존경심이 저절로 생긴다. 가로, 세로줄 긋기를 통해 감각을 익히고 H, 2H, 3H ... 6H, B, 2B, 3B ... 6B 연필을 사용해서 명암을 조절한다. 원기둥 그리기와 머그컵 그리기까지 끝내고 나니 슬슬 재미가 붙으며 오그라들었던 어깨가 펴진다. 시간이 날 때면 주방과 거실에 있는 사물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기본 스케치를 한다. 길을 가다가 야생화를 보면 정성 들여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고 하나씩 불러내서 스케치북에 그려본다. 나 스스로 ‘자뻑’하며 만족하는 그림이 나왔을 때의 기쁨은 글 쓰는 맛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오늘은 머그컵과 친해지는 날이다. 머그컵을 좌우대칭 정확히 파악한 후 비율에 맞게 스케치하고 짙은 색에서 중간색, 흐린 색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스케치를 채워나간다. 가로세로 명암을 넣으며 마지막 완성에 다다를 때는 숨소리도 죽여가며 몰입하게 된다. 머릿속을 하얗게 도화지처럼 비우고 오로지 스케치하는 사물만 생각하며 그린다. 하늘에 뜬 흰 구름처럼 평화로운 마음 상태에서 집중 몰입할 때의 순간이 좋다. 신문이나 책을 보다가 살림을 하다가 여유가 날 때 차 한잔하며 사각의 백지를 마주하는 순간은 한여름에 순백의 눈 위를 걷는 것처럼 청량하고 순수해지고 차분해지는 나와 마주하는 순간이다. 첫사랑을 떠올릴 때의 기분이 이랬을까? 그림을 잘 그려보겠다는 욕심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어두운 부분은 더욱 진하게 하나의 빈틈이라도 있을까 봐 여백을 꽉꽉 채우게 된다. 기초 작업인 구성이 잘못됐을 때는 미련 없이 싹 지우고 다시 그려야 오류를 줄일 수 있다. 착각은 자유라지만 내가 그린 게 최고인 것 같고 틀림없어 보여서 한번 그린 건 쉽게 지우지 않게 된다. 안쪽부터 채워나가다 보면 기본 구성이 잘못되었음을 나중에 알게 된다. 연필로 밀도 있게 채워나가는 것보다 잘못 그린 부분을 지우개로 제대로 지우는 것이 최고의 소묘라는 걸 스케치를 배우면서 알게 되었다. 어디 스케치 뿐이랴. 우리의 삶도 자꾸 비워야 새것을 받아들이고 머릿속도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려면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버려야 새것을 받아들일 공간이 커지는 법 아니던가. 스케치하는 시간은 힐링과 치유의 시간이 된다. 기분이 불쾌하고 속상하고 슬펐던 감정이 스케치하는 동안 상처가 아물 듯 기분이 좋아진다. 급하고 덜렁거리는 조급함이 산사(山寺)에서 참선을 하듯 고요하고 평화로워진다. 스케치하면서 그림을 완성

  • 관리자
  • 2023-11-15
눈 오는 날의 기호

눈 오는 날의 기호 류미월 간밤에 바른 자세로 잠을 못 자고 뒤척인 탓인지 아침에 눈을 뜨자 등 쪽이 불편하다. 이럴 때면 인근에 있는 의료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건강 카페에 가곤 한다. 따뜻한 자리에 누워서 척추 라인을 온열로 집중 관리받고 나면 통증이 줄어들고 온몸이 개운해진다. 체험 비용은 차 한 잔을 주문하면 된다. 체험을 마치고 넓은 창가 탁자에서 차 한잔하는데 정월의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달리는 자동차 위에도 애완견을 데리고 가는 여인의 어깨 위에도 꿈꾸는 푸드트럭 위에도 함박눈이 하염없이 내린다. 펄펄 내리는 눈송이가 갓 구운 고소한 빵 내음을 흩뿌리고, 한쪽 하늘에선 깃털 같은 함박눈이 춤추듯 내려와 바닥에 곤두박질치며 비릿한 슬픔을 뿌리고 간다. 어느 정도 함박눈이 퍼붓고 난 하늘이 맑아졌다. 하늘도 먹먹한 제 무게를 감당 못 할 때는 펑펑 소리 내 울듯 함박눈이 되어 내리는가 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차를 마시는데 묵은지 같은 친구한테서 문자가 왔다. 친구도 눈 오는 날 친구가 그리웠나 보다. 느닷없이 먼 옛날 함박눈이 내리던 날 퇴근 후 명동거리를 빙빙 배회하다 소주잔을 기울이던 20대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친구와 명동 골목 식당에서 낙지 덮밥을 먹으며 사는 게 매운 건지 음식에 고춧가루 때문인지 눈물 반 콧물 반을 흘리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고달픈 삶을 서로 토닥이며. LP 판을 틀어주는 음악다방 구석진 자리에서 신청 곡을 메모지에 적어 DJ 박스에 건네곤 그 곡이 나오면 세상을 다 가진 듯 감격하며 듣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 추억에 빠졌다가 의료기 체험 카페 문을 밀고 나서려는 순간 손을 힐끗 봤다. 거칠고 주름진 손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거리를 걸었다. 눈은 먼 곳에서부터 수직으로 오다 사선으로 흩날리다 소리 없이 내린다. 가로수와 고층 빌딩과 벤치와 로드킬 당한 생쥐 몸 위에 소복소복 말없이 이불을 덮어주듯 내린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미웠던 사람의 얼굴도 불현듯 스쳐 간다. 눈은 묘한 마력이 있다. 눈은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고 욕심으로 가득 찬 마음을 잠시 내려놓게 한다. 멍하게 ‘눈 멍’을 때리고 정지된 화면처럼 있으면 머리를 옥죄던 근심 걱정이 지우개로 쓱쓱 지운 듯 잠시 사라진다. 요즘 들어 집안 살림살이에서도 잘 안 쓰는 그릇이나 옷과 책 그리고 자잘한 살림살이를 큰맘 먹고 버리고 있다. 버리고 나니 공간이 넓어지고 마음마저 뻥 뚫린 듯 시원해진다. 주방을 드나들 때면 그릇장에 남겨진 그릇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집은 좁다고 투덜대며 넓혀갈 생각만 할 일이 아니다. 필요 없는 것들을 처분하고 나서 집이 몇 평은 넓어진 느낌이다. 중년에 접어든 삶은 무조건 더하기만 고집할 일이 아니다. 때로는 빼기를 잘해야 편안한 삶이 된다는 걸 공감하고 있다. 되지 않을 것들을 붙잡고 있으면 에너지가 방전되고 화가 깊어져서 몸도 마음도 상하게 된다. 요즘 들어 아니다 싶은 것들은 하나씩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물건이

  • 관리자
  • 2023-11-15
「상처가 주는 울림」외 1편

상처가 주는 울림 공화순 페북을 끊은 지 서너 달이 지났다. 가끔 궁금하고 친구요청 알림이 뜨면 어쩌다 휙 눈팅을 하게 된다. 그러다 낯익은 사람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왜 사람들은 오래된 상처를 쉬이 털어버리지 못할까? 아니, 상처는 왜 쉬이 아물지 못하는 것일까. 나도 어릴 적 실수로 정강이에 깊은 상처를 얻었다. 일곱 살 즈음의 일이다. 안마당에 무를 담아놓은 고무 대야가 하필 어린 계집아이 눈에 띄었다. 대야 안에 가득한 무와 함께 커다란 부엌칼도 눈에 확 들어온 건 비극의 서막이었다. 고무 대야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손으로 커다란 칼을 집어 들었다. 무를 잘라보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무를 힘껏 내리쳤지만, 힘에 부쳤다. 칼은 무에 박혔고 얼마간 실랑이를 벌이다가 있는 힘을 다해 칼을 뽑았을 땐 순식간에 칼끝이 정강이를 깊이 도려내고 바닥에 떨어진 뒤였다. 눈 깜짝할 새 정강이 살점이 파이고 하얀 뼈가 보였다. 순간 놀란 가슴보다 정강이가 더 놀란 듯, 피도 나오지 않고 시간이 딱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명도 눈물도 없었다. 뒤미처 엄마한테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광목천을 두르고 숨기기에 급급했다. 얼마 후, 들에서 돌아온 엄마는 다리를 처맨 것을 보셨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병원놀이를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상처는 아직도 깊숙한 자리로 남아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상기시키곤 하는데 상처를 치료했던 기억이 없다. 병원놀이가 며칠째 계속되자, 엄마가 벗겨봤지만 이미 치료 시기를 놓친 뒤였다고 한다. 상처를 제때 치료했다면 흉터가 가볍게 남진 않았을까, 뒤늦게 후회도 해봤다. 정강이의 깊은 상처는 사춘기 시절 내내 치마 입는 것조차 신경이 쓰이게 했다. 크도록 짧은 치마를 입는 데 불편을 겪었다. 치마를 입을 때마다 스타킹은 필수요건이 돼버리고 겨울엔 두꺼운 스타킹과 부츠를 신으니 차라리 편했다. 페북의 그도 어릴 적 자전거를 타고 넘어져 앞니 두 개를 잃고 사십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그 상처에 붙들려 살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상처 한두 개쯤 지니고 살기 십상이다. 누군가는 쉬이 상처를 아물리고 다독이며 잘 살기도 할 것이다. 오랫동안 정강이 상처를 의식하고 살아온 나는 처음으로 내 상처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벌써 50년을 넘게 내 몸에 지녀온 상처인데 한 번도 보듬어주지 못했다. 몇 년 전, 잡지에서 배에 있는 수술 흉터를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찍은 모델 사진을 보았다. 완벽한 아름다움 속에서 상처는 꽤 도드라졌다. 그것이 내게 신선한 도발이었다. 부조화에서 온 변화가 자꾸 눈길을 끌었다. 너무 지루한 고요 속에 쨍하고 금을 긋는 울림 같았다. 고등학교 들어갈 때, 시내에서 꽤 알아주는 의상실에서 교복을 맞춰 입었다. 학생들 무리에서 몸에 곡선을 매끈하게 빼준 교복 덕에 선배들 눈길을 사로잡곤 했다. 다행인지 남들보다 치마 길이가 길게 맞춰져서 정강이 절반 아래로 날씬한 다리만 보이고 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어쩌다 내 정강이 상처를 발견하면

  • 관리자
  • 2023-11-10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