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청앵(聽鶯)

  • 작성일 2023-11-08
  • 조회수 255

청앵(聽鶯)

김태형


   어느 날인가 간송미술관에 간 적이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인근 수목원이나 공원, 미술관 등으로 가끔 외출하곤 했다. 바깥바람 좀 쐬고 와야 좁은 집구석에서 또 한 주를 보낼 수 있으리라. 나도 숨 좀 쉬어야겠기에 미술관은 빠질 수 없는 곳 중 하나였다. 마침 <오원 장승업 화파전>이 열리고 있었다. 몇 년에 한 번 잠시 문을 연다는 말에 솔깃해서 온 가족을 데리고 성북동으로 향했다. 당시 장승업은 영화 <취화선>으로 뒤늦게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한국화’라면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 외에는 잘 모른다. 어릴 적 우표수집에 빠져 있었던지라 이들의 그림 몇 점은 꽤 오래 들여다보곤 했지만, 유명한 그림 외에는 한국화에 대해 문외한인 것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라면서 모던한 경향을 따르던 터라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러다가 고졸한 미학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나이가 들어가기 시작해서일까. 오래된 것들에 눈길이 간다.

   언젠가 소설을 가르치시던 선생이 강단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도자기가 진짜인지 가까인지 구분하는 방법 알아요?”

   진품과 가품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보통은 뭘 알아서 라기 보다는 느낌으로 판단하기 마련이지 않는가. 식견이 없을 때 그렇다. 뭘 좀 안다고 생각했을 때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아는 대로만 판단하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만 보기 마련이다.

   소설로 일가를 이루었던 선생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는 분이었다. 말투는 느릿느릿했지만, 언제나 풀어나갈 길을 슬쩍 열어 보이곤 했다. 나는 그 이유가 오랜 경험 때문이라고 믿었다. 선생의 표정에는 살짝 웃음기가 머금어 있었다.

   “가짜는 오래 두고 보면 어느 순간 질리기 시작해요.”

   나는 선생의 생동하는 말투에 리듬감이 있다고 느꼈다. 한 문장을 마쳤지만, 다음 문장으로 이어지기 위한 여백이 마치 내재율과 같은 호흡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진짜는 아무리 오래 보아도 질리지가 않아요.”

   선생은 분명 한 세월을 자기의 몸으로 살아왔으리라. 경험이 앞서면 안 된다고들 하지만, 나는 어느덧 저 오롯한 몸의 기억을 따르고 있다.

   몇백 년이 지나서도 세인들에게 기억되는 작품은 소위 말하는 ‘진품’이어서만은 아니겠지만,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독보적인 것이라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어떤 ‘가치’를 담고 있으리라.

   그러나 대체로 세인들은 취향을 따르는 편이 아니던가. 취향에 대해서는 논하지 말라는 유명한 말도 있다. 감식안의 대부분은 취향일 뿐이다. 이에 더해서 세간의 평가도 한 몫을 단단히 한다. 이런 이유로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그리 즐겁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나는 뭘 알아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데리고 갈 나들이의 한 장소쯤으로 간송미술관에 들어섰다. 물론 문외한의 눈으로 작품을 바라볼 때 나는 더 즐겁다. 내가 해석과 상상의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온갖 얕은 지식을 짊어지고 가서 작품을 보고 나면 오히려 화가 나곤 했던 경험이 많다.

   2층 전시실로 들어서니 아이들이 몇 걸음 뛰기 시작했다. 제 딴에는 그냥 걷는 걸음이었으리라.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들의 걸음은 걸음이 아니라 늘 뜀박질이다. 근대건축물의 크지 않은 공간에서 아이들이 조금만 뛰어다니기 시작해도 공기마저 출렁이는 듯이 혼잡한 풍경을 만들어내곤 한다.

   입구에 서 있던 젊은 여자 분이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는 듯했다. 간송미술관 학예사였을까. 큐레이터와 전시실 안내 역할을 하기 위해 나와 있었을 것이다.

   나는 또 뜀박질을 시작하려는 아이들의 손을 붙잡은 채 유리관에 놓인 그림들을 슬쩍 둘러보기 시작했다. 전시실이 작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관람하는 데 조금 불편했다. 뭔가 이 공간의 공기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입구에 서 있던 연구원은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의 손을 더 굳세게 쥐고 놓아주지 않은 채 몇 걸음 더 전시된 그림들을 둘러보았다.

   연구원은 뭔가 화가 치미는 것을 애써 참는 듯이 입술마저 살짝 깨문 채 서 있었다. 몇 번 흘낏 쳐다보았는데, 입구 쪽에서 정장을 잘 차려입은 중년의 사내와 여성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은 그들의 대화는 조곤조곤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화를 참고 있던 연구원은 이들 때문이었다. 조용히 해달라고 말도 못하고 있는 것을 보니 이들은 예사 사람들은 아니었나 보다. 전시실을 지키고 있던 연구원이 말도 못하고 화만 삼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선뜻 이들의 대화를 막을 만한 위치는 아니었나 보다.

   아이들은 내 손에 꼭 붙들려서 전시실을 한 바퀴 돌고 있었다. 내가 불편함을 느낀 것은 근대건축물의 작은 공간 때문이 아니었다. 전시된 그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단지 전시실의 경직된 공기가 답답했을 뿐이었다.

   이때 내 눈에 한 점의 그림이 들어왔다.

   <청앵(聽鶯)>

   화첩에 그린 작은 그림 한 점이었다.

   세간에 알려진 소문과 다르게 저 자유분방한 기질의 장승업이 이런 고요한 그림을 그리다니!

   나는 이 화첩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청앵’이라. 꾀꼬리 소리를 듣는다는 뜻이다.

   사내는 푸른 숲을 향해 뒤돌아 앉아 있고, 그 옆의 수풀 속에서 다동(茶童)은 찻물을 끓이고 있었다. 꾀꼬리는 보이지 않았다. 오직 고요한 소리만이 화첩 안에 가득했다.

   나는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몰랐다.

   2층 전시실을 내려와서 바깥 화단에 자란 풀들을 보고 있었다. 요즘은 대부분 마당도 없지만, 화분에조차 심어 기르지 않는 옛 화초들이 간송미술관 화단에 무성했다.

   그제야 나는 꼭 쥐고 있던 아이들의 손을 놓아 주었다. 꾀꼬리가 마당 안에서 울기 시작했다.



추천 콘텐츠

「스케치하는 시간」외 1편

스케치하는 시간 류미월 권태는 새로움을 갈구한다. 그렇고 그런 날이 계속될 때 훌쩍 집을 떠나 낯선 여행지를 걷다 보면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여유가 생긴다. 지루한 ‘코로나 19’ 마스크 시대와 어제 같은 오늘이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갈 무렵 문뜩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그림 그리기가 생각났다. 유화나 수채화보다는 기초를 다지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연필 스케치를 시작했다. 사각사각 슥슥 연필심이 도화지를 채워나가는 소리가 좋다. 사진보다 섬세할 정도로 잘 그리는 중급반 동호인들을 볼 때면 존경심이 저절로 생긴다. 가로, 세로줄 긋기를 통해 감각을 익히고 H, 2H, 3H ... 6H, B, 2B, 3B ... 6B 연필을 사용해서 명암을 조절한다. 원기둥 그리기와 머그컵 그리기까지 끝내고 나니 슬슬 재미가 붙으며 오그라들었던 어깨가 펴진다. 시간이 날 때면 주방과 거실에 있는 사물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기본 스케치를 한다. 길을 가다가 야생화를 보면 정성 들여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고 하나씩 불러내서 스케치북에 그려본다. 나 스스로 ‘자뻑’하며 만족하는 그림이 나왔을 때의 기쁨은 글 쓰는 맛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오늘은 머그컵과 친해지는 날이다. 머그컵을 좌우대칭 정확히 파악한 후 비율에 맞게 스케치하고 짙은 색에서 중간색, 흐린 색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스케치를 채워나간다. 가로세로 명암을 넣으며 마지막 완성에 다다를 때는 숨소리도 죽여가며 몰입하게 된다. 머릿속을 하얗게 도화지처럼 비우고 오로지 스케치하는 사물만 생각하며 그린다. 하늘에 뜬 흰 구름처럼 평화로운 마음 상태에서 집중 몰입할 때의 순간이 좋다. 신문이나 책을 보다가 살림을 하다가 여유가 날 때 차 한잔하며 사각의 백지를 마주하는 순간은 한여름에 순백의 눈 위를 걷는 것처럼 청량하고 순수해지고 차분해지는 나와 마주하는 순간이다. 첫사랑을 떠올릴 때의 기분이 이랬을까? 그림을 잘 그려보겠다는 욕심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어두운 부분은 더욱 진하게 하나의 빈틈이라도 있을까 봐 여백을 꽉꽉 채우게 된다. 기초 작업인 구성이 잘못됐을 때는 미련 없이 싹 지우고 다시 그려야 오류를 줄일 수 있다. 착각은 자유라지만 내가 그린 게 최고인 것 같고 틀림없어 보여서 한번 그린 건 쉽게 지우지 않게 된다. 안쪽부터 채워나가다 보면 기본 구성이 잘못되었음을 나중에 알게 된다. 연필로 밀도 있게 채워나가는 것보다 잘못 그린 부분을 지우개로 제대로 지우는 것이 최고의 소묘라는 걸 스케치를 배우면서 알게 되었다. 어디 스케치 뿐이랴. 우리의 삶도 자꾸 비워야 새것을 받아들이고 머릿속도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려면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버려야 새것을 받아들일 공간이 커지는 법 아니던가. 스케치하는 시간은 힐링과 치유의 시간이 된다. 기분이 불쾌하고 속상하고 슬펐던 감정이 스케치하는 동안 상처가 아물 듯 기분이 좋아진다. 급하고 덜렁거리는 조급함이 산사(山寺)에서 참선을 하듯 고요하고 평화로워진다. 스케치하면서 그림을 완성

  • 관리자
  • 2023-11-15
눈 오는 날의 기호

눈 오는 날의 기호 류미월 간밤에 바른 자세로 잠을 못 자고 뒤척인 탓인지 아침에 눈을 뜨자 등 쪽이 불편하다. 이럴 때면 인근에 있는 의료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건강 카페에 가곤 한다. 따뜻한 자리에 누워서 척추 라인을 온열로 집중 관리받고 나면 통증이 줄어들고 온몸이 개운해진다. 체험 비용은 차 한 잔을 주문하면 된다. 체험을 마치고 넓은 창가 탁자에서 차 한잔하는데 정월의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달리는 자동차 위에도 애완견을 데리고 가는 여인의 어깨 위에도 꿈꾸는 푸드트럭 위에도 함박눈이 하염없이 내린다. 펄펄 내리는 눈송이가 갓 구운 고소한 빵 내음을 흩뿌리고, 한쪽 하늘에선 깃털 같은 함박눈이 춤추듯 내려와 바닥에 곤두박질치며 비릿한 슬픔을 뿌리고 간다. 어느 정도 함박눈이 퍼붓고 난 하늘이 맑아졌다. 하늘도 먹먹한 제 무게를 감당 못 할 때는 펑펑 소리 내 울듯 함박눈이 되어 내리는가 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차를 마시는데 묵은지 같은 친구한테서 문자가 왔다. 친구도 눈 오는 날 친구가 그리웠나 보다. 느닷없이 먼 옛날 함박눈이 내리던 날 퇴근 후 명동거리를 빙빙 배회하다 소주잔을 기울이던 20대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친구와 명동 골목 식당에서 낙지 덮밥을 먹으며 사는 게 매운 건지 음식에 고춧가루 때문인지 눈물 반 콧물 반을 흘리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고달픈 삶을 서로 토닥이며. LP 판을 틀어주는 음악다방 구석진 자리에서 신청 곡을 메모지에 적어 DJ 박스에 건네곤 그 곡이 나오면 세상을 다 가진 듯 감격하며 듣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 추억에 빠졌다가 의료기 체험 카페 문을 밀고 나서려는 순간 손을 힐끗 봤다. 거칠고 주름진 손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거리를 걸었다. 눈은 먼 곳에서부터 수직으로 오다 사선으로 흩날리다 소리 없이 내린다. 가로수와 고층 빌딩과 벤치와 로드킬 당한 생쥐 몸 위에 소복소복 말없이 이불을 덮어주듯 내린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미웠던 사람의 얼굴도 불현듯 스쳐 간다. 눈은 묘한 마력이 있다. 눈은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고 욕심으로 가득 찬 마음을 잠시 내려놓게 한다. 멍하게 ‘눈 멍’을 때리고 정지된 화면처럼 있으면 머리를 옥죄던 근심 걱정이 지우개로 쓱쓱 지운 듯 잠시 사라진다. 요즘 들어 집안 살림살이에서도 잘 안 쓰는 그릇이나 옷과 책 그리고 자잘한 살림살이를 큰맘 먹고 버리고 있다. 버리고 나니 공간이 넓어지고 마음마저 뻥 뚫린 듯 시원해진다. 주방을 드나들 때면 그릇장에 남겨진 그릇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집은 좁다고 투덜대며 넓혀갈 생각만 할 일이 아니다. 필요 없는 것들을 처분하고 나서 집이 몇 평은 넓어진 느낌이다. 중년에 접어든 삶은 무조건 더하기만 고집할 일이 아니다. 때로는 빼기를 잘해야 편안한 삶이 된다는 걸 공감하고 있다. 되지 않을 것들을 붙잡고 있으면 에너지가 방전되고 화가 깊어져서 몸도 마음도 상하게 된다. 요즘 들어 아니다 싶은 것들은 하나씩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물건이

  • 관리자
  • 2023-11-15
「상처가 주는 울림」외 1편

상처가 주는 울림 공화순 페북을 끊은 지 서너 달이 지났다. 가끔 궁금하고 친구요청 알림이 뜨면 어쩌다 휙 눈팅을 하게 된다. 그러다 낯익은 사람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왜 사람들은 오래된 상처를 쉬이 털어버리지 못할까? 아니, 상처는 왜 쉬이 아물지 못하는 것일까. 나도 어릴 적 실수로 정강이에 깊은 상처를 얻었다. 일곱 살 즈음의 일이다. 안마당에 무를 담아놓은 고무 대야가 하필 어린 계집아이 눈에 띄었다. 대야 안에 가득한 무와 함께 커다란 부엌칼도 눈에 확 들어온 건 비극의 서막이었다. 고무 대야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손으로 커다란 칼을 집어 들었다. 무를 잘라보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무를 힘껏 내리쳤지만, 힘에 부쳤다. 칼은 무에 박혔고 얼마간 실랑이를 벌이다가 있는 힘을 다해 칼을 뽑았을 땐 순식간에 칼끝이 정강이를 깊이 도려내고 바닥에 떨어진 뒤였다. 눈 깜짝할 새 정강이 살점이 파이고 하얀 뼈가 보였다. 순간 놀란 가슴보다 정강이가 더 놀란 듯, 피도 나오지 않고 시간이 딱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명도 눈물도 없었다. 뒤미처 엄마한테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광목천을 두르고 숨기기에 급급했다. 얼마 후, 들에서 돌아온 엄마는 다리를 처맨 것을 보셨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병원놀이를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상처는 아직도 깊숙한 자리로 남아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상기시키곤 하는데 상처를 치료했던 기억이 없다. 병원놀이가 며칠째 계속되자, 엄마가 벗겨봤지만 이미 치료 시기를 놓친 뒤였다고 한다. 상처를 제때 치료했다면 흉터가 가볍게 남진 않았을까, 뒤늦게 후회도 해봤다. 정강이의 깊은 상처는 사춘기 시절 내내 치마 입는 것조차 신경이 쓰이게 했다. 크도록 짧은 치마를 입는 데 불편을 겪었다. 치마를 입을 때마다 스타킹은 필수요건이 돼버리고 겨울엔 두꺼운 스타킹과 부츠를 신으니 차라리 편했다. 페북의 그도 어릴 적 자전거를 타고 넘어져 앞니 두 개를 잃고 사십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그 상처에 붙들려 살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상처 한두 개쯤 지니고 살기 십상이다. 누군가는 쉬이 상처를 아물리고 다독이며 잘 살기도 할 것이다. 오랫동안 정강이 상처를 의식하고 살아온 나는 처음으로 내 상처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벌써 50년을 넘게 내 몸에 지녀온 상처인데 한 번도 보듬어주지 못했다. 몇 년 전, 잡지에서 배에 있는 수술 흉터를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찍은 모델 사진을 보았다. 완벽한 아름다움 속에서 상처는 꽤 도드라졌다. 그것이 내게 신선한 도발이었다. 부조화에서 온 변화가 자꾸 눈길을 끌었다. 너무 지루한 고요 속에 쨍하고 금을 긋는 울림 같았다. 고등학교 들어갈 때, 시내에서 꽤 알아주는 의상실에서 교복을 맞춰 입었다. 학생들 무리에서 몸에 곡선을 매끈하게 빼준 교복 덕에 선배들 눈길을 사로잡곤 했다. 다행인지 남들보다 치마 길이가 길게 맞춰져서 정강이 절반 아래로 날씬한 다리만 보이고 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어쩌다 내 정강이 상처를 발견하면

  • 관리자
  • 2023-11-10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