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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 작성일 2023-09-01
  • 조회수 361

괴물

이민우


[등장인물]


유주 10대 여성.

병우 10대 남성.

엄마 유주 엄마.

토끼



[배경]


현대

우리 주변 어딘가



[무대]


유주의 방

바닥 여기저기 옷가지들과 먹다 버린 과자봉지들이 흩어져 있다.


무대 가운데에 유주의 침대가 있다.

침대 바로 위로는 다락방이 있다.

다락방에는 유리, 금속 혹은 플라스틱 재질의 온갖 잡동사니들이 널브러져 있다.

그리고 토끼 인형도 하나 있다. 


다락방을 비추는 핀 조명이 따로 있어야 한다.

다락방을 비추는 핀 조명은 

다락방 아래 유주의 침대까지 비추도록 조도를 강하게 맞춘다.

이를 통해, 다락방과 그 아래 유주의 침대 그리고 유주까지 

관객으로 하여금 다소 과장되었다는 인상을 주도록 한다.


1막



무언가가 침대 위 다락방을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E)

소리와 함께 다락방을 비추는 핀 조명이 켜진다.

다시 소리가 들리고 (E) 

무대 전체 조명이 켜진다. 핀 조명은 서서히 꺼진다.

밝아지면 유주가 침대 위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유주

이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사이)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무대 뒤편에서 엄마가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낸다.

다락방에서 소리가 또다시 나고 (E)

고개를 들어 다락방 쪽을 쳐다보는 유주


엄마

밥 뭐 먹을래?

유주

(다시 스마트폰을 보며)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엄마

밥 안 먹을 거야? 뭐 먹을 거냐고?!

유주

안 먹어!

엄마

왜 안 먹어?

유주

다이어트 할 거야!

엄마

갑자기 무슨 또 다이어트야?

너 아까 아침은 다 먹었어?

유주

자꾸 왜 그러는데?

엄마

밥 먹었냐고! 이년아!

유주

무슨 상관인데! 이년아!

너는 밥밖에 모르냐?

맨날 밥! 밥! 밥! 밥!

엄마

그래서 안 먹었다는 거야?

유주

내가 알아서 해! 내가 알아서 한다고! 씨발!

엄마

(무대에서 퇴장하며 상기된 목소리로) 잘났다. 이년아.

괴물 같은 년.

유주

괴물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나!

엄마(목소리)

(무대 뒤에서 목소리로만) 방은 좀 치우고 사는 거야?!

방 좀 치워.

조금 있으면 니 방에 손님 들어갈 거야.

유주

내 방에? 왜?!

엄마(목소리)

다락방에 바퀴벌레 있는 거 같다며!

벌레 잡으라고 사람 불렀어.

유주

그래서 지금 누가 내 방으로 들어온다고?!

엄마(목소리)

방에 바퀴벌레 있다며?!

빨리 잡아달라고 난리 칠 때는 언제고.

유주

싫어! 싫다고!

너는 왜 항상 자기 멋대로야?!

엄마(목소리)

괴물 같은 년.

그러면 니가 직접 위에 올라가서 잡던가.

유주

그렇다고 낯선 사람을 내 방에 들어오게 하면 어떡해?

엄마(목소리)

바퀴벌레랑 같이 살 거야?

너야 니가 벌레니까 상관없을지 몰라도 나는 아냐.

나는 바퀴벌레의 ‘바’자도 이 집에 있게 하기 싫다!

유주

내 말은 대체 왜 안 듣는 거야?

나를 좀 존중해 달라고!

엄마(목소리)

존중이라는 단어는 아침부터 내가 너한테 하는 말이다.

유주

밖에도 안 나가고 여기서 그냥 조용히 잠자코 있잖아.

너나 니 남자친구 거슬리게 안 하잖아.

그러니까 너도 내 영역을 지켜달라고!

(아무 대답이 없자) 야! 야!

(사이)

엄마? 엄마!

항상 이런 식이야. 엄마라고 찾으면 못 들은 척하지!


다락방에서 소리가 나고 (E)

고개를 들어 다락방 쪽을 쳐다보는 유주 

초인종 소리 (E)

순간 놀라서 비명을 지르는 유주

다시 초인종 소리 (E)

다시 비명을 지르는 유주


잠시 후, 병우가 한 손에는 더플백, 다른 한 손에는 사다리를 들고 

무대 위로 등장한다.


병우

(더플백과 사다리를 내려놓고 고개를 숙이며) 

아, 안녕하십니까.

(긴장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으며) 저, 저는 해충 잡는 페스트-컨트롤에서 나왔습니다. 에프(F). 에이(A). 에프. (손으로 자기 머리를 때리며) 아, 아닌데…철자가 뭐더라.

(주머니에서 메모를 꺼내 살짝 보고 다시 주머니에 넣은 후) 피(P). 이(E). 에스(S). 티(T). ‘페스트’를!

에프. 에이. 에스. 티. ‘베리 패스트’하게!

저희 페스트-컨트롤은 해충을 누구보다 빠르게 처리해 드립니다!

(유주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럼 바로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유주의 방 이곳저곳 바닥에 흩어진 과자봉지를 치우며

그 밑을 유심히 살피는 병우


유주

(병우가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를 만지자) 

어딜 만져요!


무언가에 놀라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나는 병우.

유주도 깜짝 놀라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벽에 붙는다.


병우

(스마트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아빠! 

진짜 나 혼자 해야 해?

나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무서워-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빠? 아빠?

유주

(괴로운 듯 숨을 고르는 병우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몇 살이에요?

병우

(옆으로 다가온 유주를 다소 경계하며) 왜요?

유주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것 같은데 아빠. 아빠 하니까.

(병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키만 멀대같이 컸지 아직 완전한 독립을 못 했나 보네.

병우

빌붙어 사는 건 똑같지 않나요?

유주

빌붙어?

누가? 나?

아님 저 위에?

됐고. 여기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이제 그만 나가요.

병우

아무것도 없다고요?

유주

(다시 침대 위로 가 앉으며) 여기는 원래 생명이라곤 찾을 수 없는 곳이야. 공기는 있지만 산소는 없고 움직이는 건 있지만 살아있는 건 없는 곳이지.

뭐 해? 빨리 나가! 나가라고!

병우

(손으로 자기 머리를 때리며) 안 돼요. 갈 수 없어요.

아빠가 일 제대로 하고 오라고 했단 말이예요…

(유주가 스마트폰만 보고 대답이 없자) 계속하겠습니다.

(바닥을 다시 살펴보며) 밑에는 없는 것 같고…

(다락방 쪽을 올려다보며) 저 위에 있다는 거죠?


가지고 온 사다리를 펴는 병우

고개를 들어 병우를 쳐다보는 유주

사다리를 침대 위, 유주가 앉아 있는 곳 바로 앞에 올려놓는 병우


유주

야! 지금 뭐 하는 거야?

병우

(다락방 쪽을 올려다보며) 저 위를 봐야 해서요.

(유주를 보며) 여기 계속 있으실 거예요?

유주

미친 새끼!

병우

잠깐만 나가주실래요?

유주

싫어! 여긴 내 방이야. 이건 내 침대고.

너야말로 나가. 그만 나가 달라고!

병우

(조용히 하란 제스처를 취하며) 잠시만요. 잠시만.

조용히.


고개를 들어 다락방 쪽을 쳐다보는 병우

유주도 같이 고개를 들어 위롤 올려다본다.


병우

들었어요?

유주

뭐, 뭐를?

병우

안 들려요?

유주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

병우

확실히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유주

없다니까!

병우

(잠시 유주를 쳐다보다가) 안을 좀 보겠습니다.


침대 위로 껑충 올라가 서는 병우


유주

왜 다들 내 말을 안 듣는 거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병우


유주

야! 당장 안 내려와?

내려와! 빨리! 나가라고!

병우

가만히 좀 있어요. 흔들린단 말이에요.

유주

엄마-! 엄마-!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다락방을 훑어보기 시작하는 병우

손전등을 꺼내 비춘다.

다락방을 비추는 핀 조명이 켜진다.

다락방을 훑어보는 병우의 시선이 관객석 쪽을 향한다.


암전



2막



무대 한가운데 핀 조명만이 켜진다.

핀 조명 아래, 몸을 웅크린 채 앉아 있는 토끼

관객석 가까이 다가가는 토끼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토끼


관객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장벽 때문에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한다.


무대 뒤편까지 뒷걸음질한 후

앞으로 돌진해 장벽을 깨부수려 하는 토끼


하지만 알 수 없는 강한 밀어내는 힘에 의해 다시 튕겨

허우적거리며 뒤로 고꾸라진다.


다시 일어난 후

관객석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토끼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다시 인사를 한다.


바로 슬퍼하며 긴 두 귀로 눈물을 닦는다.


자신의 귀를 본 후

영감을 얻어 자기 말을 들어보라는 보디랭귀지를 하기 시작하는 토끼


무대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자신의 긴 두 귀를 잡아당기며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것을 호소한다.


하지만 자기 귀만 아플 뿐이다.

귀를 부여잡고 울기 시작하는 토끼


어디선가 ‘후두두두’ 하는 소리가 들린다. (E)

귀를 쫑긋하며 고개를 드는 토끼 


암전



3막



병우의 비명소리 (E)


유주

뭐야? 바퀴벌레야?! 

진짜 있는 거야?! 안 돼!

(빠른 어조로)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 분의 일이 타 버리고.

병우

없네!


다락방을 비추는 핀 조명을 비롯한 모든 조명이 일제히 켜진다.


병우

(아무렇지 않은 듯) 아무것도 없네요.

유주

씨발! 놀랬잖아!

당장 내려와!

거기 아무것도 없으니까 당장 내려와!

병우

혹시 모르니까 조금 더 훑어볼게요.

유주

빨래도 하고 가!

(사다리를 툭 치며) 이 더러운 걸 침대 위에 올려 놨으니까 이불이랑 다 빨고 가라고!

병우

(고개를 숙여 유주를 보며) 자꾸 흔들면 여기 있는 거 잘못해서 떨어뜨립니다.

유주

(뒤로 물러나며) 떨어뜨리기만 해봐!

병우

밑에서 흔들지만 않으면 그럴 일 없습니다.

(다락방을 훑어보며) 아기자기한 게 많네요.

어! 저건 뭐지?

유주

흥! 또 속을 줄 알고?

병우

뭔가 뾰쪽한 게 두 개 튀어나와 있는데.

유주

(소리를 지르며) 어떡해! 더듬이!

바퀴벌레 더듬이인가 봐!

(다시 두 눈을 감고 빠른 어조로)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 분의 일이 피가 되고.

병우

토끼네.

유주

토끼?

병우

토끼 인형이네.

유주

깡이!

병우

(고개를 다시 숙여 유주를 내려다보며) 깡이?

저 토끼 이름이 깡이에요?

유주

(고개를 끄덕이며) 내 친구. 깡이.

병우

애착 인형?

유주

(두 팔을 벌리며) 줘. 깡이.

병우

(토끼 인형을 꺼내 사다리에서 내려오며) 오랫동안 잊혔었나 보네요. 

아니면 일부러 가둬두고 잊으려 한 거 던가···


사다리에서 내려와 토끼 인형을 유주에게 건네는 병우

토끼 인형을 받자마자 꼬옥 껴안는 유주


병우

바퀴벌레는 없는 것 같은데요.

유주

확실해?

(병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

병우

비밀이요? 뭔데요?

유주

(손가락을 다락방을 가리키며) 사실-

가끔 저기서 소리가 나.

병우

어떤 소리가 나는데요?

유주

(손가락을 움직이며) 뭔가가 걸어가는 소리.

후두-두두두두-후두-두두두두-

병우

(고개를 들어 다락방 쪽을 올려다보며) 죽어 있는 애도 하나도 없던데···

유주

역시 괴물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

병우

괴물이요?

유주

사실 우리 집에는 괴물이 있거든.

병우

진짜요?

유주

우리 엄마가 맨날 그래.

괴물이랑 사는 이놈의 집구석.

병우

(손으로 자기 머리를 때리며) 

어머니께서 괴물을 잡아달라는 말은 안 하셨는데···

아빠도 그런 말은 안 했어요.

유주

괜찮아? 머리는 왜 자꾸 그렇게 때리는 거야?

병우

(머리 때린 손을 얼른 바지 주머니에 넣은 후)

(유주와 거리를 두며) 괘, 괜찮아요. 상관하지 마세요. 


바닥에 놓인 더플백으로 가 

약병과 스프레이 통을 꺼내는 병우


유주

뭐 해?

병우

약 뿌리려고요.

유주

약을 뿌린다고? 내 방에?!

병우

(약병을 열어 약병 안의 약을 스프레이 통에 넣으며)

왔으니까 뿌려야죠.

아빠가 매일 이야기해요. 사내새끼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 한다고! 너는 나약한 새끼라고.

유주

뿌리지 마! 무 안 잘라도 돼! 괜히 멀쩡한 무 죽어!

병우

(약병을 닫고 더플백에 넣은 후 스프레이를 들고 일어서며) 해야 하는 일이에요. 

비켜주세요.

유주

하지 말라고! 씨발! 내 말 안 들려?

병우

(사다리로 향하면서) 욕 좀 하지 마세요. 

나 욕먹는 거 엄청 싫어해요. 

대체 몇 살이에요?

왜 아까부터 자꾸 반말이야?!

(흥분한 듯 말을 더듬으며) 워, 원래 그, 그렇게 

싸, 싸가지가 없어?

유주

(순간 주춤하며 뒤로 물러나서 

사다리를 오르는 병우를 말없이 쳐다본 후) 

고작 벌레나 잡는 주제에!

병우

(사다리에 다 오른 후 유주를 힐끗 내려다보며)

지는 벌레면서!


다락방에 고개를 내밀고 

손에 들고 있는 스프레이를 두 손 높이 치켜드는 병우


유주

하지 마! 하지 말라고 분명 말했어!

병우

뿌, 뿌릴 거야. 뿌려야 한다고.

유주

하지 말라고! 씨발! 뿌리지 말라고! 뿌리지 마!

병우

요, 욕하지 마! 욕하지 마!

유주

씨발! 이 씨발 놈아! 씨발 새끼야!

병우

아빠. 죄송해요. 잘할게요. 잘할 거예요!


스프레이를 뿌리는 병우

동시에 소리를 지르는 유주

병우도 스프레이를 뿌리며 마음껏 소리를 지른다.


유주

(빠른 어조로)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 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스프레이가 뿌려짐과 동시에 무대 위에 스프레이 안개가 가득 깔린다. 

다락방을 비추는 핀 조명이 꺼진다.

안개가 무대를 가득 채운다.


유주

(빠른 어조로) 그 별의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 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나머지 조명이 모두 다 꺼진다.

암전



4막


무언가가 ‘우두둑’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E)


유주

깡이야!


침대 옆 핀 조명만이 켜진다.

핀 조명 아래 쪼그려 앉은 채 깡을 안고 있는 유주


유주

깡이야. 괜찮아?

괜찮아. 다 끝났어. 이제 다 끝났어.

(사이)

너 기억나니? 나랑 같이 평화광장에 불꽃놀이 보러 갔었던 거. 

불꽃이 정말 엄청 아름다웠잖아. 엄청 크고.

펑-! 펑-!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 서로 소원도 빌었잖아.

넌 무슨 소원 빌었었어?

나?

기억이 안 나··· 무슨 소원을 빌었더라···

그땐 고개를 드는 게 재미있고 참 좋았는데···

지금은 무서워.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려. 

진짜 괴물일까? 정말 우리 집에 괴물이 살고 있을까?

(고개를 들어 안고 있는 토끼 인형을 바라보며)

나? 나 말하는 거야?


전체 조명이 켜진다. (다락방을 비추는 핀 조명만은 끈 상태를 유지한다.)

유주 바로 옆에 서서, 유주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병우


병우

(유주 옆에 다가가 앉으며) 괘, 괜찮아?

(사이)

괜찮냐고? 사람이 물어보는데 왜 대답을 안 해?

(고개를 돌리며) 진짜 싸가지 없네. 

유주

말 함부로 하지 마.

병우

(다시 고개를 유주에게 돌리며) 뭐, 뭐라고?

유주

(고개를 들어 병우를 보며) 나 벌레 아냐.

난 벌레가 아니라고.

괴물은 더더욱 아니고!

병우

너한테 괴물이라고 한 적 없어.

유주

(콜록거리며) 죽을 뻔했잖아.

너 때문에 나랑 깡이랑 죽을 뻔했어!

병우

사람한테는 안 해로워. 걱정하지 마.

(더플백을 정리하며) 약을 뿌렸으니까 아마 다 죽을 거야.

어차피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던 것 같지만.

유주

있어.

병우

(어깨를 으쓱하며) 숨어 있었나 보지.

유주

분명 있어.

아까도 소리가 났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고.

병우

걱정 마. 약을 뿌렸으니까 이제 죽을 거야.

유주

만약 괴물이면 어떡해?

병우

(머리를 긁적이며) 그래서 그 괴물을 봤어?

유주

아니

병우

그럼 너희 엄마는 보셨대?

유주

엄마는 내가 괴물이래.

병우

본 적도 없는데 아까부터 왜 자꾸 괴물이래?

유주

들린다고. 소리가 들려.

병우

보지도 않고 그냥 소리만 들린다고

괴물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손가락으로 다락방을 가리키며) 저런 곳에?

(손으로 자기 머리를 때리며) 너 바보냐?

바보- 멍청이- 한심한 놈-

유주

니가 뭘 안다고 그래?

나 하루 종일 이 방에만 있어.

(바닥에 대자로 누우며)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창문 밖 문 너머 벽 사이로 항상 무언가가 들려.

그리고 점점 더 크게 들려.

병우

부럽다··· 나도 너처럼 하루 종일 누워있으면 좋겠다.

유주

처음엔 문밖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어. 

나이 든 남자의 목소리.

그리고 나이든 여자의 울부짖는 시끄러운 소리.

그렇게 한바탕 시끄러운 시간이 지나가면

남자의 목소리는 모깃소리 만큼이나 아주 작아져.

저 문밖에서 나한테 뭐라고 뭐라고 속삭이지.

이제는 기억도 안 나. 뭐라고 말했는지.

병우

지금도 들려?

유주

진짜, 모깃소리 였나?

엄마가 한번은 문을 아주 세게 쾅-하고 

닫은 적이 있어.

그때, 드디어 잡았다고 말했었거든. 모기를 잡았다고!

더 이상 피 빨릴 일이 없을 거라고 그랬어.

병우

여름이 지나고 날이 추워지면 모기도 사라지지.

유주

난 가을이 싫어. 특히 추석.

빌어먹을 명절. 졸라 시끄러워.

창문 밖에서부터 엄청 떠드는데.

날 본적도 없으면서 마치 나에 대해서 다 안다는 양 엄청 내 얘기를 해대. 

정작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때부터는 아무도 내 얘기를 안 하면서.

침대에 누워서 그런 걸 다 듣고 있으면 진짜 웃기다니까!

병우

너는 맨날 재미난 꿈을 꾸는구나.

유주

(고개를 들어 다락방 쪽을 올려다보며) 

저기에서 나는 저 소리는 대체 뭘까?

병우

아무것도 없어. 

유주

분명 뭔가 있어.

병우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제 그만 일어나.

젖비린내나는 꿈속에서 그만 허우적거려야지.

유주

(상체를 일으키며) 너도 내 이야기 안 듣는구나!

항상 이런 식이야. 다들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해.

젖비린내?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병우

아빠가 항상 나한테 하는 말이야.

마, 맞다! 아빠한테 전화해야 해!

늦으면 아빠한테 혼나.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걸며) 아빠! 저예요!

네. 끝났어요.


이때, 다락방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E)

순간 동시에 일제히 다락방을 올려다보는 두 사람

다시 다락방에서 소리가 난다. (E)


유주

(자리에서 일어나며) 들었어?

병우

드, 들은 것 같아.

유주

내 말이 맞지? 뭔가 있다니까!

병우

숨어 있던 애들이 죽어가며 나온 걸 거야. 


다락방에서 다시 소리가 난다. 마치 알이 깨지는 듯한 소리 (E)

소리를 지르며 병우의 등 뒤로 가 숨는 유주


병우

(코를 킁킁거리며) 이게 무슨 냄새지?

유주

냄새? 무슨 냄새 나?

병우

(다락방 쪽을 올려다보며) 저기서 나는 냄새 같은데···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다시 귀에 가져가) 아빠.

여기서 무슨 냄새가 나는데요.

벌레 때문에 나는 냄새는 아닌 것 같아요.

뭐랄까. 뭔가가 타서 날리는 냄샌데. 

쌀겨나 옥수수 껍질 같은 냄새가 나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빠? 아빠?

유주

전화 끊어졌어?

병우

끊으셨네.

언제 끊으셨지?

유주

너희 아빠도 너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구나.

병우

이, 일부러 그러시는 거야. 강하게 크라고···

스스로 해결하라고.

(어색한 몸짓을 하며) 혼자 두 발로 일어나서 알아서 더듬이를 세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하고 스스로 날개로 펴 날아오르라고.

유주

니가 무슨 바퀴벌레야?

병우

(다락방 쪽을 올려다보며) 아니야.

바퀴벌레는 아니야.

유주

바퀴벌레가 아니면 뭔데?

병우

어쩌면 쥐일 수도 있어.

유주

쥐?

쥐라고?!

(비명을 지르며) 쥐다! 쥐야! 쥐!

엄마(목소리)

왜 이렇게 시끄럽냐! 시끄러워서 미치겠다! 

이 미친년아! 왜 또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병우

아빠?! 아, 아빠? 

유주

쥐야! 쥐! 쥐가 있어!

엄마(목소리)

뭐? 쥐? 세상에나! 쥐까지 있어?

이봐요. 청년. 진짜 거기 쥐가 있어요?

병우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곤)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아직 보지는 못했습니다.

엄마(목소리)

바퀴벌레든 쥐든 뭐든 그 위에 있는 건 싸그리 다 죽여버려요.

다 없애버리라고요!

무조건 잡아요! 알았어요?

(혼잣말하는 어조로) 내가 못 살아. 쥐까지 있다니.

괴물 같은 년에 바퀴벌레 거기다 쥐까지.

내가 저런 것들이랑 한 지붕 아래 같이 살다니.

(탄식을 하며) 내 팔자야. 내 팔자야.

내가 그때 현식이 오빠를 따라갔어야 했는데.

현식이 오빠를 따라갔어야 했어···

병우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유주를 보며) 왜 말을 끝까지 안 들어?

너도 결국은 똑같아.

유주

무슨 말 하는 거야?

병우

깡이가 하는 이야기는 제대로 들은 적 있어?

너야말로 들어보려고 한 적 있냐고?

유주

지금 뭐라고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진다.


병우

(유주를 무시하고 사다리에 다시 발을 올리며) 

쥐는 좀 무서운데···

유주

(두 눈을 감고 빠른 어조로)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의 삼 분의 일과

달의 삼 분의 일과 별들의 삼 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병우

(사다리를 오르며) 아빠. 잘 할게요. 진짜 잘 할게요.

유주

그 삼 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암전



5막


무대 하수 쪽 핀 조명만이 켜진다.

핀 조명 아래, 몸을 웅크린 채 앉아 있는 쥐

관객석 가까이 다가가는 토끼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쥐


관객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장벽 때문에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한다.


무대 뒤편까지 뒷걸음질한 후

앞으로 돌진해 장벽을 깨부수려 하는 쥐


하지만 알 수 없는 강한 밀어내는 힘에 의해 다시 튕겨

허우적거리며 뒤로 고꾸라진다.


다시 일어난 후

관객석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쥐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다시 인사를 한다.


무대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토끼

토끼를 발견하고

토끼를 향해 인사를 하는 쥐

가만히 쥐를 쳐다보는 토끼


쥐와 토끼, 말없이 서로를 쳐다본다.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을 벗는 토끼

엄마의 얼굴이 드러난다-!

쥐를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토끼 

말없이 엄마 얼굴을 한 토끼를 바라보는 쥐 

‘뿡-’ 하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E)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진다.

암전



6막


다시 한번 ‘뿡-’하는 소리가 들린다. (E)

무대가 밝아진다.


유주

나 아니야.

병우

나도 아니야.

유주

아무튼 소리는 났어. 누군가는 낸 거야. 

병우

(사다리에서 내려오면서) 괴물이 냈나? 

유주

없어?

병우

없어. 쥐도 아니야.

유주

다행이다! 

고, 고마워.

병우

고마워?

(사다리를 접다가 바닥에 떨어뜨린다.)

(당황하며) 이, 이제 그, 그만 가볼게.

(사다리와 더플백을 들고 나가려 하며) 깡이야. 안녕.

엄마(목소리)

이봐! 청년! 아직 멀었어?

병우

(사다리와 더플백을 내려놓으며) 다 끝났습니다!

엄마(목소리)

좀 잡았어? 몇 마리야?

병우

아니요.

엄마(목소리)

몇 마리 없었어?

병우

그게 아니라 아예 없었습니다.

쥐 없습니다.

엄마(목소리)

바퀴벌레는?

병우

바퀴벌레도 한 마리도 없습니다.

엄마(목소리)

거기 우리 딸애 있지?

딸애가 분명 있다고 했거든!

진짜 한 마리도 없어?

병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엄마(목소리)

참고로 그 애 믿지 마!

괴물 같은 년이야. 맨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거든.

유주

개소리 좀 하지 마! 이 미친년아!

엄마(목소리)

이왕 온 김에 약 뿌리고 가.

병우

이미 했습니다.

엄마(목소리)

알았지? 약 꼭 뿌려줘.

사장님이 학생 아버지 맞지?

가고 나서 바퀴벌레든 쥐든 소리만 나기만 하면 바로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따질 테니까 제대로 해!

병우

이미 했다니까요!

(대답이 없자) 어머니? 어머니?

유주

엄마는 늘 저래.

자기 할 말만 하고 정작 부르면 못 들은 척하지.

내 이야기를 들어준 적이 한 번도 없어. 

(병우를 바라보며) 아빠도 그래?

병우

아, 아빠 얘기하지 마. 아빠 얘기하지 마.

(손으로 자기 머리를 때리며) 아빠한테 얘기한대.

아빠한테 얘기한대. 어떡해- 어떡해-

아빠한테 얘기할 거래. 아빠한테!


소리를 크게 지르며 손으로 자기 머리를 때리는 병우

그런 병우의 손을 덥석 잡는 유주


유주

그만해.

(사이)

괜찮아?

너도 아프구나···

병우

아, 아니야. 나 아, 안 아파. 안 아프다고!

유주

거짓말하지 마. 너랑 아빠 사이도 나랑 똑같나 보네.

나랑 엄마, 저 미친년하고 말이야.

병우

엄마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 그건 예의에 어긋나.

그렇게 말하면 혼나.

유주

여기 와서 듣고도 몰라?

저년이 너한테도 함부로 대했잖아. 

병우

그래도 넌 행복한 거야. 난 니가 부러워. 

유주

미친-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병우

너는 니 방이 있잖아. 너만의 쉴 수 있는 공간이라도 있잖아.

우리 집은 아니야. 우리 집은 아예 방이라는 게 없어.

아빠랑 나. 남자 둘이 좁아터진 원룸에 산단 말이야.

유주

흥! 그래도 바퀴벌레나 쥐는 없을 거 아냐!

병우

여기 니 방에도 없어.

유주

그건 모르는 거거든.

그리고 어쨌든 소리 때문에 신경 쓰는 일은 없을 거 아냐?!

(손가락으로 벌레가 걸어가는 동작을 취하며)

후두-두두두두- 후두-두두두두두- 

이런 소리 나? 이런 소리 듣냐고?

병우

우리 집에서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 알아?

(한 손으로 주먹을 쥐고 활짝 편 다른 손을 때리며)

퍽-! 퍽-! 퍽-!

(무표정하게) 으악! 악! 악! 아빠! 아빠! 아파! 아파! 아파!

퍽-! 퍽-! 퍽-!

(주먹으로 사다리를 쳐 넘어뜨리며) 쨍그랑- 쾅! 쾅! 쾅! 

(사이)

사실은 나도 괴물이야.

유주

괴물?

병우

아니, 더 정확하게는 괴물 새끼지.

아빠가 날 항상 그렇게 불러. 괴물 새끼라고.

맞는 말이기도 해.

괴물의 새끼니까.

유주

너는 왜 괴물인데?

병우

학교에서 잘렸거든.

유주

왜?

병우

돈을 훔쳐서.

유주

그래서 맞은 거야? 아빠한테?

병우

혼났지. 

병신같이 걸렸다고··· 시키는대로 안 했다고···

유주

미친 새끼네!

병우

나는 괴물 새끼야. 구제불능 어쩔 수 없는 괴물이라고!

(발작을 하며)

죄송해요! 아빠! 잘할게요! 앞으로 잘할게요!

진짜예요! 진짜로 잘할게요! 잘할 거예요! 

믿어주세요! 제발. 제발 제 말 좀 끝까지 들어주세요!

유주

그만해! 하지 마!


병우에게 다가가

병우를 꼭 껴안아 주는 유주


이때, 다락방에서 뭔가 ‘후두-후두두두’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E)

순간 깜짝 놀라 덥석 서로를 껴안는 유주와 병우

다락방에서 계속 소리가 나고 (E)

고개를 들어 다락방 쪽을 올려다보는 유주와 병우


병우

대체 뭘까?

유주

몰라.

병우

바퀴?

쥐?

(사이)

아니면 진짜로 괴물?

유주

차라리 괴물이었으면 좋겠어.

그냥 밖으로 나와서 나랑 내 모든 걸 다 물어뜯고 씹어먹었으면 좋겠어.

병우

진심이야?

유주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이 다 사라져버렸으면 좋겠어.

병우

엄마도?

아빠도?

깡이도?

유주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놈들은 전부 나를 다 안다고 생각해. 계속 헛소리만 늘어놓지.

씨발 것들. 미친 새끼들.

병우

욕 좀 그만해.

유주

왜?

괴물 같아?

병우

그만 이제 나가고 싶다.


서로를 쳐다보는 두 사람

무대 위로 안개가 깔리기 시작한다.

모든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진다.

안개가 무대를 가득 채운다.

암전


CUT TO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E)

다락방을 비추는 핀 조명만이 희미하게 다시 켜진다.

실루엣으로 어떤 괴생명체의 모습이 보인다.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E)

날개를 파닥거리는 어린 새의 실루엣.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려 하는 어린 새.

안개가 여전히 무대에 가득하다. 


무언가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어린 새의 실루엣.

몇 발자국 앞으로 걸은 후 다시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려 하지만

또다시 비틀거린다.

무대 위 안개가 어느새 관객석에까지 퍼져 있다.

다시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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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5
환승

환승 윤미희 나오는 사람들 상희 민재 윤아 때 늦은 밤 곳 지하철 안과 밖 무대 무대는 달리는 지하철 안과 지하철을 기다리는 밖으로 나뉜다. 별다른 무대 장치 없이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것만 표현해도 좋다. 1. 주안역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상희, 민재, 윤아 세 사람 모두 검정색 계열의 옷을 입고 있다. 각자 스마트폰을 보며 혼잣말을 하는 건지 들으라는 건지 모르겠는 말투로 민재 왜 난 검색해도 안 나오지? 윤아 버스 타야 하는데 괜히 지하철 타는 건가? 상희, 윤아에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상희 제가 검색할 때는, 신도림에서 갈아타서 홍대입구까지 이렇게 가는 걸로 나오거든요. 민재, 기웃거리고 윤아, 상희의 스마트폰을 바라본다. 민재 어? 그건 또 다르게 나오네. 윤아 도대체 뭐가 맞는 거야… 상희 성신여대입구까지도 간다고 나오니까 연희동까지는 충분히 갈 수 있을 거예요. 윤아, 다시 자신의 스마트폰을 바라본다. 민재, 끼어들며 민재 나도 좀 봐줘요. 민재,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민다. 상희,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며 상희 신도림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셔서 잠실까지 쭉 갔다가, 잠실에서 8호선으로 갈아타셔서 천호, 거기에서 다시 5호선으로 갈아타야 된대요. 5호선에서는 한 정거장만 더 가시면 되고요. 민재 좀 애매한데… 윤아 이미 돌아가긴 늦었어요. 민재 역 주변에 있을 곳이 있나. 상희 전부 술집뿐인 것 같던데요. 민재 주안역은 처음이거든요. 상희 저도요. 윤아 저도 1호선은 많이 안 타봤어요. 민재 아까 올 땐 1호선 급행열차 탔는데, 윤아 1호선에도 급행열차가 있구나, 민재 우리 잘 도착할 수 있겠죠? 상희 그럼요. 부천행 급행열차가 오고 있다. 윤아 어? 급행열차네요. 민재 이거 타는 거 맞죠? 상희 이거 타거나 좀 기다렸다가 일반 열차 타거나 도착하는 시간은 똑같아요. 민재 왜요? 상희 …부천행이잖아요. 민재 네? 상희 신도림까지는 가셔야죠. 민재 아, 잠시 고민하는 세 사람. 민재 좀 덥지 않아요? 윤아 그냥 탈까요? 어차피 기다리는 거 조금이라도 가면서 기다리는 게… 상희 그래요, 그럼. 문 열리고 탑승하는 세 사람, 빈자리가 많아 좀 떨어져 앉는다. 각자 다시 스마트폰을 보며 윤아 왜 다시 검색하면 자꾸 다르게 나오지? 상희, 눈치만 볼 뿐 대꾸하지 않는다. 윤아 아까 거기서 버스 타고 가서 공항철도를 탔어야 했나 봐요. 잘 모르는 길이라 혼자 가기도 좀 그렇고 해서 따라오긴 했는데… 민재, 열차 내부에 붙어 있는 노선도를 바라보며 민재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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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여인의 초상 황수아 대호 한국신문 문화부 기자 현 국내 유명 화가 미현 현의 애인 여인 정체불명의 여인 선예 현의 아내 상인 미술 학원 원장, 화가 현서 강력계 경찰 상우 패션잡지 에디터 변호사 이혼 전문 변호사 부장 신문사 문화부 부장 1장 미술관 무대 정면에 커다란 그림 하나가 걸려 있다. 색이 선명하고 사실적인 풍경화다. 시골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 안은 뒷산과 그 앞을 흐르는 개울 한 가족이 피크닉을 즐기고 애완견이 그들과 함께한다. 동화책 삽화로 나올 것 같은 따스한 그림이다. 현, 두 손을 뒤로 맞잡고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대호, 현의 뒤로 조심스레 다가간다. 대호 안녕하세요. 작가님. 현 (뒤돌아 대호를 본다.) 대호 한국신문 문화부 기자 이대호입니다. 현 네. 안녕하세요. 대호 전시회 잘 봤습니다. 현 잘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대호 다음 일정이 없으십니까? 현 아내가 오기로 해서요. 대호 아. 그러시군요. 사이 현 (대호를 다시 한번 쳐다보며) 기억나는군요. 아까 기자 간담회 때 저의 근황에 대해 질문하셨던 분이시군요. 대호 네. 그렇습니다. 계속 질문을 드리면 실례일 것 같아 멈췄습니다. 현 제법 곤란했던 기억이 나네요. (웃는다.) 대호 더 질문드리면 사적인 영역까지 확대될 것 같아서요. 현 그림의 연장선상인데 뭐 어떱니까. 궁금한 건 얼마든지 물어보셔도 됩니다. 대호 그러시다면… 한 가지만 더 질문드려도 될까요. 특집 기사를 준비하고 있어서요. 현 한국신문에서 제 특집 기사를요? 대호 네. 현 고마운 일이죠. 질문하시면 성의껏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대호 최근 풍경화를 주로 그리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현 근 일 년간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제가 모르던 자연의 풍경에 매료되었죠.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들을 그림에 담고 싶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토 개발은 너무 빠른 속도죠. 언제 개발되어 사라질지 모르는 풍경들이니까요. 대호 그런데 원래는 인물화를 중심으로 작업하지 않으셨습니까? 거의, 아니 백 프로 인물화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현 발표되지 않은 풍경화를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대 시절엔 풍경화 동아리도 했었죠. 언젠가 한 일 년 정도는 풍경화 위주로 작업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작년 안식년을 가지며 여행을 한 게 새로운 발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대호 아. 현 또 물으실 게 있나요? 대호 실례가 되는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제 개인적인 의견으론. 인물화에 흐르던 그 특유의 분위기가 사라졌습니다. 현 특유의 분위기라뇨? 대호 선생님이 항상 그리던 여인은 눈빛과 입매가 아주 미세하게 비대칭이라 독특했죠. 초기작부터 중기, 그리고 최근까지도 그 도발적인 느낌은 점점 강해졌습니다만 풍경화

  • 관리자
  • 202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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