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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

  • 작성일 2023-10-06
  • 조회수 688

해지

백지영


등장인물

이루(남)

해지(여)

기자(남)



무대

무대는 기본적으로 비어 있다.

장소는 구체적이기 보다는 대소도구 및 조명 등을 이용해 변화를 주는 정도로 표현토록 한다.



1. 검은방



무대는 빛이 들지 않는 좁고 어두운 방이다. 중앙에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캐리어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무대에 울려 퍼지 긴장된 표정의 이루, 들어와 의자에 앉는다. 동시에 소리 뚝 끊긴다. 잠시 후 기자, 들어온다.


이루

시작하는 건가요?

기자

긴장이 많이 되시나봐요?

이루

좀 그러네요.

기자

사실 의외였어요. 거절하실 줄 알았거든요.

이루

아마 오늘 인터뷰가 나가고 나면 돈독이 제대로 올랐다고 난리가 날 거예요.

기자

그런데도 응해주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루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나서 가장 많이 들은 소리가 돈 때문에 그런 짓을 해 놓고 억울할 게 뭐가 있냐는 말이었어요. 하나같이 하는 말이 전 피해자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기자

순수한 피해자, 그 얘기군요?

이루

맞아요. 제가 선택한 일이니 찍소리할 것도 없다는 거죠. 근데 솔직히 그건 아니지 않나요? 제가 돈을 받았다고 해서 그런 꼴을 당해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기자

그럼 오늘 그 속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털어놓아 보시겠어요? 변명도 좋고 해명도 좋고 사과도 좋습니다. 어떤 이야기건 제가 들어 드리죠.



의자에서 일어나는 이루. 기자, 나간다.


이루

어릴 때 사고를 크게 친 적이 있어요. 온라인 중고 사기로 빨간 줄이 그어졌죠. 그때도 그랬어요. 돈은 급한데 구할 데는 없고, 그러다 보니 머리가 그쪽으로 돌아간 거죠. 그래도 그 일 이후 정신은 차렸는데 사람들의 시선은 바뀌지 않더라구요. 또 무슨 사고를 치려나 하고 쳐다보는 것만 같았죠.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그러다보니 조건을 보지 않는 일만 찾게 되고 주로 하게 되는 일이 막노동이나 대리운전 알바같이 일당으로 돈을 받을 수 있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가릴 처지가 아닌지라 닥치는 대로 일을 했죠. 저 때문에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일하시는 할머니 생각을 하면 아무것도 아니였거든요. 그날도 대리를 뛰었는데, 돈을 더 준다는 요구에 외곽으로 나왔어요. 그렇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찾은 버스정류장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빠르게 굴러가는 캐리어 바퀴 소리가 무대 안을 가득 채운다. 




2. 버스정류장



버스를 기다리는 이루. 이때 멀리서 여자의 신음 소리 들린다. 소리가 나는 방향을 찾던 이루, 멀리서 남자에게 맞고 있는 해지를 발견한다. 이루, 귀찮다는 표정을 짓고는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해지의 신음 소리가 계속 들려오자 핸드폰으로 경찰차 사이렌 소리를 켠다.


이루

여기요. 여기 사람이 맞고 있어요. 경찰 아저씨. 여기에요.



남자, 해지를 밀치고 도망간다. 이루, 쓰러진 해지에게 다가간다.


이루

괜찮으세요?

해지

···.

이루

경찰 불러드릴까요? 

해지

···.

이루

저기요.



아무 대답이 없자 이루, 조심스럽게 해지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이때 해지, 이루의 멱살을 잡는다.


해지

너 대체 뭐야?

이루

네? 아니 전 그냥···.

해지

뭔데 해지 일을 방해해?

이루

걱정이 돼서···.



순간 멈칫하는 해지, 이루를 빤히 쳐다본다.


해지

해지를 걱정해?



해지의 묘한 표정에 섬뜩함을 느낀 이루, 해지의 손을 뿌리친다. 해지, 이루를 바라보며 미소 짓다 나간다.


이루

그때는 이상한 여자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곤 금방 잊어버렸어요. 사실 생각할 것도 없었어요. 제가 만난 건 아주 잠깐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요. 그날은 대리 콜이 한 건도 잡히질 않아서 일찌감치 고시원으로 들어온 날이었어요. 샤워를 마치고 자려고 누웠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


이루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린다.




3. 고시원 방



이루가 묵고 있는 고시원 방. 연이어 들리는 문 두드리는 소리. 이루, 경직된 표정으로 문을 바라본다. 몇 번이고 누구인지 물어보지만, 대답이 없자 결국 문을 연다. 문 앞에는 해지가 서 있다.


이루

누구세요?



해지, 이루를 밀치며 들어온다.


이루

이봐요. 지금 어딜 들어오는 거예요?

해지

안녕하세요. 해지라고 해요. 해지하고 알바 하나 하실래요?

이루

지금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해지

어렵지 않아요.

이루

잠시만요. 대체 누구세요?

해지

해지요.

이루

아니 이름이 아니라··· 아, 당신 그때 맞고 있던 그 여자··· 근데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요?

해지

그게 중요한가요?

이루

알겠으니까 이만 나가주시겠어요?

해지

돈 드릴게요.

이루

돈을 왜 줘요?

해지

해지하고 알바를 하면 돈을 드려야죠.

이루

내가 왜 아줌마하고 일을 해요? 다 필요 없으니까···.

해지

해지는 아줌마 아니에요.

이루

아줌마건 아니건 상관없으니까 나가라구요.

해지

해지는 해지라구요. 왜 해지한테 아줌마라고 하는 거예요? 해지는 아줌마 아니에요. 아줌마 아니라구요. 아줌마 아니야. 아니야. 아니란 말이야.



발악하듯 소리를 지르는 해지의 모습에 당황하는 이루. 옆방에서 벽 두드리는 소리 들린다.


이루

옆방에서 뭐라 하잖아요.

해지

(악을 쓰며) 해지한테 사과해요. 해지한테 사과하라구요.

이루

알겠어요. 사과해요.

해지

(악을 쓰며) 미안하다고 하라구요.

이루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차분해지는 해지. 옷매무새를 정리한다.


해지

그럼 해지가 용서할게요. 해지는 마음이 넓으니까요.

이루

(어이없어하며) 저기요. 그럼 이만 나가주시겠어요?

해지

알바, 어렵지 않아요.

이루

아니, 전 일할 생각이 없다구요.

해지

조금의 시간과 힘만 들이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죠.

이루

이봐요.

해지

해지. 해지라고 불러요.

이루

여하튼 전 안 한다구요.

해지

해보세요. 금방 능숙해질 거예요. 해지의 경험상 그랬거든요.

이루

됐어요.

해지

들어보세요.

이루

됐다구요.

해지

들어 보라구요. 해지가 말해준다는데 왜 안 듣겠다는 건데요? 들으라고. 해지가 하는 말, 들으라고. 들어.

이루

(당황하며) 알겠어요. 들을 테니까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이루를 빤히 바라보며 미소 짓는 해지. 이루, 해지의 눈빛에 밀려 고개를 돌린다.


이루

그··· 그래서 그게 대체 무슨 일인데요?

해지

그냥 몇 대 때려주면 되는 일이에요.

이루

사람을 왜 때려요?



해지,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이루에게 준다. 봉투에는 각서 1장과 현금 30만 원이 들어있다. 봉투를 열어보는 이루.


해지

해지는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는 각서에요. 해지가 사인도 했어요. 그리고 그건 계약금 30만 원이구요. 일을 마치면 100만 원 바로 드릴게요.

이루

사람을 어떻게 보고···.

해지

죽여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몇 대 때려달라는 건데 뭐가 문제에요? 내일 하루 중에 딱 10분만 투자하면 되는데. 정말 싫어요?

이루

내가 이 돈만 받고 튀면요?

해지

그렇게 되면 해지는 계약금을 날리고, 그쪽은 10분 만에 벌 수 있는 돈 100만 원을 날리는 거죠. 너무 아쉬울 거 같지 않아요?

이루

(고민하다가) 내가 하겠다는 게 아니라··· 상대가 누군데요? 혹시 어제 그쪽을 때렸던 그 남자예요?

해지

각서에 쓰여 있어요.



각서를 읽어보고 당황하는 이루.


해지

맞아요. 해지에요.



미소 짓는 해지. 이루, 불안한 표정으로 해지를 바라본다.




4. 버스정류장



버스정류장.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 잠시 후 해지, 이루의 손을 천천히 잡는다.


해지

해지는 이 버스정류장이 좋아졌어요. 의미가 생겼거든요. 그리고 의미가 생겼다는 건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해지가 많이 생각할 거란 말이기도 해요.



해지, 이루의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연달아 때리게 한다. 당황하는 이루와 달리 미소를 지으며 이루를 바라보는 해지. 


해지

금방 능숙해질 거예요.



이루, 해지의 손을 뿌리치지만 다시 붙잡힌다.


이루

어떻게 능숙해질 수가 있어요? 사람인데···.

해지

해지의 경험상 그랬어요.



이루, 때리기로 결심한 듯 손을 치켜든다. 이때 무대 위 불빛이 어지럽게 흔들리더니 해지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무대를 가득 메운다.


이루

왜 웃는 건데? 조용히 해. 입 닥치라고.



해지를 밀어 쓰러트리는 이루.


이루

돈만 주면 뭐든 하는 병신 같아서 비웃는 거냐? 누군 이러고 살고 싶은 줄 알아? 나도 남들처럼 살고 싶어.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근데 한번 낙인찍힌 놈이라고 다들 색안경을 끼고 쳐다보는데,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너희들이 날 무슨 짓이든 하는 놈으로 몰아붙이는 거야. 알아?



어지럽게 흔들리던 불빛이 멈추면 이루, 숨을 헐떡이며 해지를 바라본다. 해지,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이루에게 준다. 이때 들어오는 기자, 이루의 봉투를 갖고 와 돈을 꺼내본다.


(사이)


무대는 인터뷰를 하던 검은 방으로 바뀐다. 해지는 이루의 주위를 천천히 멤돈다.


기자

돈을 주고 때려 달라니···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하셨나 봐요?

이루

10분이었어요.



해지, 미소를 지은 채 이루의 주위를 맴돈다. 그런 해지를 눈을 쫓는 이루.


이루

10분이었다구요. 그 돈을 벌기 위해 일한 시간이···.

기자

아쉬웠다는 말로 들리네요.

이루

대충 시늉만 한 거였어요. 정말 때리진 않았다구요. 그런데도 돈을 주더라구요.

기자

그래서요?

이루

솔직히 날 한 번 더 찾아주지 않을까, 그러면 마지못해 하면서 해야지, 별별 생각을 다 했어요. 그런데 그런 일은 없었죠. 우연처럼 마주쳐 볼 심산으로 버스정류장에 가보기도 했는데 없더라구요. 그래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일이 터진 거예요.

기자

할머니께서 당하신 폭행 사건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루

맞아요.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돈 빌릴 곳은 없고···.

기자

정말 없었어요? 당시 이루 씨가 일하고 있던 회사 사장님 얘기를 들어보면 그 정도는 가불해줄 수 있었을 거라고 하던데···.

이루

방송이니까 그렇게 말한 거예요. 빌려줄 생각도 없었으면서···. 덕분에 손쉽게 돈 벌려고 한 파렴치한 놈이 됐잖아요.

기자

뭐, 좋습니다. 여하튼 돈 빌린 곳이 없던 강이루 씨는 다시 한번 그 여자를 찾으러 버스정류장으로 갔다는 거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요?

이루

맞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녀가 있었어요.



이루와 시선이 마주친 해지, 멈추어 선다. 기자,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사이)


무대는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바뀐다.


이루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요즘 날씨가 너무 춥죠?

해지

···.

이루

저기 혹시··· 지난번처럼 알바 안 구하세요?

해지

···.

이루

저 다시 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혹시라도 필요하시면···. 저기요?

해지

···.

이루

제가 괜한 얘길 꺼냈나 보네요. 죄송합니다.



이루, 뒤돌아 나가려 한다.


해지

한 달 동안 하루에 10분씩. 같은 장소, 같은 시간. 어때요?

이루

네?

해지

똑딱 똑딱 똑딱···. 해지는 기다리는 걸 매우 싫어해요. 해지하고 알바 하실래요?

이루

할게요. 뭐든 다 할 테니까 돈만 잘 주시면 돼요.

해지

얼마가 필요한데요?

이루

그게··· 천만 원이요. 너무 많은가요? 아니면 칠백이라도···.

해지

좋아요.

이루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해지

해지가 더 감사하죠. 이루 씨.

이루

제 이름은 어떻게 아세요?

해지

돈은 내일 드릴게요. 현금으로.

이루

바로요?

해지

급하잖아요. 할머니 때문에···.

이루

그건 또 어떻게 아세요?

해지

그게 중요한가요?



미소를 짓는 해지를 보며 순간 머뭇거리는 이루.


해지

얘기는 끝났으니까 이제 시작할까요?

이루

지금요? 

해지

싫어요?

이루

아니요. 원하신다면 바로 해야죠. 아, 혹시라도 너무 아프거나 그러면 말씀하세요. 바로 멈출 테니까요.



두 눈을 감는 해지. 이루, 잠시 심호흡을 한다.


이루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해지

해지는 이 순간이 제일 행복해요. 온전히 해지한테만 집중하잖아요.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이루, 해지를 때리기 위해 손을 치켜든다. 




5. 검은 방



작업복을 입은 이루 뛰어 들어온다.


이루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이쪽 레일에 배속받은 강이루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걱정 마세요. 일하다 도망치진 않아요. 전에도 택배 상하차 일 해봤거든요. 



잠시 후 작업복을 벗고 핸드폰을 들고 서성이는 이루.


이루

여보세요. 사장님. 대리입니다. 말씀 주신 곳까지 왔는데 어디 계세요? ··· 아.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뛰어나가는 이루. 잠시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온다. 이루의 핸드폰 울린다. 전화를 받는 이루.


이루

여보세요. ··· 죄송합니다. 먼저 전화드리려고 했는데···. 다음 주까진 꼭 납부하겠습니다. ··· 그럼요. 알죠. 병원비 밀리면 퇴실 조치 된다는 거···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다음 주까진 입금할게요. ··· 저희 할머닌 좀 어떠세요? ··· 그렇죠. 정신이 없으시니까···. 아, 저 일하러 가야 할 거 같아요. 할머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는 이루. 긴 한숨을 내쉰다. 


이루

생각이 안 났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하루에 10분이었잖아요. 그렇게 일하고서 받은 돈이 이천이었는데··· 기분은 찜찜했지만 혹할 수밖에 없는 돈이죠. 그래도 어떻게든 앞으로 달려가려고 하던 때였어요. 비록 남들보다 열 걸음은 뒤로 쳐져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앞만 보고 달려가다 보면 언젠간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할 때였거든요. 희망이 있었죠. 그때는. 근데 그 희망이 개꿈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사고가 일어났어요. 대리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깜빡 졸은 거죠. 정말 잠깐이었는데···.



급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자동차, 추돌하는 소리 들린다.


이루

안 될 놈은 뭘 해도 안 되는 거예요. 합의금을 마련할 재간도 없고, 그렇다고 도와줄 사람도 없으니 꼼작 없이 들어갈 판이었죠. 다 포기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해지, 들어온다.


해지

해지하고 알바 하나 하실래요?

이루

어떻게 알고 그녀가 저를 찾아왔어요.

해지

어렵지 않아요.

이루

달콤한 말이었죠.

해지

금방 능숙해질 거예요. 해지의 경험상 그랬어요.



이루, 고개를 끄덕인다. 이루 앞에 서는 해지, 이루의 손을 들어 올려 천천히 자신의 뺨에 갖다 대려 한다.


이루

그런데 말이죠. 몇 번 해주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돈을 받고 해주는 일이지만 주도권은 나한테 있는 게 아닌가? 제가 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는 거잖아요. 그 말인즉슨 제가 굽실거리면서 그녀의 비위를 맞출 필요가 없다는 거죠.



이루,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해지의 손을 뿌리친다. 해지의 뺨을 때리는 이루.




6. 버스정류장



바닥에 쓰러져 있는 해지,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이루

돈 안 주냐? 한 달이 지난 지가 언젠데.

해지

해지가 또 깜빡했어요. 해지가 죄송해요.

이루

내가 주의 줬지. 이름 좀 갖다 붙이지 말라고. 네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구.

해지

해지가 잘못했어요.

이루

너 일부러 이러는 거지? 나한테 더 얻어맞으려고? 

해지

사실은 해지가요···.

이루

(말을 자르며) 됐고, 당장 가서 돈 가져와.

해지

그러면 해지 집으로 오실래요?

이루

내가 거길 왜 가?

해지

해지가 바로 드릴 수 있는데···. 



이때 이루의 핸드폰 울린다. 전화를 받는 이루.


이루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형사님. 오랜만이네요. 그런데 무슨 일로··· CCTV요? ··· 잘됐네요. 누군지 밝혀지면 바로 연락 주세요.

해지

경찰서에서 왜요?

이루

네가 알아서 뭐 하게? 집 주소나 불러.

해지

(종이쪽지를 주며) 오시면 바로 드릴게요.

이루

너 이번에도 딴소리 하면 죽는다. 알겠어?

해지

그럼요. 해지는 거짓말 하지 않아요.

이루

쓸데없는 소리 말고 꺼져.



해지, 나가면 무대는 경찰서가 된다. 


이루

안녕하세요. 형사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죠. 누군지 나온 거예요? ··· 여자요? ··· 저기 형사님. 그러지 마시고 한 번만 보여주세요. ··· 흐릿하더라도 만약에 아는 사람이면 누군지 알아볼 수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한 번만 보여주세요. 부탁 좀 드릴게요. 저희 할머니 그 일 이후로 치매까지 와서 저렇게 누워서만 지내신다구요. ··· 감사합니다.



CCTV 영상을 보는 이루.


이루

어디요? ··· 아, 여기 뒤에 숨어 있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할머니를 처음부터 노렸다는 거예요? 대체 뭐 하는 여자인데···.



순간 표정이 굳어버리는 이루.


이루

그녀였습니다.



이때 한 손에 벽돌을 든 해지, 나온다.


이루

한 손에 벽돌을 든 그녀가 할머니 뒤를 따라가더니 들고 있던 벽돌로 할머니의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벽돌을 휘두르는 해지, 숨을 크게 몰아쉬고는 그대로 나간다. 헛구역질하며 주저앉는 이루. 이때 이루의 핸드폰 울린다. 전화를 받는 이루. 해지, 전화하며 천천히 걸어 나온다.


해지

이루 씨. 왜 안 와요? 해지는 준비가 다 됐는데···.

이루

너 우리 할머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해지

그래야 이루 씨도 해지처럼 혼자가 되니까요.

이루

미친년.

해지

왜 그래요? 서로 좋았잖아요. 빨리 와요. 안 그러면 해지가 찾으러 갈 거예요.



비명을 지르는 이루, 핸드폰을 던져 버린다. 해지, 웃으면서 나간다.


이루

잠수를 탔습니다. 어쩔 수가 없잖아요. 그런 미친년한테 걸렸다고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고··· 방법이 없었어요. 그저 숨죽인 채로 저한테서 관심이 없어지길 기다릴 뿐이었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잊혀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전에 버스정류장에서 그녀를 때리고 있던 그 남자처럼요. 그래. 그 남자. 그 남자는 어떻게 된 거지? 내가 나타나서 자연스럽게 잊혀진 건가?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그때 그 남자 옷에 박혀있던 회사 명칭이 떠오르길래 무작정 그 회사로 찾아갔습니다.



남자가 다니는 회사 직원을 만난 이루, 허리 숙여 인사를 한다.


이루

안녕하세요. 제가 사람을 찾고 있는데요. 여기 회사 잠바를 입고 계셨거든요. 한 50대 정도 되어 보이셨는데··· 아, 손등에 커다란 상처가 있었어요. ··· 성함은 잘 모르구요.

기자

(목소리만) 그때 만나신 분이 경찰서에서 이렇게 진술을 했더군요.



기자 나오면서, 진술서를 읽는다.


기자

지나가다가 들었는데 딱 장 씨더라구요. 물어볼 게 있어서 왔다고 하는데 얼굴이 파리한 게 안쓰러워 보였어요. 근데 그 얘기를 들은 직원이 장 씨는 얼마 전에 그만둬서 여기 없다고 하는 거예요. 속사정은 잘 모르니까 그렇게 말한 거겠죠.

이루

(안도하며) 감사합니다.

기자

그래서 고민하다가 제가 불러 세웠죠.



돌아가려던 이루, 뒤돌아선다.


기자

장 씨하고 어떻게 아는 사이냐고 물으니까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났는데 안부가 궁금해서 와 봤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말해줬죠. 석 달 전인가 갑자기 사라졌다구요. 그랬더니 사색이 돼서 절 쳐다보는 거예요.

이루

왜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기자

장 씨가 없어지기 전날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왔어요. 어떤 놈이 자기 일을 방해했다면서, 여자가 갈아탈 거 같다고 엄청 화를 내더라구요. 여자 집에 쫓아가 봐야겠다고 말했던 게 기억이 난다고 했죠. 

이루

여자요? 어떤 여자인데요?

기자

장 씨 말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했어요. 툭툭 치면 돈이 나온다구 좋아 죽더라고 말해줬더니 그 남자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는 거예요.



괴성을 지르는 이루.


기자

왜 그러냐고 몇 번을 물어봤는데도 대답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가는데, 표정이 장난 아니더라구요. 그땐 돈 빌려주고 떼먹혔나 보네라고 생각했지 그런 일에 엮었을 거라곤 생각을 못 했죠. (이루에게) 그렇게 나와서 요양병원으로 전화를 건 거죠? 할머니가 걱정이 돼서요.



핸드폰을 꺼내는 이루, 할머니가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으로 전화를 건다.


기자

당시 전화를 받았던 간호사분의 진술서를 보면 상당히 다급한 목소리였고, 뭔가에 쫓기는 느낌이었다고 쓰여 있네요.

이루

안녕하세요. 조복순 할머니 보호자인데요. 저희 할머니 잘 계세요?

기자

할머니는 잘 지내신다, 특히나 요즘엔 손자분 여자친구가 매일같이 찾아와서 할머니 기력이 많이 좋아진 거 같다고 말했더니 엄청 당황하더라.

이루

이름이··· 이름이 뭔데요?

기자

그래서 방문자 리스트에 적혀 있던 이름을 불러줬죠. 장선화.

이루

혹시 어떤 여자였죠?

기자

그래서 그냥 평범했다고 답을 했다. 막상 물어보니까 얼굴이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말할 때마다 선화가 이랬어요 하는 식으로 말을 하더라. 애도 아니고···. 거기까지 말했는데 전화가 끊겨 있었어요.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이루

그녀였어요. 그녀···.

기자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이루

그녀가 적어줬던 집 주소로 찾아갔습니다.



기자, 나간다.




7. 검은 집



칠흑같이 어두운 집으로 들어온 이루, 이상한 냄새 때문에 얼굴을 찡그린다.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집안을 둘러보던 중 방에서 들리는 신음 소리에 조심스럽게 방으로 간다. 

잠시 후 방바닥을 기어서 겨우 밖으로 나오는 이루, 겁에 잔뜩 질린 모습이다. 방에서 들리는 신음 소리는 절규에 가까운 비명 소리로 들리다가 갑자기 뚝 끊긴다.


이루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며) 여보세요. 여기 사람이 죽었어요. 아니 죽어가요. ··· 그게 아니라··· 여기요? 잠시만요. 주소가···.



주머니에서 집 주소가 적힌 종이쪽지를 찾는 이루. 이때 해지, 들어온다.


해지

언제 왔어요?



놀란 이루, 핸드폰을 떨어트린다. 이루의 핸드폰을 줍는 해지, 핸드폰에서 주소를 불러 달라는 경찰의 목소리가 들리자 전원을 끈다.


해지

봤어요?

이루

···.

해지

봤구나.



해지, 이루를 보며 섬뜩하게 미소 짓는다.


이루

내가 지금 바쁜 일이 있으니까 돈은 다음에 줘.



해지에게서 핸드폰을 빼앗고는 나가려는 이루.


해지

(이루를 껴안으면서) 가지 마요.

이루

이거 놔.



해지를 밀치다가 순간 자리에 꼬꾸라지듯 주저앉는 이루.


해지

해지가 이 순간을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왔는데요.



한 손에 주사기를 든 해지, 이루를 빤히 내려다본다.


해지

이루 씨. 이젠 해지랑 다른 알바를 해보는 거 어때요? 어렵지 않아요. 이루 씨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돼요. 해지가 다 알아서 할게요.



이루에게 점차 다가서는 해지. 이루, 몸을 움직여 보려 하지만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비명을 지르는 이루. 멀리서 사이렌 소리 들린다.




8. 검은 방



무대는 인터뷰를 진행했던 장소로 바뀐다. 홀로 무대에 있는 이루.


이루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날 제가 본 그 남자 말이에요. 숨은 붙어 있었지만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그런 몰골이었는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자칫 잘못했으면 내가 그 꼴이 되어 누워 있었겠구나. 미안하면서도 안도하게 되는 거 있죠. 비록 이렇게 빛도 들지 않는 좁고 어두운 방에서 쥐 죽은 듯이 숨어 살고 있지만··· 그래도 살아 있잖아요.



이때 캐리어 바퀴 굴러가는 소리 들린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이루. 해지,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들어온다. 놀란 이루,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해지를 눈으로 좇는다. 해지, 캐리어를 눕혀 열더니 안에서 이어폰을 뺏는다.


해지

이제 그만. 지금은 청력만 남아서 아주 예민할 텐데, 너무 혹사시키면 안 돼요.

이루

네가··· 네가 왜 여기 있어?

해지

(주위를 둘러보며) 조용해서 좋죠?

이루

여긴 대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해지

해지는 그 남자가 방송에 나갈 줄은 몰랐어요. 

이루

기자님. 어디 계세요? 그 여자가 찾아왔어요,



기자, 의자를 끌고 들어와 앉는다. 맞은편에 누군가 있는 것처럼 대화를 하는 기자. 


이루

기자님. 저 여자예요. 저 여자가 바로···.

기자

그래도 정말 운이 좋으신 겁니다. 목숨은 건지셨잖아요. 그날 버스정류장에서 강이루 씨와 마주치지 않았다면 아마도 당신이 그 모습이 되어 끌려다니고 있었겠죠. 강이루 씨의 호의가 당신을 살린 겁니다.

이루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기자

게다가 신고 또한 강이루 씨가 해준 거잖아요.

이루

당신 대체 누구랑 얘길 하는 거야. 저 여자를 보라니까.

기자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날 뻔했는데 말이죠. 장만호 씨.



기자는 보이지 않는 상대와 대화를 하고 있고, 해지는 캐리어에 든 무언가를 연신 쓰다듬고 있다. 혼란스러워하는 이루, 캐리어에 천천히 다가가 그 안을 본다. 놀라서 비명을 지르는 이루.


이루

저건 내가 아니야. 난 분명히 나왔어. 나왔다고. ··· 근데 어떻게 나왔지?

기자

어제 세 번째로 강이루 씨의 신체 일부가 발견된 건 아시죠? 비전문가에 의해 신체가 훼손된 상태에서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죠.

해지

해지는 이루 씨만 있으면 돼요.

기자

하지만 강이루 씨가 과거 온라인 사기 전과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또다시 쉽게 돈을 벌려고 한 본인의 탓이 크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돈만 주면 뭐든 한다는 그릇된 생각이 이런 결과를 야기한 것이니까요.



이루를 비난하는 인터넷 댓글이 무대의 한쪽 벽면을 채우기 시작한다.

‘누가 하라고 했냐?’ 

‘자기가 좋아서 한 거잖아. 근데 그것도 사회 탓이야?’

‘그런 일 당한 건 불쌍하지만 스스로 위험을 택한 것 아니야?’ 

‘저런 게 무슨 피해자냐?’ 

‘쉽게 돈 벌려다가 그 꼴 난거지’

‘돈만 주면 뭐든 하는 그놈이 이상한 거 아니야?’ 등의 댓글이 달린다.


기자

그런데 그 여자는 왜 그렇게까지 사람에게 집착한 걸까요? 저희가 장만호 씨를 모신 것도 그 이유에서죠. 눈앞에서 목격하셨으니 누구보다도 잘 아실 테니까요. 어떤 사람이었나요? 해지란 여자는요. 

해지

해지 아빠는 해지를 사랑해서 때린다고 했어요. 아빠가 해지를 때릴 때면 온전하게 해지만 바라보잖아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런 존재가 되는 순간인 거죠. 그게 바로 사랑이라고 했어요. 이루 씨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죠?



괴성을 지르는 이루. 


기자

결국 과거의 상처가 그런 행동을 촉발시켰다는 거네요. 현재 경찰에서는 해지라고 불리는 그 여자의 신원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어떤 기록도 찾을 수가 없어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2부에서는 지금까지 밝혀진 그녀의 행동 패턴에 대해서 범죄분석가를 모시고 자세한 얘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기자, 나간다. 해지, 캐리어 속 이루를 쓰다듬어 준다.


해지

해지가 여기까지 오면서 생각해봤는데요. 해지한테만 집중을 못 하는 이유가 귀 때문인 거 같아요. 이루 씨가 요즘 들어 다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해지는 싫어요. 그러니까 해지가 이젠 이루 씨의 귀도 되어 줄게요. 그러니 이건 필요 없어요.



해지, 수술용 칼을 꺼내든다. 


해지

이루 씨. 해지가 사랑해요.



순간 무대 어두워지면, 이루의 실루엣만 어렴풋하게 보인다.


이루

왜 이 모든 게 제 탓이라는 거죠? 전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했을 뿐이에요. 그러다 피해를 당한 건 전데, 왜 제가 잘못한 거라는 거죠? 제발 부탁이니까 피해자인 제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거기 아무도 없어요? 왜 다들 그 여자의 이야기만 궁금해하는 거죠? 왜 제 이야기엔 아무도 관심이 없는 건데요? 피해자는 저예요. 저라구요.



캐리어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진다. 무대 완전히 어두워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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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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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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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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