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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작(獨酌)

  • 작성일 2022-06-01
  • 조회수 1,016

독작(獨酌)

장석남


돌 하나 주워다가 앉혀 놓고 나이를 묻는다
오래되어 잘못 알고 있는 답을 여러 번 되풀이한다
한 번은 쉰 살이 넘은 지 여덟 해가 지났다고 했다
꽃 피고 새 우는 이야기를 물었다
올봄 들어서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고......
저녁 하늘 별 불러 앉히는
영롱한 새소리 쪽을 향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지러진 자리를 유심히 보며 권하듯 한 잔 삼키니
돌부처가 거기 있었다


석불역(石佛驛)* 쪽으로 떠나는
밤 기차 소리 들릴 때 길게 삼킨다
꼬부랑길 지나 산 뒤로 숨는 지 몇 달
오래 묵은 도연명을 들춰 보나 그의 문장에는 뵈지 않는
신경질과 모욕감을
창자 속으로 감추며 밤새 헝클어뜨리는 마당 달빛들은 누가 거두는지
새벽은 또 생 옥빛으로만 물들어 오니
혼자 맞기는 아까워라
마당가 풀밭 여기저기 흘린 지린내가
신문지처럼 젖어 있다

* 양평 용문에서 원주 사이에 있는 간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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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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