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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상자

  • 작성일 2007-02-28
  • 조회수 354

종이상자

최승철


(종이는 불씨의 나이테)(태양은 A4용지 속에서 물비늘로 반짝임)(상자를 열면 밀봉되었던 어둠이 발화함)(대지를 뚫고 나온 배추 한 포기)(기억하려는 순간 잊어버린 만큼의 내부가 있음)(본능은 재크의 콩나무를 타고 끊임없이 타오르는 向日性)(죽은 병아리를 묻으면 사과나무가 자랄 것 같아 나는 박철수 싸인볼과 함께 흙으로 덮어줌)(봄이 와도 날개는 허공을 향해 자라나지 않음)

(태양은 천정에서 자라는 나이테)(폭약의 심지에 붙은 불꽃이 그리움의 입술에서 빛남)(유리창은 불씨를 품고 투명해짐)(쓰레기 수거차가 언덕길 오르며 오수를 흘림)(부지불식간에 내뱉는 어머니의 한숨은 스스로를 쓰다듬는 애무)(상자를 닫으려 하자 안간힘으로 버티는 노을)(갈비뼈가 심장을 향해 굽어져 대지는 태양을 감싸며 휘어짐)(병아리를 묻은 자리에서 매일 저녁 흙냄새가 피어남)(어둠이 불씨처럼 차곡차곡 내부에 쌓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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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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