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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동 공터

  • 작성일 2006-05-30
  • 조회수 188

도화동 공터

유홍준


중풍을 앓던 아버지가 삐딱삐딱 가로질러 가던 공터 딛을 수 없는, 나는 딛지 못한 공터 어디에 뒀더라 옷이 되지 못한 보자기 같은 공터 누더기 누더기 기운 공터 헛젖이 달린 공터 헛배를 곯던 공터 우울의 그림자 길게 키우던 공터 전봇대에 매달린 보안등만이 목격한 공터 다 늦게 춤바람 난 어머니 야반도주하던 공터 뻑뻑 담배를 빨며 멀리 오색 캬바레 불빛을 바라보던 공터 입맛이 씁쓸하던 공터 억장이 무너지던 공터 석 달도 못 채우고 돌아온 어머니 금세 옆집 야쿠르트 아줌마랑 수다를 떨던 공터 한심한 공터 빌어먹을 공터 중풍 앓던 아버지처럼 등짝이 삐딱한 공터 화장품 팔러 다니던 어머니처럼 낯짝이 얽은 공터 흉물의 공터 곰보딱지의 공터 카악 퉤, 가래침을 뱉고 떠나온 공터 끝끝내 우리 집이 되지 못한 마포구 도화동 가든호텔 뒤의 그 언덕배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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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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