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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게임

  • 작성일 2017-09-01
  • 조회수 2,348

[단편소설]



거짓말게임



강지영





피디 님은 후레시맨 기억하세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니까. 팔공 년 원숭이 띠면 저랑 갑이었네요. 저는 변신로봇이나 요술봉 휘두르는 미소녀보다 후레시맨을 훨씬 좋아했어요. 사실 제가 그 다섯 용사 중 한 명이거든요. 거봐, 역시 안 믿으시네. 세상에 이런 일이 피디쯤 되면 산전수전, 볼꼴 못 볼꼴 다 겪으셨을 텐데 뭘 이 정도로 그렇게 놀라세요? 어차피 떠날 생각이니까 다 털어놓는 거예요. 후, 더운데 맥주 한 캔 할까요?
드세요, 딱 한 잔만. 마시고 모르는 남남처럼 헤어지는 겁니다. 진짜 후레시맨이 맞냐고요? 맞다니까 그러시네. 모든 슈퍼히어로들이 그렇듯, 저도 변신 전의 스펙은 아주 심플합니다. 나이는 서른여덟, 백수에 돌싱이죠. 지금이야 허구한 날 구들장 등지는 신세지만 몇 년 전까지는 번듯한 직장도 있고 등허리에 스매싱 날려 줄 마누라도 있었습니다. 매월 10일이면 또박또박 통장으로 월급이 입금되고, 아내 몰래 사놓은 주식을 매일 조금씩 팔고 사는, 비트코인 시세에 가슴 조리는 평범한 사내였죠. 지금은 뭐가 달라졌냐고요? 직장이 사라졌으니 월급통장도 비었고, 그게 비어 가니 아내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내는 결혼할 때 혼수로 장만해 온 냉장고와 대형 텔레비전, 소파와 영국산 접시 세트를 트럭에 싣고 이악스럽게 제 뺨을 후려쳤습니다. ‘그래, 히말라야가 그렇게 좋든? 그 좋은 히말라야 가서 네팔 여자하고 애 싸지르고 오순도순 잘살아 봐라!’ 하며 말이지요. 그나마 손에 쥐고 있던 주식을 팔아 야금야금 지금껏 버티고 있지만 최근엔 아주 고무적인 변화도 생겼습니다.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쳐도 아깝지 않을 그 무엇이 곧 찾아온단 말입니다.
뭐긴요? 히말라야죠. 우리 옆집에서 제가 아파트 옥상에 로프 걸고 등반하는 거 보고 제보했다면서요. 돌아이라서 미친 짓 한 게 아니라 진짜 등반 연습이었다고요. 저 그렇게 실없는 놈 아닙니다. 히말라야는 이제 제 인생의 전부가 되었고 지금 네 명의 동료들도 짐을 꾸리고 있어요. 생각만 해도 주책없이 가슴이 설레고 눈물이 다 찔끔거리네요. 가긴 가네요, 히말라야.
동료들요? 당연히 있죠. 후레시맨은 원래 오총사잖아요. 우리 다섯은 같은 회사에 근무했습니다. 입사 시기도 비슷하고 서울 토박이다 보니 이래저래 한 덩어리로 뭉치게 된 친구들이죠. 근무시간 중에도 가끔 옥상에 올라가 커피를 마시며 짤짤이를 하고, 주식 배틀과 스타 배틀로 친목을 다지고, 없는 핑계 만들어 매일이다시피 술을 퍼마시는 그런 무리였죠. 직장 생활 무슨 낙이 있나요? 피디 님도 직장인이니까 잘 아시면서 뭘.
그렇게 죽고 못 사는 오총사가 한 날 한 시에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연봉에 불만이 있다거나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서는 아니었습니다. 우린 그럭저럭 현실에 만족했고 회사가 망하거나 그 비슷한 지경에 이르러 정리해고가 되지 않는다면 그냥 대리에서 과장 되고 과장에서 부장 되고, 그러다 한직으로 밀려나면 치킨집이나 하자고 술김에 도원결의까지 했으니까요. 우리가 어째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느냐, 그건 순전히 야근 때문이었습니다.
총무과인 저와 인덕이는 같은 오층에 근무했고, 석규와 태호, 호철이는 한 층 위 홍보과에 근무했습니다. 그날도 우리는 저녁 아홉 시에 스타크래프트 배틀 한 판 하기로 뜻을 모았고 직원들이 하나 둘 퇴근하고 나서 탕수육과 자장면을 시켜 저녁을 때웠죠. 왜긴요, 때마침 쿠폰이 서른 장 모였으니까 그냥 지나갈 수 없었죠.
“옥상 가서 커피 마시고 야리 한 대?”
제일 먼저 그릇을 비운 인덕이가 우리의 대답도 듣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앞서 나갔습니다. 골초거든요.
“이 자식은 꼭 지가 대장 행세를 하려고 들어. 아, 웃긴 놈이야.”
말은 퉁명스럽게 했지만 남은 넷도 남은 자장면을 한입에 털어놓고 일어섰습니다.
“비상계단 형광등 아직도 안 갈았네? 하여간 총무 팀이 문제야. 그치, 인덕아?”
우리 회산 저녁 여덟 시 이후부터는 에너지절약 차원에서 엘리베이터 작동을 멈췄습니다. 부푼 배를 끌어안고 계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지요. 외투를 입지 않은 우린 몸을 옹송그리며 파라솔 아래 모여 앉았습니다.
“홀, 짝!”
석규가 주머니에서 주먹을 꺼내 내밀었습니다.
“짝, 아냐 홀, 홀.”
“나도 홀.”
“난 짝.”
“좋아 홀!”
짝을 짚은 제가 졌습니다.
석규가 씨익 웃으며 손아귀에 쥐고 있던 오백 원짜리 동전을 제게 넘겼습니다. 내기에 진 제게 커피를 뽑아 오라는 뜻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넷이 오들오들 떨며 담배에 불을 댕기는 사이 저는 불 꺼진 복도로 나가 자판기 커피를 뽑았습니다. 사실 이쯤 되면 마음 약한 태호나 호철이 중 하나가 어슬렁거리며 내려와 종이컵도 받아 주고 농도 걸 만한데 웬일인지 그날은 누구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괜한 부아가 치밀어 저는 제 몫의 첫 잔만 밀크커피로 뽑고, 나머지는 수컷들 사이에서 정력이 감퇴된다는 낭설로 외면 받는 율무차를 뽑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첫 잔을 앞니 사이에 물고 율무차 버튼을 누르려는데, 갑자기 자판기 안에서 비비탄 튀는 소리가 났습니다. 고장 날 때가 되긴 했지만, 동전까지 잔뜩 먹은 놈이 왜 하필 그때 먹통이 되었는지 이빠이, 아니 굉장히 짜증이 나며 피곤이 몰려왔죠.
저는 자판기를 걷어차고 친구들이 기다리는 옥상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그때 무척이나 후텁지근하고 한숨처럼 보드라운 먼지바람 한 줄기가 복도를 향해 불어왔습니다. 그보다 더 신기한 건 기묘한 빛이었죠. 지금 생각해도 소름 끼친다. 뭐라고 해야 하나, 막 규칙 없이 번쩍번쩍하는 게 아내와 처음 만났던 연신내 팔팔나이트클럽 싸이키 조명 같다고 해야 하나? 약간 경박스러우면서도 신비한 느낌이 드는 빛이 제 구두 위로 퍼졌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죠.
“얀마, 형님 커피 심부름 시켜 놓고 니들은 팔자 좋게 불장난 하냐?”
그때까지만 해도 사태 파악이 안 된 거죠. 커피를 홀홀 불어 한 모금 마시며 넷을 향해 농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녀석들은 파라솔에 얌전히 앉아 담배를 피우며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그 기괴한 미풍을 맞으며 옥상 한가운데 멀뚱히 선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뭐, 왜, 뭐? 어디 불꽃놀이라도 하냐?”
저도 뜨거운 커피가 전하는 통감도 잊고 그들과 함께 어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도심의 밤하늘에 대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저 달과 드물지만 간혹 빛나는 별무리 정도가 전부인 뻔한 거길 한 삼 초 정도 쳐다보았을 겁니다.
보름달과 구름 사이에서 하루살이처럼 빠른 속도로 어룽거리던 둥그스름한 물체가 점점 속도를 늦추며 우리가 서 있는 옥상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저게 뭐냐?”
석규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었지만 그 역시 시원한 해답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둥근 물체는 밤하늘에 손 갓까지 동원해 가며 멀뚱멀뚱 지켜보던 우리 다섯의 머리 위에서 불과 오십 미터 남짓한 위치까지 다가와 아무런 소음도 내지 않고 팽이처럼 빠른 속도로 회전을 하며 빛을 발산했습니다.
그 빛은 마치 연극무대의 스포트라이트처럼 우리와 우리가 선 옥상만을 노라발갛게 비추며 서서히 회전을 멈추더니 고도를 낮춰 갔습니다. 저는 얼른 고개를 돌려 다른 건물에도 우리처럼 이 물체를 주시하는 사람이 없을까 두리번거렸습니다. 하지만 그날따라 수백 개의 건물이 밀집되어 있는 여의도 한복판에 불빛이 살아 있는 옥상은 아무데도 없었습니다.
“야! 피해.”
문득 맨 앞에 서 있던 호철이가 양팔을 활짝 벌려 우리를 밀어냈습니다. 커피가 넥타이와 와이셔츠 위에 고르바초프의 반점 같은 얼룩을 만들어냈죠. 둥근 물체는 마치 우리가 피해 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파라솔을 가뿐히 구겨버리고 착륙을 시도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둥근 물체는 대략 십 톤 트럭 두 대만 한 크기였고, 좀 촌스러운 버버리 노바체크로 표면이 도색되어 있었습니다. 웃지 마세요, 진짜 딱 버버리였다니까.
잠시 후, 둥근 물체는 옥상 위로 별 소음 없이 착륙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어 물체에서 반짝이던 빛이 사라지고 다시 적막한 어둠이 깔리더니 우리가 선 방향 쪽으로 스르르 소리 없이 문이 열렸습니다.
“유에프오?”
소심해서 공포영화도 보지 못한다는 태호가 제 소매를 단단히 붙잡았습니다. 열린 문으로 유연한 동작의 생명체 둘이 에스컬레이터 비슷한 것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키가 초등학교 저학년생 정도로 작았고 몸은 옅은 회색을 띠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중국인 관광객처럼 저희들끼리 뭔가 쉼 없이 지껄이며 사뿐한 걸음으로 우릴 향해 다가왔습니다. 징징이 같았냐고요? 징징이가 뭐죠? 아, 만화 스폰지밥에 나오는 그 오징어? 아뇨. 그런 하등생물하곤 차원이 달랐죠. 그들에겐 기품이 있었어요.
그들은 둘 다 알몸이었고 머리털이나 체모도 없는 다소 왜소한 체형이었습니다. 게다가 과학동아나 어린이사이언스에서 본 외계인 삽화처럼 눈은 크고 새카맸습니다. 하지만 놀랍도록 강한 아우라가 느껴졌죠. 저는 압도당했습니다.
“도망가자.”
인덕이 뒷걸음질을 쳤지만 그들에게 사로잡힌 눈은 우리를 쉽게 놓아 주지 않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둘 중에서도 조금 키가 큰 쪽이 놀랍게도 한국어로 말을 걸어왔습니다. 안녕하세요, 라니. 그건 마치 오랫동안 길러 온 강아지가 제게 아침인사를 건네는 것과 맞먹는 충격이었죠. 외계인을 만나는 것도 기절 사팔 할 일인데 그들이 외계의 말도 아닌 아파트 경비원처럼 안녕하세요, 라고 태연히 인사를 건네다니.
방사능에 오염된다거나 납치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린 아무도 선 자리에서 발을 떼지 못했습니다. 섣불리 도망가다 그들의 심기를 건드려 등 뒤에 감추어 두었을지 모를 레이저 건이라도 꺼낼지 누가 알겠습니다. 또 그 총에 맞고 찍소리 한 번 못 하고 절명하는 것까진 좋은데, 그걸로 인해 지금껏 베일에 숨겨졌던 지구방위대가 출동하고, 엄청난 양의 핵미사일이 우주를 향해 발사될지 알 수 없는 일 아니겠어요? 우리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우주전쟁의 서막을 야기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놀랐군요?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요. 해치지 않을게요. 약속해요.”
눈에 비해 조기 입처럼 작은 그들의 말구멍이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그들에게도 혀나 성대가 있으니 말을 하겠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러곤 아주 오래전에 인터넷에 떠돌던 로스웰 우주인 해부 동영상을 떠올렸습니다. 지금도 유튜브에 있어요. 꼭 확인해 보세요. 약간 징그럽긴 하죠. 일단은 생물을 해부하는 거니까요. 검은 눈은 진짜 눈을 감추고 자외선을 피하기 위한 얇은 차단막이고, 배를 열어 보니 간단한 장기들이 오밀조밀 들어 있는 엽기 영상이었죠. 물론 누가 봐도 돼지 창자와 가짜 피로 만들어낸 조악한 페이크 다큐였지만, 음모론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놓쳐선 안 될 걸작으로 꼽히는 동영상이에요. 그 다큐가 가짜란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진 저는 줄곧 외계인이란, 좀 엉성하게 만든 이티 인형과 다를 바 없다고 믿어 왔었다니까요.
“나이스 투 미츄.”
외계인들이 망가진 파라솔을 내려다보며 검고 반들거리는 눈을 끔뻑거리던 때에 나서기 좋아하는 인덕이 이마의 식은땀을 걷어내고 뚱딴지같이 영어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미국에서 오셨나요?”
인덕의 인사에 외계인 중 한 명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어 왔습니다. 마치 헬륨가스를 마신 것처럼 성을 구분할 수 없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들은 날씬한 자신의 허리에 손을 짚고 흥미롭다는 듯 인덕을 바라봤습니다.
“아뇨. 영어가 만국 공통어니까요. 토익 특기생이었습니다.”
대답을 하는 인덕의 낯빛이 흙빛이 되었습니다. 외계인에게 만국 공통어가 무슨 소용이며 불과 몇 초 전 유창한 한국어로 말을 붙여 왔는데 토익 특기생이라는 자랑까지 덧붙여 가며 변명을 늘어놓다니.
“편하신 언어로 말씀해 주세요. 하지만 저흰 한국어가 좋습니다. 괜찮으시다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외계인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했어요. 심지어 미간이 조금 넓어지며 온화한 표정까지 지으면서 말이죠. 다행히 그들은 밤낮 스타크래프트나 열광하는 한심한 회사원들을 붙잡고 우주 정복을 논할 만큼 멍청해 보이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태도가 워낙 의뭉스러운 데다 등 뒤에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레이저 건에 대한 의심을 아직 접지 못한 터라 우린 시키는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 커피라도 뽑아 올까요? 보통은 밀크커피를 즐겨 마시는데 두 분은 어떠신지?”
호철이가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꺼내 보였습니다. 외계인이 커피를 마실 리 있겠습니까? 그 핑계로 도망가려는 심산이 뻔했지요.
“저희는 방금 식사를 마쳤습니다. 괜찮습니다.”
외계인도 식사를 한다는 게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하긴 입으로 말만 하지야 않겠지요. 몸을 움직이고 생각을 하려면 뭔가 양분이 필요할 테고요. 어쩌면 알약 같은 걸로 음식을 대신할지도 모릅니다. SF 영화에서 그런 거 많이 봤잖아요.
외계인 둘은 비행선 착륙에 튕겨 나간 플라스틱 의자를 가져다 앉았습니다. 영하에 가까운 추위에 우리 다섯은 턱이 부딪치게 떨고 있었지만, 그들은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오총사는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조촘조촘 외계인들 옆으로 다가가 고개를 조아리고 둘러섰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빠끔하게 뚫린 두 개의 구멍이 코인 듯했고 그 구멍으로 투명한 관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관은 등 뒤에 아주 작은 배낭처럼 보이는 금속 탱크에서 시작되었는데, 외계인은 산소로 숨을 쉬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저희가 알기론 이 건물은 일을 하고 그에 따른 값어치를 지불하는 상관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지요?”
키 큰 외계인이 우리들 중에 인덕이 나서기 좋아하는 것처럼 리더 행세를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네, 주식회사 인송입니다. 저희 인송그룹은 천구백칠십사년, 명예회장이신 금상 최인송 선생께서 열 명의 지인과 뜻을 모아 발기한 주식회사로 초창기에는 주로 무역과 제조를…….”
홍보 담당자인 태호가 난데없이 회사 소개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녀석의 허벅지를 있는 힘껏 꼬집어 비틀었지만 얼빠진 그는 오 분여에 걸쳐 회사의 간단한 연혁과 미래상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았습니다.
“참 유익한 정보였습니다. 우린 둘 다 공무원이라 회사나 직장이란 것에 대해 상당히 무지합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저들은 자신들의 별에서 외유 나온 국가공무원들인 겁니다. 거둬들인 세금은 많고 그걸 소비해야 이듬해 더 많은 지원금을 교부 받게 될 테니, 이참에 지구나 시찰하고 올까? 하는 공무원 말입니다. 우주도 썩어빠지긴 마찬가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게다가 다른 별로 출장을 왔으니 위험수당도 단단히 챙기겠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었습니다.
“용무가 끝나셨으면 저희 야근 중이라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은데요?”
등 뒤에 든 게 숨을 쉬기 위한 기체 탱크라면 레이저 건 걱정은 접어도 될 듯하고, 그냥 형식적으로 지구인 몇 명 인터뷰하면 저들의 임무도 끝날 것 같으니 이쯤에서 헤어지는 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죠. 기념사진 촬영이나 녹취만 제대로 됐다면 이제 저들은 브라질 밀림이나 이집트 스핑크스 구경만 끝내면 돌아갈 게 뻔하지 않겠습니까?
“우린 여길 수시로 드나들죠. 인공위성이나 별, 날벌레처럼 보이겠지만 밤하늘엔 우리 같은 자들이 아주 많습니다. 모두 사람들과 접촉하고 싶지만 몇몇 사람들은 우리와 만난 후 정신병을 앓게 되거나 체험을 과장해 돈벌이로 이용하곤 합니다. 우린 곧 퇴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다신 여길 찾지 못할 것 같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당신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거죠.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습니다. 물론 다섯 분이 동의하신다는 전제하에 말입니다.”
키가 작은 외계인이 입을 뗐습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정년을 코앞에 둔 외계인이 마지막 추억을 함께한 대표 인류로 우릴 꼽았다는 데 조금 우쭐해졌습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오케이 했다가 ‘좋습니다. 이제부터 좋은 추억 첫 번째 코스로 인간 해부와 생체실험부터 시작할까요?’ 하고 나서면 어쩌란 말입니까. 저는 단호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히려 했습니다.
“좋고말고요. 저희 다 동의합니다. 그치?”
이번에도 인덕이었습니다. 그는 저 혼자 좋다고 북 쳐놓고 입도 떼지 못한 우리에게 빨리 장구까지 쳐달라는 눈짓을 보냈습니다.
“네, 좋아요. 좋습니다.”
“동의합니다.”
“저도요.”
이게 웬일입니까. 저를 제외한 넷이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뇌파라도 조종당하는 걸까요.
“너도 빨리 대답해.”
석규가 옆구리를 쿡 찔렀습니다.
“지구에선 다수결에 따릅니다. 다수가 찬성하면 소수는 받아들이는 게 보통이죠.”
제가 미적거리는 사이 석규가 제멋대로 제안을 수락해 버렸습니다.
“고맙습니다. 제안을 받아들인 걸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럼 이쪽으로 오시지요.”
키가 작은 외계인이 먼저 일어서 자신들이 타고 온 우주선으로 걸어갔습니다. 저 우주선이란 곳에 들어가면 다시는 아내를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휴대폰을 꺼냈습니다. ‘마누라여, 안녕’이라고 메시지라도 전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휴대폰은 먹통이었습니다. 그들 때문인지 우주선 때문인지 휴대폰은 전원 버튼을 아무리 길게 눌러도 켜지질 않았습니다. 자판기가 이유 없이 운명한 것도 모두 우주선과 외계인들 탓이었던 거죠. 이럴 줄 알았으면 처갓집에 갈 때마다 인사만 하고 방에 기어 들어가 늘어지게 낮잠이나 자다 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 엄마 임플란트 한다고 할 때 주식이라도 팔아 보태 드릴 걸 그랬습니다. 마누라 몰래 엑스박스 사지 말고 원플러스원으로 홈쇼핑에서 파는 달팽이 크림이나 사줄 걸 그랬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우주선의 문이 열리고 아까처럼 에스컬레이터 같은 게 내려왔습니다. 우린 착한 어린이처럼 한 줄로 서서 우주선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안은 비좁았습니다. 대학 시절 자취를 하던 여섯 평짜리 원룸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전자 계기판 같은 것이 한 편에 옹기종기 모여 있고, 재질을 알 수 없는 미지근한 금속 테이블이 우주선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화장실이나 부엌 같은 건 눈에 띄지 않았고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도 없어 보였습니다. 아무리 속을 알 수 없는 외계인이라지만 여행길이 꽤나 심심하겠다 싶더군요. 우리가 테이블 근처로 모여들자 편평한 바닥에서 일곱 개의 의자가 비죽 솟아올랐습니다. 우주선에 타서 제일 신기한 것들이었죠.
“보잘 것 없는 곳이지만 마음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간단한 게임을 할까 합니다. 여기서는 거짓말게임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 합니다.”
키가 큰 우주인의 제안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거죠?”
질문을 하는 석규의 얼굴에 긴장과 흥분이 가득했습니다.
“우린 욕구라는 게 거의 없습니다. 식욕이나 성욕, 수면욕, 성취욕, 승부욕 같은 거 말이지요. 다만 탐구욕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가진 원초적인 욕구를 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부터 욕구에 대한 거짓말을 하세요. 그걸 체험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우린 여러분의 생각 속에 들어가 함께 그 욕구를 즐기고 탐미할 겁니다. 그게 이 게임의 룰이고 여러분이 우리에게 만들어줄 좋은 추억의 전부입니다. 오른쪽에 앉은 분부터 시작할까요?”
외계인이 지목한 사람은 인덕이었습니다. 평소 호탕한 편인 데다 나서기라면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녀석이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눈을 감아야 할까요?”
“편하신 대로 하시면 됩니다.”
외계인의 대답에 인덕이 눈을 감았습니다.
“저는 한 번도 남에게 져본 적이 없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늘 일등만 해왔죠. 물론 대학도 수석으로 입학했고 줄곧 과대표를 도맡았습니다. 졸업을 할 때는 학생 대표로 송사를 읽었고 졸업과 동시에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스카우트 되었습니다. 백만 달러 연봉에 고급맨션과 금발벽안의 아내를 얻었습니다. 빨간색 페라리를 탑니다. 매일 운동으로 단련된 매끈한 몸에 지방시나 아르마니 정장이 아니면 입지도 않죠. 도널드 트럼프와는 형님 아우 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여서 한국에 돌아올 때는 전용기를 빌려주기도 합니다. 수많은 언론이 저와 인터뷰하기 위해 줄을 서고 유명 대학에선 특강 제의가 물밀듯 쏟아져 한국 오는 일이 늘 즐거운 건 아닙니다. 요즘은 여배우와의 염문설로 곤혹을 치르기도 했죠. 그게 제 인생입니다. 즐거운 인생.”
인덕이 이런 터무니없는 소리들을 늘어놓는 사이 키 작은 외계인이 헤드셋처럼 생긴 기구를 우리들 머리에 씌워 주었습니다. 그걸 쓰니 인덕의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몽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내 우리들의 눈꺼풀은 스르르 감기고 영화 같은 인덕이의 삶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고급 양복을 입고 고급 스포츠카를 타고 고급 아내를 거느리고 고급 몸매를 지닌 그가 한국 마이크로 소프트 본사 앞에 나타나자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습니다. 그의 숨소리와 체취, 그의 땀 한 방울, 침 넘기는 꼴깍 소리까지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생생했습니다. 이건 아이맥스 4D영화만큼이나 사실적이었습니다. 방금 인덕이 오밤중인데도 불구하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채 육체파 여배우와 호텔방에 들어갔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아주 재밌게 들었습니다. 이런 욕망을 가지고 계셨군요. 체험이 즐거우셨나요?”
외계인의 말에 눈앞의 영상이 사라졌습니다. 인덕을 바라보니 그 역시 붉게 상기된 얼굴로 숨을 조그맣게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인덕이 달라 보였습니다. 지금의 비리비리한 몸매에 말만 앞설 뿐 늘 부장에게 면박이나 당하는 그가 아닌 억세게 운 좋은 세계 최고의 매력남이 눈앞에 겹쳐지고 있었습니다.
“네. 전 그저 몇 마디 했을 뿐인데, 방금 전 삼십팔 년을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다 왔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는 정말 자신의 말처럼 끝내주는 인생을 직접 살다 왔다는 것입니다. 365일 곱하기 35를 한 값을 단 몇 초 동안 경험했다는 그의 고백은 놀라웠습니다. 저는 어서 빨리 그걸 확인하고 싶었지만 아직 제 앞에는 세 명의 친구들이 눈을 빛내고 있었습니다. 이번 차례는 태호였습니다. 녀석이 음흉하게 미소 지었습니다.
“저는 포르노 스타입니다. 엄청난 물건을 가졌거든요. 여배우들은 촬영이 끝나면 제게 자신이 곧 발가벗고 기다릴 어느 호텔 방의 열쇠를 줍니다. 저는 마다하지 않습니다. 물건만큼이나 엄청난 바람둥이거든요. 게다가 굉장한 부자입니다. 재산이 한 1조? 뭐, 부모님께 물려받았다고 하죠. 전 플레이보이의 휴 헤프너처럼 근사한 집을 짓고 미녀 다섯 명과 동거합니다. 이제 제가 사는 집은 전 세계 스타들의 사교장이 되었습니다. 저의 별명은 멈추지 않는 섹스머신입니다. 더 이상 토끼나 방아깨비 같은 처참한 별명으로 부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집 앞에 골프장과 수영장이 있어 미녀들이 알몸으로 이용하죠. 저는 쌍안경을 끼고 그녀들을 둘러보는 걸 즐깁니다. 숱이 없는 머리는 주기적으로 관리를 하는 데다 첨단의술로 이식까지 받은 터라 무성하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피플지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섹시남 1위로 뽑혔습니다. 전 세계 남자들 사이에선 저의 모형을 가지고 비뇨기과에 찾아가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게 유행입니다. 그게 제 인생입니다. 섹시하고 화끈한 인생이요.”
저는 눈앞에 그려지는 영상에 얼굴이 화끈거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겉은 멀쩡한데 애인과 석 달 이상을 사귀어 본 적이 없다는 태호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가 꿈꾸는 이상향은 바로 강한 남자였던 겁니다. 그가 수많은 여자들과 침대 위에서 뒹구는 모습을 지켜보았지만 그리 흥분되지는 않았습니다. 태호의 화려한 기술과 그 못지않게 장대한 무기에 감탄을 연발할 뿐이었죠. 눈을 뜨자 모두 태호를 부러움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았습니다. 태호의 바지춤이 아주 조금 보일락 말락 하게 들썩하다 말았습니다.
“정말 끝내주는 인생이었어.”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태호가 탄성을 터트렸습니다.
“인간의 성욕은 인생 그 자체를 지배하기도 하는군요.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적어도 조루증 환자인 태호에겐 그랬을 것 같습니다. 다음은 석규 차례였습니다. 그가 유난히 크고 그렁한 눈을 스르르 감았습니다.
“저는 신입니다. 살아 있는 신 말입니다. 제가 하는 말은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 놓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저의 추종자가 되어 제가 명상을 하고 구도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성을 짓습니다. 대통령도 이웃나라의 국왕도 저의 신도일 뿐입니다. 어느샌가 저는 정치와 경제를 움직이는 중대한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 세계를 돌며 수많은 신도들에게 축복을 내려 줍니다. 저의 발에 입을 맞추기 위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무릎을 꿇습니다. 저의 축복을 받은 땅은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만이 영원토록 지속됩니다. 제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향기로운 꽃이 만발하고 따뜻한 햇볕이 스밉니다. 제가 스쳐간 교도소의 흉악범들은 참회의 눈물을 쏟고 제가 숨 쉰 공기에서는 달콤한 어머니의 젖 냄새가 흐릅니다. 모두 저를 보며 손을 흔듭니다. 저의 옷자락을 잡기 위해 아우성입니다. 저는 더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 닮은 자 백 명을 모집해 성형을 시킵니다. 그리고 신도들로부터 받은 그들의 재산 전부를 보석과 꽃과 모유를 사는 데 쏟습니다. 진실을 아는 사람들마저도 저를 욕하지 못합니다. 저는 신이니까요. 신을 욕하면 벌을 받으니까요. 제가 이 세상의 주인입니다.”
저는 몇 번이고 웃음이 터질 뻔한 순간을 참아 넘겼습니다. 사이비교의 교주가 되어 장발을 한 석규가 쌀 포대 같은 옷을 질질 끌며 세상을 누비는데 웃지 않고는 못 배기겠더라고요. 늘 어딘가 주눅 들어 사는 것처럼 보이는 녀석이 실은 사이비교의 교주가 되어서라도 세상을 지배하고 싶어 했다는 게 측은했습니다. 다행히 석규 같은 녀석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이비 신이 아닌 게 참 다행이었습니다. 눈을 뜬 석규는 화면 속과 다름없는 근엄한 표정으로 눈물 한 줄기를 흘렸습니다. 태호가 결국 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왜 웃냐? 넌 이게 웃기냐?”
석규가 얼른 눈가를 닦아내고 태호를 흘겨보았습니다. 소심한 태호가 웃음을 감추느라 볼에 바람이 들었다 빠졌다를 반복했습니다.
“감명 깊었습니다. 살아 있는 신이라니. 신을 믿지 않는 우리로선 새로운 공부가 됐습니다.”
역시 앞선 지성인들은 더 이상 종교 따위에 의존하지 않았던 겁니다.
“저, 빨리 저 좀 어떻게…….”
기다림에 지친 호철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말을 더듬었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눈을 감으세요.”
자비로운 외계인은 성가신 내색 없이 호철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호철이 주먹을 움켜쥐며 눈을 감았습니다.
“저는 부유한 게으름뱅이입니다. 하루 종일 호화로운 침대에서 뒹굴거릴 수 있죠. 뭐든 원하는 게 있으면 버튼만 누르면 됩니다. 그럼 맛있는 요리가 배달되기도 하고 또 원하면 그걸 입에 넣어 주는 시종도 있죠. 목욕도 제 손으로 할 필요 없습니다. 전문 목욕관리사가 알아서 관리해 주니까요. 회사에 출근할 필요도 없고 전 세계 모든 채널이 나오는 텔레비전 앞에 누워 리모컨 누르는 게 유일한 일입니다. 어디가 아파도 침대 밖으로 걸어 나와 의사를 찾지 않습니다. 모든 일은 침대에서 이루어집니다. 버튼만 누르면 최고의 명의가 뛰어와 각종 최신 장비를 들이대고 진단부터 수술까지 모두 거기서 이루어집니다. 비만도 별로 걱정되지 않습니다. 지방흡입술을 하면 되고 또 처진 자리엔 엉덩이나 허벅지에서 떼어낸 지방을 이식하면 되거든요. 전 아무 걱정 없이 침대에서 뒹굴거릴 겁니다. 일요일을 기다리고 월요일을 절망하는 샐러리맨이 아니잖아요. 늘 적정한 온도가 유지되는 침실에서 수많은 버튼으로 가득한 리모컨을 들고 주문사항을 입만 벙긋하면 됩니다. 저를 위해 빌 게이츠의 절친한 동료인 박인덕이 누워서도 편히 즐길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어 직접 설치해 줬습니다. 또 가끔 아름다운 미녀를 끌고 찾아오는 태호를 위해 침대를 스무 평으로 늘리는 공사도 했습니다. 석규를 친구로 둔 덕분에 제 하인들은 무임금으로도 정성을 다하네요. 이게 제 인생입니다. 게을러서 행복한 인생이요.”
깜빡 잠이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호철이의 인생은 좀 지루했습니다. 계속 드러누워 있는 모습만 나오고 먹거나 텔레비전을 보며 시시덕거리기만 했으니까요. 하지만 본인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얼굴로 눈을 떴습니다. 늘 우리들 중에서 제일 일찍 출근하기에 부지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그가 게으른 삶을 꿈꾼다는 게 뜻밖이었습니다.
“수면욕이나 식욕과 관련된 욕망이었군요. 잘 봤습니다. 다음은?”
키 큰 외계인이 저를 바라봤습니다. 저는 모든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제가 제일 마지막 순서라는 게 다행이라 여겨졌습니다. 궁금하시죠? 저의 소원이.
“저는 매력적인 세계 최고의 능력남인 동시에 엄청난 부를 지닌 섹시맨입니다. 또 세상을 지배하는 신일뿐더러 주말이면 한껏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여유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제 인생입니다. 모든 걸 다 가진 그런 인생.”
저는 넷의 인생을 모두 합쳐 제 것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야기를 한 건 이삼 초뿐이었지만 그들 말대로 저는 삼십이 년을 영화처럼 살았습니다. 전국 일등에 세계 최고의 그룹에 스카우트 되고 엄청난 물건으로 엽색을 일삼지만 남다른 철학과 달변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신이기도 했습니다. 또 주말이면 침대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고 하인들을 마음껏 부리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이건 정말이지 엄청난 경험이었고, 제가 그때 서른다섯 살이어서 삼십오 년 동안만큼을 체험했다는 게 아쉬울 지경이었습니다. 눈을 뜨고 비루한 현실로 돌아오는 일이 고통스러웠죠.
“아주 재치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몹시 즐겁게 봤습니다. 수많은 욕망의 집약이더군요.”
눈을 뜨자 우리들은 조금 머쓱해졌습니다. 아무리 거짓말이라고 해도 자신의 감춰진 욕망을 타인 앞에 드러낸다는 게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곧 우리는 다시 그 꿈같은 인생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이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외계인이 미치도록 부러웠습니다.
“거짓말게임은 끝이 났습니다. 다섯 분 모두 즐겁고 행복하셨기를 바랍니다. 저희는 무척이나 만족스럽습니다. 아마 오래도록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이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키 작은 외계인이 계기판에서 버튼을 누르자 문이 열리고 개 혓바닥 같은 에스컬레이터가 내려갔습니다. 우리는 들어온 순서대로 다시 우주선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외계인들은 우리를 우주선 밖까지 안내해 주곤 우리 식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막 돌아서려던 외계인들이 제 말에 몸을 돌렸습니다.
“혹시 다시 오실 의향은 없나요? 좀 아쉬워서요. 퇴직하시더라도 후임자가 계실 거 같은데, 소개 좀 부탁드리면 안 될까요?”
제 부탁에 친구 넷이 반색을 하며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외계인은 우리의 친구잖아요. 위 아 더 월드, 위 아 더 스페이스.
“그렇다면 삼 년 후에 히말라야로 한번 오시지요? 정상에서 정년 퇴임자 총회가 있거든요. 후임자도 소개해 드릴 겸, 다시 뵙겠습니다. 삼 년 후 오늘 히말라야 정상으로 오세요.”
대체 왜 총회 같은 걸 호텔 뷔페나 소갈비집이 아닌 히말라야 정상에서 하는지 원망스러웠습니다.
“다른 외계인 분들께 미리 말씀 좀 잘 해주세요. 착한 지구인이라고요. 부탁입니다.”
비굴에 가까운 가식적인 미소를 띤 석규였습니다. 자, 이제 반전이 있습니다!
“이런,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저희 역시 지구인입니다. 개인적으론 외계인의 존재를 믿지만 실제로 본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습니다.”
키 큰 외계인, 아니 외계인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외계인의 몰골을 한 자가 말을 받았습니다. 그럼 저들의 정체는 대체 뭘까요? 피디 님, 혹시 눈치 챘어요? 아이고, 뭔 유령 타령이야? 전 그런 거 안 믿습니다. 세상에 귀신이 어딨어?
“외계인이 아니면 뭐 하는 분들이세요?”
외계인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외계인의 몰골을 한 자 둘이 서로를 난처하게 바라봤습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우린 미래의 지구인입니다. 이건 우주선이 아니라 타임머신인 셈이죠. 식습관이나 지구의 환경 때문에 외모가 많이 바뀌었죠? 오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등에 매단 기체 탱크는 숨을 쉬기 위한 게 아니었어요? 빨개 벗은 외계인이 진짜 아니라고요?”
인덕이 은근히 삿대질 비슷한 걸 해가면서 물었습니다.
“이건 휴대용 공기청정기예요. 그리고 빨개 벗다뇨. 엄연히 옷을 입고 있어요. 추위나 더위에서 몸을 보호하는 보디슈트랍니다. 어쨌든 저흰 다음 일정이 있어서 이만.”
말문이 막혔는지, 우리에게 흥미를 잃었는지 외계인, 아니 미래인들이 서둘러 우주선같이 생긴 타임머신에 탑승했습니다. 그러자 처음과 마찬가지로 스르르 문이 닫혔고 착륙할 때와 같은 순서로 천천히 떠올라 회전을 하더니 어느 순간 푸르스름한 연기 한 줄기만 남기고 밤하늘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튿날 우리는 사표를 냈습니다. 외계인이건 미래인이건 우리에겐 그들밖에 희망이 없으니까요. 히말라야를 오르기 위해선 회사원이라는 신분이 성가실 수밖에 없었죠. 우린 가진 돈을 모두 털어 등산용품을 사들이고 국내의 명산들을 등반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소가 적은 곳에서도 잘 견디기 위해 늘 마스크를 착용하고, 마라톤을 시작했고, 강추위에 익숙해지기 위해 냉동 창고를 빌려 며칠간 지내보기도 했습니다. 가끔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해외까지 진출했지만 히말라야는 아직 멀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파트 옥상에 로프 걸고 등반 연습을 한 거라니까요. 이제 이해되시죠?
이제 우리는 각자 전세와 월세, 그리고 부모님의 쌈짓돈을 털어 몇 시간 후 히말라야로 떠납니다. 삼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아마 삼십팔 년의 새로운 인생을 다시 살게 되겠지요. 전 나폴레옹의 삶을 살 겁니다. 태호는 아예 소설 형식으로 글을 쓰더니 곧 출간까지 하게 됐다네요. 늦지 않으려면 어서 짐을 챙겨야겠습니다.
뭐요? 내 말이 거짓말 같다고요? 이대론 방송에 내보낼 수 없으니 아파트 외벽에 매달린 모습으로 살짝 연출 좀 하자고? 낮술 마시더니 취했나? 정신 차려, 이 양반아! 내 인생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쉽고 간단하지가 않아요. 진짜 장난이 아니라고. 당신도 꿈꾸잖아. 거짓말게임을.



















작가소개 / 강지영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숭의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장편 『프랑켄슈타인 가족』, 『하품은 맛있다』, 『엘자의 하인』, 『심여사는 킬러』, 『어두운 숲 속의 서커스』, 『신문물검역소』, 작품집 『굿바이 파라다이스』, 『개들이 식사할 시간』을 출간하였다.
당신과 함께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여행하는 친구가 되고 싶다.


《문장웹진 2017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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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집에 사는 소녀1) 김숨 1 내 방엔 거울이 있어. 빛— 빨간색. 세상의 모든 빛— “지금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2 지금, 지금, 그리고 지금, “난 다른 곳에 있고 싶어.” 3 딱딱하게, 딱딱하게, “내 사랑을 받아 주세요.” 다른 곳에선 똑같은 노래가 다르게 흘러, 다르게 슬프게, 다르게 쓸쓸하게, 다르게 외롭게. 다른 곳의 다른 나. 난 나를, 난 나를, 딱딱하게, 딱딱하게, 빨갛게, “난 설레고 싶어.” 4 다섯 살 때 처음 빛을 봤어. 네 곁에, 내 곁에, 빛은 환한 어떤 것. 아, 난 날······. 다섯 살 때 처음 빨간색을 봤어. 엄마가 빨간색을 가져다 내 얼굴에서 45도 사선 밑에 놓았어. 빨간색을 나는 외우고 외웠어. 내가 빨간색을 외우자 엄마가 빨간색을 치우고 노란색을 놓았어. 나는 노란색을 외우고 외웠어. 그리고 파란색, 흰색, 검은색. 세상은 다섯 가지 색깔로 만들어졌어. 세상은 다섯 가지 색깔로 만족해. 다섯 색깔 무지개, 다섯 색깔 도마뱀. 분홍색은 꽃에게. 초록색은 달에게. 내 얼굴에서 45도 사선 밑에 놓여 있는 빨간색만 나는 볼 수 있어. 내 방 거울은 흐르지 않아······. 5 딱딱한 벽에 딱딱하게 거울이 걸려 있어. 거울이 날 봐. 거울은 날 봐. 거울은 엄마 몰래 울고 있는 날 봐. 난 날 안 봐. 음, 흐른다는 건······. 생각하고 싶지 않아. 내가 생각하고 싶은 건 오직 하나. 6 빨간색 크레파스를 선물 받고 난 흥분해 소리 질렀어. “엄마, 난 화가가 될 거야!” 빨간색 크레파스가 흰 도화지 위를 신나게 날아다녔어. (그녀의 엄마) 뭘 그리는 거야? (그녀) 집! 빨갛게, 빨갛게, (그녀의 엄마) 뭘 그린 거야? (그녀) 집! 엄마, 난 집을 그렸어! (그녀의 엄마) 네가 그린 집을 만져 보렴. 엄마가 내 손을 내가 그린 집으로 데려갔어. (그녀의 엄마) 집에 창문이 없네. (그녀의 엄마) 집에 문이 없네. (그녀의 엄마) 집에 지붕이 없네. 난 창문을 본 적 없어, 난 문을 본 적 없어, 난 지붕을 본 적 없어. (그녀의 엄마) 집에 나무도 없네. 7 집에 나무가 있어야 해? 세상에 나무가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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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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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식물원

야생 식물원 하가람 식물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철골로 둘러싸인 거대한 유리 온실에는 열대와 지중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이국적인 식물이 자란다고 했다. 한 달 전 나는 식물원 근처에 있는 여러 호텔을 찾아 은규에게 링크를 보냈다. 보통 때의 그라면 어디든 좋다고 했을 것이다. 레스토랑도, 카페도, 동네의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조차도 모조리 내 선택에 맡기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날 은규는 이미 예약한 곳이 있다고 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은규가 보내 준 링크를 열어 보았다. 넓은 통유리 창 너머로 식물원과 공원이 내다보이는 스위트룸이었다. 나는 조금 들뜬 채 답장했다. — 우리가 만난 지 곧 1년이래. 믿어져? 1년이라는 시간은 내게 유별났고 은규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것이었다. 그가 전에 사귄 여자친구는 단 두 명인데 각각 4년, 5년을 만났다고 했다. 매번 석 달도 채 넘기지 못하는 나와는 달랐다. 이따금 은규에게 이전 연인들에 대해 물었다. 그들이 어떤 성향의 사람이었고 어떤 외양을 가졌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응응, 하며 대꾸해 주던 은규는 내가 그녀들의 음악 취향이나 살던 동네처럼 구체적인 정보까지 캐묻자 태도를 바꾸었다. 기억 안 나. 그는 말했다. 다 옛날이야기라고. 그 후로는 이전에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그녀들을 생각했다. 눈, 손톱, 말투, 그리고 신발. 나와 닮았을지, 닮았다면 얼마나 닮았고 다르다면 무엇이 다를지도. 상상을 이어 가다 보면 늘 한 가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은규는 한 번도 애인과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여자와 밤을 보내는 일이 오늘 그에게는 처음이었다. 서른을 넘긴 남성에게서 보기 드문 경우였지만 그가 처음인 게 좋았다. 그 점이 무엇보다도 나와 그녀들을 구분 지어 주는 것만 같았다. 차창에 머리를 기대었다. 햇볕에 데워진 창문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인터넷으로 보았던 화려한 꽃과 기다란 나무들을 떠올렸다. 노랗고 푸르고 분홍빛이 맴도는 공간을. 여름 휴가철이었고 도로는 차들로 빽빽했다. 졸음 껌을 씹는 은규를 보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운전하고 싶었는데.” “다음에. 너 힘들어.” 은규가 말했지만 나는 안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그는 내게 차를 맡기지 않을 것이다. “보면 놀랄걸? 너무 잘해서?” 나는 허리를 세운 채 한 손으로 반원을 그려 보았다. 휙휙. 입으로 소리 내며 운전대를 쥔 그를 따라 했다. 그가 웃었다. 머릿속으로 주행하기. 그것은 나만의 놀이였다. 캠퍼스 변두리에 있는 H관 1층, 5평 남짓한 주차관리실에서 상상력을 충족시켜 줄 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먼지 쌓인 커피믹스와 낡은 소파, 책상 위에 시간별로 놓여 있는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 주차권들. 지겨운 서류, 서류, 서류. 드물게 실장이 자리를 지키는 날이 아니면 대체로 혼자 그곳에서 일했다. 사람들이 찾아와 주차권을 사거나 정기 등록을 마친 후 돌아가면 나는 모니터에

  • 관리자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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