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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의 樂취미들] 성향에 관하여

  • 작성일 2015-12-01
  • 조회수 912

 

[젊은작가의 樂취미들]

 

 


성향에 관하여

 

 

 

김연필

 

 

 

 

    나는 수렵, 채집, 사육에 능한 편이다. 산이나 강에 나가 돌아다니기를 좋아하고, 그곳에 사는 것들을 관찰하기를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산을 돌아다니면서 벌레나 도롱뇽, 개구리 따위를 잡아 키웠고, 그러던 습관이 나이를 먹고도 변하지 않았다. 어릴 적엔 동네를 돌아다니며 잡고 키웠다면, 이제는 전국을 돌면서 잡아 키우고, 잡을 수 없는 것은 따로 구해서 키운다. 그러다 보니 키워 본 동물들이 참 많다. 흔히 키우는 개, 고양이는 물론이고, 사슴벌레 따위의 곤충과 거미를 비롯해 각종 양서류와 파충류까지, 여러 동물을 열심히도 키웠다. 물론 지금도 동물을 키운다. 지금은 시설을 줄이는 중이지만, 한때는 꽤 대규모로 키웠다. 상가를 따로 빌려 수조 40여 개를 두고 수년간 키웠으니, 꽤나 몰두했던 취미다. 뭘 그렇게 대단한 규모로 키웠느냐고? 딱 잘라 답하면 새우다. 먹는 새우 말고, 관상용 새우.

 

 

  시작에 관하여

 

    어쩌다가 새우 같은, 잘 들어 보지도 못한 애완동물(?)을 키우게 되었는지 궁금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물론 남들 많이 키우는 동물도 좋아한다. 근 8년간 고양이를 키웠고, 지금도 같이 사는 고양이가 있다. 그런 것과 별개로, 앞서 말했듯, 산이나 강에서 뭔가를 잡아와 키우는 걸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물고기를 잡았고, 물고기를 키웠고, 물고기를 키우다 보니 수초, 가재, 산호 등 이런저런 물에 사는 것들을 키우게 되었고, 이래저래 수년의 물생활(?)을 통해 새우를 접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하고 많은 수중생물 중 새우를 택하게 되었을까?
    우선, 잘 키우기 쉽지 않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다. 이런저런 관상용 수중생물을 키워 보다 보니, 어지간한 것은 시시해진 참에 새우가 제법 키우기 어렵다는 소리를 들었다. 더구나 내가 처음 새우 사육을 시작하던 시기에는 아직 새우 사육에 필요한 첨가제, 영양소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였다. 나는 남이 이미 깔아 둔 레일에 편승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새롭게 도전하면서 새우 사육법을 연구하고 정리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되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직접 새우 사육을 시작하면서 알아낸 사육 정보도 제법 많은 편이었고, 내가 밝혀낸 사육 정보를 동호인들과 공유하다 보니 그것들 중 지금은 아주 보편적인 사육 정보가 된 것들도 많다.
    둘째로 번식이 가능하다는 점이 또 큰 매력이다. 새우 이전에 주력으로 키운 어종은 토종 담수어류와 해수어였는데, 이쪽은 번식이 거의 되지 않는다. 반면 새우는 일정한 조건만 맞춰 주면(대신 그 조건을 맞추는 게 조금 어렵긴 하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도 한다. 물론 단순히 숫자만 늘어난다고 해서 매력이 생기지는 않는다. 관상생물의 경우 번식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선별 및 선택교배를 통해 개량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품종이 있는 개나 고양이를 비롯해, 친숙한 비단잉어, 금붕어부터 구피와 같은 관상어까지, 모든 번식 가능한 동물들은 인위적 교배를 통해 개량되어 만들어진 품종들이다. 새우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번식시킨 개체들 중 발색, 체형이 우수한 녀석들만 골라내어 서로 교배시키다 보면 관상가치가 더 높은 개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 게다가 근연종끼리의 이종교배를 통해서 완전히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것 또한 가능하다. 계속해서 더 나은 개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새우 사육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2011년 1월경, 마리당 5000원 정도 하는 저급 레드비 쉬림프(red bee shrimp, 대표적인 관상품종 새우다) 15마리를 구입해서, 현재까지 약 만 5년 동안 새우를 돌보며 지내는 중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였나?

 

    처음엔 단순히 번식을 잘 시키는 것을 목표로 두었다. 여러 정보를 바탕으로 개인적인 연구를 진행한 결과, 번식에 필요한 환경을 만드는 법에 대해 비교적 빨리 파악할 수 있었고, 수월하게 수가 불어나게 되었다. 수가 불어나고 나서는 내 취향에 맞는 개체들만 선별해 선택적 교배를 시키기 시작했다. 번식도 선별도 수월하게 이루어져서, 1년 정도 지난 후에는 상당한 수의 새우를 분양하게 되었고, 5000원 정도의 저급 새우로 시작한 것이 나중에는 선별개체의 경우 마리당 4만~5만 원선에 분양되기도 했다. 그렇게 되니까 돈이 좀 쌓이더라. 이 돈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가게를 하나 얻어서 새우를 키우기로 결정했다. 수조를 더 늘리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 집 안의 공간은 이미 포화상태고, 습도도 지나치게 높았다. 때문에 작은 사무실을 하나 얻어서 설비를 갖추고 본격적인 새우 사육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얼결에 수족관업에 진출해 새우 분양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꾸준히 선별 브리딩을 진행하다 보니 2014년 즈음에는 나도 꽤나 이름 있는 관상새우 브리더가 되었고 내 새우의 퀄리티도 인정받게 되면서, 고급 개체의 경우는 상당히 높은 가격으로 분양을 하게 되었다. 해외 브리더들과도 교류하다 보니, 해외에서 내 새우를 사러 오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몇몇 신종 개체를 만들기도 했다. 새우 사육은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만 갈수록 장사라는 게 힘이 들더라. 때문에 취직을 했고, 취직한 이후 시간관계상 별도의 사무실을 운영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지금은 사무실을 정리하고 다시 집에서 가볍게 새우를 키우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별다른 계획은 없다. 지금까지 해온 대로 계속 불리고 선별하며 조금씩 더 퀄리티를 높여 나갈 것이다. 또다시 외부 사무실을 두고 전문적으로 키우는 건, 나중에 돈이 많고 할 일이 없어지면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조금 꿈이 있다면, 나중에 시간과 기회가 되는 때에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 여는 새우 콘테스트에 출품해 입상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도 열심히 해본 일인데, 타이틀 하나 정도 따두는 건 좋지 않겠는가? 내 취미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새우 사육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올해 《시인동네》 가을 호에서 이야기한 것이 있으니 그걸 찾아 읽어 보면 될 것이다. 취미에 관한 이야기를 적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취미 이야기를 하게 되어서, 이번엔 ‘어쩌다 그런 취미를 하게 되었나’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았다. 별로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지만, 끝까지 다 읽어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마치도록 하겠다.


 

 

작가소개 / 김연필(시인)

- 1986년 대전 출생. 2012년 《시와 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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