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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외 6편

  • 작성일 2023-11-03
  • 조회수 358

신지영


밤하늘에 

밝은 구멍이 

콩콩콩


저 구멍에

손가락 쑤욱 집어넣으면


구멍 뒤에서

외계인이 기다리고 있다

내 손가락 꽉 잡을지도 몰라


그럼 얼른 잡아당겨

지구로 내려오게 한 다음


같이 놀자 그래야지

친구 하자 그래야지






CCTV



엄마가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밤에 혼자 걸을 때는 

그렇게 든든하더니


쓰레기 좀 몰래 버렸더니 

왜 이렇게 눈치가 보이냐


아무래도 걸리는지 

다시 나가는 엄마


CCTV!

대단하네!






민달팽이



고라니 아님 사슴?

아니, 아니! 

그러기엔 너무 작아


오소리 아님 너구리?

딱 걔네들이 싼 똥인지 알았지


그런데 똥이 움직이는 거야


느릿느릿

고물고물


아악~


태어나 처음 본 민달팽이는


뚜껑 없는 요구르트

책 없는 학교

파란색 떡볶이처럼


처음 만난 하나의 세상

세상에서 제일 예쁜 똥






편의점 등대



골목 끝 

딱 하나 있던 편의점

밤늦게 끝나는 엄마가 제일 좋아했었지


깜깜한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으면

망망한 검은 바다에서 만난 등대 같다고 했거든


엄마는 출렁이는 어둠을 가로질러 

쪽배처럼 집에 왔었지


이제 엄마의 등대는 없어


밤새 어둠을 밝히던

편의점 아줌마 얼굴이 


점. 점. 점. 

어두워지더니

어느 날 꺼져 버렸거든


편의점 불이






곤충채집



밥 먹다가

친구들과 놀다

쿨쿨 자다가


갑자기 잡혀서

투명한 감옥에 갇히는 기분

상상도 할 수 없어


나비도

잠자리도

메뚜기도

내가 뭐라고

잡아 가둘 수 있어


무슨 이런 방학숙제가 다 있어






기다려 줄게



누가 한여름 아니랄까 봐

볕이 아니라 땡볕이다


신호등 기다리는 내 밑으로

그림자가 쨍쨍


기다렸다는 듯

얼룩 고양이 한 마리 얼른 그림자 안에 앉는다


그늘 한 점 없는 길에

너도 덥구나


파란불이 켜졌지만

발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네가 그림자 깔고 앉아서 내가 움직일 수 없잖아

 다음 신호 바뀔 때까지만이다


땀 뻘뻘 흘려도 

기분은 시원하다






언니밖에 없어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지하철에서 알려 주는 사람도


다음 골목에서 좌회전하세요

자동차에서 알려 주는 사람도


전화 걸면

콜센터에서 안내해 주는 사람도


모두

모두

언니밖에 없어


오빠가 

알려 주면

큰일 나나 봐


언니들 하는 일 따로 있고

오빠들 하는 일 따로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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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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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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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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