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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요일

  • 작성일 2023-11-03
  • 조회수 418

먼지 요일

박채현


   등굣길이 한산했다. 희뿌연 공기가 켜켜이 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희끄무레한 빛이 해가 어디 있는지 대충 알려주었다. 인도에는 먼지 먹는 로봇들이 오갔다. 빌딩 꼭대기마다 물을 뿜는 기계가 가짜 비를 뿌려댔다. 

   “어? 민준이다. 이민준!”

   찬이는 반가운 마음에 소리쳤다. 앞서 걷던 아이가 어정쩡하게 뒤돌아봤다. 텅 비었다. 눈이 멍했다. 

   “아, 아니야. 그냥 가.”

   찬이는 아이보다 더 빨리 걸었다. 저만치 다솔이가 보였다. 한 가닥으로 올려 묶은 머리가 걸을 때마다 가방에 부딪혀 찰랑거렸다. 찬이는 냅다 달렸다.

   “얍, 한다솔!”

   놀랄 만한데, 평소 다솔이 같으면 까무러치듯 소리를 질렀을 텐데, 아이는 시큰둥하게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도 텅 비었다. 

   “미, 미안.”

   찬이는 느릿느릿 교문을 통과했다. 운동장 가득한 안개를 가르며 두리번거렸다. 역시 운동장에 노는 아이는 없었다.

   “초미세먼지 경보가 발령 중입니다. 운동장에서 활동을 금지합니다. 교실에서는 창문을 모두 닫고, 공기청정기를 돌려주세요.”

   방송이 여러 번 나왔다. 창문을 꽁꽁 닫았다. 교실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찬이는 교탁 앞에 서서 아이들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까불이 안경진 대신 근엄한 안경진이 앉아 있었다. 근엄한 안경진은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방귀를 뀌거나 코딱지를 파는 일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근엄한 안경진이 컴퓨터 자판을 가만가만 눌렀다. 

   왈가닥 한다솔 대신 한겨울 바람처럼 냉랭한 한다솔이 앉아 있었다. 냉랭한 한다솔은 복도를 와다다 달리거나 웃음을 참지 못해 물을 뿜는 일 따위는 절대, 절대 하지 않는다. 냉랭한 한다솔이 필통정리를 살금살금 하고 있었다. 

   민준이도 없고, 신비도 가람이도 모두 오늘은 복제 로봇을 학교에 보냈다. 로봇들은 제 주인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울거나 웃지 않았다. 눈빛이 반짝거리지도 않았다. 눈 속에는 눈동자처럼 둥근 카메라가 있을 뿐이었다.

   학교에 직접 온 아이는 다경이와 우주, 찬이 셋뿐이었다. 다경이와 우주는 평소에도 교실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다. 오늘처럼 복제 로봇이 학교에 대신 오는 날엔 더더욱 숨소리조차 낮게 쉬는 아이가 바로 다경이와 우주다. 찬이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만 해도 답답했다. 찬이는 가슴을 쿵쿵 치다가 동그란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자, 보자. 모두 얼굴 들어볼까?”

   선생님 말씀에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던 선생님이 수첩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대신 온 로봇들은 컴퓨터에 출석 체크 잊지 말고.”

   아이들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던 선생님이 입술을 삐죽이 내밀었다. 

   “찬이, 다경이, 우주. 오늘은 셋뿐이네? 너희들도 어서 복제 로봇을 가져야 할 텐데.”

   찬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마트에서 로봇 도우미 일을 하는 엄마가 2년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사지도 않고 월급을 다 모아야 복제 로봇을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찬이네는 엄마가 버는 돈으로 먹을 것을 사야 하고 필요한 물건들도 사야 한다. 찬이가 복제 로봇을 가지려면 아직 멀었다.

   “쿠하, 켁켁켁….”

   안경진이 교실 뒷문으로 뛰어 들어왔다. 자습하던 아이들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어쩐 일이야? 근엄한 안경진이 와 있는걸.”

   찬이는 슬며시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누르며 싱글거렸다.

   “야, 말도 마. 답답해 죽겠어. 엄마가 집에 꼼짝 말고 붙어서 영어 공부만 하라고 하잖아. 으, 징글징글해.” 

   안경진은 온몸을 벅벅 긁어댔다. 목덜미가 벌겋게 부풀어 있었다. 

   “어머, 경진아. 너 피부병 때문에 오늘 못 온다고 하던데.”

   “선생님, 집에만 있으니까 마음이 간지러워서 못 참겠어요.”

   안경진이 펄쩍펄쩍 뛰었다. 물속에 잠긴 듯 고요하던 교실이 경진이 덕분에 들썩거렸다. 우주가 몰래 피식 웃었다. 다경이도 코를 실룩거렸다. 

   “쉿! 지금은 수업 시간이야.”

   선생님이 눈을 흘기자 경진이가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해가 좀 더 밝게 보였다. 뿌연 먼지도 좀 걷히나 싶었는데,

   “미세먼지 경보, 오존 주의보 발령 중! 운동장에서 놀지 않도록 하세요.”

   다시 방송이 나왔다.

   “에이, 도대체 언제 놀라는 거야.”

   방진 마스크를 눌러쓴 찬이와 경진이가 신발을 신다 말고 멈춰 섰다. 뒤따르던 가람이의 복제 로봇이 앞질러 나갔다.

   “어? 어떻게 된 거지? 가람이 복제 로봇이 따라 나왔잖아.”

   “가람이 복제 로봇은 교실에 있는 근엄한 안경진하고는 차원이 달라. 감정도 배우면 재생 가능하대.”

   경진이는 어젯밤 엄마의 전화 통화 내용을 엿듣고는 그대로 읊었다.

   “엄청 비싸다더라. 우리 엄마가 가람이 복제 로봇은 손도 대지 말랬어.”

   경진이가 입꼬리를 축내리며 어깨를 들어 올렸다. 다경이와 우주도 현관 앞에서 맴맴 돌았다. 다경이의 작은 얼굴이 마스크에 가려 눈만 겨우 나와 끔뻑거렸다.

   “아, 몰라. 난 나가서 놀래.”

   우주가 운동장으로 내달렸다. 다경이도 기다린 듯 따라 나갔다. 경진이가 엉덩이춤을 추며 손짓했다.

   “삐이------, 운동장에 노는 어린이 어서 교실로 들어가세요.”

   방송이 계속해서 흘러나와도 아이들은 못 들은 척 그대로 운동장으로 달렸다. 잠자던 운동장이 그제야 들썩들썩 춤췄다. 

   “너희, 방송 못 들었니?”

   선생님이 멀찍이서 소리쳤다. 

   “선생님, 받으세요.”

   경진이가 축구공을 뻥 날렸다. 얼결에 공을 받은 선생님이 머뭇거렸다.

   “아이참, 선생님 이쪽으로 공을 차야지요.”

   우주가 만세를 부르며 펄쩍거렸다. 선생님은 코에 주름을 잔뜩 세우더니 뻥, 공을 날렸다. 

   “우아, 우리 선생님 슈팅! 짱!”

   다경이의 칭찬에 선생님이 싱글거렸다. 우주가 달려가 공을 받았다. 경진이가 공을 가로채 골로 달려갔다. 

   “선생님, 막아야 해요.”

   찬이가 방방 뛰었다. 선생님은 긴치마를 펄럭거리며 골대로 달려갔다.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숨소리가 거칠었다. 뿌옇던 운동장에 흙먼지가 푸석푸석 일어났다. 찬이가 받은 공을 힘껏 찼다. 가람이 복제 로봇이 펄쩍 뛰어올라 가슴으로 축구공을 받았다. 경진이가 재빨리 골로 연결했다.

   “와아! 골인!”

   “일 대 일입니다.”

   경진이가 두 팔을 벌리고 빙글빙글 운동장을 돌았다.

   “에엥-----, 운동장에서 노는 어린이 당장 교실로 들어가세요.”

   선생님이 뛰다 말고 멈춰 섰다.

   “아참! 얘들아 이런 날씨에 밖에서 놀면 안 되는데….”

   모두 숨을 쉭쉭 몰아쉬며 교실로 돌아갔다. 앞서 걷는 선생님 어깨가 축 처졌다. 

   “어? 가람이 복제 로봇이 이상해.”

   우주가 우뚝 멈춰 서서 말했다.

   가람이 복제 로봇이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걷다가 어깨를 들썩이며 낄낄거렸다. 

   “어. 정말이네. 왜 저래?”

   가람이 로봇이 무릎을 꿇더니 앞으로 풀썩 쓰러졌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가람이 로봇을 일으켰다. 선생님이 복제 로봇 가슴에 있는 호출 버튼을 눌러 수리 센터에 알렸다.

   “선생님, 교장실로 오시래요.”

   “얘들아, 손 깨끗이 씻고 물 좀 마시고 있어.”

   선생님이 잠시 눈을 끔뻑거리다가 아이를 뒤따라갔다.

   “우리 선생님 혼나는 거 아니야?”

   “왜, 왜 혼나?”

   “에이, 치사해.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축구 좀 했다고 혼내냐.”

   경진이는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었다. 

   “가람이 로봇이 내 축구공을 가슴으로 받아서 그런 건 아니겠지?”

   찬이는 어쩐지 걱정이 되었다. 

   “설마. 가람이 로봇은 시험 중이라 좀 다르대.”

   경진이는 아까보다 더 심하게 벅벅 긁고 있었다.

   아이들은 뿌연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얘들아, 아까 승부를 못 냈잖아. 교실에서 승부차기, 어떠냐?”

   우주가 허리에 손을 얹고는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평소에 개미 소리만 내던 우주가 어떻게 된 거야?’

   “좋아. 도전장을 받아 주겠어.”

   아이들은 실내화를 벗어 축구공 대신 찼다. 실내화 공이 요리조리 미끄러졌다. 

   “자, 간다.”

   다경이가 미끄러지면서 돌진했다. 책상이 밀려나고 의자가 제멋대로 뒹굴었다.

   “한 골도 허락할 수 없다.”

   찬이는 온몸을 던져 실내화 공을 막아냈다. 실내화가 날아올랐다. 경진이는 헤딩으로 실내화를 받아내고는 나동그라졌다. 그 바람에 화분이 떨어져 반으로 갈라졌다.

   “야, 이 녀석들. 교실에서 얌전히 놀랬더니 지금 뭐 하는 거야?”

   언제 왔는지 교장 선생님이 눈썹을 잔뜩 올리고 있었다. 그 옆에 서 있는 담임선생님은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김 선생님, 이것 좀 보세요. 선생님 반 아이들이 얼마나 말썽인지. 미세먼지 때문에 운동장에서 놀지 말라고 얼마나 많이 방송했습니까? 그런데 담임교사까지 같이 나가서 운동장을 누비질 않나, 복제 로봇까지 데려가 사고를 내질 않나. 조용히 책이나 읽을 것이지 교실에서 축구를 하다니요. 누가 다치기라도 하면 학부모 민원을 누가 다 책임질 겁니까?”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교장 선생님이 삿대질했다.

   “교장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 정리하겠습니다.”

   두 손을 모아 쥔 선생님이 거듭 허리를 숙였다. 창밖에서 뿌연 먼지가 놀리듯 떠다니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경진이 엄마가 검은 마스크를 끼고 교문 앞에 서 있었다. 

   “안경진, 너 이럴 거야? 먼지 요일엔 로봇이 없는 아이들이나 학교에 오는 거라고 몇 번 말해.”

   경진이는 금세 자라목이 되었다. 그러고는 냉큼 승용차에 올랐다. 오늘따라 경진이의 목덜미가 더 벌겋게 보였다. 

   하굣길도 한산했다. 학교에 온 아이들도 적은 데다 그중에도 반은 부모님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안내판을 거들떠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차들은 까만 차창을 꼭 닫은 채로 도로에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희끄무레한 먼지를 덮어쓴 나무들이 힘없이 서 있었다. 꼬리를 늘어뜨린 길고양이가 재채기하며 얼굴을 닦아댔다. 길가에 다니는 사람들은 방진 마스크를 꾹 눌러쓰고 바쁘게 지나갔다.

   터덜터덜, 찬이가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 뒤로 우주, 그 뒤로 다경이가 걸어갔다. 

   찬이 휴대전화 화면에 경진이 이름이 떴다.

   “찬아, 가람이 복제 로봇은 나비 때문에 고장 났대. 가슴에서 나비가 나왔다나 봐. 로봇이 나비를 살리려고 스스로 자기 전원을 다 내렸대. 자기밖에 모르는 가람이랑 완전 딴판이야. 그지?”

   “휴, 다행이다. 난 나 때문에 고장 났을까 봐 걱정했는데.”

   찬이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고는 피식 웃음이 났다. 어쩐지 가람이 복제 로봇하고는 또 놀고 싶어졌다.

   저녁이 되어 집에 들어서는 엄마는 어깨춤이라도 출 기세였다.

   “엄마, 좋은 일 있어요?”

   “응, 우리 찬이 복제 로봇 드디어 신청했어. 한 달 뒤에 배달 올 거야.”

   ‘설마 엄마도 종일 집에서 영어 공부만 하라는 건 아니겠지.’

   ‘내 복제 로봇은 어떤 성격일까. 엄마들은 왜 아이들과 정반대 성격을 가진 복제 로봇을 신청하는 걸까. 다음 먼지 요일엔 우주와 다경이만 학교에 갈까?’

   ‘이러다 사람들은 집에만 갇혀 살고 거리엔 로봇들만 다니는 건 아닐까?’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먼지가 둥둥 떠다니고 심심한 아이들 얼굴도 둥둥 떠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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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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