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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타는 생쥐

  • 작성일 2023-11-03
  • 조회수 487

벽을 타는 생쥐

김두를빛


   1. 첫눈


   목련아파트 202동 지하에 사는 생쥐 부부의 열세 번째 아들 쥐가 탐험가를 만난 건 그날 내린 첫눈 때문이었다. 굵고 탐스러운 눈송이가 소복소복 내리는 것을 본 열세 번째 아들 쥐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설렜다. 며칠 전에 아빠가 눈이라고 했던 진눈깨비는 이름만 ‘눈’일뿐 비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눈을 본 건 그날이 처음인 셈이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사뿐히 내리는 눈도, 빠르게 내리는 눈도, 건들거리며 내리는 눈도 그 움직임은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열세 번째 아들 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족들이 밥을 먹는지 죽을 먹는지도 모른 채, 창문 너머의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눈을 밟으면 어떤 기분일까?”

   “차가워.”

   열세 번째 아들 쥐의 혼잣말에 아빠 쥐가 냉큼 대답했다. 

   “얼마만큼요?”

   이번에는 엄마 쥐가 말했다.

   “앗, 차거! 하면서 폴짝 뛰고 싶을 만큼.”

   “허허, 그만큼은 아니지.”

   “당신 발은 어른 발이니까 그렇지.”

   아빠 쥐한테 눈을 흘기던 엄마 쥐가 슬쩍 열세 번째 아들 쥐의 마음을 떠보았다. 

   “왜 밟아 보고 싶어?”

   네, 하고 대답하기도 전에 아빠 쥐가 말을 가로챘다. 

   “안 되는 거 알지? 어린 쥐한테 바깥은 위험해. 아빠 엄마도 밤이 돼서야 나가잖아.”

   열세 번째 아들 쥐는 자식들 중에서도 유난히 호기심이 많았다. 꼼지락거리며 놀고 있는 다른 자식들과는 달리, 하루 종일 창가에 매달려서 밖을 보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여튼 골치 덩어리라니까, 아빠 쥐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우리 열세 번째 아들 쥐는 똑똑해서 잘 알 거야. 그치?”

   아빠 쥐는 엄마 쥐를 향해 찡긋 눈짓을 하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곧, 어제 밤에 우리는 왜 하나같이 바보 같은 애들만 낳았을까, 하면서 부부싸움을 했던 일이 떠올라 얼른 입을 다물었다. 

   엄마 쥐가 그런 아빠 쥐의 속내를 다 안다는 듯이 아빠 옆구리를 발로 쿡 찌르며 말했다. 

   “한 입으로 두 말 하시네.”

   “그러니까 자식 교육 좀 잘 시키라고. 쓸데없는 호기심 따위는 아예 갖지 못하게… 응?”

   엄마 쥐가 입을 삐죽이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 모여라. 낮잠 잘 시간이다.”

   그러자 첫째부터 막내까지, 흩어져 놀고 있던 새끼 쥐들이 엄마 쥐를 향해 모여들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엄마 품을 차지하려고 끼어드느라 잠자리를 정하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열세 번째 아들 쥐는 이미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아들 쥐는 앗, 차거! 하면서 눈밭을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차들이 스르륵 지나가며 만들어 낸 길 위에서 미끄럼을 탔다. 놀이터에 있는 놀이 기구 위에 걸터앉아 발을 대롱대롱 흔들며 하얀 입금을 후우, 하고 불었다. 때마침 눈이 내렸다. 아들 쥐는 입을 헤 벌려서 커다란 눈송이를 받아먹었다. 헤헤헤, 좋다, 좋아! 

   갑자기 조용해져서 돌아봤더니 가족들 모두 눈을 감고 꼭 붙어 있었다. 열세 번째 아들 쥐는 하얀 눈이 내려앉은 나뭇가지를 올려다보았다. 삭막하기만 했던 겨울나무 위에 눈송이 꽃이 피어 있었다. 쿨쿨, 콜콜, 쌔액쌔액…. 잠든 가족들의 코고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뭘 그렇게 봐?”

   언제 왔는지 엄마 쥐가 열세 번째 아들 쥐 옆에 서 있었다. 아들 쥐는 엄마 쥐에게 몸을 기대며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엄마, 바깥세상은 어떤 곳이에요?”

   엄마 쥐는 열세 번째 아들 쥐의 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위험하지만,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지.”

   “그럴 줄 알았어요.”

   오후의 햇살이 나뭇가지 위에서 반짝거렸다. 아들 쥐는 엄마와 함께 그것을 보는 것이 좋았다. 

   “엄마는 나를 얼마만큼 사랑해요?”

   “그건 왜 묻니?”

   “그냥요.”

   엄마 쥐가 “참 싱겁기도 하지.”하면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흘러, 아들 쥐가 엄마 쥐를 생각할 때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아들 쥐는 또록또록 눈알을 굴리며 엄마가 해 줄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열세 번째 아들 쥐는 살그머니 눈을 떴다. 가족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본능적으로 지금이 기회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들 쥐는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 발바닥이 근질근질했다. 

   아들 쥐는 살금살금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공기가 와락 아들 쥐의 목덜미로 달려들었다. 아들 쥐는 재빠르게 계단을 올랐다. 곧 평평한 땅이 나타났다. 서너 발자국 앞에 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아들 쥐는 첫 발을 떼기 전에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그리고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올라섰다. 그 뒤부터는 쉬웠다. 앗, 차거! 하면서 폴짝폴짝 뛰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말이다.

   흰 눈밭에 찍힌 발자국이 선명했다. 내 발자국이 이렇게 생겼구나. 아들 쥐는 신이 나서 이리저리 눈밭을 뛰어다녔다. 

   그러다 우뚝 멈춰 서더니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무슨 소리지? 저 건너편에서 드르륵 드르륵 소리를 내며 위를 향해 올라가는 널찍한 수레가 눈에 들어왔다. 수레를 따라 고개를 젖혀 아파트를 올려다보던 아들 쥐 입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아하!”

   지금껏 생각해 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방향이었다. 그 순간 아들 쥐의 가슴 안에서 뭔가가 꿈틀, 거렸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어떤 순간을 통과한 기분이었다. 

   “으악!”

   아들 쥐가 갑자기 왼쪽 뒷다리를 싸쥐고 주저앉았다. 쥐였다. 

   쥐한테 쥐가 나다니! 최악이었다. 아들 쥐는 찌릿찌릿한 다리를 달달 떨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쥐 퇴치법이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때였다. 인간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면서 우르르 몰려왔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검정색 이불을 둘둘 말아 무릎 아래까지 덮고 있었다. 얼른 달아나야 하는데, 하면서 어기적거리던 아들 쥐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아이 하나랑 눈이 마주쳤다. 아들 쥐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눈밭에 발딱 누워 버렸다. 

   “쥐다!”

   그래 쥐다, 쥐 처음 보냐. 아들 쥐는 숨을 헐떡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실눈을 떴다. 아이들이 둥글게 모여서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심장이 쥐어 짠 듯 쪼그라들었다.

   “아, 징그러.”

   한 아이가 말했다. 아들 쥐는 어이가 없어서 벌떡 일어나 따질 뻔했다. 이웃 어른들이 우리 형제들 중에서 내가 제일 귀엽게 생겼다고 했는데, 할아버지도 우리 집안에서 이런 인물이 태어났다니, 하면서 자랑스러워했는데, 그런 나를 보고 징그럽다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진짜 기절이라도 할 것 같았다. 

   아들 쥐는 그냥 지나가라, 제발 지나가라 하면서 숨 쉬기를 꾹 참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그때 마침 어디선가 바람 한 점이 쌔앵 불더니,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아들 쥐 눈 위로 휘리리 날아왔다. 아들 쥐 눈이 움찔거리는 것을 본 한 아이가 소리쳤다. 

   “살아 있다.”

   “추워서 몸이 잠깐 얼었나 봐.”

   “불쌍하다.”

   “얼어 죽으면 어쩌지? 따뜻한 데로 옮겨 주자.”

   “그래, 그러자.”

   인간 아이들은 생각보다 오지랖이 넓었다. 다행히 한 아이가 반대를 하고 나섰다.

   “에이, 그냥 가자.”

   아들 쥐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 잘한다. 내버려 두고 가라, 제발.

   “이대로 두면 죽을 거야.”

   “징그럽지만 살려 주자.”

   에이, 그놈의 징그럽단 소리. 

   아이들은 어디선가 가져온 기다란 나뭇가지로 아들 쥐를 조심히 들어올렸다. 아들 쥐는 실눈을 뜨고 아래를 봤다가 질끈 눈을 감았다.

   “여기 두자.”

   아이들이 찾아낸 곳은 다행히 아들 쥐의 집이 멀지 않은, 낙엽이 수북이 쌓인 곳이었다. 아들 쥐는 휴,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잠깐만!”

   한 아이가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낙엽 위에 올려놓았다. 

   “안 그래도 작아져서 버리려고 했어.”

   그때까지 아들 쥐를 들고 있던 아이가 장갑 위에 아들 쥐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남은 장갑으로 아들 쥐를 덮어 주었다.

   “문질러 줘야 되는 거 아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는 아이는 없었다. 아이들 눈에 귀여워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제 가겠지 싶었는데 아이들은 오히려 숨을 죽이고 아들 쥐를 지켜보았다. 아들 쥐는 뭔가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들 쥐는 일부러 몸을 부르르 떨고 나서 눈을 번쩍 떴다. 아이들이 우르르 뒤로 물러섰다. 

   “살았다!”

   아이들은 저만치 떨어져서 아들 쥐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한 아이가 외쳤다. 

   “아, 맞다. 학습지 선생님 오실 시간이다.”

   아이들이 갑자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저 위쪽으로 달려갔다. 


   2. 탐험가


   아들 쥐는 일어나려고 몸을 버둥거렸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나려는 순간 아들 쥐 앞에 나타난 이가 바로 탐험가였다. 

   “괜찮으냐? 큰일 날 뻔했다. 착한 애들을 만나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몸이 안 움직여요.”

   “놀라서 그럴 거다.”

   부탁도 안 했는데 탐험가가 선뜻 아들 쥐의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아들 쥐는 낯선 생쥐에게 몸을 맡긴 채, 그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탐험가는 다른 생쥐에 비해 유난히 몸이 길쭉하고 삐쩍 말랐다. 그렇다고 마르기만 한 건 아니어서, 아들 쥐의 다리를 주무르려고 힘을 쓸 때마다 다리 근육이 실룩거리는 것이 보였다.

   “어디 사니?”

   “요 밑이요.”

   아들 쥐는 고갯짓으로 바로 옆에 있는 지하실을 가리키고 나서 아빠보다는 젊고 첫째 형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 탐험가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저씨도 우리 동네 사세요?” 

   “난 여기저기 여행하며 산단다.”

   뭐랄까, 그러고 보니 탐험가는 이제 막 긴 여행에서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아들 쥐의 머리에 ‘탐험가’란 단어가 떠올랐다. 아들 쥐는 자신을 도와준 이 친절한 아저씨에게 그럴 듯한 별명을 지어 주고 싶었다. 

   “그럼 탐험가 아저씨라고 부를게요.”

   “음, 마음에 드는 호칭이구나. 넌 뭐라고 부를까?”

   “전 202동 지하실에 사는 생쥐 부부의 열세 번째 아들 쥐예요.”

   “그게 이름이냐?”

   “음.”

   “열세 번째는 너무 길구나. 거기서 열을 떼고 셋째라고 부르자.”

   “뭐, 그러시든가요.”

   안 그래도 엄마 아빠는 열세 번째 아들아, 하고 부르려고 한참이나 입을 들썩거렸다. 이제부터 셋째라고 불러 달라고 해야지. 아, 그러면 셋째 형이랑 헷갈릴 텐데. 그럼 ‘작은 셋째야’라고 부르면 되지. 아들 쥐는 처음으로 이름을 갖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괜찮아진 것 같구나. 어서 집에 가거라.”

   작은 셋째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확실히 나아져서 집에서 나올 때처럼 기운이 넘쳤다. 

   “근데 아저씬 우리 동네에 어쩐 일이세요?”

   “누굴 좀 만나러 왔단다. 오래전 여행 중에 만난 분인데, 그때 도움을 많이 받았지. 마침 근처를 지날 일이 있어서….”

   “누군데요?”

   “이사 갔다고 하는구나. 그 집에서 막 나오는 길이다.”

   작은 셋째는 요 근래 이사 간 집을 떠올려 보았다. 저 윗동에 마을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쥐가 살았는데, 그 할아버지가 아들 집으로 이사 갔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았다. 

   “이제 어쩌실 거예요?”

   “날이 저물길 기다렸다가 떠나야지.” 

   그러고 보니 주위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곧 시커먼 어둠이 몰려올 것 같았다. 그 순간, 작은 셋째는 탐험가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지금 안 하면 영원히 못 하게 될 지도 몰랐다. 작은 셋째는 탐험가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 정말 멋져요. 저도 아저씨처럼 훌륭한 쥐가 되고 싶어요.”

   “하하, 그렇게 봐 주니 고맙구나. 넌 뭘 잘하니?”

   작은 셋째는 말문이 막혔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였다. 탐험가가 멋쩍게 웃으며 콧수염을 매만졌다. 

   “하하, 내가 곤란한 질문을 한 것 같구나. 그럼 뭘 좋아하니?”

   작은 셋째는 이번에도 선뜻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탐험가에게 되물었다.

   “아저씬 뭘 잘하시는데요? 우리 아빤 고양이 놀리고 도망가기, 우리 엄만 고양이 울음소리 흉내 내기를 잘 해요.”

   “난 벽을 잘 탄단다.”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특기여서 작은 셋째는 말을 더듬었다.  

   “벼, 벽이요? 왜 벽을 타는데요?”

   “어느 날 생각해 보니 땅에서만 발발거리고 살았더구나. 문득 저 높은 데로 올라가 보면 어떨까 싶었지. 그래서 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작은 셋째는 탐험가 말에 깜짝 놀랐다. 좀 전에 위로 올라가는 수레를 보며 들었던 느낌이 바로 이거구나, 싶었던 것이다. 작은 셋째는 신이 나서 뒷발을 굴렸다.

   “맞아요! 저도 그런 생각 했어요. 쥐는 어째서 대대로 땅에서만 꼬물거리며 살아야 하는가! 새로운 방향, 저 위로 나아갈 수는 없는가!”

   탐험가가 옳지,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너 보기보다 특별한 녀석이구나. 그런 생각을 다 하다니.”

   “특별하다고요? 제가요?”

   작은 셋째는 한 번도 자기가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살짝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세상 경험이 많은 탐험가의 말이니까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202동에 사는 인간들이 불을 켜기 시작했다. 귤색 빛이 화단을 넘어 주차장까지 비추었다. 아파트 안에서 인간들이 서성이는 게 보였다.  

   “저 안은 어떤 세상일까요?”

   넋이 나간 얼굴로 아파트 안을 흘깃거리던 작은 셋째의 물음에 탐험가가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듯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별거 없단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비슷비슷해.”

   작은 셋째를 이해시키기에 충분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탐험가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적당한 말이기도 했다. 뭔가 아쉬워하는 작은 셋째를 본 탐험가가 덧붙여 말했다. 

   “나도 예전에 그랬단다. 하지만 경험해 보면 너도 그렇게 말할 거다.”

   탐험가는 알쏭달쏭한 말만 골라서 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왠지 그래서 더 멋져 보였다. 그때였다. 아까부터 저쪽에서 시끄럽게 아파트 벽을 오르락내리락하던 수레가 작은 셋째의 눈에 다시 띄었다. 

   작은 셋째의 눈길을 따라가던 탐험가가 아는 체를 했다. 

   “늦게까지 이사를 하는구나. 인간은 우리랑 달라서 짐이 아주 많단다. 그래서 저렇게 하루 종일….”

   그러고 보니 탐험가는 작은 가방을 하나 들고 있을 뿐이었다. 이삿짐이 올라가는 걸 지켜보던 작은 셋째는 갑자기 멋진 계획이 떠올랐다. 작은 셋째의 눈이 반짝, 하고 빛났다. 

   “아저씨, 저거 타고 올라가 봤어요?”

   탐험가는 그런 작은 셋째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위험한 일이야. 인간한테 들키면….”

   작은 셋째가 수레 위에 놓인 짐들을 가리켰다. 커다란 가구를 감싸고 있는 담요 속에 숨으면 될 것 같았다. 탐험가는 어림없다는 얼굴로 눈알을 굴렸다.  

   “에이, 한 번만 올라가 봐요. 네? 아저씨는 탐험가잖아요.”

   작은 셋째는 탐험가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탐험가는 아랑곳없이 가방을 어깨에 척 둘러메며 떠날 채비를 했다.   

   “부모님이 걱정하시겠다. 얼른 집에 들어가거라. 나도 그만 가 봐야….”

   작은 셋째는 창문을 뜯어서 커다랗게 구멍이 나 있는 아파트를 올려다보았다. 어수선한 틈을 타서 잠깐 구경만 하고 오는 건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험심 없는 탐험가 아저씨 안녕히 가세요. 전 올라가 볼게요.”

   작은 셋째는 그 순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설명할 길이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눈 때문이었는지, 해 질 녘 아파트에서 새어 나오는 달달한 불빛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탐험가의 특별하단 말 때문이었는지.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건지. 

   어쨌든 작은 셋째는 쪼르르 달려가서 수레 위에 놓인 가구와 담요 사이로 숨어들었다. 수레가 덜컹거리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두렵기도 했지만 인간들이 사는 곳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때였다. 

   “으핫!”

   탐험가가 수레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작은 셋째는 속으로 큭큭, 웃으며 탐험가의 앞발을 잡아당겼다.


   3. 인간들이 사는 곳


   짐은 오른쪽에 있는 커다란 방으로 옮겨졌다. 감쌌던 담요를 풀고 가구를 벽에 붙이려는 순간, 탐험가와 작은 셋째는 잽싸게 빠져나왔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아파트 안을 구경했다. 몇 개의 방으로 나눠진 아파트는 밖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아늑했다.

   “고생하셨어요. 이것 좀 드세요.”

   인간들이 컵에 담긴 음료수를 마시고 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커다란 창문을 척척 달기 시작했다. 탐험가와 작은 셋째는 놀라서 어어, 하며 지켜보기만 했다.   

   “아저씨, 이제 우린 어디로 나가죠?”

   탐험가도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았다. 눈만 껌벅거리던 탐험가가 코털을 실룩거리더니 한곳을 가리켰다.

   “저쪽이야. 바람이 불어오는 쪽.”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인간들이 탐험가가 가리킨 쪽으로 몰려 나갔다. 탐험가는 눈을 부라리며 작은 셋째에게 신호를 보냈다. 작은 셋째는 입술을 앙다물고 고개를 끄덕해 보였다.  

   “하나, 둘, 셋, 뛰어!”

   탐험가가 용수철처럼 밖으로 튕겨 나갔다. 탐험가의 날렵한 몸뚱이가 작은 셋째의 눈에 들어왔다. 작은 셋째는 뛸 듯 말 듯 다리를 옴질거리다가 그 자리에 얼음처럼 굳고 말았다. 서서히 문이 닫히는 순간, 그 사이를 잽싸게 통과하기는커녕 육중한 현관문에 끼어 납작해질 것만 같은 공포 때문이었다. 작은 셋째는 탐험가의 튼실한 엉덩이와 힘찬 꼬리가 사라지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하!”

   작은 셋째는 현관 입구에 놓인 화분 뒤로 몸을 숨겼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다리가 후들후들한 것이 곧 쓰러지고 말 것 같았다. 작은 셋째는 엄마와 아빠, 형과 누나들, 그리고 하나뿐인 막내를 떠올렸다. 그들을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후회와 슬픔이 밀려들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으앙!”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용케도 꾹 참아 냈다. 

   눈물을 쓱 닫고 주변을 살폈다. 살아야 한다!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 작은 셋째는 몸을 움츠려 화분과 벽 사이 좁은 공간으로 몸을 더 밀어 넣었다. 

   눈을 떠 보니 사방이 깜깜했다. 작은 셋째는 깜박 잠이 든 자신을 탓하며 머리를 때렸다.  

   “아휴, 미쳤어, 미쳐. 지금 잠이 와? 잠이?”

   인간들은 모두 잠이 들었는지 찍 소리도 나지 않았다. 작은 셋째는 먼저 현관문과 바닥 사이의 공간을 살펴보았다. 바람만 들어올 뿐 작은 생쥐가 빠져나갈 수 있는 틈은 조금도 없었다. 하여튼 인간들이 하는 짓이 그렇지 뭐. 틈이 없어요, 틈이.

   낙심하며 돌아서는 순간,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인간들이 잠을 자며 내뱉는 숨소리가 아니었다. 작은 셋째는 도무지 틈이 없는 현관문을 뒤로 하고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살금살금 발을 움직였다. 

   커다란 창문이 달린 널따란 방이 보였다. 창밖으로 낯설면서도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셋째는 자석에 끌린 듯 쪼르르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우와!”

   자기도 모르게 작은 셋째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멋지다!”

   어둡지만 하늘에 뜬 달 때문에 밖이 잘 보였다. 지하실에 살 때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래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완전히 딴 세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 순간 탐험가를 향한 적개심이 훅 올라왔다. 사는 게 다 비슷비슷하다고? 거짓말. 인간은 날마다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보며 사는데, 어떻게 우리랑 같을 수가 있어. 

   유리창에 코를 박고 있던 작은 셋째 눈앞에 뭔가가 어른거렸다. 창밖에 누가 있었다. 난간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작고 검은 탐험가였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지? 생각한 순간, 벽을 오르는 게 특기라던 탐험가의 말이 떠올랐다. 작은 셋째의 입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으항, 아저씨, 아저씨 나 좀 살려 주세요.”

   탐험가가 발바닥으로 입을 가리며 쉿 했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려서 말하기 시작했다. 쥐의 목소리가 워낙 작은 데다 두꺼운 유리창이 가로막고 있어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입모양으로 보아 탐험가가 하는 말은 대강 이랬다.

   걱정 말아라. 너를 꼭 구할…. 인간한테… 잘 숨어 있어라. 기회는 반드시 온다. 밤에만 움직….

   탐험가는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아래로 내려갔다. 

   ‘네, 아저씨! 우리 다시 만나요. 꼭이요!’

   작은 셋째는 멀어지는 탐험가를 보려고 눈물을 찔끔 짜냈다. 그리고 새삼 놀라워서 입이 쩍 벌어졌다.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오다니.

   “대단해.” 


   4. 사랑스러운 루돌프


   “넌 어디서 왔니?”

   작은 셋째는 움찔 놀라며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희미한 달빛에 보이는 것은 넓은 거실과 가구들뿐이었다.

   “누, 누구세요?”

   작은 셋째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인간인가? 아니면 인간이 죽으면 된다는 귀신인가?

   “톡! 톡!”

   뭔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이어서 “여기야, 여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 크기로 봐서는 인간처럼 몸집이 큰 동물은 아닌 것 같았다. 

   작은 셋째는 실눈을 뜨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책장 맨 아래 칸에 있는 플라스틱 통이 보였다. 투명한 플라스틱 통 안에 꼬물거리는 뭔가가 있었다. 

   “이리 와 봐. 괜찮아.”

   작은 셋째는 여차하면 달아날 심산으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 천천히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다가갔다. 

   네모난 플라스틱 통 안에는 작은 셋째보다 조금 더 큰 쥐 한 마리가 있었다. 하지만 같은 동족을 만났다는 기쁨도 잠시, 통 안의 쥐는 작은 셋째가 알던 쥐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희고 통통한 것이… 살짝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쥐가 분명하긴 한데….”

   “너 생쥐 맞지. 난 햄스터야.”

   “햄스터?”

   “이름은 루돌프, 여기 투명한 사각형 집에 살고, 이 집 어린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애완동물이지. 내가 인간들이랑 살기 시작한 건…, 음, 그게 그러니까… 어쨌든 만나서 반갑다. 안 그래도 살짝 지루했던 참인데. 그렇다고 외로웠던 건 아니고.”

   말이 많긴 했지만 나쁜 녀석 같진 않았다. 작은 셋째는 호기심이 담긴 눈으로 루돌프가 살고 있는 플라스틱 통 안을 들여다보았다. 

   “혼자 살기엔 아늑하고 괜찮은 곳이지. 들어와 볼래?”

   루돌프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꼬리를 흔들었다. 작은 셋째는 펄쩍 뛰었다. 

   “아니! 내가 왜!”

   “크크 놀라긴. 한번 해 본 소릴 가지고. 근데 넌 어떻게 된 거야? 어쩌다 오게 됐어? 밖에 있던 쥐는 또 누구고. 나처럼 애완동물로 들어온 것 같진 않은데.”

   작은 셋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서 자기가 누구인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등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다. 그런 작은 셋째의 모습을 짠한 눈길로 바라보던 루돌프가 입을 열었다. 

   “참 안됐구나. 근데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한번 싼 오줌은 다시 모을 수 없는 법! 이왕 이렇게 된 거 여기서 나랑 같이 사는 건 어때? 여긴 먹을 것도 많고 따뜻하고… 저기, 내가 외롭지는 않은데 살짝 지루해서 말이지. 안 그래도 동무가 있었으면 했거든.”

   작은 셋째는 루돌프의 말을 듣고 잠깐 고민에 빠졌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 통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루돌프의 말을 듣고 있자니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탐험가는 이제 안 올 거야. 탐험가가 이곳을 떠났다에 한 표! 하나뿐인 내 집을 건다!”

   작은 셋째는 어림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탐험가를 만난 건 반나절밖에 안 됐지만 어쩐지 탐험가에게는 믿음이 갔다. 

   “에헤! 네가 세상인심을 모르는구나.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냐 하면…,”

   그렇게 루돌프의 사연을 시작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은 훌쩍 흘러 창밖이 희뿌옇게 밝을 때까지 계속 되었다. 나중에는 졸음이 몰려와서 둘 다 몸을 앞뒤로 흔들며 감길락 말락 하는 눈을 겨우 뜨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 안쪽에서 시작된 쿵쿵 소리가 점점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딸깍 소리와 함께 주위가 대낮처럼 환해졌다. 

   “숨어!”

   루돌프 목소리였다. 플라스틱 통 위에 앉아 있던 작은 셋째는 깜짝 놀라서 책장 사이로 훌쩍 뛰어내렸다. 루돌프가 작게 소곤거렸다. 

   “주인아줌마야. 친절하고 상냥하지. 가끔 소리를 지르긴 하지만. 아함, 난 그만 자야겠다. 오랜만에 얘기를 너무 많이 했더니… 피곤해… 콜콜.”

   작은 셋째도 네 다리 쭉 뻗고 자고 싶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두 눈은 말똥, 두 귀는 쫑긋, 코털은 바짝 곤두섰다. 주인아줌마를 비롯해서 이 집의 식구들이 만들어 낸 쿵쿵, 콩콩, 달각달각, 쏴아쏴아, 치이익, 엄마! 여보! 소리 때문이었다.

   “야, 모두 나갔어. 집엔 우리뿐이야.”

   작은 셋째는 루돌프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몸이 천근만근이나 된 것처럼 무거웠다. 여기가 어디인가, 어리둥절해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번쩍 정신이 들었다. 

   “배고프지?”

   작은 셋째는 루돌프가 시키는 대로 플라스틱 뚜껑 위로 올라가서 작은 입구를 열었다. 고맙게도 루돌프가 자기 밥을 통 밖으로 던져 주었다. 집에서 먹던 것과는 너무 달라서 살짝 머뭇거렸지만 먹어 보니 그런대로 깔끔하고 감칠맛 나는 맛이었다. 무엇보다 좋은 건,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는 점이다. 

   밥을 다 먹은 작은 셋째는 그제야 루돌프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복슬복슬 윤기 나는 흰털, 놀란 듯 쫑긋 세워진 귀, 음식을 가득 물고 있는 것 같은 입이 확실히 귀여웠다. 

   “이건 뭐야?”

   작은 셋째는 루돌프의 목을 가리키며 물었다. 

   “응, 은 목걸이야. 체험 학습인가 뭔가 다녀오더니 나한테 걸어 주더라고. 여기에 뭐라고 써졌는지 아니?”

   그러고 보니 목걸이에는 인간들의 글자가 적혀 있었다. 

   “뭐라고 써져 있는데?”

   “사랑스러운 루돌프!”

   “아.”

   “어때, 내가 사랑스러워 보이니?”

   “그, 글쎄….”

   인간의 장식품을 달고서 뭐가 사랑스럽다는 거야? 고양이 목에 달린 방울처럼 괴상하기만 하구만. 작은 셋째는 입을 삐죽였다. 

   어쨌든 그렇게 작은 셋째는 아파트에서 지내게 되었다. 낮에는 책장 사이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거실로 나와 아파트 안을 돌아다녔다. 이따금 오줌이 마려운 주인아저씨가 불을 켜서 놀랐지만, 며칠을 지내다 보니, 아파트 안에서의 생활에도 그럭저럭 적응이 되었다.

   그사이에 탐험가는 날마다 유리창 밖에 나타나서 작은 셋째를 보고 돌아갔다. 작은 셋째는 아직 어렸지만 탐험가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만나러 오는지 알 것 같았다. 

   너희 부모님께 약속…. 널 매일 지켜보겠다고. 방법이… 있을 거다. 참고 기다려라. 그리고 미안하다.

   탐험가의 말에 작은 셋째는 속으로 말했다. 이제 오지 마세요. 아저씨는 탐험가잖아요.

   작은 셋째의 말을 알아들은 건지 못 알아들은 건지 탐험가는 말없이 돌아섰다. 작은 셋째는 찰싹 유리창에 달라붙어서 벽을 타고 내려가는 탐험가의 뒷모습을 보며 내일 탐험가가 오지 않는다 해도 손톱만큼도 원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어쨌든, 여기서 나가면 벽을 타 보기로!” 

   작은 셋째는 하늘에 뜬 초승달을 힐끔 보며 중얼거렸다. 


   5. 자유 혹은 버려짐


   인간들이 모두 나가고 없을 때면 작은 셋째와 루돌프는 함께 시간을 보냈다. 플라스틱 벽에 발바닥을 마주 대고 누워 통통거리거나, 등을 붙이고 앉아 떠오르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종알거리거나, 그것도 심심해지면 플라스틱 위로 올라간 작은 셋째가 입구로 꼬리를 늘어뜨리고 루돌프가 그걸 잡아당기면서 놀았다. 

   그날도 작은 셋째는 플라스틱 통 속으로 꼬리를 늘어뜨리고, 적당히 밀고 당기면서 땀을 빼는 중이었다. 루돌프는 일정한 힘 이상으로는 당기지 않았는데, 그건 작은 셋째가 플라스틱 통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서였다. 

   띠띠띠띠, 누가 들어오는 소리였다. 놀라서 중심을 잃은 작은 셋째가 플라스틱 통 속으로 쿵, 떨어졌다. 

   “아이쿠!”

   작은 셋째의 엉덩이에 얼굴을 부딪친 루돌프가 코를 움켜쥐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톱밥 속으로 몸을 숨겼다. 

   “아직도 자?”

   이 집에 사는 여자 아이가 플라스틱 통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어떻게 하루 종일 잠만 자니?”

   여자아이의 손이 훅, 플라스틱 통 안으로 들어왔다. 톱밥 밑을 헤집던 손이 작은 셋째를 움켜쥐었다. 작은 셋째와 눈이 마주친 여자 아이가 “까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엄마야!”

   여자 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 플라스틱 통에 두 번이나 떨어진 작은 셋째는 루돌프가 어깨를 흔들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여기서 나가야 해!”

   “맞아! 우리는….”

   “우리 말고, 너.”

   마음이 급해진 작은 셋째는 이를 앙다물고 플라스틱 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은 생각보다 미끄러웠다. 오르다 미끄러지고 오르다 나뒹굴기를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을 하다 지쳐서 대자로 뻗어 버렸다. 

   무심하게도 창밖의 어둠은 짙어지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작은 셋째는 두려움에 떨며 땀이 차오른 네 발바닥을 의미 없이 문질러댔다.

   작은 셋째 눈치를 살피던 루돌프가 입을 열었다. 

   “미, 미안하다. 힘 조절을 못한 나 때문에….”

   “아냐. 내가 너무 방심했어.”

   “흑흑, 정말 미안….”

   “울지 마.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나까지 울면 안 된다. 작은 셋째는 마음을 다잡고 중얼거렸다.

   “고양이한테 잡혀 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했다. 정신 차리자, 정신!”

   어둡던 거실에 불이 켜지고 이 집에 사는 인간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어린이 두 명은 각자 엄마 아빠 뒤에 숨어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어? 통 안에 둘 다 있네. 난 거실에 떨어뜨린 줄 알았어.”

   “어쨌든 다행이다. 저기 안에 있으니까.”

   “이제 어쩌지?”

   주인아저씨 물음에 주인아줌마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긴, 둘 다 버려야지.”

   “산 채로?”

   엄마 아빠 말을 듣고 있던 여자 아이가 우는 소리를 했다. 

   “으앙, 내 루돌프는 안 돼.”

   “저 더러운 쥐 좀 봐. 분명히 세균 덩어리일 거야. 루돌프도 오염시켰을 걸.”

   주인아저씨가 물었다. 

   “어떻게 버리지?”

   주인아줌마가 대답했다. 

   “그냥 통째로 버려야지. 얼른 버리고 와.”

   “내가?”

   “그럼 누가 해.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지? 내가 살다살다 이런 꼴은 처음이야.”

   그때까지 인간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루돌프가 갑자기 코털을 부르르 떨며 소리를 질렀다. 

   “뭐야, 나까지 버린다고?”

   이번에는 작은 셋째가 루돌프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 나 때문에.”

   주인아저씨는 비닐장갑을 끼고 플라스틱 통을 들었다. 얼굴에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잠깐 생각하는 눈치더니 쓰레기봉투를 가져와서 플라스틱 통을 넣고 꽁꽁 묶었다. 

   “히힝, 잘 가 루돌프야. 널 잊지 않을게.”

   아이들의 목소리가 복도까지 따라왔다. 루돌프도 코끝이 찡해져서 울먹였다.

   “나한테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주인아저씨는 들고 온 쓰레기봉투를 조심스럽게 쓰레기 더미 위에 올려놓고 사라졌다. 비스듬히 놓인 탓에, 작은 셋째와 루돌프는 하늘을 향한 채로 몸이 뒤엉켰다. 

   “드디어 자유다!”

   “자유… 난 뭐가 뭔지 모르겠어.”

   작은 셋째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 202동 쪽을 바라보았다. 집이 코앞인데, 플라스틱 통 안에 갇힌 채 옴짝달싹할 수도 없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작은 셋째는 도무지 이 상황이 실감나지 않아서 눈만 떴다 감았다 했다. 

   “드디어 자유라며. 어떻게든 좀 해 봐.”

   루돌프가 몸을 흔들며 비벼 댔다. 작은 셋째는 벽에 더 찰싹 붙었다. 

   작은 셋째는 여기요! 좀 도와주세요! 하며 소리를 질렀다. 남들한테는 찍찍거리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겠지만 말이다. 

   시끄러운 소리에 눈이 떠졌다. 날은 환하게 밝았고, 바람은 차가웠고, 작은 셋째와 루돌프는 도로를 달리는 트럭 위에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걸까.”

   겁에 질린 루돌프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목소리도 떨려 나왔다. 작은 셋째는 그런 루돌프의 등을 가만히 쓸어 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린 괜찮을 거야.”

   작은 셋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말했다. 물론 루돌프에게도 아무 위로가 되진 않았다. 


   6. 쓰레기 산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거대한 쓰레기 산이 우뚝우뚝 서 있는 공터였다. 작은 셋째와 루돌프는 입을 딱 벌리고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많은 쓰레기들을 모아 놓은 곳이 있을 줄이야! 

   “윽!”

   지독한 냄새가 풍겨 왔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눈알이 쏙 빠질 것 같았다.

   “이 냄새! 엄마 아빠가 외출했다 돌아오면 나던 냄새야. 아, 먹을 걸 찾으러 쓰레기장에….”

   작은 셋째와 루돌프는 깨진 플라스틱 통에서 빠져나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깨끗하고 아름다웠던 것들의 마지막 모습은 실로 처참했다. 하지만 쥐가 인간과 다른 점은 이것들에서도 마지막 쓸모를 찾아낸다는 점이었다. 작은 셋째는 쓰레기 더미에서 뭔가를 부지런히 찾고 있는 늙은 쥐와 눈이 마주쳤다. 머리털이 숭숭 빠진 할아버지 쥐였다. 작은 셋째는 다짜고짜 할아버지 쥐를 향해 소리쳤다.

   “할아버지, 여기 사세요?”

   할아버지 눈이 빠르게 끔벅거렸다. 당연한 걸 왜 물어, 하는 얼굴이었다.

   “여기서 태어났으니까 여기서 살지.”

   할아버지 쥐는 자신의 대답이 부족했다고 느꼈는지, 커억 기침을 한 번 하고는 덧붙였다.

   “다른 곳은 가 본 적도 없단다. 그런데 너희는 어디서 왔느냐. 아하, 트럭을 타고 온 게로구나.”

   작은 셋째는 대답 대신 궁금한 것들을 연거푸 물었다.

   “여기서 사는 거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떠나고 싶지 않으세요?”

   할아버지 쥐는 쓰레기 더미에서 쏙 빠져나와 납작한 플라스틱 위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리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별걸 다 묻는구나.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그 순간에도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냄새였다. 작은 셋째는 지독한 냄새를 탓하며 앞발로 코를 싸쥐었다. 할아버지 쥐는 작은 셋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허참, 냄새가 난다고?”

   할아버지 쥐는 그런 터무니없는 말은 처음 들어 본다는 듯 멀뚱한 얼굴로 작은 셋째와 루돌프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쥐 사는 데가 다 그렇지. 설마 내가 불쌍해 보이느냐?”

   작은 셋째는 얼른 찡그린 얼굴을 바로 하고, 코를 싸쥐고 있던 앞발을 내렸다. 루돌프도 슬그머니 따라서 했다. 여기서 태어났다면 이곳의 냄새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쥐는 그런 둘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너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허허허, 괜찮다. 괜찮아.” 

   그 순간 작은 셋째의 목구멍에서 스멀스멀 어떤 욕망이 밀고 올라왔다. 할아버지 쥐에게 이곳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멋진 세상이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어진 것이다. 하늘을 향해 높다랗게 서 있는 아파트와 깨끗한 도로, 화단에 핀 꽃들과 나무, 그리고…. 

   작은 셋째는 탐험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탐험가도 나를 보고 이런 기분이 들었을까. 아파트 지하실에 살면서 그곳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어린 쥐에서 자신이 본 세상 얘기를 들려주고 싶지는 않았을까.

   쓰레기 산 너머로 붉은 해가 지고 있었다. 하루에 한 번, 같은 자리에서 뜨고 지는 해는 왜 항상 새롭게 느껴지는지. 둘은 홀린 듯이 해가 지는 풍경과 그 아래, 어둑한 쓰레기 산이 만들어 내는 곡선을 바라보았다.

   “너 이런 거 본 적 있어?”

   “아니!”

   작은 셋째와 루돌프는 한참이나 붉은 하늘과 맞닿은 쓰레기 산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까만 하늘에 둥근 보름달이 떠 있었다. 

   작은 셋째는 저 앞에서 반짝이는 것들에 눈길을 주었다. 달빛을 받은 깨진 병 조각, 거울 조각, 알루미늄 캔 같은 것들이었다. 첫눈이 내리던 날,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던 나뭇가지 위의 눈이 생각났다. 더없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밤이었다.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별에 온 것 같았다. 


   하루도 빼지 않고 쓰레기는 날마다 차고 넘치게 배달되었다. 이렇게 넓은 곳이 필요할 만큼 인간은 무엇을 그렇게 쓰고 버리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작은 셋째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작은 셋째와 루돌프는 그렇게 며칠 동안 쓰레기 산에서 할아버지 쥐와 함께 지냈다. 할아버지 쥐는 친절하게 잘 곳을 마련해 주고, 새롭게 쌓인 쓰레기 더미에서 먹을 것을 찾아 주었다. 할아버지 쥐가 주는 음식에서는 하나같이 시큼하고 역겨운 냄새가 났지만 너무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냄새에도 적응이 됐는지 더 이상 역겨운 냄새가 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할아버지 쥐는 그런 작은 셋째에게 이곳이 얼마나 괜찮은 곳이지 알려 주고 싶어 했다. 

   “이것 봐라. 아직 쓸 만하지 않니?”

   “이것 좀 먹어 봐라. 별미다, 별미.”

   시간이 지나자 여기서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인간들의 동태를 살피지 않아도 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트럭이 드나드는 길목만 피한다면 그야말로 마음껏 떠들고 달리고 쉴 수 있었다. 

   어느 날 루돌프가 물었다.

   “여기서 계속 살 거야?”

   작은 셋째는 뜨끔해서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니, 떠나야지. 우리가 살던 아파트로.”

   “이제 난 집이 없어. 다시 가도 아무도 반기지 않을 거야.”

   루돌프가 시무룩해졌다. 작은 셋째는 루돌프 눈치를 살폈다. 

   “어쩌면 그 집 아이들은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네가 떠날 때 막 울었잖아.”

   “하지만 붙잡진 않았잖아. 울기만 하고….”

   루돌프는 뭔가 더 말을 할 것 같다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어쨌든 그 좁은 공간에서 탈출했잖아. 그건 좋은 일이야.”

   “탈출한 게 아냐. 버려진 거지.”

   그러고 보니 작은 셋째는 이곳에 적응하느라 루돌프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깨끗한 음식만 먹어 왔던 루돌프는 먹는 거며 잠자리며 이곳에서의 생활을 힘들어했다. 특히 따뜻한 아파트 안에서 살았던 루돌프는 추위를 못 견뎌 했다. 새삼 바라본 루돌프 몸은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털은 쥐색인 자신과 구별이 안 될 만큼 더러워져서 흰 털은 이제 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당장 떠나자.”

   “어디로?”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쓰레기를 나르는 트럭들에는 번호판이 달려 있었다. 작은 셋째는 그 사실을 알고, 타고 왔던 트럭의 번호판을 자세히 봐 두지 않은 걸 후회했다.

   “끝 번호가 31로 끝났던 것 같은데.”

   할아버지 쥐 말에 작은 셋째와 루돌프는 놀라서 펄쩍 뛰었다. 

   “할아버지가 그걸 어떻게 아세요?” 

   “그 트럭이 쓰레기를 쏟고 나서 너희들이 나타났으니까 그렇지.”

   “와아!”

   둘의 얘기를 들은 할아버지 쥐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떠날 걸 알고 계셨군요.”

   “음, 오래전에 트럭을 타고 온 쥐가 있었지. 이곳에 잘 적응하는 것 같더니만 결국 떠났다. 젊은 쥐들은 늘 변화를 꿈꾸지. 혹시 몰라 번호를 기억해 두었단다.” 

   작은 셋째는 밤낮으로 이곳에 오는 트럭들의 번호판을 살폈다. 32, 41로 끝나는 번호판은 있어도 31로 끝나는 트럭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오후였다. 그날도 하얀 눈이 내렸는데, 눈이 와서 그런지 트럭들이 천천히 꼬리를 물고 들어왔다. 트럭의 번호판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느라 작은 셋째는 눈알이 핑핑 돌 지경이었다. 

   “앗! 저거다, 저거!”

   작은 셋째가 막 쓰레기를 쏟아 내고 있는 트럭을 가리켰다. 트럭들이 몰고 다니는 차가운 바람에 인상을 쓰고 있던 루돌프가 벌떡 일어섰다. 

   “어디, 어디?” 


   ‘4031’


   작은 셋째와 루돌프는 서로를 얼싸안고 방방 뛰었다. 작은 셋째는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같이 가실래요?”

   “글쎄다. 여길 떠나 보는 것도 좋겠단 생각은 들지만… 나는 갈 수 없을 것 같다.”

   “왜요? 나이가 많아서요?”

   이번에는 루돌프가 물었다. 

   “다른 세상이 보고 싶지 않으세요?”

   “허허, 한 가지씩만 물어보려무나. 나이가 많아서냐고? 글쎄다, 그건 아닌 것 같다. 난 내 나이를 모르거든. 그래도 늙은 걸 보면 확실히 나이가 많긴 한 것 같구나. 나이가 많다는 건 그만큼 두려움도 많아진다는 거지. 어쨌든 너희는 아직 젊으니 뭐든 시작하기 바란다. 두려움이 아직 많지 않을 때 말이다. 음, 또, 다른 세상이 보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던가? 물론 보고 싶구나. 하지만….”

   짧은 순간 망설이는 것 같던 할아버지 쥐가 마음을 정한 듯 편안해진 얼굴로 말했다. 

   “난 더 이상 꿈이 없단다. 하루하루 살 수 있어서 감사할 뿐이지.”

   작은 셋째는 할아버지 쥐가 이곳을 떠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물어봐야 될 것 같았다. 어쩌면 할아버지 쥐가 처음으로 해 보는 선택일 지도 몰랐다. 어쨌든 할아버지 쥐가 자신의 선택에 만족해 보여서 다행이었다. 

   “잘 가거라. 행운을 빈다.”

   “할아버지, 그동안 감사했어요. 건강하셔야 해요. 할아버지를 잊지 못할 거예요. 정말이에요….”

   작은 셋째는 그렇게 주절주절 작별 인사를 하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작은 셋째에게 이별은 아직 낯설기만 했다. 특히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이와의 이별은 더 그랬다. 

   “안녕히 계세요. 할아버지.”

   작은 셋째와 루돌프는 4031 위에 올라탔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4031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작은 셋째는 눈가를 찡그리며 멀찌감치 서서 둘을 지켜보고 있는 할아버지 쥐를 바라보았다. 동상처럼 서 있는 할아버지 쥐 머리 위로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루돌프는 기운이 없는지 축 늘어져 버렸다. 엉키고 거칠어진 털 밑으로 루돌프의 여린 뼈가 느껴졌다. 작은 셋째는 가슴이 아팠다. 루돌프가 이렇게 된 것이 꼭 자기 탓인 것만 같았다. 

   “눈 온다.”

   루돌프는 그새 잠이 들었는지 대답이 없었다. 


   7. 벽을 타는 생쥐


   작은 셋째와 루돌프를 태운 4031이 멈춘 곳은 예전에 살던 아파트가 아니었다.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단지 모양이며 화단 위치가 확실히 달랐다. 4031은 도착하자마자 단지 안을 돌며 쓰레기들을 모아 담았다. 쓰레기를 가득 채우고 나면 다시 쓰레기장으로 향할 것이 분명했다. 

   “여기서 내릴까?”

   루돌프 말에 작은 셋째는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 트럭을 놓치면 영원히 집으로 갈 수 없을 거야.”

   “그래서 어쩌려고? 다시 쓰레기장으로 가겠다고? 난 싫어!”

   작은 셋째가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루돌프가 트럭 밖으로 몸을 날렸다. 작은 셋째는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야!”

   떨어진 루돌프가 다리를 절뚝이며 저쪽으로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작은 셋째도 4031에서 뛰어내렸다. 작은 셋째와 루돌프는 아파트 화단에 숨어서 쓰레기차가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괜찮아. 며칠 있으면 또 올 거야.”

   작은 셋째는 자신에게 말하듯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은 루돌프가 머리를 흔들었다. 

   “난 다시는 쓰레기 산에 안 갈 거야.” 

   작은 셋째는 루돌프를 데리고 아파트 지하실로 내려갔다. 유감스럽게도 전에 살던 아파트보다 훨씬 상태가 나빠 보였다. 이런저런 잡다한 물건들이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널브러져 있고, 어디서 물이 새는지 바닥에는 더러운 물이 흥건했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도 코를 찔렀다. 

   “뭐야, 이런 데서 살겠다고?”

   루돌프는 기가 차는지 입구에 선 채 가만히 있었다. 

   “춥지.”

   작은 셋째는 주위에 있는 박스 조각을 가져와서 루돌프가 쉴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루돌프는 곁눈질로 흘깃 보기만 할 뿐,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작은 셋째는 4031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4031은 나타나지 않았다. 

   루돌프는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더러 깨어 있을 때도 멍한 시선으로 한곳을 바라보긴 했는데, 딱히 뭘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무슨 생각해?”

   작은 셋째가 물으면 루돌프는 “그냥.”하고 말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여전히 눈만 끔벅거릴 뿐이었다. 그러면 작은 셋째는 속으로 어쩌면 아직도 따뜻했던 아파트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안 돼. 이젠 잊어야지. 그래야 살 수 있어. 아직도 모르겠어? 바보같이….’

   작은 셋째는 그렇게 내뱉고 싶은 걸 애써 꾹 참았다. 

   무언가를 기다리며 보내는 하루는 지루하고 막막했다. 나중에는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하루하루가 무기력하기만 했다. 문득 이렇게 트럭이 나타나기만 기다리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다리는 일 말고, 뭔가 다른 일로 하루를 보낼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화단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는데, 화단가에 심어진 사철나무 사이로 뭐가 쑥 들어왔다. 고양이 머리였다. 

   “캭!”

   고양이가 사철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려고 킹킹거렸다. 머릿속에선 얼른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쩐 일인지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겨우 다리를 떼어 돌아서는데,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바로 등 뒤에서 들려왔다. 이대로 죽는구나, 작은 셋째는 눈앞이 캄캄했다. 그 순간 작은 셋째 눈에 베란다 난간이 올려다보였다. 다행히 비스듬히 기울어진 나무줄기를 타고 가면 난간 쪽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 셋째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나무를 타고 베란다 난간 위로 올라갔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고양이 울음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왔다. 숨을 헐떡이며 아래를 내려다보던 작은 셋째 입이 턱 벌어졌다. 화단이 저 멀리에 있었다.  내가 이렇게 높이 올라왔다고?

   고양이는 위를 올려다보며 앙칼지게 울어 댔다. 작은 셋째는 휴, 하고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잘했어!”

   모처럼 작은 셋째는 자기 자신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거짓말처럼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여기에서! 잘 살아 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와, 높은 데서 보니까, 생각까지 달라지는구나.”

   작은 셋째는 문득 탐험가가 보고 싶었다. 탐험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어떤 순간들이 동시에 떠올랐다. 눈 덮인 세상을 처음으로 뛰어다녔던 그때, 무심히 아파트 꼭대기를 올려다봤을 때, 가슴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던 순간, 벽을 내려가는 탐험가를 보며 나도 벽을 타 보리라 마음먹었던 그 순간.     

   ‘그래, 그거야!’

   야옹거리며 작은 셋째를 노려보던 고양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작은 셋째는 덜덜 떨리는 네 다리로 겨우겨우 아파트를 내려왔다. 방금 전에 2층까지 올라갔다 온 게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벽에 몸을 딱 붙이고 한 걸음 할 걸음 위를 향해 내딛었던 감촉이 발바닥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봤을 때의 그 기분이란! 그것은 아파트 안에 갇혀 있을 때 봤던 것과는 또 달랐다. 

   땅바닥에 네 발을 딛고 살아가는 쥐에게 위로 향한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앞으로 옆으로 뒤로 혹은 지하로만 향했던 눈이 위로 향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다른 시선, 다른 감각,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면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어쩌면 쥐들의 삶도 달라질까. 작은 셋째는 그날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안 자?” 

   루돌프가 말을 걸었다. 작은 셋째는 고개를 돌려 루돌프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루돌프의 작은 눈이 반짝였다. 작은 셋째는 자기가 결심한 것을 루돌프에게 얘기해 주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루돌프가 물었다. 

   “왜, 벽을 타겠다는 건데?”

   작은 셋째는 하나뿐인 친구가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곧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설명해도 루돌프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작은 셋째는 아파트 벽을 타고 올랐을 때 바라봤던 것들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내일부터 벽 타는 연습을 할 거야. 높은 곳에 오르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몰라.”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루돌프는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 하는 얼굴로 듣고만 있었다. 

   “너도 내일부터 같이 움직이자. 이렇게 누워만 있다가는 걷는 것도 힘들어질 거야.”

   “내버려 둬. 만사가 귀찮아.”

   루돌프 다리는 4031에서 뛰어내릴 때 다친 뒤로 아직까지 말썽이었다. 이제는 뻣뻣하게 굳어서 잘 펴지지도 않았다. 

   “많이 아파?”

   대답이 없었다. 루돌프는 이제 예전의 루돌프가 아니었다. 잘 웃고 말이 많았던 루돌프는 이제 굳어 가는 다리처럼 마음도 굳어 가고 있었다. 작은 셋째는 루돌프에게 다가가 자기 다리를 건들건들 흔들어 루돌프의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싫지 않은지 루돌프가 가만히 있었다.


   작은 셋째는 밖이 어두워지면 먹을 것을 찾으러 다녔다. 운이 좋아 먹을 것을 구하면 루돌프에게 가져다주고, 새벽까지 벽을 타는 연습을 했다. 하지만 고양이를 피해 달아났을 때와 달리, 벽을 타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때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결국 작은 셋째는 며칠 만에 벽 타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졌다. 핑계거리는 많았다. 먹은 게 없어서 힘이 없다거나, 아픈 루돌프를 돌봐야 한다거나, 먹을 걸 더 구해야 해서 시간이 없다거나 같은 이유를 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작은 셋째는 그럴 수 없었다.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다시 그렇게 된다면 그때는 영영 일어설 수 없으리라는 걸 알아서였다. 

   마음을 다잡은 작은 셋째는 고양이를 피해 달아나던 때를 떠올렸다. 죽기 살기로 벽을 오르던 그때… 결국 그 힘도 자기 안에서 나온 거란 생각이 들었다. 믿고 연습하면 꼭 이루어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한 발짝 한 발짝….’

   ‘오늘은 어제 할 수 있었던 만큼에서 조금만 더!’

   작은 셋째는 날마다 속으로 그렇게 되뇌며 첫발을 떼었다. 그러면 조급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머릿속이 맑아졌다. 몸도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진이 다 빠져서 들어온 작은 셋째를 루돌프가 어느 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른 때는 잠을 자던 루돌프가 어쩐 일로 깨어 있었다.

   “안 자고 있었네?”

   루돌프의 얼굴을 본 순간 작은 셋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루돌프의 얼굴이 예전과 너무 달라져 있어서였다. 고통스러울 때 짓는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린 것 같았다. 작은 셋째는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내가 오늘 몇 층까지 올라간 줄 알아? 5층이야. 굉장하지.”

   “응.”

   루돌프가 미소를 지으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더 찡그린 얼굴이 되고 말았다. 작은 셋째는 목이 메어서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날마다 벽만 탈 거면, 차리리 네 이름을 아예 ‘벽을 타는’으로 하는 게 어때?”

   루돌프가 비웃으며 한 말이지만, 작은 셋째는 오랜만에 루돌프 기분을 맞춰 주고 싶었다.

   “어쩜, 그런 생각을 다 했어? 좋아. 그럼 날 이제부터 ‘벽을 타는’으로 불러 줄래?” 

   루돌프는 기가 막힌 지 웃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작은 셋째가 날마다 벽을 타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작은 셋째의 몸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배는 움푹 꺼져 등에 붙은 것처럼 보이고, 네 다리와 엉덩이는 삐쩍 말라서 건드리면 툭 부러질 것 같았지만 어느 때보다 날렵하고 탄탄한 몸은 벽을 타고 오르기엔 안성맞춤이 된 것이었다. 


   그날도 먹을 것을 구해서 집으로 오는데 뭔가 휙 어두운 그림자가 집 앞에서 얼쩡거렸다. 작은 셋째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주위를 살폈다. 야옹,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언제부턴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자주,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아무래도 저번에 화단에서 고양이를 마주친 뒤로 고양이가 근처에서 작은 셋째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작은 셋째는 루돌프에게 늦은 저녁을 차려 주고 집에서 나왔다. 

   “다녀올게.”

   “그래, 잘 다녀와.”

   작은 셋째를 보는 루돌프의 눈이 유난히 퀭해 보였다. 작은 셋째의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다리가 빨리 나아야 할 텐데. 그러면 같이….”

   루돌프가 손에 쥐고 있던 뭔가를 내밀었다. 루돌프가 늘 목에 걸고 있던 은 목걸이였다.

   “이걸 걸고, 높은 곳에 올라 줘. 나 대신 이 목걸이가 높은 곳의 바람을 느낄 거야.” 

   “너도 올라가고 싶어 하는 줄은 몰랐어. 다음번엔 내가 널 업고 벽을 탈게. 할 수 있을 거야. 내가 힘이 아주 세졌거든.”

   “말은 고맙지만 사양할게. 내 운명을 네 등에 맡기고 싶진 않아서 말이지.”

   작은 셋째는 루돌프의 대답이 마음에 들어서 미소를 지었다. 루돌프다웠다. 루돌프가 작은 셋째의 목에 은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사실은 말이야. 네가 벽을 타고 오르는 거 찬성이야. 네가 빛나 보였거든. 벽을 타고 지쳐서 돌아올 때가 특히 더 그랬어. 나한테 너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 어디 가서 자랑할 데는 없지만.”

   코끝이 찡해진 작은 셋째는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그럼 다리가 다 나으면 뭐든 해 봐. 나도 자랑스러운 친구 좀 갖자.”

   “응, 좋아.”

   루돌프가 천천히 등을 돌리고 누웠다. 

   “일찍 올게.”

   밖으로 나왔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루돌프를 혼자 두고 가는 것이 잠깐 마음에 걸렸지만, 작은 셋째는 괜찮을 거야, 하고 중얼거렸다.


   8. 이별 그리고 목련아파트


   새벽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따금 건너편 도로로 차가 지나다닐 뿐 인간 세상은 아직 조용했다. 작은 셋째는 어느 때보다 큰 숨을 몰아쉬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오늘은 작은 셋째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이 아파트 단지에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곳까지 오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바로 옥상이었다. 작은 셋째는 옥상에 도착하자마자 누가 듣든 말든 발을 굴리며 소리를 질렀다.

   “야히히히! 내가 해냈다! 내가!”

   땅에서만 살았다면 절대로 보지 못했을 전혀 다른 세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새벽녘, 아찔하게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주차장에 주차된 차들이었다. 땅에서 봤을 때는 시커멓고 커다랗고 무서웠는데 옥상에서 보니 한눈에 쏙 들어오는 것이 장난감처럼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아,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거칠었던 숨이 잦아들고 다리 통증도 사라지자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작은 셋째의 마음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더 높은 곳으로 가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더 볼 수 있겠지.’

   작은 셋째는 놀라서 가슴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빠르게 눈알을 굴려 저 멀리를 보았다. 아파트 옥상보다 더 높은 건물이 보였다. 심장이 쿵쿵 뛰고, 턱이 덜덜 떨렸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작은 셋째는 루돌프에게 기쁜 소식을 빨리 전해 주고 싶어서 한달음에 지하실까지 내려왔다.

   “루돌프, 루돌프! 내가 옥상까지 올라가는 데 성공했어!”

   항상 루돌프가 웅크리고 있던 곳에 루돌프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간 거지? 작은 셋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디 있어, 루돌프!”

   가구들이 뒤엉켜서 만들어 낸 작은 틈이며, 가구들이 쌓인 높은 데며 아무리 찾아봐도 루돌프는 없었다.

   “루돌프!”

   작은 셋째는 루돌프가 원래 앉아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루돌프가 앉아 있던 두툼한 박스가 원래 위치에서 앞으로 밀려나와 있었다. 그리고 상자 위에 찍힌 물기 묻은 고양이 발자국. 고양이 발자국은 천천히 말라 사라지고 있었다.

   작은 셋째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진 것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어디선가 기척이 느껴졌다. 작은 셋째는 고개를 들어 저 안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뭔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구석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었다. 작은 셋째는 이를 악물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고양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클클클, 낮은 소리로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작은 셋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숨을 한 번 몰아쉬고 나서 전속력으로 달렸다. 고양이가 작은 셋째의 뒤를 쫓아왔다.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 올라탄 작은 셋째는 아래서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오늘은 끝장을 보겠다 이거지? 루돌프를 잃었다는 슬픔을 느낄 새도 없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작은 셋째의 눈앞에 4031이 나타났다. 그렇게 기다릴 때는 안 오더니. 작은 셋째는 만감이 교차한 표정으로 아파트 단지를 돌며 쓰레기를 모으는 트럭을 지켜보았다. 

   마지막으로 109동 앞에 있는 쓰레기통이 덜그럭거리며 트럭의 꽁무니에 쏟아졌다. 

   작은 셋째는 베란다 옆으로 뻗은 가지를 타고 나무로 올라갔다. 그리고 4031이 옆을 지날 때 훌쩍, 트럭 위로 뛰어내렸다. 

   작은 셋째는 고개를 돌려 멀어지는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수도 없이 오르고 내려오길 반복했던 아파트들이 보였다. 옥상에 올랐을 때, 눈 아래로 펼쳐졌던 풍경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봤던 루돌프의 작은 등도…. 

   트럭은 아스팔트 위를 힘차게 달렸다. 긴장이 풀린 탓일까. 작은 셋째는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보기 흉하게 입이 벌어지고 짜디짠 눈물을 조금 쏟았지만, 이상하게 소리가 나지 않는 그런 울음…. 


   작은 셋째는 4031에서 며칠을 보냈다. 그렇게 아스팔트 위를 달려 낯선 아파트 단지와 쓰레기 산을 오고갔다. 4031이 달리면 이번에는 내려야지, 내려야지 하면서도 정작 4031이 멈춰 서면 가만히 있었다. 어디가 됐든 내려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4031에서 내리면 어쩐지 영원히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들어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달리는 4031 위에서 매운 연기를 마시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이 한심해서 작은 셋째는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4031이 쓰레기들을 모으는 사이, 작은 셋째는 마른세수를 하고 주위를 살폈다. 쥐 한 마리가 음식물 쓰레기통을 혀로 핥고 있었다. 

   “엇!”

   순간 작은 셋째는 깜짝 놀라서 몸을 곧추세웠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핥던 쥐도 놀라서 움찔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작은 셋째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언뜻 탐험가와 닮아 보였지만 탐험가가 아니었다. 

   작은 셋째는 가끔 탐험가를 생각하곤 했다. 엉겁결에 아파트 안에서 지내게 되었을 때, 날마다 와서 작은 셋째를 만나고 돌아가던 탐험가의 뒷모습 때문이었다. 오늘은 안 오겠지, 이젠 안 올 거야, 했던 날에도 탐험가는 왜 벽을 타고 와서 나와 눈을 맞추고 갔을까. 

   자신도 몰랐지만 그때부터 작은 셋째는 누구보다 소중한 쥐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더 힘을 낼 수 있는지도 몰랐다. 난 소중한 존재니까,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래서, 탐험가는 밤마다 찾아왔던 게 아닐까. 내가 나를 포기하기 않도록. 

   작은 셋째는 흔들리는 4031 위에서 이번에 도착하는 아파트에서는 무조건 내리기로 마음먹었다. 


   모처럼 따뜻한 햇살이 쏟아졌다. 4031이 아파트 오르막길에 가볍게 올라섰다. 입구 오른쪽에 커다란 나무가 서 있었다.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 밑에 기다란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는 늙은 인간들이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작은 셋째의 눈이 커졌다. 여기는?

   “으악!”

   작은 셋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작은 셋째는 미련 없이 4031에서 뛰어내렸다. 이곳은 작은 셋째가 그렇게 꿈꾸던 곳, 목련아파트 단지였다. 작은 셋째는 너무 기뻐서 그 자리에 서서 만세를 불렀다. 

   “만세! 만세! 내가 집에 왔다!”

   작은 셋째는 넓은 주차장을 가로질러 202동을 향해 달려갔다.

   엄마는 202동 벽을 올려다보며 작은 셋째와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리 두 마리가 있어. 한 마리가 앞장서고 뒤에 한 마리가 따라가. 그 사이에 뭐가 있을까? 딩동댕! 먹을 거야. 엄마 아빠가 자식들 주려고 식량을 잔뜩 구해서 집에 가는 길이야. 혹시 길을 잃더라도 요 모양 보고 찾아와야 한다. 알았지? 

   어디서 힘이 나는지 달리는 네 발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202동 지하로 내려가던 작은 셋째는 갑자기 계단 중간에서 멈춰 서더니 자기 몰골을 내려다보았다. 깡마르고 더럽고, 하여튼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작은 셋째는 앞발에 침을 묻혀 정성스레 얼굴을 닦았다.

   “됐다!”

   작은 셋째는 훌떡훌떡 남은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가족들을 만나면 내가 얼마나 벽을 잘 타는지 말해 줘야지. 엄마는 나를 보고 울음을 터트릴 거야. 그럼 내가 엄마를 꼭 안아 줘야지. 아빠는 그 옆에서 큼큼, 헛기침을 하겠지. 사실은 울고 싶은 걸 꾹 참느라고 말이야. 

   작은 셋째는 한껏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힘을 냈다. 저 문 너머에 내 가족이 있다! 야호!

   “엄마! 아빠! 어?”

   그곳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막 청소를 끝낸 것처럼 바닥에 물기가 남아 있고 진한 소독 냄새가 풍겼을 뿐. 여기저기 잡동사니 물건들이 쌓여 있어서 숨바꼭질하기 좋았고, 너풀거리는 거미줄을 뒤집어쓰면서 장난치기 좋았던 나의 집이 말끔하게 치워져 버린 것이다.

   “하!”

   다리에 힘이 풀린 작은 셋째는 털썩 주저앉았다. 

 

   작은 셋째에게는 아무리 외롭고 힘들어도 돌아갈 집이 있었다. 언제 떠올려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곳, 웃음 짓게 만드는 곳, 언제든 나를 맞아 줄 가족들이 있는 곳. 하지만 지금은… 혼자였다. 

   202동 앞 화단에 숨은 작은 셋째는 혼란스러웠다. 가족들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모두 무사할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차가운 땅에 엎드린 작은 셋째는 가족들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그립고 소중한 얼굴들…. 

   “누군데, 여기서….”

   작은 셋째는 벌떡 일어났다. 유난히 눈이 작은 쥐가 자기를 보고 있었다. 

   “아니, 너… 202동 지하에 살았던 생쥐 부부의….”

   작은 셋째는 얼른 눈가를 훔치고 눈이 작은 쥐를 자세히 보았다.

   “이제 어른이 다 됐구나. 몰라보겠어.”

   작은 셋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옆 단지에 살던 동네 아저씨 쥐였다. 아빠와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 사이여서 작은 셋째의 집에도 자주 놀러 왔던….

   “아저씨!”

   작은 셋째는 달려가서 아저씨를 얼싸안았다. 마치 아빠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아저씨, 우리 가족들은 어디로 갔어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작은 셋째를 끌고 화단 깊숙한 곳으로 숨어 들어간 아저씨 쥐가 해 준 말은 대강 이러했다. 

   엄마 아빠 쥐는 작은 셋째의 소식을 탐험가에게 듣고 슬픔에 빠졌다. 탐험가는 매일 작은 셋째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탐험가가 와서 한다는 말이, 작은 셋째가 사라졌다고 했다는 것이다. 감쪽같이 사라져서 찾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함께 있던 햄스터도 사라졌다고. 크게 낙심한 엄마 아빠 쥐는 그 뒤로 작은 셋째를 수소문하며 찾아다녔다. 아저씨 쥐를 비롯한 이웃 쥐들이 엄마 아빠 쥐를 보고 남은 자식을 생각해야지, 하며 타일러도 보고 화도 내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다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막내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다행히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그 일로 충격을 받은 엄마 아빠는 쥐는, 그 후로는 남은 자식들을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지하실이 깨끗하게 청소되었다. 어쩔 수 없이 살던 곳에서 떠나야 했던 엄마 아빠 쥐는 결국, 친척이 사는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혹시 몰라 벽 한쪽에 편지를 써 놓았지만, 어찌나 독한 약을 써서 청소를 했는지 몽땅 지워지고 말았더라는 얘기였다. 

   얘기를 다 들은 작은 셋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저씨 쥐는 그런 작은 셋째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우리 집에 가서 쉬었다 가려무나. 우리도 곧 이사를 가야 할 형편이지만….”

   아저씨 쥐 집에서 하루를 보낸 작은 셋째는 한사코 말리는 아저씨 쥐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너희 부모님이 오면 소식 전해 주마. 잘 있더라고. 그래, 어디로 갈 생각이냐?”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언젠가 다시 올 날이….”

   그렇게 말하면서 작은 셋째는 이제 집을 찾는 일에, 트럭을 기다리는 일에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셋째는 목에 건 루돌프의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지금 제일 하고 싶은 일은 이 도시에서 제일 높은 곳에 오르는 일이었다.


   9. 내 이름은 벽을 타는


   작은 셋째는 발가락을 까딱까딱하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멀리서 볼 때는 길쭉한 막대기처럼 보이더니 가까이서 보니 거대한 원뿔 모양의 라라타워가 눈앞에 버티고 있었다. 다행히 위로 오를수록 좁아지는 형태여서 비스듬한 벽면을 타고 오르면 될 것 같았다. 

   문제는 바람이었다. 며칠 밤을 달려서 도착했지만, 매섭게 불기 시작한 바람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고 이틀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오늘 밤엔 무슨 일이 있어도 올라야 한다! 

   작은 셋째는 타워를 비추는 불빛이 완전히 꺼지고 나서야 준비 운동을 시작했다. 핫 둘. 핫 둘…. 준비 운동을 끝낸 작은 셋째는 벽을 타기 전에 언제나 그랬듯이 네 발바닥에 후우 입김을 불고 나서, 마지막으로 심호흡을 한 번 길게 했다.

   “아자!”

   작은 셋째는 몸을 움츠렸다가 힘껏 뛰어올라 라라타워에 찰싹 달라붙었다. 소스라치게 찬 기운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작은 셋째의 발은 앗, 차거! 할 틈도 없이 빠르고 날렵하게 움직였다.

   중간 쯤 올랐을 때, 어디선가 센 바람이 휘이잉 히잉 불어왔다.

   “어어!”

   작은 셋째는 자세를 낮추고 네 발바닥에 힘을 주며 버텼다. 까딱했다가는 저 아래로 떨어지고 말 것 같았다. 

   “으으.”

   바람이 어찌나 매서운지 뼈 속까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철겅철겅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간판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셋째의 심장도 바람에 흔들리는 간판처럼 벌렁거렸다. 

   ‘여기서 그만두어야 할까.’

   하지만 훈련으로 다져진 작은 셋째의 네 발바닥은 다시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작은 셋째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니지, 그럴 순 없지.’

   작은 셋째는 다시 타워를 오르기 시작했다. 문득 작은 셋째의 머릿속에 누군가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거센 바람에 이리저리 몸이 흔들리면서도, 한 걸음 한 걸음 이를 악물고 벽을 오르는, 시린 눈을 들어 저 위를 보는 작은 생쥐 한 마리…. 

   번뜩 언젠가 루돌프가 지어 주었던 이름이 떠올랐다. 

   ‘그렇지, 벽을 타는!’

   그때는 비아냥거리며 지어 준 이름이지만 지금의 자신에게 딱 맞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벽을 타는! 정말 마음에 쏙 들었다. 무엇보다 루돌프가 지어 준 이름이라 더 좋았다. 

   속이 뜨거워지면서 다시 힘이 났다. 그 뒤로 작은 셋째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작은 셋째는 이제 위를 보지 않았다. 가장 낮은 자세로 자기 안에서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작은 셋째는 자기 자신만 믿고 의지하고 따랐다.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온 우주가 작은 셋째의 발걸음 하나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작은 셋째는 끄응, 신음을 뱉어 내며 맨 꼭대기 층에 올라앉았다. 

   “휴우!”

   작은 셋째는 쓰러지듯 타워에 등을 기대고 앉아 먼 곳을 바라보았다. 희뿌연 하늘 아래, 거대한 도시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세상이 이런 곳이었구나.”

   작은 셋째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가슴이 벅차올랐다. 사타구니에 고인 땀을 씻겨 주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저곳 어딘가에서 우리 가족들이 살고 있겠지. 루돌프랑 살았던 아파트 지하실도 그대로일 테고. 할아버지 쥐가 사는 쓰레기 산은 어디에 있을까? 봄이면 목련꽃이 활짝 피었던 목련아파트도 잘 있겠지. 

   누군가의 환한 미소 같은 해가 도시 저 너머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작은 셋째는 그제야 자신이 라라타워 맨 꼭대기까지 올라왔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아흠.”

   가진 힘을 모두 다 소진한 느낌이었다. 몸이 가벼워져서 깃털처럼 어디론가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반대로 눈꺼풀은 세상에서 제일 무거워졌다. 그 순간, 꿈인 듯 현실인 듯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에는 누구나 평소와는 조금씩 달라진다. 그날, 엄마 품에 안겨 내리는 눈을 처음으로 보던 작은 셋째도 그랬다. 작은 셋째가 이렇게 물었던 것 같다. 엄마는 나를 얼마만큼 사랑해요? 엄마는 작은 셋째가 갑자기 왜 그렇게 묻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건 왜 묻니? 하고 물었으니까. 나는 엄마를 이렇게나 많이 사랑하는데, 엄마는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궁금해서라고 하는 대신, 작은 셋째의 입에서는 “그냥.”이라는 말이 나왔다.

   엄마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작은 셋째가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미소였다. 참, 싱겁기도 하지. 그렇게 말한 엄마가 작은 셋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보다 너를 더 사랑해.

   나보다 너를 더 사랑해… 엄마의 말은 어린 작은 셋째의 가슴에 살며시 스며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말이 작은 셋째의 심장 가까이에 박혀 있을 줄은. 영원히 박혀서 사는 게 버거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한다는 걸. 작은 셋째는 또 물었다. 엄마한텐 자식이 이렇게나 많잖아. 그 사랑은 우리 형제들 수만큼 나눠지는 거야? 엄마는 잠깐 뜸을 들였다가 대답했다. 아니, 사랑은 나눌 수 없단다. 사랑은 화수분 같은 거야.

   화수분…. 작은 셋째는 그때 ‘화수분’이라는 말의 뜻을 정확히 몰랐지만 어쩌면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셋째는 진심을 담아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내가 크면 엄마 아빠한테 효도할 거야. 

   그럴 필요 없단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 엄마 반응은 조금 달랐다. 너 자신을 위해서 살아. 엄마는 엄마의 삶을 살면 되고, 넌 너의 삶을 살면 돼. 엄마 목소리는 단호했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라 작은 셋째는 조금 당황했던 것 같다. 

   엄마 품에 있다가, 때가 되면 새처럼 훨훨 날아가렴. 내가 가장 바라는 거란다. 작은 셋째는 괜히 어깃장을 부리고 싶어서 이렇게 투덜거렸다. 난, 새가 아닌 걸.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새가 아니어도 날 수 있어.

   새처럼 훨훨 날아가렴…. 

   엄마, 제 이름은 ‘벽을 타는’이에요.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막 떠오른 해는 도시에서 제일 높은 라라타워 꼭대기를 가장 먼저 비추었다. 그리고 작은 셋째의 이마와 눈두덩이, 콧등과 입, 목에 걸린 루돌프의 목걸이를 지나 네 다리까지 골고루 어루만져 주었다. 작은 셋째의 몸에 따뜻한 기운이 퍼졌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졸음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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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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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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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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