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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탕국이 끓는 동안」외 6편

  • 작성일 2023-11-08
  • 조회수 419

콩탕국이 끓는 동안

박소이


김치 썰어 놓았나

물이 끓는다꼬

얼러 날콩가루를 풀어 넣구

불 좀 줄그코

콩물이 푸르르 넘치기 전에 김치 넣었제

싱미*에 따라 김칫국물도 넣든동

순두부 매로 몽글몽글해지믄

찬물 휘 두르고

콩탕콩탕 끓어오르거등

불 끄구

할 것도 없는 걸

뭐 어렵다꼬

맨날 묻는동 몰따


콩탕국 끓일 때마다

외할머니 목소리 전화기로 들려오고


콩탕콩탕 끓인 국

국자로 뜨고 있는 엄마를 보며


식탁에 앉아

콩닥콩닥

기다리는 고소한 콩탕국


* 싱미 : 식미(食味). 입맛의 경상도 사투리.




뜨개질



심심한데

목도리나 떠 볼까


한 단

한 단

떠 올라가다 보니

폭이 너무 넓잖아


그럼,

가방으로 뜨지 뭐


뜨다 보니

쿨렁쿨렁 늘어져

가방은 안 되겠어


풀까

말까


그냥

떠 볼래


한 코

한 코

손 가는 대로 떴더니


좀 재밌는걸


눈사람에게 씌워 주면 멋질

모자가 될 줄이야






그림자



노란 금계국 줄지어 핀 길을 걷다가

발을 멈췄어


꽃 그림자를 처음 봤거든


꽃들이

제 그림자를 빤히 보고 있는 거야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한참 바라보다가


꽃 그림자를 보고 있는

내 그림자도 봤어


오래오래

그림자를 보았어






구름 학교



오늘

학생들이 정신을 쏙 빼놓았어


파도처럼 몰려다니다가

새털처럼 날아다니다가

운동장 가득 목화솜을 풀어 놓더니

갑자기 잔뜩 찌푸려

톡 건드리기만 해도 울 것 같더라고


아침엔

어디서 수만 마리 양 떼를 몰고 오더니


오후엔

물고기 비늘을 벗겨 놓아

비린내가 진동했지


마음이 붕 터

도무지 배울 생각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어


수업 시간에도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해






제일방앗간 은행나무



샛노랗게 물들어

멀리서도 한눈에 보여


방앗간 들마루에도

파지 싣고 가는 할아버지 손수레에도

노랑노랑 나비 떼가 내려앉았어


방앗간에 참깨를 맡겨 놓고

은행잎이 노랗게 덮인 가로수 길

엄마 손 잡고 걸었지


노란 은행잎이 엄마 머리에 떨어져

핀처럼 꽂혔어


참기름을 찾아서 집으로 오는 길

온통 노오래


긴 긴 겨울

참기름 냄새만 맡아도

제일방앗간 은행나무 떠오를 거야






구슬 램프



구슬 램프 안에 고래 한 마리 살고 있어


깜깜한 밤,

불을 켜면

작은 구슬에서 불빛이 새어 나와


내 방은 해가 지는 바다 같아


지난여름,

엄마와 함께 본 밤바다가 생각나


힘차게 바다를 누비는 고래

등에 얼른 올라탔어


엄마가

세상에서 젤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던

지중해 몰타 섬으로 가


엄마가 거기 있을 테니까






돌돌 핫도그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날


시장 안 분식점으로 가


“정우 왔구나!”


분식점 이모가 반겨 주는 말,

와락 안기고 싶지


반죽을 두텁게

돌돌 말아

튀겨준 핫도그

한 입 베어 물고

허기진 마음 빵빵하게 채우고

돌아오는 길


반짝!


골목 끝

불 켜진 내 방


아빠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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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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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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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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