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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케이크」외 6편

  • 작성일 2023-11-10
  • 조회수 648

토끼 케이크

히섶


웅크려

식빵 굽는 고양이처럼 


발 모으고 

빵 굽는 흰토끼

기다란 초 

두 개 꽂힌

생크림 케이크


다가가

후우- 불면 안 돼


깡충깡충 

달아날 테니.






청개구리와 손잡기



지독스레 말 안 듣는

청개구리 같은 동생에게

누나가 말한다.


우리 놀이터 가서 소꿉놀이할까?

- 아니, 운동장 가서 공놀이할 거야.


그럼 공놀이하고 그네 타자!

- 아니, 공놀이하고 시소 탈 건데?


그래, 그네 타지 말고 시소 타자.

- 아니, 나 시소 안 타고 그네 탈래.


좋아! 그럼 운동장까지 각자 뛰어갈까?

- 아니, 나는 누나 손잡고 걸어갈 거야!


청개구리와 손잡은

누나가 웃는다. 






제2의 로봇태권V 개발 본부



볼트 발견! 

너트 발견!(땅콩 말고)

볼펜 스프링 발견!

짝지가 버린 머리핀 발견!

찌그러진 냄비 발견!

태워 먹은 국자 발견!

낡은 기타 줄 발견!

부러진 안경테 발견!

열쇠 발견! 알전구 발견! 

버려진 수도꼭지 발견!

텔레비전 안테나 발견!


수많은 부품들을 

       발견!

발견!

             발견!


이제 조립만 하면,

세상을 구할 수 있겠지?






낯선 동네



코스모스 가는 이파리가

팔을 간질이는 좁은 길

낯선 이가 낯선 동네로 들어선다

쌀농사 짓는 메뚜기들이

폴폴 뛰며 마중한다


맞은편에서 저벅저벅 걸어오던

백발이 다 된 진돗개 한 마리

낯선 이를 보고 우뚝 멈춰 서는데 


메뚜기들 황급히 논으로 달아나고

두꺼비 한 마리 길가로 나와

몸을 납작 엎드리는 걸 보고

낯선 이도 허리 숙여 인사한다.


혀가 쭉 나온 백구 어르신 왈,

“왈 왈왈 왈왈!" 잠시 눈을 흘기더니

코를 켕 풀고 가던 길 가신다. 






헝클어진 머리칼



자고 일어나 부스스한

헝클어진 머리를 보면

괜히 웃음이 나와

쓰다듬어 주고 싶지 


아니, 정말은

더 마구 헝클고만 싶어


아마도 헝클어진 머리칼은

조금 더 헝클어져도 괜찮을 거야

머리칼 깊숙이 손을 넣어 

마구 헝클여도 좋아할 거야


헝클어진 그대로

푸식 푸식 푸시시

웃고 말겠지


바보 같은 너의

헝클어진 머리칼은.






수다쟁이들



청각 장애를 가진

어른 넷이 모여 떠든다 

수다 떠는 아이들보다 더 

시끄럽게 떠든다


푸르락누르락하는 얼굴

들썩거리는 몸짓으로

이리저리 휘저어대는 

손짓으로 떠든다  


보기만 해도 왁자지껄 

못 말리는 수다쟁이들이

소리 없이 떠든다


너무 시끄럽다.






얼음 차며 간다



집으로 가는 길

주먹만 한 얼음덩이 하나 골라

발로 차며 간다


집 앞까지 얼음을 몰고 가면

소원 하나 이루어지는 거다

단, 손을 쓰면 반칙!


발로 살살 차며 가는데

얼음은 잘도 미끄러진다

모서리가 깎이고 녹아

데구루루 잘도 굴러간다


얼음은 어느 집 마당으로 굴러가고

자동차 밑으로도 굴러간다

사나운 개집 앞으로도 굴러가고

얕은 웅덩이에 빠지기도 한다


나는 어느 집 마당을 들락거리고

자동차 밑으로 기어들고

개가 한눈팔 사이를 기다리고

흙탕물 웅덩이로 뛰어들고 만다


이제 거의 다 왔는데

저기 우리 집이 보이는데


톡, 톡, 톡, 툭-

데구루루루루, 쏙!


나는 얼음이 빠진 하수구 구멍을 

한참 들여다봤다


나는 오늘, 

고기반찬이 먹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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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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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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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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