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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몽 찾으러 왔어요

  • 작성일 2023-11-10
  • 조회수 619

태몽 찾으러 왔어요

변선아


1. 태몽 때문이야

 

   “4교시는 체육이니까, 수업 종 울리면 축구 골대 앞에 모여 있어요.”

   “네.”

   3학년 1반 아이들은 신이 나서 운동장으로 나갔어요. 성운이는 힐끔 선생님을 봤지요. 성운이와 눈이 마주친 선생님이 활짝 웃었어요. 교실에 남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요.

   ‘야호!’

   그제야 성운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나갔어요. 마음은 쌩하고 운동장으로 달려나갔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어갔죠.

   성운이는 소아 천식을 앓고 있어요. 절대로 뛰면 안 돼요. 엄마는 새 학년이 될 때마다 담임선생님께 전화해서 성운이가 뛰지 않도록 부탁해요. 운동장에서 하는 수업이 있을 때는 성운이 혼자 교실에 남아 책을 읽게 해달라고 해요. 그래서 몸을 크게 움직이는 활동이 있는 수업에는 미리 선생님이 말했어요.

   “성운이는 교실에 남아 있을까?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도 좋아.”

   이뿐인가요? 급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도 먹지 못해요. 천식에 좋지 않으니까요. 의사 선생님은 가끔씩 한두 번 먹는 건 괜찮다고 하지만, 엄마는 ‘절대 금지’라고 했어요.

   어쨌든 지금, 선생님이 그냥 웃기만 했잖아요? 체육 수업에 참여해도 좋다는 말일 거예요. 그동안 교실에 혼자 남아서 책을 읽을 때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라요. 오늘은 친구들하고 같이 운동할 거예요. 조심히 달리면 괜찮겠죠? 성운이에게 소원이 있다면 다른 친구들처럼 맘껏 뛰어보는 거예요. 쉬는 시간에 잡기 놀이도 하고 축구도 하고 싶어요.

   수업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축구 골대 앞에 모였어요. 물론 성운이도 당당하게 서 있었죠. 곧 선생님이 와서 말했어요.

   “오늘은 축구를 할 거예요. 성운이는 벤치에 앉아 있을까?”

   “네? 저도 축구 할 건데요?”

   성운이가 실망하며 말했어요.

   “안 돼. 성운이는 뛰면 안 되니까 친구들 수업하는 걸 지켜보자.”

   “휴.”

   그럼 그렇지요. 성운이는 긴 한숨과 함께 어깨를 축 떨어뜨리며 벤치로 갔어요. 

   “살살이 공성운, 넌 앉아서 공 차는 거나 구경해.”

   민찬이가 성운이 뒤에 대고 소리치고는 혀를 쑥 내밀었어요. 성운이는 민찬이가 얄미웠지요. 

   민찬이는 2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어요. ‘살살이’란 별명도 민찬이가 지어준 거예요. 천식 때문에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니는 걸 놀리는 거죠.

   민찬이와 아이들이 공을 굴리며 운동장을 뛰어다녀요. 그 모습을 보는 성운이 마음은 소금에 절인 배추 같아요.

   ‘나도 뛰고 싶다.’

   생각할수록 속상했어요. 왜 자기만 천식이 있어서 뛰지 못하는 건지 알 수 없었죠. 

   지루했던 체육 시간이 끝나고 점심시간이에요.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면서 밥을 많이 먹었어요. 벤치에 가만히 앉아만 있던 성운이는 배가 하나도 고프지 않았지요. 성운이는 시금치를 집어 먹으며 민찬이를 봤어요. 민찬이는 돈가스만 먹어요. 시금치는 짝꿍 윤서 식판에 몰래 놓고요. 그걸 보자 성운이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어요. 성운이는 건강해지려고 맛없는 시금치며 오이, 토마토도 먹는데, 편식대장 민찬이는 건강하니까요. 

   “나 동생 생겼다. 엄마가 어젯밤에 태몽으로 딸기 꿈을 꾸었대.”

   후식으로 나온 딸기 맛 구슬 아이스크림을 보고 민찬이가 말했어요.

   “정말? 내 태몽도 딸기인데. 그런데 넌 태몽이 뭐야?”

   윤서가 반가워하며 민찬이에게 물었어요.

   “호랑이.”

   “와, 너하고 어울린다.”

   그때 민찬이 맞은편에 앉은 은준이가 끼어들었어요.

   “내 태몽은 고래야.”

   그러자 갑자기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자기 태몽을 말하기 시작했어요. 수빈이는 돼지, 현중이는 수박, 가율이는 뱀이래요. 모두 자랑스러운 표정이었죠. 성운이는 속으로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어요. 성운이는 태몽이 없거든요.


   성운이가 태몽이 없다는 걸 처음 알 게 된 건 유치원에 다닐 때였어요.

   선생님이 삼신할머니 그림책을 읽어주고 말했어요.

   “태몽은 아이가 엄마 아빠에게 찾아올 거라고 삼신할머니가 미리 알려주는 꿈이에요. 자기 태몽은 무엇인지 집에 가서 엄마 아빠께 물어보도록 해요.”

   성운이는 집에 가자마자 엄마한테 물었지요. 

   “엄마, 내 태몽은 뭐야?”

   “태몽? 넌 태몽 없이 엄마한테 왔어.”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성운이는 실망했어요. 뭔가 특별한 태몽이길 기대했거든요. 다음 날, 성운이는 친구들이 자기 태몽에 관해 얘기하는 걸 듣고 더 크게 실망했어요. 모두 태몽이 있는 거예요. 성운이는 자기만 태몽을 주지 않은 삼신할머니가 엉터리 할머니 같았어요. 혹시 자기가 미워서 주지 않았나 싶기도 했어요.


   그날 이후 성운이는 태몽 얘기만 나오면 속상하고 심술이 났어요. 지금도 그래요. 아이들은 축구를 실컷 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태몽을 자랑하잖아요? 성운이는 축구도 하지 못했고 아이스크림도 못 먹고 태몽도 없는데 말이죠.

   “살살이 공성운, 네 태몽은 살살 기어 다니는 송충이냐?”

   갑자기 민찬이가 물었어요. 성운이는 기분이 팍 상했죠. 

   “아니야. 내 태몽은 치타야.”

   얼결에 나온 말이지만, 성운이는 치타 태몽이 마음에 들었어요. 멋졌죠. 성운이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치타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동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정말로? 태몽이 치타인데 넌 왜 못 달려? 혹시 아픈 치타였나?”

   민찬이 말에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어요. 성운이는 얼굴이 빨개졌어요. 민찬이가 얄미워 죽겠어요.

   “너 아이스크림 먹으면 안 되지? 내가 대신 먹어줄게.”

   자기 아이스크림을 모두 먹은 민찬이가 성운이 식판에 있는 구술 아이스크림을 보고 말했어요. 작년에도 급식에 아이스크림이 나오면 민찬이가 대신 먹었어요. 하지만 지금, 성운이는 그러라고 하기 싫어요.

   “안 돼. 내가 먹을 거야.”

   성운이는 구슬 아이스크림 통을 집어 얼른 바지 주머니에 넣었어요. 

   교실로 돌아온 성운이는 주머니에서 아이스크림 통을 꺼냈어요. 뚜껑을 열어보니 아이스크림이 녹아 있었어요. 

   ‘쳇, 아파서 아이스크림도 못 먹고 달리기도 못 하고 태몽도 없어.’

   성운이는 왜 자기만 천식을 앓는지 알 수 없었어요. 친구들하고 뭐가 달라서 자기만 아픈 걸까, 하고 아이스크림을 바라보며 생각했어요. 아이스크림이 거의 다 녹을 때쯤,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어요.

   ‘설마 태몽이 없어서?’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아이들과의 차이점은 태몽이 있고 없는 것, 그것뿐인 것 같았어요. 

   ‘그래. 태몽이 없어서 내가 아픈 거야.’

   한 번 그렇다고 생각하자, 성운이는 자기 생각이 천 번 만 번 옳은 것 같았어요. 태몽만 있으면 맘껏 뛰고 축구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요. 초콜릿, 아이스크림도 실컷 먹고요. 

   ‘이게 다 태몽 때문이야. 태몽이 없어서 아픈 거라고. 지금이라도 태몽을 가져야겠어. 하지만 어떻게?’

   성운이는 답답했어요. 하지만 곧 반짝하고 좋은 생각이 났어요.

   ‘태몽은 삼신할머니가 아이가 간다고 미리 알려주는 꿈이랬잖아? 그러니까 삼신할머니가 태몽을 갖고 있다가 엄마한테 주는 거야. 태몽을 가지려면 삼신할머니를 만나야 해.’ 

   그러면서 생일날마다 할머니하고 엄마가 삼신할머니께 드릴 밥상을 차리던 게 떠올랐어요. 할머니와 엄마는 밥과 미역국, 떡을 차리고 “우리 성운이가 무탈하게 자랄 수 있도록 살펴주세요.”하고 소원을 빌 듯이 빌었지요.

   ‘그래. 내 생일에 삼신할머니가 오는 거야. 그래서 상을 차리고 소원을 비는 거지. 돌아오는 내 생일에 삼신할머니를 만나서 태몽을 달라고 해야겠다.’

   성운이는 신이 났어요. 삼신할머니를 만나서 태몽을 달라고 하면 태몽을 주겠죠? 그러면 천식도 싹, 낫고 민찬이보다 더 잘 뛸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또 다른 생각이 삐쭉 올라왔어요.

   ‘하지만 삼신할머니가 정말 있을까?’

   삼신할머니는 그림책에서나 봤지 실제로 만났다는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당연히 있지. 삼신할머니가 오니까 엄마하고 할머니가 생일마다 삼신상을 차리지.’

   ‘그렇지만······.’

   ‘뭐가 그렇지만, 이야. 엄마가 미역국 끓이면서 삼신할머니 드린다고 했었잖아.’

   ‘그래도 미역국을 먹는 삼신할머니를 한 번도 못 봤는데?’

   ‘그건 늦잠을 자니까 그렇지. 새벽에 와서 먹고 가셨겠지.’

   ‘그럴까?’

   마음속에서 두 명의 성운이가 싸움을 시작했어요. 삼신할머니가 있을 거라고 믿는 성운이와 없을 거로 생각하는 성운이가요. 한동안 실랑이를 하던 성운이 마음이 해결책을 내놓았어요. 

   ‘곧 내 생일이잖아? 그때 삼신할머니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면 되겠다.’

   성운이는 생일날에 삼신할머니를 기다릴 거예요. 삼신할머니가 있다면 만날 수 있겠죠? 그러면 태몽을 달라고 하면 돼요. 삼신할머니가 없다면······. 그건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2. 태몽 주세요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생일날이에요. 성운이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갔어요. 집에는 사촌 누나가 와 있었어요. 누나는 큰이모 딸로 이름은 김하늘이고 체육대학교에 다녀요. 누나는 체육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래요. 성운이는 달리기도 축구도 수영도 잘 하는 하늘이 누나가 부러워요. 그리고 많이 좋아해요. 

   “누나, 엄마는? 할머니도 안 계시네.”

   “응. 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병원에 갔어. 내일까지 누나하고 있어야 해.”

   “할머니가?”

   성운이가 놀라며 되물었어요. 

   “할머니가 걱정되는구나. 입원해서 검사 몇 가지만 하고 내일 오신댔어.”

   하늘이 누나는 할머니를 걱정하는 성운이가 기특했어요. 성운이는 할머니도 할머니지만 내일 삼신상을 차려야 하는데 엄마도 할머니도 없으니 걱정이었죠. 아빠도 출장 중이라 집에 안 계시고요.

   “누나, 그런데 누나는 삼신상 차릴 줄 알아?”

   “삼신상?”

   성운이는 누나 표정을 보고 역시나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휴, 걱정 가득한 한숨이 절로 나왔어요.

   “숨쉬기 힘들어?”

   하늘이 누나가 성운이를 살피며 물었어요. 

   “아니야.”

   성운이는 방으로 들어갔어요. 내일 삼신할머니가 올 텐데, 그러려면 삼신상을 차려야 할 텐데, 엄마도 할머니도 없이 어떻게 삼신상을 차려야 할지 고민됐어요.

   다음날, 성운이는 일어나자마자 커튼을 활짝 걷었어요. 아직 밖이 어두웠어요. 

   ‘그 방법밖에 없어.’

   성운이는 어제저녁, 하늘이 누나 몰래 초콜릿을 사 왔어요. 삼신상에 올릴 밥과 미역국 대신 초콜릿을 준비한 거예요. 

   성운이는 접시 가득 초콜릿을 담아 탁자 위에 올리고 삼신할머니를 기다렸어요.

   “하나만 먹을까?”

   눈앞에 초콜릿을 보니까 딱 하나만 먹고 싶었어요. 더구나 지금은 못 먹게 하는 사람도 없잖아요? 성운이는 초콜릿 하나를 집어 조심히 껍질을 깠어요. 엄마를 속이는 것 같아 살짝 죄책감이 들었지만 성운이는 자기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공성운, 열 살 생일을 축하해.”

   꾸르륵. 막 초콜릿을 입안에 넣으려는데 배가 살살 아팠어요. 성운이는 다시 초콜릿을 껍질에 싸서 바지 주머니에 넣고 급히 화장실로 갔어요.

   볼일을 보고 나오니까 거실 테이블에서 누군가 초콜릿을 먹고 있었어요. 한복을 입고 머리를 쪽진 모습이 그림책에서 봤던 삼신할머니하고 똑같았어요. 

   ‘삼신할머니인가?’

   성운이는 살금살금 다가가 조용히 물었어요.

   “삼신할머니세요?”

   “에구머니나.”

   작게 말했는데 할머니가 깜짝 놀라며 엉덩방아를 찧었어요.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성운이를 올려봤지요. 할머니의 입과 손에 초콜릿이 잔뜩 묻어있었어요.

   할머니는 벌떡 일어나더니 대답은 안 하고 아주 난처한 표정을 지었어요. 그러고는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혼잣말했지요.

   “이를 어쩌나? 들키고 말았네. 그런데 이게 뭔데 이렇게 맛있는 거야?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맛이 있어. 아, 내 정신 좀 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이제 어떡하지? 모른 척 사라질 수도 없고.” 

   할머니를 따라서 성운이의 고개가 이쪽저쪽으로 움직였지요. 성운이는 틀림없이 삼신할머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거실 끝에서 뒤돌아서는 할머니 앞으로 다가가 다시 물었지요.

   “삼신할머니가 맞죠? 진짜로 삼신할머니시죠?”

   할머니가 우뚝 멈춰섰어요. 그러곤 무릎을 꿇고 앉아 성운이와 눈높이를 맞추고는 말했어요.

   “그래, 내가 삼신할머니다.”

   “진짜죠?”

   성운이는 놀라우면서도 기쁜 마음에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물었어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죠. 성운이는 혹시 꿈인가 하고 볼을 꼬집어봤어요. 아파요. 꿈이 아니에요. 정말로 삼신할머니예요. 

   성운이는 먼저 물휴지를 한 장 뽑아 삼신할머니께 줬어요. 

   “할머니, 입부터 닦으세요.”

   냉큼 물휴지를 받아든 삼신할머니는 입 주변을 닦으며 물었어요.

   “그런데 이게 뭐냐? 뭔데 이렇게 맛있는 거야?”

   “초콜릿이에요.”

   “초오코올리이잇?”

   삼신할머니는 천천히 소리 내어 말하더니 성운이에게 직접 준비했냐고 물었어요. 성운이는 할머니하고 엄마가 삼신상을 못 차린 이유를 설명하고 직접 초콜릿을 준비했다고 말했어요. 

   “그래? 아주 특별한 삼신상이로구나. 맛있어. 정말 맛있어.”

   삼신할머니는 연신 맛있다며 입맛을 다셨어요. 아주 행복한 표정을 하고서요. 성운이는 삼신할머니가 기분이 좋을 때 태몽을 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엄마도 기분이 좋을 때면 게임을 10분씩 더 시켜주니까요.

   “삼신할머니, 제가 며칠 전부터 할머니를 손꼽아 기다렸어요.”

   “그래? 왜?”

   “태몽 때문에요. 태몽 주세요.”

   성운이는 태몽이 물건이라도 되는 듯 두 손을 모아 내밀었어요.

   “뭐? 태몽? 태몽을 달라고?”

   “네, 제가 태몽이 없어서 아파요. 그래서 뛰지도 못하고 그 맛있는 초콜릿도 못 먹어요.”    “네가 태몽이 없어서 아파?”

   삼신할머니는 기가 막혔어요.

   “네, 할머니가 아이를 보내주면서 태몽을 주시죠? 그럼 우리 엄마한테도 제 태몽을 주셨을 거잖아요. 그런데 엄마 아빠는 제 태몽이 없대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태몽을 안 준 거예요. 그렇죠?”

   “뭐야?”

   “깜빡하셨어요? 아니면 제가 미워서 안 준 거예요?”

   “······.”

   “정말 그런 거예요?”

   삼신할머니는 두 눈만 껌벅거렸어요. 성운이는 정말로 삼신할머니가 자기를 미워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생일마다 아프지 않게 해달라는 할머니와 엄마 소원도 들어주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런 생각이 드니까 슬퍼졌어요.

   “제가 왜 미운 건데요?”

   성운이가 울먹이며 물었어요. 

   삼신할머니는 난처했어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해야 성운이가 오해하고 있는 것을 풀어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요.

   “성운아, 태몽은 내가 안 준 게 아니야. 그리고 네가 아픈 건 태몽이 없어서도 아니고. 또 나는 네가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늘 마음을 쓰고 있단다.”

   삼신할머니가 초콜릿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어요. 하지만 성운이는 삼신할머니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니잖아요. 태몽이 있는 다른 아이들은 건강한걸요?”

   “휴.”

   “할머니가 깜빡 잊고 제 태몽을 안 줬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을게요.” 

   “에효.”

   “제가 정말 미운 게 아니면 지금이라도 태몽을 주세요.”

   “휴우.”

   삼신할머니는 한숨만 나왔어요. 사실을 말해도 믿지 않으니 난처했지요. 삼신할머니는 성운이의 눈길을 피해 창밖을 봤어요. 저 멀리 산 위로 해가 봉긋 올라오고 있었어요.

   “아이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삼신할머니는 성운이에게 성큼성큼 다가갔어요.

   “나는 정말로 네 태몽을 갖고 있지 않아. 그러니 줄 게 없단다. 네가 아픈 건 나도 마음이 아프지만, 그것도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다.”

   “아니잖아요. 왜 자꾸 거짓말하세요.”

   성운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어요. 삼신할머니는 성운이가 마음에 쓰였지만, 더는 인간 세상에 있을 수 없었어요. 

   “정말 미안하다만, 이제 진짜로 가봐야 해. 시간이 없어.”

   그러고는 홱하고 방향을 틀어 성큼성큼 베란다 쪽으로 달려갔어요.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고 오른쪽 발을 베란다 밖으로 내밀었지요. 성운이는 삼신할머니가 이대로 가버릴 것 같았어요. 성운이는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뛰어 삼신할머니의 옷자락을 덥석 잡았지요.

   거실에는 삼신할머니가 먹고 버린 초콜릿 비닐봉지만 굴러다녔어요. 




3. 태몽 나라


   삼신할머니는 막 떠오르는 해를 통과했어요. 그 순간 모든 빛이 사라지고 바람 한 점 불지 않았어요. 

   “초오코올리이잇 때문인가? 몸이 무겁네.”

   잠시 후 삼신할머니가 구름 땅 위로 내려섰어요.

   “콜록콜록 코오올록.”

   성운이가 구름 땅 위를 구르면서 심하게 기침을 했어요.

   “이게 뭐야? 너, 네가 여기를······ 어떻게?”

   삼신할머니는 당황스러웠어요. 

   “이런, 그렇게 얘기했는데 따라오다니. 아이고 머리야. 이를 어쩌나? 내가 인간을 데리고 오다니.”

   삼신할머니는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갔다 했어요.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요. 삼신할머니의 한숨 한 번에 구름 땅이 연기처럼 폴폴 피어올랐지요. 

   성운이는 점점 숨이 가빠졌어요. 삼신할머니를 잡으려고 갑자기 뛴 데다가 하늘을 날면서 숨쉬기가 힘들어진 거예요.

   “할··· 할머니, 흡··· 흡입기.”

   성운이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간신히 말했어요. 삼신할머니는 서둘러 성운이의 바지 주머니에서 흡입기를 꺼내 줬어요. 성운이는 흡입기를 입에 대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어요. 

   “크으 헉.”

   성운이는 조금씩 숨을 고르게 쉬었어요. 삼신할머니는 옷소매로 성운이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줬지요.

   “이제 괜찮아졌니?”

   “네.”

   그제야 삼신할머니는 졸였던 마음을 풀었어요. 

   “할머니, 제발 부탁드려요. 저한테도 태몽을 주세요. 저도 아프지 않고 뛰고 싶어요.”

   삼신할머니는 성운이가 원하는 걸 들어줄 순 없지만, 성운이를 위해 무언가 해주고 싶었어요. 삼신할머니는 눈을 감고 한동안 생각하고 생각했지요.

   “이미 여기까지 따라왔으니 어쩔 수 없지. 그래, 좋다. 네 태몽을 직접 찾아보렴.”

   “정말요?”

   성운이는 기쁨에 두 손을 모으고 삼신할머니를 바라봤어요.

   “정말 찾아가도 되죠? 그러면 알려주세요. 제 태몽을 어디에 두셨어요?”

   “직접 찾아가라고 했잖니.”

   성운이는 삼신할머니가 보물찾기를 하자고 하는 것 같았어요. 

   “서둘러야 할 거야. 해가 지기 전에는 돌아가야 하니까. 그때를 놓치면 영영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단다.”

   삼신할머니는 해가 인간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라고 했어요. 

   “이곳은 해가 지고 있으니까 인간 세상에는 해가 뜨고 있을 거다. 그러니 해가 모두 사라져 문이 닫히기 전에 네 태몽을 찾으렴.”

   성운이는 지는 해를 바라봤어요. 해를 사람의 얼굴이라고 한다면 콧방울까지 사라지고 없었어요. 

   “시간이 얼마 없네요.”

   “그러니 서둘러야겠지? 명심하렴. 해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야.”

   “네.”

   “참, 이곳에서는 인간 세상에 관한 얘기는 절대로 하면 안 된다.”

   “왜요?”

   “이곳은 인간이 오면 안 되는 곳이니까. 네가 인간인 걸 알면 평생 여기서 살게 될 거다.”

   삼신할머니가 단단히 일렀어요. 성운이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사방을 둘러봤어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지요. 온통 앞이 뿌옇기만 했어요.

   “그런데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요? 길이 없어요.”

   “네 마음이 끌리는 곳으로 가렴. 네가 가는 길이, 길이 될 거야.”

   삼신할머니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하고 뒤돌아서 가려 했어요.

   “할머니, 잠깐만요!”

   성운이는 자기가 먹으려고 했던 초콜릿을 삼신할머니께 드렸어요. 

   “초오코오올리이잇이 아니냐?”

   “네, 선물이에요. 저를 이곳으로 데려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성운이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어요. 삼신할머니가 초콜릿을 받아들더니 말했어요.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나도 너한테 줄 선물이 있단다.”

   “선물요?”

   성운이는 내심 기대했어요. 어쩌면 바로 태몽을 줄지 모르잖아요? 그런데 삼신할머니는 선물은 안주고 엉덩이를 찰싹 때렸어요.

   “아야.”

   성운이는 얼얼한 엉덩이를 손으로 비비며 삼신할머니를 봤어요. 순간 성운이는 깜짝 놀랐어요. 어린아이로 변해 있었거든요. 

   “으악! 이게 뭐예요?”

   “이곳에서 편하게 돌아다니려면 이 모습이 좋을 거야.”

   삼신할머니는 주위 구름을 모아 뚝딱 옷을 만들어줬어요.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서둘러 태몽을 찾아보아라.”

   “하지만, 흡입기는 가지고 다녀야 하는데··· 이 옷은 주머니도 없고······.”

   “이곳에서는 필요 없을 게야. 그리고 네가 입고 온 옷은 내가 맡아 두마. 그럼 행운을 빈다.”

   삼신할머니는 이렇게만 말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어요.




4. 부모님 만나기


   성운이는 툴툴거리며 구름 땅 위를 걸었어요.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요. 흡입기도 없어 불안했어요.

   성운이는 천천히 걸었어요. 자칫 숨이 가빠지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해가 지기 전에 태몽을 찾으려면 서둘러야 할 것도 같았어요. 

   성운이는 급한 마음을 안고 총총총 걸었어요. 사방은 온통 뿌예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어요. 바람도 한 점 불지 않았고요. 누구라도 만나 길을 묻고 싶은데 하얀 세상에는 성운이 혼자였어요.

   한참을 걷다 보니 서서히 안개가 걷히고 커다란 구름 성이 나타났어요. 성운이와 같은 모습을 한 아이 둘이 성문을 지키고 있었지요.

   “빨리 오십시오.”

   “곧 문이 닫힙니다.”

   성문 앞에 선 아이 둘이 외쳤어요. 성운이는 조금 서둘러 뛰어가 성문 안으로 들어갔어요. 

   성안 넓은 마당에는 아이들이 가득했어요.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요. 그때 마당 한가운데에 커다란 회오리가 일었어요. 아이들이 우르르 회오리 주변으로 몰려갔어요.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첫 번째 순서, 부모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어디에선가 울려 퍼진 목소리에 아이들은 회오리를 중심으로 커다란 원을 만들었어요. 성운이도 아이들 틈에 끼어들었지요. 잠시 뒤, 한 아이가 소용돌이 앞으로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갔어요. 아이는 회오리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어요. 그러자 구름 회오리가 알록달록한 색으로 바뀌었지요. 아이는 무언가를 찾는 듯이 한동안 팔을 위로 아래로 움직이고는 손을 뺐어요. 아이의 손에는 초록색 실이 쥐여 있었고 회오리 색도 초록빛으로 변했어요. 초록빛 회오리에는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초록색 실을 하나씩 잡고 뱅글뱅글 돌며 춤을 추고 있었어요. 두 분의 표정은 밝고 행복해 보였어요. 아이는 초록색 실을 잡고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따라 회오리 주변을 크게 열 바퀴 돌았어요.

   “부모님이 결정됐습니다. 축하합니다.”

   다시 들린 목소리에 아이는 멈춰 서 부모님을 바라봤어요. 그리고 두 손을 가슴에 올렸어요. 들고 있던 초록색 실이 아이의 몸속으로 들어가더니 곧 심장이 콩콩 뛰기 시작했어요. 

   회오리 주변에 모인 아이들은 조금 전 아이와 같이 회오리 속에서 실을 잡고 부모님을 만났어요. 똑같은 실은 하나도 없었어요. 색도 굵기도 모두 달랐지요.

   “더 지원자가 없습니까?”

   아무도 앞으로 나서지 않자, 회오리는 서서히 사라졌어요. 

   성문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두 갈래 길로 갈라졌어요. 가만히 보니 엄마 아빠를 정한 아이들과 부모님을 정하지 않은 아이들이 양쪽으로 갈라져 가고 있었어요. 부모님을 정한 아이들의 몸에서는 아이들이 뽑은 실 색깔과 같은 색의 빛이 심장으로부터 은은하게 뿜어져 나왔어요. 성운이는 부모님을 정한 아이들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갔어요.

   성운이는 걸어가면서 생각했어요.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서 부모님을 만나는 시간이라고 했었지? 그러면 저 아이들이 인간 세상에 태어나는 아이인가? 그렇다면 나도 저렇게 엄마 아빠를 만난 걸까?’

   성운이는 분명히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자기는 어떤 색깔의 실을 뽑고 엄마 아빠와 춤을 추었을지 궁금했지요. 그러면서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졌어요. 빨리 태몽을 찾아서 엄마 아빠한테 달려가고 싶었어요. 

   태몽이 생겨 건강해지면 가장 먼저 아빠하고 축구부터 할 거예요. 엄마하고도 신나게 달리고요. 민찬이보다 축구도 더 잘 할 거예요. 성운이는 건강해진 모습을 상상했어요. 생각만으로도 행복했지요.

 



5. 도둑이야


   아이들을 따라간 구름 길 끝에 숲길이 보였어요. 숲으로 들어선 성운이는 놀라운 풍경에 넋을 잃었어요.

   발아래 풀들과 꽃들이 별처럼 반짝였어요. 바람이 불 때마다 솜사탕 같은 달콤한 향에 코끝이 간지러웠지요. 꽃과 풀 사이로는 크고 작은 동물들이 뛰어다녔고 하늘에는 오색찬란한 새들이 날아다녔어요.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꽃에 물을 주고 있었어요. 커다란 수박을 탱탱볼처럼 튕기는 아이도 있었고 악어를 강아지처럼 다루는 아이도 있었지요.

   이곳에 있는 모든 것에서는 빛이 났어요. 태양처럼 강렬한 빛을 내기도 하고 달빛처럼 은은한 빛을 뿜기도 했어요. 화려한 형광색 빛을 내는가 하면 낡은 가로등처럼 희미하게 깜빡거리기도 했지요.

   “우아, 신기하다.”

   성운이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어요. 고개는 사방을 둘러 보느라 바빴지요. 

   그때 어디선가 아주 특별한 향기가 바람을 타고 왔어요. 처음 맡아보는 향기였어요. 성운이는 끌리듯 향기가 나는 곳으로 걸어갔어요. 그곳에는 커다란 장미꽃이 있었어요. 꽃잎 하나하나에는 아름다운 그림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어요. 

   성운이는 꽃송이에 얼굴을 묻고 향기를 맡았어요. 꽃송이가 얼마나 큰지 성운이 얼굴이 꽃송이에 묻혀 보이지 않았지요. 

   “음. 향기로워.”

   성운이는 엄마 생각이 났어요. 장미꽃은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에요. 성운이는 장미꽃을 엄마에게 선물해주고 싶었어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었지요. 

   “안 돼!”

   갑자기 나타난 아이가 성운이를 밀었어요. 성운이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어요. 

   “괜찮아?” 

   아이가 장미꽃을 이리저리 살폈어요. ‘괜찮냐’는 말은 성운이가 아니라 꽃을 보고 한 말이었어요. 

   “괜찮냐는 말은 나한테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성운이가 따졌어요.

   “너, 무슨 짓이야!”

   그러자 아이가 화를 냈지요.

   “내가 뭘?”

   성운이도 지지 않고 맞섰어요.

   “꽃을 꺾으려고 했잖아.”

   아이는 성운이를 노려봤어요. 성운이는 그제야 꽃을 꺾으려고 했던 게 미안했어요. 조금 전에는 장미꽃이 예뻐서 엄마한테 주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그래도 그렇지, 성운이는 자기를 밀쳐서 다치게 하고 꽃만 살피는 아이가 못마땅했어요. 먼저 사과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당하게 말했어요.

   “우리 엄마한테 선물하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랬어. 우리 엄마가 장미꽃을 진짜 좋아하거든.”

   “뭐라고?”

   아이가 성운이를 매섭게 노려봤어요. 성운이도 지지 않고 아이를 째려봤지요. 순간 아이가 큰소리로 외쳤어요.

   “도둑이야! 도둑!” 

   “도둑?”

   성운이는 놀라며 뒤돌아봤어요. 주위에 몰려있는 아이들과 동물들이 모두 성운이를 노려보고 있었지요. 

   “나? 나보고 도둑이라고 한 거야?”

   아이가 손가락으로 정확히 성운이를 가리키며 다시 외쳤어요.

   “그래, 너!”

   “아니야. 도둑이라니 말도 안 돼.”

   순간, 아이들과 동물들이 한꺼번에 성운이를 향해 달려들었어요. 성운이는 순간적으로 빈틈을 비집고 잽싸게 달려 빠져나갔지요. 도둑으로 몰린 게 억울했지만, 이대로 잡히면 인간 세상에서 왔다는 게 들통날 것 같았어요. 그러면 다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겠죠?

   성운이는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달리고 달렸어요.




6. 공작


   “헉헉.”

   더는 숨이 차서 달릴 수 없었어요. 성운이는 커다란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어요. 그러곤 바위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지요. 다행히 쫓아오는 아이도 동물도 없었어요.

   “휴.”

   성운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어요. 순간 숨이 차지 않다는 걸 느꼈어요.

   “이상하다. 이 정도 달렸으면 숨 쉬가 힘든데······. 흡입기를 한 것도 아닌데······.”

   성운이는 가슴에 손을 댔어요. 콩콩콩 요동치던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었어요. 급하게 오르락내리락했던 가슴도 천천히 올라갔다 내려왔어요. 

   “아직 태몽도 찾지 못했는데 아픈 게 다 나았나?”

   성운이는 믿을 수 없으면서도 기뻤어요. 먼 거리를 뛰었는데도 숨이 차지 않다니 행복했지요. 이곳에서는 흡입기가 필요 없을 거라던 삼신할머니 말도 떠올랐어요.

   “여기서는 아무리 뛰어도 괜찮나 봐.”

   성운이는 폴짝폴짝 뛰어봤어요. 제자리 달리기도 해봤지요. 숨이 차지 않았어요. 살짝 콩닥거리기는 했지만, 가슴이 아프지 않았어요. 성운이는 이대로 집까지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늘이라도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았지요. 

   “맘껏 달릴 수 있어.”

   성운이는 바위 주변을 달려서 돌다가 벌러덩 누웠어요. 순간 가슴이 철렁했어요. 공작새 한 마리가 성운이의 머리 위를 날고 있었거든요. 달려도 숨이 차지 않아 기쁜 마음에 쫓기고 있다는 걸 깜빡 잊었지 뭐예요. 성운이는 급히 숨을 곳을 찾았지만, 하늘에서 내려 보고 있는데 숨을 곳은 없었지요. 

   “어떡하지?”

   꼼짝없이 들켰구나, 생각하는데 갑자기 하늘을 날던 공작새가 성운이 옆으로 곤두박질쳤어요. 잘못 내렸는지 한쪽 날개가 접혀 구름 땅 위를 데구루루 구르면서요. 성운이는 공작새가 다치지 않았는지 걱정돼 냉큼 달려갔어요.

   “괜찮니?”

   그러고는 공작새의 몸을 이리저리 살폈지요. 공작새가 바로 일어나 괜찮다는 듯 꽁지깃을 활짝 펼쳤어요. 부채처럼 펼쳐지는 꽁지깃이 반짝거렸어요. 

   “우아, 멋지다.”

   “조금 더 연습해야겠다. 그래도 어제보다 좋아졌어.”

   어디선가 나타난 아이가 공작새를 살피더니 성운이를 봤어요. 아이와 성운이의 눈이 딱 마주쳤지요. 성운이는 이번에는 진짜 잡혔구나, 생각하면서 변명하듯이 말했어요.

   “조금 전에는 내가 장미꽃을 훔치려고 했던 게 아니라······. 그러니까 오해가 생겨서······.”

   일단 말을 꺼냈지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그런데 아이는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어요.

   “알아. 네가 정말로 장미꽃을 꺾으려고 했겠어? 그게 어떤 꽃인데. 공작이 다쳤을까 봐 바로 달려와 준거 보니까 분명히 뭔가 오해가 있었을 것 같아.”

   성운이는 아이가 자기를 믿어주는 것 같아 고마웠어요.

   “맞아. 오해가 있었어. 난 단지 장미꽃이 멋지고 예뻐서······.”

   “그럼. 그 장미꽃은 여기 있는 아이들이 모두 부러워하잖아. 장미꽃 아이가 십 년도 넘게 애지중지 키운 태몽이니까.”

   “태몽?”

   성운이는 갑자기 나온 ‘태몽’이라는 말에 놀랐어요.

   “응, 태몽. 뭘 그렇게 놀라?”

   성운이는 흠칫했어요. 장미꽃이 태몽이라니 정말 놀라웠어요. 그러면서 공작새도 태몽인가 싶기도 했지요. 성운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물으며 확인해보기로 했어요.

   “네 태몽인 공작새도 멋지다.”

   “고마워. 엄마 아빠에게 멋지게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매일 연습 중인데 잘 안 돼.”

   “엄마 아빠한테?”

   성운이는 거듭 놀랐어요.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요. 그리고 곰곰이 생각했어요. 

   ‘장미꽃하고 공작새가 태몽이라고? 엄마 아빠한테 보여준다고? 그러면 마을에서 아이들이 돌보던 동물과 꽃들이 모두 태몽인 거야? 그렇다면 아이들이 직접 태몽을 만들고 엄마 아빠한테 주는 건가?’

   그런 것 같았어요. 아니, 그런 거예요. 마을에서 아이들과 있었던 동물과 식물은 반 친구들이 태몽이라고 자랑하던 거북이, 딸기, 수박, 고래 등등 이었으니까요.

   ‘바보, 그렇다면 내가 직접 태몽을 만들고 안 가지고 간 거야?’

   성운이는 자기 머리를 콩 쥐어박았어요. 그러자 아이가 웃으며 물었어요.

   “너 정말 재밌다. 자기 머리를 때리고. 그런데 넌 태몽이 뭐야?”

   성운이는 대답할 수 없었어요. 태몽이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민찬이한테 거짓말한 것처럼 치타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게··· 생각 중이야.”

   “아직 결정 못 했구나.”

   성운이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하긴 나도 공작으로 태몽을 정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어. 태몽을 정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야. 태몽을 만들고 돌보는 일은 더 힘들고. 그래도 태몽을 갖고 인간 세상으로 나가서 엄마 아빠를 만날 생각을 하면 행복해.”

   아이가 미소지었어요. 성운이는 아이를 따라 미소지으며 자기의 태몽을 상상해봤어요. 

   ‘내 태몽은 뭘까? 공작? 민찬이 같은 호랑이? 아니면 정말 치타일까? 아니야, 그런 것보다 더 특별했으면 좋겠어.’

   성운이는 자기 태몽이 세상에 없는 아주 특별한 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날개 달린 뱀은 어떨까? 기린처럼 목이 긴 돼지? 걸어 다니는 물고기? 말이 많은 장미꽃도 좋을 것 같아.’

   상상하다 보니 웃음이 나왔지요.

   “무슨 생각하는데 그렇게 즐겁니?”

   혼자서 웃는 성운이를 보고 아이가 물었어요.

   “태몽으로 뭐가 좋을지 잠깐 상상해봤어.”

   “상상? 그게 뭔데?”

   아이가 물었어요. 

   “상상을 몰라? 상상은··· 그러니까 상상이란··· 그냥 상상하는 거야.”

   성운이는 상상을 설명하는 게 어려웠어요. 상상을 모르는 아이가 신기했지요. 그런데 아이가 묘한 표정을 하고 성운이를 봤어요. 성운이는 아이가 자기를 이곳 아이가 아니라고 의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떻게 말해야 의심을 풀지 생각하고 있는데 멀리서 피리 소리가 들렸어요. 성운이는 냉큼 물었지요.

   “어, 음악 소리네. 무슨 일이지?”

   “축제가 열리나 봐. 우리도 가보자.”

   다행히 아이는 ‘상상’에 대해 더는 묻지 않았어요. 

   “축제라고? 재밌겠다. 무슨 축제야?”

   측제란 말에 성운이는 설렜어요. 아주 재밌을 것 같았지요. 

   “응. 태몽을 완성한 아이가 있나 봐. 빨리 가서 세상으로 나가는 아이를 축하해주자.”

   순간 성운이는 걸음을 멈췄어요. 축제장이라면 이곳에 사는 아이들과 동물들이 모두 모이겠지요? 그러면 성운이를 알아보고 도둑을 잡겠다며 달려들 게 뻔해요. 

   “뭐해? 빨리 와!”

   아이가 뒤돌아 성운이를 보며 손짓했어요. 공작새는 되돌아와 부리로 성운이의 등을 살짝 밀었고요. 성운이는 어쩔 수 없이 아이 옆으로 달려갔어요.

   “아주 멋지고 신나는 축제가 될 거야. 참, 나를 부를 때는 공작이라고 불러.”

   성운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걱정을 한가득 안고 공작을 따라갔어요. 태몽을 완성한 아이가 궁금했지만, 축제장으로 가는 건 스스로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여우 같았죠. 또 축제까지 즐기기에는 시간도 부족할 것 같았어요.

   성운이는 고개를 돌려 지고 있는 해를 봤어요. 해가 딱 반만 보였어요.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았어요. 

   성운이는 엉거주춤 공작을 따라 축제장으로 갔어요. 얼굴을 가릴 가면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요.




7. 세상으로 나가는 축제


   축제장에 도착하자, 머리에 화환을 쓴 아이들이 앞장선 줄이 보였어요. 뒤로는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들이 커다란 나뭇잎을 둘둘 말아서 만든 피리를 불었고요. 그 뒤로는 아이들이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췄어요. 하늘에서는 꽃잎이 눈처럼 내렸지요. 성운이는 놀이동산 퍼레이드에 온 것 같았어요.

   성운이는 다른 아이들과 동물들이 자기를 알아볼까 봐 겁이 났어요. 고개를 숙이고 힐끔힐끔 축제장을 훔쳐봤지요. 하지만 아무도 성운이를 알아보지 못했어요. 아이들과 동물들은 오로지 축제만 즐기고 있었어요. 

   “저기, 태몽이야.”

   공작이 가리킨 곳에 노란 물고기가 꼬리지느러미를 파닥거리며 헤엄쳐 왔어요. 물고기는 고래처럼 컸지요. 몸통은 삼각 모양에 가운데 투명한 줄무늬가 하나 있고 줄무늬에서는 신비로운 빛이 사방으로 뻗어 나왔어요.

   “예쁘다. 정말 멋져.”

   성운이는 넋을 놓고 물고기를 봤어요.

   “저기, 저 아이가 태몽을 만든 아이야. 이제 엄마 아빠를 만나러 가겠지?”

   성운이는 공작이 가리킨 아이를 봤어요. 커다란 물고기 뒤에서 걸어오고 있는 아이는 함빡 웃고 있었어요. 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웃음이었어요. 물고기와 아이에게서는 태양 빛보다 강하지만 부드럽고 따뜻하면서도 신비로운 빛이 뿜어져 나왔어요.

   세상으로 나갈 아이의 행진이 태몽 마을을 몇 바퀴 돌았어요. 아이들과 피리를 부는 동물들이 어울려 한바탕 춤을 췄고 춤과 음악은 갈수록 빨라지고 흥겨워졌지요. 

   잠시 뒤, 아이들과 동물들은 두 줄을 만들어 섰어요. 줄 끝에는 삼신할머니가 앉아 있고요. 성운이는 다시 만난 삼신할머니가 반가웠지만 모르는척했어요. 

   아이가 삼신할머니 앞에 서자 음악이 멈췄어요. 모두가 양손을 배 앞으로 모으고 서서 삼신할머니를 바라봤어요.

   “그래, 멋진 물고기구나. 아주 귀한 물고기야. 너 또한 귀하고 귀한 아이지. 이제 엄마 품으로 가서 가족을 만나렴. 물고기처럼 거친 바다를 헤엄치듯이 인간 세상에서 너만의 길을 찾아 여행하렴. 이 물고기를 만들던 마음, 엄마를 기다리던 간절한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렴.”

   삼신할머니는 아이의 양쪽 손등에 뽀뽀를 쪽쪽 해주었어요. 그러자 태몽인 물고기가 아이를 태우고 하늘로 날아올랐지요.

   “세상으로 나가는 걸 축복한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렴.”

   삼신할머니가 큰소리로 외치자, 어디선가 구름이 몰려와 미끄럼틀을 만들었어요. 아이는 미끄럼틀 위로 올라가 쓩 하고 빠르게 내려갔어요. 아이가 지나갈 때마다 미끄럼틀에 여러 영상이 나타났다 사라졌어요. 아이가 부모님을 만나고 물고기 태몽을 만들고 즐겁게 노는 모습이었지요.

   “우아.”

   성운이는 절로 감탄이 나왔어요.

   “기억의 미끄럼틀은 볼 때마다 신기해. 이곳에서의 기억들이 모두 사라진다는 게 아쉽지만 말이야. 하지만 부모님을 만나려면 이곳을 잊어야 하니까. 그래야 인간 세상에서 더 좋은 기억들을 담을 수 있다잖아.”

   성운이는 공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제야 자기가 태몽을 만들었던 걸 기억하지 못했던 게 이해됐지요. 

   미끄럼틀 아래에는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두 팔을 벌려 하늘에서 떨어지는 아이를 힘껏 안았어요. 엉덩이로 미끄럼틀을 타서 그런지 아이의 엉덩이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지요. 

   다시 열두 동물들이 피리를 불고 동물들과 아이들이 피리 소리에 맞춰 춤을 췄어요. 

   축제가 끝나고 아이들은 곳곳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어요. 공작도 다른 아이들과 얘기하고 있었지요. 성운이는 빨리 태몽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서둘러 축제장을 빠져나왔어요.

   “정말 멋진 축제였어.” 

   축제의 흥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어요. 흥겨운 피리 소리와 몸통에서 빛이 나는 물고기, 기억의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던 아이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어요. 멋지고 아름다운 물고기를 만들어 부모님을 만나는 모습은 가슴 뭉클했지요. 순간 성운이는 장미꽃을 태몽으로 만든 아이가 떠올랐어요. 

   ‘만약 내가 그때 장미꽃을 꺾었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했어요. 장미꽃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한 일이었지요. 아니 미안하다는 말로는 부족해요. 

   ‘그때 장미꽃 아이가 날 밀치고 장미꽃을 먼저 살핀 건 당연한 거야.’

   성운이는 장미꽃 아이에게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성운이는 다시 축제장으로 돌아갔어요. 장미꽃 아이가 축제장에 남아있을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축제장에는 장미꽃 아이가 보이지 않았어요. 성운이는 장미꽃이 있는 곳으로 가보기로 했어요. 역시 장미꽃 아이는 장미꽃을 돌보고 있었어요. 

   성운이는 성큼성큼 장미꽃 아이에게 다가갔어요. 장미꽃 아이가 성운이를 알아보고 표정을 굳히며 말을 쏘았어요.

   “왜 또 왔어? 설마······.”

   “놀라지 마.”

   성운이는 조심히 장미꽃 아이에게 다가갔어요.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장미꽃 아이가 소리쳤어요.

   “도와줘! 도둑이 다시 왔어!”

   순식간에 주변에 있던 아이들과 동물들이 성운이와 장미꽃 아이를 에워쌌어요. 성운이는 당황한 마음을 추스르며 침착하게 말했어요.

   “미안하다고 사과하려고 왔어. 아까 네 꽃을 꺾으려고 했던 거 정말 미안해. 태몽인 줄 몰랐어.”

   “태몽인 줄 몰랐다고?”

   장미꽃 아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물었어요. 주위에 있던 아이들과 동물들이 수군거리며 성운이를 바라봤어요. 의심스럽고 이상하다는 표정으로요. 

   “응. 아까는 정말 미안해.”

   성운이는 진심을 담아 사과했어요. 그런데 아이들과 동물들 무리에서 호랑이와 독수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어요. 그러고는 성운이의 양쪽에 서서 말했어요. 

   “너, 아무래도 안 되겠구나.”

   “우리하고 같이 가야겠다.”

   둘은 성운이의 양쪽 팔을 하나씩 잡고 끌고 갔어요. 마치 도둑을 잡아가는 경찰처럼요.

   “이거 놔요.”

   성운이가 소리쳤어요. 

   “조용히 해!”

   “얌전히 따라오는 게 좋을 거야.”

   호랑이와 독수리가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어요. 고함치지 않았지만, 크게 소리치는 것보다 무서워 오줌이 찔끔 나올 뻔했어요.

   성운이는 입을 꾹 다물고 호랑이와 독수리를 따라갔어요. 온몸이 덜덜 떨렸지요. 괜히 장미꽃 아이를 찾아가서 사과했구나, 하는 후회도 됐어요. 하지만 사과하지 않았다면 마음이 더 무겁고 불편했을 거예요.

   성운이는 독수리와 호랑이를 따라가며 주위를 두리번거렸어요. 이곳이 어디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통 알 수 없었지요. 그래서 더 겁이 났어요. 

   “어디로 가는 거예요?”

   “제발, 놔 주세요. 전 진짜 도둑이 아니에요.”

   “그냥 사과하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성운이의 외침만 구름 땅 위에 울려 퍼졌어요.

 


8. 재판


   호랑이와 독수리가 성운이를 데리고 간 곳은 광장이었어요. 광장 한쪽에는 반달 모양의 구름 계단이 있었고 계단 맞은편에는 작은 의자가 두 개 놓여 있었어요.

   “올라가.”

   호랑이가 광장 한가운데 있는 구름 강단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성운이가 구름 강단 위에 한쪽 발을 올렸어요. 그러자 구름 땅이 도넛 모양으로 올라오더니 성운이의 두 손목을 수갑처럼 감쌌어요.

   성운이 앞에 있는 구름 계단에는 동물들과 아이들로 빼곡했어요. 모두 화난 표정으로 성운이를 바라보며 웅성댔어요. 성운이는 울고 싶었어요. 

   “우르르 쾅쾅.”

   천둥, 번개와 함께 아이 두 명이 나타났어요. 아이들은 쌍둥이인지 똑같이 생겼어요. 다른 게 있다면 한 아이는 번개 모양 모자를, 다른 아이는 초승달 모양 모자를 쓰고 있었어요. 

   두 아이가 의자에 앉자, 의자가 높이 올라갔어요.

   “이 아이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

   번개 모양 모자를 쓴 아이가 성운이를 내려 보며 물었어요. 

   “태몽을 훔치려 했습니다. 재판장님.”

   번개 모양과 초승달 모자를 쓴 두 아이가 깜짝 놀라며 의자 위로 폴짝 뛰어올라 섰어요. 성운이도 깜짝 놀랐지요. 재판장이라면 죄를 지어 재판을 받으러 온 거니까요. 감옥에라도 가는 게 아닌가? 그러면 집에 못 가나? 짧은 순간 많이 생각이 들었지요.

   “태몽을 훔쳤느냐!”

   “태몽 도둑이라고!”

   두 재판장이 인상을 찌푸렸어요. 

   “아니에요. 저는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어요.”

   성운이가 냉큼 말했어요. 구름 계단에 앉은 아이들과 동물들이 성운이를 무서운 눈으로 노려봤어요. 

   “장미꽃 아이의 장미꽃을 훔치려 했습니다.”

   “뭐라고?”

   “장미꽃 아이의 꽃을?”

   두 재판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목소리까지 떨며 말했어요.

   “세상에, 어떻게 그런.”

   “맙소사. 말도 안 돼.”

   광장이 탄식과 함께 소란스러워졌어요. 

   “죄송해요. 정말 잘못했어요. 하지만 장미꽃을 훔치려고 한 게 아니라 너무 예뻐서, 저도 모르게 손이······.”

   또다시 광장이 술렁였어요. 

   성운이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어요. 하지만 궁지에 몰린 쥐가 되니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았어요.

   “장미꽃이 태몽인 줄 몰라서 그랬어요. 나중에 태몽인 걸 알고 장미꽃 아이를 찾아가 사과했고요. 진짜로 미안했거든요.”

   “뭣이라고?”

   “장미꽃이 태몽인 줄을 몰라?”

   두 재판장은 더욱 놀라며 벌떡 일어났어요. 화가 아주 많이 나 보였죠. 광장에 있는 아이들과 동물들도 시끄럽게 웅성거렸어요. 성운이는 그제야 태몽인 걸 몰랐다고 말한 게 실수였다고 생각했어요. 인간 세상에서 온 걸 들킨 것 같아 가슴이 조마조마했지요.

   “아니, 어떻게 장미꽃이 태몽인 것을 모를 수 있느냐?”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만드는 태몽을 모른다고? 아무리 벌을 받기 싫다고 해도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느냐?”

   두 재판장이 으름장을 놓았어요. 성운이는 이럴 때 공작이라도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공작은 성운이가 장미꽃을 훔치지 않았다고 믿어준 유일한 아이니까요. 성운이는 구름 계단에서 공작을 찾았어요. 하지만 공작은 보이지 않았지요.

   그때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공작이 광장으로 들어왔어요. 성운이는 반가운 마음에 벌떡 일어나 소리쳤어요.

   “공작은 알아요. 제가 도둑이 아니라는 걸요.”

   그러고는 공작에게 양팔을 흔들었어요. 두 재판장은 의아해하며 공작에게 자세히 얘기해보라고 했어요. 

   “재판장님, 저 아이는 태몽을 만들 거라고 했어요. 장미꽃을 훔치려고 한 건 오해가 있었다고 했어요.”

   “오해라고?”

   “네, 그리고 제 공작이 나는 연습을 하다가 땅에 떨어졌을 때 공작이 다치지 않았는지 걱정해줬어요. 그런 마음을 가진 아이라면 분명 태몽을 훔치지 않았을 거예요.”

   성운이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공작이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게 있어요.”

   “이상한 거?”

   “이상한 거?”

   두 재판장이 동시에 놀라며 되물었어요. 구름 계단에 있는 아이들과 동물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어요. 성운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공작을 바라봤어요. 뭐가 이상했다는 건지 성운이도 궁금했지요.

   “상상이라는 걸 한다고 했어요.”

   “상상?”

   “상상?”

   두 재판장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그러더니 성운이를 보고 물었어요.

   “넌 어디서 그런 걸 듣고 알고 있는 거냐?”

   “상상이라고?”

   성운이는 ‘상상’이란 걸 이곳에 사는 아이들은 모르는 말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어요. 그래서 축제장으로 가기 전에 공작이 상상이 뭐냐고 물었던 거예요. 그러나저러나 성운이는 믿었던 공작에게 발등이라도 찍힌 기분이었어요. 갑자기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상’을 얘기하며 이상하다고 하니까요.

   “도대체 넌 누구냐?”

   머리에 반달 모양 모자를 쓴 재판장이 물었어요. 

   “너 누구야?”

   머리에 초승달 모양 모자를 쓴 재판장이 일어나 다그치듯 호통쳤어요.

   성운이는 울고 싶었어요. 하지만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으며 이곳을 벗어날 궁리를 했어요. 좋은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어요. 사실대로 말하는 거예요. 대신 인간 세상에서 왔다는 말은 쏙 빼고요. 인간 세상에서 온 걸 들키면 다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요.

   “사실은요. 태몽을 만들었는데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태몽을 찾고 있었어요. 상상이라고 말한 건 그냥··· 지어낸 거예요. 거짓말이에요.”

   “태몽을 잃어버렸다고 했느냐?”

   “거짓말을 했다고?”

   그런데 분위기가 더 심각해졌어요. 성운이는 또 자기가 뭘 잘못한 건지 알 수 없었지요.

   “어떻게 태몽을 훔치려던 걸 숨기려고 태몽을 잃어버렸다고 하느냐?”

   “태몽은 잃어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하는데!”

   “더구나 지어낸 거라고? 어떻게 거짓말을 한 걸 자랑스럽게 말하느냐?”

   “거짓말은 자기 자신까지 속이는 것, 훔치는 것보다 더 큰 죄인 걸 모르느냐?”

   두 재판장은 무섭게 성운이를 노려봤어요. 구름 의자에 앉아 있던 아이들과 동물들은 야유하며 외쳤어요.

   “벌을 주세요!”

   “거짓말쟁이에게 벌을!”

   “아주 무서운 벌을!”

   광장이 소란스러워지자 독수리가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펼쳤어요. 그러자 아이들과 동물들은 바로 조용해졌지요. 성운이는 벌벌 떨렸어요. 심장이 두근거려 숨 쉬는 게 힘들 정도였어요.

   두 재판장은 이마를 맞대고 의논했어요. 두 재판장의 모자가 붉어졌다가 까매졌다가 했지요. 잠시 후 두 재판장의 모자 색이 처음으로 돌아오고 두 재판장은 성운이를 바라보고 앉았어요. 

   “태몽을 훔치려 하는 건 몹시 나쁜 죄다!”

   “더구나 거짓말은 죄 중에서도 가장 큰 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죄지!”

   “죄인은 인간 세상으로 절대 갈 수 없다!”

   “태몽을 훔치려는 자, 거짓말하는 자는 아기 천사가 될 자격이 없지!”

   성운이는 놀랐어요. 판결이 내려졌나 봐요. 인간 세상으로 갈 수 없다니요. 그러면 엄마 아빠를 못 만나게 되잖아요. 인간 세상에서 왔다고 말하지 않아도 인간 세상으로 갈 수 없다니 믿을 수 없었어요. 

   “아니에요. 진짜로 전 도둑이 아니에요. 그리고 ‘상상’은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대로 말을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 그러니까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집으로 갈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거짓말한 거예요. 으앙.”

   성운이는 울음을 터뜨렸어요. 순간 광장이 조용해졌어요. 성운이의 울음소리만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죠. 성운이는 무슨 일인가 싶어 울음을 뚝 그쳤어요. 두 재판장과 호랑이와 독수리, 공작과 구름 계단에 있는 동물과 아이들이 성운이만 보고 있었어요. 모두 황당하고 놀란 표정을 하고서요.



9. 인간이야


   호랑이가 성운이 앞으로 다가왔어요. 그러고는 두껍고 커다란 앞발을 들어 올렸어요. 성운이는 무서운 마음에 두 눈을 질끈 감았어요. 뚝, 하고 고여있던 눈물이 떨어졌어요. 호랑이는 발톱을 세워 떨어지는 눈물을 냉큼 받아 입으로 가져갔어요.

   “어떠냐?”

   “그것이 맞는고?”

   두 재판장이 호랑이에게 답을 재촉했어요. 호랑이는 두 눈을 감고 혀를 날름거리며 천천히 맛을 음미했어요. 

   “네, 눈··· 눈물이 맞습니다.”

   “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너, 누··· 누구냐?”

   두 재판장이 눈 깜짝할 사이에 성운이 앞에 섰어요. 구름 계단에 앉은 동물들과 아이들, 호랑이와 독수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우왕좌왕했지요. 공작도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성운이를 봤어요. 

   “너, 인간이냐?”

   초승달 모양 모자를 쓴 재판장이 엄하게 물었어요. 

   성운이는 아프지 않으려고 태몽을 찾으러 왔다고 인간 세상에서 왔다고 말했어요. 어차피 도둑으로 몰려 집으로 갈 수도 없으니 인간 세상에서 온 걸 말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요. 

   “아니, 어떻게 인간이 이곳까지 올 수 있느냐?”

   “누가 너를 데려왔느냐?”

   두 재판장은 성운이 혼자 이곳까지 올 수 없다고 생각하고 물었어요. 성운이는 혼자 왔다고 우겼지요. 괜히 삼신할머니까지 곤란하게 만들 수는 없었어요. 

   광장은 다시 시끄러워졌고 두 재판장은 인간 아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어요. 

   그때 삼신할머니가 왔어요. 두 재판장과 광장에 있는 모두가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여 삼신할머니를 맞았지요. 성운이는 삼신할머니께 이곳에 오면 안 된다고 손짓했어요. 삼신할머니는 빙그레 웃기만 했어요.

   “삼신할머니께서 이 재판장까지 어인 일이신가요?”

   초승달 모양 모자를 쓴 재판장이 물었어요. 삼신할머니는 성운이 옆에 서서 말했어요.

   “두 분 재판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실은······.”

   삼신할머니는 하나도 거짓 없이 말했어요. 그러자 광장은 다시 시끄러워졌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인간 아이를 데리고 오는 바람에 시끄럽게 됐습니다.”

   성운이는 걱정됐어요. 괜히 삼신할머니가 자기 때문에 벌을 받을까 봐요.

   “재판장님, 삼신할머니는 죄가 없어요. 제가 몰래 따라 왔어요. 그러니까 삼신할머니를 벌주지 마세요. 제발요.”

   성운이가 나서서 외쳤어요. 

   “네 말대로 삼신할머니는 죄가 없다.”

   “하지만 이 일을 어찌 해결하면 좋단 말이냐.” 

   두 재판장은 다시 머리를 맞댔어요. 광장은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어요.

   “제가 만든 문제이니 제가 해결하지요.”

   침묵을 깨고 삼신할머니가 나섰어요.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겁니까?”

   머리에 반달 모양 모자를 쓴 재판장이 물었어요.

   “이 아이는 자기 태몽이 궁금해서 왔습니다. 태몽 터널에서 태몽을 확인하고 바로 인간 세상으로 갈 수 있게 하겠습니다.”

   “아하, 태몽 터널! 그곳에 저 아이의 태몽이 있습니까?”

   “네.”

   순간 성운이는 삼신할머니가 원망스러웠어요. 자기 태몽이 있는 곳을 알면서 모른다고 딱 잡아뗀 거잖아요? 처음부터 태몽이 있는 곳을 알려줬다면 자기가 태몽 도둑으로 몰리는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죠.

   “그나저나 태몽을 찾아 여기까지 오다니 대단하구나.”

   “그 마음이면 세상에서 못 할 게 없겠군. 아픈 것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겠어.”

   두 재판장이 성운이를 보고 말했어요. 그러자 삼신할머니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끄덕였지요. 

   두 재판장은 삼신할머니께 성운이를 무사히 인간 세상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사라졌어요. 구름 계단에 있던 아이들과 동물들도 각자 집으로 돌아갔고요. 

   공작과 장미꽃 아이가 성운이에게 다가왔어요.

   “정말 미안해. 장미꽃을 꺾으려 해서.”

   성운이는 장미꽃 아이에게 다시 한 번 사과했어요. 아이는 사과를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네 태몽이 무엇일지 나도 궁금해. 아주 특별한 태몽일 것 같아. 그리고 태몽을 찾겠다고 여기까지 온 걸 보니 태몽이 무엇이든 너는 그보다 더 특별하고 멋져.”

   성운이는 얼굴이 붉어졌어요. 힘껏 달렸을 때보다 심장이 더욱 쿵쿵쿵 뛰었지요. 

   “널 의심해서 미안해.”

   이번에는 공작이 성운이에게 사과했어요.

   “아니야. 내가 이상했으니까 당연히 의심한 거지.”

   성운이는 공작이 자기를 의심한 건 당연한 거로 생각했어요.

   “꼭 네 태몽을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고마워. 인간 세상에 오면 친하게 지내자.”

   장미꽃 아이와 공작은 성운이를 안고 인사했어요. 그리고 마을로 돌아갔지요. 

   이제 삼신할머니와 공작만 남았어요. 성운이는 바로 삼신할머니께 따졌어요.

   “제 태몽이 터널에 있다고요? 왜 처음부터 알려주지 않으셨어요? 이곳에 오자마자 태몽이 있는 곳을 알려주셨으면 제가 도둑으로 몰리지도 않고 인간이라는 것도 들키지 않았을 거 아니에요.”

   “화내고 있을 시간이 없어. 저기 보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삼신할머니는 대답 대신 지는 해를 가리키며 말했어요. 해가 이마만큼 남아 있었어요. 성운이는 고개를 되돌려 삼신할머니를 봤어요. 삼신할머니는 바로 번개 모양 창을 내밀었어요.

   “이 길로 쭉 가면 얼음산이 나온단다. 그 산꼭대기에 태몽 터널이 있어. 그곳에 가면 네 태몽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거다.”

   이번에는 삼신할머니가 태몽이 있는 곳을 친절하게 알려줬어요. 성운이는 더는 따질 수 없었지요.

   “알겠어요. 그런데 태몽 터널이 여기서 멀어요?”

   “서둘러야 할 거야. 여기까지 왔는데 네 태몽은 보고 가야 하지 않겠니?”

   삼신할머니는 다른 말만 하고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또 사라지셨어.”

   성운이는 투덜거리며 태몽 터널이 있는 얼음산을 향해 뛰어갔어요.



10. 태몽 터널


   달리는 성운이는 행복했어요. 아무리 달려도 숨이 차지 않았어요. 성운이는 그동안 달리지 못했던 것을 모두 달리기라도 할 듯 쉬지 않고 달렸어요. 

   성운이는 달리면서 지는 해를 바라봤어요. 해가 구름 위로 아주 살짝 걸쳐 있었어요. 성운이는 더 힘껏 달려나갔어요.

   얼음산에 가까워질수록 구름 땅이 끈적거렸어요. 한 발자국 떼기도 힘들었지요. 간신히 끈적이는 길을 빠져나오자, 천둥 길이 나타났어요. 발을 내디딜 때마다 울리는 천둥소리에 고막이 터지는 것 같았어요. 또 구름 땅이 어찌나 흔들리지는 서 있는 것도 힘들었지요. 

   천둥 길이 끝나자 번개길이 나왔어요. 번쩍번쩍 내리치는 번개를 피해 폴짝폴짝 뛰어올라야 했어요. 그 다음에는 폭풍 길이 나왔어요.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거친 비가 쏟아졌어요. 성운이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기어갔지요. 폭우로 금세 물이 불어 헤엄까지 쳐야 했어요.

   폭풍 길이 끝나고는 폭설 길이 나타났어요.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엉덩방아를 찧었지요. 눈사태가 나 눈덩이가 되어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어요. 

   성운이는 지칠 대로 지쳤어요. 하지만 기분은 좋았어요. 신나게 뛰고 헤엄치고 달릴 수 있어 행복했어요. 

   곧 성운이는 얼음산 아래에 도착했어요.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높은 산이었지요. 

   “올라가 볼까?”

   성운이는 두 손을 탁탁 털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그러고는 삼신할머니가 준 번개 창을 얼음산에 꽂으며 올랐어요. 얼음벽이 미끄러워 미끄러져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기를 몇 번이나 반복해야 했지요. 어느새 이마와 콧등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등줄기를 타고 주르륵 땀이 흘러내렸어요. 성운이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정상에 올랐어요.

   “다 왔다!”

   드디어 정상에 오른 성운이는 저 멀리 앞에 있는 터널을 봤어요. 터널은 얼음 벽돌로 만들어져 있었어요. 얼음 벽돌은 여러 색을 띠고 있어 멀리서 보면 꽃 터널처럼 보였지요. 성운이는 냉큼 터널 안으로 들어갔어요. 터널은 밖에서 본 것보다 훨씬 넓었어요. 

   “철컥.”

   순간 입구가 닫히더니 터널 중간쯤에서 빛이 새어 나왔어요. 성운이는 빛을 향해 걸어갔어요. 빛은 얼음 벽돌에서 나오고 있었어요. 성운이가 빛이 나는 벽돌 앞에 서자, 벽돌이 빠져나와 커다란 화면으로 변하더니 영상이 나타났어요.

   

   아기 천사 성운이는 회오리 속에 손을 넣고 금빛 실을 잡았어요. 그리고 금빛 실 끝에는 엄마 아빠가 있었지요. 성운이가 실 끝을 가슴에 올리자,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어요. 

   “세상에 없는 아주 특별한 태몽을 만들고 싶은데······.”

   아기 천사 성운이는 땅에 쭈그리고 앉아 구름을 끌어모아 이 모양 저 모양을 만들었어요. 마음에 드는 게 없는지 구름 땅 위에 벌렁 누웠지요.

   “뭘 만들지?”

   그때 하늘 위로 노란 별똥별이 떨어졌어요.

   “그래, 별! 별을 만드는 거야.”

   아기 천사 성운이는 별을 만들 돌을 찾아다녔어요. 그리고 아주 깊고 깊은 숲속에서 무지갯빛이 나는 돌을 캐냈지요. 성운이는 돌을 깎고 다듬어 별 모양을 만들었어요. 자기 몸보다 열 배는 큰 별이었어요. 

   성운이는 무지갯빛별로 세상으로 나가는 축제를 열었어요. 그리고 무지갯빛별과 함께 삼신할머니 앞에 섰지요. 

   “아주 특별한 것을 만들었구나. 귀하고 귀한 아이야. 태몽을 이리 다오. 엄마에게 잘 가져다줄 테니.”

   삼신할머니가 손을 내밀었어요. 삼신할머니는 태몽을 받아 성운이가 태어날 인간 세상의 가족에게 꿈으로 태몽을 배달해줘요.

   그 순간 성운이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어요.

   “잠깐만요. 삼신할머니. 아무래도 이 태몽을 가져갈 순 없을 것 같아요.”

   “왜?”

   “저는 세상에 없는 아주 특별한 태몽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무지개도 별도 세상에 있는 거잖아요? 아무래도 제가 태몽을 잘못 만든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냐?”

   삼신할머니가 미소지으며 물었어요.

   “네.”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러렴. 이 세상에 없는 아주 특별한 건, 처음부터 너였으니까. 너 하나로 충분하니까. 태몽은 단지 인간 세상으로 나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마음을 다스리는 과정일 뿐이란다. 태몽을 가져가지 않는다고 해도 그 마음은 이미 네 안에 있지.”

   삼신할머니는 성운이가 준 태몽을 작은 얼음 블록으로 만들어 멀리 던졌어요. 얼음 블록이 얼음산 위로 날아가 터널의 빈칸을 채웠지요.

   삼신할머니는 성운이의 양쪽 손등에 뽀뽀를 쪽쪽 했어요. 성운이는 구름을 타고 하늘 위로 올라가서 기억의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갔어요. 미끄럼틀 아래에는 엄마 아빠가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었지요. 성운이는 기억을 지우는 미끄럼을 지나 파랗게 멍든 엉덩이를 하고 엄마 아빠 품에 쏙 안겼어요.

 


   영상이 사라지고 얼음 블록은 다시 제자리에 가서 박혔어요. 성운이는 이제야 자기가 태몽이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었지요. 

   “내가 만들고 안 가져간 거였잖아. 바보같이.”

   그것도 모르고 삼신할머니한테 태몽을 달라고 했으니, 삼신할머니도 답답했을 것 같았어요.

   그건 그렇고 성운이는 무지갯빛별 태몽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이미 제자리로 들어간 블록이라도 꺼내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성운이는 허탈한 마음으로 터널 밖을 나와야 했어요.

   “할머니!”

   언제 왔는지 터널 밖에는 삼신할머니가 와 있었어요. 성운이는 삼신할머니께 달려갔지요. 삼신할머니가 활짝 웃으며 물었어요.

   “태몽을 보니 기분이 좋으냐?”

   “네. 제 태몽은 무지갯빛별이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가져가요? 얼음 블록은 꺼내지지 않아요. 제 무지갯빛별은 다른 곳에 있나요?”

   삼신할머니가 표정을 확 바꾸고 말했어요.

   “태몽을 보기만 하랬지 가져가라고는 하지 않았는데, 잊었구나. 더구나 저기 있는 블록이 하나라도 빠지면 터널이 무너지고 말아. 그러면 태몽을 놓고 간 다른 아이들의 태몽도 모두 사라진단다.”

   “네? 그러면 태몽을 못 가져간다고요?”

   “그래. 이제 더는 지체하면 안 되겠다.”

   삼신할머니가 지는 해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어요. 어느새 해가 정수리만 살짝 보일 정도로 사라지고 없었어요. 금방이라도 구름 땅 밑으로 쏙 들어가 버릴 것 같았지요. 

   “하지만 할머니, 전 태몽을 가져가야 해요. 그래야 안 아프죠.”

   성운이가 투덜거리는데 삼신할머니가 성운이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어요. 성운이는 처음에 태몽 마을에 왔던 모습으로 변했어요.

   “자, 빨리 내 손을 잡으렴.”

   삼신할머니가 손을 내밀며 말했어요.

   “하지만······.”

   성운이는 태몽 터널과 지는 해, 삼신할머니를 번갈아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그냥 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더 태몽을 찾을 시간은 없었으니까요. 성운이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으니까 삼신할머니가 성운이의 손을 덥석 잡았어요. 

   “넌 태몽 마을을 기억하는 유일한 아이가 되겠구나. 절대 인간 세상에서 태몽 마을에 대해 말하면 안 된다. 그러면.”

   “할머니, 빨리요. 빨리. 문이 닫혀요.”

   지는 해를 보던 성운이가 삼신할머니 말을 자르며 소리쳤어요. 해가 바로 구름 땅 아래로 떨어질 것 같았거든요. 일단 빨리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았어요. 

   해를 본 삼신할머니도 놀랐어요. 성운이를 인간 세상까지 데려다 줄 시간이 없었죠. 삼신할머니는 냉큼 성운이를 해를 향해 힘껏 던졌어요. 성운이는 배드민턴 셔틀콕처럼 날아갔어요. 

   “으악!”

   성운이는 놀라 눈을 질끈 감았다가 바로 정신을 차렸어요. 지금은 해를 통과하는 게 중요해요. 성운이는 양팔을 올려 실눈보다 작아지는 해의 틈을 비집고 들어갔어요. 

   순간 해가 구름 땅 밑으로 완전히 사라졌지요.



11. 태몽을 찾았어요


   “헉, 헉.”

   집 베란다로 떨어진 성운이는 숨이 찼어요. 급히 주머니에서 흡입기를 꺼내 깊게 들이마셨지요. 곧 숨이 고르게 돌아왔고 성운이는 산 위로 모두 올라온 해를 봤어요. 태몽 마을에서 맘껏 뛰고 얼음산을 오르던 때가 생각났지요. 다시 그때처럼 흡입기 없이 뛰고 달리고 싶었어요.

   “휴, 태몽만 있다면 흡입기도 필요 없을 텐데······.”

   성운이는 아쉬웠어요. 힘들게 태몽 마을까지 갔는데 태몽을 가져오지 못했으니까요. 

   성운이는 화장실로 갔어요. 세수하면서 아쉬운 마음도 씻어내 보려 했지요.

   “일찍 일어났네.”

   막 거실로 나온 하늘이 누나가 하품을 하면서 말했어요.

   “누나, 배고파. 밥 줘.”

   태몽 마을에서 달리고 헤엄치고 얼음산을 올라서 그런지 성운이는 배가 많이 고팠어요.

   “알았어. 그런데 너, 새벽에 초콜릿 먹었어? 이게 다 뭐야?”

   하늘이 누나가 거실에 있는 초콜릿 껍질을 보며 말했어요. 성운이는 아차 싶었지요. 

   “그게··· 내가 먹은 게 아니고, 삼신.”

   성운이는 급히 입을 다물었어요. 삼신할머니가 먹었다고 사실대로 말해봤자 하늘이 누나는 믿지 않을 거예요. 더구나 삼신할머니가 태몽 마을에 관해 얘기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네가 먹은 게 아니면 누가 먹었다는 거야?”

   하늘이 누나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눈을 흘기며 말했어요. 

   “몰라. 어쨌든 나는 진짜 안 먹었어!”

   “정말이야? 수상한데?”

   하늘이 누나는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성운이를 봤어요. 성운이는 태몽 마을에서 도둑으로 몰렸던 기분이 들었지요. 그래서 짜증을 섞어 말했지요.

   “왜 내 말을 안 믿어. 누나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초콜릿 먹고 싶잖아.”

   성운이는 정말로 초콜릿을 먹고 싶었어요. 자신에게 주는 생일 선물로 바지 주머니에 숨겼던 초콜릿도 삼신할머니를 주고 맛도 못 봤으니까요. 입을 댓발로 내밀고 있는 성운이를 보며 하늘이 누나가 미안한 표정을 짓고 물었어요.

   “진짜로 하나도 안 먹은 거지?”

   “그렇대도. 자꾸 의심하면 초콜릿 먹는다.”

   성운이는 바닥에서 초콜릿을 주워 협박하듯이 말했어요. 그러자 하늘이 누나는 마지못해 믿어주겠다면서 거실에 어질러져 있는 초콜릿 비닐을 정리했어요.

   “그런데 누나, 누나는 태몽이 뭐야?”

   성운이가 함께 초콜릿 껍질을 주우며 물었어요. 

   “태몽? 없어.” 

   “태몽이 없어?”

   하늘이 누나는 당연하다고 말했지만, 성운이는 깜짝 놀랐어요.

   “응. 왜 그렇게 놀라. 태몽이 꼭 있어야 해?”

   성운이는 하늘이 누나가 태몽이 없다는 게 이상했어요. 하늘이 누나는 합기도에 태권도뿐 아니라 달리기, 수영, 축구도 잘 해요. 또 감기도 한 번 안 걸리고 헌혈도 많이 할 만큼 건강해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성운이는 하늘이 누나도 자기처럼 태몽을 만들고 안 가져왔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건강한 하늘이 누나가 태몽이 없다는 건 이상했지요.

   ‘삼신할머니 말이 진짜인가?’

   성운이는 삼신할머니가 자기가 아픈 게 태몽 때문이 아니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어요.

   ‘그럼 왜 나만 아픈 거야?’

   성운이의 고민이 처음으로 돌아갔어요. 성운이는 다시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렸어요. 

   “갑자기 왜 이렇게 풀이 죽었어? 배고파서 그래? 빨리 밥 먹자.”

   하늘이 누나가 주방으로 가더니 뚝딱 아침상을 차렸어요. 

   성운이는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후루룩 먹었어요. 배가 고파서 미역 건더기 하나,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었지요. 

   “잘 먹네. 천식이 조금씩 나아진다고 이모가 좋아하더니 밥을 잘 먹어서 그런가 보다.”

   하늘이 누나가 말했어요. 성운이는 믿을 수 없었어요. 엄마는 매일 건강해지려면 초콜릿 안된다, 아이스크림 안된다, 달리지 마라, 일찍 자라, 햇빛 보고 산책해야 한다, 잔소리뿐이었거든요. 

   “정말이야? 누나. 나 건강해지고 있대? 엄마가 정말로 그렇게 말했어?”

   성운이가 다시 물었어요. 

   “그래.”

   순간 성운이는 초콜릿 하나쯤 먹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천식이 좋아지고 있다니 초콜릿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요? 더구나 오늘은 성운이의 열 번째 생일이잖아요. 

   “누나, 그러면 나 초콜릿 하나만 먹어도 될까? 생일 선물로.”

   “뭐?”

   하늘이 누나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봤어요. 그러곤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지요.

   “그래.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딱 하나만이야.”

   성운이는 날아갈 것처럼 좋았어요. 

   하늘이 누나는 초콜릿을 하나 가져와 성운이에게 줬어요. 성운이는 초콜릿을 냉큼 입속에 쏙 넣었지요. 초콜릿이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녹았어요. 

   “행복하다.”

   성운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어요.

   “초콜릿 먹어서?”

   “응.”

   “맞아. 행복은 그런 거야.”

   “누나도 행복해지게 먹어.”

   “난 초콜릿 먹어도 행복하지 않아.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으니까. 넌 세상에서 초콜릿을 가장 행복하게 먹는 사람일 거야.”

   순간 성운이는 자기가 아픈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누나 말대로 성운이가 아프지 않았다면 초콜릿을 맘껏 먹을 수 있을 거고 그러면 초콜릿 하나에 이토록 큰 행복을 느낄 수 없었겠죠? 또 태몽 마을에서 얼음산 꼭대기에 올라갈 때도 즐겁지 않았을 거예요. 평소 뛰지 못했기 때문에 뛰고 힘들게 산을 오르는 게 즐겁기만 했던 거예요. 

   “그러고 보니까 누나가 생일 축하한다는 아직 안 했네. 초콜릿을 행복하게 먹는 특별한 내 동생 공성운, 생일 축하해.”

   “고마워. 누나. 누나도 내게 특별해. 운동도 잘하고 건강하고 또 나를 사랑해주고.”

   하늘이 누나가 함빡 웃었어요. 성운이도 함께 웃었지요. 

   성운이는 누나가 말한 ‘특별한 동생’이라는 말이 좋아요. 특별하다는 말은 가슴을 간지럽게 해요. 사랑한다는 말처럼요. 그러면서 성운이는 무지갯빛별을 만들고 세상에 없는 특별한 태몽이 아닌 것 같아 가져오지 않으려 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생각해보면 무지갯빛별은 정말 특별한 태몽이었는데 말이죠. 태몽 마을에 있던 다른 태몽들도 특별하지 않은 게 없었어요. 태몽을 만들던 아이들은 태몽보다 더 특별했고요.

   ‘아, 생각났다. 삼신할머니가 그랬잖아. 이 세상에 없는 아주 특별한 건 나라고. 태몽은 인간 세상으로 나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마음을 다스리는 과정일 뿐이라고. 태몽을 가져가지 않는다고 해도 그 마음은 이미 내 안에 있다고.’

   그제야 성운이는 태몽은 처음부터 자기한테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태몽을 만들던 마음이 내 안에 있으니까요. 그것도 모르고 태몽을 찾겠다고 삼신할머니 몰래 태몽 마을에 갔던 게 우스웠지요. 또 천식 때문에 맘껏 뛸 수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하지 않은 공성운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몸이 아프다고 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없는 것도 아니고요. 어쩌면 성운이는 자기가 아파서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 것도 같았어요. 자기처럼 아픈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런 생각이 들자, 성운이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어요. 얼음산을 올라 태몽을 처음 봤을 때처럼요. 자꾸만 웃음이 나왔지요.

   성운이는 행복한 마음으로 학교에 갔어요. 일찍 온 아이들은 밖에서 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어요. 민찬이는 새로 산 축구화를 자랑하고 있었어요. 

   민찬이가 교실에 들어온 성운이를 보고 말했어요.

   “살살이, 공성운이 왔다. 아픈 치타가 태몽인 공성운.”

   그러면서 절룩거리면서 뛰는 치타 흉내를 냈어요. 성운이는 자기를 놀리는 민찬이가 얄미웠어요. 

   “강민찬, 내 태몽은 치타 아니거든!”

   “뭐야? 지난번에 거짓말한 거야? 그럼 네 태몽이 뭔데?”

   민찬이가 다시 물었어요. 성운이는 무지갯빛별이라고 말하려다 이렇게 말했어요.

   “나 태몽 없어.”

   태몽 꿈을 꾸었든 안 꾸었든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어쨌든 성운이도 민찬이도 태몽 마을에서 태몽을 열심히 만들었을 텐데요. 온 마음을 다해서요. 단지 가져오고 안 가져오고만 다를 뿐이죠.

   “하하. 태몽이 없어? 세상에 태몽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

   민찬이가 웃으며 말했지요. 그러자 갑자기 환희가 끼어들었어요.

   “여기 있지. 나도 태몽 없어.”

   “나도 없댔어.”

   “나도.”

   성재와 아린이까지 태몽이 없다고 말했어요. 성운이도 민찬이도 놀라며 셋을 바라봤죠. 그러고 보니까 급식실에서 태몽 얘기를 할 때 환희도 성재도 아린이도 태몽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성운이는 혼자서 모두 태몽이 있다고 오해했다는 걸 알았어요. 그러고는 태몽이 없어서 자기가 아픈 거라고 결론지었던 거죠.

   “에이, 바보 같은 공성운.”

   성운이는 자기 머리를 콩 쥐어박았어요. 

   “그런데 나는 태몽이 있었으면 좋겠어.”

   아린이가 말했어요.

   “맞아. 우린 왜 태몽이 없을까?”

   환희도 말했지요. 순간, 성운이는 자기만 아는 태몽 마을에 대해 말하고 싶어졌어요. 사실 우리는 태몽이 없는 게 아니라 태몽을 만들고 가져오지 않다는 걸요. 그러니까 태몽이 있다고 특별한 것도 아니고 없다고 이상한 것도 아니라고요. 또 태몽을 자기가 직접 만든다는 걸 알면 신기해할 것 같았어요.

   “참, 너희들 그거 알아? 태몽은 말이야, 삼신할머니가 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직접 만드는 거야.”

   순간 성운이는 하늘을 올려봤어요. 인간 세상에 가서 태몽 마을에 대해 말하지 말라던 삼신할머니 말이 떠올랐거든요.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뭐? 너 정말 엉뚱하구나. 하하하. 태몽을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직접 만든다고? 뭘로? 어디서? 어떻게? 그게 말이 되냐?”

   민찬이가 말하고 웃었어요.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교실이 떠내려갈 듯 소리 내 웃었지요. 성운이는 함께 웃었어요. 그러면서 왜 삼신할머니가 태몽 마을에 관해 왜 말하지 말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어요. 아무도 믿지 않을 테니 말해도 소용없다고 말하려 했을 거예요. 그렇다면 말을 안 할 이유가 없죠. 모두 상상이라고 하면 되니까요.

   “있잖아. 태몽 마을이라는 곳이 있는데······.”

   성운이는 아이들에게 태몽 마을에 대해 말했어요. 

   쉬는 시간에 태몽 마을에 대해 모두 얘기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은 매 쉬는 시간마다 성운이 주위로 몰렸어요. 민찬이도 성운이가 얘기하는 태몽 마을 이야기를 들으려고 축구하러 나가는 것도 잊고 왔어요.

   성운이는 신나서 얘기했어요. 말을 많이 해서 운동장을 뛴 것처럼 숨이 찼어요. 하지만 흡입기는 필요 없었어요. 아주 행복한 숨차기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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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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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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