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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들의 樂취미들] 연필 들고 밖으로 고고

  • 작성일 2015-12-01
  • 조회수 752

 

[젊은작가의 樂취미들]

 

 


연필 들고 밖으로 고고

 

 

 

이병국

 

 

 

    연필을 따라 사부작사부작 옷소매가 스쳤다. 하얀 종이에 진 얼룩의 면적만큼 소매에도 얼룩이 졌다. 풍경이 오려진다. 런던 테이트 브리튼에서 한 할아버지가 그림을 모사하고 있었다. 가만히 서서 노트에 빠르게 그림을 그렸다. 나는 가만히 사진으로 찍어 두기로 했다. 갤러리 사방에 걸려 있던 명화들보다 할아버지의 손놀림이 더 깊은 인상을 줬다. 강렬했던 그 순간은 꽤 강한 기억으로 남았다. 등단 상금을 들고 떠난 여행에서 나는 내가 본 것들을 어떻게 하면 온전히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떠안았다. 빈손이 아니니 다행이라고 할까, 여행은 피곤이라는 생각이 매달려 있는 건 무시하기로 하고.

 

    나도 연필을 쥐고 선들을 긋는다. 언어로 변하지 않는 선들은 제멋대로 뻗어 나간다. 어디쯤에선 그것이 벽을 대신하기도 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가장하기도 한다. 이거야 원. 내 뜻대로 되는 게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인생에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듯 내가 그린 그림을 쳐다보면 막막했다. 다른 이들은 쉽게 쉽게 하는 것 같은데, 멀리 두고 보아야 아름다운 것은 참 많기도 하다. 그럼에도 희극이든 비극이든 일단 계속해 봐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난 화가의 그림자 근처도 못 가리란 걸 안다. 끄적거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으니까 그걸로 족하다. 하지만 정말? 그걸로 멈출 생각인가, 하면 머뭇대며 아니라고 할 수밖에. 시를 쓰는 데 필요한 건 세상을 내 안으로 끌고 들어와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실제로 그림을 그려 보고자 하는 마음이 얼토당토않은 일만은 아닐 것이다. 스마트폰 앱을 깔아 그림 관련 모임을 찾아본 것은 당연한 수순. 스마트한 세상이라고 그림을 그리기 위한 온/오프라인 모임들이 부지기수로 많았다. 이걸 어쩌나. 그중에서 하나를 선택했다. 홍대, 라는 타이틀이 마음에 들었다.
    일요일마다 모여 그림을 그렸다. 낯선 사람들과 더불어 커다란 테이블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았다. 자기소개는 오그라들지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 건 반복할수록 그것도 늘기 때문이었다. 낯섦이 익숙함으로 변하는 것도 경험해 볼 만한 일이기에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나죠?”라는 말이 오고 가는 순간은 또 다른 의미의 여행이기도 했다. 어쨌든 옷깃만 스쳐도 전생에 어쩌고 하는데 이건 무슨 인연들인지, 제각각의 세계가 하나의 테이블을 중심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숙이고 각자의 세상으로 스며든다.

 

    사람들이 모이면 무슨 일이든 일어나고야 만다. 가지치기라고 하자. 다른 방향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자신의 시선을 화폭에 새겨 넣는 그와 그녀들, 자전거로 전국을 누빌 태세의 시각디자이너, 드립이 특기이면서 진지한 영화감독, 인맥과 인맥과 인맥의 미디어 아티스트, 직장인 겸 인디뮤지션, 10년째 가계부를 쓰는 아키비스트, 그리고 사람들을 좋아하는 수행자를 만났다. 그곳에서 나는 ‘술을 보면 눈이 반짝이는 시인’으로 통했다. 모인 사람들이 수군수군했다.
    우연히 합류한 당일치기 여행 끝에 도착한 곳은 달이 밝고 그 빛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는 집이었다. 그곳에서 시를 낭송했다. 그리고 거실과 옥상을 오가며 사람들은 뭔가 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즉흥적으로 시낭송 앨범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화가가 많으니 각자 앨범 표지 그림도 그리기로 했다. 달과 가까운 집. “월가(月家)시낭송프로젝트”. 취미의 확장이라고 하자. 다들 각자 시를 써서 옥상에 모였다. 녹음 장치를 설치하고 하나 둘 녹음을 하고 다시 듣기를 반복했다. 야외 녹음이라 소음이 녹아들었다. 희희낙락, 소음조차도 즐거웠다. 다만 음원으로 내기에는 마땅치 않아 녹음실을 빌려 다시 녹음하기로 했다. 커다란 개가 있는 녹음실에서 각자의 시를 낭송하고 낭송하고 낭송하고, 각자의 공간에서 그림을 그렸다. 마주 잡은 손을 그리기도 하고 고양이를 그리기도 하고. 나는 녹음한 시의 제목이기도 한 ‘스툴’, 등받이가 없는 의자를 그렸다. 벽 앞에 놓인 의자. 황혼이 비쳐 그림자가 진 의자. (아무도) 앉지 않은 빈 의자.

 

    아무도, 에 놓인 괄호를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어쩌면 그래서 나는 시를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거기에 대한 대답을 채 하지 못한 채로 다른 쪽에서 다른 형태의 답을 그려 보고자 한다. 시든 그림이든 그것은 가만히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일이 특별한 계기를 맞아 음원사이트를 통해 세상으로 연결되었다. 누가 듣겠나 싶겠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듣고 표지를 보지 않을까. 그 소리를 따라 조금 더 이동해 보기로 한다. 낯선 이들과 한바탕 호기롭게 들썩였듯이 바깥으로 나가 보자. 괄호 친 자리를 놓을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한 스케치 여행이라고 하자.
    물론 아직은 준비 중. 여기가 아닌 저곳 어딘가로 뛰쳐나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노트 한 권, 연필 한 자루. 그리고

 

    오래전에 이런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다. 길을 잘 찾는 친구, 프랑스어를 잘하는 친구, 그림에 조예가 깊은 친구, 문학에 관심이 많은 친구. 여기에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에 나오는 딘 모리아티 같은 친구. 이건 순전히 유럽 여행을 위한 포석이었다. 그런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면 참 편안하고 알찬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게으른 생각이랄까.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좌충우돌하면서도 신날 것만 같아 두근거린다.

 

    막무가내로 내지를 수 있다는 것만큼 흥미로운 것은 없을 것이다. 바라보고 담아내며 그것을 그려낼 수 있는 곳으로 떠난다는 것만큼 가슴 뛰는 일이 또 뭐가 있을까. 물론 이건 좀 과장이 섞인 것이니 괘념치 말자. 어쨌든 나는 글쓰기로 치자면 습작에 머문 스케치 수준이지만 노트 한 권을 저 바깥으로 채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버스를 타든 히치하이크를 하든 혹은 두 발로 가는 데까지 가든 풍경 속으로 스며들고 싶다.
    어디든 상관없이 그저 그렇게 바깥으로 조금 더 나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도 언젠가 나이 든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자극이 되는 인상 하나 남겨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하루하루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삶이겠지.

 

자켓그림
그림그리는할아버지

 

작가소개 / 이병국(시인)

- 2013년 《동아일보》로 등단.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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