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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둑길」외 6편

  • 작성일 2023-11-03
  • 조회수 382

둑길

전병호


며칠 전에 

시멘트 포장한

둑길


맨 먼저

고라니 발자국이 찍혔다.


고라니도 다니는 길이라고

알려 줬다.


 




창 밖의 나비



도화지에 

나비를 그리는데


형아.

나비다!

갑자기 동생이 소리쳤다


어디에서 날아왔을까?


창밖에 팔랑팔랑

날아가는 봄 나비.


내가 그리는 나비도

도화지 밖으로 날아가려고

날개를 편다.






가족



사자가 나타났다! 


엄마 아빠 코끼리가

아기 코끼리를 둘러쌌다.


삼촌 코끼리, 고모 코끼리는

바깥에 둘러섰다.


쁘아앙~

아빠 코끼리가 큰소리로 외치자

코끼리 가족이 

한 몸 되어 걸어간다.






뿌리



아빠가 웃자란 제라늄 곁가지를 뭉턱 잘라 냈다.


다다음 날 버려진 가지에서

꽃이 피어났다.


끝내 포기할 수 없는 꿈

마지막 힘 모아 피워 낸 것일까.


엄마가 꽃 핀 가지를 추려

꽃병에 꽂으면서 말했다.


“뿌리가 내리면 화분에 옮겨 심어야겠다.”

 





노랑어리연꽃



학교 끝나고 돌아오다가

걸음을 멈췄다

아파트 연못에 노랑어리연꽃

아침엔 꽃봉오리였는데

오후엔 활짝 피었다.


학교에 있는 시간은 

노랑어리연꽃이 피어나는 시간.






날개옷을 갖고 있는 엄마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읽어 준 밤에

엄마도

날개옷을 갖고 있다고 했다.


우리를 두고 날아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동생과 나는 얼른 일어나

장난감을 정돈했다.


엄마는 장롱을 열어 보라고 했다.

옷걸이에 걸려 있는 엄마의 눈부신 날개옷


지난 설날, 엄마가 종일 부엌일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께 세배하기 전에

잠시 갈아입었던 그 옷!






귀신 나오는 책



책장을 넘기는데

책 속에서 갑자기

머리 풀어 헤친 귀신이

눈을 뜬다.


“악!”

동생이 벌떡 일어서자

형이 얼른

책장을 덮었다.


모서리를 잡고

책 밖으로 나오려던

귀신 손가락이 털썩 잘려 떨어진다.


-이젠 못 나올 거야.


동생도

책을 꼬옥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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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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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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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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